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는 일찍부터 상공업이 발달. 해상과 하천교통의 중심에 위치해서 중세말부터 국제무역의 중심지였음. 지금도 네덜란드는 기업하기 좋은 최고의 나라로 꼽히며, 세계인들을 상대함. 그러다보니 일반인들도 2-3개의 외국어를 구사할만큼 인적자원도 우수함. 네덜란드가 바다를 주름잡은 이유는 청어와 대구, 고래를 잡기 위해 오랜시간 험한 바다를 헤치며 살아왔고, 무역이 아니면 달리 살 방도가 없었기 때문. 또한 일찍부터 개신교의 영향으로 상업활동이 자유로웠고, 조선업과 해운업이 고도로 발달했음. 17세기 중엽에는 수도 암스테르담이 지금의 뉴욕 월스트리트 같은 금융의 중심지였다. 19세기에는 라인강을 잇는 운하가 뚫리고 북해와 최단거리로 연결되는 북해운하까지 뚫리며 내륙수운의 중심지가 됨. 제2의 도시 로테르담은 유럽의 관문으로 불리는 국제항구도시로 1930년에 세계에서 가장 큰 준설항인 발항만이 건설되었음. 이곳도 해운업이 핵심이며, 석유가 모여드는 위치여서 석유화학 산업이 발전했다.
- 영국은 2차대전 후 인도를 비롯한 많은 식민지가 독립하면서 쇠퇴함. 1970년대만 해도 영국의 경제사정은 형편없었고, 1976년에는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까지 받아야 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이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북해유전임. 67년 덴마크 앞바다에서 유전이 발견되고, 69년에는 노르웨이, 70년에는 영국 스코틀랜드 근해에서 유전이 발견됨. 북해유전으로 가장 이익을 본 나라는 영국과 노르웨이다. 영국은 거대 해양유전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엄청난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며 경제가 회복됨. 노르웨이는 석유와 가스판매 수익을 해외에 투자해서 국가경제를 튼튼히 했다. 반면에 덴마크는 석유자금이 밀려들면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등 경제침체에 빠지기도 했음. 이렇듯 자원이 풍부하더라도 국가의 관리능력에 따라 경제는 달라질 수 있음
- 대공황과 경제불황이 민족주의와 나치즘과 파시즘을 불러왔듯이, 08년 경제위기 이후 EU국가들은 똘똘 뭉쳐 협력하기보다 자국민 보호를 우선시하고 경쟁하는 방향으로 돌아서는 모양새. 몰려오는 이민자와 테러로 외국인에 대한 무분별한 증오도 번지고 있음. 게다가 서유럽은 2000년대 이후 EU에 가입한 동유럽국가들과의 경제격차로 인해 그들에게 수십억 유로를 지원하는 데 대한 불만이 높다. 반면 동유럽국가들은 EU의 지원을 받으며 경제성장을 혜택을 누림. 그뿐 아니라 EU는 남부유럽의 재정문제로 위기에 처해 있음. 또한 난민 문제로 우익세력이 급성장하며 EU를 이끄는 프랑스와 독일마저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임. 영국의 브렉시트로 인해 재정부담이 가중될테니 EU의 균열은 점점 더 가속화될 전망. EU가 유지된다고 해도 곳곳에서 분리주의 운동은 계속 이어질테고, 어느 한 곳이 독립에 성공하면 아마 그 기운은 더욱 거세게 퍼져나갈 것임. 결국 유럽의 통합은 장점만큼이나 수많은 약점을 드러냄. 유럽이 분열될수록 유로화의 힘도 약해질 것이며, 미국 달러와 중국 위안화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질 전망. 이를 증명하듯 EU의 미래를 어둡게 예측하기도 했다. 영국 이후 다른 회원국이 꼬리를 물고 탈퇴하면 결국 EU는 붕괴할 것이고, EU가 붕괴해서 발칸반도를 방치하게 되면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름.
-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세계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 또한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서려 EU에 더 많은 방위비 지출을 요구하는 형편임. 러시아의 재부상과 테러의 위협 등으로 인해 유럽은 군대를 늘이려고 기존 모병제에서 우리나라처럼 징병제로 돌아서는 추세. 지금까지 유럽은 미국의 우산하래 군사적으로 러시아와 대항하는 나토를 통해 안전을 보장받음. 미국의 비호속에서 정치, 경제적으로는 EU를 통해 번영해온 유럽통합이건만, 어쩐지 그 미래가 그리 밝게 보이지만은 않다.
