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니는 '이노베이션=기술혁신'이라고 잘못 인식. 이는 소니 사원만이 아니라 일본인이 '이노베이션=기술혁신' 혹은 '이노베이션=기술의 Break through'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 이런 그릇된 인식을 일본인에게 심어준 책임은 일단 신문이나 잡지 등과 같은 미디어에 있음. 신문기사 속에 이노베이션을 쓸 때 친절하게도 이노베이션(기술혁신)이라고 표기하기 때문. 이것이 일본인에게 잘못된 개념을 심어주고 있음. 기술혁신이라는 말로는 고성능의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밖에 연상할 수 없음. 가장 중요한 폭발적 보급이라는 대목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음.
- 지속적 기술은 파괴적 기술에 의한 이노베이션이 일어날 때 구축됨. 그 파괴적 기술은 고성능, 고품질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성능이나 품질이 조금 뒤떨어지는 경우가 많음. 그대신 작은, 싼, 사용하기 쉬운 등의 특징을 갖는 경우가 많음
- 크리스텐슨 교수는 파괴적 기술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함. 하나는 기존 시장에 대한 압도적인 low cost형 파괴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가지 소비자가 아니었던 사람을 타겟으로 하는 신시장형 파괴이다
- 일본 기업 상당수는 성실하고 우수한 석사과정의 학생을 기술자로서 갖고 싶다고 말한다. 반면 외국게 반도체 관련 기업은 박사과정으로 가장 잘 할수 있는 에이스를 마케터로서 갖고 싶다고 한다.
- 마케팅의 본질이란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며, 그에 대응하여 자신도 변화하는 것. 경제는 변화한다. 기술도 변화한다. 시장도 변화한다. 제도도, 정치도 변화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 이런 일이 한번에 일어나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난다. 이와 같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케팅이 모두이며, 모든 것이 마케팅이어야 한다. 연구, 개발, 제조, 영업, 총무, 경리, 자재, 인사에 관련된 모든 조직과 사원이 마케팅 감성을 갖고 있지 않으면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할 수 없다. 사원 전원이 마케터가 되지 않은면 살아남을 수 없음
- DRAM의 역사는 71년 인텔이 1Kb DRAM을 발명한 것으로 시작. 70년대는 DRAM을 낳은 미국이 셰어 1위를 차지. 일본은 히타치, 도시바, NEC, 후지쯔, 미쓰비시 등의 대기업 가전업체가 모여 DRAM에 주력하고 셰어를 증대시켜 80년대 중순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셰어 80%를 획득하기에 이름. 이 DRAM은 대형 컴퓨터나 전화교환기 등에 사용되었음. 그때 대형 컴퓨터 업체 및 전전공사(NTT)는 망가지지 않는 DRAM을 갖고 싶다고 요구. 수치 스펙으로 대형 컴퓨터용으로는 25년 보증, 전화 교환기용으로는 23년 보증을 요구.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일본의 반도체 업체가 이런 어려운 신뢰성을 실현하는 고품질 DRAM을 실제로 만들어 버렸던 것. 그 결과, 일본은 압도적 셰어를 획득할 수 있었음. 이대 일본 반도체 업체의 구석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극한 성능을 추구해 고품질 DRAM을 생산하는 기술문화가 깊게 뿌리 내림. 이런 기술문화는 일본 반도체 경쟁력의 원천이 되었다. 유저로부터 고품질 DRAM이 요구되고 있었기 때문에 비즈니스 적으로도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그 결과, 일본 반도체 기술자가 요소기술의 극한 성능을 추구해 고품질의 DRAM 생산을 목표로 하는 기술문화가 극히 상식적인 일로서 정착됨.
