-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돈을 '일상생활의 구조'의 기본 요소라고 했다. 그가 묘사한 중세 사회에도 통하는 주장이지만, 현대 사회에도 통하는 주장이 다. 돈은 상당히 포괄적인 용어다. 경제학자나 돈에 관심이 있는 비경제학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돈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즉 결제 수단으로서 돈에 대해 연구하는 일은 거의 없다. 미국의 인류학자 빌 모러Bill Maurer의 표현대로 결제 시스템은 '현대 경제의 배관'이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표현대로 '상업의 고속도로다. 나는 돈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돈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이용하고 있다.
- 현금, 카드, 수표, 결제 앱은 단순히 금전적 가치만 전달하지 않는다. 신용카드에는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권력기관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관한 정보가 담겨있다. 거래의 특성과 거래에 관여하는 당사자들의 관계에 관한 정보도 담겨 있다. 거래는 사회적·문화적 · 관계적 의미의 일부가 되고, 또한 그런 의미를 반영한다. 그 의미는 거래를 수행하는 종이 또는 전자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와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다시 그런 의미를 만들어낸다.
- 커뮤니케이션학자 제임스 케리James Carey는 커뮤니케이션을 “현실을 만들어내고, 유지하고, 수정하고, 바꾸는 상징적 인 절차"로 규정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정보의 공유이며, 따라서 공유된 의미, 더 나아가 공유된 사회를 만들어낸다. 요컨대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적 삶의 핵심 내용이다. 미국 실용주의 전통을 따르는 존 듀이John Dewey 같은 사회학자들과 마찬가 지로 케리는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세계를 기록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이 세계가 구조화되는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이론을 구체화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전송傳送으로 보는 관점과 의식儀式으로 보는 관점으로 구별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전송으로 보는 관점은 공간을 가로질러 발신자에서 수신자로 정보를 운반하는 것과 그 운반 과정을 통제하는 것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정의한다.
그가 활동할 당시에는 커뮤니케이션을 전송으로 보는 관점이 주류였다. 그래서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신호의 수리경제학數理經濟學으로 환원하는 사이버네틱 패러다임cybernetic paradigm이나, 서로 떨어진 사람들을 관리하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나, 매스미디어의 청취자나 시청자를 메시지의 수신 자로 상정한 다음 메시지가 그들에게 예측 가능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가정하에 매스미디어를 연구했다. 커뮤니케이션을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케리는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정보가 이동하는 것이 아닌 사회의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커뮤니케이션은 정보를 건네는 행위가 아닌 공유된 신념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 커뮤니케이션을 전송으로 본다면 신문은 소식과 지식을 퍼뜨리는 도구다. 의식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신문을 읽는 행위가 정보를 전달하거나 수집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모임에 참가하는 행위가 된다. 이 모임에서는 새로운 것이 학습되지는 않지만 특정 세계관이 표현되고 강화된다. 케리는 커뮤니케이션에 의식이라는 렌즈, 즉 문화적 접근법을 적용해야만 실제로 중요한 상징이 창조되고 이해되고 사용되는 사회적 절 차를 연구할 수 있으며, 그런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공통 문화를 재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분 석하는 틀을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지폐는 인쇄 미디어이므로 당연히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거래는 언제나 말 그대로 무언가가 오가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존 더럼 피터스John Durham Peters는 "돈은 결국 미디어이며, 교환 미디어일 뿐 아니라 표현 미디어” 라고 말한다. 한 국가의 통화 디자인을 보면 그 국가가 어떤 이미지를 추구하는지 알 수 있다.
미국 독립전쟁 중에 매사추세츠주에서 발행한 지폐에는 검을 휘두르는 애국자가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대헌장)를 펼쳐들고 있는 그림과 함께 '미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발행함'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캐나다가 건국 초기에 발 행한 지폐들은 캐나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풍경은 투지가 넘치기보다는 목가적이었고,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보다는 지극히 소박했다. 유로는 특정되지 않은 '유럽적인 것'의 느낌을 내고자 했다. 유로에 인쇄된 상상 속 다리는 유럽 국가들이 공유하는 과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형상화는 지폐가 청중을 전제로 하는 인쇄 미디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 로버트 모지스가 설계한 다리가 도시 생활자들이 근교로 쉽게 이동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런 인프라의 힘은 우리의 의식적 경험에도 작용한다. “자신의 위치를 안다는 것”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결제 시스템에는 어떤 낮은 다리가 건설되어 있을까? 그런 다리들은 우리가 어떤 곳에 속하는지 또는 속하지 않는지를 어떤 방식으로 알리고 있는가?
