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권력

IT 2022. 1. 8. 10:49

- 과거의 통신망(유선 전화망 등)은 비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시간당 비용은 얼마로 할지, 사용 시간은 어떻게 측정할지는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아르파넷은 사용료를 정부가 부담했기 때문에, 비용을 고려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비용을 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텍스트, 이미지, 음성, 비디오 등 데이터의 형식과 관계없이 모든 데이터를 작은 단위 (패킷)로 나누어 전송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은 데이터를 한꺼번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패킷 단위로 나누어 보낸다. 도착한 패킷이 어떤 데이터의 일부인지 알아내고 합치는 일은 컴퓨터가 맡는다. 패킷 전송 방식의 장점은 네트워크에 서로 운영체제가 다른 다양한 기기를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네트워크를 비종속적 네트워크라고 부르는데, 아르파넷 이전에는 비종속적 네트워크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아르파넷을 만들던 연구자들에게 40-50년 뒤에는 그 기술로 음성과 비디오를 주고받게 될 거라고 말해줘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크로커는 당시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몇 명 있었다고 말했다.

- 인터넷이 현대인의 삶에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 때문 에 사람들은 현재의 인터넷을 마치 자연물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인터넷은 사람들이 내린 다양한 결정과 어쩔 수 없는 타협과 현실적 해결책이 합쳐져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현대 인터넷의 기본적인 작동 방식은 1974년 12월 빈트 서프가 이끄는 개발자들이 정한 것으로, RFC 675 에 기록되어 있다.

- RFC 675는 전송제어프로토콜 Transmission Control Protocol, TCP 이라 는 데이터 전송 프로토콜에 대한 규정으로, 여전히 인터넷은 이 프로토콜을 사용해 데이터를 전송한다. 앞서 말했듯 인터넷에 서는 데이터를 패킷'이라는 작은 단위로 나누어 보낸다. TCP는 패킷이 빠짐없이 순서대로 도착하도록 관리해 전송 오류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하는 프로토콜로, 인터넷 같은 패킷 전송 네트 워크를 구현하는 데 꼭 필요하다.  패킷 전송 방식은 과거 전화망에서 쓰던 데이터 전송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전화망의 경우 수신자와 발신자를 직접 잇는다. 과거 전화 교환원들이 하던 일이 바로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를 회선으로 잇는 것이었다. 통화하는 동안 수신자와 발신자는 둘 사이에 연결된 회선(예를 들어 보스턴의 사무실과 애틀랜타의 사무실 사이를 잇는 전화선)을 단독으로 사용한다. 둘 다 말을 하지 않을 때도 다른 사람이 그 회선을 사용할 수는 없다. 이와 달리, 패킷 전송 방식에서는 데이터를 받는 사람과 보 내는 사람을 회선으로 직접 잇지 않는다. 패킷 전송을 하는 과정 은 다음과 같다. 일단 데이터(음성, 문자, 파일 등)를 '패킷'이라는 작은 단위로 쪼갠 뒤, 패킷마다 발신지, 목적지, 총 패킷 수, 해당 패킷의 순번을 기록한다. 그다음 패킷을 전송하면, 각 패킷은 각자 자유로운 경로를 택해 목적지로 이동하고 순서에 상관없이 무작위로 목적지에 도달한다. 도착한 패킷들은 목적지에서 다시 순서에 맞게 재조립된다. 패킷 전송 방식을 쓰면, 수신자와 발신자 사이를 단일 회선 으로 이을 필요도 없고, 모든 패킷을 같은 경로로 보내야 할 필 요도 없기 때문에 네트워크를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 패킷을 다양한 경로로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네트워크 연결이 일부 끊어지더라도 문제없이 데이터를 전달할 수 있다.

