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전집착 증후군
- 우리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돈이라는 물건은 불가사의하게도 삶의 모든 부분을 점거해버렸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유일한 수단은 돈이다. 모든 물건에는 가격이 붙는다. 그 명제는 언제나 참이며 대단히 명확하가. 돈이란 우리에게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도구임고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 부재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본질적으로 세상은 돈으로 만들어지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토록 결핍에 시달리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 최근에는 우버, 딜리버루, 태스트래빗, 리프트와 같은 기업들이 등장해 새로운 노동의 미래를 정의하고 있음.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고용에 따르는 모든 부담을 노동자 개인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방식. 어떤 사람들은 이런 플랫폼 비즈니스를 첨단의 기술적 혁신과 모바일 앱이 합쳐진 새로운 형태의 사업이라 평가함. 하지만 그 기업들은 경제적 착취와 근로자 권리 침탈로 대표되는 또 다른 사회적 퇴화를 상징할 뿐이다. 최근 떠노르는 블록체인 기술도 일각에서는 플랫폼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접근방식이라고 치켜세우지만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 기술은 현재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지도 모름. 공유경제 참가자들은 적절한 보상을 받기는 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끊임없는 냉대 속에 생계를 이어가기조차 어렵다고 느끼게 됨
- 팔 수 있는 것이라고는 노동력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구축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뭉쳐야 함. 가장 중요한 것은 단결. 하지만 소위 공유경제는 그런 정신적 기풍을 파괴함. 공유경제가 설계된 목적 자체가 여기에 있다. 모든 개인은 그리고 그의 가족은 결국 좌절에 빠질 뿐 아니라, 현재의 고통에 영원히 점령당할 수밖에 없다. 역사는 몰락하고, 미래는 상실된다.
- 현대는 특별한 형태의 암흑시대다. 이 시대의 기업들은 빅데이터를 포함한 다양한 기술적 플랫폼을 활용해서 노동자들로 하여금 인간의 물리적 능력 이상으로 오랜시간 동안 일하도록 만듬. 그들은 이런 발전을 바탕으로 21세기 경제의 심장부에 일종의 사이버 봉건주의라는 암흑세계를 만들어냄. 이와 같이 불편한 트렌드의 첨단을 달리는 기업의 사례에 다시 한번 우버가 등장. 우버는 행동경제학자들의 통찰을 바탕으로 운전자들이 자신의 근무시간을 적절하게 제한하려는 자연적 욕구에 역행하는 운전자 대응시스템을 설계. 이 때문에 운전자들은 거의 쓰러질 때까지 운전대를 잡고, 회사는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인다.

2. 파괴의 경제학
- 파괴의 경제학은 혁신, 생산, 성장이 아니라 약탈과 착취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자유의 이상과 후기 자본주의의 가혹한 현실 사이에 가로놓인 벽 위에 걸터앉아, 아직도 실리콘밸리에서 만들어진 도구나 네트워크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 줄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다.
- 애론 스와르츠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지난 몇년간 세계를 휩쓸었던 새로운 경제환경을 상징하는 사례. 내가 파괴의 경제학이라고 이름 붙인 현상은 07-08년 경제위기 이후에 기업들과 정부가 확산시킨 정책들과 관련이 깊다. 사회적 가치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고찰해보면, 이 파괴의 경제학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부의 축적방법에 대해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지님.
첫째, 그들은 공동체 기반의 자원이나 경제적 활동을 포획하고 점령하는데 중점을 둔다. 공공은 지난 20년간 기업들이 점령해온 사회의 영역들 속에서 마르지 않고 남아 있는 가치의 마지막 저수지다.
둘째, 기업과 국가는 애론 스와르츠에게 사용한 것과 같은 전술을 사용해서 약탈의 의식을 철저히 통제하고 보호한다. 예전에 운동가들은 사회적 관습을 다소 거스르는 행동을 해도 적당히 용서받았지만, 요즘에는 강력한 세력을 지닌 무리들과 맞붙을 각오를 해야 한다.
셋째,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른 경제적 수탈의 시대에서, 모든 민주적 요소는 심한 경멸과 무시의 대상이 됨. 국가와 기업이 오늘날처럼 민주주의에 노골적 증오를 드러낸 적은 없었다. 정부는 민주주의를 질병과 같이 기피하며, 이를 얄팍한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린다.
