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슈퍼앱 전쟁

IT 2021. 12. 18. 08:41

- 그랩은 말레이시아에서 출발했지만 곧바로 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로 진출했다. 보통의 기업, 스타트업들이 국내시장에서 기반 을 확실히 다진 후에, 혹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을 때 해외 진출을 계획하는 것과 사뭇 달랐다. 안소니 탄과 후이링 탄은 일찍부터 해 외 진출을 염두에 두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가 32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규모가 작은 시장이기도 하거니와 앞서 이야기했듯 교 통과 이동에 있어 동남아 전역이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기 때 문이다.
그랩은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출발해 첫 해외 진출을 한 필리 핀에서 서비스를 내놓기까지 1년, 그리고 다른 아세안 4개국으로 사업을 확장하기까지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과감한 실행력으로 무섭도록 빠르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인터넷 유저가 적고 연결성 이 상대적으로 낮은 미얀마와 캄보디아에서의 서비스 출시가 2017 년으로 늦어졌을 뿐이다.
해외시장 진출은 차량공유나 플랫폼 스타트업의 과제인 스케일 업에서 중요한 전략적 선택이다. 그랩이 제일 처음 진입한 필리핀과 베트남은 1억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젊은층이 많다. 2억7000만 명 이상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최대 시장이다. 태국은 이보다 인구 규모가 작지만 소득이나 현지인 및 외국인 수요 에 있어 뒤처지지 않는다. 서비스가 필요한 잠재 수요가 이미 넘쳐 나는 시장이다.
누구나 성장 잠재력을 파악하고 있지만,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카카오도 해외 진출을 감행했지만 메신저 서비스로 는 성공하지 못했다. 해외시장으로의 확대, 지역 통합 전략은 그랩 성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 고젝은 사업 확장을 위해 자체 개발을 하기도 했지만, 인수합병과 파트너십을 적극 활용했다. 2015년 앱 론칭 이래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스케일업이 이루어졌고, 서비스와 기능이 다양해진 만큼 소 프트웨어와 데이터 처리 등 기술의 양적·질적 성장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고젝은 자체 인력만으로 R&D와 기술적 지원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고젝에 투자한 세콰이어는 인수합병으로 해법을 찾으라고 권하 며 인도 방갈로르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회사 C42와 델리의 코 드이그니션 Codeignition을 직접 소개해주었다. 2016년 고젝은 이 두 회 사를 인수하고 방갈로르에 개발센터를 세웠다. 이후에도 인도 테크 스타트업인 레프트시프트Leftshift, 피안타Pianta, 에어씨티오 AirCTO를 추가로 인수했으며, 모바일 앱과 헬스케어, AI 분야의 기술 축적을 추진하고 있다.
핀테크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선택한 전략 역시 인수합 병이었다. 라이선스 취득과 함께 기존 사업자의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시장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16년에 엠브이커머스MVCommerce를 인수해 고젝의 모바일 지갑 라이선스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고, 이듬해에 핀테크 기업 카르투쿠Kartuku, 미드트랜스 Midtrans, 마판Mapan을 인수했다. 그랩페이가 인도네시아 핀테크 스타 트업 쿠도를 인수해 시장을 치고 들어오자 기업 3곳을 인수하며 맞 불을 놓은 것이다. 이후 그랩페이는 디지털 결제에서 소규모 대출 과 할부 금융에도 손을 뻗쳤고, 모카를 인수하며 POS 사업에도 뛰 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자고은행ago Bank의 지분도 사들였는데, 이를 발판으로 디지털 뱅킹과 대출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고페이의 가치는 이미 유니콘 반열에 올라선 것으로 보고 있다.
- 인수합병의 과감한 행보는 막대한 투자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아세안 최대 시장인 인도네시아에서 입지를 굳게 다진 만큼 해외 투자자들의 펀딩이 밀려들었다. 글로벌 사모펀드인 KKR 과 워버그 핀커스, 중국의 텐센트와 JD.com, 구글이 고젝에 투자 했다. 구글의 경우 동남아 스타트업에 대한 최초 투자로 기록되었 다. 2020년에 진행된 시리즈 F(스타트업 기업이 진행하는 첫 번째 투자 유 치를 시리즈Series A라고 한다. 따라서 시리즈 F는 6번째로 진행한 투자를 의미 한다)에서는 페이스북과 페이팔이 고젝에 총 375억 달러를 투자했 다. 아세안 시장에서 고젝과의 파트너십을 통한 시장 확대를 목표 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 파트너십은 고젝이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적극 활용한 전략이다. 라이드헤일링 시장은 어느 국가에서나 택시회사, 택시 기사와 마찰을 일으킨다. 인도네시아에는 블루버드Blue bird라는 최대 택시 사업자가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블루버드는 소비자의 흐름이 라이드헤일링을 거부하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고, 2016년 고젝과의 협력을 발표했다. 그랩앱을 통해 택시를 예약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젝의 고카GoCar를 통해 오토바이, 일반차량, 택시를 예약할 수 있다.
