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저성장의 늪에 더욱 깊게 빠져들 것으로 전망됨. 한국산업연구원은 2015년 4월 한국경제의 일본형 장기부진 가능성 검토 보고서에서 "일본의 장기침체는 대형 버블붕괴 이후의 대차대조표형 불황, 정부의 정책대응 실패와 인구감소, 내수부진 등에 따른 것"으로 진단하고 "한국 경제가 일본형 장기부진에 빠질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요인은 인구구조변화와 가계부채"라고 경고. 이에 덧붙여 노동생산성 상승률과 고용상승 추이가 2015년처럼 앞으로 지지부진할 경우, 생산인구 감소 영향으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0년 후분에 2%대로 떨어지고, 2020년대는 1%대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
- 일본은 서구만큼 깊은 경기침체로 빠져들지도 않았고, 오히려 침체기간에도 1인당 소득을 대체로 향상시켰다. 서구경제학자들이 반면교사로 취급했던 일본경제를 롤 모델로 삼아야 할 정도이다. 일본경제를 비관했던 서구경제학자들은 도쿄에 가서 천황에게 사과해야 한다. (폴 크루그먼, 2012년 5월 26일, 파이낸셜 타임즈)
- 지난 20년간 유럽의 선진국들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의 저성장을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일본은 버블경제로 눈부셨던 과거의 일본과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는 현재의 중국을 바라보며 경제적으로 자괴감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게오르그 블린트)
- 노벨 경제학 수상자이자 신고전파 경제학의 대표학자인 에드워드 프레스캇은 국가 전체 생산성 증가율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일본경제의 문제라고 주장. 통상 한 국가의 경제적 기술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는 GDP를 생산자본으로 나눠서 얻은 수치, 즉 총요소생산성이다. 하지만 프레스캇 교수는 역으로 생산요소의 실질 증가율과 기술진보 속도를 고려해 실질 경제성장률을 산출했는데, 일본의 생산기술 향상률을 포함한 기술수준이 둔화되어 장기침체가 발생했다는 결론에 도달. 세부적으로는 비효율적인 기업과 쇠퇴하고 있는 산업을 지원하는 정부정책의 비생산성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지적이 아닐 수없다. 애닐 카샤프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는 프레스캇 교수와 같은 신고전주의 경제학파로서 신고전주의 성장이론을 바탕으로 일본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진 원인을 크게 두가지로 분석. 첫째는 좀비기업이다. 카샤프 교수는 생산성과 수익성이 낮아 본래 시장에서 퇴출해야 하는 기업이 채권자와 정부의 지원으로 사업을 계속하고 있으니, 이들을 서둘러 정리하라고 주문. 둘째는 거시경제정책의 실패다. 일본정부는 불량채권문제에 대한 대응이 늦고 불필요한 재정지출이 컸다. 이에 더해 갈수록 악화되어가는 재정의 재건과 일본 은행의 금융완화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도 독이 되었다고 말한다. 다만 프레스캇 교수와 카샤프 교수의 지적은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감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총요소 생산성이란 GDP와 생산요소의 계산에서 역산으로 산출되는 기술적 개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 생산성이란 요소는 독립된 실패가 없다. 앞서 디플레이션은 불황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주장한 요시카와 히로시 동경대 교수는 총요소 생산성의 허점을 어느날 갑자기 차가 없어진 주차장의 주차요원이라는 해학적 비유로 파고들었다. 불황으로 매출이 하락할 경우 총요소 생산성도 함께 하락하지만, 그렇다고 운영효율이라는 내적 요인이 반드시 동반되었다고 볼수는 없다는 것. 즉, 일본이 장기침체에 빠졌다고 해서 기술수준이나 노사관계, 경영효율이 불량하다고믄 볼수 없다. 일본은행 경제분석가 가와모토 다쿠지도 90년대 총요소 생산성 저하의 60% 이상은 생산설비를 포함한 자본과 노동의 가동률 변동에 의한 것이다. 같은 시기(잃어버린 20년)에 기술진보 속도가 감속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지적. 즉, 프레스캇 교수의 지적과 달리 일본 경기침체의 원인은 공급이 아니라 수요에 있다는 것. 