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명품 기업의 정신

저자
홍하상 지음
출판사
을유문화사 | 2013-07-2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세계 경제를 이끌어 온 유럽 8개국의 명품 기업 그들에게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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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인들은 배낭가득 시계를 넣고 해발 5천미터가 넘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에 내다팔았고 작고, 가벼우며 고부가가치를 지닌 시계는 한배낭만 내다 팔아도 큰 돈이 되었음. 드디어 먹고살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이 생긴 것임. 여기에 더해서 알약도 만들기 시작. 제약산업은 약초가 많은 스위스의 자연환경과 맞아떨어졌음. 그들은 거기에 또 한번 목숨을 걸어 제약산업을 발전시켰음. 이것이 오늘날 세계최고의 스위스 시계와 제약산업의 출발점임. 시계나 알약을 배낭에 가득 넣은 스위스 상인들이 알프스를 넘어 유럽국가에 다녀오면 그들의 배낭 속에는 금과 은이 넘쳐났음. 바쉐론 콘스탄틴 같은 시계가 요즘도 개당 1,2억을 호가하듯이 배낭 가능 시계를 매고 알프스를 넘어갔다오면 장사꾼 한사람이 적어도 1,2백억 매상을 올릴 수 있었던 것. 이것이 스위스가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시계와 제약을 선택하게 된 배경.
- 면사 공업은 스위스가 세계 최초로 오토메이션화한 분야임. 1801년 스위스의 생트칼렌에서 스위스 최초의 방직공장이 조업을 시작했고, 1814년까지 거의 모든 방직공장에서 자동화가 도입. 이때 산업구조가 지역별로 재편되었는데 섬유제품은 스위스의 북부와 동부를 중심으로 발전했고 시계산업은 프랑스어권인 쥬라지방에서 발전. 그러나 이때도 대규모 공장은 아니었고 주로 소규모 공장 시스템이었음. 섬유제품의 공업화와 시계산업의 노하우는 기계공업의 발전을 촉진시켰음. 또한 섬유염료의 수요가 확대되면서 화학공업도 활기를 띄게 됨. 화학공업은 제지공업의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주면서 스위서 전체 산업이 확장되기 시작. 이렇게 공업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식품산업 또한 발전. 공업화가 되면서 많은 스위스의 여성들이 섬유공장에 취직하여 일하게 되었는데, 가족을 위해 식사준비를 할 시간이 없자 가공식품이 발전하기 시작. 가공식품업은 독일로부터 망명해온 앙리 네슬레가 그 대표적 선구자였음. 1860년 네슬레는 밀가루, 우유 등을 판매하여 네슬레를 급성장시킴
- 그러나 이처럼 급속한 공업화에 따른 스위스의 경제발전은 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고 어린아이들까지 공장에 취직해서 힘든 노동을 하게 되었음. 1877년 스위스 정부는 연방차원에서 노동법을 만들어 어린아이와 여자들의 노동시간을 주당 65시간 이하로 제한. 그러자 이웃국가인 독일에서도 1890년부터 어린아이와 여자들이 탄광에서 일하거나 야근을 하지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 이후 1899년부터는 거의 전 유럽의 국가가 하루 8시간 이상 노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게 됨. 그러던 것이 점차 발달하여 오늘날에는 주당 42.4시간으 로 근무시간이 줄어듬. 또한 이때부터 종업원들에게 주택이 제공되었고 사원식당이 구비되는가하면 의료보험이 탄생. 이때 탄생된 의료보험이 오늘날 스위스를 보험강국으로 만든 출발점. 또한 소규모 섬유직조업자와 시계제조공장들이 번 돈을 맡길 곳이 없자 협동조합은행과 저축은행이 탄생되었고 은행업이 발달. 1907년에는 스위스은행이 설립됨. 이처럼 방직, 식품, 섬유, 화학산업에 이어 은행업까지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스위스는 탄탄대로의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시작했고, 결국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된 것.
- 스위스의 비밀은행들이 과거 60년대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번영할 수 있었던 까닭은 스위스가 영세중립국이고 세계 각국의 국제기관 본부가 많이 들어와 있어서 정치가 안정적이라는 것 때문. 정변이 발생해도 세계 각국의 국제적 기관이 들어와 있으므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또한 지리적으로 스위스가 유럽의 중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돈을 맡기고 찾는 데 유리한다는 점도 있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엄격한 고객정보의 관리임. 즉, 맡긴 사람의 신원과 맡긴 자금에 대해서 철저한 비밀을 지켜주는 것. 그러나 마피아의 검은 자금이 스위스로 유입된 이른바 키아소 사건으로 스위스와 이탈리아 정부가 마찰을 빚으면서 1977년 4월 이런 은행 비밀주의 관행은 조세 조약이 체결된 국가들에 관해서는 예금주를 공개한다는 방향으로 개정됨.