- 인터넷은 패킷 전송을 위해 TCP와 함께 인터넷프로토콜Internet Protocol, IP이라는 프로토콜도 사용한다. 나중에 정식 프로토콜로 인정되어 TCP와 함께 TCP/IP라고 불리게 된 IP는 목적지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각 컴퓨터(또는 각 네트워크)에 고유 의 숫자열을 부여한 것이다. 인터넷에는 사이트의 웹 주소(예컨 대 www.jamesrball.com)에 대응하는 IP 주소(이 경우 198.185.159.14 인데, 이 주소가 가리키는 곳은 캔자스 위치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에 있는 스퀘어스페이스 SquareSpace의 데이터센터다)가 있다. IP가 주 소라면, TCP는 우리가 사이트와 정보를 주고받을 때 패킷이 제 대로 배달되었는지 확인하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 루카식은 다음과 같이 썼다. “사전에 모든 가능성을 따져 보거나 부정적인 결과를 막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일을 시작하 기도 전에 그렇게 했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ARPA와 개발자들은 하나의 기술적 기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 는 과정에서 또 다른 기술적 기습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인터넷은 세 집단의 복잡한 합작으로 생겨났다. 하나는 국방 연구 자금을 지원하는 정부 기관(ARPA)으로, 지휘 통제 시스템에 적용할 신기술을 시험하고 국방 연구에 사용할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했다. 두 번째 집단은 연구를 중요시한 명문 대학의 저명한 교수들로, 대개 자금과 네트워크를 다른 연구에 더 쓰고 싶어 했다(네트워크 구축 자체에 관심이 있던 클라인록은 예외적인 경우였다). 세 번째 집단은 실제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을 맡은 대학원생들로, 대개 자신들이 잡무를 처리하 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흥미롭게도 훨씬 대단한 일을 해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 웹주소의 구성을 살펴보면 DNS가 실제로 어떻게 동작 하는지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모두에게 익숙할 https:// www.google.com을 예로 들어보자. 이 주소는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com' 부분은 최상위 도메인이라 불리는데, 해당 웹사이트를 소유한 기관의 종류 또는 위치를 대략적으 로 알려준다. 예를 들어 .com은 상업용commercial이라는 뜻이고, .org organisation는 비영리 기구, gov'는 미국 정부, 'edu’는 미국 대학만 쓸 수 있다. 또 프랑스의 fr'처럼 나라마다 자체 도메인이 있다.

인터넷에는 이들 최상위 도메인을 보고 길을 알려주는 소수의 DNS 주소록 서버가 있다(이들 서버는 DNS 시스템의 루트root 서버로 불리며, 앞서 소개한 행사에서 갱신한 암호는 이 루트’ 서버에 접근하기 위한 암호다). 이들은 같은 최상위 도메인을 가진 사이트들의 주소를 모아놓은 하위 주소록 서버로 사용자를 인도한다.

주소에서 가장 주가 되는 부분은 'google' 이라는 이름으로, 하위 주소록 중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을 구글의 IP 주소를 찾게 해준다. 서브도메인이라고 불리는 'www’ 부분은 구글이 자사 네트워크 내 어떤 부분으로 사용자의 요청을 전송할지 결정하 는 데 사용된다. 구글의 경우, google' 앞에 www'가 붙으면 검색, mail'이 붙으면 이메일, maps가 붙으면 지도서비스로 각 각 사용자를 인도한다. 'https' 부분은 사용자가 웹 서핑, 이메일, 파일 공유 같은 여러 인터넷 서비스 가운데 어떤 서비스를 요청 했는지 알리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인터넷 주소 시스템은 사용자의 요청이 들어오면 컴퓨터들이 연쇄적으로 길을 인도해 목표 지점에  달하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당연하게도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중간에 있는 컴퓨터가 잘못된 답을 알려줄 경우 잘못된 곳으로 향할 위험이 있다. 물론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예방책도 존재한다. 그 예방책이란, 쉽게 설명하면 999 대