- 90년대 접어들면서 컴퓨터 업계에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남. 대형 컴퓨터를 대신하여 PC가 메인시장이 됨. 컴퓨터 업계의 패러다임 시프트는 DRAM 수요의 변화를 일으킴. DRAM의 주된 소비처가 대형 컴퓨터로부터 PC로 시프트한 것. 일본의 DRAM 셰어는 이 패러다임 시프트와 함께 저하. 일본을 대신해 한국이 마켓 셰어를 증대시켜 마켓 셰어 1위가 됨. 또한 DRAM 업체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1사가 된 미국도 2000년에는 마켓셰어에서 일본을 역전. PC용 DRAM에 요구된 것은 저코스트와 수(규모)였다. PC용 DRAM에는 25년 보증과 같은 고품질은 필요없음. PC용 DRAM 경쟁력의 원천이 된 것은 모두 저코스트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에 근거해 한국 및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저가의 DRAM을 대량생산하는 것으로 일본을 앞질렀던 것.
- 08년 1월, 드디어 1Gb DRAM의 스팟가격이 1달러를 밑돌았다. 이 배경에는 최저가격 PC인 넷북의 유행이 있었다. 5만엔을 밑도는 넷북에는 1달러 이하의 DRAM이 필요했기 때문. 이러한 DRAM 가격의 하락은 각 업체의 수익성을 알 수 있는 필터가 되었다. 07년 1분기 우선 미국 마이크론이 적자에 빠짐. 2분기에는 유럽 키몬다, 대만 난야, 파워칩, 프로모스가 적자그룹이 되었다. 이때 흑자를 유지하고 있던 것은 한국 삼성, 구 하이닉스, 엘피다였다. 그리고 3분기 엘피다가 적자그룹이 되어 흑자그룹은 한국의 2사만으로 압축되었다. 이 결과는 각 DRAM업체의 수익성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 일본 반도체 산업의 본질적 과제는 수익률이다. 일본 반도체 업계는 수익률이 나쁘기 때문에 호황시에 충분히 이익을 올리지 못하고, 불황시에는 대규모 적자를 올린다. 그 근본적 원인은 기술의 극한을 추구해 철저한 고품질 DRAM을 제조하는 방법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80년대 중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에 정착한 기술문화가 결국은 마지막까지 꼬리를 자르지 못했다. 과잉기술, 과잉품질을 나타내는 놀랄만한 에피소드가 있다. 엘피다의 DRAM검사공정은 타회사 보다 매우 많다.(일설에서는 10배) 그 검사공정의 하나로 Burn in이 있는데, 이는 초기불량을 사전에 줄이기 위한 스크리닝 방법. 예를 들어 웨이퍼에 DRAM이 형성된 후 100~125도의 고온상태로 DRAM에 고전압을 일정시간 인가한다. 이것은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이며, 이것에 의해 시장불량을 일으키기 쉬운 DRAM을 사전에 찾아낼 수 있다. 어느시기부터 일본 이외의 반도체업체는 번인을 멈추어 버렸다. 왜냐하면 시간도 코스트도 드는 번인으로 찾아낼 수 있는 불량은 겨우 수 %에 지나지 않기 때문. 이것을 눈치챘을 때 일본의 업계는 매우 놀란 것 같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타회사가 멈추었기 때문에 우리 회사도 멈추어 원가절감을 하자는 이야기는 없었다고 한다. 반대로 타회사는 하지 않은 번인을 우리 회사는 아직꺼 실시한다고 잘난체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05년 인터뷰에서 엘피다의 수율은 98%, 삼성의 수율은 83%였다. 그 숫자를 본 애널리스트들은 엘피다가 삼성보다 기술력이 높다고 평가. 그러나 한 이사는 이런 평가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최첨단의 512MB DRAM의 칩 면적은 삼성이 70평방밀리미터, 엘피다가 91평방 밀리미터였따. 따라서 300미리 웨이퍼로부터 취득할 수 있는 칩의 수는 수율 83%의 삼성이 약 830개, 수율 98%의 엘피다는 약 700개가 되어 수율이 나쁜 삼성이 다수 DRAM을 취득할 수 있었다. 