넷째, 파괴의 경제학은 이미 생명유지장치(양적완화, 무담보대출, 느슨한 신용)에 의존해 가까스로 숨을 쉬는 오늘날의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을 영구적으로 고착화할 뿐 아니라, 이 위기의 부정적 효과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함.
-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자본주의는 60년대 반권위주의, 그리고 레이건정부 이후 번성한 경제적 자유주의의 기묘한 결합에 의해 탄생. 69년 피플스 파크에서 군대에게 공격을 당했던 학생들은 명백히 자본주의 문화에 적대적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90년대가 되자, 그들 중에 플라워 파워(60-70년대 청년문화를 상징했던 반전과 평화의 슬로건)의 정신과 레이건이 갈망했던 시장자유주의를 결합한 사람들이 등장했다.
- 미국의 서해안을 무대로 활동하던 작가, 해커, 자본가, 예술가들은 느슨한 동맹관계를 결성함으로써 도래하는 정보시대의 이질적 교리, 즉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를 정의하는 데 성공. 이 새로운 신념은 샌프란시스코의 자유분방한 문하적 특성과 실리콘 밸리 하이테크 산업의 기묘한 결합에 의해 생겨났다. 잡스와 빌게이츠는 이 이데올로기를 전형적으로 상징하는 사람들이다.
- 당신이 받는 보수는 조직이라는 위계질서의 가파른 피라미드 상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에 따라 달라짐. 그리고 그 위치는 당신이 이미 소유한 부를 의미. 이 위계질서의 정점에 위치한 최고 경영진이나 고위관료들은 모두 비슷한 엘리트 학교나 집안 출신이다. 이 사람들은 사실 더 이상 일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받는다. 그들은 불로소득자, 임대소득자, 유한계급 인사들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의 일원이며, 영국, 미국, 그리고 제3세계의 상당부분을 통제. 두번째 계급은 주로 부자들을 위해 일하면서 상당한 고소득을 올리는 직원들. 세번째 계급은 직업 피라미드의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99%의 사람들이다.
- 많은 사람들이 정보기술의 혁명을 인류 역사의 엄청난 전환점으로 여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메인프레임이 발명된 것은 42년이다. 개인용 컴퓨터는 70년대에 등장했으며, 80년대에 크게 성능이 향상됨. 90년대에는 바코드가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이 혁신들이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 2000년 이후의 발명품들은 주로 오락이나 통신영역에 집중. 장비들은 더 작아지고 스마트해졌으며, 한층 유용해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전등, 자동차, 실내배관 등과 같은 발명품처럼 인간의 노동생산성이나 생활수준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임시직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감원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쉽고, 값싼 노동력을 고용하는 일이 가능한 곳에서는 기술적 혁신의 속도가 느리다고 지적돔. 파괴의 경제학하에서는 대부분의 노동력은 유연한 노동관계를 바탕으로 구축됨. 그런 환경에서는 지식의 축적이나 조직적 학습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음. 오늘날의 고용이란 노동자 개인 입장에서는 희생을 의미하며 고용주, 기관주주, 사모투자기업 등에게는 최대한의 약탈을 뜻할 뿐이다.

3. 호모이코노미쿠스는 왜 죽어야 했나
-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99%의 보통 사람들은 오직 죽느냐 사느냐의 이분법적 갈림길에서 맹목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 그곳에서는 상실의 가능성이 자신이 수행하는 모든 일을 정의한다. 그들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담보대출 상환을 제때 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자동차 대출을 상환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퇴거명령을 취소할 수는 없다.
-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인간형의 순수한 추상적 개념, 그리고 그가 경제적 이익을 취득하는 데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다. 이는 두가지 측면에서 주목해볼만 하다.
첫째,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실패는 같은 운명에 빠지지 않으려면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본보기의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분위기를 확산시킴. 또한 신자유주의 사회는 이런 문화를 직업윤리와 사회적 질서를 관리하는 데 포괄저긍로 사용함. 물론 이런 프로세스는 개인들을 통제하는에 활용되기도 함. 사람들은 경제적 인간형을 스스로 구현하는 데 실패하면, 이 인간형을 거부하기보다 정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실현 불가능한 호모이코노미쿠스의 이상적 형태에 보다 강력하게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로렌 벌랜트는 사람들이 현실에 실패하고 상처받을수록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를 더 강하게 갖는 현상을 잔혹한 낙관주의라 불렀다.
