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십 년 동안 전력을 집약적으로 사용하는 산업들이 해외로 이전했음. 대량의 에너지가 생산되거나 정부에서 전기료에 대해 보조금을 대폭지원하는 지역으로 말이다. 정유산업은 베네수엘라, 화학산업은 사우디, 판지산업은 캐나다. 고무제조업은 말레이시아, 플라스틱 제조업은 중국, 알루미늄 제련산업은 러시아, 메탄올 합성산업은 카타르로 이전했음. 셰일 천연가스 덕에 미국에서는 전기료가 저렴해졌고 그 기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음. 정부 보조금 없이 말이다. 따라서 해외로 이전했던 이 산업들이 대부분 미국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마찬가지로 전력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산업들, 특히 식품가공업, 식수처리와 유통과 같이 인간이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산업들도 가장 중요한 투입재로 손꼽히는 에너지비용이 저렴한 수준에서 요지부동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 1000세제곱 피트 당 4달러가 마법의 숫자다. 이 지점에서 화학제품 제조업체와 정유업체들이 나프타 분해시설을 천연가스 분해시설로 전환하기 시작한다. 셰일 덕에 2011년 말부터 천연가스 가격이 4달러를 넘지 못한 기간이 거의 중단없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천연가스와 이와 연관된 액체물질들이 미국의 화학산업에 대거 침투해 소화기에서부터 냉각제, 세제, 비료, 유리, 여행용 가방, 타이어, 접착제, 섬유, 가구, 페인트,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을 만드는데 재료로 사용되고 있음. 그게 다가 아니다. 미국과 물리적으로 연결된 체계는 무엇이든 폐기물로 나오는 셰일 천연가스에 접근 가능. 텍사스 셰일 천연가스를 멕시코에 보내기 위해서 대대적인 송유관 확장사업이 진행중인데, 이를 통해 멕시코의 전력체계는 완전히 탈바꿈하게 됨
- 북미지역의 석유매장지가 지닌 뛰어난 특징은 해양 셰일 석유를 만들어내기에 거의 완벽한 구조와 지질학적 연대가 아니라 무려 네 개의 서로 다른 연대에 걸쳐 형성되었다는 점. 대부분의 경우 서로 다른 연대에 생긴, 석유를 함유한 암석이 층층이 쌓였다. 동일한 지표면 작업대에서 여러 셰일층을 채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시추작업대 덕분이다) 다각수평 시추 같은 신기술 덕분에 동일한 시추공에서 서로 다른 여러 층의 셰일을 채취하게 되었다. 어떤 사업적 기술을 동원했다고 해도 이처럼 절묘한 지리적 여건은 모방하기 불가능하다.
- 지구상에 민간인이 토지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 그 땅 밑에 있는 광물권까지 소유하는 곳이 딱 한군데 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에서 셰일 개발이 속도를 내온 주요 이유를 손꼽는다면, 셰일 산업 덕분에 지방정부가 벌어들이는 소득이 두배가 되었기 때문. 첫째로 지방세 형태로 직접적 소득이 늘어나고, 둘째로 광물권을 임대해준 지방 지주들이 벌어들인 소득에 과세해서 벌어들이는 간접적 소득이 있다. 이러한 소득은 지방정부를 다독이기에 충분하고 지주들이 셰일 산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독려함. 또한 지방정부가 셰일 산업이 야기하는 영향을 완화할(규제시행) 뿐만 아니라 셰일산업이 성장하도록 지원하는(도로건설)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줌. 사유재산권이 보장되지 않고 지방정부가 과세할 권한이 없다면, 지역 주민들은 셰일 산업에서 혜택은 누리지 못하고 부저적 영향만 온통 떠안게 됨. 이와 같이 지주와 지방정부가 금전적 이득을 보면서 셰일 매장지 개발이 속도를 내게 됨. 미국에서 민간 소유 토지에서의 셰일개발과 공유지에서의 셰일개발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자. 텍사스 주에서는 지주와 지방정부가 셰일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에, 시추허가를 신청한 지 이틀만에 허가증이 발급됨. (관공서 휴일을 뺀 이틀이 아니라 휴일까지 포함해서 이틀, 텍사스에서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에도 시추작업을 함) 지주도 없고 허가절차를 밀어붙이는 지방정부도 없는 연방정부 소유지의 경우, 15년 시추허가가 나오는 데 평균 220일(휴일을 뺀 220일)이 걸렸다. 따라서 공유지에서 생산되는 셰일 석유비율은 미국 전체 생산량의 1%도 채 미치지 못함
- 북미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최적의 셰일이 매장되어 있는 지역을 보유하고 있음. 그러나 오직 미국만이 지질, 법적 규제여건, 가용자본, 대대적 규모로 셰일을 채굴할 기술과 경험을 갖춘 인력 등 여러 요건이 환상적으로 조합된 환경을 갖추고 있음. 셰일 개발기술이 미국에서 유출되어 세계로 확산될까? 물론이다.그러나 미국에서 일어난 셰일 혁명은 그 어느 곳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음.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면, 셰일 혁명은 순전히 미국적 사건이다. 셰일혁명이 야기한 경제활황, 재산업화, 에너지 자급자족은순전히 미국적 사건전개라는 의미. 이제는 셰일이 미국 에너지 산업의 핵심이 될지(이미 되었다) 여부가 관건이 아니라 미국이 더 이상 세계 에너지 시장과 엮여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가 관건이다.
