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때문에

IT 2022. 8. 20. 22:28

- 인터넷 약어는 문어와 비격식성의 교차를 보여주는 완벽한 사 례다. 인터넷 약어는 문어에서 유래했다. 약어는 타자로 쳐야 할 글자 수를 줄여주지만, 반드시 발음하는 음절의 개수를 줄여주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말할 때는 I dunno가 효율적인 반면 글을 쓸 때는 idk가 효율적이다 (우리말에서는 '안녕' 대신 ‘ᄋᄂ'을 쓰는 등이 이런 효율적 인터넷 약어의 예가 될 것이다). 이런 약어의 기능은 비격식적이다. idk (I don't know, 모름), wtf (what the fuck, ᄉᄇ 뭐냐), jsyk (just so you know, 그냥 알려주려고), afaik (as far as I know, 내가 알기로는), imo (in my opinion, 내 생각엔), til (today I learned, 오늘 알게 된 건데), tfw(that feeling when, ~할 때의 그 느낌) 처럼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전문용어의 약어는 그 용어와 동시에 만들어지고, 가끔은 어떤 약어가 될지를 고려하면서 용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반면 사회적 약어는 이미 흔하게 사용되는 표현 으로부터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효율성 극대화만을 위해 움직 이는 건 아니다. 가끔 우리는 글로 구어를 연상시키고 싶을 때 단어 의 철자를 바꾸어 쓰거나, 구어로 글을 연상시키고 싶을 때 약어를 말하기도 한다. 효율성은 그저 특정한 생략이 어디에서, 왜 발생했는지에 관한 한 가지 힌트일 뿐이다.
- 영어가 같은 기간에 아이슬란드어보다 빠르게 변화한 것은 분명하다. 레슬리 밀로이와 제임스 밀로이는 그 이유가 약한 유대라고 주장했다. 아이슬란드에 관해 알아야 할 한 가지는 정말로 밀접한 공동체라는 점이다. 아이슬란드인들의 성씨는 여전히 아버지의 이름, 혹은 간혹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온다 (성이 와야 할 자리에 ~의 딸' 혹 은 ~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단어가 오는 형태다. 예컨대 Egil의 아들 Gunnar의 전체 이름은 Gunnar Egilson이 되는 식이다). 이런 방식은 만나는 사람 대부분이 이미 나의 가족을 아는 사회에서 훨씬 더 합리적이다. 광범위한 친인척 네트워크를 언급하면서 자신을 소개하는 경향은 사가가 쓰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누군가가 아는 모든 사람이 이미 서로를 안 다면, 새로운 언어 형태는 무작위 변형을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다. 새 언어 형태를 빌려올 약한 유대가 없다.
반면 영어는, 역사가 흐르면서 약한 유대가 일어날 만한 유의미한 일들을 몇 차례 거쳤다. 덴마크와 노르만의 침략, 출세를 위해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이후에는 다른 도시로 이동하던 전통, 제국 주의적 팽창 등이 그 예다. 물론, 영어 사용자의 세계에도 나름대로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모두가 서로의 친척을 아는 작은 공동체들이 있다(나는 지금도 가족 모임에서는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누구인지 말하는 방식으로 자기소개를 한다). 하지만 영어 사용자 의 세계에는 군중 사이에서 익명을 유지하거나, 결코 서로를 만나는 일이 없는 친구 집단들을 둘 수 있는 대도시도 많다. 더욱이, 이 장의 첫머리에서 살펴본 지도 연구를 보면 영어 사용자의 세계에서 더 많은 언어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곳은 비교적 크고 느슨하게 조직된 도시였다.