- 실리콘밸리는 소셜미디어 삶에 어울리는 거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돈 테크놀로지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돈 테크놀로지 개발 작업에도 소셜미디어 산업의 논리를 적 용한다. 많은 기업이 거래 행위로 축적되는 빅데이터의 잠재력을 활성화하고 그것을 다른 소셜 데이터와 통합하고 싶어 한다. 새로운 결제 시스템은 클릭만 하면 서비스 약관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등 실리콘밸리의 관행을 따른다. 또한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벤처 투자 같은 경제 방식을 따른다. 핀 테크의 목적은 기존 결제 산업을 파괴하고 매출과 데이터의 흐름이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저장소를 반드시 거치도록 재설정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바일 결제 앱인 벤모는 처음부터 소셜미디어의 형태로 출시되었다. 벤모는 페이스북처럼 거래 내역을 공개하는 피드를 제공하며, 이 점에서 페이팔PayPal과 같은 일반적인 개인 간 결제 시스템과 차별화된다. 어떤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벤모로 지불하면 그 거래는 게시물이 된다. 그 게시물은 해당 계정의 스트림stream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된다. 벤모 사용자는 모든 거래 내역에 메모를 해야 하며, 대개 이모티콘이 사용된다. 술값이라면 마 티니잔 이모티콘을 다는 식이다. 친구의 거래 내역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도 남길 수 있다. 많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처럼 개인 정보 보호 설정의 기본값은 공개다.
벤모는 사용자가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설계되었다. 공개 프로필, 트위터 같은 거래 내역피드, 친구 목록, 다른 회원의 친구 목록을 훑어보고 게시물(결제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 등 SNS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벤모는 확실히 소셜미디어처럼 보인다. 일례로 페이스북과 마찬가지로 화면을 파란색과 하얀색으로 꾸몄다. 벤모는 이런 익숙한 기능과 디자인 요소로 사용자가 벤모를 단순히 금융 서비스 플랫폼이 아닌 소셜미디어 플랫폼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한다.
- 소셜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결제 시스템은 특정 행동을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등 다양하게 설계될 수 있다. 빌 모러의 말대로 “테크놀로지가 애초의 계획이나 의도와는 무관한 온갖 사용법을 낳듯이, 테크놀로지가 도용되거나 수정되거나 다른 테크놀로지와 결합해 다른 기능을 하는 새 로운 파생종을 낳듯이, 돈도 그럴 것”이다. 결제 시스템의 미 디어 테크놀로지는 지금 이 순간 신중하게 재설계되고 있다. 대부분은 소셜미디어의 형태로 실리콘밸리에 의해서 말이다. 돈은 늘 소셜미디어, 즉 사회적 미디어로 기능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돈을 소셜미디어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
- 실리콘밸리가 돈을 재설계하면서 통제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는 흔히 새로운 자유를 낳는다고들 여기지만, 현실에서는 새로운 제약도 낳는다. 현금은 국가의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이지만 접근은 쉬운 반면 통제와 감시는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돈은 그렇지 않다. 소셜미디어 모델을 토대로 삼았기 때문이다. 누가 이 새로운 돈을 통제할 것인가? 누가 이 새로운 돈을 감독할 것인가?
매스미디어 돈이 소셜미디어 돈으로 전환하면서 우리가 떠안게 될 위험을 이해하려면 새로운 결제 시스템이 새로운 거래 공동체를 창조하고 그 공동체 내에서 거래 정체성 · 거래관계 · 거래 권력을 창조하는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매스미디어 돈에서 소셜미디어 돈으로 전환하는 것은 곧 매스미디어 거래 공동체에서 소셜미디어 거래 공동체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 국가 단위의 경제에서는 지폐가 그 국가의 영토 전체를 돌아다녀야 했다. 커뮤니케이션, 즉 통신은 한때 운송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우편 통신은 편지가 도로망, 철도망, 운하망을 통해 운송되는 것을 의미했다. 신문과 편지를 먼 곳까지 운송한 미국 우편 시스템은 미국 전역을 하나의 국가로 묶었고, 주정부들의 느슨한 연합에 통일된 국가상을 주입했다.
