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고령을 정의하는 개념 가운데 일부는 생물학에 근거함. 그런데 그 외에는 인간이 150년 사이의 단기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내용이 대부분임. 지금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노화개념에 얽매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 개념은 현실과 충돌을 일으키며 점점 위태롭게 변질되고 있음.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이는 일에 사사건건 제동을 건다. 허투루 보아 넘길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닥칠 고령화 사회는 노인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크게 의존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또한 이 개념 때문에 기업도 고령 소비자의 참된 욕구를 외면해 왔다. 하지만 고령 소비자는 이미 강력한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지고 부유해지고 까다로워지고 있다.
- 은퇴란 오랜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얻는 보상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개인마다 종종 경력은 다르더라도 이제 일을 그만하고 다른 연령집단과 동떨어져 사는 일상이 노인이 꿈에 그리던 삶이라 여김. 고령화를 다루는 아주 흔한 읽을거리에서 노인은 하나같이 어느정도 궁핍하다. 신체 여건상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정도 이기적이다. 노인이 어디서나 눈에 띄는 모습으로 밖에 나와 즐겁게 지내면 비록 오해에서 비롯했더라도 남의 돈을 거저 쓰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 두 이미지가 합쳐져 생성한 노인에 대한 개념은 결국 완벽한 소비자의 모습을 귀결함. 그런 노인은 레저 상품이나 휴식을 틀림없이 원할 터이고 노쇠한 신체를 돕는 의료나 접근성을 고려한 상품 또한 반드시 필요로 함. 이런 요구와 욕구를 다 충족하면 기업이든 비영리단체든 심지어 정책 입안자든 스스로 편견이 없는지 더 이상 내면을 탐문할 필요성이 사라지며, 따라서 고령인구에게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려 들지 않는다. 궁핍하고 이기적인 어르신이란 상반된 개념이 너무나도 착 달라붙어 있어 어느쪽이 진실인지 의문조차 품기 힘들다.
- 생명이 정상적으로 밟는 과정이라고 스스로 수긍하며 노인네는 궁핍하고 이기적이라는 내용으로 절정을 이룬 이 이야기는 비교적 최근 창작품이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권과 여러 시대에서 늙어가는 경험은 개인마다 달랐다. 누구에게나 적용하는 일정한 나이도 없었으며 법칙처럼 항상 똑같은 경로를 거치지도 않았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연금정책과 요양시설과 노인보호 전문기관이 유럽과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이와 동시에 이런 기관에서는 고령의 개개인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단일범주인 고령자로 묶어 버렸다. 그러고는 이 인구집단을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대중에게 각인했다.
- 능률전문가가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노동은 제로섬 게임이라는, 즉 한정된 일자리를 수많은 노동자가 나눠 갖는다는 생각은 노동 총량오류의 한 사례이며 이코노미스트는 "경제학에서 가장 유명한 오류"라고 지적. 왜 오류인지 설명하는 주된 근거는 경제 내에서 창출하는 일자리 양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따라서 유효한 일자리 수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일수 감축이나 조기 정년제 시행 등 명백해 보이는 해결책은 전반적으로 경제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분명히 알고 있다. 인구 고령화가 젊은 노동자 고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고령 노동자가 청년 노동자에게서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사실 대불황의 여파로 실업이 번질 때조차도 그러지 않았다
- 그렇지만 20세기 초에는 고령노동자가 훨씬 유능해 보이는 청년 노동자를 쫓아낸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음. 반면 의무교육 확대로 늙은 실직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면 젊은 고학력 구직자와 더욱 힘들게 경쟁을 벌여야 했다.
-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잠시 생각해보자. 예컨대 은퇴계획을 처음 판매한 사람처럼 델 웹이나 다른 초창기 은퇴 신화 설계자에게 떠오른 이 천재적 영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깨달았다.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시기에 다른 형태로 노인이 되지만 정부와 산업과 문화가 정의하는 고령자는 한 덩어리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거의 똑같은 나이에 고령자로 규정된다는 현실을, 주머니에 돈이 있는 65세 이상 건강한 사람에게 굳이 휴양이 필요 없었다. 지금도 대부분 그렇다. 대신 할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단순한 여가활용이 아닌, 타고난 본능으로도 정연한 논리로도 이해할 수 있는 삶의 방식에, 특권을 향유한다는 자부심에 돈을 썼다. 웹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이 새롭고 긍정적인 은퇴관을 포착하여 하나의 틀로 마련한 다음 팔았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이 상품을 사고 있다.
