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분히 관찰하고 분석하라. 입지를 다져라. 끈기있게 변화에 대처하라. 능력을 숨기고 때를 기다려라. 몸을 낮추고 결코 리더십을 주장하지 마라. 겸손하게 일을 진행하라. (천안문 사태가 발생한 뒤 90년 초에 등소평이 발표한 전략. 당시 일어난 변화의 물결에 대처하는 방식을 제시. 이 내용 대부분이 중국의 현 국제전략에서도 핵심을 이룸)
- 중국정부는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해외 이주가 용이하게끔, 오히려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 스위스 로잔대의 중국인 이주문제 전문가 앙투안 커넌은 "중국은 자국 이주자들을 통제하는 임무를 방기하고, 그 책임을 이주자들을 받아들이는 국가로 떠넘기고 있음. 중국 이주자들이 받는 국가중 일부는, 부패가 만연하고 행정이 존재하지 않는 아프리카 국가들 같은 곳이어서 쉽게 집입 가능
- 해외이주는 실업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고, 대량해고에 시달리는 지역의 사회적 긴장을 덜어줌. 게다가 해외에서 살다 돌아온 이주자에 대해서는 실업과 빈곤문제를 신경쓸 필요가 없다. 대개 해외에서 귀국한 이들은 자녀교육에 투자할만한, 혹은 재정적인 안전이 보장된 사업에 투자할만한 자금을 들고 온다. 인력을 수출한 뒤 자국에 재투자할 자본을 거둬들여 내부의 경제성장을, 또한 일자리 확대도 이루는 셈
- 전세계를 향한 중국인의 대이주는 중국 내부에서 수십년간 지속된 이주물결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가능. 경제개방 초기부터 시작해 최소 2억명의 농촌 거주자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도시로 향함. 전문가들은 이에 더해 앞으로 몇년간 도시로 떠날 농촌인구를 약 3억명으로 추산. 경제성장에 자극받아 중국내부의 인구이동이 증가하는 한편, 기회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이주자들도 늘어 나이지리아에서 아르헨티나, 파푸아뉴기니에서 캐나다까지 전 세계 시장을 정복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한세기 전에 시작된 중국의 이주물결이 그 어느때보다 거세게, 빠르게, 넓게, 결정적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해외 이주는 수백년전부터 일어난 현상. 굶주림과 전쟁, 압제, 사회적 갈등을 피해 중국인들은 나라 밖으로 떠났다. 그 결과 중국은 역사상 해외이주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약 3500만명의 중국계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음. 일부 아시아 지역으로의 이주역사는 중국이 해상강국으로 막 발돋움하기 시작한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감. 15세기에는 중국의 콜럼버스로 불리는 정화장군이 해양 지배권을 장악. 정화는 명나라 영락제의 명령으로 여러차례 원정에 나서 지금의 소말리아 해안에 있는 아덴만까지 항해. 1405년부터 시작해 1433년 사망할 때까지 일곱차례에 걸쳐 진행된 그의 원정은 현대적 기술과 해상 통제력에서 적수가 없었던 중국의 과세 및 조공체계를 확대하기 위한 것. 이슬람교도 환관이었던 정화는 전쟁중 공을 세워 명나라 황제의 눈에들었고,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로 떠났을 때 탔던 산타마리아호에 비해 규모가 4배나 큰 함대를 이끌고 최고 2만 7천명을 동원해 원정에 나섬. 그의 원정은 동남아 교역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향신료와 공예품의 교역이 활발해져 해상운송의 거점인 말라카 같은 항구는 그때 이미 요충지로 떠올랐다. 항해술의 발달과 함께, 교역은 수백만명의 중국인이 아시아 전역으로 점진적으로 이주하는 도약판이 됨. 그 후손들이 지금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인구의 상당부분을 점하고 있음. 중국사회과학원에 따르면, 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중국계는 약 2800만명에 달하며 싱가폴, 말레이시아, 타이, 인도네시아 인구구성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
- 인신매매또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서구 식민지에 소수의 중국인 노예를 들여오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본격적 세계진출은 19세기에 인신매매가 폐지된 이후의 일. 그 시점부터 중국인 이주자들은 페루의 농장에, 남아프리카 광산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나타냄. 심지어 1차대전의 전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약 15만명의 중국인 노동자를 헐값에 고용해 참호를 파거나 시신을 매장하는 일을 맡김. 그 무렵 중국은 실질적으로 와해된 상태였다.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궁핍, 일상화된 혼란이 유혈내전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일본의 침략까지 겹쳐 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될 때까지 현대적 해외이주를 촉진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고난과 외국의 침략에서 벗어나기 위해 푸젠, 광둥성 등에서 몰려나온 사람들은 빚낸 돈으로 표를 사서 새로운 기회의 땅을 향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배에 올랐다.
