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스스로가 쾌락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는지 모른 채 계속해서 뭔가를 구입한다. 새로운 상품이 자신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말이다. (댄 애이얼리, 경제심리학)
- 외환위기 직후인 98년만 해도 우리나라 가계부채 총액은 190조 수준,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율은 55.8%에 불과. 반면 저축률은 70년대 이후 꾸준히 상승하여 87년 24%로 OECD 국가중 최고수준에 올라선뒤 2000년까지 부동의 1위를 지켰다. 각 가정은 비록 지금보다 수입은 적었을지라도 빚이 적거나 거의 없이 착실하게 은행에 저축한 돈으로 미래를 설계했음. 월급날 잘해야 통닭 한 마리를 사들고 귀가할 지언정 이자상환을 걱정하지 않았고, 카드 돌려막기에 초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하는 목적이 가족의 밝은 내일을 위한 것이었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은 아니었다. 그렇다. 우리에게도 빛나는 자유인의 시절이 분명 있었다.
-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선불제에서는 지불하는 가격만큼 제품이 가치가 있는지를 따짐.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 판단기준, 즉 의사결정 프레임은 상품의 장점을 찾는데 집중. 반대로 후불제에서는 '나중에 후회할 만큼 하자가 있는가'라는 쪽으로 프레임이 이동함. 결정적 하자가 없다면 우리는 나중에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음. 빚은 이런 후불제 프레임이 작용하는 경향이 크다. 나중에 원금상환뿐 아니라 이자라는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지만 당장은 수중에 들어온 대출금을 횡재처럼 여기게 됨. 결국 먼저 상품을 차지하듯 돈을 손에 쥐고 나중에 비용을 부담하는 후불제 프레임에 갇혀 비용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게 됨. 빚을 공돈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은행의 대출마케팅 앞에서 당당히 됐다면 거절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임.
- '내 탓' 논리는 그간 금융사들이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학습시킨 결과. 금융권이 불완전 판매책임에서 자유로워지려고 사람들에게 '내 탓'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킨 것. 그러나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이 투자상품의 불완전 판매에 따른 위험은 키코와 후순위채, 더 나아가 펀드와 회사채, 각종 대출상품 등 개인의 자산운용 전반에 광범위하게 잠재되어 있음. 투자실패, 채무상환 등 모든 책임을 금융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금융사에게만 철저히 유리한 지금의 시스템은 결코 공정하다 할 수 없다.
- 돈, 돈을 계속 벌어라. 그러고 나서 혹시 미덕이 따라오겠다고 하면, 그리하라. (조너선 스위프트)
- 친구가 부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사람들의 안락과 판단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없다. (도둑의 소굴, 제임스 스튜어트, 자산가격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시기의 사람들의 심리)
- 당신이 3억짜리 주택을 구입해 이웃에게 5억에 팔았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2억을 거머쥐었다. 그 2억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바로 당신의 이웃이 지불한 비용이다. 그 이웃의 돈이 넉넉해서 집을 5억에 구입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난 몇 년간 주택시장 흐름을 비추어보면, 당신의 이웃은 2억 이상 모기지 담보대출을 끼고 20년 혹은 30년 상환계획으로 집을 샀을 것임. 결국 당신이 손에 쥔 차익 2억은 당신의 이웃이 20년, 30년간 일해서 갚아야 하는 돈이다. 누군가 차지하는 자본소득이란 다른 누군가가 미래에 받을 노동소득, 즉 대출원금인 셈이다. 이처럼 너의 손해가 나의 수익이 되는 자산 빼앗기 경쟁구조를 갖고 있는 재테크 시장에서 중산층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 결과적으로 중산층의 노동소득은 재테크에 성공한 소수의 자산소득으로 이전되었다. 노동소득의 양극화와 더불어 자산의 양극화까지 벌어진 셈. 사회 안전망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부자되기에 매달렸던 중산층은 결국 가난해짐. 재테크 열풍은, 지친 얼굴로 상담을 하러 왔던 부부처럼 20년간 나워 갚아야 하는 숨막히는 빚의 미래만을 만들었을 뿐이다.