- 고령기술 사용자를 생각할 때 장애를 전제조건으로 삼아선 안됨. 오히려 장해관리가 전제된 목표라고 생각해야 함. 즉 노인은 장해요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가 여러 활동을 하려는 사람이다. 이는 중요한 차이다
- 노인을 해결해야 할 문젯서기라는 생각에 푹 젖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반응이 그다지 터무니없다고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영대학원생에게 빈 종이를 주고 다른 연령집단, 가령 10대를 대상으로 어떤 상품이 좋을까 상상해 보라고 했는데 기껏 내놓은 상품이 여드름 크림이나 경거망동하다가 다칠 경우를 대비한 목발이라면 과연 어떨까? 그렇다면 정말 실망스러울 정도로 빈약한 상상력이 아닐까? 노인이 지난 요구나 욕구에 대한 우리 사고방식도 이에 못지 않게 형편없다
- 미국의 여러 자동차 기업 경영진 덕에 1950년대와 60년대부터 명실상부 금언으로 굳을 말이 있다. "젊은이가 타는 차를 노인에게 팔 수는 있어도 노인이 끄는 차를 젊은이에게 팔 수 없다." 젊은 층도 사지 않을뿐더러 부모나 조부모 세대도 사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하면 수없이 부정적 연상을 일으키고 이런 습성은 뿌리 또한 깊어서 한번 박힌 선입견이 계속 위세를 떨치게 된다. 그리하여 어떤 상품이 확실하게 고령 사용자를 겨냥하면 대개 노인조차 모욕을 느끼고 딴 데로 눈길을 돌리면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사실 이런 편견은 실패를 낳는 원인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다른 여러 사항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노인이 처한 기초 수준의 생리적 요구를 해결하겠다는 태도 때문에 형편없는 상품을 만든다는 점이다.
- 남성이 여가 중심의 은퇴라는 막연한 장밋빛 미래로 노년을 그리는 반면 여성은 더욱 선명하고 더욱 가혹한 관점에서 노년을 바라봄. 그리고 이 차이는 소비자가 주머니 사정에 따라 현재의 노령 개념에 반기를 들 때 그 맨 앞에는 여성이 있으리라는 점을 시사함. 게다가 각 연령대마다 여성이 상대 남성보다 노년에 해결하기를 바라는 여러 문제에 대해 더 현명하게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 해결책에서 어떤 점이 미흡한지 깨닫고 잘못된 질문에 대해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다면 다름 아닌 여성이다. 또한 노인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상품과 노인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상품 사이에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지 인식할 사람도 여성이다.
- 루스 슈워츠 코완은 명저 '과학기술과 가사노동'에서 이론적으로는 여성을 도우려고 개발한 상품이 결국 가사노동량만 늘렸다고 주장하며 다양한 예시를 들었다. 한 예를 들면 한때 카펫 세탁은 이따금 혹은 철마다 온 가족이 다 나서서 돕는 일이었다. 그런데 진공청소기가 등장하면서 한 사람이 이 일을 도맡았음. 더구나 갑자기 이 사람에게는 이 일을 더 자주 하도록 요구했고 동시에 "집안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은 카펫을 밖으로 옮기는 의무에서 해방됐다. 또한 집안에서 가장 어린 사람은 카펫을 두드리며 터는 의무에서 해방됐다." 이 새로운 관점에서 보면 "진공청소기 때문에 카펫을 더 쉽게 혹은 더빠르게 세탁하게 되었는지 아닌지 묻는 질문에는 이제 대답하기가 꽤 까다로워졌다. 누구 일이 더 쉬워졌을까? 누구 일이 더 빨라졌을까?
- 진공청소기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한, 예컨대 세탁기 같은 상품이 낳은 결과가 차곡차곡 쌓였다. 가사노동을 절약하는 기기 덕에 사실상 남성만 가사노동에서 벗어남. 과거엔 가사노동을 양성이 평등하게 분담하거나 일손을 고용해 맡김. 이 결과 20세기 초 사회적 부도 유용한 소비자 상품도 증가하지만 "전업주부가 누리는 여가시간은 이와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전업주부 경우에는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고 이외 다른 가족은 생산성이 높아져 자신이 세운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코완이 책에서 제기하는 중요한 문제는 역사가 시작한 이래 어째서 여성은 결국 자신의 삶을 더 힘들게 하는 상품을 기꺼이 구입하거나 혹은 나서서 두둔하는 듯 보이냐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까닭은 분명함. 가사노동을 돕는 새로운 도구 덕분에 "최소한의 건강과 체면을 유지할 수 있어" 새로운 사람과 폭넓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이 ... 현대적 도구를 ... 압제자가 아니라 해방자로 여기는 태도는 조금 의아했다."