결국 현대 일본이 오랜 디플레를 견뎌올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의 진보 덕분이며, 미래 일본이 저성장, 저투자, 저물가, 저금리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가야할 길도 기술의 진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요시카와 히로시 교수나 경제분석가 가와모토 타쿠지의 주장처럼 일본의 기술진보 속도가 건재하다면 문제는 공급이 아니라 수요에 있다. 그리고 수요는 2002년 이후 꾸준히 회복되고 있는 추세다. 겉으로 본 소비자 물가지수는 제로에 수렴하지만, 불확실성이 큰 에너지 등의 요소를 제하면 일본경제는 2010년 들어서 완곡한 인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
- 일본사회를 지탱하는 세 기둥에서 천황은 명예만 갖는다. 총리는 권력을 소유한다. 기업은 권력과 명예는 없지만 돈을 얻는다. 일본인 개인이 갖고 있는 돈과 권력과 명예를 셋으로 나누면 일본사회가 지탱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다는 일종의 사회적 묵계인 셈이다. 평론가 다케우치 히로시는 이 같은 균분의식을 일본사회를 이끌어가는 사회적 합의라고 풀이. 돈과 권력과 명예의 균분의식은 일본역사에서 오랜기간 사회적 불문율로 이어져 왔다. 천황과 같은 큰 어른이 사회에 존재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자발적 통제나 스스로 절제하는 사회적 미덕이 작동하게 마련. 천황은 19세기 후반에야 막부정치에서 권력을 넘겨받아 비로소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당시 사카모토 료마 등 개혁 세력에 의한 이른바 대정봉환은 천황을 허수아비가 아닌, 국가의 우너수로서 자리잡도록 한 사건이었다. 메이지 천황 시대인 1898년 헌법이 제정되면서 입헌군주제가 제대로 자리잡게 된다
- 일본에서 상대를 신뢰한다는 것은 상대의 눈을 강하게 쳐다보지 않으며 상대를 배려해 완곡하게 말하는 것. 때로는 굳이 본심을 밝히지 않고 겸손하게 자신의 바람이나 실력도 과시하지 않는다. 이것이 일본에서는 상대에게 신뢰받는 비결이다. 이처럼 겸손한 것과 수치를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일본에서 수치를 모르는 자와 의리를 모르는 자라는 말은 매우 모욕적인 욕이다. 루스는 서구의 문화를 죄의 문화, 일본의 문화를 수치의 문화로 대별. 서양문화에서 기독교는 선악의 잣대였다. 기독교 계명은 곧 십계명이며 도둑질은 죄라고 규정. 서구에서 도둑질한 이는 죄를 지었다는 양심의 소리, 즉 죄의식에 시달림. 카톨릭의 고해성사도 마찬가지. 자신의 죄를 주임신부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반면 이본에서 선악의 기준은 다른 사람의 눈이다. 일본에도 사회적 규범이 있지만 그 잣대는 다른 사람의 평판이다. 즉, 일본에서는 서구와 같은 인간의 행동을 옳다 그르다 판별할 절대적 기준이 없다. 다만 다수의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도 말하면 착한 사람이다.
- 메이지 시대 유신파들은 천황을 앞세워 권력을 장악. 그러면서 20세기에 들어서서는 군부와 우익의 파시즘 운동의 방편으로 천황의 신격화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천황의 권력은 100년을 가지 못했다. 2차 대전 이후 등장한 신헌법에 의해 천황은 국가 및 국민 통합의 상징적 존대로 돌아갔다. 천황은 일본과 일본인들에게는 범상치 않은 존재다 이처럼 실질적 힘은 없지만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함. 천황이 일본인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두고 일본천황제와 근대 일본의 정치 이데올로기 연구의 권위자 야스마루 요시오는 '근대 천황상의 형성'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 "근대세계는 여러 국민국가가 서로 겨루는 경기장으로 존재하며, 국민국가들은 이 경기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제각기 독자적 편성원리를 만들어낸다. 일본은 그것이 바로 천황제였다." 47년 5월 시행된 현행헌법상 천황은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이며 헌법이 접한 일정한 국사행위 이외에는 국정에 관한 어떠한 권리의 주장과 행사도 불가"하도록 되어 있음. 