- 지정학에서 가장 중요한 철칙은 운송체계의 중요성. 물길로 물건을 이동시키기는 쉽다. (도로에 비해 비용이 12분이 1) 광역 미시시피 운송체계는 상호연결된 물길의 길이가 12000마일 이상. 나머지 세계의 물길을 다 합한 것보다 길다. 이게 사실이라면 미국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국내에서 운송하는데 드는 비용과 비교해볼 때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낮은 비용으로 화물과 곡물과 사람을 실어나를 수 있음.
- 운송비용이 저렴하면 다른 모든 것의 비용도 덩달아 준다. 식량에 쓸 돈이 절약되면 자녀교육에 쓸 돈이 더 생김. 건축자재에 쓸 돈이 절약되면 휴가때 여행갈 여유가 생긴다. 물길을 통한 운송비용이 줄어들면 다른 운송수단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용을 줄여야 함. 수로는 유통지대의 역할도 함. 특히 두 강이 만나는 지점, 운항로의 물목, 강이 바다로 빠져나가는 지점 등에서 유통 중심지가 생김. 볼티모어, 시카고, 캔자스시티, 미니애폴리스, 세인트폴, 멤피스 등과 같은 도시들은 물길을 통한 저렴한 운송수단 덕에 존재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덕에 부도 축적하게 됨. 이 도시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하나같이 금융중심지다. 이 도시들을 통과하는 화물 물동량을 처리하려면 재고관리, 재포장, 매매 등 화물 유통을 뒷받침해자는 산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24시간 쉬지 않고 상품과 자본을 처리하는 역량이 필요. 따라서 수로운송을 토대로 건설된 도시는 예외없이 매우 튼튼한 지역금융체제를 갖추고 있음.
- 2차대전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살육과 참화로 초토화된 세계를 보고 세가지 생각을 했다.
(1) 미국은 이 전쟁에서 크게 상처 입지 않은 상태였음. 단지 41년 12월 뒤늦게 전쟁에 끌려들어갔기 때문만은 아님. 중서부 대평원, 광역 미시시피 운하체계, 그리고 광물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애팔래치아와 로키산맥 덕에 미국은 필요한 것을 거의 모두 자국 내에서 구했다. 미국은 제국이 필요 없었음. 대륙이 자기 영토였기 때문. 본토에서 전투가 없었기에 직접적 피해를 입지도 않았음. 미국은 남의 영토에 폭탄을 투하했지만 미국의 영토 핵심부에는 폭탄 한발 떨어지지 않았다.
(2) 전쟁으로 초토화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로서 미국은 세계를 재건할 기회를 얻음. 따라서 미국은 동맹국들을 뉴햄프셔 주에 있는 스키 휴양지 브레튼우즈로 초청했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경제 체제를 강요. 미국이 탄생시킨 새로운 체제는 자유무역이었다. 미국 해군(전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해군력)이 모든 동맹국들을 위해 바닷길을 순찰하고 모든 상선을 보호해 주는 체제. 미국과 손을 잡는 나라는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는 어느 나라에나 어떤 물건이든 팔게 됨. 게다가 미국은 미국이 정한 규칙을 따르는 나라라면 어떤 나라에게든 기꺼이 미국시장을 개방. 종전 무렵 미국 경제는 세계 총 경제규모의 3분의 1을 차지. 그리고 미국 소비시장은 다른 모든 나라의 소비시장을 합한 것보다 규모가 컸음. 융단폭격을 받거나 광산이 탈탈 털리지 않은 유일한 나라였기 때문. 다른 나라들이 거절하기 어려운 달콤한 제안이었음.
(3) 미국은 이 모든 달콤한 제안에 단 하나지 조건을 내걸어야 겠다고 생각. 안보 정책은 미국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라는 조건. 미국이 이러한 전략을 통해 달성하려는 핵심적 목표는 이러한 군사동맹으로 새로운 시대를 지배하는 일이었다. 이 전략은 곧 소련봉쇄정책으로 진화. 그 후 반세기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과 전략은 냉전 수행의 수단으로서 세계 자유무역 체제를 구축하고, 유지하고, 확대하는데 집중. 간단한 원리였다. 미국이 아무리 막강해도 소련은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과 더 가까이 있었고, 더 많은 탱크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유럽동맹국들은 2차대전 동안 나라가 거덜났다. 이들이 소련과 정면대결에서 이길 승산은 없었다. 따라서 미국은 동맹을 구축해야 했음. 비용도 안 들고 미군이 소련군에게 직접 노출되지도 않는 그런 동맹을 말이다. 그리고 전선 역할을 할 동맹을 구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돈으로 매수하는 방법이었다. 미국이 둔 이 수는 먹혔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북대서양조약기구는 군사동맹이지만 그 동맹을 유지해준 주인공은 브레튼우즈 체제의 경제적 측면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동맹은 패전한 추축국들에게까지 확대되었고, 후에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일컬어지게 된 나라들과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을 비롯해 개도국 대부분에게까지 확대됨.
- 미국이 지배하는 자유무역체제 덕에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가 왔다. 세계 GDP는 열 배로 확장되었고 세계 인구는 세 배로 증가. 과거에 문명을 붕괴시킬 뻔한 대규모 전쟁(프-독, 러-터키, 일-중, 제국의 침략)은 모두 멈췄고,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 체제하에서 안보가 확보되고 부가 창출되면서 중단됨. 소련은 승산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련이 붕괴됨.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중부 유럽 국가들은 소련의 손아귀에서 벗어남. 그로부터 3년이 지나지 않아 소련 자체가 산산조각이 났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목표를 달성했고 이제 미국이 기존 전략을 재고할 때가 되었다.
