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메커니즘

경영 2022. 6. 5. 08:38

- 스마트폰, 책, 신문, 잡지, 천장에 달린 광고, 액정 디스플레이는 전부 지하철 안 심심풀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들이다. 이들은 전부 다른 업계가 만든 물건 내지는 서비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지하철 안에서 서로 고객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스마트폰 전성기인 지금 종이 신문을 읽는 사람은 크게 줄었다. 앞서 설명한 대로 과거에는 북적이는 지하철 안에서 신문을 작게 접어가며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읽어내는 스킬 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쓸모없는 능력이 되었다. 신문은 신문, 잡지는 잡지와 경쟁한다는 생각으로 업계의 틀 안에 갇혀 있으면 마케팅 근시안에 빠진다. 그 결과 할리우드처럼 과거 직면했던 어려움에 다시 빠지게 되는 것이다.
- 업계 밖으로 눈을 돌리지 않으면 마케팅 근시안에 빠진다.
-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간은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
- 사실 스키마는 브랜딩에서 매우 자주 쓰이는 기법이다. P&G의 페브리즈는 이불이나 커튼, 소파 등 일부만 씻어 내기 어려운 곳에 뿌리면 냄새를 없애주는 제품이다. 페브리즈에는 자동차 내부에 두는 탈취제도 있는데 가정에서 쓰는 탈취제와 똑같이 페브리즈라고 부른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페브리즈는 당장 씻을 수 없는 부분에 뿌리면 냄새를 없애준 다'라는 스키마가 소비자 사이에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페브리즈가 뿌리는 행위를 '세탁' 이라고 표현한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세탁하지 않지만 페브리즈는 세탁할 수 없는 것을 세탁한다는 스키마가 우리 모두에게 형성되어 있다.
물론 차량용 탈취제에 전혀 다른 브랜드명을 붙이는 선택지도 존재 한다. 하지만 P&G는 기존 브랜드명을 활용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소비 자가 가진 스키마를 잘 활용하면 더 적은 비용으로 차량용 탈취제가 무 엇인지 단번에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키마는 브랜드뿐만 아니라 브랜드 사용자를 볼 때도 쓸 수 있는 안경이다. 블루보틀 커피의 사례를 앞서 소개했는데, 브랜드에 대한 스키마에는 누가 블루보틀 커피를 마시는가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 앞에서 말한 사용자 이미지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서드웨이브 남성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한다. 로드바이크를 타고 수염을 길렀으며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멋진 스니커즈와 모자 같은 소품으로 세련된 느낌을 주는 남성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것은 블루보틀 커피 이용자의 스키마이다. 여기서는 이를 사용자 스키마'라고 부르고자 한다.
사용자 스키마 역시 마케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언가를 사고 쓰기 전에 해당 재화나 서비스의 사용자 스키마를 머리에 떠올리며 자신이 그 이미지에 부합하는지를 따져 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대본대로 연기한다. 어떤 역할을 어떻게 연기하는지 생각해 보자. 
- 당신은 츤데레인가? 아니면 주위에 츤데레가 있는가?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츤데레는 특정 인간관계에서 퉁명스러운 태도(츤)와 과도하게 다정한 태도(데레)를 동시에 지니는 모습이나 그런 사람을 가리킨다고 한다.
츤데레의 본질은 언제 데레로 바뀔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예측 가능성을 품은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퉁명스러운 태도 는 상대에게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물론 퉁명스러운 태도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이야기를 단순화하기 위해 그런 전제는 제외하기로 하자. 퉁명스러운 태도는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데레라는 호의적인 상황이 찾아오리란 기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유쾌하지 않은 상황을 견딜 수 있다.
이 점은 츤데레에게도 중요하다. 평소에는 퉁명스러운 태도로 일관하고 일종의 보상으로 가끔 다정하게 대해주면 상대를 쉽게 컨트롤할 수 있다. 이는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다. 츤데레가 좋아할 만한 행동을 상 대가 했다고 해서 매번 다정함을 보상으로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0가지 잘한 일에 대해 10번이 아니라 2번이나 3번만 다정하게 대하면 된다.