- 79년 작은 거인 등소평이 경제개방 및 개혁에 착수해 마오주의가 남긴 혼란 속에서 중국을 성공적으로 구출한 이후, 중국의 산업발전을 뒷받침한 주된 재정적 원천은 해외 공동체였다. 03년까지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총액 5000억불의 약 65%가 해외공동체, 특히 홍콩과 타이완, 동남아에 사는 중국인들에게서 나온 것. 문화혁명기에 해외이주민을 유난히 경멸했던 공산주의 정권의 시각도 바뀜.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 문화적 동질성을 지닌 해외 공동체들의 가치를 인식하고 80년대 이후에는 관계회복에 힘쓰고 있다. 20세기 상당기간 해외 이주민들과 사실상 절연상태에 있었던 베이징은 여타 외국인 투자자들과는 다른 세금특혜를 보장하는 법까지 통과시키면서 경제부흥을 위해 자국민들의 해외이주를 적극 장려하고 있음. 베이징은 저우추취-인진라이(경제개방이후 세율 인하 등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편 정책이 인진라이, 축적된 자본력을 바탕으로 99년부터 실시한 해외투자 장려정책이 저우추취) 정책의 일환으로 해외 중국인들의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계 각지에 사절단을 수없이 보냈다. 해외 중국인 공동체는 푸젠성의 인구 100만 도시인 푸칭 한곳에만 1억 4000만불을 기부했으며, 약 900개 사업체에 투자해 40억불 이상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기록
- 장사를 시작한 중국인은 소유주, 짐꾼, 계산원, 기사, 영업사원의 역할을 도맡는다. 그 사람 자체가 원맨 기업인임. 이유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완벽하게 파악해야 직원을 두었을 때 속는 일이 없기 때문
- 중국은 아프리카로부터 석유, 광물, 목재 등 원자재를 공급받으면서 아프리카 시장에 자국산 제품을 쏟아놓고 있음. 아프리카에서 입수한 원자재들을 가져가 공장과 작업장을 돌리고, 거기에 수백만 노동자들이 생산한 부가가치를 더해 아프리카 시장에서 판매할 최종 생산품을 만들어내. 베이징은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관계를 상보성이란 말로 그럴싸하게 꾸민다. 하지만 현실에서 중국이 이 지역과 맺은 경제관계의 기초를 이루는 공식은 '너의 원료로 만든 나의 최종생산품'이다. 예전에 서구가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썼던 식민지배체제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식민지배체제는 산업혁명으로 강대국이 된 영국이 19세기에 고안. 현재 베이징인 답습하고 있는 영국 모델에서는 식민지를 면화와 같은 천연자원의 공급자로, 또한 국내 수요를 초과해 생산된 맨체스턴산 직물 등의 제품을 풀어놓는 시장으로 이용. 중국이 당시의 대영제국이나 20세기의 일본처럼 군사력을 동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노리를 것은 똑같다. 원자재 공급을 보장받고, 생산한 제품을 팔 새 시장을 손에 넣고, 그 기반 위에 교역관계를 구축하는 방식
- 중국의 천연자원 수요가 아프리카에 경제적 혜택을 주는 것은 분명하나, 아프리카 대륙의 사업동반자로 중국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다른 지역에서 사례들이 보여주듯,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고 있음. 모로코, 레소토, 남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등 일정정도 산업기반을 갖춘 나라들에서는 경쟁력이 막강한 중국제품의 상륙만으로도 일부 산업이 붕괴했다. 국내시장의 매출이 감소하고 세계시장에서도 그러함. 섬유산업이 전형적. 중국 같은 나라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세계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위해 섬유 수입국이 수량제한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다자간섬유협정이 05년 종료됨에 따라 의류수출품의 4분의 3을 미국과 유럽으로 보내던 아프리카 의류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음. 05년을 기점으로 더 거대하고 경쟁력 있는 중국 섬유산업이 미국과 유럽시장을 점령하면서, 스와질랜드, 케냐,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전역에서 중소형, 대형공장 수천 곳이 문을 닫았으며 수십만명이 일자리를 잃음. 