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는 인간의 사악한 면이 모두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는 일을 가장 나쁜 방식으로 이행할 것이라는 데 대한 놀라운 믿음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 정부가 개인의 재산을 보호해줘야 한다면 그 비용을 충당할 재원이 필요함로, 시민들을 통해 강제적으로 그 재원을 마련해야 함. 이것이 조세제도다. 그런데 과세란 시민들이 가진 재산의 일부를 강제로 징수하는 정부이 권리다. 결국 재산권을 정의하고 보호하는 수단은 기본적으로 재산권을 일부 제한한다. 그러므로 절대적 재산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동안 출현한 모든 인간사회에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 케인스가 자본축적속도가 노동력 증가속도보다 빠를수록 자본수익률은 떨어지고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은 자본가의 희생을 통해 증가할 거라고 추측했다. 그는 이것을 이자소득자의 안락사라 불렀다. 누가 옳았을까?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에게 최저 생계비와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지불할 것이고 경제가 발전한다고 해서 임금이 자연스레 상승하지는 않는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철저히 논박당했다. 물론 노동자의 형편이 전반적으로 나아진 것은 정치와 사회가 발전한 덕분인데, 결과적으로 그것은 마르크스의 공이라고 많은 이들이 주장한다. 많은 자본주의 사회들이 마르크스가 제기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노조를 허용하고 사회안전망을 마련했으며, 정부의 역할을 크게 확대하면서 시스템을 수정했음. 하지만 이런 제도가 잘 갖춰져 있지 않고 산업예비군이 존재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이는 사회에서도 노동시장이 여전히 임금협상을 주도하는 것 같다는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어 중국의 도시들에는 강력하고 독립적인 노조가 없는데도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창출한 가치에 대해 더 많은 몫을 요구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제공한 서비스의 경쟁력을 고려할 때 더 많은 몫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최근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 노동은 최초의 가격이자 본원적 구매화폐(모든 물건의 값을 치를 수 있는 돈)였다. 본래 국부를 취득하는 수단은 금이나 은이 아닌 노동이었다. (애덤 스미스)
- 과거가 반드시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만은 경제학자들이 (마르크스 사상보다는 신고전주의 이념속에서 성장한 나 같은 사람들조차도) 향후 수십 년간 선진국 노동자들의 형편이 좋아질 거라고 확신하지 못함. 세계화가 확대되고 노조의 영향력이 감소하면, 선진국 노동자들은 다른 나라 저임금 노동자들(마르크스가 말한 산업예비군)과 경쟁해야 한다. 미래를 생각하면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과학기술의 진보와 자동화는 오늘날 기술 수준이 낮거나 보통인 노동자들에 대한 필요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함. 달리 말해, 자본의 한계생산력(주로 다양한 형태의 소프트웨어를 의미함)은 증가하지만, 노동력의 한계생산력은 감소할 것임. 따라서 미래의 성장수익은 자본가에게 더 많이, 노동자에게는 더 적게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최후 승자는 마르크스다
- 2차대전 이후, 산업화된 경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노동자의 몫'이 대체로 3분의 2정도를 유지했다는 점. 즉 전체 경제에서 창출된 가치의 약 3분의 2가 노동자에게, 3분의 1은 자본가에게 돌아갔음. 따라서 어쨌든 케인스가 말한 이자소득자의 안락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노동자들도 전후 성장으로 획득한 이익에서 자신들의 몫을 가져갔다. 이것이 과거 수십년간 많은 나라에서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았음을 의미하지는 않더라도 (노동자들의 몫이 일정하면 일부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들보다 훨씬 잘 일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가설과 일치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최근 많은 나라에서 노동자의 몫이 줄어들고 있다. 이것이 그저 일시적 현상인지 아니면 장기화될 현상인지가 관건이다.