- 베이비붐 세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미국 역사상 가장 머릿수가 많은 인구연령층이다. 7500만명이나 됨. 이 집단은 그 수가 너무 많아서 평생 미국의 체제를 왜곡하면 살았다. 이들이 노동력에 합류하자 모든 직업을 다 빨아들였고 자기가 보유한 기술에 못 미치는 일자리를 받아들인 사람도 많다. 노동시장에 인력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20년 동안 임금이 오르지 못했고, 어떻게든 가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맞벌이 하는 가구가 증가.
- 2000년 무렵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는 대다수가 장년층에 접들었다. 이는 미국경제에 축복인 동시에 재앙이었다. 머릿수가 많은 세대가 은퇴를 준비하느라 대량의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했다는 게 긍정적인 면이다. 그 결과 미국 금융시장에는 투자처를 찾는 자본이 흘러넘쳤고, 저리로 융자를 받게 되면서 배우자에게 새 차를 장만해주고, 자녀에게 새 스마트폰을 사주고, 새 도로를 깔고, 해군에 새 항공모함을 장만해주고, 대통령은 새로운 보편적인 의료보험 정책까지 내놓게 됨. 50년 이후로 이처럼 대출이자가 쌌던 적이 없다. 그러나 근로자 수가 많으면 임금이 오르지 않듯이 자본이 너무 많으면 수익률이 오르지 않음. 낮은 수익률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는 점점 더 위험한 투자처를 찾아 나섬.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금융계에서 이는 전형적인 묻지마 투자 사례임. 베이비붐 세대 투자자들은 더 나은 수익률을 찾아 더 위험한 투자결정을 내림. 위험한 산업부문, 기업, 지역에 점점 더 많은 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수익률은 더 하락. 베이비붐 세대 집단은 그 규모가 너무 커서 미국은 그들이 창출한 자본을 다 소화하지 못했고, 따라서 이들의 자본은 미국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흘러들어감. 르완다의 지방채와 카자흐스탄 에너지 부문에 투자하는 게 유행이 됨. 결국 개발도상 지역은 2000년부터 2015년 사이의 기간동안 기록적인 성장률을 보임. 건강하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베이비붐 세대의 투자결정으로 온 사방에서 거품이 생겼고, 곧 이 거품들은 꺼졌다. 지난 20년 동안 발생한 (닷컴에서부터 엔론, 서브프라임, 브라질, 러시아, 인도차이나에 이르기까지) 금융거품은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에게 책임이 있고, 이 모든 사태는 오직 베이비붐 세대가 1%라도 수익률을 더 올리려고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묻지마 투자를 했기에 벌어진 것. 그러나 여기에는 투자 이상의 내막이 있다. 고소득에 높은 투자가 더해지면 세수가 증가함. 같은 기간 동안 베이비붐 세대가 여전히 서서히 나이들어감에 따라 정부의 곳간은 차고 넘쳤다. 조지 부시와 오바마는 베이비붐 세대가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시대에 미국을 통치했음. 그러나 추가로 들어온 세수를 미국의 세가지 은퇴관련 정책 (사회보장, 메디케어, 메이케이드) 의 재정을 확충하고 베이비붐 세대가 급격히 고령화되었을 때를 대비하는 데 사용하기 보다는 이 두 대통령은 정반대의 정책을 편다. 이 두 대통령 임기 동안 워싱턴은 흥청망청 돈을 써댔고, 국가부채는 6조 달러에서 20조 달러 턱밑까지 치솟음.
- 16년 현재 베이비붐 세대 가운데 가장 고령인 집단은 은퇴한 지 10년째 접어듬. 세수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면서 정부가 흥청망청 돈을 써대던 호시절은 지났고, 정부가 은퇴연금과 의료비를 대거 지출해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음. 그 여파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음. 베이비붐 세대가 투자에서 은퇴모드로 전환하면서 이들이 (실리콘밸리든, 디트로이트든, 볼리비아든, 터키든, 인도든) 온갖 투자상품에 넣어두었던 그 모든 자본을 회수하면서 이 자본으로 가능했던 경제성장이 와해됨
- 16년 현재 평균적인 미국인은 이미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사이프러스, 아이슬란드를 제외하고 모든 선진국 평균 국민보다 젊다. 19년 무렵이면 평균적 미국인은 평균적인 중국인보다 젊어진다. 2040년 무렵이며 평균적인 브라질인보다 젊어지고, 21세기 중반에 접어들면 평균적인 멕시코인의 나이가 평균적인 미국인 나이를 추월하게 됨
- 브레튼우즈 체제의 범위는 차치하고, 미국에게 이득이 없었던 것은 아님. 단지 냉전이 한창이었고 동맹체제가 절실했기 때문만은 아님. 미국도 경제가 성장하면서 국내 석유생산량이 하락. 미국 유전은 2차대전 당시 연합군에게연료를 공급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73년 무렵이 되자 미국은 원유 순수입국이 되었고 08년 무렵에는 15mpbd를 수입해 와야 했는데, 이는 제2석유 수입국이 수입하는 양의 세배로서 미국 GDP의 2.8%를 석유수입에 소비했음. 그 해에 4000억불이 넘었다. 미국은 알제리와 사우디에서 끔찍한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미국은 75-02년 앙골라에서 내전이 진행되는 동안 앙골라 정부에 대해 반감이 컸지만 앙골라의 원유생산에 도움을 줌. 79년 이란 혁명 이후 미국은 한 세대 동안 이란과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서 항공모함 전투단을 페르시아만에 주둔시키고, 이 지역의 국가들이 서로 도발하거나, 석유 유통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했다. 간단히 말해 미국이 이 나라들이나 이 나라들의 국내정치상황을 따지고 말고 할 여유가 없었다. 미국이 외부에 에너지를 의존했기 때문에 폭이 좁았다. 그리고 외부에 의존해야 했으므로 외부정세에 관여해야 했다.