둘째, 수율을 60%에서 80%로 올리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80%에서 98%로 올리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노력이 필요. 즉 사람, 돈, 시간 등 방대한 자원이 필요. 삼성은 수율 80% 이상이라면 충분히 비즈니스가 성립되므로 그 이상의 수율은 추구할 필요가 없고, 하지도 않는다. 셋째, 삼성은 당시 양산하고 있던 DRAM의 쉬링크판에 대해서, 4세대 동시개발을 실시하고 있었다. 즉, 한층 더 작은 DRAM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따라서 현행 양산품의 수율 향상에 과다한 코스트를 들이지 않고, 점더 작은 칩 사이즈의 DRAM양산 시작을 우선시. 넷째, 삼성이 쓰고 있는 제조장치의 스루풋은 엘피다의 약 2배였다. 즉, 1매의 웨이퍼에 회로패턴을 형성하는 시간이 엘피자의 반이다. 이와 반대로 같은 매수의 웨이퍼를 처리하는 경우, 엘피다는 삼성의 2배에 달하는 제조설비가 필요. 그 결과 엘피다의 칩원가는 대략 삼성의 배가 된다. DRAM은 칩 원가의 반이상을 제조설비가 차지. 만일 에맆다의 칩 취득수가 삼성보다 많다고 하더라도 이익률에 대해서는 엘피다가 삼성을 완전히 이길 수 없다. 실제로 05년 영업이익률은 삼성이 약 30%, 엘피다가 약 3%임.
- 무조건 수율을 올리고, 무조건 칩 면적을 작게 하면, 무저건 칩 취득수를 늘리는 것은 의미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DRAM한개당 원가를 내려 이익을 증대하는 것. 극단적으로 말하면 웨이퍼 1매에서 1개빡에 DRAM을 만들수 없더라도 그것으로 이익이 생겨 비즈니스가 성립한다면 그 이상 칩 취득수의 향상에 비용을 지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칩 취득수 증대를 위한 기술경쟁이 아니라 1개당 칩이익 증대의 기술경쟁이 아니면 안된다.
- DRAM으로부터 철수해 SOC로 방향을 바꾼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 특정 용도 전용 논리의 시장이 가장 많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그 공략방법이 크게 잘못되어 있었다. SOC는 니치의 집합체이며, 최첨단의 프로세스 기술을 강화한다고 해서 어떻게든 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각지를 누비면서 사람들의 생활을 잘 관찰해 시장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발견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발견에 근거하여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SOC비즈니스의 요체였다.
- 르네사스는 마이크로컴퓨터의 세계 셰어 1위(30%)의 반도체 업체이다. 차량용 마이크로컴퓨터 ECU에 한정하면 세계 셰어의 42%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수익성은 매우 나쁘다. 2010년 반도체 세계랭킹은 5위이지만 매출액 1조 1500억엔, 영업이익은 70억엔이다. 즉 영업이익률은 겨우 0.61%였다. 그리고 11년 3월 연결결산으로는 1150억엔의 적자로 전락. 한편 같은 마이크로컴퓨터에서도 PC용 프로세서를 제조하고 있는 미국 인텔은 세계랭킹 1위, 2010년 실적은 매출액 436억불, 영업이익 159억불, 영업이익률은 36.5%였다. 용도는 다르지만 같은 마이크로 컴퓨터를 제조하는 데 있어, 이익률이 이처럼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과잉기술로 과잉품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여러나라와 비교했을 때 도시바나 엘피다의 영업이익률이 낮은 것은 과잉기술로 과잉품질을 만드는 병이 여전히 낫지 않았기 때문. 둘째, 르네사스는 부장이 비정상으로 많아 오버헤드가 무겁다. 이 또한 수익성이 나쁜 원인 중 하나. 더욱이 가격 지배권과 불량률에 관한 문제가 르네사스의 수익성을 더 한층 악화시키고 있음.