우편 시스템은 돈을 실어 나르는 인프라 역할도 했다. 20세기 이전에는 아주 부유한 계층만이 예금계좌를 사용했고, 대부분 사람들은 먼 곳으로 돈을 보내야 할 때면 돈을 봉투에 넣고 실과 바늘로 봉투를 꿰맨 후 풀로 봉인했다. 그러고 나서 우편으로 보냈다. 국가 통화처럼 미국 우편 시스템은 “민족국가에 대한 지지를 일상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였다. 우체국장은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연방정부의 대변인이었다. 몇몇 거대 결제 서비스업체, 이를테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와 웰스 파고Wells Fargo는 금융 서비스 산 업이 아닌 통신 산업에서 출발했다. 역마차, 배달원, 연락선, 증기기관차 등을 보유하고 있던 이들은 동부에서 서부를 오가는 금가루, 금, 정화正貨, 편지, 소포, 기타 화물의 운송 용역 수주를 놓고 미국 우편국과 경쟁했다. 이런 탄생 배경은 웰스 파고의 기업 로고에 그려진 힘차게 달려나가는 역마차에서도 엿볼 수 있다.
- 1990년대 내내 개인 간 디지털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시도는 많았다. 1990년대 말 여러 스타트업이 합병하면서 페이팔이 탄생했다. 페이팔은 실리콘밸리의 테크놀로지 산업과 그 산업에 만연한 반기업주의, 사회적 자율성, 문화 보헤미아니즘Bohemianism 같은 가치를 시장주의와 묶은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 의 산물이다. 많은 테크 기업 창업가가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대안 공동체와 사회적 삶이 만들어지고 더 나아가 개인이 해방될 것이라고 믿었다. 페이팔의 프로젝트는 단순히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만이 아니라 개방된 세계 화폐 시장을 추구했다. 애초에 페이팔의 목표는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글로벌 공동체가 아니라 민족국가의 간섭에서 완전히 해방된 글로벌 시장이었다.
역설적이게도 페이팔의 사업 모델이 성공한 것은 오로지 1970년대에 도입되어 여전히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관리하는 자동교환결제 시스템 덕분이었다. 이 시스템은 은행 고객이 수표를 액면가 그대로 전부 결제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공공 인프라다. 고객에게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고 유동자금도 확보하지 않아 직접적인 매출도 없다. 페이팔은 기존 카드네트워크를 이용할 때 수반되는 각종 비용을 내지 않기 위해 고객들에게 은행 계좌를 등록하도록 권장했고, 그 덕분에 자동교환결제 시스템의 거래 규정에 따라 고객의 계좌에서 직접 돈을 인출했다. 결론적으로 페이팔은 이미 존재하는 공공재를 활용한 것뿐이다. 사람들은 돈을 보내고 받을 때 그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었고,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속도로 거래를 진행할 수 있었다.
- 비자카드나 마스터카드 네트워크는 지불이 이루어지는 순간마다 각 카드 소지자의 거래 정체성에 반응해서 네트워크의 설정을 그 정체성에 맞춘다. 실제로 POSPoint of Sales(판매시점 정보관리) 단말기 1대가 여러 소비자의 카드를 연달아 받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설정을 불러와야 할 수도 있다. 글로벌 금융 인프라를 통과하는 여러 경로가 열리고 닫히며, 여러 알고리즘이 예금계좌 잔고 조정, 이자 계산, 수수료 작성 업무를 수행한다. 때로는 보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현금은 모든 사용자를 동등하게 취급하지만, 개방 루프 네트워크는 카드가 사용자에게 부여하는 거래 정체성의 차이를 인식하고 유지한다. 다만 이런 차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개방 루프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상인은 특정 카드를 차별하는 일 없이 모든 카드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결제 수단으로 받는다.
- 수수료는 결제 서비스업계에서도 논란의 대상이다. 상인은 수수료가 카드 네트워크의 대표적인 가격 담합 사례라고 주장한다. 비자카드나 마스터카드 같은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카드를 받으려면 상인은 그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모든 카드를 받아야 한다. 체이스 사파이어 리저브 신용카드는 받지 않으면서 다른 신용카드만 받는 식으로 카드를 가려가며 받을 수 없다. 개방 루프 네트워크와 발급인은 차별화된 수수료 일람표를 가격 담합 사례가 아닌 코피티션이라고 말한다.