- 귀금속을 화폐로 사용하는 방식은 안정적이지 못했다. 조달가능한 귀금속의 양에 갑작스럽게 변동이 생기면 호황을 누리다가도 곧바로 부로항에 빠졌다. 예를 들어 스페인 제국이 유럽에서 치르던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남미에서 엄청난 양의 은을 배로 실어온 탓에 스페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지출과다로 적자가 계속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19세기에 캘리포니아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금이 발견되자 이거싱 전세계적인 붐으로 이어져 처음에는 인플레이션이, 나중에는 경기후퇴와 디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더구나 민간은행들이 보유한 금의 양이 항상 일정하지가 않았다. 경기가 호황일 때 보유한 금의 양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주었으므로, 경기가 위축되면 불가피하게 부실채권이 발생했고, 사람들이 맡겼던 금을 회수하려 들어 일부 은행들이 파산했다. 금본위 제도는 호황을 과대포장하고 불황도 악화시켰다. 그 최악의 사건이 30년대에 일어난 대공황이며, 당시 금본위제도가 대공황의 핵심원이이었다. 이는 중앙은행이 화폐 공급을 늘리거나 은행 시스템을 구제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비교적 일찍 금본위제도에서 벗어난 영국 같은 나라들은 금본위 제도를 고수하던 미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보다 훨씬 빠르게 경제가 회복되었다.
-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처럼 비교우위는 그것을 이해한 사람들에게는 단순하고 강력해보디는 개념이다. 하지만 경제학이라는 좁은 학문의 영역을 벗어나 국제무역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여해본 사람이라면, 비교우위가 어떠 면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개념임을 곧 깨닫게 된다. (폴 크루그먼)
- 그것은 정부가 끊임없이 성장을 향해 경제를 재설계 했던 미국의 경제사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그렇다. 미국에는 보이지 않는 손과 수많은 경영혁신 그리고 에너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손을 반복해서 들어올린 것은 새로운 경제활동 영역을 개척해 손이 새로운 자리에서 계속 마법을 부리도록 한 정부다. (브래드 들롱)
- 오늘날 연구자들은 기업의 창조와 파괴가 실제로 선진국의 주된 성장동인이라는 사실을 발견. 생산성 향상은 기존 회사들이 효율적으로 바뀔 때보다 신규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고 낡은 기업이 퇴출당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 일자리 역시 소수의 신규기업들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이 늘어난다. 거기다 이 과정이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다.
- 좀더 논쟁적인 이야기지만, 마르크스와 슘페터는 개별기업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창조적 파괴가 자본주의 경제성장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가끔은 그런 파괴현상이 좀 더 광범위하게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생산성을 향상하거나 신상품을 개발하지 않고도 기업들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쉽다. 반면 경제위기는 부진하고 비생산적인 기업들을 정리해서 자본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자원들을 풀어준다. 바꿔 말하면, 경기후퇴 또는 그보다 더 심한 상황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과 케인스가 주장했듯이 자본주의의 오류가 아니라 하나의 특징이다.
- 많은 미국인이 남는 방을 빌려주거나 웹 사이트를 디자인하거나 심지어 자기 차를 이용해 부업을 하고 있다. 이런 온디맨드 경제 혹은 소위 기그 경제는 흥미진진한 기회를 만들고 혁신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근로 현장을 어떻게 보호할지, 미래에 좋은 직업이란 어떤 모습일지 등 어려운 문제들도 제기한다. (힐러리 클린턴)
- 나는 금융기관이 상비군보다 훨씬 위험하며, 후손이 갚을 돈으로 지출하는 원리는 자금조달이라는 핑계로 후손에게 벌이는 대규모 사기극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토머스 제퍼슨)
- 나는 주식시장이 어디로 가고 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만약 주가가 계속 올라가면,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 또는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보다 경제를 더 많이 자극할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
- 오늘날 현명한 투자자가 되려면 효율적 시장가설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실질적 증거가 있다. 기술분석(과거의 패넡과 가격동향을 살펴서 미래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방법)은 거의 쓸모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일관되게 시장보다 앞서 나가려는 공격적 투자자들도 거의 사라져가는 것 같다 경제학자 버튼 킬이 정리한, "눈을 가린 원숭이가 신문경제면에 다트를 던지든 전문가가 신중하게 고르든, 선택되는 포트폴리오는 같다"는 이론은 대체로 정확해 보인다. 이런 점에서 효율적 시장가설은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 이 가설은 시장을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시장의 흐름을 좇는 저비용 인덱스펀드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는 현상의 확실한 이유가 된다