- 미국은 과거부터 유럽 이외의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정채적으로 규제해옴. 지금은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불법이민을 막겠다면 멕시코 국경을 높게 쌓으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 이민자들은 오히려 미국의 경쟁력을 높여주고 있다. 미국이 서유럽처럼 복지에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중남미계 이민자같은 저임금 계층이 많기 때문. 미국 내에는 백인과 백인들의 세금으로 이믽자들에게 혜택을 주기 싫다는 여론이 높다.
- 미국은 국제사회에 민주주의 독립혁명을 외치며 등장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카리브해와 태평양으로 영토를 확장해나가는 과정에서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 다만 처음 의도했던 중국시장 진출은 제대로 이루지 못했는데, 이는 그때까지만 해도 해군력이 약했기 때문. 이후 미국은 19세기 말부터 철갑군함을 건조하며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한 해군력을 키워나감
- 저널리스트 카플란은 그의 저서 '지리의 복수'에서 장벽은 실패한다고 단언. 국가와 제국이 아무리 인위적 경계선을 설정해도 그 힘이 약해지면 지리의 힘이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임. 만리장성과 베를린 장벽처럼 모든 장벽은 무너졌고 본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함. 미국은 백인 민족주의로는 국가를 통합하지 못할 것이고,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처럼 멕시코와 미국은 인구와 지리적으로 통합될 것으로 전망. 그리고 향후 미국은 북극의 캐나다에서 아열대 멕시코까지 남북으로 연결된 새로운 다인종문명으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카플란의 말처럼 세계 최대 마약 소비국인 미국이 남미의 마약 카르텔을 방치한 채 멕시코 국경에 장벽만 쌓으려 한다면 아마 미국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 이미 중남미 마약 카르텔은 미국의 범죄조직과도 깊이 연계되어 있음. 마약은 카리브해 연안국가들의 경제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어서 정부의 통제수준을 넘어선 상태. 게다가 탈출구를 찾지 못함 빈곤한 젊은이들이 범죄에 빠져드는 것을 무작정 막기에도 어려운 형편임. 미국이 멕시코에서 벌인 마약과의 전쟁도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으니까요. 미국의 마약소비를 줄여 마약 카르텔의 자금줄을 끊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임. 또 다른 효가적 해결책은 뭘까? 미국의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겠지만,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인들이 범죄조직에 가담하지 않고 자립해서 살 수 있는 경제환경을 만들도록 적극 지원해주는 것임. 그렇게 된다면 캐나다, 미국, 멕시코로 이어지는 지역이 안정적으로 통합될 것이고, 미국은 앞으로도 가장 강력한 해양세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임. 무턱대고 높은 장벽만 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
- 미국은 이전보다는 중동문제에 소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시리아에서 군대를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임. 그렇게 되면 수니파 중심인 사우디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대결은 더욱 심화될 것임.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에 있는 함대와 군대의 규모를 줄이거나 미국 군사력의 혜택을 보는 동맹국과 주변국에게 비용분담을 요구할 것임. 거대 소비시장인 일본과 한국도 원유와 가스를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고, 북미관계에 따라 시베리아의 가스오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중동의 헤게모니도 약해질 것임. 만약 미국이 유럽의 나토군에서 발을 빼버리면 유럽은 호시탐탐 세력을 확장하려는 러시아의 위협을 막아내기 위해 자체 군사력을 높여야 함. 그럴 경우 군사력 증강에 대한 부담이 늘어날 테니 유럽경제는 지금보다 더욱 어려워 질 것임. 예상컨대 미국이 고립주의로 가더라도 1차대전 이전처럼 국제분쟁에 전혀 간섭하지 않는 형태는 아닐 것임. 미국은 국방비를 증강하고 있지만, 태평양-대서양 라인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동맹과 본토 방위선 국가만 지원하는 정도로 영향력을 축소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손을 놓는다면 세계는 과거처럼 보호무역과 자원경쟁으로 다시 혼란스러워질 것임.