-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폐쇄 루프 시스템이다. 별도의 발급인이나 매입인이 없고 자체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상인에 게 높은 수수료를 부과한다. 상인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는 받지 않을 수 있어도 비자카드나 마스터카드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수수료가 비싼 다른 프리미엄 카드는 받아야 한다(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를 받는 상인은 애초에 신용카드를 받는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그 카드를 받는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 소지자는 돈을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수수료를 반영하면 상인의 부담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으므로 일부 상인과 고객은 리워드 신용카드가 상품 가격을 올리고, 결국 고객이 자신의 리워드 프로그램 비용과 다른 고객 의 리워드 프로그램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리워드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고객이 리워드 신용카드를 쓰는 고객의 리워드 프로그램 비용을 보조하는 셈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2010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카드를 쓰는 가구는 현금만 쓰는 가구에서 매년 149달러를 지급 받고 있으며, 더 나아가 현금만 쓰는 사람은 매년 카드를 쓰는 가구에 대해 약 1,133달러를 간접적으로 보조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연구자가 수수료가 전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면서도 현재의 수수료 체계가 소비자와 상인에게 비효율적이며 특정 소비자나 상인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우리가 지불하는 방식은 관계적이고 불평등하다.
인류학자 빌 모러가 지적했듯이 이 시스템은 자본주의 경 제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으며 자본주의 경제의 원칙 을 따르지도 않는다. 우선 수수료는 기존 시장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발급인이 최고 고객을 두고 벌이는 경쟁으로 인해 상인, 매입인, 잠재 고객이 부담하는 비용이 전부 올라가는 드문 경우이기 때문이다. 지불카드나 신용카드가 만들어내는 수수료, 그 수수료가 투입되는 리워드 프로그램은 여러 거래정체성 사이에 적용되는 위계질서를 수치화한다. 수수료는 특정 사업들이 나머지 사업들보다 큰 비용을 부담하는 시장을 만들어낸다. 빌 모러는 수수료가 자본주의 체제의 수요와 공급 논리에 의해 정해진 가격표라기보다는 공물貢物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이 일상적인 거래가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상인은 돈을 주고 특정 유형의 사람들을 고객으로 받는 특권을 사고, 그 고객들은 리워드 프로그램이라는 형태로 돈을 받는다.
- 은행의 신용카드 시스템은 고객에게 최소 금액 상환을 허용하는 한편 카드는 곧 특권이라는 이미지를 과감히 포기했다. 다이너스클럽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카드 소지자와 가맹점을 직접 연결하는 폐쇄 루프 시스템이었다면,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 같은 개방 루프 시스템은 여러 은행·상인·카드 소지자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했다. 테크놀로지 역사학자 데이비드 스턴스David L. Stearns의 설명대로 개방 루프는 은행 카드 시스템 혁신에서 가장 핵심적인 측면이었다.
- 비자카드 네트워크는 개인이 은행에서 발급한 카드로 그 은행이 아닌 다른 은행에 계좌를 가진 상인에게 돈을 지불하도록 보조하는 시스템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주가 은행이 본사 소재지의 주 경계 밖에서 업무를 처리하거나 두세 곳이 넘는 지점을 운영하는 것을 금지했으므로 개방 루프 시스템이 꼭 필요했다. 다이너스클럽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은행이 아니었으므로 그런 제약에서 자유로웠다.
- 선불카드는 회전인도 거래인도 아니면서 예금계좌도 없 는 고객을 대상으로 돈을 벌 궁리를 하던 결제업계의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물론 소소한 수수료를 많이 부과해야 하지만 말이다. 선불카드는 개방 루프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여느 카 드와 동일한 기능을 하고 직불카드와 동일한 규제를 받는다. 카드사는 카드 소지자가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수수료와 리워드 프로그램을 통해 돈을 버는 대신 선불카드 소지자에게 온갖 수수료를 청구하며, 그 수수료는 달러 단위로 책정된다.