- 츤데레는 '강화'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강화는 특정 행동의 학습이라는 점을 앞에서 배웠다. 즉 츤데레는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고 다정함을 보상으로 받는 강화 과정인 것이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상대는
자신이 어떤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지 학습해 나간다. 위에서 츤데레는 효율적이라고 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효율적인 '강화 계획'이 짜여 있다는 뜻이다. 강화 계획이란 학습을 위해 어떤 타이밍에 당근과 채찍을 줄 것인가를 말한다. 
-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브랜딩이란 단기기억에만 남아 있는 브랜드를 장기기억의 연상적 네트워크 속에 자리 잡게 하는 일이다. 기업은 적절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브랜드가 가진 가치를 다른 가치와 함께 보여준다.
그러니 부디 이런 관점에서 광고를 보기 바란다. 제품과 함께 등장하 는 인물이나 배경, 사물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점에 주목하면 해당 브랜드가 타깃의 머릿속에 어떤 연상적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하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 매슬로의 저서는 이제 바이블이다. 바이블이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을 가리킨다. 사실 매슬로의 책은 전부 두껍고 항목이 15가지나 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장황해서 읽기 힘들다. 또 매슬로는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피라미드 형태의 도식은 그린 적이 없다. 문장 나열하기를 좋아해서 도식 같은 것은 그리지 않았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라는 프랑스 철학자는 현대의 신화(Mythologies)〉 라는 책에서 “신화란 명확한 설명이 아닌 명확한 확인을 가능케 한다.”라 고 말했다. 신화는 세상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청자가 어 렴풋이 체감한 것을 확인시켜 주는 목적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바르트라면 매슬로의 이론을 신화라고 불렀으리라.
매슬로 이외에도 세상에는 확인만 시켜주는 신화가 넘쳐난다. 사람들이 믿고 있는 이야기가 사실은 신화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저건 신화 아닐까 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이 조금은 달리 보일지도 모른다.
- 오픈카는 젊음의 상징이다. 남자라는 동물은 애인을 두고자 하는 비밀스러운 욕망이 있다. 오픈카를 사는 행위는 애인과 사랑을 나누는 죄책감 없이 바람을 피우려는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안정적이고 무난한 '아내’, 즉 세단을 산다. 오픈카를 사는 행위는, 다시 말해 애인’을 둔다는 것은 상상 속 이야기일 뿐이다.....(〈모티베이션〉에서 필자 요약)
디히터의 해석에 따르면 미혼 남성은 오픈카를 사도 바람이 아니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년 남성이 굳이 오픈카를 사는 것은 바람을 피우고 싶다는 욕망을 간접적으로 채운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해석뿐만 아니라 실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구체적으로 마케팅 전략에 녹였다. 그가 고안한 대표적인 방법이 오픈카를 미끼로 쓰는 것이다. 가령 쇼룸의 잘 보이는 곳에 오픈카를 전시해서 고객을 모은 다음 실제로는 안에 전시된 세단을 파는 식이다.
- 관광객은 방문하는 장소에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 있다. 애초에 파리를 모르면 파리에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못한다. 사전 지식을 가진 사람은 파리에 관해 좋은 이미지를 품고 있다. 가령 파리 하면 꽃의 도시, 멋진 카페, 센 강변에서 키스하는 연인이나 에펠탑,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 같은 명소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실제로 파리에 간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그들은 자신이 모르는 사실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파리는 역시 꽃의 도시라며 좋아하고 카페와 센강의 분위기에 취한다. 자기 안에 있는 '시선'을 현지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너무 시니컬한가? 하지만 자신이 찍은 관광 명소 사진이 마치 엽서 속 그림과 똑같다는 점을 나중에 깨달은 적은 없는가? 물론 여행에서 새 로운 발견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발견 자체도 사 실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얻은 사전 정보의 재발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전 정보가 주는 시선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관광지는 관광객의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노력의 하나가 관광객의 시선에 부합하는, 즉 진부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사쿠사를 생각해 보자. 센소지 앞에 늘어선 가게들은 전통 등이나 부채, 얇은 기모노를 판다. 일본인이 보기에는 게이샤, 후지산 수준의 뻔하디뻔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다만 이러한 모습은 관광객이 가진 시선 에 부합하고 바로 이 점 때문에 물건이 팔린다. 이런 이미지를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한다. 스테레오 타입은 맞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이다. 관광지 는 스테레오 타입에 맞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관광객은 자기 안의 시선을 확인하며 만족을 얻는다.