- 차량용 마이크로컴퓨터 ECU는 전혀 채산성이 맞지 않음. 라인도, 장치도, 프로세스도 모두 바꾸지 말아라. 불량은 1개도 내지 말아라. 그러나 가격은 더 내리라고 요구. 피라미드의 상위 업체와 하위업체가 대등한 입장에서 비즈니스를 실시하고 있지 않음. 그렇다면 왜 르네사스는 이렇게 채산도 맞지 않는 ECU를 제조하고 있을까. 한 기술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반도체업체도 ECU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르네사스 나카 공장은 라인 가동률을 올리기 위해 이익이 나지 않는 ECU라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이쪽으로부터도 저쪽으로부터도 ECU의 제조를 맡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자동차 산업 및 반도체 산업이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불합리한 비즈니스 관습을 시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성실하게 ECU를 제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 84~00년까지 당시 빅5라 불린 도시바, 히타치, NEC, 후지쓰, 미쓰비시 전기의 영업이익률은 거의 같은 움직임을 나타냄. 호황기에는 10~20%, 불황기에는 0~10%로 영업이익률은 실리콘 사이클에 영향을 받아 오르내리고 있었다. 빅5는 00년 전후에 DRAM으로부터 철수. 99년 12월 NEC와 히타치의 합작에 의해 엘피다, 02년 11월 분사에 의해 NEC일렉트로닉스, 03년 4월 히타치와 미쓰비시의 합작에 의해 빨간 르네사스가 설립. 10년 4월 NEC일렉트로닉스와 빨간 르네사스가 경영을 통합해 푸른 르네사스가 설립. 빨간 르네사스든 파란 르네사스든 영업이익률은 저조했다. 엘피다의 영업이익률도 심각한 수준이다. 00년 이전과 비교하면 호황기의 이익률은 낮고, 불황기의 손실률은 크다. 즉 영업이익률은 합작하기 이전보다 악화되고 있다. 엘피다와 같이 언제 도산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 도시바는 반도체 부문을 분사화하지 않고 타회사와 통합하지도 않았음. 후지쯔는 08년 분사화했고, 후지쯔 반도체(구 후지쯔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되었다. 히타치, 미쓰비시, NEC 3사 연합, 도시바, 후지쯔의 반도체 매출액 추이를 보면 00년 통합과 분사화를 반복해온 3사연합은 매출액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따. 한편, 분사화도, 타회사와의 통합도 하지 않았던 도시바는 00년 이후에도 매출액이 증대하고 있다. 분사화만을 실시한 후지쯔는 00년 이후 매출액은 거의 변화 없음. 결국 일본 반도체 업계에서는 분사화나 통합을 실시하지 않고, 반도체 사업을 기간사업으로서 평가한 도시바만이 성장하고 있다. DRAM에서는 철수했지만 NAND라는 메모리를 사업화한 것은 성공하고 있다. 메모리를 모두 그만두고, 통합이나 분사화를 실시한 기업은 모두 성장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르네사스와 같이 쇠퇴하고 있다. 결국 합작이 실패였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조직을 자르거나 붙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 SMIC를 방문하고 가장 큰 위화감을 가진 것은 매니저는 대만인, 기술자의 대부분은 일본인이나 미국인이며, 중국인 기술자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 일본인 기술자에게 중국인 기술자가 왜 적은지 물었더니, "첫째, 중국인은 가족과 소수의 친구밖에 신뢰하지 않는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없으며, 그룹에 대한 협조성도 없다. 반도체 개발이나 제조에는 수십~수백명의 팀웍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국인은 개인주의적이고, 팀안에서 서로 협력하여 일을 할 수 없다. 둘째, 중국인에게는 무언가 판단이 필요한 일을 맡길 수 없다. 왜냐하면 중국인은 판단할 때 가장 안이한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게으름을 피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조라인이 있는 제조장치에 대한 프로세스를 개발한다고 가정해보자. 일본인 기술자가 10매 정도의 웨이퍼를 사용해 조건을 잡는다면, 중국인은 1매나 2매로 끝내 버린다. 그 프로세스를 사용해 양산 로트를 생산하면 순식간에 불량이 난 로트들이 쌓이게 된다. 명확히 말하면 중국인은 착실하지 못하다. 따라서 중국인에게는 이 제품 로트가 제조장치에 준비되면 이 프로세스를 실행하라와 같은 판단의 여지가 없는 단순한 일밖에 맡길 수 없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기있게, 기술개발의 방식을 가르쳤다고 가정해 보자. 조금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중국인은 급료가 좋을 것 같은 회사를 찾아내 금방 그만둔다. 의리, 인정 따위는 없다." 이상으로 중국인의 기술자가 성장하지 않고 한곳에 정착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부각되었다.