선불카드는 카드 소지자에게 수수료가 부과된다(그 외에도 월사용료 · 재충전 수수료 · 잔고 확인 수수료 · 휴면 카드 수수료 등이 청구되며, 그것도 모자라 선불카드를 없앨 때도 수수료를 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린닷Green Dot에서 발급하는 선불카드에
는 다음과 같은 수수료가 붙는다. 카드 발급비 최대 1.95달 러, 거래 건당 3퍼센트의 수수료, 선불카드 서비스 월 이용료 7.95달러(전월 충전 금액이 1,000달러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면제되기도 한다), 현금 충전비 최대 4.95달러, 현금 인출 수수료 25달러, 잔액 확인 수수료 0.5달러, 카드 재발급비 5달러 등이다. 이 수수료 책정 기준은 업계 표준에 가깝다. 모보 버추얼Movo Virtual 선불카드처럼 카드 발급비, 월 이 용료, 거래 수수료가 없는 선불카드도 있다. 커머스뱅크에서 발급하는 마이스펜딩mySpending 카드는 자동응답 고객 서비 스 센터에 전화를 걸 때마다 50센트를 부과한다. 그리고 상 담원과 실시간으로 통화하려면 1.5달러를 내야 한다. 법학자 메르사 바라다란Mehrsa Baradaran의 지적대로 “현대 미국 사 회의 심각한 아이러니 중 하나는 돈이 없을수록 그 돈을 쓰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 내가 아침 일찍 스타벅스에서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 합 비자카드로 2.1 달러를 내고 커피를 살 때 그 돈이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내 카드의 발급인인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이 비자카드의 교환 시스템을 거 쳐 스타벅스의 거래 은행인 JP 모건 체이스에 커피값을 지불 한다. JP 모건 체이스는 그 돈을 스타벅스에 지급한다. 
그런데 그 돈은 반대 방향으로도 움직인다. 스타벅스는 JP 모건 체이스에 수수료를 낸다. JP 모건 체이스는 나를 고객으 로 공급한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에 수수료를 낸다. 스타벅스는 거래 매출 규모가 큰 기업이므로 비교적 낮은 고정 수수료를 낸다. 스타벅스는 POS 단말기를 위한 자체 하드웨 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으며, 자사가 매일 판매하는 수백 만 잔의 커피에 대한 값을 확실히 지불 받을 수 있도록 지원 하는 내부 부서도 여럿 두고 있다. 
반대로 우리 동네의 카페가 JP 모건 체이스와 직접 거래를 한다면 별로 실익이 없을 것이다. 내 단골 카페는 웰스 파고의 결제 서비스를 재판매하는 소규모 ISO 업체와 거래한다. 이 ISO는 내 단골 카페를 위해 스타벅스의 내부 부서가 담당하는 업무 대부분을 대신 수행한다. POS 단말기를 관리하고 그 정보가 업계의 표준과 법규를 준수하도록 감독하고 결제처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결한다.
은행은 결제 서비스 외에 위험도 판매한다. 상인이 고객의 카드를 받으면 은행은 단기로 그 지급을 보증한다. 내가 커피 값을 결제하려고 카드를 사용하면 JP 모건 체이스는 2.1 달러 에서 수수료를 뺀 금액을 스타벅스에 빌려주는 셈이 된다. 그 런 다음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이 스타벅스가 JP 모건 체이스에 빚진 결제액 전부를 정산한다. 마지막으로 버지니 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은 커피값 2.1 달러를 포함해 그동안 카드로 결제한 금액과 이자를 내게 청구한다.
사기나 불만 등 어떤 이유로 내가 커피값 2.1달러의 지급을 거절하면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은 지급을 거절한다. 그렇게 되면 은행은 발급인에게 결제액을 환불할 의무가 생긴다. 발급인은 은행에서 돌려받은 돈을 다시 고객에게 돌려준다. 그런 다음 은행은 상인에게서 그 돈을 회수해야 한다.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은 JP 모건 체이스에서 2.1달러 를 돌려받고 JP 모건 체이스는 그 돈과 추가 수수료를 스타벅스에서 돌려받는다.
내가 단골 카페에서 낸 커피값 지급을 거절하면 버지니아주립대학 신용조합은 그 돈을 웰스 파고에서 받아내고 웰스 파고는 그 돈을 커먼웰스 머천트 솔루션스Commonwealth Merchant Solutions에서 받아내고 커먼웰스 머천트 솔루션스는 그 돈을 단골 카페에서 받아낸다. 은행의 업무, 즉 상인에게 대가를 받고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는 상인 대신 위험을 떠맡는 것이다. 지불을 받는 과정은 곧 단기 신용대출이기도하다.
- 페이팔은 돈이 폐쇄 루프 시스템에 최대한 오랫동안 머물게 해서 기존의 시스템을 우회한다. 한 사용자가 PSP를 통해 다른 사용자에게 지불하면 PSP는 그 전송 내역을 내부 장부에 기록하고 돈을 지불한 사용자의 계정에서 차감하고 돈을 지불 받을 사용자의 계정에 가액加한다. 이것을 장부 전송이라고 부른다. PSP로서는 돈이 PSP를 떠나는 일 없이 장부전송으로만 돈이 오가는 상황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 경우에 PSP는 외부 시스템에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으면서도 사용 자에게 수수료를 청구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의 계정에 묶인 채 체류하는 돈(유동자금)으로 이자를 벌 수 있다.
