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다 했다. 이제 중국 사람들, 동남아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부지런하다. 근면, 성실은 앞에 길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눈앞에 잡초만 무성하고, 빨리 뛸 수 있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열심히 달려갈 수 있을까. 남이 이미 지나간 길을 갈 때만 근면, 성실할 수 있다. 창조적 능력을 발휘해야함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 다시 열심히 일하기 위해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휴식은 창조저 과정의 일부다.
- 휴식과 관련된 개념의 차이도 있다. 독일어로 여가는 프라이차이트. 우리에게 여가는 열심히 일하고 남는 시간이란 의미. 그러나 독일어의 프라이차이트는 남는 시간이 아니다. 자유시간이다. 내가 마음대로 쓸수 있는 시간이란 의미. 자유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있다. 우리에게 여가나 휴식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하는 소극적 자유에 가까움. 그러나 독일의 프라이차이트는 무엇을 향한 자유인 적극적 자유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휴식은 적극적 자유의 시간이 된다. 추구하는 삶의 목적과 휴식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이야기다. 휴식이 진정한 삶의 힘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사업가 아렌트 외트커는 인생에서 저지른 최대의 실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친구들과 지낸 시간이 너무 적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꺼이 누리고픈 사치를 꼽아보라는 질문에 "한가롭게 자연을 즐기는것고 부모님의 집 정원에서 꽃들이 연못 수면에 비춘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하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방안에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에 시작된다. (파스칼)
- 모모에 나오는 캐릭터들처럼 우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째서 시간은 절약하면 할수록 더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엔데의 소설에서야 시간을 부족하게 만든 게 누구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시간절약 에이전트에서 나온 회색신사가 인간에게 시간을 빼앗아 자기 멋대로 쓰지 않던가.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시간 기근을 빚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누가 혹은 무엇이 회색신사의 역할을 맡았는가? 그리고 은밀히 빼돌려진 시간은 도대체 어디에 숨겨졌을까? 아무래도 우리는 한때 마르셀 푸르스트가 그랬듯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나설 것이 아니라 얻은 시간의 자취를 밟는 쪽을 택하는데 나을 것 같다.
- 우리로 하여금 시간을 얻게 만드는 새로운 기술은 그게 어떤 것이든 우리 활동의 리듬과 흐름을 가속화한다. 결국 새 기술은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을 선물하는 게 아니라, 일거리만 더욱 부풀린다. (제레미 리프킨)
- 시간부족이라는 느낌은 시간과는 별 관계없으며, 어떤 태도와 관점을 갖느냐에 달린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르페브르는 150명에 달하는 여인들을 상대로 인터뷰해서 일과 여가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를 조사. 그 결과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의 교육수준 정도에 따라 시간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정의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교육수준이 낮은 여성들은 여가시간이라는 것을 일이 없어 아이들과 함께 지내거나 쇼핑을 하는 시간과 똑같이 여긴 반면, 대학을 졸업한 여성은 전혀 달랐다. 이 여인에게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은 즐거움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일종의 의무였다. 교육수준이 높은 어머니들에게 여가라는 것은 헬스클럽에 가서 긴장을 풀고 운동을 즐기거나 남편과 함께 외출하는 시간이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직업활동을 자아실현의 필수적 수단으로 본 반면, 배움이 적은 여성에게 직업활동은 아이들과 함께 한가롭게 지내는 시간을 방해하는 부담스런 의무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물론 어느 쪽이 다른 쪽에 비해 더 나쁜 엄마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여가시간이라는 개념이 서로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이다.