- 워렛버핏의 말을 빌리면 "만나러 온 사람의 체중이 150~180킬로그램이라면 한번 본 것 만으로도 그 사람이 살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덧붙여 이 말의 의미는 투자하는지 아닌지를 결단할 때 노라면 상대가 설명 도중에도 이야기를 끊은 후 말하고, 예스라는 판단도 5분이면 충분하고, 쓸데 없는 분석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 일본 반도체 산업의 행동의 특징은 기업의 동질적 행동과 매번 같은 경영전략이다. 기업의 동질적 행동은 70년대 후반에 일본 전기업체 10사 이상이 일제히 DRAM에 참가. 이 동질적 행동은 한때 성공하여 80년대 일본 기간산업으로 성장. 그러나 한국업체 등의 싸게 대량생산하는 파괴적 기술에 구축되면서 일제히 철수. 그리고 대부분의 대기업이 일제히 SOC로 방향을 돌림. 하지만 SOC 비즈니스가 순탄치 않자 모든 업체가 일제히 사업을 축소, Fab light화, Fabless화로 다시 방향을 돌림. 다음으로 매번 같은 전략의 폐해인데, 거슬러 올라가면 79년에 '초LSI기술연구조합'을 시작하여 이것이 80년대의 일본 반도체 산업의 황금시대에 공헌. 이 성공체험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국가 프로젝트나 컨소시엄은 그후 잇달아 등장함
- 대기업이 일제히 참가하거나 철수하는 동질적 행동이나 국가 프로젝트, 합작회사를 만드는 매번 같은 경영전략은 전자산업에서도 마찬가지. 일제히 디지털 카메라나 박형 텔레비전에 참가함으로써 공급과잉을 일으키고, 이것이 결국 가격의 급격한 하락을 초래하여 파나소닉, 소니, 샤프 등이 일제히 사업을 축소하기 시작. 그리고 반도체 산업과 같이 합작회사를 만들게 되었다. 히타치, 도시바, 소니는 12년에 관민 펀드인 산업혁신기구로부터 2000억엔의 투자를 받아 중소형 액정 패널의 합작회사인 재팬 디스플레이를 설립. 이와 같이 반도체도, 전자산업도 기업의 동질적 행동과 매번 같은 경영전략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실적이 향상되었다면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겠지만 일본의 전자, 반도체 산업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 지금 확실히, 반도체 세계에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 13년 이후 TSV를 이용한 3차원 LSI가 등장해 이것이 무어의 법칙을 견인하게 되기 때문. 이 패러다임 시프트에 수반하는 새로운 문제도 밝혀졌다. 지금까지는 퀄컴, TU, 엔비다 등의 팹리스가 프로세서를 설계하고, TSMC, Global Foundry, UMC등의 파운드리가 전공정을 실시한 후 ASE, 암코, STATChip PAC, SPIL등의 어셈블리 업체가 후속공정(패키징, 실장, 조립)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향후 팹리스는 처음부터(프로세서+DRAM) 3차원 LSI를 설계하지 않으면 안됨. 지금까지의 설계 툴로 가능한 것일까? 또한 전공정과 후공정 사이에 갑자기 중간공정(미들엔드)도 출현. 미들엔드에서는 1200개의 TSV가 형성된 프로세서와 DRAM을 3차원으로 적층해 TSV를 구리로 채우고, 3차원화된 LSI의 동작을 검증하지 않으면 안됨. 이것은 도대체 누가 실시하였을까? 누가 3차원 LSI의 품질을 보증하였을까? 더욱이 후속공정에서는 3차원 LSI에 최적인 기관이나 패키지를 설계해 제조하거나 조립하지 않으면 안됨. 이것은 종래의 기판 설계 툴로 가능한 것일까? 즉, 3차원 LSI용 설계툴, 미들엔드, 그리고 3차원 LSI용 기판설계 툴이 필요하게 된 것. 이 3차원화를 제압한 기관이 차세대 승자가 될 것