- 그 가설은 시장가격이 항상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반대로 시장가격은 주로 틀리지만 어느 시점에 그것이 너무 높은지 혹은 너무 낮은지가 알기 무척 어렵다는 점을 넌지지 알려준다. 월가에서 가장 유능하고 영리한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시장을 이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제러미 시걸)
- 인덱스 펀드의 확산은 효율적 시장가설에 내재하는 역설을 보여줌. 만약 모든 투자자들이 이 가설을 믿는다면 시장은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텐데, 그 이유는 아무도 새로운 정보를 찾으려고 애쓰거나 그 정보에 기초해 거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 만약 우리가 모두 인덱스 펀드에만 투자한다면, 인덱스라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효율적 시장가설은 모순되지만 시장보다 앞서가려는 투자자가 적어도 몇 사람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주식시장에 나타나는 수많은 이례적 현상으로 이것을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요일이나 월과 관련된 캘린더 효과에는 "5월에 팔고 떠나라"는 오랜 격언과 1월효과가 있다. 그런가 하면, 소위 작은 회사효과는 회사규모가 작을수록 시장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내는 것보다 보인다는 것인데, 그래서 오히려 위험을 초래한다. 이런 현상들이 정말 사실인지 모르지만, 보통은 이런 효과가 확인되면 일부 투자자들이 이용하려고 하므로, 그 효과가 거의 사라져버린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이것은 효율적 시장가설에 모순된다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효율적 시장가설에 대한 훨씬 큰 도전은 로버트 실러의 주장으로, 그는 인간의 심리를 고려할 때 시장은 트릴ㄹ 수 있을 뿐 아니라 일관되고 예측가능하게 틀린다고 보았다. 그는 이것이 거품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즉 효율적 시장가설과 반대로, 시장가격은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모두 반영된 가격에서 체계적으로 벗어난다는 것이다. 실러는 05년 미국 주택시장에 거품이 끼어 있어서 앞으로 붕괴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해서 유명해졌다. 또한 그는 주가수익률은 장기적으로 평균에 수렴한다고 주장했다. 바꿔 말하면, 투자자는 주가가 낮을 때 주식을 사서 높은 가격에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다. 노벨상 수상자의 사례에서 분명히 밝혀졌듯이, 이런 상반된 견해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 문제를 매우 묘한 방식으로 처리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적 수준에서 시장을 이기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장하면서, 그와 동시에 시장은 비합리적이므로 거품이 생겼다 꺼질 때 경제가 막대한 손실을 본다고 생각한다.
- 남해포말사건. "막대한 이익을 약속했지만, 아무도 그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알지 못했다." 이는1720년 대영제국에서 주식시장을 한 공동자본회사가 불명예스럽게도 역사상 최악의 투기회사로 기록된 사건을 솔직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남해쇠사는 1711년에 설립되었고 영국 식민지와 남미 사이의 급증하는 무역을 독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미가 스페인 제국에 편입되어, 남해쇠사가 실제로 돈을 벌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남해회사는 영국 정부의 채권거래를 두고 잉글랜드은행과 경쟁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 뇌물공여와 사기, 실질적인 다단계 판매등이 횡행했다. 남해쇠사의 주가가 폭등하자 주식을 사는 사람들이 급증했고, 이 회사와 비슷한 수상쩍은 회사들이 난립. 1720년에 당연히 남해회사는 파산했고, 그 고정에서 재무장관이 투옥되는 등 여러 사람이 몰락. 오늘날 우리는 이렇듯 18세기 초에 금품에 매수된 정치인들과 쉽게 속아넘어간 투자자들을 비웃을지 모르지만, 06년부터 08년까지 미국의 비유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조사해본 사람이라면 인간의 본성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임
- 매년 20파운드를 벌어 19파은드 19실링 6펜스를 쓰면 결과는 행복이다. 하지만 매년 20파운드를 벌어 20파운드 6펜스를 쓰면 결과는 불행이다. (찰스 디킨스, 데이비드 파커필드 중)
- 만약 당신이 은행애 100파운드의 빚이 있다면,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 하지만 당신의 은행 빚이 100만 파운드라면, 은행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케인즈)
- 부채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특별히 미래를 위협하는 이유는 어쩌면 저금리 때문일 수도 있다. 낮은 금리는 가계와 기업이 빚을 더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신호다. 그것은 이미 부채가 너무 많다고 생각해서 부채를 줄이길 원하기 때문일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과잉채무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투자자와 그로 인한 성장은 계속 낮게 유지될 것이다. 아니면 이것은 가계와 기업이 빚을 지면서까지 투자할만한 매력적인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두가지 이유가 결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둘 모두 미래의 성장전망이 어둡ㄷ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글로벌 경제가 금융위기 및 뒤이은 경기후퇴의 여파에서 열심히 회복해야 하는 시기에는 부정적 소식이 된다. 그러면 정부와 중앙은행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들은 기준금리를 매우 낮게 유지하고, 대출을 늘리기 위해 양적완화와 같은 특별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대책은 효과가 없었고, 이런 불안요소를 계속 쌓아둔다면 아마도 역효과가 날 것이다. 