- 오늘날의 세계는 직간접적으로 미국이 관리하고 미국이 보호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미국이 과거에 구축했고 현재 관리하고 있는 체제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스스로 이를 대체할 체제를 마련할 역량이 부족함. 현재 미국이 관리하고 보호하는 체제를 제거하면 대부분의 나라들은 경제와 안보를 지킬 방법을 잃어버리게 됨. 에너지 수출국은 자국상품을 수출할 시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에너지 수입국은 물량확보를 위해 싸워야 할지 모름. 대부분의 나라가 자국의 경제와 안보를 지키기 위해 각자도생하는 수밖에 없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많은 나라들에게 유일한 선택지는 전쟁뿐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질서가 깨지는 상황이 정상인 시대가 온다.
- 에너지 시장을 서로 차지하려고 하다 보면 북미 역외 어딘가에서 공급에 차질이 생김. 그런 일이 발생하면 북미 유가는 요동치게 되고 생산된 셰일은 신속히 시장에 나오게 됨. 미국이 일단 원유 자급자족을 달성하면 유가는 배럴당 70불이 상한가가 되고, 이 가격에서는 미국의 셰일 매장지는 모조리 수익을 내게 됨. 바깥세계는 전혀 이야기가 다름.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총탄이 오가고 유조선이 납치당할 때마다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급격히 요동치게 됨.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 셰일이 이미 미국의 경제에 부여한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 더 유리해질 뿐만 아니라 미국 바깥 세계와 비교해볼 때 안정적인 공급과 가격수준과 가격안정성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해지기까지 한다.
- 지구상에서 반항적인 소수민족들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러시아보다 더 경험을 축적한 나라는 없다. 모스크바 대공국 초기부터 러시아는 안보를 달성하려면 주변지역들과 주변지역 너머 지역까지 점령해서 이들 지역을 전략적 완충지도로 바꾸고 이 지역 주민들을 총알받이로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늘 세계에서 가장 침투력이 강한 정보망을 보유하면서 점령지 주민들을 평정해옴.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일인 듯하지만, 방어가 불가능한 국경 수천 마일을 방어하는 데 드는 인력에 비하면 훨씬 적은 물자와 인력으로 가능. 무엇보다도 물자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로서는 선전선동을 활발하게 이용하면 러시아 국민들에게 이러한 전략이 먹혀들어간다는 점이 중요함
- 미국이 보기에 미국의 동맹관계는 대부분 이제 그 수명을 다했고, 미국은 중동의 석유가 필요하지도 않으며, 석유의 원활한 수급으로 가능했던 세계 무역체제도 애초에 미국이 직접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미국을 페르시아만과 엮어두었던 논리를 구성하는 연결고리들이 모조리 거의 동시에 끊어지고 있다. 미군의 점진적 철수도 이미 많이 진전된 상태임. 07년 이후로모로코에서 아프간까지 연결하는 지역에 위치한 나라들 전역에 걸쳐 주둔하던 미군은 최고 25만에서 15000명 이하로 줄어듬.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이 지역에서 미군이 철수한 이유는 미국 정치가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있어서가 아님.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가 대부분 오바마 정권에서 이루어진 것은 맞다. 하지만 오바마 전임자인 조지 부시 정권하에서 미군철수 계획이 수립되고 실제로 철수가 시작됨. 16년이 저물무렴렵 페르시아만 지역에 남아 있는 미군은 대부분 카타르에 위치한 미 중부사령부의 지역본부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 중부사령부는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작전을 감독하기 위해 카타르에 기지를 설치했다. 이제 이 두직에서의 작전이 대부분 마무리되었으므로 미 중부사령부는 머지않은 장래에 이 지역 작전사령부를 미국 본토로 귀환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장 중요한 초대형 항모의 경우, 15년에 페르시아 만에 머물렀떤 기간은 다섯달이 채 되지 않음. 이러한 새로운 패턴이 이제 일상적 패턴이 된 것은 아님. 새롭게 일상적 패턴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바로 무질서로 가는 전환기일 뿐이다. 많은 국가들이 페르시아만 지역에 대해 여전히 관심을 보일 이유는 많을지 모르지만, 그런 나라들 가운데 세계적 초강대국은 없기 때문에 지난 40년 동안 이 지역에 존재해온 전략적 평형상태는 봄날에 강 표면 얼음 갈라지듯이 깨지고 있다. 이 지역의 나라들은 앞으로 지역의 지정학적 여건을 스스로 파악해야 함. 그리고 그 지정학적 여건은 한마디로 말해서 험악하다.
- 사우드 왕가는 사막 한가운데 그 뿌리를 두고 있다. 20세기 전에 아라비아 유목민이었던 그들은 오아시스가 있는 마을들을 습격하고 이따금 훨씬 문명화된 히자즈 지역까지도 약탈했다. 바로 이 지역이 현재 간간이 비가 내리고 메카와 메디나가 위치한 현재 사우디의 서부 변방 지역이다. 사막에서의 삶은 혹독하고, 사막에서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일은 더욱 힘겹다. 사우드 부족이 이러한 환경을 헤쳐 나가는 수많은 방법들 가운데 하나는 아주 엄격하게 해석한 이슬람을 채택해 전투를 미화하고 개인의 자유를 강력히 규제하는 것이었다. 현지인들은 이를 살라피트 이슬람이라고 일컫는 반면, 역외에서는 와하비즘이라 부름. 이 운동의 창시자 시크 이븐 압둘 와하브의 이름을 딴 명칭이다.