- 슈워츠는 선택의 역설을 이야기하면서 강연에서 짐짓 이렇게 묻는다. "왜 옛날에는 모든 게 나았을까요?" 스스로 주는 답도 간단하다. "옛날에는 모든 게 형편없었으니까" 완벽하지 못했던 세상에서는 좀 부족할지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언젠가는 더 좋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즐거웠다. 그러나 어떤 욕구에도 맞춤한 상품을 제시하는 현대상품 세계는 부족함을 용납할 줄 모른다. 광고는 오늘날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자기 책임이라고 강변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고 자아탈신이라는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슈워츠는 끊임없이 부의 증가라는 게 결국에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는 확시에 차 있다. 슈워츠는 그 원인 중 하나로 인생의 모든 영역에 걸친 선택 옵션의 증가를 꼽는다. 도대체 뭐가 뭔지 한눈에 조망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요구르트 상표와 보험 혹은 방속 채널들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사람은 광고가 암시하듯 자유를 맛보는 게 아니라 치솟는 스트레스에 시달릴 뿐이다.
- 시간에 쫓기며 허덕이는 일상의 느낌은 상당부분 끊임없이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갈망과, 이미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는 무능함으로부터 비롯된 것. 바로 그래서 에피쿠로스와 같은 철학자와 불교의 스승은 언제나 행복에 이르는 길은 욕심을 채우는 게 아니라 욕심을 비우는 데서 열린다고 거듭 강조한 것이리라. 끝없는 욕심을 채우려 도파민의 물결에 휩쓸리다보면 평안함에는 결코 이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 허리에 천 쪼가리나 두르고 한줌 쌀로 하루를 연명하는 금욕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항상 더 많이를 외치는 치명적 주장을 꿰뚫어보고 다양한 조건을 내건 사회의 기만적 자유약속에 기대지 않는 게 많은 도움을 준다. 우리 인간은 항상 새로운 욕구를 찾아나서는 존재인 까닭에 이 새로움의 지뱅 완전히 압도당하는 일만큼은 없도록 주의 해야 한다. 바로 그래서 휴식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도 있으리라. 우리의 욕심의 꽁무니를 끊임없이 쫓아다니기만 할 게 아니라, 때로는 멈추어 서서 순간의 행복을 즐길줄도 알아야만 하는 게 휴식의 기술이다.
- 어떻게 해야 풍선을 하늘로 날아오르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무거운 짐을 버릴 때 풍선은 비로소 날아오른다. 지혜롭게 진입로의 포장을 포깋나 알자스의 산장주인처럼 우리도 종종 선택 가능한 것의 가짓수를 줄임으로써 어떤 만남이다. 활동의 순간을 오롯이 완전하게 맛볼 줄 알아야만 한다.
- 휴식은 두가지 핵심조건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자신이 시간의 주인이 되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둘째, 늘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더 나은 대안이 무언지 고민하는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포기는 바로 지금이라는 유일한 순간에 온전히 주의를 모으고 집중할 수 있게 허락해준다. 현재를 온전하게 맛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믿었듯, 순간의 기쁨을 통해 신의 경지에 근접하리라.
- 때때로 일을 떠나서 잠깐씩 휴식을 가져라. 일로 다시 복귀할 때 너의 판단력은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일에서 약간 거리를 두어라. 그러면 일이 더 작아 보여 일의 많은 부분이 단번에 파악되고, 조화와 균형의 부족이 더 쉽게 보일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벌려 놓는 멀티태스킹에서는 활발한 아드레날린 분비로 몽환적 열정을 보이기는 하지만, 평범하게 집중할 줄 아는 근무자에 비해 업무처리 능력은 훨씬 떨어짐. 이런 게 바로 이른바 정보시대라는 게 흘려대는 유혹의 실상이라고 말한다. 정보사회가 업무처리에 있어 아주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 이제는 남녀노소 없이 이른바 정보라는 메시지에 목말라 함. 사이먼이 47년전 예언했듯, 우리 모두 올바른 정보 다루는 법을 배워야함 할 때에 이른 것.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정보를 빠르게 읽고 쓰거나 저장하는 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선택의 기술을 익힘으로써... 정보를 덜 읽고 쓰며 저장하는 법을 배우는 게 진정한 발달이다."