정부는 저금리를 활용해 공공투자를 늘리고 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 여전히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 방법이 확실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국민과 정치권이 공공부채 증가를 두려워한 탓에 지금까지 이 방법은 거의 활용되지 못했다. 과잉부채를 줄이기 위해 희년제와 같은 좀 더 과격한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과거의 너무 많은 빚에 눌려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1848년 유럽전역에서 일련의 혁명들이 실패하고 뒤이어 잔인한 진압이 이루어진 후에 사회주의 사회건설은 완전히 불가능해보였으므로, 노동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추구하던 사람들은 정치권으로 이동했음. 1864년에 마르크스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국제노동자협회 혹은 제1인터내셔널이라 불리는 단체를 결성했다. 이 단체의 목적은 평화적이든 폭력적이든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국가로부터 통제권을 가져와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 사회주의자는 우리가 비참하고 헛된 수고를 끊임없이 하며 살다 죽는다는 사실에서 받은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일 뿐이다. (테리 이글턴, 랭커스터대 영문학 교수)
- 지금은 믿기 어렵지만, 2차대전이 끝난 직후에는 계획경제가 신뢰할 만하고, 심지어 자본주의보다 더 훌륭한 대안처럼 보였다. 이는 러시아 정치와 스탈린의 리더십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공유된 견해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악의 진정한 원인은 무정부상태에 빠진 자본주의 경제이다. 이 지독한 악을 제거하려면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교육제도를 동반한, 이른바 사회주의 경제를 확립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사회전체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계획한 대로 이용한다.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생산을 조정하는 계획경제는 일할 능력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나누어주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생황르 보장할 것이다. 교육은 개인의 타고난 재능을 살려줄 뿐 아니라 사회에서 권력과 성공을 추구하고 싶음 마음 대신 동료에 대한 책임감을 길러주고자 노력할 것이다." (아인슈타인)
- 우리가 마르크시즘을 인정하지 않아도 우리의 판단과 도덕의 범주들, 미래의 계획과 현재에 대한 생각, 정의와 평과, 전쟁 등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의견에는 마르크시즘이 잔뜩 스며 있다. (옥타비오 파스)
- 왜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을까?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1707년에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통합하면서 영국은 오랜기간 평화와 안정을 누렸고 내부의 무역장벽이 사라져 비교적 규모가 큰 국내시장이 형성되었다. 상당히 안정적이고 신뢰할만하며 변화하는 경제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법률제도를 갖추고 있었던 점 등도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다른 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환경이 조성되었지만 영국처럼 극적인 결과를 낳지는 못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식민지가 영국의 산업혁명에 기여했다는 설명도 있다. 식민지가 수입원(특히 카리브해 연안에서 노예를 활용해 지은 플랜테이션 농업), 원자재 공급처, 제조품을 사주는 전속시장(특히 영국이 의도적으로 섬유생산을 억제했던 인도)역할을 해서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는 특별히 자본주의적일까? 20세기 전반부에 활동한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사회의 문화규범은 이념적으로 중립적이지 않고,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지배계급에 의해 강요된다고 주장. 정치적, 경제적 지배 혹은 헤게모니가 문화적 지배로 강화된다는 것이다. 확실히 현대 자본주의에는 영어를 사용하고 주로 미국에서 생산되는 매우 특별한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이는 영화 스타워즈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팀 같은 몇몇 문화현상이 전에 없던 방식으로 세계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런 공통문화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므로 유익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통문화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특색이 있는 오래된 문화를 희생시키고 표준화하며, 지나치게 단순화한 미국문화를 시장을 통해 강요한다는 비판이 더 많음.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영국에서 피시앤칩스를 파는 가게와 술집을 밀어내는 것임. 미국의 대중영화가 영국에서 인기를 얻는다는 사실은 프랑스 영화가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 그리고 그람시가 주장했듯이, 미국의 지배적 문화는 확실히 강력한 친자본주의적 메시지를 품고 있다. 고의적이든 아니든, 그런 현상은 앤디워홀의 팝아트부터 비욘세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자기계발 사어벵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구현된다. 실제로 성공한 대중음악가들은 현대 자본주의의 거의 완벽한 예이다.