- 50년대 틀리 착용자가 어째서 거버 이유식은 사되 하인즈 노인식은 사지 않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경우 소비자의 일은 씹는 음식을 피하는 동시에 계산대 줄에서 품위를 지켜내는 것이다. 스티치 대 다른 다양한 고령층 고립완화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사용자의 일은 비슷하다. 데이트처럼 자연스런 사회관계 속에서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것이지 의료행위를 본뜬 강요된 관계를 통해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 역사적으로 기업은 소비자가 예기치 않는 방식으로 상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발견하면 무척 반가워했다. 새로운 시장에서 상품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보기 때문. 크리넥스를 예로 들어보자. 크리넥스는 20년대 킴벌리-클라크가 미용티슈로 처음 시장에 선보임. 그런데 소비자는 이 부드러운 종잇장이 곧 일회용 손수건으로 안성맞춤이라는 사실을 발견. 킴벌리-클라크는 마케팅 전략과 포장을 바꾸었고, 크리넥스는 곧 콧물닦이라는 등식이 성립. 그러고는 하룻밤 사이에 모두 코 푸는 방식을 바꾸었다. 영원히
- 예로부터 노인이 자신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정기적으로 도와달라고 요구할 때 해결책으로 내놓을 수 있는 방안에 얼마 없었다. 일손을 고용하거나 가족이 돌보거나 노인 시설에 맡기는 게 고작. 그런데 수요중심의 공유경제 체제를 이용해 필요한 부분을 서로 이어 맞추면서 린도버나 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자립방식을 직접 보여준다. 다친 허리 때문에 1마일 떨어진 일반 식료품점까지 걸어다닐 수 없었을 때 오롯이 혼자였다면 치료시설로 옮기거나 적어도 다양한 노인제도를 이용하며 의존도가 높아만 갔을 것이다. 인스타카트나 제트닷컴이나 다른 온라인 회사 덕분에 이런 시기를 더 늦출 수 있었다.
- 설사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은퇴와 더불어 찾아오는 정체성 상실감은 50년대와 60년대와 비교해 지금이 훨씬 혼란스러움. 50-60년대는 황금빛 노후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하며 당시 시류를 반영했다. 우선 은퇴 후에도 일하는 사람은 두 영역에 발을 걸치며 생산과 휴식 사이를 취청거리며 오갔다. 아주 옛날 은퇴자라면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그리고 은퇴 기념선물로 금시계를 받자마자 정체성 위기를 겪는 사람은 애당초 주로 남성이었음. 그런데 지금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똑같이 곤경을 치르고 있다. 게다가 여러 측면에서 노후가 변하고 있다. 기술이 진보를 거듭하고 소비자 성향과 요구가 바뀌고 수명이 늘어나고 종교 공동체를 비롯해서 보호시설이 사라지고 가족 구성원이 뿔뿔이 흩어지고 아이를 덜 낳고 이혼율이 높아지고, ...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회관습상 은퇴할 나이가 찾아오면 전혀 예상치 못한 미지의 신세계와 바로 눈앞에서 조우한다.
- 고령층이 감동하고 환호하는 상품을 디자인하려면 결코 생리적 요인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신상품을 출시하기 전에 소비자가 세상을 이해하고 활보할 때에 의지하는, 잘 예시된 정신모형을 무시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에이지랩 입장에서 고령층이 어떤 기술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면 이는 고령층이 바보라서가 아니다. 기술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상의 기술적 단점 자체가 분명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기술에 대한 정의를 바꿀 필요가 있다. 어떤 기술요소든 좋다라고 여기려면 고령층을 비롯해 예비 사용자 모두가 마음에 든다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 접근 가능한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자는 의미. 계단 한쪽에 설치하는 경사형 휠체어 승강기는 이 디자인 특성을 보여주는 한 예다. 반면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디자인 결정은 보편적 디자인이라고 함. 가장 대표적 예로 레버식 손잡이가 있다. 팔꿈치나 의수 같은 인공기관, 온전치 않은 팔다리나 관절염을 앓는 손으로도 작동할 수 있으며 심지어 무릎으로도 열거나 닫을 수 있다. 접근 가능한 디자인이나 보편적 디자인이나 그 특성은 기능적 측면과 인간적 측면을 모두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필수요소다. 하지만 수준이 더 높은 또 다른 접근성이 있다. 내가 보기에 이제껏 보편적 디자인으로 잘못 묶어서 다루었는데, 바로 초월적 디자인이다. 기본적으로 보편적 디자인이되 10점만점에 11점까지 후한 점수를 받은 경우다. 접근이 용이하다는 특성은 매우 유용하기 때문에 장애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높은 호감을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열망도 일으킨다.