라틴아메리카의 상황도 비슷.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린 라틴아메리카의 대미수출은 01년에서 06년 사이에 13.1% 감소. 이런 추세는 앞으로 지속될 것. 중국이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지배적 위치를 고수하는 한편 부가가치가 더 높은 제품 수출에도 착수했기 때문. 값싼 전기제품, 운동화, 섬유, 완구 등을 계속 수출하면서 고급전자제품, 기계, 재생에너지 등의 시장에서도 경쟁을 펼칠 것이라는 뜻. 실제로 중국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중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을 보면 알 수 있음. 중국 기업들은 매년 1200만대 이상의 차량이 팔리는 세계 최대인 국내시장에서 독일, 미국, 일본 업체들과 경쟁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국차량의 최대수입처인 아프리카 시장(아시아 보다 중국 차량을 더 많이 수입)에도 적극 진출. 또한 중국은 미국과 유럽이 독점해온 항공, 전기차, 이동통신과 같은 하이테크 분야로 파고드는 중. 화웨이의 경우 연 매출의 약 20%를 아프리카에서 벌어들인다.
- 중국은 발전도상국에 대해 적용하는 윈-윈정책의 빛나는 모범사례로 늘 콩고를 든다. 콩고가 정치적, 경제적 혼란을 겪는 시기에 심각한 장기적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처럼 대규모 투자에 나설 국가는 사실 중국이 유일. 하지만 계약서와 부속서류, 수정내용을 뜯어보면, 베이징이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 배후의 의도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협정과 관련해 제기되는 핵심질문은 공정성의 문제다. 중국이 콩고의 광산채굴로 손에 넣을 자원의 가치가 투자를 압도적으로 상회하기 때문. 중국 국영기업들이 중국수출입은행을 통해 내놓을 돈은 60억불이지만, 시코마인즈(투자를 관리하고, 기반시설 건설을 진행하고, 광산을 운영하고, 채굴에서 나온 이익을 분배하는 일을 맡은 합작사)가 코발트와 구리에서 거둘 이익은 400억~1200억불에 달할 것으로 추정됨. 수익이 투자금액의 6배~20배 수준. 이 숫자만 봐도 장기적으로 중국이 콩고보다 더 큰 이익을 얻음. 광산을 현대화하고 유지하는 데 따른 경비 수십억불을 감안해도 그러함. 계약에 따르면 차관의 상환기간 중 관련 중국 기업들은 로열티를 포함해 모든 세금을 면제받음. 장피에르 오켄다 같은 활동가들이 불법이라고 비판하는 조항이다. 나아가 차관상환이 만료된 이후에서 광산의 상업적 채굴에서 나오는 세금은 콩고가 아니라 합작사인 시코마인즈로 들어감. 계약서에는 이런 세금수입이 2차 기반시설 구축에 사용된다고 나와 있으나 구체적 내용이 명기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경제적 자원의 원천으로 광산에 의지하는 콩고는 약 200억불의 수입을 잃어버릴 전망. 더욱이 채굴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콩고의 구리와 코발트 매장량은 30년 안에 바닥이 난다. 계약서에는 광물자원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으며 판매가격을 얼마로 할지 명기되어 있지 않다. 이는 시코마인즈의 다수지분을 가진 중국정부가 상업적 과정 전반을 사실상 통제한다는 의미. 중국은 차관을 광물로 상환받으므로, 콩고에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대가로 구리와 코발트에서 높은 수익을 거두려면 광물가격을 최대한 낮게 책정해야 함.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이는 위험한 상황. 채권자, 판매자, 구매자가 동일한 법적 실체인 중국정부이기 때문. 내재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콩고정부 및 기관들이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자원을 실어가려는 중국을 저지할 수 있을까? 자국 영토 내부의 평화를 보장할 능력조차 없는 정부가 중국 기업들이 약속대로 시멘트와 화물차, 도로에 투자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 중국 정책은행들이 돈을 대고, 주로 국영기업들이 실행하는 프로젝트들에서는 금융적 이익과 환경적 영향이 종종 열외로 밀려남. 