의 컴퓨터가 한 곳을 가리키는데 한 대만 다른 곳을 가리킬 때 더 다수가 가리키는 쪽을 택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국가 기관 등이 조직적으로 조작에 나서서 사용자가 요청한 사이트로 향하 는 트래픽을 중간에 빼돌려 자신들이 운영하는 서버를 지나게함으로써 로그인 정보를 빼내거나 트래픽을 감시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 벤처 캐피털은 과거 인터넷 산업의 승자들이 다음 세대의 승자를 뽑아 자신의 돈과 다른 유명 투자자들의 돈을 지원한다는 면에서 그야말로 닫힌 집단이다. 현재의 벤처 캐피털 체제는 극소수의 손에 너무 많은 권한을 쥐여준다. 지금까지 이 체제는 적어도 이윤을 내는 쪽으로는 잘 동작해왔다. 그리고 오랫 동안 이윤을 좇는 데만 집중해도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건 과거의 인터넷이 신생 기업과 혁신 기업의 무대였기 때문 이다. 하지만 이제 그 기업들은 기득권을 쥔 기업이 되었다. 우리는 최근 들어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인터넷의 수익 모델과 투자 모델을 재고하고 속도를 늦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웽거는 거의 모든 사람이 지구상의 다른 슈퍼컴퓨터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슈퍼컴퓨터를 들고 다니게 되면서, 사람이 거대 인터넷 기업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폰은 완벽한 슈퍼컴퓨터입니다. 40년 전에는 지구상 의 돈을 다 끌어모아도 그 정도 연산 능력을 갖춘 컴퓨터를 살 수 없었습니다.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 우리가 화면의 아이콘을 클릭하는 순간부터 그 슈퍼컴퓨터는 우리가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 아마존 같은 앱 제작자를 위해 일합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세계의 다른 모든 슈퍼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는, 엄지 손가락과 두 귀 사이의 생체 컴퓨터만 남은 존재가 됩니다.”  웽거는 시민이자 소비자인 우리가 이 상황을 기꺼이 용납하기 때문에 온라인 권력이 집중된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이 용납되는 한, 이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이 독점 기업들에게 지금과 같은 엄청난 권력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서버 수백만 대를 운영하는데 우리가 움직 일 수 있는 건 사실상 엄지손가락뿐이니까요. 너무 비대칭적인 상황입니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누군가는 어마어마하게 큰 독점 기업을 만들 기회를 잡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 사업에 자금을 지원할 것입니다."

- 전문가들은 종종 난해한 전문용어와 기술적 세부사항을 방패 삼아 다른 사람이 내부 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게 막는다. 이 수법은 인터넷 산업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영어 약자와 기술 용어로 뒤덮인 글은 몇 초만 들여다봐도 머리가 멍해진다. 특히 온라인 광고업계는 일부러 어려운 말(기술 전문용어, 금융 전 문용어, 해당 분야 사람들만 아는 약자)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무언가 이상함을 알리는 또 한 가지 신호는 업계 종사자들 이 자기가 만든 상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 지 특징을 모두 만족시키는 산업이 하나 있다. 바로 온라인 광고산업이다.

- 광고 대상을 정할 때,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참고하는 데이터는 최근 고객 목록이나 메일링 서비스 가입자 목록이다. 각 브랜드는 기존 고객과 연령, 성별, 사회적 지위, 수입 등이 비슷한 사람을 대상으로 광고하고 싶어 한다. 이들이 고객 정보를 데이터관리플랫폼data management platform, DMP에 넘기면, DMP는 대개 수 십 수백 군데의 정보원으로부터 소비자 데이터를 사 모으는 데 이터 브로커에게 연락해 데이터를 보강'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브랜드로부터 우편번호를 받았다면, 거기에 지역별 평균 소득 정보를 더해 누가 소득 수준이 높은지 파악하고 주 공략 대상을 정하는 것이다.

이제 DMP는 이상적인 소비자의 데이터를 수요측플랫폼demand side platform, DSP에 전달한다. DSP가 하는 일은 DMP로부터 받은 목록에 있는 사람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찾아내 적절한 광고비를 지불하고 그들에게 광고를 보여주는 것이다. DSP는 받은 소비자의 데이터를 그 브랜드를 광고하는 데만 쓰지 않고 다른 수천 개 브랜드를 광고할 때도 참고한다. 그리고 인터넷에 는 이런 DSP가 수천 개 존재한다.

다음 단계는 타깃으로 삼은 특성을 가진 소비자가 인터넷 에 접속하느냐에 달려 있다. 온라인 광고는 소비자가 인터넷을 할 때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웹사이트를 클릭하는 순간, 웹사이트는 (광고를 제외한) 콘텐츠를 준비하는 동시에 광고를 띄우기 위해 공급측플랫폼Supply side platform, SSP에 연락한다.

그러면 SSP는 사용자의 컴퓨터에 깔린 웹브라우저에 요청을 보내 쿠키, 브라우저 정보, IP 주소 등을 최대한 수집한다.

이제 DSP는 어떤 소비자에게 광고를 보여줘야 하는지 알 고 있고, SSP는 자신이 광고를 공급하는 웹사이트를 방문한 사 람(즉 사용자)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이제 두 플랫폼은 광고거래소ad exchange에서 만나 거래한다. 광고거래소는 SSP가 가 진 사용자의 데이터를 DSP 수십, 수백 곳에 전송한다. 데이터를 받은 각 DSP는 여러 광고 중 사용자에게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광고를 고른 뒤, 그 광고를 그 웹사이트의 그 자리에 게재하기 위해 얼마까지 낼 의향이 있는지 알려준다. 그러면 가장 높은 광고비를 제시한 DSP의 광고가 사용자의 눈에 보이게 된다.