사용자가 계좌 이체나 신용카드 결제를 선택하면 PSP는결제를 한다. 업계에서는 이런 상인을 두고 '마스터 상인' 역할을 한다고 표현한다. 대표적인 마스터 상인인 창고형 마트 처럼 PSP는 네트워크 · 처리업자 · 은행과 직접 협상해서 대규 모 거래에 맞는 맞춤형 수수료를 제안 받는다. 중간업자를 거 의 다 쳐내고 스스로 중심 중개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고객이 신용카드 결제를 선택하면 PSP는 수수료를 고객에게 전가한다.
- 전통적인 ISO 모델은 스타트업에 상인조차 빠른 속도로 빼앗기고 있다. 이들 결제 플랫폼은 PSP처럼 기능할 수도 있고, 대형 은행의 ISO로 등록되어 있을 수도 있다. 상인에게는 포인트 적립, 분석 자료, 장부 작성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한다.
꽤 오랫동안 ISO는 중소 상인이 카드 결제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중간업자가 대개 그렇듯이 ISO도 상인들 사이에서 환영받지 않았으며 바가지를 씌워서 가격만 올린다고 비난받기 일쑤다. 오늘날, 적어도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들은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과 계약을 한다. 그들은 카페에 소프트웨어, 카드 리더기, 세련된 회전 거치대를 장착 한 태블릿을 제공하고 있다.
- 단순히 이모티콘만 더한다고 해서 소셜미디어가 될 수 있 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소셜미디어 시스템의 밑바탕에 깔 린 논리, 즉 사회관계를 설정하는 방식, 커뮤니케이션 흐름의구조, 가치 배분 방식을 결제 수단에 적용해야만 한다. 소셜미디어와 돈은 둘 다 기억의 테크놀로지이며, 새로운 기억 생태계'의 일부다. 이메일을 쓰거나 친구와 셀카를 찍을 때 우 리의 사적 기억은 데이터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우리의 개인 기록이 넘쳐날수록 우리는 언제 어떻게 과거와 마주치게 될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 우리의 기억을 소셜미디어에 믿고 맡긴다. 과거의 기록은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에서 한데 뒤섞인 채 SNS를 떠돈다. 이런 식으로 개인 기억과 집단 기억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미지, 영상, 댓글, 광고가 서로 포개진다. 이 타임라인을 훑어가다 보면 친밀한 순간과 개인적으로 중요한 순간부터 국제적으로 중대한 사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억과 마주치게 된다. 소셜미디어에서 이루어지는 기억하기는 혼란스럽고 창피하고 계몽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다.
- 기억이 존재하는 환경에서는 이 기억이라는 가상 대차대 조표를 통해 각 행위자의 거래 기록이 작성되고 유지된다. 돈 이 존재하는 환경에서는 돈이 그런 대차대조표를 대신하는 실질적인 기록 매개체가 된다. 따라서 돈은 기억의 기능을 대신하는 기술 혁신이며, 사회가 돈이 없었다면 시행하지 못했을 공정한 분배를 시행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사고 실험을한 뒤 그는 돈이 존재하는 진짜 이유는 과거를 기록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인류학자 키스 하트는돈을 뜻하는 머니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억의 여신 모네모시네를 로마식으로 표기한 모네타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 주목함. 그의 관점에서 보면 돈은 기억은행이다. 가치에 관한 약속을 기억하고, 그 약속을 미래에 전달하고, 거래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약속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일종의 신용체계인 것이다. 그는 돈이 기본적으로 집단기억의 도구이며, 우리가 나머지 인류와 맺는 교환관계의 일부를 기록하는 방식이라고 주장. 돈은 언어와 마찬가디로 기억인프라다. 돈은 인간의 교환관계가 눈에 보이지 않게 새겨진 유통되는 기록이다.