-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하는 많은 일이 만들기 쉬운 무언가를 먼저 만드는 데서 비롯한다. 하지만 대중이 이것을 원할지 알 수 없는 노릇임.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고 더구나 이런 해결책은 아무도 선뜻 사려고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기술 우선접근방식에서 보면 충분히 팔 수 있으리라는 기분에 휩싸이기 쉬움. 한편 이런 풍토에서 등장한 상품이라도 소비자로부터 가장 열띤 호응을 얻은 상품을 살펴보면 대개 인간 내면 깊숙이 숨겨진 욕망, 즉 일곱가지 대죄아 일치하는 경향을 보임. 색욕에는 틴더, 나태에는 태스크래빗, 오만에는 트위터, 이상 3가지에 분노와 질투를 더하면 페이스북이다.
- 요점은 건강이나 안전과 같은 중대한 관심사를 다룰 때조차도 최첨단 기술상품 덕분에 노인에게 불명예스러운 낙인을 찍지 않도록 피할 수 있다. 아니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재미를 줄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어쩌면 아서 클라크가 말한대로 "마법과 구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초월적 기술이 등장하면 다시 한번 노인은 자립을 다질 수 있으며 동시에 건강도 나아질 수 있다.
- 자산관리사도 소위 은퇴 산업계 종사자도 노년에는 무엇을 열망하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은, 노인에게는 진정한 열망이 없다는 고정관념에 우리가 사로잡혀 있다는 현실과 일맥상통함. 아무도 노년의 성공을 의미하는 뚜렷한 이정표를 세울 수 없었던 이유도 완성된 노후가 어떤 모습인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기 때문. 그리하여 이 여분의 시간에 우리에게 허락된 놀라운 자유는 불안스레 부유하는 감각과 함께 도래한다.
- 사회관계가 협소해지는 원인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 가운데 가장 설득력이 강한 이론을 보면, 우리가 점점 선택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함. 노년에는 똑같은 일을 해도 노력과 힘이 더 필요하기 때문. 그래서 열망도 성취할 수 있는 크기로 줄이고 함께 하는 사람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관계로 한정한다. 이 이론가 카스텐슨의 이론에 따르면 함깨 하면 확실히 기분 좋은 대상에 시간을 더 할애함으로써 한가지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우리는 대개 더욱 행복해진다.
- 독일 자동차 회사가 요즘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 고령 운전자가 있어야 비싼 차를 팔 수 있듯이 급속한 고령화를 겪고 있는 숙련 공장노동자층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자동차를 생산할 수 없다는 점. 제조부문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고도의 기술과 지식이 집약한 분야다. 특히 복잡하고 정밀한 공학을 이용해 생산한 상품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자동차 공장에서 어떤 역할을 잘 해내려면 매우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해서 노동자가 박사학위에 버금가는 훈련을 쌓아야 함. 그리고 대개 이런 성질의 지식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경험으로 습득함. 예컨대 생산라인을 멈출 만한 실수를 피하는 법이라든가 어떤 부속품이 제 자리에 딱 들어갈 때 오는 감이 여기에 해당함. 가령 생산과정중 어떤 부문에서 일하려면 상당한 숙련도가 필요한 데 수십년이 걸려야 이 수준에 다다른다. 그래서 독일 BMW공장에서 일하던 최고참 공장 일꾼이 떠나면서 남기는 수수께끼를 생무지를 고용해 빈자리만 채워서는 풀 수 없다. 가장 단순한 반복조립 공정에서 일을 한 경우에는 종종 신체적으로 힘들더라도 상대적으로 숙련이 거의 필요 없어 나이에 따른 생산설 하락이 없다. 사실 다임러 조립공정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결과 나이 든 노동자일수로 실수는 더 잦아지는 편이지만 대참사를 부르는 잘못은 훨씬 덜 저지른다. 결론은 간단하다. BMW와 폭스바겐, 다임러와 여타 자동차 회사에서는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고령 노동자가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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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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