- 라자다와 토코페디아보다 시장에 한발 늦게 들어온 쇼피는 어떻 게 아세안 최고 이커머스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커머스나 플랫 폼 비즈니스에서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Winner Takes All'는 말이 경전처럼 쓰이고 있는 가운데 쇼피의 성공은 그야말로 경영학 사 례 연구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쇼피는 거대 이커머스 업체들이 파 고들지 못한 지점을 파악하며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첫 번째 전략은 모바일 기반 최적화다. 미국과 한국이 인터 넷-PC시대를 거쳐 모바일로 이동했다면, 중국과 아세안은 PC는 건 너뛰고 바로 모바일로 점프했다. 모바일 립프로깅leap forgging(단번의 도약)이 일어난 시장에서 이용자들은 PC 기반 화면보다 모바일 앱 기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편리할 수밖에 없다. 이커머스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쇼피는 로딩 속도, 화면 크기, 한 번에 보여주는 상품의 개수, 결제 등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췄다. 현재 쇼피 전체 주문 건의 95%가 모바일 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두 번째 전략은 프로모션과 셀러 지원이다. 고객이 들어와도 살 물건이 없으면 장사가 될 수 없다. 또한 물건을 잔뜩 쌓아두고 있다. 고 해서 고객이 몰려드는 것도 아니다. 쇼피는 후발주자였기에 고 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무료 배송과 쿠폰 발행 등 프로모션에 돈 을 쏟아부었다. 마켓플레이스 판매자들에게도 수수료를 낮춰주거 나 무료로 해주었고, 등록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그야말로 공을 들 였다. 온라인 판매가 익숙하지 않은 판매자들에게는 디지털 마케팅 기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해주었다.
세 번째 전략은 철저하고 깊숙한 현지화, 즉 시장이 하이퍼 로컬리제이션이다. SEA가 진출한 동남아 6개국과 대만은 모두 다른 언어와 종교를 갖고 있고, 소득 수준 차이가 크다. 즉 시장이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균일하지 않다. 따라서 선호하는 색상이나 브랜드, 베스트셀러 상품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이커머스는 언어만 다르고 같은 포맷과 상품을 보여 주지만, 쇼피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 해외시장에 진출하면서 각각 새로운 앱을 내놓았다. 즉 1개국 1앱으로 모 두 7개의 앱을 론칭했다. 대만에서 보는 쇼피앱과 인도네시아에서 보는 쇼피앱은 언어만 다른 것이 아니라 구성 자체가 다르다. 
네 번째 전략은 엔터테인먼트 마케팅을 통한 고객 참여와 록인 lock-in이다. 동남아인들의 평균 모바일 이용 시간은 1일 4시간 전후 로, 상당히 긴 편이다. 쇼피는 그들을 자신들의 앱에 묶어두는 방법 을 고민했다. 가레나 유저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서비스에 환호하는지 이미 경험한 쇼피는 이를 이커머스에도 적용시켰다. 그래서 탄생한 서비스가 쇼피챗과 쇼피피드, 쇼피라이브 등이다. 쇼피챗은 라이브 채팅을 통해 소비자와 판매자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했고, 쇼피피드는 쇼피앱 안의 소셜미디어 역할을 한다. 쇼피라이브는 스타와 셀럽을 쇼호스트로 내세워 제품을 소개하기도 하고, 콘서트나 팬미팅을 열기도 한다. 하루에 몇 시간씩 쇼피에서 시간을 보내도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프로모션과 이벤트를 홍보하는 채널을 자체적으로 구축한 셈이다.
다섯 번째 전략은 디지털 통합 생태계다. 가레나는 에어페이라 는 자체 결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여기에 쇼피페이가 추가되면서 씨머니라는 금융 서비스 섹터가 만들어졌다. 스마트폰만 있으 면 쇼핑도, 게임도, 결제도 손쉽게 할 수 있다. 셀러 역시 배송과 결제 걱정 없이 쇼피 세상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된다. 'BNPL Buy Now Pay Later" 이라는 후불 할부 결제 시스템도 도입되었다. 쇼피와 가레 나 이용자들이 씨머니로 결제할 수 있는 한도가 더 늘어났고, 회원 들에게 맞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SEA 생태계 내 시너지 효 과가 극대화되었다. 성과는 수치로 확인된다. 씨머니의 모바일 지 갑을 이용한 결제 규모는 2017년 2분기 3억 4800만 달러에서 2021년 1분기 34억 달러로 무려 10배나 증가했다.
- 라인은 한국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일본과 태국, 대만에서는 단시간에 1등 메신저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태국에서는 모바일 포털 역할을 수행할 정도로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었으며,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마케팅 파트너로 성장했다. 라인이 태국에서 성공한 이유, 라인만의 경쟁력을 묻는 질문에 신중호 라인 최고 글로벌책임자CGO는 이렇게 답했다.
“라인 해외 진출 성공 전략은 '현지화'를 넘어선 '문화화culturalization’다. 그 나라 음식을 먹고 그 나라 말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 어야 한다. 내부에서는 해외 진출에 대해 '로컬리제이션Localization'이 란 말 대신 '문화화'라는 말을 만들어 쓴다."