- 세계무역기구 체제는 사실 미국에 유리하도록 만든 것임. 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와 달리 미국은 자국의 경쟁력 있는 농산물과 서비스 산업 등 모든 분야로 자유무역을 확대. 미국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자국의 힘을 총동원해 어떻게 해서든 국제 역학관계를 바꾸려 한다. 우선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미국, 멕시코, 캐나다 자유무역협정으로 미국에 유리하게 개정. 특히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못하게 했다. 미국은 미/멕/캐 자유무역협정으로 무역협정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음. 국제경제에는 미국, 중국, 일본, EU라는 핵심세력이 있다. 그런데 미국은 일본, EU, 중국과 각각 양자협상을 함으로써 굴복시키고 다자협상의 판을 새로이 짤 기세. EU는 앞으로 러시아 제재, 시리아 문제, 예루살렘 수도 이전문제 등 여러 측면에서 미국과 외교적으로 충돌할 것임. 사실 미국은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EU의 단합은 약해질 것이고, 그럴수록 미국의 뜻대로 끌고 나가기 용이해지기 때문. 현재 미국은 중국에 대한 공격에 집중하는 모양새. 앞으로도 미중 양국 간에는 무역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전략 등 세계 패권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될 것임. 과거에 미국은 일본의 기세를 누를 때 플라자 합의을 하고 나서 10년간 일본이 합의를 잘 지키는지 주도면밀히 감시. 그럼에도 일본은 미국의 조치에 그 어떤 보복성 대응도 하지 못함. 하지만 중국은 과거 일본과는 입장이 많이 다름. 일본처럼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지도 않다. 그러므로 미중 간의 문제는 장기적으로 10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는 타협이 이루어지면 미국이 얻는 게 많을 것임. 하지만 중국에서는 장기전에 대비해 시진핑이 20년 이상 장기집권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현 시점에서 미국의 목표는 중국의 금융시장 개방이며, WTO를 넘어서는 새로운 무역질서를 구축하는 것임.
- 중국은 중국 국유은행이 저개발국에 차관을 제공하고 중국기업이 건설과 운영을 맡으면서 투자금을 고스란히 뽑아내는 방식으로 일대일로 사업을 벌이고 있음. 향후 시설이 완공되면 얻는 수익으로 부채를 상환해야 하지만, 아시아 저개발국들은 무리한 투자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음. 만약 빚을 갚지 못하면 자연스레 중국의 경제식민지가 된다. 스리랑카, 몰디브, 파키스탄, 미얀마, 라오스, 네팔, 몽골, 지부티, 몬테네그로 등 중국발 부채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국가가 여럿임. 재정위기에 빠진 나라들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도 미국은 중국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간다며 구제금융을 거부하고 있음. 미국은 과거 소련에 써먹은 봉쇄전략처럼 중국이 진출하려는 지역의 자금줄을 꽁꽁 틀어막고 있는 것
- 중국이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지배하고 인도양을 장악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태평양과 대서양의 지배자인 미국과 거의 대등한 해양세력을 이룰 것임.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 때부터 중동의 군사력을 아시아로 돌려 아시아에 60%의 군대를 주둔하는 아시아우선정책을 내세웠음. 문제는 미국에게는 IS, 시리아, 이란, 이스라엘 문제 등이 산적해 있어 전력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와 달리 인도, 태평양 전략으로 대응하려 한다. 경제력이 급성장하는 인도를 중심에 놓고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봉쇄선을 강화하겠다는 전략. 아직인 미국의 해군력이 중국을 압도하지만, 동남아 해양에 집중하고 있는 중국 해군력의 성장세가 만만치 않은 만큼 미국에게는 큰 도전이 되고 있음. 앞으로 육상으로 자유로운 에너지와 물자수송이 가능해지고 아시아의 바다마저 통제하게 되면 중국은 미국의 압력에서 거의 자유로워질 것임. 아마 그때가 되면 중국은 우리나라와 동남아 국가들에 대해 미중 사이에서 노골적으로 선택을 강요할 것임. 사드 사태 당시 사드 배치를 막으려고 중국은 경제보복을 포함해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나라를 압박했고, 한국에서는 중국을 믿기 어렵다는 분위기였다. 현재 우리는 미국산 셰일가스와 셰일원유 수입을 대폭 늘리고 있음. 하지만 중국이 기존 에너지 수입항로마저 장악하고 우리를 압박한다면 아마도 중국의 지배력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임.