- 1차 대전 동안 사우디인들은 영국에게 절실히 필요한 대상이었다. 치고 빠지는 사막전투에 능란한 현지 세력으로서 뇌물을 줘서 오스만투르크를 공겨갛게 만들 수 있었음. 영국-사우디 동맹이 형성되었고, 전쟁이 끝날 무렵 사우디인들은 조직화된 세력과 무기를 갖추게 되었고, 영국의 지원까지도 받으면서 해당지역의 안보 통제권을 장악하려고 시도. 와하브의 후손들과 정략적 동맹관계를 맺으면서 주요 권력 브로커들이 하나로 뭉침.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국가가 탄생. 그로부터 채 10년이 못 돼 석유가 발견되었고 신생국 사우디는 다른 신생독립국이 밟았던 발전과정을 따르게 됨. 새로 배출된 지도자들은 석유 말고는 자원이 거의 없는 왕국을 현대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기간시설 구축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 유목민 출신인 사우디인들은 매우 도시적이고 안락한 생활방식에 곧 익숙해짐. 석유를 기반으로 한 경제는 엄청난 소득을 창출할지는 몰라도 말 등에 올라타 사람머리나 동강내는 기술이 주특기인 사람들을 고용할 만한 일자리를 창출하지는 못했음. 당시는 아타리, 플레이스테이션, 인터넷이 등장하기 훨씬 전이라 남아돌아가는 여가시간을 채울만한 활동이 별로 없었고 따라서 사람들은 원초적 본능에 충실했다. 그러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 그러자 이념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생김. 지하드와 약탈에 바탕을 둔 문화를 유지한 채, 지금은 전부 아파트에 거주하게 되었다면, 총체적으로는 폭력, 구체적으로는 군사행동이 바람직하다고 평생 배워온 실업자 청년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사우디는 영토를 확장하려 했지만 영국군이나 영국의 대리자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통상적인 영토팽창의 꿈은 물거품이 됨. 사우디는 정력이 넘치는 폭력적 청년들을 나라 안에 꼼짝 못하게 묶어 두었고 이 때문에 끊임없이 국민들을 다잡아야 했다. 잔혹하기로 치자면 한술 더 뜨는 부족들은 국경수비대나 군대에 입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사람들은 종교경찰에 투입됨. 폭력적 성향이 덜한 이들은 관료집단을 팽창시킴. 한편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온갖 보조금으로 뿌려 국민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든다. 누구든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교도소에 집어넣음. 사우디의 교도소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도록 설계됨.
- 사우디는 곧 새로운 국민관리 정책을 생각해냄. 바로 인력수출이었다. 사우디는 특히 폭력적 성향이 강한 청년들을 해외로 내보내 사우드, 아니 사우디아라비아, 아니 이슬람의 위대한 영광을 위해 투쟁하도록 했다. 청년들이 나라 바깥 어딘가에서 사람들 목을 치고 건물을 폭파시키는 한 나라 안에서 말썽을 부릴 일은 없었다.
- 이란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잠재적 핵 균형이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는 무수히 말이 많았지만, 이란이 핵무기 보유국이 되면 얻는 현실적 이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름. 이란은 페르시아 만 지역에서 재래식 군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월등하고, 정당하게 싸운다면 이라크, 사우디, 페르시아만의 모든 나라들이 합심해서 달려들어도 쉽게 패배시킬 수 있다.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맹주가 되는 데 핵무기는 필요 없다. 오히려 핵무기 실험을 하면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을 당하기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역효과를 낳게 됨. 따라서 이란은 미국과의 협상을 핵개발과 맞바꿀 용의가 충분히 있다. 미국과 이란이 서로를 인정하고 간섭하지 않는 데 동의하면 (그리고 미국이 페르시아만에서 손을 떼면) 역사의 물결은 이란에게 유리하게 흐르게 됨. 경제와 정치와 인구구조도 이란에게 유리함. 그렇다고 해서 이란이 핵무기가 쓸모없다고 여긴다는 뜻이 아님. 이란에게는 핵무기보다 미국이 없는 중동이 훨씬 쓸모가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다시 사우디-파키스탄 동맹으로 이야기가 귀결됨. 파키스탄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란의 악몽은 파키스탄과의 전쟁이 핵전쟁으로 확산되는 상황이 아니라 파키스탄과 사우디의 동맹이 너무나도 확고하고 사우디의 재정이 너무나도 튼튼해서 사우디가 이란을 저지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부터 핵무기를 사들이게 되는 상황이다.