- 심리학자들은 자기통제의 능력을 지나치게 혹사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동시에 의지력의 저장고가 남김없이 비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고 권장.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결심하면 목표를 빗나가는 위험에 처할 뿐만 아니라 정반대의 상황에 빠지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언제나 도움이 되는 전략은 차근차근 한 발자국씩 옮기는 전략이다
- 작업기억의 특징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필요로 하며 이용해야함 하는 모든 정보를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게 준비해둔다는 점. 당장 필요로 하지 않는 정보, 이를테면 승용차를 주차해둔 곳과 같은 정보는 작업기억이 아닌 장기기억 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상점문을 나설 때에 비로소 부름을 받는다. 생각의 속도, 초점을 맞추고 선택을 하며 결정을 내리는 능력은 모두가 작업기억에 달려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두뇌의 이 기적과도 같은 부분은 결정적 약점을 갖고 있다. 수용능력이 제한되어 있는 탓에 쉽사리 온갖 장애에 시달리는것이다. 컴퓨터와 두뇌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컴퓨터가 장애를 일으켜 시스템이 다운되어버리면 작업 메모리에 담겨져 있던 정보는 모두 날아간다. 반대로 하드에 저장되어 있던 정보는 손상을 입지 않는다. 이처럼 하드에 저장된 정보가 우리 뇌의 장기기억에 해당. 두뇌도 컴퓨터와 비슷하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것과 다른, 더 중요한 정보가 갑자기 의식에 떠오르면, 우리의 작업기억 내용은 상실될 위험에 처한다. 가령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거나, 동료가 돌연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순간 자극으로 작업기업은 손실될 수 있다.
- 작업기억은 선택가능한 것들 사이를 가늠해보고 어느 것 하나를 결정하며 우리의 주의력을 한가지 일에 몰두하게 만드는 능력의 기반이 된다
- 외부의 자극에 휘둘리는 탓에 분명한 생각을 할 수 없으며 늘 산만함이라는 만성적 질병과 같은 상황에 시달리는 사람은 의지력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끌어모아 휴식을 누려야 한다. 에른스트 푀펠은 그저 지친 것일 뿐인지 아니면 정말 휴식을 가져야만 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규칙을 알려준다. 하루를 마친 저녁시간, 조용히 홀로 앉아 오늘이라는 시간을 떠올려보며 무언가 창의적인 것을 한게 있나 자문해 보라. 창의성이야말로 침착하고 평온한 성격의 사람이 갖는 가장 중요한 증표다. 그저 주어진 일만 처리하며, 주도적으로 이끌기보다 끌려 다니는 일에 익숙한 사람은 그만큼 절박하게 휴식을 필요로 한다.
- 기원전 7세기경 시인이면서 전쟁터에 나가 싸운 아르킬로코스는 참으로 아름다운 시상을 풀어낸 것 외에도 다음과 같은 명문을 남겼다. "여우는 아는게 많지만, 고슴도치는 딱 한가지 큰 일에만 집중한다." 53년 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이 표현을 찾아내 오늘날 우리가 지식을 다루는 태도에 빗대 설명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소리인지 난해하기만 한 이 말은 아마 서양 정신사의 창고 안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었을 것이다. 벌린은 아르킬로코스가 위 문장으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 해석해 준다. 즉, 고슴도치는 세상을 단 하나의 빛, 최상위에 있는 개념으로 해석하려 하는 반면, 여우는 이론 따위에 집착하기보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경험을 하고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는 것을 좋아한다. 벌린에 따르면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는 고슴도치이며, 아리스토텔레서, 셰익스피어, 괴테는 여우에 속한다.
- 이상적인 것은 어떤 과제를 풀어야 하는가에 따라 그에 알맞은 인터넷 사용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때로는 여우처럼 빠르게, 필요할 때는 코끼리처럼 철저하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적절한 사용법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독서에도 아주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단순히 자료정보가 필요하다면 스캔을 하듯 빠르게 건너뛰는 방법이 좋을 것이며, 심오한 문장을 읽을 때면 천천히 곱씹어가며 차근차근 소화하는 태도를 갖춰야 할 것이다.
- 우리는 곧 우리가 읽는 그것이며,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우리 자신이 정체가 형성된다.
