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하는 인류

역사 2024. 9. 28. 07:59

- 유구한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한 고셍 머물며 생활하는 것은 비교적 현대적인 현상이며 40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인구의 3분의 1은 유목생활을 했다. 현재도 3천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전통적 유목생활을 하고 있으며, 고용 유목민 혹은 단기 이주근로자라 부르는 사람들도 수백만명이 넘는다. 자기가 태어난 곳, 혹은그 부근에 머무르는 것이 당연히 정상이거나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접으면 인류에 대해 색다른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 마밀라피나타파이(야간족 언어, 세계에서 가장 간결한 단어) : 두 사람이 다 바라는 일이지만 둘 중 누구도 본인이 먼저 나서서 하고 싶지는 않아 서로 상대방이 해주었으면 하며 나누는 눈길

- 고대 아테네에서 원주민들은 이주민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그에 따라 이주민과 그들의 후손은 결코 진정한 아테네인이 될 수 없다는 불편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아테네 예외주의는 그곳에 사는 외국인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적용되어 도시 국가의 사회구조에 영구적 분열을 일으켰다. 아테네에는 메틱이라고 알려진 대규모 이주민 공동체가 있었는데, 그들은그곳에 정착했지만 시민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아테네에서 태어난 그들의 후손 역시 아테네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 최초의 인도-유럽어족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대초원에 있던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실 중 하나는 그들 역시 정착민이 아니라 이동 중인 유목민이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특정 장소에 속해 있는 고대세계를 지어내려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우리는 결국 유목민의 후손이다. 정말로 우리의 근원을 찾고 싶다면, 인류의 역사가 고대부터 지속되었다는 인간의 깊은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다면 우리의 조상들이 아프리카에서 이주해왔고, 아프리카야말로 우리 모두의 단 하나뿐인 진정한 본향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 로마에서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군사와 돈, 행운과 무자비함이 필요했고, 노예를 거느린 지독한 군국주의적 압제 체제를 관장해야 했다. 그리고는 전쟁터에서 죽거나 아니면 자기 침대에서 살해당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피부색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로마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생김새가 다르고, 억양이 이상하고, 어릴 대 로마에서 자라지 않은 데서 오는 불리함은 (특히 강한 군단을 자기 편으로 갖고 있으면)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 이주민들은 이제 정주주의 세계에서는 아무도 원치 않거나 들어갈 자격이 없거나 그 두 가지 다인 사람들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거의 모든 일에 대해 쉽게 비난받을 수 있어, 적 아니면 희생양이 된다. 
이는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헤아리지 못하는 공감능력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감능력의 부족은 때로는 배를 타고 망명하다가 죽은 아이가 해변에서 발견되거나 아니면 냉동 트럭에서 서로 얽힌 채 얼아 죽은 난민 집단이 발견되거나 하면 그때서야 조금 채워진다. 그 짧은 순간에는 온 세계가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 같지만, 그때뿐이다. 이주민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주주의의 압제라 할 수 있다.
현재 있는 곳에 계속해서 머무르는 것이 정상인 세상에서 이동은 일탈이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생명이 위험에 처하거나 자신이 보유한 기술이 지구의 다른 지역에서 필요해지는 것처럼 특별한 상황에서만 이주가 허락된다.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집에 머물러 있거나 적어도 태어난 국가에서 계속살아야 하며, 이주 충동이나 다른 곳에 대한 갈망은 해외 휴가와 순례처럼 무해한 행위로 대체하면 된다. 이주가 비정상적이고 인류 역사에서 이주의 역할을 잊도록 권장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고향은 신성시되고 낭만화되는 반면 낯선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마치 고대 아테네 사람들처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땅의 흙에서 태어났다고 믿기라도 하듯 이주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 오늘날 정주주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역사를 너무 자주 잊고 있다.우리는 인간이 지루하거나 호기심 혹은 모험심 때문에, 아니면 도전을 즐기거나 꿈을 이루고 싶어서 이주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수천 년 동은인류는 지구의 거의 모든 곳으로 이주했고, 그것을 막으려는 온갖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이주의 역사야말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촌인 유인원과 인류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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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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