라인은 자신들의 홈페이지에도 문화화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보편적인 접근 방식에 기반한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서비스에 안 주하기보다는 이용자를 매우 심층적으로 참여시키고, 각 지역에서 진화하기 위해 각 국가의 문화와 규범을 존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것을 문화화라고 부른다.
라인은 현지 법인이 직접 서비스 기획부터 운영까지 총괄하는 체계를 수립하고 현지인들의 정서와 니즈에 맞는 서비스를 생산, 제공하면서 라인의 문화화를 수행하고 있다. 본사의 영향에서 벗어 나 현지 독립성을 철저히 인정하고 현지인들의 정서까지 고려한다는 점에서 로컬라이제이션을 뛰어넘는 문화화는 라인이 새롭게 정의한 개념이다. 그랩의 하이퍼 로컬라이제이션과 일맥상통하는 접 근법이라고 볼 수 있다. '쿠키런'과 '모두의 마블'은 태국 정서에 알맞다는 현지 직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론칭했는데, 결과는 대박이었다. 라인 스티커도 현지에서 10차례 이상 시안을 검토하고 태국인들만의 특유의 제스 처와 정서를 담은 모습으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라인맨 역 시 현지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라인의 문화화가 그 힘을 제대로 증명해냈다.
- 동남아 슈퍼앱들은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 어 겹치는 영역에서 부딪히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슈퍼앱 5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영역은 디지털 결제 부문이다. 모든 온디맨드 서비스는 최종적으로 소비자가 돈을 지불해야만 실제 매출이 일어나고 사업이 유지된다. 고객을 얼마나 편리하게 그 단계까지 끌어와 최종 결제 버튼을 클릭하게 만드는가가 중요하다. 동남아 소비자들의 페인 포인트는 바로 결제 수단이다. 따라서 슈퍼앱들은 결제 수단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성인이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있어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에 신용카드를 연결시켜 놓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그랩페이나 고페 이는 돈을 모바일 지갑에 충전해서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들 의 '페이pay'가 은행 계좌나 다름없는 것이다. 슈퍼앱들의 입장에서 페이는 단순히 여러 서비스 중 하나가 아니라 다른 모든 서비스의 매출을 이끌어내는 수단이자 자금을 모아놓는 훌륭한 저장고라 할 수 있다.
- 레드오션으로 변한 디지털 결제시장에서 슈퍼앱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카카오페이가 카카오뱅크로 넘어간 것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뱅크로 무대가 바뀌고 있다. 이제 기존 은행들은 슈퍼앱, 그리고 곳곳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있는 핀테크 스타트업들과 경쟁 을 벌여야 한다. 한국의 카카오뱅크와 토스 같은 디지털 뱅크는 이 용자들이 공인인증서 설치부터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불편함을 해결하고, 여러 은행 계좌를 한 번에 관리할 수 있는 편리함을 제공 하면서 단시간에 금융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다.
동남아 디지털 뱅크는 여기에 더해 충분히 금융 서비스를 받고 있지 못하는 2~3억 명의 고객을 더 확보할 수 있다는 기회까지 있 다. 디지털 뱅킹 섹터는 이제 막 닻을 올린 블루오션이다. 누가 먼 저 라이선스를 받고 항해를 시작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 슈퍼앱들은 디지털 은행뿐 아니라 할부 금융, 보험 판매, 투자와 자산 관리 서비스 등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파이낸셜 부문에서 가장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는 슈퍼앱은 고투그룹의 고투 파이낸셜이다. 고투 파이낸셜은 개인 고객을 위한 후불 결제, 일명 BNPL 서비스부터 비즈니스에 필요한 POS 시 스템, 온라인 스토어 웹 사이트 구축 플랫폼, 페이먼트 게이트웨이 솔루션, 보험, 투자, 기부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인 베스타시 Golnvestasi는 금을 사고팔 수 있는 금투자 플랫폼이다.
- 그랩만 보더라도 그랩 파이낸셜에 그랩페이와 BNPL, 보험, 사용 금액에 따른 포인트 관리 그랩리워드가 있다. 주목할 만한 섹터는 그랩인베스트 Grabinvest다. 그랩 파이낸셜의 투자 섹터에는 오토인베 스트Autoinvest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랩을 사용할 때마다 1달러 혹 은 2달러 등 일정 금액을 투자하도록 설계해놓으면, 그 돈이 투자 상품으로 들어가 운용되고 수익금이 다시 그랩페이 모바일 지갑으로 되돌아오는 구조다. 운영은 풀러튼 펀드 매니지먼트 Fullerton Fund Management 와 UOB자산운용이 맡고 있다. 투자에 관심이 많지만 한 꺼번에 목돈을 투자할 수 없는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만든 상품이다. 2020년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 벤토Bento를 인수할 때부터 그랩이 추후 자산 관리 분야에 뛰어들 것이라 예견되었다. 디지털 은행과 보험 및 투자 상품 연계에 향후 개인 자산 어드바이저 서비 스까지 추가되면 그랩은 모바일에 익숙한 세대에 진정한 금융 기 업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카카오뱅크와 토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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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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