-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란 언젠가 한번쯤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수 있는 사람이다. (키케로)
- 벤저민 프랭클린의 독재에 휘둘려 인생이라는 시간을 오로지 돈벌이와 동일시하는 것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때로 한낮의 따스한 햇살 아래서 꾸벅거리고 졸아도 보는 쪽으로 방향을 고쳐 잡아야 한다. 물론 프랭클린과 그 뒤를 이은 무수한 부지런함 찬양론자들의 가르침이 너무나 뼛속 깊이 새겨진 탓에 우리는 휴식이라는 말만 들어도 모든 악덕의 시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함과 생산성이라는 종교의 신도들을 바로 그들의 무기로 반격해야 한다. 잠을 자고 명상을 즐기며 때로는 그저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 결코 시간허비가 아니라는 점을 명백하게 의식해야 한다. 휴식을 누리는 일은 우리 몸과 마음의 평안과 창의성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을 성장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물론 이런 접근법을 두고, 결국 휴식은 다시금 유용성이라는 지상명제에 충실하려는 단순한 수단에 지나지 않느냐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말하는 휴식은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상을 뜻함. 여기서 '잘'이라는 말은 유용성과 효용성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님. 물질적 풍요만이 아니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 잘 살 수 있지 않은가.
- 편안히 쉴 때 우리 몸은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활발히 활동.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시간이지만, 우리 몸은 회복과 재생과정에 몰두하며, 동시에 기억력과 자신감, 창의력을 키우는 작용을 한다.
- 심리테스트와 뇌전도 측정은 잠자는 두뇌가 대단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여줬다. 하루 동안 겪은 경험을 처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새롭게 배운 모든 것을 더욱 심화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뤼베크대 신경생리학과 교수 얀 보른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잠은 의식의 손실인 것 같지만, 사실 의식을 만드는 것이다."
- 얕은 수면단계는 우리 몸이 피로를 회복하는 데 중요하기는 하지만, 정신이 휴식을 취하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음. 정신적 휴양은 깊은 수면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완만한 파장의 델타파는 무엇보다 하루를 보내며 익힌 사실지식(지식기억)을 보존하고 특정사건의 기억을 굳히는데 기여함. 예를 들어 하루종일 단어들을 배우거나 새 노래를 연습하거나 첫 운전교습을 받았다면, 이렇게 배운 것은 이른바 서술기억이라는 곳에 저장되면서 깊은 수면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더욱 다져진다.
- 렘수면을 하는 동안 우리는 무엇보다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동으로 이뤄지는 행동을 배우는데 이를 절차기억이라 부름. 예컨대 자전거 타기, 피아노 연주, 넥타이매기 혹은 화장 등이 이에 해당. 다시 말해 절차기억은 자동으로 행동이 이뤄지게 만드는 일종의 숙련도를 관장. 그리고 이런 능력은 주로 잠자며 꿈꾸는 단계의 도움을 받음. 보른은 수면이 심지어 적절한 조율을 통해 능력을 더욱 끌어올리는 튜닝효과도 불러일으키는 것을 알아냈다. 보른은 실험에서 전극을 이용해 몇몇 학생들의 델타파를 밤중에 인공적으로 강화. 다음날 해당 학생들은 전극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잠을 이룬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기억력이 8% 더 향상된 것으로 나타남. 이미 일부 기업드링 잠잘 때 델타파를 강화해주는 장치를 출시했는데 고객에게 깊은 수면의 강화가 다른 수면단계(이를테면 렘수면)의 희생 위헤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해줘야만 마땅하다. 다시 말해 델타파를 강화함으로써 언어암기 능력은 좋아질지 모르나, 그 대신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이뤄지는 행동능력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 낮잠의 종류
(1) 원기회복 낮잠(5~20분) : 무엇보다 주의력과 운동반응 능력을 향상시킴
(2) 고전적 낮잠(20~30분) : 깊은 수면단계에 이름(델타파). 이로써 정신이 필요한 휴식을 얻으며, 정신력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좋아짐