- 평범한 인터넷 사용자가 이 말을 들으면 아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다수 사용자는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수집 한다는 것과 그 사이트에서 보여주는 서너 개의 광고가 맞춤형 광고라는 것까지만 알고 있다. 썩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대개 이 정도는 콘텐츠를 보는 대가로 지불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링크 를 클릭하고 페이지를 불러오는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사용 자의 데이터는 수백, 아니 수천 군데로 전송된다. 그러면 데이터 를 받은 기업은 기존에 모아 놓은 소비자 데이터(그중 일부는 분명 우리의 데이터일 것이다)를 활용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추측해서 그가 얼마나 가치 있는 소비자인지 판단한다. 즉 인터넷에서 링크를 클릭할 때마다 우리의 데이터는 수천 군데로 전달되고, 그 수천 개의 기업에서 모두 데이터를 분석해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완료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겠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오켈리는 기술 용어 없이 60초 만에 이 과정을 설명했다.

- 더블클릭을 인수하기 전까지 구글이 썼던 광고 기법은 사 생활 침해 정도가 훨씬 덜했다(여전히 일부 광고는 과거 방식을 따르고 있다). 현재의 방식이 데이터를 조합해 사용자가 어떤 사람인지 추측한 다음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의 광 고를 보여주는 방식이라면, 예전의 방식은 사용자의 검색 기록 을 바탕으로 광고를 보여주는 훨씬 단순한 방식이었다. 검색 기 록을 바탕으로 광고할 때는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알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저렴한 마요르카 휴가 상품'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저렴한 휴가 상품 광고를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 더블클릭을 인수하면서 구글은 시의적절하게 광고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제 구글은 자사 사이트뿐 아니라 인터넷 전 반에 광고를 공급하는 대형 광고 네트워크 회사가 되었다.  구글은 크롬(인터넷 익스플로러나 파이어폭스 같은 웹 브라우저 소프트웨어)과 안드로이드(모바일 운영 체제) 등을 만들어 데이터풀을 계속 넓혔고, 이 데이터 덕분에 점점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그러는 동안 규제기관은 이들의 수익에 아주 작은 흠집 을 냈을 뿐이다. EU 개인정보보호법 같은 매우 강력한 규제가 있는데도 광고 수익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의 사업 모델은 전혀변하지 않았다.

오켈리는 말했다. “사실 정부는 인터넷을 규제하는 일을 겁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속한 광고업계에서는 자체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구글의 힘이 너무 크기 때문입 니다. 좌절감이 들 정도로요. ... 사실 구글은 비교적 올바로 행 동하려는 기업입니다만, 독점이 너무 심해서 구글과 경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구글에게는 심지어 '브라우저'가 있다. 고요! 제가 경쟁할 상대가 아닌 거죠. 경쟁이 없는 상황은 소비 자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정부는 구글이 이렇게 큰 권력을 모으는 상황을 용인하고 제대로 된 책임을 묻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여러모로 안 좋은 일이죠."

- 현재 워싱턴DC에 있는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톰 휠러는 인터넷 혁명을 장기적 시각으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벨과 마찬가지로 휠러도 이전의 기술혁명과 인터넷 혁명 사이에 닮은 점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점에도 주목해 인터넷이 과거의 철도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휠러는 이렇게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네트워크는 중앙집중 화를 촉진했습니다. 산업혁명의 상징인 철도는 대량 생산에 유 리한 지역으로 원자재를 실어 나르고 완성품을 여러 곳으로 퍼 뜨리는 일을 수월하게 했습니다. 생산을 중앙집중화한 거죠."

휠러는 웽거와 마찬가지로 철도를 사례로 들었지만, 다른 점에 주목했다. 휠러는 철도를 놓을 때는 돈이 많이 들지만, 일단 철도를 깔고 나면 기차 한 대를 운행할 때 드는 추가 비용은 그리 많지 않으며, 이미 있는 기차에 차를 한 량 더 붙이는 비용은 더더욱 싸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기차의 이런 특징 때문에 원자재를 대량으로 공장까지 실어나른 다음, 그곳에서 대량 생산을 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효율적인 선택이 되었다.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생산 방식이었다. 전에도 마차로 원자재를 나를 수는 있었지만, 원자재의 양이 느는 만큼 마차 한 대당 지불 해야 하는 운송비가 똑같이 늘었기 때문이다.