구헌법의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하며 천황은 신성불가침"이라는 명기와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따라서 천황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어떠한 정치문제에도 관여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천황과 황족은 피선거권도 없으며, 국정에 대해서는 일체 권한을 갖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 일본은 타국의 30% 수준으로 국방비를 지출하고 잉여예산을 민간부문에 투자함으로써 경제재건과 고도성장을 이끌 원동력을 얻음. 일본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경제력 뿐만 아니라 인적자원에서 큰 이득을 챙겨옴. 만약 일본이 50년대부터 GDP대비 국방비를 3% 수준으로 60년 동안 지출했다면 급속한 경제발전이 가능했을까? 언젠가는 G7에 들어갔겠지만 60년대의 눈부신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편으로 GDP대비 1%를 지출해온 지금보다 군사력 규모가 훨씬 비대해질 경우엔는 모병제만으로 군대를 유지할 수는 없었을 것. 한국처럼 20대 초반 남성의 인적자원 유출이 심각했을 것임. 국방전문가들은 현존하는 비싼 무기체계를 "언제 쓸지 알 수 없고, 되도록 안쓰고 싶은데, 그래도 언젠가 쓸지 몰라서 구입하는 수만달러짜리 사치품이라고 표현. 해군과 공군의 무기체계는 육군보다 대체로 고가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50년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섬나라 일본이 본격적으로 공군과 해군을 재건했을 경우 국방비 부담은 한국보다 극심했을 것. 일본은 16년도 국방비로 전년도에 비해 1.5% 증가한 5.54조엔을 책정. 사회복지예산인 31.97조엔의 약 16%이며, GDP의 1%임. 일본이 GDP대비 3%의 국방비를 지출할 경우 1년에 대략 16.5조엔을 지출해야 하며 이는 사회복지예산의 절반에 해당. 민간부문에 대입해보면, 도요타가 연간 20만대 생산을 목표로 멕시코에 건설중인 완성차 조립공장을 140개 지을 수 있는 돈이다. 60년대 일본이 매년 8%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국방비를 아끼고 민간에 투자할 여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
- 기시는 먼저 미국에서 전문 경영인 자본주의와 조우하며 그 강대함에 압도되고 만다. 그리고 독일로 건너가 한층 더 충격을 받았다. 일본도 화학공업만은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으나 빈약한 일본의 산업실정을 통감할 따름이었다. 그는 일본에 어울리는 것은 협조적 경영자본주의라는 사실을 깨달음. 2차대전 발발 이전의 독일에서는 산업합리화 운동이 유행. 기시는 이 산업합리화 운동을 두번째 산업혁명이라고 불러야 할 중대사건으로 보았다. 종래는 자유경쟁원칙이 진리인 것처럼 여겨졌으나 기시의 눈에는 대세는 산업합리화였다. 산업합리화란 협력을 정신으로 비용을 낮추는 것. 협조없이 자유경쟁과 이익추구에 의한 진보는 산업합리화가 아니라는 것. 경쟁에서 협조에 일대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또한 기시는 산업합리화는 독일에서는 성공했으나 애덤 스미스 이후 경제자유주의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것을 발견. 영국의 상황에서 얻었던 교훈은 협조란 기업뿐 아니라 생산자, 판매자, 소비자, 심지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서도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1차대전에서 패한 후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미국, 영국,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국민이 일치단결. 국가는 서로 경쟁했지만 국민은 협조를 우선했다. 다시 말하면, 내셔널리즘이 협조를 이끌어내고 산업합리화를 통해 협조적 경영자본주의를 실현한 것. 이 독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의 본으로 삼은 게 기시의 통제경제 구상이다.
- 마니의 사업방침
* 의료기기 외에는 설계, 개발하지 않는다
* 세계 제일의 품질 이외는 추구하지 않는다
* 제품수명이 짧은 제품은 설계, 개발하지 않는다
* 니치마켓 이외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 마니는 베트남에서 수술용 바늘을 연간 1억 3000만개 생산하고 있으며 기계로 검수한 후 최종검수는 사람이 눈으로 하는 것으로 유명. 육안으로 검사하는 마지막 단계에서만 총 생산량의 20% 이상이 폐기됨. 마니는 기존 스테인레스강과 차별화한 소재로 바늘을 개발하는 등 혁신적인 개발을 독려하고, 철저한 품질관리를 이어어고 있음. 마니의 전체 매출액 규모는 114억엔으로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무려 34%에 달함.