- 이상한 논리임을 금세 알아차리지 않았는가? 고흐가 위대한 이유는 가난하고 인정받지 못해서가 아니다. 재능이나 노력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멋진 그림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잘 보이는 부분이 닮았으니 본질적인 부분도 닮았다고 착각하는 것을 고흐의 오류라고 한다.
한편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처럼 매일 같은 옷을 입는 사람 이 있다. 기업가로서 자신이 있으니 옷으로 승부를 보지 않겠다는, 소비에 따른 상징적 자기완성의 안티테제를 표출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저커버그는 인상 관리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로 페이스북의 개인 정보 유출 파문으로 미국 의회 청문회에 섰을 때 그 는 반듯한 슈트 차림이었다. 연기하는 무대에 맞춰 적절한 패션을 선택 한 것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의 심플한 패션을 놈코어라고 부른다고 한다. 놈코어 패션이 주목을 받으면 재밌게도 잡스나 저커버그를 따라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패션에 무심 한 척하면서 사실은 부족한 업무 자신감을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도 있다. 결국은 상징적 자기완성에 빠져 있는 것이다.
살짝 짓궂은 해석일 수도 있고 너무 과한 생각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냥 놈코어를 좋아할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비가 불완전한 자아를 보완하는 힘을 가졌다는 사실은 마케터에게 좋은 비즈니스 기회가 된다. 혹은 역할이 바뀌어 불안을 느끼는 이에게 물건으로 자신감을 채워줄 수 있다면 그것은 고객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다. 한 사람의 소비가 과연 무엇을 채워주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 오래된 브랜드를 되살리는 것만이 레트로는 아니다. 그리운 20세기 를 콘셉트로 한 타임슬립 글리코(제과 기업 에자키 글리코가 피규어 제작으로 유명한 가이요 도사와 함께 만든 피규어 세트 시리즈로, 1950년대와 1960년대를 추억하게 하는 소품이 들어 있다-옮긴이)처럼 1970년 세계 박람회 등 과거를 콘텐츠로 활용한 예도 있다.
왜 레트로 브랜드를 활용할까? 그 이유를 기업, 젊은 세대, 성인, 부모, 자녀의 4가지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 첫 번째, 레트로 브랜드를 통해 기업은 자신들의 존재, 다시 말해 정 체성을 재확인할 수 있다. 2012년 기업 회생에 성공한 JAL은 1959년에 만든 두루미가 그려진 로고를 2011년부터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비행기 꼬리날개에 그려진 로고를 볼 때마다 기업의 초심을 되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이리라.
두 번째, 앞서 말한 대로 젊은 세대에게 레트로 브랜드는 새 브랜드이다. 따라서 새로운 브랜드를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기업이 열심히 쌓아 올린 노력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세 번째, 나이를 먹어 구매력이 생긴 성인에게 그리움을 환기하면 보다 간단히 지갑을 열게 할 수 있다. 노스탤지어는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다. 젊을 때 갖고 싶었던 것을 사지 못했다는 아쉬움까지 포함하는 복 잡한 감정이다. 특히 고액의 레트로 브랜드는 이런 복잡한 감정을 교묘히 자극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경우 연장자에게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움을 준다는 점에서 레트로 브랜드의 양면성을 볼 수 있다.
네 번째, 레트로 브랜드는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것을 부모가 자녀에게도 사주는 파급력을 가진다. 이를 통해 부모는 아이에게 자신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 레트로 브랜드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도 하다.
- 부르디외는 문화 자본에는 3가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객체화된 문화 자본으로 소위 물건을 말한다. 집에 피아노가 있다거나 골동품, 장서가 있는 식이다.
두 번째는 제도화된 문화 자본이다. 이것은 학위처럼 학력이나 꽃꽂이 보조 강사 자격증 같은 제도가 보증하는 문화 자본이다.
세 번째는 신체화된 문화 자본으로 말투나 행동, 미적 감각 등을 가리킨다. 이렇듯 신체화된 문화 자본을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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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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