둘째,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혼란에 빠진 오늘날의 상황을 틈타 새로운 형태의 경제가 어두운 그늘에서 생겨났다. 부채와 관련된 산업은 가장 대표적 예이다. 또한 미국에서는 자기계발과 관련된 업종이나 민간교도소 사업도 시장규모가 수십억 불에 이르는 비즈니스다. 또한 제2의 로드니 잭슨이 나올지 모른다는 가능성은 막대한 경호및 치안 서비스의 필요성을 불러왔다. 대중 속에 만연한 우려와 좌절, 그리고 절망감은 자본가들에게 좋은 사업거리일 뿐이다.
- 권력은 합리적일 수 없으며, 합리적이길 바라는 일 자체가 비합리적이다. (칸트)
- 행동경제학은 그동안 경제적 인간의 이상적 행태를 더욱 확장시키는 역할을 은밀하게 수행해옴. 인간의 특징 중 하나인 예측 불가능성은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속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점유함. 행동경제학 창시자 중 하나인 대니얼 카너먼조차도 이렇게 인정. "행동경제학은 일반적으로 합리적 의사결정 모델의 기본구조를 바탕으로, 그 모델에서 발생하는 특정한 변칙들에 관한 인지적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 설계된 이론이다." 하지만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간 차원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보려 한다. 행동경제학은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변칙적 행동양식을 자본가의 좌표에 맞춰 설명하는 이론. 리처드 탈러가 쓴 책의 제목이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님. 사람들의 비합리적 행동, 즉 멍청한 선택은 기업가들 입장에서 결국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이 근본적으로 소름끼치는 학문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학자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쉴러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대기업들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잘못된 선택으로 이끄는지 입증. 문제는 두 사람이 이런 속임수를 상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엽적 문제로 치부해버렸다는 점이다. 히자만 그런 수단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적 속성이자, 끔찍한 신용사기라면?
-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주로 생산이라는 개념을 떠올림. 상품, 서비스, 경험 등은 일단 만들어져야 소비가 가능. 생산이라는 활동에는 시간과 투자 그리고 노동력이 필요. 하지만 오늘날 봉건주의적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기업들은 생산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음. 수익을 낼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없을까? 당연히 있다. 그들은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기보다, 사람들이 이미 소유한 생산도구들을 활용해서 그 제품과 서비스를 포위 및 약탈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원가를 절감시킨다. 이것이 우버, 딜리버루, 유튜브 같은 기업들이 채택한 소위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비즈니스 모델. 말하자면 이 회사들은 비공식 경제를 상업화해서 이를 공동체에 임대하는 수법을 사용함

4. 상실의 연극. 노동
- 우리는 사무실에서 나름 바쁘게 일하지만, 이는 결국 바쁘게 보이기 위해 바쁜 것일 뿐이다. 현대의 직장이 연극이나 공연 같은 보여주기식 행사장의 느낌을 주는 이유는 이 때문.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일을 하지만, 그 대부분은 불필요한 이들이다. 우리는 노동자로서 반드시 회사에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에는 심각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삶과 노동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회복함으로써, 일하는 삶을 평화롭게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함. 이런 속임수의 효과는, 언론매체를 통해 노동자들에 대한 극도의 착취 스캔들 같은 예외적 사건이 드러났을 때 오히려 증가. 말하자면 그런 사례들은 규범에서 벗어난 일부 기업들의 끔찍한 일탈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지옥은 대단히 표준적이고 정상적인 상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따라서 일과 삶의 균형을 제공한다는 프로그램들은 이 사회에 논란의 여지가 없이 잘 조율된 형태의 착취, 즉 직원들에게 너무 많은 노동시간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에 지장이 없는 그런 종류의 착취가 존재할 수 있다는 신화를 제공하는 역할을 함.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함. 자본주의적 노동 시스템은 수치적 한계를 통해 정의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일정한 수치적 레드라인을 넘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착취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질적인 관계다. 바로 이런 이유로, 노동자들이 현대식 사무실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업문에 몰두했는지에 상관없이, 자본주의적 생산형태는 본질적으로 과도한 노동을 수반할 수 밖에 없음.