그렇다고 중국은행과 기업들이 해외투자에서 상업적 이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님. 국가적 우선순위가 아닌 사업에서는 더욱 그러함. 국가의 승인이 필요하기는 해도 중국기업들도 일상적 사업운영에서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한다. 하지만 대안이 없을 경우 교향곡 연주를 위해 오케스트라(은행, 기업, 외교관 등)를 지휘하는 것은 공산당임. 물론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삼각편대를 활용하는 것이 중국에만 고유한 것은 아님. 다른 나라들도 외교적 목표나 자국기업의 이익을 위해 개발은행을 활용. 차관을 공여받은 국가가 제공국가로부터 정해진 액수의 장비를 구매하거나 서비스 계약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 대표적. 그렇긴 해도 이를 중국의 방식과 나란이 놓을수는 없다. 우선 규모에서 차이가 난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국이어서 엄청난 금융영향력 행사가 가능. 또한 중국의 일당체제에서는 균형추(언론, 시민사회, 야당)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행할 자유가 있다
- 중앙아시아 에너지 산업 무대에 중국이 극적으로 입성한 것은 이지역에 대한 러시아 헤게모니의 심각한 위축을 의미. 그러나 중국의 긴급한 에너지 수요로 인해 지정학적 변화가 일어난 곳은 중동, 북동아프리카임. 중국은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산유국 두나라와 손을 잡았다. 바로 워싱턴 및 브뤼셀의 숙적인 수단과 이란이다.
- 기반시설과 석유를 맞바꾸는 방식은 80년대부터 중국 등 일부 국가들도 사용했지만 앙골라 모델에서는 다른 특성이 가미됨. 조세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 대통령이 이끄는 권위주의 정권이 04년 중국이 앙골라에 진출한 해부터 강력하게 추진한 앙골라 메돌은 루안다와 베이징간의 단순한 협정을 근거로 하고 있다. 중국 건설업체들은 앙골라 전역의 건설사업을 담당하고 그 대금을 중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받으며, 앙골라는 국영 석유회사 소난골 및 그 자회사들을 통해 약정한 양의 석유를 공급함으로써 중국의 차관을 갚는 방식. 이런 방식을 통하면 앙골라처럼 기반시설을 급히 재구축 해야 하지만 자금은 물론 양질의 노동력 또한 갖고 있지 못한 나라는 빠른 성과를 낼 수 있음. 이때 중국과 손을 잡으면 매우 좋은 조건으로 돈을 빌릴수도 있으므로 금상첨화다. 이 모델은 또 공공 프로젝트에 쓰일 수백만불이 스위스나 케이맨제도의 계좌로 향하는 것을 봉쇄해 부패한 당국자들이 차관을 빼돌리는 것도 방지. 정부가 실제로 돈을 만지는 일 없이 은행에서 서비스를 공급자에게 바로 전하기 때문. 앙골라 모델의 명백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앙골라에 진출한 것은 기회주의에서 기인함. 내전이 끝난 뒤 79년 권력을 장악한 두스 산투스 정권은 정부계획을 추진할 자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국제채권자들, 이른바 파리클럽과 IMF같은 기관들은 앙골라에 금융, 정치, 경제개혁을 요구. 또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이 부패국가의 상환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쌓여 있는 미상환 부채에 대한 채무구제조치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기존의 대출을 일부 갚을 것을 요구. 줄다리기는 중국이 선진국들이 계획을 좌초시키려 무대에 등장한 04년 3월까지 계속됨. 중국수출입은행이 선뜻 20억불을 신규대출해 주어 앙골라는 무사히 빚더미에서 탈출. 당시 채무재조정을 위해 성과없는 노력을 계속하던 앙골라에게 중국은 환상적 조건을 내걸었다. 이율은 리보금리 플러스 1.5퍼센트, 상환기간은 12년 (거치 4년)이었다. 베이징은 자금력을 총동원해 아프리카 석유자원의 심장부로 진입하는 데 성공. 04년 7월에 시노펙이 예상을 깨고 앙골라 18광구의 심해 석유자원에 대한 쉘의 지분을 계승한 것도 중국이 제공한 차관에 대한 보상으로 알려짐. 20억불은 중국이 원유대금 및 앙골라 천연자원에 대한 장기채굴권의 대가로 국영은행들을 통해 빌려준 차관 145억불의 시작에 불했다. 하지만 이 거액투자도 큰 그림의 일부에 지나지 않음. 베이징은 중국수출입은행, 중국개발은행, 중국공상은행을 통해 제공한 차관외에 형식상의 민간부문을 통해서도 자금을 빌려주었다.