- 벤모가 기억의 테크놀로지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디지털 화폐는 거래의 구체적인 사항을 보존하고 우리의 지리적 이동을 기록하고 우리의 취향과 습관을 추론하는 능력이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나이절 도드는 “기억의 테크놀로지가 기업과 국가의 통제를 받는 한 기억을 보조하는 장비는 정치적 · 상업적 감찰을 보조하는 도구이기도 하다는 비판에서 자유 로울 수 없다”라고 말한다. 한때는 사적 영역에 속했던 거래 내역이 게시물이 되어 친구와 적, 국가와 기업의 감찰 대상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단순히 이모티콘만 더한다고 해서 소셜미디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소셜미디어 시스템의 밑바탕에 깔 린 논리, 즉 사회관계를 설정하는 방식, 커뮤니케이션 흐름의 구조, 가치 배분 방식을 결제 수단에 적용해야만 한다. 소셜미디어와 돈은 둘 다 기억의 테크놀로지이며, 새로운 기억 생태계'의 일부다. 이메일을 쓰거나 친구와 셀카를 찍을 때 우 리의 사적 기억은 데이터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우리의 개인 기록이 넘쳐날수록 우리는 언제 어떻게 과거와 마주치게 될지 모른다.
- 테크놀로지학자 재런 러니어Jaron Lanier는 현금이 미래의 디지털 경제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기에는 “기억력이 너무 나쁘다”라고 말한다. 그 대신 그는 우리가 기억하고 거래한 상대방이 기억하는 걸 돕는 ‘경제 아바타'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 장한다. 많은 사람이 블록체인이 약속하는 꿈은 바로 더 잘 기억하는 돈일 거라고 예상한다. 사람들은 돈의 모든 유통된 행위 흔적을 기록한, 진정한 의미에서 유통된 장부이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영원한 장부, 모든 거래 내역을 완벽하게 기억하면서도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돈을 기다리고 있다.
- 결제가 과거의 거래 내역을 생성하듯이 우리가 매 순간 페이스북 등에서 하는 활동은 사회적 흔적을 남긴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우리가 올린 사진과 댓글 외에도 우리가 클릭한링크나 영상까지도 기록한다. 이 자동화된 수집은 디지털 티끌이 모이면 엄청난 가치의 산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를 둔다. 실제로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언젠가는 이 데이터를 활용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사용자의 사소한 활동을 기록하는 데 엄청난 비용을 들인다.
실리콘밸리가 결제 산업에 주목하면서 우리의 금융 활동이 생성하는 기록에도 소셜미디어 논리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는 결제의 기능을 2가지 방식으로 구조화한다. 첫째, 소셜미디어 사업이라는 관점에서 결제 내역은 아직 저평가된 자원이며 기업이 이미 축적해놓은 사용자 감찰 자료에 더할 새로운 유형의 개인 데이터다. 둘째, 소셜미디어 산업은 다층적인 플랫폼, 예컨대 한 이해관계자 집단(우리)이 생성하는 데이터가 다른 이해관계자 집단(광고주)에 판매되는 시장을 구축한다.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결제는 통합하고 분석하고 포장하고 판매할 데이터를 생산하는 또 하나의 사회활동에 불과하다.
새로운 소셜 결제 시스템은 구체화되지 않은 채 존재하던 개인과 집단의 거래 내역을 기록하는 영속적인 장부를 만들어낸다. 결제의 사회적인 속성을 기록으로 구체화할 뿐 아니라 그 기억에 울타리를 세우고 독점한다. 거래는 이제 거래데이터가 되었다. 과거에는 사적 데이터로 취급되던 거래가 언젠가는 매출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사회 데이터의 일종이 되었다. 우리의 거래 내역은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감찰 가능하고, 사유화된 무언가로 재탄생했다. 거래 내역의 기록에 대한 이런 관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벤모가 성공하기 전까지는 결제업계에서 개인 간 모바일 결제는 전망이 없는 분야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전통적으로 상인은 돈을 받기 위해 돈을 낸다. 그런데 개인 간 거래에는 상인이 없다. 실제로 벤모는 사용자가 직불카드나 계좌이체로 돈을 보내거나 받을 때에는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2012년에 우버와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경제 플랫폼을 지원하는 결제업체 브레인트리 Braintree는 2,620 만달러를 주고 벤모를 인수했다. 당시에 벤모는 수익을 전혀 내지 못하고 있었다. 2013년에는 페이팔이 브레인트리를 8억달러에 인수했다.