- 원시사회의 구성원들은 비록 그 행동이 극도록 속박되고 규제됐지만 직업적으로 일을 하지는 않았다. 직업이란 국가가 발명한 모델임. 그 모델하에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보다 더 많이 일하거나 더 많이 생산함. 클라스트르에 따르면 우리가 생업경제라고 폄하해서 부르는 사회, 즉 사람들이 오직 자신의 필요에 따라 노동을 할 뿐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사회는 필요없는 과도한 활동을 거부함으로써 운영되는 듯하다. 직업이란 개념은 잉여가치를 전제로 등장. 다시 말해 일은 처음부터 과도한 일로서 시작됐다.

5. 바보들을 위한 미시경제학
- 우울증에 빠지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래도 열악한 작업환경에 감정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반응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사치인 사람들도 많다. 직원들에 대한 훈련이나 개발에 대한 투자가 정체되면서 앞날에 대한 개선이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현대의 직장인들은 권태라는 감정을 경험함. 산업화 시대를 선도했던 흥미롭고 역동적인 작업공간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죽을만큼 지루한 곳이 되어버렸다.
- 사람을 인적자본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은 결국 통일성이 강조되는 기업의 울타리 바깥으로 노동자들을 밀어내는 결과를 가져온다. 노동자 각자가 스스로를 경쟁적 환경속에서 여기저기 이동하며 활동하는 독립적인 미니기업의 대표라고 인식하기 때문. 그동안 시장의 합리적 변화에 따라 고용관련 법률과 규정도 크게 변화. 오늘날 새로운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급이나 기업의 문화가 아니라 바로 개인계약이다.
- 미국, 영국 뉴질랜드, 유럽대륙과 스칸디나비아 국가 등지에서 발생한 이런 변화의 원인은 다양함. 기업권력의 결합, 신자유주의적 국가정책, 제조업 일자리의 개도국 이전, 서비스 및 IT 부문에 특화된 형태의 노동수요 등등. 하지만 내 생각에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인적자본 이론과 관련된 지적 움직임 역시 오늘날 고용의 개인화 현상이 확산되는 데 큰 몫을 한 것 같다.
- 작업장을 통제하기 위해 과도하게 개인화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관리방식은 이제 아마존의 애니타임 피드백 툴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임. 하지만 기업들은 이미 비슷한 시스템들을 오래전부터 사용해왔음.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360도 평가다. 2차대전 이후부터 존재해온 이 시스템은 어떤 직원의 상사, 동료, 부하직원이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전방위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을 말함. 문제는 이렇게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평가가 객관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 특히 평가를 하는 사람이 평가대상자에게 불만을 지니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이는 마치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 형성되는 탈억제효과와 비슷. 그러다보면 수많은 거짓말과 잘못된 생각들이 여과 없이 표출되는 결과가 빚어짐. 경험많은 비즈니스 조언자들이 동료들의 익명 평가방식을 우려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더욱이 모든 직원을 서로 경쟁관계에 놓인 인적자본으로 인식하는 조직에선느 소위 오피스 악성댓글이 횡행할 가능성이 매우 커짐. 이 경우 조직은 진흙탕과 같은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비즈니스 전문가들은 대부분 피드백 순환과정을 빠른 시간내에 완료하는 일의 장점을 강조. 이 과정은 성과에 대한 평가, 그리고 피드백으로 구성됨. 피드백이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는 것. 컴퓨터로 데이터를 만들어내면 신속한 피드백이 가능해짐. 아마 요즘에는 역사성 처음으로 이 순환과정이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직원의 성과를 평가하는 일은 끊임없이 계속된. 하지만 기계에서 도출된 그 추상적인 숫자가 그 직원이 진정한 성가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가? 또는 이런 방법을 통해 여러 사람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팀의 전체적 효율성을 측정할 수 있나?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한때는 스톱워치가 담당하던 과업관리를 이제는 최첨단 컴퓨터가 대신. 그리고 수많은 관리자들이 무의미한 스프레드시트 사고방식에 시달림. 장황하게 나열된 숫자들은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신성한 진실이라도 되는 양 왜곡되어 받아들여짐. 테일러가 빅데이터나 애니타임 피드백 툴을 봤으면 아주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테일러의 아이디어는 당대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의 폭동을 불러일으켰다. 아마존으로 상징되는 데이터 기반의 관리방식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 자신의 집이나 자동차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내어주는 이유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이다. 낯선 이들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도구들은 머뭇거리는 사람들의 등을 떠밀어 공유경제라는 시스템의 문턱을 넘게 만든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이 문턱을 넘은 이유는, 수백만의 시민들이 생존을 위해 이렇게 기이한 형태로 돈을 벌어야 하게끔 망가진 경제와 해악적 공공정책 때문이다.