- '점점점’을 찍는 사람들과 행갈이를 하는 사람들은 문장부호의 시초를 생각하게 한다. 최초의 문장부호들은 발화 사이의 단절을 표시하는 것이었고, 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중세의 필경사들 이었다. 중세 시대의 중요한 문장부호 중 하나는 푼크투스(punctus) 라는 점이다. 푼크투스는 현대의 쉼표가 들어갈 만한 자리에는 짧 은 호흡을 표시하기 위해서, 문장 중간에는 중간 정도의 호흡을 표 시하기 위해서, 글자 위쪽의 아포스트로피가 들어갈 만한 자리에는 긴 호흡을 표시하기 위해서 들어갔다. 그보다 전인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글이 숨은 단어 찾기 퍼즐과 같았다. 문장부호도 없고, 문장도 나누어지지 않았으며, 단어 사이에 띄어쓰기도 되지 않은 데다 전부 대문자이거나(조각된 경우) 전부 소문자였다(잉크로 쓴 경우), 독자는 퍼즐을 풀 때처럼 한 단어가 끝나고 다른 단어가 시작되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내야 했다. 역시 퍼즐을 풀 때처럼, 독 자들은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방법을 써서 그런 일을 해냈다. 다행히도 단어 찾기 퍼즐에서와는 달리 단어가 대각선으로 적혀 있지는 않았으며, 헷갈리라고 일부러 집어넣은 글자도 없었다.
16~17세기에는 인쇄 기술과 사전이 발전하면서 철자법과 문장부호가 더욱 복잡해지고 표준화됐다. 필경사들은 저마다 특이 한 방식으로 철자와 문장부호를 썼지만, 인쇄공들은 조판 과정에서 자신들이 인쇄하는 다른 모든 것과 어우러지도록 상황을 바꿀 수 있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했다. 사람들이 개인적인 편지를 주고받을 때도 이처럼 정교한 지침을 완전히 따른 것은 아닐지 모른다. 제인 오스틴, 에밀리 디킨슨, 비틀스는 확실히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지 만 인쇄 기술이 더 많은 독자를 만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되자, 사람들은 편집되고 표준화된 문장부호를 주로 보게 되었다. 반면,
인터넷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문장부호를 공개적인 공간에 내놓았다. 이에 따라 다른 우선순위가 생겨났다. 인터넷의 문어는 직관적이고 쉽게 생산할 수 있어야 하며 생각이나 말하기만큼이나 빨라야 했다. 우리는 이런 조건들을 모아, 활자로 표현된 어조라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 메시지 전체를 진한 대문자로 써도 괜찮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유래한 걸까? 어쨌거나 사람들 은 천 년 넘게 소문자 손글씨를 써왔고, 신파적인 빅토리아 시대 조기의 사람들조차 모든 것을 대문자로 쓰지는 않았다. 왜 컴퓨터를 사용하면서부터 갑자기 모든 글자를 대문자로 쓴단 말인가?
아마 어느 정도는 전보를 보내기 위해 쓰인, 대시와 점으로 가 득한 모스부호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모스부호는 모든 글자를 점 과 대시의 조합으로 나타낸다. 길거나 짧게 두드리는 신호로 전송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A는 점 대시, B는 대시 점 점 점이다. 나머지 26개의 글자도 모두 최대 네 개의 점이나 대시, 혹은 그 둘의 조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소문자를 포함하고 싶었다면, 대여섯 개의 점이나 대시가 필요했을 것이다. 52개의 글자를 나타내 야 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전신 기사들은 두 배나 많은 부호를 암 기해야 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문자를 대문자로 썼던 로마인들에게 별문제가 없었다면, 전보를 전부 대문자로 쓰는 것도 괜찮을 터였다.
초기 컴퓨터도 비슷했다. 초기 컴퓨터 일부는 정보를 전송하거 나 출력하기 위해 텔레타이프 기계(전신 기사의 기계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를 사용했다. 코딩을 시작할 때 배우는 고전적인 첫 명 령어는 PRINT("HELLO WORLD) 같은 것인데, 이 명령어는 컴 퓨터가 HELLO WORLD를 화면에 표시하도록 한다. 지금은 이 명령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그랬다. 화면이 존재하기 전에, 텔레 타이프 기계에 단어를 입력함으로써 컴퓨터에 명령을 내리고 컴퓨터의 답이 두루마리 종이에 인쇄되어 나오던 시절에 말이다. 컴퓨터에 화면이 생긴 다음에도 저장공간은 여전히 비쌌고, 전신 기사 의 뇌세포만큼이나 소중했다. 그래서 애플II 등 아주 많은 컴퓨터가 모든 것을 오직 한 가지 형태의 문자, 즉 대문자로만 표현했다. 이런 설정의 흔적이 몇몇 상업용 컴퓨터 시스템에는 아직도 남아 있다. 텔레타이프는 흔하지 않지만, 식료품점의 영수증이나 은행 거래내 역서, 비행기표는 돌돌 말린 광택지에 전부 대문자로 인쇄되어 나온다.