- 파운드리 세계 셰어 1위인 TSMC 창시자 모리스 창은 일본 반도체 업체의 장래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수직 통합형 반도체 업체와 비교했을 때 대만의 파운드리가 우위에 서 있는 이유는 규모가 작은 일본 수직통합형 기업에 비해 TSMC의 팹은 월생산 10만매 이상의 규모가 있어 생산효율이 높다. 또한 미세화에 수반되는 투자액이 상승해 많은 IDM들이 미세화 투자를 포기하고 있는 것에도 원인이 있다고 했다. 또한 구미의 IDM이 팹리스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반하여 일본의 IDM은 팹리스에서 멀어지고 있다. 향후 팹리스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20년후에 남아 있는 IDM은 인텔과 삼성전자뿐일 것이다라고 예측하고 있다. 2010년 NEC일렉트로닉스와 경영통합한 르네사스는 첨단제품을 TSMC에 위탁생산한다고 발표. 또한 후지쯔 반도체도 파나소닉도 TSMC에 위탁생산을 실시하고 있다. 끝까지 IDM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 도시바였지만 도시바도 마침내 파운드리에 위탁생산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일본의 SOC는 모두 팹리스화하기 시작. 모리스 창은 20년 후에 남아 있는 IDM은 인텔과 삼성뿐이라고 예측했지만 메모리를 제외하면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예측은 적중해 버렸다.
- NAND는 87년 도시바의 마스오카 후지오가 발명. 도시바 관계자의 말로는 NAND의 목표는 최초부터 컴퓨터 하드드라이브의 대체, 즉 SSD의 실현이었다. 당시 DRAM에 주력하고 있던 도시바는 NAND에 소극적이었다. 또한 당시 NAND의 쓰고 지울 수 있는 횟수를 고려하면 SSD에 쓰인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상태. 따라서 언제 개발이 중지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음. 그러나 00년 전후부터 상황이 변화. 삼성 등 한국 기업들이 대두하여 일본이 DRAM으로부터 철수. 도시바도 02년 철수해 DRAM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됨. 그리고 그와 같은 시기에 NAND는 디지털 사진기, USB메모리, 오디오용 스토리지 등의 길이 열림. 특히 애플 아이팟에 탑재된 것이 대히트의 포인트였음. 1,000~100,000번 정도 쓰고 지울 수 있는 횟수로는 갑자기 PC용 SSD에 사용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으나 오디오 용도라면 이정도의 쓰고 지울 수 있는 횟수로도 상품화가 가능. 즉, NAND는 쓰고 지울 수 있는 횟수나 신뢰성면에서는 HDD보다 뒤떨어지지만 소형화나 경량화가 가능하고, 이 특징을 살린 아이팟이라는 신시장을 창출했던 것. 이것은 확실이 크리스텐슨 교수가 말하는 파괴적 이노베이션이다. 그후 NAND는 초저가격 넷북에 SSD로서 탑재됨. 이것으로 PC용으로서의 발판이 생김. 그리고 스마트폰 등의 태블릿 단말이나 모바일 PC용 SSD로 확대했던 것. 이 과정에서 기술혁신이 진행되어 쓰고 지울 수 있는 횟수나 신뢰성도 향상되어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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