- 기업대 고객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공유경제 역시 마찬가지. 우버, 딜러버루, 태스크래빗 등을 포함한 기업들은 다음 세가지 단계로 작동.
첫째, 빈곤도가 높은 사회적 영역을 찾는다.
둘째, 그곳에 속한 사람들의 시간과 자원을 포획한다.
셋째, 포획한 자원을 고객들에게 더 비싼 값으로 판매한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공유경제란 결국 접근 비즈니스일 뿐이라고 말한다. 무엇에 접근한다는 말인가? 물론 삶 그자체다. 인적자본이론이 결국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현장은 바로 이곳이다. 공유경제 기업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삶을 이용한다. 수많은 사람이 돈을 받고 자신의 시간, 공간, 노동력을 연중무휴로 기꺼이 팔아넘기는 이 처참한 경제적 현실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그 포획당한 삶의 주인이 정확히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분배의 양극화 현상으로 가장 부정적 영향을 입은 사람들이다.
- 인적자본이론이란, 노동과 사회를 바라보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자기 이익 본위의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적 사고방식이 여실히 드러난 학설임. 하지만 현대의 사회, 경제에 만연한 불평등과 일방적 권력관계를 고려하면, 이 과도한 개인주의는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실패의 책임을 완전히 전가하는 역할을 할 뿐임. 인적자본 이론이 사람에 대한 투자를 의미한다는 말은 그런 점에서 어폐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는 사람에 대한 투자를 박탈하는 것에 가깝다. 신고전주의적 인적자본이론, 개인적 책임, 개인부채 등의 개념과 현대의 심각한 기술 및 교육결핍 현상 사이에 놓인 중요한 상관관계를 감안할 때, 신고전주의적 경제학은 그야말로 바보를 위한 경제학이론이라 표현해도 무리가 아님. 이 경제적 원리는 실제로 사회전체의 수준을 떨어뜨렸으며, 실력주의에 입각한 기술과 노하우의 배분원칙을 훼손.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들 스스로가 조만간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게 분명하다는 측면에서, 결국 우리는 자기무덥을 판 격이 되어버림. 만일 이 시스템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16년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나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좋다'고 공언한 트럼프 같은 사람들이 또다시 등장할지 모른다.

6. 조용한 지구
- 결국 세상에 다른 사람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자 최종적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을 다른 사람이 보증해준다는 의미이며, 그 역하을 서로가 내면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 이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선험적으로 이끌린다는 말과도 같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필요성이란 계산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계산이 끝나버린 것일지도 모름.
- 권력자들은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지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우리의 동의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정반대로 행동. 그들은 좋은 삶에 대한 수사법을 포기했다. 대신 우리가 제로-아워 계약, 부실한 연금계획, 악마같은 관리자를 거부한다면 앞으로 경제적 상황이 얼마나 악화될지에 대한 심각한 경고의 언어로 우리의 삶을 융단폭격한다. 자연적 본능에 따르면 우리는 당연히 그런 상황에서 뒷걸음치고 도피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 주된 이유 기이한 모습으로 변한 구타당한 배우자 증후군, 즉 경제적 인간이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제도에 더욱 의존하고 심지어 그것에 이끌리는 현상이다. 긴축경제의 이면에 숨겨진 또 하나의 소름끼치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 어떤 일이 불가능할지 아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무능력을 완벽하게 발휘해야 하는 상황은 얼마나 비극인가. 못되게 구는 고객에게 친절하게 말해야 하고, 쓸모없는 이메일을 수없이 보내야 하고, 학자금 대출 계약서에 서명해야 하고, 여성 혐오증을 지닌 상사에게 아첨해야 하는 그 상황이, 이런 식으로 여러 해가 지나면 그 사람은 심리적으로 대단히 불안정한 상태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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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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