- 베이징은 차베스의 곡예에 휘말리는 것을 꺼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상을 차려서 바친 기회들 앞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시아의 거인이 베네수엘라로부터 얻은게 얼마나 많으지는 통계를 보면 안다. 중국은 위성 2대와 막대한 무기를 차베스 정권에 팔았고, 화수분에서 퍼낸 자금을 천연자원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엄청난 규모의 차관을 제공. 2010년 중국개발은행은 베네수엘라에 200억불, 중국공상은행은 40억불을 빌려줌. 여러 은행이 합동으로 투자한 금액도 120억불. 이 모든 것은 베네수엘라의 귀중한 자원을 겨냥한 투자다. 현재 중국의 베네수엘라 원유구매량은 하루 64만배럴로 아직 미국에 미치지 못한 하지만 양국간의 협정에 따르면 2014년에는 중국의 구매량이 하루 100만 배럴에 달할 전망
- 중국이 파격적 조건으로 베네수엘라 유전에 대한 특권을 얻은 것은 그뿐이 아님. 위키리스크가 공개한 자료에 다르면, 원유시장 가격이 배럴당 78불일 때 중국은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5불에 구입. 그래놓고 베네수엘라 지도자의 관대함에 감사하기는 커녕 그 원유를 미국, 아프리카, 아시아에 되팔아 상당한 차익을 챙김. 베이징을 충실한 동맹으로 여긴 베네수엘라 정부로서는 당을 칠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이란, 볼리비아, 벨로루시, 쿠바 등에 이념적 동맹을 이유로 석유를 퍼주는 것은 차베스 정권에서는 늘 발생. 쿠바는 베네수엘라의 석유라는 보증을 내세워 시엔푸에고스 정유공장의 개보수 자금 60억불을 중국에서 얻어냄. 같은 방식(베네수엘라 보증, 중국의 차관, 쿠바의 혜택)으로 쿠바 마탄사스의 또 다른 정유고장 개보수도 예정됨.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을 종횡무진 촉수를 뻗는 와중에 중국은, 거의 우연히,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차베스의 책략에 간접적으로 휘말레게 된 셈. 미국의 다른 옛 친구 쿠바와 함께 말이다. 하지만 베이징 입장에서 이는 사적인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업, 순수하고 단순한 비즈니스일 따름이다.
- 중국인이 입으로는 우리와 연대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행동은 다름. 실제로 그저 우라힌테는 힘 닿는 한 모든 것을 빼앗아 가고 있다. 차베스는 중국에 가기 전 마오의 가르침을 열심히 공부. 그런데 막상 베이징에 가보니 마오의 사진은 모조리 다락방에 치워져 보이지도 않았다. 중국인들한테 파시스트-레닌주의자라고 말해 보세요. 그래도 그들은 자기들에게 이득이 된다면 그런 말에 상관없이 당신 물건을 살 겁니다. 돈과 관련된 문제에서 이념은 설자리가 없다.