벤모가 투자자와 파트너사에 약속한 가치는 커뮤니케이 션, 즉 새로운 거래 내역 기록인 사용자 간 대화다. 이런 대화는 벤모의 기본 구성 요소로 거래 내역을 자동적으로 기록한 다. 더 나아가 현재 벤모의 가장 귀중한 자산은 '벤모'라는 단 어일 것이다. 구글하다가 검색하다'를 의미하고 '페이스북하다'가 '연락을 주고받다'를 의미하는 것처럼, 20대 사용자들 사이에서 '벤모하다'는 '돈을 보내다'를 의미한다. 벤모의 기업 가치는 벤모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친구 간 돈 거래를 둘러싼 일상적인 사회규범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벤모의 개인 정보는 기본적으로 공개로 설정되어 있다. 이것은 누구나 벤모의 거래 내역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의 피드를 구독하거나 당신에게 관심이 있는 친구의 친구뿐 아니라 벤모 피드를 클릭하기만 하면 누구나 볼 수 있다. 벤모의 개인 정보 설정을 비공개로 바꾸는 사용자도 많다. 그러면 사용자가 돈을 보냈거나 사용자에게 돈을 보낸 친구 들만 거래 내역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용자가 개인 정보 설정을 공개로 놔둔다.
- 하워드 슐츠는 디지털 화폐라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신뢰를 강조할 정도로 통찰력이 뛰어났다. 모든 돈의 가치는 신뢰에서 나온다. 미국 달러는 국가와 국가의 돈을 관리하는 시장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를 등에 업고 있다. 비트코인은 달 러로 표시되는 비트코인의 시장가치, 그것의 토대가 되는 암 호 시스템, 그 화폐를 지지하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등에 업 고 있다. 거래 공동체는 그 공동체의 제도, 구성원, 정서 구조 에 대한 신뢰의 네트워크다.
따라서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가 디지털 화폐 발행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커뮤니케이션학자 세라 베이넷-와이저Sarah Banet-Weiser는 브랜드가 정체성과 공동체를 만들 어낸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그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도 작용한다. 기업 브랜드는 정체성과 공동체를 제공한다. 정체성과 공동체의 대표적인 예인 종교와 시민운동단체는 기업의 브랜딩 도구와 기법을 활용한다. 거래 공동체의 생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화폐는 최고의 브랜딩 도구다.
- 20세기의 마지막 20년과 21세기의 첫 20년 동안 사이퍼펑크족과 암호무정부주의자의 비전을 토대로 디지털 화폐 시 스템을 설계하고 도입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1985년 에 컴퓨터공학자 데이비드 촘David Chaum은 “빅브러더를 완 벽하게 무력화할 것이라고 주장한 전자화폐 시스템을 제시 했다. 1994년에는 사이퍼펑크스의 공동설립자인 팀 메이Tim May는 가상의 암호 기법을 제안했다. 1998년에는 컴퓨터공 학자 웨이 다이Wei Dai가 익명으로 배분되는 전자화폐 시스템인 비머니B-money를 제시했다. 또 1998년에 닉 사보Nick Szabo는 컴퓨터가 희소한 디지털 재화를 채굴하는 시스템인 비트 골드bit gold를 제안했다.
- 지금까지 결실을 맺은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 이후에 등장한 디지털 화폐 시스템, 특히 2008년에 등장한 비트코인의 토대가 되었다. 인터넷의 지리학과 정치학은 디지털 화폐라는 개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인터넷은 돈의 가치를 전송하고 가치의 이동을 기록하는 일을 해내기에 적합하다. 그러 나 인터넷이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바로 그런 가치를 보증하고 유지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가치를 전송하고 보관하는 업 무를 담당하는 인터넷 자체도 관리와 보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인류학자 키스 하트는 인터넷이 디지털 화폐에 미칠 영향력을 예견할 정도로 선견지명이 있었다. “돈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한다.”
- 미국은 오래전부터 현금이 부족할 때면 스탬프, 가증권, 쿠폰 같은 상품을 국가 발행 화폐의 대용품으로 사용해왔다. 19세기 미국에서는 채굴·벌목 회사가 노동자에게 임금 대신 기업 가증권을 발행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가증권은 회사 매 점에서만 통용되었으므로 노동자들은 종종 높은 이윤을 붙여 파는 매점에서 물건을 구매해야만 했다. 이런 관행은 과거만 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8년 멕시코 대법원은 월마트가 직원 들에게 임금 대신 월마트에서만 쓸 수 있는 바우처를 지급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소비자에게는 리워드 포인트가 실질적인 가치를 지니지만, 그 가치가 변경되었을 때 소비자는 기업에 항의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 소셜미디어 돈이 분절되어 있다는 사실은 당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 지금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가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소셜미디어 돈이 둘 이상인 현실은 당신이 각기 다른 돈과 공동체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복잡한 거래를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일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미래의 거래 공동체 주민은 동질적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층적이고 유동적인 거래 정체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여러 화폐를 다루면서 살 것이고 거래 정체성도 여러 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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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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