- 자본주의 문화는 좀더 광범위한 경제 시스츰의 일부로, 그것이 계속 유지되도록 도움을 줌. 하지만 대안이 없을까? 경제가 성장하면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문화를 누릴 수 있다는 케인스의 이상은 순진해 보임. 그러나 자주적인 노동계층의 문화가 만들어지면 시간이 흐른 뒤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으리라는 그람시의 희망 역시 순진하기는 마찬가지임. 경제가 성장할수록 삶에서 문화가 점점 중요해지겠지만, 자본주의가 경제의 주류인 환경에서는 문화 역시 이윤추구의 원리에 따라 시장에 의해 형성될 것임.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문화도 창조적 파괴를 거쳐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게 느껴질 것임.
- 자본주의 무노하는 상품의 생산과 판매를 촉진하는 데 헌신한다. 문화는 자본가를 위해 이윤축적을, 노동자를 위해 임금상승을, 소비자를 위해 상품축적을 장려함.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습득한 원칙들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명확하게 밝신다. (리처드 로빈스)
- 세상은 이렇게 말한다. 욕망이 있으면 그것을 채워라. 너에게도 부자나 권력자와 똑같은 권리가 있다. 너의 욕망을 채우기를 주저하지 마라. 오히려 욕망을 키워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해라. 이것이 오늘날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이 자유라고 믿는다. 부자의 결말은 고독과 자살이며, 빈민의 결말은 시기와 살인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가장 위대한 나라는 ... 자본가와 독점기업, 엄청난 이권과 막대한 재산을 가지 나라가 아니라...(재산이 귀천을 가르는 기준이 되지 않는) 자작농가와 자유보장권이 있는 나라이다. (월트 휘트먼)
- 자본수익률이 생산증가율과 소득증가율을 초과할 때 ... 자본주의는 민주사회가 기반으로 삼는 능력중심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독단적이고 근거없는 불평등을 저절로 발생시킨다. (토마 피케티)
- 빈곤은 생산량의 문제가 아니라 소득과 부를 분배하는 방식의 문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해당 국가의 경제구조와 정치제도에 좌우됨. 2차대전 이후 복지국가가 건설되고 각국에 사회보장제도와 연금제도가 만들어짐에 따라,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빈곤은 상당히 감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노동시장에서 적어도 남성들의 경우 거의 완전고용이 이루어지고 강력한 노조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임금수준이 중간이하인 사람의 수가 증가했다는 의미였다.
- 가난은 두려움과 스트레스, 그리고 때로는 절망을 동반한다. 가난은 수많은 굴욕과 고통을 의미한다. 혼자 힘으로 노력해서 가난에서 벗어난다면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일이지만, 가난을 낭만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할 행동이다. (J.K 롤링)
- 자본주의는 개도국의 수많은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사실상 가장 훌륭하고 어떠면 유일한 제도임. 하지만 밀물 때라고 모든 배가 떠오르는 것은 아님. 자본주의만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만큼 의 경제력을 마련해주지 못함. 그러려면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몇 가지 제도가 추가로 필요함. 개발도상국의 경우 나라가 부유해질수록 소외되는 사람들을 보호해 줄 의료서비스와 복지제도가 필요함. 또한 부유한 엘리트들이 성장의 열매를 독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적절한 정치, 경제적 규제가 모든 나라에 필요하다. 인류는 지난 수십 년간 눈부신 발전을 해왔으므로, 빈곤을 없애는데 과학기술적 문제는 전혀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이 저절로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 이민자들이 자국 노동자들의 임금을 크게 떨어뜨린다거나 일자리를 줄인다는 최근의 이민증가 영국 노동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90년대 이스라엘과 최근 터키처럼 난민이 대거 유입한다 해도 그 영향은 별로 크지 않은 것 같다
- 이민자들이 나라를 더욱 역동적이고 생산적으로 만든다는 주장이 오히려 더 타당해 보임. 이민은 특히 첨단기술 산업에서 혁신과 국제거래, 지식교류가 늘어나는 현상과 관련이 깊다. 또한 이미자는 자기사업을 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좀 더 사업가적 기질을 보일 것임. 이것은 아무래도 진취적인 사람들이 기회를 찾아 이민을 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거나 이민자들이 대기업이나 전통적인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임. 애플이나 구글처럼 최근 가장 성공한 대기업중 일부는 이민자 출신이 설립한 회사다.