- 14년말 일본 가전업체에서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 있다. '테라온 겐' 발뮤다 창업자겸 사장이 그 주인공. 일본의 가전사 발뮤다는 에어엔진이라는 공기청정기를 출시. 깔끔한 디자인의 이 제품은 분당 최대 1만리터의 공기를 내보냈다. 물론 깨끗이 정화한 공기다. 중국 카피의 제왕 샤오미는 이를 카피하여 미에어를 출시. 사실 발뮤다는 03년 일본 도쿄에서 설립된 직원 40여명의 작은 회사다. 처음에는 전자제품 악세사리를 만들다다 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공기청정기 등의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다소 무모해 보였지만 이 작은 회사는 출시한 제품마다 대박을 터뜨림. 그동안 선풍기, 공기청정기, 청정가습기 등의 제품을 출시했고 세계적인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많은 수상기록을 세움. 15년 출시한 청정가습기 레인은 발뮤다의 디자인과 기술력이 정점에 달한 제품으로 일컬어짐. 레인은 자연기화 원리를 이용한 신기술을 채택. 발뷰다는 2000번이 넘는 실험으로 신기술을 습득하는 것으로 유명함. 일본 스타일의 장인정신이 아니고선 이처럼 끈질긴 실험을 실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움
- 일본기업이 해외기업을 매수한 후에 취하는 경영양태는 몇가지로 나눠서 볼 수 있음. 일반적으로 매수한 기업의 기존 경영진을 그대로 두고, 일본의 조직이나 사업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로 경영. 이를 팔길이 타입 경영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원격조종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이중기준경영으로 볼수도 있는데, 이는 가장 일본기업 스타일에 맞는 경영방안이다. 목적은 신중한 접근과 현지에 맞는 시장 친화적 인수합병이다. 팔길이타입 경영은 인수합병으로 인한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장점이 있음. 당장은 경영의 지속성을 중시한 현실적 선택인 것이다. 반면에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기업의 경영방침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경영이 순조롭게 될 경우에는 당장 문제가 드러나지 않겠지만 경영실적이 악화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짐. 중국에서 일본기업들이 실패한 가장 일반적 사례가 이런 유형. 중국 현지인에게 경영을 맡길 경우 사고나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상황파악이 늦어지고, 상황에 맞는 정확한 대응이 불가능. 이는 결국 대규모 기업손실로 연결되곤 했다. 80년대 일본기업들이 대거 중국기업과 반 합작형태 또는 주식매수로 진출했으나 대부분 재미를 보지 못했다.
- 아베 정권들어 산업경쟁력 강화법이 제정되고 산업별로 구조조정이 본격 진행되면서 산업혁신기구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음. 주무부처인 경제산업성과 산업혁신기구, 구조조정 대상기업의 주거래은행이 공동으로 전략을 짠 후 실행에 옮기는 식이다. 구조조정 대상기업에 단순출자하는 1차원적 전략이 아니다. 산업전체 글로벌 경쟁력을 감안한 분사, 통합이 구조조정의 골격이다. 한국의 조선, 건설업 구조조정 방식과 비교되는 대목. 산업혁신기구를 통한 구조조정은 특히 일본의 첨단기술력이 중국, 대만 등 신흥 경쟁국에 유출되는 것을 막는 방안되 된다. 일본기업 구조조정 소식이 들릴 때마다 대만과 중국기업들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달려들고 있다. 하지만 산업혁신기구가 통합을 주도하면서 기술유출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음. 산업혁신기구는 구조조정 외에 일본 주요기업들과 신기술 공동투자에 나서면서 신성장산업 발굴에 매진. 무인차, 생산자동화 로봇 등 다방면에 활용가능한 인공지능 관련 벤처기업을 지원. 매뉴얼 때문에 시간을 끌어 투자 타이밍 적기를 놓치는 과거의 시행착오를 뼈저리게 느낀 결과다
- 호리바제작소의 경영철학
* 틈새시장을 노려라. 튀어나온 못은 더욱 튀어나오게 해래
* 외국인 흉내는 아무리 잘내도 금방 외면당한다
* 기업은 비행기와 같다. 엔진을 멈추면 그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추락한다
* 세블일레븐 같은 기업문화를 버려라. 아이디어는 근무시간이 아니라 영감에서 나온다
- 15년 일본경제의 긍정적 모습은 일본경제를 재평가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버블경제 붕괴 이후 장기침체를 겪으며 민간기업들이 인건비 등의 비용을 절감한데다, 물가수준 또한 큰 폭으로 떨어지는 등 체질이 대폭 개선됐다는 것이 골자다. 일본경제의 현 상승세는 단순히 아베정권의 돈풀기에 따른 결과뿐만 아니라, 디플레이션을 견뎌내면서 일본 기업들이 자체 경쟁력을 꾸준히 키워온 결과라는 분석이다. 20년 장기불황 속에서 체질을 강화해온 일본의 수출대기업들은 아베 정부 출범 후에 엔화약세의 호기를 맞아 글로벌 시장에서 맹렬하게 치고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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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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