- 60년대와 70년대는 소련의 전성기. 유가상승으로 소련의 국력은 더욱 강해졌다. 소련은 사우디에 이은 최대 산유국이며, 국가수출의 약 3분의 2가 석유와 천연가스. 73년 중동전쟁으로 인한 1차 오일쇼크로 유가가 4배이상 뛰었고, 79년 이란혁명과 이란, 이라크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며 2차 오일쇼크가 발생. 고유가의 수혜로 경제적 여유가 생긴 소련은 군비를 증강해 79년 아프간을 침공함. 소련은 이 전쟁을 통해 아라비아해로 가는 부동항을 연결하려 했다. 문제는 당시 중국과의 관계였음. 러시아, 몽골에 이어 공산화된 중국은 형제국가였지만, 60년대에 소련과 노선갈등을 빚음. 특히 69년 우수리강을 사이에 둔 영토분쟁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짐. 미국도 베트남 전쟁 실패로 중국과 손을 잡고 싶어했다. 72년 미중수교로 소련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고립됨. 이에 소련은 중국과 국경인 아프간을 영향권 안에 두고 파키스탄까지 지배력을 떨쳐서 이슬람세력의 확산을 막고 아라비아해로 진출하려고 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강대국 경제도 파탄날 수 밖에 없다. 소련판 베트남전이라 불리는 아프간전은 10년 가까이 이어지며 소련경제를 무너뜨림. 여기에 베트남 원조까지 더해져 GNP의 20% 가까이를 국방비로 지출하게 됨. 심지어 86년에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마저 증폭됨. 무엇보다 소련이 흔들린 원인은 80년대 유가하락임. 배럴당 70불이던 유가가 80년대말 20불 이하로 하락하는데,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 사우디와의 밀약을 통해 석유공급량으 4배로 증가시켰고 서유럽, 일본과 함께 손잡고 석유 비축유를 방출. 그 결과 국제유가가 폭락하자 소련의 외화보유액은 빠르게 고갈됨. 81년부터 8년간 미국을 이끈 레이건 대통령은 현재의 트럼프와 비슷한 정책을 펼침. 그는 위대한 미국을 외치며 소련을 이기자며 국방비를 늘림. 계속되는 군사적 압박에 소련되 별 수 없이 군비를 늘려야 햇고, 이는 가뜩이나 어렵던 소련경제를 거덜냄. 결국 소련은 외국에 대한 재정지원을 포기. 소련 중앙정부의 지원에 기대서 생활하던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위성국가들이 경제사정도 연쇄적으로 악화되는데, 이러한 경제난은 소련 내 연합국들이 15개 독립국가로 쪼개지는 소련 해체의 주요 원인이 됨. 동유럽의 독립에는 소련의 군대철수도 한몫했다. 미국과 서독은 소련군대가 동유럽에서 철수해도 나토는 동유럽을 차지하지 않겠다며 서면약속을 했음.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그 약속을 믿고 군대를 철수. 물론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89년 11월 동독이 무너지고 다음해 독일은 통일은 맞이하게 되는데, 이후 마치 도미노처럼 동유럽은 소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체제로 빠르게 돌아섬. 결국 소련내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고르바초프는 실각했고 소련도 해체됨. 혼란한 상황에서 쿠데타 세력을 물리친 옐친이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름. 하지만 옐친이 이끌던 91-99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도입되는 과도기의 러시아는 치안과 경제가 모두 무너지며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로써 미국은 경쟁자 없는 세계 최강국이 된다
- 유럽의 에너지 안보는 러시아와 직결된 문제. EU는 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남유럽 경제위기까지 겪고있는 상황. 이 와중에 러시아의 천연가스마저 끊어지면 큰일이기 때문에 EU가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제재하지 못하는 것. 실제 러시아는 서유럽이 소비하는 천연가스의 30%를 공급. 더구나 EU 북해유전 가스생산량은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이고, 핀란드, 체코, 불가리아, 우크라이나는 가스 대부분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음
- 러시아 입장에서도 가장 큰 수익을 내고 있는 가스와 원유수출은 매우 중요. 러시아의 천연가스 중 절반 이상이 우크라이나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에 공급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러시아 제조업 교역도 우크라이나를 통과함. 러시아와의 분쟁이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송유관을 전부 국유하해버림. 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는 가스망을 구상하고 건설해왔다. 발트해를 거쳐 독일로 연결하는 가스관과 흑해를 통과해 터키로 바로 연결하는 가스관을 건설해 유럽으로 가스를 공급하는 방안. 만약 러시아의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러시아의 유럽에 대한 영향력은 더욱 강화될 것임.