(3) 고급낮잠(60~90분) : 렘수면을 포함한 완전한 수면주기를 선물함.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정신의 창의성을 가장 훌륭하게 키워줌
(4) 에스프레소낮잠 : 커피를 마시고 바로 잠자리에 든다(카페인이 작용하기 전에). 보통 카페인은 잠에 취한 느낌을 일으키는 물질을 분해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깨어날 때 아주 상쾌함
- 목표가 분명한 생각보다 아무런 목표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더 많은 두뇌 영역을 활발히 활동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번쩍하는 깨달음을 설명하는 데도 결정적 실마리를 준다. 외부에서 아무런 자극이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돌연 좋은 생각이 번쩍하고 떠오르는 것은 두뇌가 저장해둔 내면의 지식이라는 엄청난 보물을 되찾아 꺼내놓기 때문. 그러니까 우리의 생각 기관이라는 건축물 안에는 인류가 진화를 거치면서 배운 모든 지식이 담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셈. 여기에 다시 스쳐 지나가며 취했던 지식, 우연한 것, 오래전에 잊고 있었던 것 등이 우리의 잠재의식 안에 모아져 있다가 필요할 때 돌출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결코 의식의 문턱을 넘어설 수 없었던 것이 상황과 조건이 맞아떨어지면서 고개를 드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두뇌가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기다려주는 일이라고 뮌헨대 교수이자 신경생리학자인 볼프 징거는 말한다. "두뇌는 저 혼자서 기막힐 정도로 잘 논다. 말하자면 두뇌가 자기 자신 안으로 산책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다." 아마도 공회전에서 정확히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징거의 표현대로 두뇌는 자신 안에서 산책을 즐기는 것이다. 이때 두뇌는 그 안을 깔끔하게 정리할 뿐만 아니라, 신경세포 사이의 신선한 결합을 이루기도 하고, 저장해둔 정보들 사이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기도 함. 이런 방식으로 새로운 생각이 저절로 샘솟는 듯하며, 운이 좋자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영감이 번뜩이는 것이다.
- 독일의 명상 전문가 미하엘 자마스는 명상이라고 하는 게 자신의 생각을 평소처럼 따르는 게 아니라, 조용히 앉아 영화관의 관객처럼 자신의 두뇌가 화면에 투사하는 다소 혼란스런 단어나 말, 영상 등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것이라 설명. 그럼 점차 이 모든게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인상이 속에서부터 차오른다고 한다. 그저 오롯한 이 순간에 존재함이란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 마치 커다랗고 평평한 바위가 천천히 바다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는 것만 같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고요하고 순수한 각성이라는 정신의 근본 상태에 이른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라는 간결한 체험은 깊은 행복감을 준다. 고도로 집중한 덕에 평소 내 인생에서 걱정과 근심을 만드는 모든 게 사라진다. 그것은 마치 내가 지금껏 흑백사진으로 보아왔던 것이 갑자기 3차원의 다채로운 영상으로 변하는 것과 같다. 누구든 이 체험을 처음으로 맛본 이는 결코 명상을 버리지 못한다.
- 우리가 자동으로 실행하는 모든 행동은 올바른 태도만 갖춘다면 인간의 깊은 본질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과 같다. 그게 종교적 의미를 얻기 위해서는 단지 두가지만 충족하면 된다. 우선 간단해야 하며, 다음으로 되풀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뒤르크하임은 초월적 경험이 원칙적으로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가능하다고 강조. 가부좌를 틀고 하는 명상은 물론 온전히 의식해서 하는 호흡, 활쏘기, 춤, 노래 혹은 그림 그리기 등 어떤 행위든 완성의 경지에 이를 때 우리는 신이라는 초월자와 만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술을 자동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하게 익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럼 성공할 수 있을지 근심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작은 나, 곧 소아를 놓아버릴 수 있다. 이런 훈련과 연마를 거듭하는 사람은 철저히 자신의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힘을 경험한다. 이 힘은 구태여 무언가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발현된다.