- 수단과 에콰도르의 사례는 중국의 금융패키지가 발전도상국, 특히 국고가 바닥나고 현금흐름이 감소한 국가에 얼마나 잘 먹히는지 보여줌. 차관을 받은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 등장한 세계의 은행 기반시설을 짓는데 필요한 거부할 수 없는 단기대안을 제시한다. 소프트론(달러 등 국제통화로 빌리고 현지통화로 상환하는 차관), 낮은 비용, 빠른 공사기간 등 지극히 유혹적 조건. 게다가 국제적인 사회적, 환경적 기준이나 규정을 준수하지 않아도 또는 어떤 이유로 서구와 불화를 겪고 있어도, 중국은 타국에 대한 불간섭을 내세워 기꺼이 구조의 손길을 내민다. 국제기술을 준수하지 않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다른 나라들의 행동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 중국이 자국의 미래를 위해 길을 다지는 과정이 다른 국가들의 발전에도 기여한 것이 사실. 우리는 현지 취재에서 이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 사례는 3대륙에 걸쳐 광범위하게 발견됨. 중국은 전쟁으로 찢긴 앙골라에 수천채의 집을 짓고 사실상 무에서 시작해 운송망을 구축. 콩고에는 새로운 도로를 깔았고, 수단과 투르크메니스탄과 버마에는 석유 파이프라인을 놓았다.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의 야심찬 철도공사, 이란과 모잠비크의 불가능할 것 같은 도로공사, 파키스탄령 카슈미르를 거쳐 신장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전략적 루트개설에도 같은 상황임. 나이지리아와 베네수엘라에서 위성을 발사한 비약적 성취도 빠뜨릴 수 없다. 이런 프로젝트들의 엄청난 규모와 가시성을 감안할 때, 기반시설 공사가 중국의 조용한 세계정복에서 극히 전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함. 베이징이 해외원자 잡탕 패키지 및 정부간 협력에도 기반시설 프로젝트를 포함시켜 소프트파워를 행사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 중국은 쌀 같은 식량을 계속 자급자족하기를 원함. 쌀은 중국인의 식단에서 핵심이라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 하지만 동물사료로 쓰이는 콩이나 옥수수같은 다른 작물들까지 자급하긴 어려움. 이런 작물들은 수입이 필요. 그러려면 세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국제시장에서 구매한다. 둘째, 지분을 획득해서 국제 농산품업체를 통치한다. 셋째, 다른 나라의 땅을 산다. 이 중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대안은 국제시장에서 구매하는 것. 안전을 확보하지 못하기 대문. 예컨대 미국이나 브라질 같은 식량생산 대국이 직물수출을 금지하면 어쩝니까? 중국은 리오네그로에 대한 투자를 통해 아르헨티나의 농식품 부문에 진출함으로써 시장에 휘둘리지 않는 안전망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받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투자덕에 금융위기나 2012년 미국의 가뭄 등으로 인한 공급부족 시기에도 공급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식량가격이 지속적으로 폭등세를 보이기 마련임. 이미 아랍권에서는 그로 인한 정치적 결과가 발생했다.
- 금융영향력의 위력은 역사속에서 확인됨.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넘어간 것은 미국이 지금의 중국처럼 세계 최대의 채권자이자 제조업 초강국이 되었을 때였다. 워싱턴은 유엔을 창설하고, 세계은행과 IMF등 국제 금융기관을 만들고, 무역자유화를 추진. 이 세가지 요소가 2차대전 이후 수립된 세계질서의 특징. 현재 중국은 미국이 양 대전 사이에 겪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 바로 산업확장과 거의 무한한 금융역량. 이는 중국이 현 상태를 뒤엎고 새로운 세계질서 창출의 기반을 다지는, 미국과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 중국의 비결이 무엇인지는 잘 알려져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국가가 경제와 사회 어디에든 개입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론을 포함한 모든 국가권력을 해명책임이 없는 유일정당에 종속시키는 극심한 정치적 통제다. 선전매체들이 조화로움을 표현하는 이런 권위주의 체제가 지닌 효율성은 많은 나라에서 발전의 지름길을 제시함. 하지만 그 지름길은 비싼 대가를 요구하며, 그 값을 치르는 것은 발전의 뒤편에 남겨진 사람들이다. 중국의 실용주의는 분명 발전도상국들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시민 자유와 권력분립을 도입했던 여러 신흥국가들의 정치 지도층이 중국의 도래가 자아낸 흥분에 굴복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중국방식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독재정권에 특히 매려적이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독재정권과 그늘진 동맹을 맺은 덕분에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중국은 기회를 발견한 곳 어디서든지 법의 수호자가 아니라 독재정권의 공모자가 되는 쪽을 선택한다.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들(버마, 북한, 이란, 수단, 쿠바)에서 가장 큰 성공을 누리며 사업 파트너로 선호되고 있는 것, 중국 국영기업들이 전능한 국가를 배경으로 거래에서 종종 백지 위임장을 받는 것은 단순하게 넘길문제가 아님. 지극히 애매모호한 중국의 기준과 가치가 침투하고 수용된다는 점이 중요함. 베이징은 투자한 국가들 및 세계은행 아시아 개발은행 등의 기관을 통해 그런 가치를 확산시킨다. 영국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인 마틴 자크가 제시한 이론이 현실화되는 듯하다. "중국의 경제개방이 가속화됨에 따라 세계는 중국이 서구화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정반대다 세계가 중국화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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