- 미국은 이제 페르시아만 역내 질서에는 관심이 없다. 역내 갈등은 사우디에게 처리하도록 맡김. 그러나 사우디도 역내 안정에 관심이 없다. 사우디는 오로지 이란의 힘을 뿌리뽑는데 관심이 있고, 그러기 위해서 이란과 마찬가지로 폭동을 부추기는 전략을 이용하고 있다. 이제는 숫자놀이다. 이란의 대리자들은 모두 수니파 아랍인들 사이에 섞여 사는 소수파인 반면, 사우디는 다수파인 수니파 아랍인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사우디는 그 지역이 초토화되어도 상관하지 않음. 이란은 재정과 인력싸움에서 승산이 없다. 반체제 폭도들이 또 다른 반체제 폭도들과 대결하는 상황에서 역내에 질서가 유지될 리 만무함. 그리고 역내 질서가 파괴되면 이란이 역내에서 행사하는 영향력도 사라지게 됨. 이란이 자그로스 산맥을 요새처럼 두른 고지대에 고립된 가난한 왕국에서 벗어나려면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 언젠가 이란은 사우디가 이란에 맞서는 장기적 전략을 구사해왔다는 사실과 이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전쟁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됨. 이란은 백만대군을 자랑하고 이란공군은 사우디의 공군보다 규모가 훨씬 크며, 사우디 군인들이 책에서조차 읽기 싫어가는 혹독한 참화를 이란 국민들은 견뎌낼 의지가 있다. 서류상으로 볼 때, 이란은 공정한 싸움에서라면 사우디를 쉽게 이길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싸움이 공정할 리가 없다. 이란이 대비해온 전쟁은 이란이 피치 못하게 치러야 하는 전쟁과는 전혀 다름. 따라서 이 충돌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대단히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세계 석유공급에 미칠 영향도 훨씬 끔찍하리라 예상됨
- 2차대전이 끝난 후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면서 얻게 된 부작용들 가운데 하나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장거리 원정이 가능한 해군을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이 감당하기 꺼리게 되었다는 점. 미국이 무료로 화물을 보호해주는 데, 뭣 땜에 자기 생돈 들여 화물을 엄호할 해군력을 구축하겠는가? 독자적으로 장거리 원정이 가능한 해군을 구축하기로 한 나라는 몇 나라뿐이다. 해군의 역량이 높은 순서대로 나열해보자면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호주, 한국, 타이완이다. 이게 다인데, 이 나라들이 모두 중동에서 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있거나 그럴만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님.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자국과 가까운 지역에서 필요한 만큼의 석유를 확보할 수있고, 영국 해군과 러시아 해군은 이미 지구전에 가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페르시아만에까지 원정을 갈 여유가 없다. 호주는 전통적인 동맹국들이 정치적으로 엄호를 해주지 않는 한 페르시아만 전쟁에 가담하기보다는 동남아나 남미에서 필요한 석유를 확보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오로지 일본, 중국, 한국, 타이완만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필요도 느끼고, 그럴 역량도 있는 나라들이다. 페르시아만에 있는 나라는 (사우디를 포함해) 하나같이 국기를 바꿔 단 자국의 유조선을 엄호해줄 세력을 확보하려 하려면 동시에 반대편 나라는 그들의 화물을 엄호해줄 세력을 확보하지 못하게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 누가 누구와 맞붙든 상관없이, 전쟁이 발발하고 며칠 안에 세계는 만성적 석유부족에 돌입하게 되고, 역외에서 참가한 국가들은 이미 누구편을 들지 결정한 상태에 놓이게 됨. 이와 같이 페르시아만에서 에너지 공급물량을 확보하려는 투쟁에 개입하는 유일한 역외 세력은 동아시아 국가들이다.
- 셰일 덕분에 미국은 이미 거의 석유를 자급자족하는 단계에 도달. 몇 달 동안 유가가 계속 상승하면 셰일 업자들은 생산량을 늘려서 북미지역을 완전한 석유자급상태로 만들게 됨. 페르시아만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예전의 브레튼우즈 체제 동맹인 중국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미국이 중국경제를 온전히 보존하고 건전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사우디-이란의 혈투에 끌려들어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 전략적으로 볼 때, 사막에서 교착상태가 지루하게 계속되는 상황이 미국에게 최상의 결과다. 이란과 사우디 사이에 충돌이 몇 년이고 계속되는 교착상태에 빠지면, 둘 중 어느 나라도 이 지역을 지배하지 못한다. 그러한 교착상태에 빠져 있으면, 이 두나라는 중동 밖의 그 어느 나라에도 자국이 생각하는 도덕을 강요하지 못하게 된다. 미국에게 최고의 국가안보 정책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것일지도 모름.
- 1차대전의 여파로, 유럽국가들은 머리를 맞대고 지도 위에 선을 그어서 이 지역을 여러 구역으로 나눠 각기 자기 영향권 하에 두었다. 이 협정(협정문을 작성한 인물의 이름을 따 사익스-피콧이라고 불린다.)은 인구밀집 지역이라든가 각 민족의 정착지역 등은 무시한 채, 대규모 석유 매장지가 발견되기 전에 체결되었다. 그 결과 페르시아만 전역에 걸쳐 국경은 모두 일직서으로 그어졌다. 다가올 무질서 시대는 이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지역의 안정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나라가 없고, 세계 무역도 과거의 질서가 되어버렸으며, 지도상에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이 제구실을 하도록 보장할 외부세력이 없으며, 이 지역에서 가장 역량이 있는 두 나라가 장군멍군하며 반란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중동의 여러 나라들은 단순히 와해되는 데 그치는 게 아님. 산업기반, 전력공급시설, 농업기반이 거의 손실되어 문명이 붕괴된다.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예멘, 레바논 (대략 이 순서대로)은 현재 자국의 인구규모의 3분의 1도 지탱하지 못하게 됨. 쿠웨이트도 다시 한 번 금전적 대가를 주고 동맹을 구하지 못한다면, 붕괴되는 나라들 명단에 합류하게 됨. 대략 6천만명이 이란, 터키, 유럽에서 난민이되든가 기아와 갈증으로 사망하게 됨