- 명상을 시도하자마자 우리는 쓴 웃음을 짓고 만다. 놓아버린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때문. 오히려 그 반대다. 외부의 방해요인을 제거하고 나면 안에서 온갖 잡념이 창궐한다. 숨을 고르게 쉬거나 붓놀림을 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갑자기 세금고지서가 떠오르거나 어제의 야구경기 장면이 어른거리고 다음에는 무얼 먹을까 고민부터 한다. 내면의 평안이라는 것은, 적어도 초기에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명상을 하며 처음으로 하는 거창한 발견은 경계를 초월해 정신의 본성을 통찰하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 인간이 일상의 소소한 경험과 얼마나 자잘하게 엮여 있는지 깨닫고 창피할 따름이다.
- 명상은 자극과 반응이라는 도식을 자동적으로 따르지 않는 훈련이다. 다시 말해 모든 감정과 우연한 생각의 뒤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이는 특히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는 훈련이다. 무언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자꾸 생각을 파고드는 것은 우울증의 전형적 증상이자, 또 그로 말미암아 자꾸 우울해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의사들은 정신집중훈련을 우울증 환자에게 강하게 시킨다.
- 휴식은 게으름도, 멈춤도 아니다. 일만하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 같아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헨리포드)
- 가난한 어부와 성공한 사업가의 이야기는 소설가 하인리히 뵐이 63년에 '노동윤리의 몰락에 관한 일화'에서 들려준 것으로 지금까지 이 이야기는 다양하게 변형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 우리의 주인공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한가로울 때일 뿐이다. 경쟁이 지금껏 해온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처지를 개선하겠다며 소매를 걷어붙이는 한, 가속화의 소용돌이는 피할 수 없게 된다. 사회으 구성원은 갈수록 허덕임에 내몰리고 여유라고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만다. 뵐의 이야기가 생각거리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의 현실과는 맞아 떨어지지 않음. 현대의 현실은 야심찬 사업가의 논리로 철저히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논리가 우리를 휴식에 이르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 가장 즐겨 하는 주된 일 가운데 하나가 외부로부터 덧씌워진 의무로부터 끊임없이 나를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작곡가 볼프강 림은 말한다. 창조적이고자 한다면, 약속과 일정으로 채워지지 않은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림이 볼 때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에게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다. 그래서 림은 디지털 시대의 온갖 유혹에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림은 물론 핸드폰을 갖고 있긴 하지만, 거의 대개 무음모드로 지니고 다닐 뿐이다. 그에게 연락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미리 편지를 보내거나, 음성사서함에 부탁을 해두어야 한다. 어느 티베트 현인은 조용히 앉아 있을 줄 알아야 그늘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베를린 여성철학자 나탈리 크나프는 그리스 철학의 휴식을 오늘날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휴식이란 자신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장소에 이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과의 만남이다. 이 만남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든 상관없이 말이다. 휴식이 가져다주는 가장 중요한 측면은 바로 열린 자세이기 때문이다. 열린 자세라 함은 미리부터 어떤 선을 긋거나 제한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진정 새로운 경험은 이렇게 해야만 가능하다. 사물을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실에 눈을 뜬다.
- 휴식의 조건은 우선 자기 시간의 주인이 바로자신임을 깨닫자는 것. 다음 조건은 주변의 일에 끊임없이 관심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점. 세번째는 조건을 생각해 보자. 휴식의 시간은 다음과 같은 시간으로 정의해 볼 수도 있다. 오로지 그 순간만이 좋아 그 순간에 충실히 몰두하는 시간! 이게 무슨 말인지는 놀이에 열중해 있는 아이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한참 놀이에 빠진 아이는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그 놀이가 결국 자신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 하는 따위의 물음은 결코 하지 않는다.