- 06년 1월과 09년 1월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가스 가격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공급되는 러시아 가스관이 처름으로 차단됨. 때마침 겨울이라 동사자가 발생하는 등 유럽의 피해는 막대했다. 특히 발전가 주거용 난방을 러시아 가스에 크게 의존해온 남동부 유럽의 피해가 컸다. 통과세 문제로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 등이 러시아와 자주 갈등을 빚자 유럽국가들은 러시아오 직통으로 연결된 가스관 건설을 추진. 11년 러시아에서 발트해를 통과해 독일로 바로 연결되는 세계 최장 해저가스관이 완공됨. 비슷한 길이의 노르드 스트림도 19년말 완공예정. 러시아의 가스생산지도 서부 시베리아에서 세계 최대매장량을 자랑하는 북극해 인근의 북부지역으로 이전되고 있음. 북부 러시아로 가스망이 연결되면 EU의 에너지 수요를 안정적으로 충족시켜 줄 것임. 게다가 새로운 가스관은 50년 이상 낡은 가스관보다 운송비도 절반 정도이므로 가스 가격도 낮아질 것임. 또한 러시아 남부에서 흑해 해저를 통해 터키 서부로 연결하는 투르크 스트림 가스관도 건설중. 러시아 대규모 가스 매장지를 터키의 가스운송 네트워크에 직접 연결하면 터키와 유럽에 대한 안정적 에너지 공급에 큰 도움이 될 것임. 이 가스관이 연결되면 그리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다양한 노선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 러시아 경제의 문제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 유가가 높을 때는 호황을 누리지만, 14년부터 배럴당 100불을 넘던 유가가 30불 아래로 떨어지고 경제제재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음. 미국 셰일혁명으로 장기적으로 고유가 시대는 저물고 있다. 수입의 상당부분을 천연가스 수출에 의존하는 러시아 경제도 타격을 받을 것임. 그렇게 되면 군사력 강화를 위해 군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비용도 감당하기 힘들 것임. 미국이 본격적으로 LNG 가스를 수출하고 유럽과 독립국가연합 국가들 역시 본격적으로 셰일가스를 생산하면 자원을 무기로 유럽을 압박하는 기존 외교방식도 힘을 잃을 것임. 두번째는 부의 불평등. 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국가의 부를 소수가 독점하고, 마피아가 경제를 장악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함. 푸틴은 부당하게 분배된 일부 에너지 기업드을 국유화하면서 국가재정을 강화하고, 정상적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높은 인기를 누림. 그럼에도 여전히 러시아의 부정부패와 빈부격차는 극심함. CS가 발표한 글로벌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상위 1%가 국부의 74.5%를, 인구 중 단 110명이 국부의 35%를 차지. 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10%가 지닌 자산이 무려 82%로 역시 빈부격차가 극심한 미국의 76%에 비해서도 심각함
- 폴 케네디는 저서 강대국의 흥망에서 한 국가나 제국이 쇠퇴하는 것은 국제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군사력과 그에 걸맞는 경제력이 불균형을 이룰 때 발생한다고 언급. 러시아는 여전히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강대국이지만, 거대한 영토를 운영할 힘이 부족. 인구와 경제력에 걸맞지 않는 거대한 영토는 자칫 러시아를 위험에 빠뜨리는 덫이 될 수도 있다. 오늘날 러시아 극동지역은 인구부족과 재정부족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울러 밀려오는 중국 자본과 중국인들로 인해 중국에게 이 땅을 다시 빼앗기지 않을까 걱정중.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톡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와 연계할 수 있는 길을 모색 중. 러시아가 15년 발효한 블라디보스톡 자유항법에는 비자발급 간소화, 24시간 통관업무, 거주자와 외국기업에 대한 각종 세금혜택 등 파격적 내용을 담고 있다. 블라디보스톡을 완전히 개방해 홍콩 같은 자유지대로 만들어보겠다는 구상. 이곳은 러시아에서 외국인에 대한 세금혜택이 가장 좋은 도시다.
- 과거 중동은 셀주크투르크 뒤에 등장한 오스만제국(1299-1922)이 통치하던 곳. 오스만제국은 터키 부근의 오스만이라는 소규모 부족들이 점차 발전하며 형성되었고, 14-15세기 크게 성장했는데,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하며 지중해와 흑해의 패권을 거머쥠. 오스만 제국은 중동과 발칸반도까지 차지하며 유럽을 능가하는 거대세력을 이루는데, 인도와 중국의 향료와 비단을 구하려면 오스만 제국을 꼭 거쳐야 했다.