휠러는 산업혁명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모든 것이 중앙집중화되었습니다. 철강 산업의 중심지는 왜 피츠버그 일까요? 자동차는 왜 디트로이트에서 만들까요? 농축산물은 왜 시카고에서 가공할까요? 처음에 철도가 그렇게 놓였기 때문입 니다. 철도가 중앙집중화를 촉진한 거죠. 어차피 다른 곳으로 물 자를 보내려면 일단 시카고를 거쳤다가 가야 하는데, 시카고에 머무는 동안 가공하면 좋지 않겠어요?"  겉으로 보기에 인터넷은 철도처럼 중앙집중화를 촉진하지는 않는다. 앞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인터넷은 분산적으로 설 계되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물자가 모일 수밖에 없는 중간 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데이터와 데이터의 소유권에 관해 우리가 내린 결정 때문에 플랫폼 사업자들(각국의 구글과 페이스북에 해당하는 기업들)이 가상의 시카고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데이터가 모이는 이들 지점이 중심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인터넷의 물리적 네트워크를 소유한 기업들까지 그 세계에 뛰어들 방법을 찾고 있다. 우리는 온라인 세계의 땅이 무한히 넓다고 생각하지만, 온라인에서도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각축전이 벌어진다. 텔레비전 시대에 대형 케이블 회사들은 엄청난 시장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에게 어떤 콘텐츠를 보여줄지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케이블 회사의 사업모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분산된 구조로 설계된 인터넷에 새로 등장한 거대한 중앙집중적 플랫폼 사업자들이 돈을 버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 현재 상황은 금융위기 때와 많이 닮았다. 금융위기 직전 전 세계적으로 자산 거품이 형성되었다. 돈의 값어치는 낮았고,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었으며(심지어 일정한 소득이 없거나 소득이 적은 사람도 받을 수 있었다) 시장은 과열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불편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왜 그런 일이 벌 어지고 있는지, 왜 집값이 월급보다 훨씬 빨리 오르는지 묻지 않 았다. 간간이 기사나 토론에서 복잡한 금융 공학의 문제점을 다 루기는 했지만, 너무 복잡하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묻혀버렸다. 부채담보부증권이 뭔지, 합성포지션거래가 뭔지, 우리가 왜 알 아야 한단 말인가? 그런 금융 상품으로 어떻게 돈을 버는지야 수학자들이 잘 알 테고, 은행에서는 똑똑한 사람들이 일하고, 정부도 걱정 없어 보이고, 모두 잘살게 되었는데, 왜 사서 걱정을 해야 하는가?

인터넷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금융용어를 들으면 흥미를 잃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기술 용어를 써가 며 네트워크 기반 구조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걸 재미있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피하려 하기 때문 에, 힘 있는 사람들은 불편한 질문을 받을 걱정 없이 결정을 내 릴 수 있다.

브라이언 오켈리는 매우 복잡한 분야로 악명 높은 온라인 광고 산업도 일상적인 용어로 설명하면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 인지 곧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 다. 우리는 굳이 자세히 알 필요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의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대규모 재앙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가 만든 시스템이지 이따금씩 등장하는 악당이 아니다. 그런데도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쁜 사람을 찾아 모든 죄를 그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한다.

페이스북의 사생활 침해 문제가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마크 저커버그의 잘못을 비난한다.

- 인터넷 시대의 시스템이 권력과 부를 어떻게 분배하는지 살피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이 눈에 띈다. 권력과 부를 거머쥐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대부분 백인이고 대부분 남성이고 대부분 인터넷 시대가 시작되기 전부터 부자였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인터넷이 지닌 여러 맹점을 설명해준다. 어쩌면 그래서 인터넷의 문화적 감수성이 낮고, 초기 소셜 네트워크에서 협박과 희롱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졌는지도 모른다. 인터넷이 기득권층에 권력과 부를 몰아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터 넷이 부와 명예를 좇는 사람들의 장이 되면서부터, 전 세계 기득 권층이 인터넷으로 고개를 돌리리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기득권층은 인터넷으로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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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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