- B&O는 LED TV나 스피커를 자체생산하지는 않음. LED TV의 경우 삼성에서 수입하며 스피커 또한 자사생산품이 아닌 타사의 스피커를 납품받아 새롭게 디자인하여 상품을 출시. 말하자면 B&O 자체가 스스로 생산하는 부품은 거의 없으며 납품받은 부품을 새롭게 디자인하여 구성하는 것이 B&O의 사업영역. 예컨대 삼성전자로부터 42인치 LED 패널을 공급잗아 B&O사가 디자인을 새로 한 후 선보인 베오플레이 LED TV의 경우, 삼성전자의 같은 사이즈 제품보다 무려 5배 이상의 비싼 값으로 팔림. 그만큼 디자인에서 앞서기 때문. 그렇다고 디자인만 중시하는 것은 아님.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기능을 위한 디자인을 추구하라"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세계 최강의 영국 동인도 회사와 맞설수 있었던 배경에는 네덜란드 해군력이 강한것도 있지만 사실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배당률이 역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투자한 주주들은 평균 연간 투자금액의 40%에 달하는 이익을 배당받았고, 실적이 좋은 해에는 무려 60%이상의 배당을 받기도 했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이후 1696년까지 94년 동안 투자자들에 대한 배당률이 12% 이하로 떨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음. 물론 동인도 회사에 이익을 노리고 막대한 투자를 한 것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발전 원동력이 되었음. 반면에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만큼 고배당을 할 수 있는 사업적 안목이나 수완이 없었음.
- 16세기 초 프랑스에서 확산된 교회개혁운동은 정부의 탄압으로 수많은 망명자를 낳았음. 당시 위그노들은 섬유 방직기술과 같은 첨단 기술을 갖고 있었고, 그 기술로 돈을 벌고 싶어했음.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위그노들을 카톨릭이 아닌 칼뱅파 신교도라고 탄압하기 시작. 결국 카톨릭과의 대립이 격화되어, 1572년 8월 24일 성 바르톨레메오 축일의 대학살사건이 일어남. 이후 프랑스 정부가 위그노들의 종교적, 시민적 자유를 박탈하자 40만명에 달하는 위그노들의 국외탈출이 시작됨. 위그노들은 이웃의 벨기에,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 미국, 아일랜드 등지로 대탈출을 감행. 네덜란드로 탈출한 위그노가 6만 5천여명, 독일 3만여명, 스위스 2만 2천여명 등이었고, 프랑스에 남겨진 위그노의 수는 겨우 1500명도 되지 않았음. 이로 인해 칼뱅과 위그노를 낳았던 프랑스 개신교회는 몰락하고, 프랑스의 제철, 염료, 화학 등 고도의 하이테크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위그노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프랑스의 산업기반 자체가 붕괴되는 사태가 발생 영국의 찰스 2세는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던 위그노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특별 이민법을 만들었고, 영국으로 이주한 위그노들은 증기기관의 기반기술과 면방직 공업의 기틀을 마련해주어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주도하게 됨. 독일 역시 위그노들을 받아들여 철강산업을 일으킬 수 있엇고, 미국의 경우 18세기 초 이민 온 위그노들이 탄약기술을 가져오면서 미국 서부개척 시대가 가능하게 됨. 아일랜드의 기네스 맥주 역시 프랑스에서 아일랜드로 망명한 위그노의 후손이었던 윌리엄 고셋이 효모기술을 개발해 줌으로써 기네스 맥주를 세계적 맥주로 만드는데 이바지.
-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중 하나인 베니스 상인에 나오는 베네치아 상인 샤일록은 피도 눈물도 없는 베네치아 상인의 전형적 인간형을 보여줌. 당시 베네치아 상인은 오직 금전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도덕관념이 없는 상인으로 치부되었음. 자원이 없으므로 어느 주가 됐든 무역을 하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장하고 있었던 것. 그 대표적인 것이 1306년 몽골정부와 조약을 맺어 통상권을 따낸 사건. 1304년 5월 가잔 칸이 죽자 몽골제국은 아제르바이잔에서 새로운 황제를 선출하기 위한 쿠릴타이를 개최하고 칸에 가이하투의 아들을 추대. 정권의 변혁기에 베네치아 상인들은 1306년 몽골정부와 조약을 맺어 지중해 제국의 여러나라 및 도시와 무역을 계속할 수 있는 통상권을 다시 확보. 말하자면 국제정세에도 민감하게 대처하여 자신들의 이권을 놓치지 않았던 것.
- 독일에 춘프트라는 것이 있음.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 길드라고 부르는 것과 거의 같은 성격.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의 길드는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에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상인과 수공어자들이 만든 동업자 조기. 프랑스의 발랑시엔에서 유럽 최초의 상인길드가 국가의 공인을 받아 탄생했고, 이어 생토메르에서는 1072년에서 1083년 사이에 상인길드가 탄생하면서 그 규약을 최초로 만들게 됨. 이런 상인길드는 영국과 독일, 벨기에의 브리쥬 등에서도 생겨남. 독일에서는 11세기경부터 수공업자가 급격히 늘어났는데 이들 수공업자와 상인들이 자신들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상인 조합이 춘프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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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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