- 몰입의 전형적 예는 암벽등반가다. 오로지 자신의 장비에만 의지해 암벽에 매달린 사람은 온전히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면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종합소득세 신고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 인간은 몰입을 체험할 때 더욱 행복해진다. 그리고 이 행복은 돈이나 물질적 소유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체험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 역설적이게도 행복을 가꾸는 일은 여가시간보다 일을 할 때 더 하기 쉽다. 거의 모든 일은 몰입의 전형적 특징을 담고 있기 때문. 스스로 설정한 목표, 중간중간 확인하는 적절한 성과, 규칙에 충실한 도전은 처리해야 하는 과제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든다. 반대로 자유시간은 어떤 정리된 형태로 주어지는 게 아닌 탓에 스스로 꾸미기가 훨씬 어려움. 그래서 어서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으면서도, 정작 집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결함을 노리고 오늘날 온갖 오락산업은 엄청나게 몸을 부풀리고 있다. 물론 이런 오락산업은 그저 주는 대로 소화해야만 하는 수동적 체험만 제공한다. 그럭저럭 때우기는 좋지만, 몰입체험을 만들어주지는 못함. 직접 운동을 즐기는 대신 텔레비전 앞에서 축구중계에만 넋을 읽는다. 스스로 연주하기보다는 아이팟에서 히트곡을 소비할 뿐이다.
- 휴식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게 좋다. 오로지 자신이 가진 가능성에만 주목하는 것이다. 과감하게 자기 인생의 고삐를 스스로 자신 손에 걸머쥐고 적절히 소화할 수 있는 도전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 휴식을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시간이 생겨도 삶의 질은 높아지지 않는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 정처없이 떠돌다가 어느날 문득 보니 에베레스트 정상에 서 있더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코스를 택해야 할지 정확히 알아야 하며, 베이스캠프와 전문장비를 갖추고, 앞으로 부딪칠 수많은 난관에 도움을 줄 사람이 있어야 함. 그래서 바람직한 것은 목표에 이르는 길을 될 수 있는 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몇개의 구간으로 나누는 계획이다. 한마디로 멀리 그리고 넓게 보며 휴식을 설계하라. 서두르는 습관을 바꾸는 게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시간과 인내를 갖고 접근해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이야말로 이미 휴식의 일부다
- 휴식과 관련된 깨달음
* 휴식을 거저 얻는 것으로 믿지 말자. 가속화 체계의 사회에서는 휴식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한번쯤 불편한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동호회를 만들자. 능숙한 게으름뱅이와 접촉하는 것은 긴장을 잘 풀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 커다란 변화(이를테면 직업변경, 휴가, 안식년 따위)는 장기적 안목으로 계획하자
* 일상에서 휴식을 누릴 작은 기회들을 소중히 여기자
- 휴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 휴식은 행복과 비슷한 것이다. 참 행복을 찾겠다며 헤매고 다니는 것이야말로 불행을 낳는 가장 큰 원인이다. 행복하기 위해 완벽한 직업과 이상적인 짝, 그리고 최고의 집을 가져야만 한다는 생각은 만성적 불만으로 몰고갈 뿐이다. 휴식도 마찬가지다. 휴식을 찾겠다고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야 말로 휴식을 잃어버리는 확실한 방법이다. 그냥 멈추어 서서 휴식에 시간을 허하고, 우리에게 휴식을 달라고 고백해보자. 애타게 찾는 집착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휴식에 도착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 생각은 모든 이들에게 허락된 선물이다. 하지만 대개 이 소중한 선물을 잊고 살아간다. (쿠르트 괴츠)
- "너의 생각을 주목하라, 그게 곧 네 말이된다.
너의 말을 주목하라, 그게 바로 네 행동이 된다.
너의 행동을 조심하라, 그게 곧 네 습관이 된다.
너의 습관을 의식하라, 그게 바로 네 성격이다.
너의 성격을 주목하라, 그게 곧 네 운명이 된다." (탈무드)
- 한가로운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다. (소크라테스)
- 인생은 너에게 닥치는 바로 그것이지, 그럼에도 너희는 계획을 세운다고 법석을 떠네 (뷰티풀 보이, 존 레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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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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