- 영국은 어떻게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렸나? 1869년 프랑스와 영국의 자본으로 수에즈운하가 건설되자, 이전까지 아프리카를 돌아가야 했던 항로가 단축되면서 서구열강은 수에즈 운하의 통제권을 놓치지 않으려 애씀. 이때부터 유럽열강들은 중동지역의 석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 오스만제국은 산업혁명도 받아들여 20세기 초까지도 군사대국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로 힘을 합친 연합군과 독일, 오스트리아로 뭉친 동맹국은 오스만 제국을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할 정도. 그런데 러시아가 전쟁을 걸어오자 오스만제국은 결국 독일과 손을 잡음. 오스만제국과 적이 된 영국과 프랑스는 해결책을 고민했고, 영국은 프랑스에게 중동을 분열시켜 오스만제국을 없애고 함께 나누어갖자고 제안. 영국은 600년간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던 많은 아랍 부족에게 오스만 제국을 같이 흔들어주면 독립을 지원하겠다며 유혹. 1915년 영국은 맥마흔 선언을 통해 전후 아랍인의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했고, 아랍의 부족세력들도 오스만제국에 저항하면서 오스만제국은 내부부터 무너짐. 전쟁규모가 커질수록 막대한 자금이 필요함. 영국과 독일은 전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유대인 자본이 필요했음. 당시 유럽에서는 금융을 장악한 유대인만한 자금줄이 없었기 때문. 특히 미국이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할 때 자본을 지원할 만큼 부유한 로스차일드 가문을 영국과 독일 양측에서 찾아감. 원래 로스차일드는 1차대전 까지는 러시아가 유대인을 가장 박해했기 때문에 러시아가 속한 연합군 측인 영국보다는 독일에 자금을 대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성서를 근거로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이곳에 유대민족국가를 건설하자는 시오니즈이라는 유대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때였다. 돈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 영국은 이를 돕겠다고 약속. 1차대전 중 영국 외무장관 벨푸어가 과거 유대인들이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영토를 돌려주겠다며 유대인 지도자 로스차일드 남작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벨푸어 선언(1917). 여기에는 미국계 유대인의 여론을 연합국편으로 끌어들이고,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면 이집트의 수에즈운하로 접근하는 통로를 지키는 데도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 아라비아반도의 수많은 부족들은 20세기 초, 서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싸웠는데, 특히 알-사우드 부족은 영국군의 지원하에 오스만제국을 몰아내고 아라비아반도를 정복했고, 32년 사우디아라비아왕국으로 승인받음. 강대국들도 유전이 없는 사우디에 관대했음. 하지만 6년 후 돌연 대규모 유전이 터지며 사우디는 부자가 됨. 사우디는 사막지대에 도로와 거대도시를 건설하고, 이후 미국의 동맹국으로 성장. 사우디왕족은 국가통합을 위해 와하비즘이라는 이슬람 원리주의 사상을 건국이념으로 내세움. 알케아다, 탈레반, 하마스 등은 모두 수니파인데 극단적 이슬람 보수세력들은 모두 와하비즘에 뿌리를 둠. 오사마 빈라덴도 사우디 출신이며, 파키스탄 탈레반을 교육시킨 것도 사우디임. 사우디는 지금도 전 세계의 원리주의 단체를 지원하고 있는 가장 보수주의 국가임. 사우디는 18년에야 여성의 운전을 허용했고, 이슬람 국가로서 종교경찰을 두고 있다. 한편 이란은 인도-유럽어족의 페르시아인이 61%이고, 알제리인, 쿠르드인 등 다양한 민족이 분포함. 8200만 인구로 외국인 노동자 없이도 국가를 운영할 수 있음. 이란은 절반이 산이고, 경작지와 사막이 각각 4분의 1로 농업이 발달해 식량자급이 가능. 카스피해 연안은 아열대지만, 산악지대에는 스키장도 있고, 중동지역에서는 가장 풍요로운 지역임. 페르시아 제국 후예인 페르시아인은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온 아리아인으로 백인가 뿌리가 같음. 과거에는 아케메네스 제국건설 등 화려한 고대문명을 꽃피웠지만, 651년 미개하다고 여기던 아랍의 이슬람 세력에게 무력으로 굴복을 당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실을 항상 굴욕적으로 느껴왔다. 이들은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으나 세금혜택을 이유로 점차 이슬람으로 개종. 이후 아랍제국은 페르시아인을 행정관료로 채용하고 그들의 통치술을 도입해 더욱 성장. 페르시아인은 아랍세력 이후에도 셀주크투르크, 오스만투르크, 몽골, 티무르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지만, 나름의 문화를 발달시키며 민족성을 지켜왔음. 지금도 이란은 과거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꿈을 간직한 채, 아랍인으로 싸잡아 불리는 것을 매우 싫어함. 그들은 경쟁국인 사우디에 대해 석유가 고갈되면 사라져버릴 신기루 같은 나라라고 여김