- 바보 같은 짓 가운데 그야말로 최고봉은 항상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 외환위기 직후 찾아온 벤처 거품과 부동산 투자, 그리고 펀드 열풍 속에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부자되기 신드롬에 빠져들었다. 자본소득, 즉 불로소득에 대한 달콤한 유혹은 소비절제마저 무장해제시켰다. 때맞춰 기업들의 공격적 마케팅이 강화되면서 소비자를 향한 집요한 감성조작이 대형마트와 홈쇼핑 등 더욱 다양해진 쇼핑공간으로 확대됨. 외환위기 이전에는 저축이 독려되고 절약을 강조했다면 위기 이후에는 절약이 미덕이 아니며 소비가 경제성장에 중요한 동력이라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발휘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착각, 절약대신 소비가 상생의 밑거름이라는 믿음은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에 경계심을 갖는 대신 흥분을 조장. 게다가 자산시장의 거품 탓에 돈을 번 것 같은 착시현상이 만연했고, 자산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소비가 늘어나는 이른바 부의 효과까지 나타남. 가계의 자산구조는 집에 딸린 대출, 반 토막 난 펀드와 더불어 신용카드 소비의 확대로 현금흐름마저 동맥경화에 걸리고 말았다. 우리 사회를 휩쓴 부자열풍은 중산층이 노동시장의 구조조정에 맞서 연대와 저항을 선택하는 대신 머니게임과 소비확장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소비확장은 저축률을 떨어뜨리고 비상금이 없는 가계는 미래에 대한 과도한 불안 때문에 보험가입을 늘리면서 금융비용이 금융비용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됨. 이 역시 한편으로는 정부의 방카슈랑스와 자통법 제정이라는 정책적 의지가 만들어낸 금융 과소비다. 정책 변화로 금유오히사간 판매장벽이 허물어졌고 보험사뿐 아니라 은행, 증권사까지 보험판매에 나섬. 이제 소비자들은 보험사 직원의 방문뿐 아니라 은행에 가서도 보험강매에 시달려야 한다.
- 거품은 항상 터지기 마련이다. 거품은 그 의미자체로 지탱할 수 없는 가격변동이나 현금흐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찰스 킨들버거, 광기,패닉,붕괴 중에서)
- 주택시장이 안정된 유럽의 경우 각 지역별로 공정임대료를 정하거나 평균적 임대료를 정하고 그 이상으로 임대료를 책정하지 못하도록 금액 상한제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 인상률 상한제를 채태갛고 있는 것은 기본이고, 영국의 경우에는 집주인이 정한 임대료에 세입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임대료 조정관이나 조정위원회가 임대료를 조정. 특히 세입자가 계약종료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한 임대차 계약이 계속 유지됨. 만약 집주인이 계약연장을 거부하고자 한다면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하는데, 영국은 그 사유를 법률로 정해놓았고 일본은 법원이 판단. 이렇게 선진국은 주거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통해 임대시장의 급격한 가격변동에 따른 사회의 충격을 최소화함으로써 혼란을 방지.
- 우리나라에서는 세입자 보호정책이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보는 정서가 강함. 그러나 집을 가지고 과도한 부를 챙기지 못하게 하는 정도의 규제는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함. 그런 부분적 제한을 통해 부동산 시장 전체가 안정되면 국가경제 전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침. 실제로 부동산 투기가 지나치면 장기적으로 금융시장 전체가 혼란에 빠짐. 제로섬 게임 혹은 공멸을 자초할 수도 있는 부동산 투기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국가의 안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함. 모든 것을 개인의 자유로운 권리 행사로 내버려둘 거라면 신호등은 왜 만들고 횡단보도는 왜 만드는가. 전체 시장을 보호하려는 적절한 규제는 시장 참여자간에 공정한 룰로 이해되어야 함. 특히 주거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은 정부의 중요 역할 중 하나. 이것을 오로지 재산권 보호에만 초점을 맞춰 과도할 정도로 주거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심각한 직무유기다. 정부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방기하면서 우리는 부동산 계급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렵게 벌지 않고 공짜로 생긴 돈에는 상대적으로 가치가 덜 하다고 느낌. 그래서 쉽게 쓰는 경향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소득 서민가구의 경우에도 한계상황에 내몰려 있기는 하지만 빌린 돈을 공돈으로 여겨 치밀한 계획없이 쓰게 될 위험이 있다. 결국 어디에 썼는지도 모르게 돈이 사라지는 허탈한 경험을 하게 됨. 그리고 그 돈을 갚아야 하는 현실에서 더 큰 절망으로 내몰려 자립의 동기가 극도로 낮아지는 무기력 상태가 됨. 정부가 저소득 서민가구에 금융지원을 하고 싶다면 빚을 늘리는 정책으로 가선 안된다. 오히려 극단적 상황은 사회복지로 해결하고 자립의 동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저축을 장려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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