- 일본은 거의 전적으로 수입한 액화천연가스만으로 전기를 생산함. 그러나 현재의 소비패턴을 에너지 의존성과 혼동하지 말라. 일본은 수십년 전부터 단일한 에너지원이나 형태에 의존하면 절대로 안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나라 전체에서 도시 단위에 이르기까지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지만 가동을 중지한 시설들이 많이 있다. 일본이 얼마나 신속하고 철저하게 에너지원을 전환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하고다. 해양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믹 원자력 발전소를 삼켜버리면서 세계 최악의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일본 원전시설의 안정성에 대한 정당한 우려와 단순한 공포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본당국은 일본 원전시설 전체를 폐쇄했다. 쓰나미가 강타하기 전날 51개 원자력 발전시설이 일본의 전기수요의 30%를 충족시키고 있었다. 한 달 후 15개를 제외하고 모든 원전시설이 완전히 가동을 중지했고, 나머지도 12년 5월 모두 가동을 중지. 일본이 아니라 세계 여느나라 같았으면 이런 사태는 나라의 안정이 흔들릴만한 사태였겠지만, 일본에서는 전혀 동요가 없었다. 일본은 천연가스, 석탄, 석유를 사용하는 발전소들을 가동해서 원전시설 전체를 대체했고, 그렇게 하는데 몇 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조치를 취해야 한 것(예컨대 산업시설의 가동은 임시로 전력수요가 낮은 야간으로 돌린다든가) 외에 일본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규모가 큰 원전사고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전력시설에 타격을 받았지만 몇몇 경미한 사건 외에는 충격을 흡수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 중국은 세계정세가 어수선해지면 에너지 공급경로를 강제로 열어둘 해군역량(그리고 다른 나라의 협력을 이끌어낼 만큼 좋은 평파을 얻지도 못하고 있다)이 없다. 중국은 전쟁이 임박하면 해외에서 수입하는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감히 높일 엄두를 내지 못함. 중국은 가능한 한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발전연료나 비교적 중국 가까운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연료에 의존해야 함. 중국에게는 석탄이 유일한 해답이다.
- 동북아 4개국이 바닷길과 에너지 공급원 확보문제와 관련해 각자도생하게 되면서 이들은 공해상에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됨. 브레튼우즈 시대에는 해상에서 절대적 자유를 보장하는 게 미국의 전략이었다. 동맹국과 경쟁국 가릴 것 없이 그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상황이 오면 미국은 이 지역에서 손을 떼게 된다. 결국 미국의 해군력만 뒤로 물러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은 전략적으로 한국을 엄호하지 않게 되고,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일도 끝나게 된다. 한국은 이 지역의 혼란스러운 정세에 너무 깊이 발을 담그고 있으므로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수입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미국의 지속적 개입을 납득시키기 어려움. 뒤집어보면, 미국이 유조선 전쟁에서 한국이 누구와 손을 잡기를 바라는 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님.
- 경제적으로, 인구구조적으로, 군사적으로 가장 큰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이 중국과 손을 잡든 일본과 손을 잡든 상관없이 한국이 에너지와 원자재를 수입하고 시장 접근을 위해 이용하는 바닷길과 접해 있는 모든 나라들과 사실상 동맹을 맺게 되는 나라는 일본이다. 한국이 패를 잘못 내놓으면 동아시아 유조선 전쟁은 일본이 중국에 이어 한국의 꿈을 짓밟는 짤막한 후속편으로 마무리된다. 한국이 움찔할 만한 이러한 예상조차도 북한에서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하는추측이다.
- 중국 주식회사와 아시아 공장의 시대는 끝난다. 일본, 한국, 타이완, 중국이 이룩한 기적적 경제성장은 값싼 자본, 바닷길의 자유로운 통행, 개방된 시장 덕분에 가능했다. 특히 미국이 시장을 개방했기 때문. 이 모든 요인들은 유조선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붕괴되고 있다. 동북아 4개국은 곧 공급량이 급격히 줄어든 수입석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자본과 군사력을 동원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지금까지는 한푼도 들지 않았던 일이다. 그러나 동북아 국가들이 모두 성공하지는 못함. 모두에게 돌아갈만큼 원유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 무능력해서든, 불안정해서든, 적대감 때문이든, 동북아 성공의 마지막 시도(수출극대화를 위한 상호통합)는 무산된다. 동북아 바깥의 세계는 세계 제조업 시장의 규모가 갑자기 대폭 축소되고 동북아 시장에서 모든 것이 수요가 대폭 감소하면서 고통을 겪게 됨. 시멘트, 철강원석, 구리, 아연, 알미늄 등 모든 원자재 수요가 붕괴됨. 산출재 측면에서 빚어지는 차질은 더욱 심하다. 2차대전 이전에 대부분의 제조품목은 거대한 산업단지에서 생산되었다. 투입재를 수입해 역내 노동력과 기간시설로 거대한 산업단지에서 생산되었다. 투입재를 수입해 역내 노동력과 기간시설로 가공해 최종상품으로 만들고 다른 소비시장에 수출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국제운송을 안전하고 저렴하게 만듦으로써 이 모두를 바꾸어 놓았다. 거대한 산업단지에서 모든 공정이 이루어지던 통합적 생산방식에서 전체적 공정을 쪼개어 각 공정부분마다 가장 월등한 시설에서 그 공정이 이루어지는 생산방식으로 바뀌었다. 일괄제조방식이 사라지고 수십, 수천가지 단계를 거치는 공급사슬이 형성됨. 세계 제조업 공급사슬의 절반이 동아시아에 있다. 유조선 전쟁에서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을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은 세계 에너지 시장뿐만이 아니다.