- 미국은 1차대전 이후 20년대와 30년대에 영국 정부에 압력을 넣어 미국 석유기업들을 중동으로 진출시킴. 28년 7월 이라크의 석유자원 채굴권을 획득한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중동의 실력자로 부상. 미국은 중동의 석유산업 장악에 초점을 맞춤. 이란의 팔레비 정권도 과거에는 미국의 최대우방이었으며 미국 무기의 최대구매자였음. 하지만 이란 혁명 이후에 이란의 석유산업에 대한 미국의 진출이 불가능해지자 관계가 급속히 악화된 것. 냉전시대에 미국은 소련이 중동으로 남하하는 것을 적극 견제. 중동과 카스피해 지역을 연결하는 에너지벨트(아프간, 이란, 이라크, 시리아) 구축은 미국에 중요했다. 미국은 안정적으로 석유를 확보하고, 막강한 해군력으로 태평양 및 대서양 석유 수송로를 관리하려 했다. 아프간은 중동과 카스피해 석유를 감시하고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여서 지금도 특별관리중. 특히 미국은 수십년간 사우디, 이라크, 이란내 석유산업으로 진출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중국과 러시아가 이들 나라들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저지해옴. 미국은 전통적으로 이란의 시아파와 대적할 중동국가들을 지원해옴. 상황에 따라 사우디, 이라크, 이스라엘을 이용해왔고, 때로는 과격 수니파 단체를 재정지원을 미끼로 끌어들여 시아파에 대적하게 했다. 미국은 탈레반을 중동 및 아프간 지역에서 소련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이용하기 위해 지원해 옴. 하지만 이후 탈레반은 알카에다 테러그룹과 연계해 반미세력으로 성장했고 IS의 뿌리도 여기에 있다. 또한 미국은 중동국가들을 설득해서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중앙아시아 국가 등에 자국의 군사기지를 주둔시키려고 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다른 중동국가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써옴.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면 중동의 질서가 무너져서 유가가 폭등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 유가폭등은 셰일혁명 이전의 미국에는 큰 타격이었다. 실제로 미국을 휘청거리게 했던 70년대 오일쇼크도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정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 미국은 2차대전 이후에 세계 패권을 차지하며 석유와 가스의 통제권을 쥐려고 노력. 미국이 중동에 오랜 세월 군사개입을 해온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함. 당시 세계 최대 원유수입국이던 미국은 사우디 등 아랍 산유국들의 안보를 보장해주는 대가로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옴. 일본, 한국 등 동맹국들도 그 혜택을 누려온 것이 사실임. 하지만 셰일혁명을 이룬 미국의 최우선 목표는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견제. 중국은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 등 여러 지역에서 전쟁을 치르며 힘을 빼는 틈에 아프리카, 남미, 중앙아시아 등 전 세계로 진출. 게다가 2000년대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이라크, 사우디, 이란 등지에서도 전 방위 에너지 외교를 펼치고 있음. 중국은 이란 및 이라크 내의 반미감정을 적극 이용하고, UN의 제재까지 위반해가면서 적극적으로 투자해옴. 중국은 아덴만 근처에 군사기지가 있지만, 아직 중동에서 미국과 같은 군사력과 영향력을 발휘하기란 불가능. 반면 미국은 언제든 중국에 대항해 군사력을 개입할 수 있음. 미국은 셰일혁명 이후 중동지역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감소. 이제 미국은 석유 생산 1위 국가이므로 국제유가가 상승해도 예전처럼 타격을 받을 걱정이 없다. 더 이상 중동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 따라서 이라크전쟁 때처럼 무리하게 중동문제에 개입할 가능성은 낮음. 미국이 아랍의 봄이나 시리아내전 사태에도 불구하고 중동에 전면적 군사개입을 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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