- 경제학자 엘빈 한센은 전 세계가 장기적으로 경기침체를 겪는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게 될 거라고 예측한 적이 있다. "구조적 장기침체의 핵심논리는 이렇다. 약한 회복세는 초기에 사라지고, 불황이 저절로 심화되면서 겉으로 보기에도 고질적인 실업문제를 남긴다." 한센은 일부 국가의 재무장 덕분에 미국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완전고용 상태를 회복하던 즈음인 38년에 위의 글을 썼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케인스식 해법을 통해 꾸준하고 안정된 성장이 가능해진 덕에 구조적 장기침체라는 개념은 거의 잊혔다. 그리고 케인스의 거시경제적 관리방식이 구식이 된 후에도,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제를 확실하게 안정시킨다면 성장과 고용은 거의 저절로 해결될 거라는 견해가 계속 남아 있었다.
- 과거에는 전쟁이 끝나면 생산량과 생산성은 빠르게 회복됐지만, 최근 선진 7개국가의 연평균 생산증가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함. 영국과 이탈리아는 거의 성장을 멈췄다. 래리 서머스는 13년 구조적 장기침체라는 개념을 환기하며 "정상적 경제상황과 정책환경이 언젠가는 회복되리라는 추측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끈질기게 정상을 회복하지 못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본질적으로 여기에는 서로 별개인 두 가지 이슈가 있다. 첫째, 우리가 성장이 점점 낮아지는 시기로 자연스레 진입하고 있다는 가설. 한센은 이것이 인구통계학적 변화와 더딘 인구증가 때문이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맞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당히 타당해 보이는 견해다. 독일과 일본에서는 지난 10년간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미국과 영국같은 나라는 이민자가 늘어남에도 인구가 더디게 증가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 속도가 자연스레 느려진다는 주장도 있다. 전후 몇 십년간 생산성이 급속히 향상된 것은 여러 환경(급속한 기술발전, 평균교육수준의 가파른 상승, 유리한 인구통계학적 환경)이 특이하게 조합된 결과라는 것. 하지만 이런 주장이 계속 유지되기는 어려워보임. 기술은 결코 천천히 발전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 그리고 좀 더 광범위한 관점에서 이 주장이 맞는다면, 생산성은 서서히 완만하게 줄어들어야 한다. 이 주장은 08년과 09년의 갑작스런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
- 기계가 창출한 부를 공유하면 모든 사람이 호사스러운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지만, 기계 주인이 부를 재분배하지 못하도록 로비에 성공한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끔찍하게 가난해질 것이다. 과학기술이 불평등을 심화하는 것으로 보아, 지금까지는 사회가 후자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스티븐 호킹)
- 자동화로 인해 자본력과 노동력 사이의 균형추가 자본에 유리한 쪽으로 영원히 옮겨갈 위험이 있다. 지금 우리는 자본소유주가 생산수단을 통제하고 그 보상을 가져가는 사회로 가고 있음. 노동자들은 계속 일할 테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아니 어쩌면 대부분이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고 덜 중요한 일을 하게 될 것임. 이런 일자리는 경제가 작동하는 데 핵심이 되지 못하므로 보수가 좋지 않다. 이런 불균형을 줄이려면 소득과 부의 분배를 더욱 확대하거나 사회가 복지와 자선사업에 지출을 늘려야 할 것이다. 상당히 암울한 전망이지만 노동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이런 광범위한 경제적 힘이 역사의 진행방향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함. 러다이트 운동은 실패했지만, 그 계승자들은 대체로 성공했다. 그러므로 진짜 시험은 우리의 정치 및 사회제도가 그 도전에 응할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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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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