- 에너지 부문에서 널리 통용되는 금언이 있다. 고유가의 해결책은 고유가이고, 저유가의 해결책은 저유가다. 이 금언에 담긴 개념은 간단한. 고유가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기업들이 신기술에 투자하고 새로운 유전을 발굴하고 기간시설에 투자해 새로 생산되는 원유가 늘어남. 신규생산 원유가 늘면 수요를 압도해 가격이 폭락하게 됨. 저유가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기업들은 기술, 유전, 기간시설 투자를 중단. 그러면 원유생산이 급격히 줄면서 결국 수요보다 적게 생산되는 지경에 이름. 공급이 수요보다 많던 수급불균형은 공급이 딸리는 불균형으로 전환되면서 가격이 폭등하게 됨.
- 미국은 그동안 에너지 수급 때문에 세계문제에 관여할 필요를 느꼈는데, 셰일혁명이 일어나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짐. 미국에서 정치성향을 불문하고, 미국이 온갖 종류의 세계문제에 관여하고 자유무역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데 대해 분노하는 정서가 팽배하게 되었다. 서로 크게 연관은 없는 여러 이유로 인해 미국을 세계와 연결하는 경제적, 전략적 연결고리들이 제거됨.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10여년 동안 몇 가지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1) 미국이 세계에서 손을 떼겠다는 정서는 매우 깊고 폭넓게 만연해 있고, 이러한 정서 때문에 세계 질서를 유지해주는 구조가 사라지게 된다. 지구전, 페르시아만 전쟁, 유조선 전쟁은 미래의 세계에서 세계 체제의 거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줄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함. 무질서 시대에 이러한 전쟁들이 발생하면 기근과 국가붕괴의 광풍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상당부분을 휩쓸게 된다.
(2) 미국은 총체적 철수를 실행하겠지만, 이는 잠정적 철수다. 20-30년 동안 모험을 자제한 후 미국은 다시 바깥 세상으로 진출하게 된다. 그 사이에 세계가 붕괴되기 때문에 미래에 세계로 진출할 미국은 16년의 미국보다 훨씬 더 막강한 존재가된다. 이러한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미국은 혼돈에 빠진 세계에 새로운 안보질서를 강요하게 될지도 모름. 그러나 그 사이에 경제적, 정치적, 안보적으로 세계가 후퇴할 시간은 충분하다.
(3) 미국은 분명히 힘을 행사할 역량이 있다. 다만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미국이 도발을 당하면 맞대응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누가 행위의 주체가 될지가 그보다 훨씬 중요하다. 세계에서 철수하는 주체는 미국정부다. 미국의 민간부문은 넓은 세계에 관여할 역량이 있고 관여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 미국이 세계무대에서 사라진다기보다는 세계무대에 등장하는 행위주체와 그들이 사용하는 방편들이 45년 이후의 규범과는 아주 달라지게 된다.
- 1890년대는 미국이 남북전쟁 후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재건이라는 과업을 막 완수한 직후였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도가 작동하고 중서부로의 이주행렬이 잦아들면서 정착이 마무리되고, 남부지역이 다시 경제에 기여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여러 다양한 사업에 쓸 여유자금이 엄청나게 축적되었음. 따라서 미국은 해군을 구축하고 탐험에 나섬. 미국은 군사력과 군사력과 도달범위를 기업 이익과 결합하고 정부로부터 융자지원을 받아 외국경제에 침투했다. 국가, 기업, 군사, 금융이 혼연일체가 된 형태는 2차대전 직전까지 존재했다. 역사학자들은 제국주의 전쟁, 세계대전, 경제적 풍요와 자신감이 넘치던 20년대, 대공황 등을 포함하는 어느 시기에 하나의 명칭을 붙이기 꺼리는데, 수단의 측면에서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용어는 "달러 외교"다. 이는 태프트 정부(1909-13)의 공식적 외교정책이었다. 경제력과 국력의 관점에서 보면 달러외교는 대성공이었따. 미국은 찾아가는 나라마다 미국의 국익을 각인시켰다. 미국의 투자로 기간시설과 산업시설을 구축해 지역 노동력을 흡수했고, 미국뿐만 아니라 투자대상국에서 소비할 상품도 만들어냄. 마찬가지로 미국의 외교력과 민간부문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결합하면서 미국상품은 미국이 낙점한 시장에 접근하는 혜택을 누렸다. 이와 같이 국력을 민간기업과 결합하는 방식은 그렇게 생소하지는 않다. 브레튼우즈 체제 이전에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런 식으로 했다. 그리고 중국과 프랑스 같은 닐부 브레튼우즈 체제 참가국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런 식으로 한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이런 방식을 쓰기 쉽다는 뜻은 아님. 또 수많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민간의 이익과 정부의 이익이 얽히게 되면, 보통 아주 단순한 작전도 완전히 새로운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 정부가 내리는 외교지침에 따라 민간기업이 메시지를 전달할수도 있다. 위협도 민간기업을 시켜 전달가능함. 민간 융자 제공자들은 자국 정부부처의 입을 통해 외국의 채무자에게 빚을 갚으라고 할 수 있다. 군사역량은 국가의 보조기구일 뿐만 아니라 기업의 보조기구도 된다. 과거에 달러외교를 할 때, 자국기업이 외국에 진입하도록 하고 미국 국적이 아닌 경쟁사들의 진입을 막고, 필요하다면 주권국가의 정부에게 계약을 체결하라고 강요하려고 다른 나라 내정에 직접 간섭하는 데 미국의 군사력을 이용한 사례가 수십 건 있다. 다가올 무질서의 시대에 미국은 이러한 달러외교가 펼쳐지는 새 시대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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