컴퓨터가 소문자를 지원하기 시작하던 시점에 우리는 대립되는 두 가지 표준을 마주하게 되었다. 한쪽 사람들은 전부 대문자를 사용하는 것이 컴퓨터에 글을 쓰는 방식이라고 으레 생각했고, 다 른 쪽 사람들은 대문자만 사용하는 것이 고함을 의미한다며 물러 나지 않았다. 궁극적으로는 감정적 의미가 승리를 거두었다. 기능의 변화는 이름의 변화와 함께 일어났다. 구글 북스(Google Books)에 스캔된 수백만 권의 책에 따르면, 전부 대문자로 썼다는 뜻의 all caps와 all uppercase라는 단어 사용이 1990년대 초반부터 가파르게 증가했다. 반면, 이 세기 초반에 선호되던 용어는 block letters 혹은 block capitals였다. 사람들은 소리치는 글자에 관해 말할 때 all caps 라는 표현을 쓰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block capitals는 표지판이나 서류 양식 등 공식적인 데 쓰이는 대문자를 가리키는 경우가 더 흔했다.
- 하지만 어조를 표현하는 대문자로만 쓰기가 추가되었다고 해 서 공식적임을 나타내는 대문자 사용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런 용도는 EXIT (출구) 표지판이나 CAUTION (주의) 테이프, CHAPTER ONE(1장) 등의 제목에 남아 있다. 이런 표현은 강조를 의미하는 것일 수는 있으나 시끄러운 것으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 리의 해석은 해당 글자를 공식적인 것으로 읽느냐, 비공식적인 것 으로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웹사이트 메뉴의 HOME은 그냥 그래픽 디자인상의 선택일 뿐이지만, ugh I want to go HOME (집에 가고 싶어)” 같은 메시지의 HOME은 활자로 표현한 어조다.
- 문어에서의 예의가 전자식 의사소통에만 나타난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인터넷 이전에는 유쾌하고 비공식적이며 일상적인 요 청이 보통 구어로 이루어지거나 종잇조각에 휘갈겨 쓴 쪽지로 전달 됐다(“전에 부탁했던 책이야!” “강아지 밥 줬어.”). 사람들이 포스 트잇 쪽지를 남길 대상과 어느 정도 친밀한 관계를 이미 형성했을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지만(물리적 공간을 함께 쓰고 있으리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이 가족이나 룸메 이트에게 남긴 수십 장의 스캔된 쪽지를 살펴보면 하트나 웃는 얼 굴, xo가 서명처럼 남겨져 있다. 보이지 않는 타인과 거의 실시간으 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순간에 명랑하고 사교적인 글자 레퍼토리가 확장되는 것을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 내부자 농담을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은 컴퓨터 언어 자체를 사 용해 우스꽝스러운 유사 코드를 작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HTML 에서 일련의 문자를 이탤릭체로 표시하고 싶다면 이탤릭체를 시작 하고 싶은 부분에 〈i)를 넣고 끝내고 싶은 부분에 </i>를 넣으면 된 다. 이런 형식은 자연스럽게 창의적인 활용으로 이어졌다. 예컨대, sarcasm (비아냥)이란 단어로 코드 모양을 만들어 <sarcasm〉난 뭐가 문 제인지 모르겠는데 </sarcasm)로 쓸 수 있다. 컴퓨터는 유머 감각이 라고는 없는 짐승인지라 명령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컴퓨터와 대화하는 데 익숙한 동료 인간들은 당신이 꽤 영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당신이 이런 표현을 사용할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낸다면 말이다. 대단히 컴퓨터광다운 사례는 LISP라는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찾을 수 있다. LISP에서 예/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방법은 끝에 -P를 적는 것이다. 예를 들어, TRUE-P라고 적으면, “사실인가?” 라는 뜻이 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언젠가 LISP 프로그래머 몇 명이 외식을 하러 나갔는데 그중 한 명이 2인용 메뉴를 나눠 먹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알고 싶어져서 "Split -p soup? (수프 나눔-P?)  라고 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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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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