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의 역사
- 저자
- 로버트 P. 크리스 지음
- 출판사
- 에이도스 | 2012-06-01 출간
- 카테고리
- 역사/문화
- 책소개
- 2011년 [가디언] 올해의 책 일상의 삶과 현실에 터한 임시방...
- 금을 얻어내려고 혈안이 된 유럽인은 족장이 왼손 엄지손가락에 줄을 감고 접시에 저울추를 얹어 금의 무게를 달면서 부족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음. 부족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왜 왁자지껄 웃음을 터뜨리고 침묵했는지 백인들은 영문을 몰랐음. 둘의 서로 다른 행동에서 보듯 유럽상인과 아프리카 부족민들 사이에는 깊은 골이 파여 있었음. 이 장면은 유럽상인과 아프리카 부족민이 다른 인종이고 다른 문명에 속하며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을 보여줌. 두 집단은 서로 교역해야 했으나 서로 이해하지는 못했음. 여기에서 두가지 서로 다른 표현방법, 즉 백인의 문자언어와 아프리카인의 사물언어가 대립함
- 도량형은 뭐니뭐니 해도 수단임. 사람들이 도량형을 쓰는데는 다 나름의 목적이 있음. 여건이 바뀌거나 새로운 목적이 생기면 도량형은 변경되거나 대체됨. 하지만 도량형은 공동체 안에서 공유되어야 하며 믿을 수 있어야 함. 이런 탓에 도량형은 독자적으로 존속하며, 천천히 퍼지고 웨만하면 바뀌지 않으려 함. 과거의 전통과 현재의 필요가 타협함. 중국은 중앙집권제 국가였고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필요가 일정하고 도량형이 안정되었음. 서아프리카에서는 자국의 도량형과 외국의 도량형이 평화롭게 공존했음. 하지만 프랑스는 사회적, 경제적 조건이 전혀 달랐으며 도량형이 통일되지 않고 제각각이었음. 농장에서 직인조합에 이르기까지 작업환경이 다양하고 노르웨이에서 스페인 남부에 이르기까지 유럽 여러나라와 교역한 탓에 상황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도량형이 변경되고 대체되었음. 그 결과 프랑스에서, 아니 유럽에서 도량형의 단위와 표준, 입법, 시행은 역사의 전 분야에 얽혀 있었으며 상업적, 산업적, 과학적 세력판도가 도량형에 영향을 미쳤음.
- 정치적 변화는 도량형의 시행에도 변화를 가져옴. 중세에는 영주가 중앙정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제 나름의 도량형을 쓸수 있었음. 중앙정부는 힘이 약했으며 체계적인 관료조직을 갖추지 못했음.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17세기에 들어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 봉건영주의 힘이 약해지면서 도량형 통일에 저항하던 주요 세력이 무너짐. 국내외 시장이 확대되자 중앙정부가 공통의 척도를 시행하고 이를 감독해야 할 필요성이 커짐. 경제학자 스타니슬라스 호쇼프스키는 "도량형이 균일해지고 표준화되는 정도는 지역간에 교환관계(상거래)가 어떤 규모로 이루어지는가와 직접적 관계가 있다"고 말함.
- 최근에 옛 단위가 사라진 것은 미터법 때문이 아님. 프랑스에서 걸어서 한시간 걸리는 거리를 일컫는 리외가 사라진 것은 자전거가 보편화되었기 때문. 땔나무 양을 일컫는 코르드는 장작난로를 쓰는 지역에서는 살아남았으나 중앙난방을 하는 지역에서는 소멸하고 있음. 한마디로 미터법이 자리잡은 데는 공식 조치뿐만 아니라 유럽의 상황변화도 한몫했음. 하지만 (미터법을 의무화한 법령을 제외하면) 옛 척도가 쇠퇴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역간의 교류가 활바래졌기 때문.
- 단위는 필요해서 만든 것이며, 인간의 삶은 다양하고 끊임없이 변화함. 우스꽝스러운 단위는 측정행위가 얼마나 자위적인가를 풍자하고 조롱하고 드러내는 나름의 역할을 함. 우리는 측정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좀처럼 인식하지 못함. 측정체계가 주목받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뿐임. 가장 악명높은 사례는 99년에 1억 25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화성기후 탐사선이 화성궤도에 진입하다가 폭발한 사건. 사고가 난 이유는 공학자들이 로켓 프로그램을 짤때 한 집단은 야드파운드법을 쓰고 한 집단은 미터법을 썼기 때문.
- 현대 측정체계는 사회적 의미, 즉 측정철학이 결여되지 않음. 측정에서 지역과 상품과 시간의 흔적을 지우고 척도를 다른 척도로부터 또한 모든 국지적 조건으로부터 추상화함으로써 세계를 측정가능하고 계산가능하고 인류에게 보편적 장소로 바꾸어 인류의 손에 쥐어주고자 하는 철저한 기획에는 깊은 사회적 의미가 내포됨.
- 컴퍼스, 저울, 자는 생명없는 물건에나 갖다대는 것이다. (미츠키에비치, 폴란드 시인)
- 인간성의 어떤 쪼가리라도 무게를 달고 치수를 재고 그 결과를 알려주지만 결국 삶이 파탄에 이르고만다. (어려운 시절)
- 과학혁명의 시기에 갈릴레오, 하비, 케플러 같은 과학자들은 관찰결과를 측정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발견을 했음. 인간경험의 각 분야는 측정하는 방법을 우리가 알아낼 때마다 숨겨진 속살을 드러냈음. 성공에 도취한 사람들은 실재 자체를 측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음. 우리가 측정하는 이유는 그럼으로써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임. 이 가정은 서구사상에 깊이 뿌리박았음. 플라톤은 국가에서 인간정신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측정과 계산을 신뢰하는 부분이라고 주장. 하지만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측정이 매우 성공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측정이 세상을 더 잘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둔갑할 수 있다고 경고. 현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세상이 자신을 측정하려고 어르고 측정이외에는 의미를 찾을 방법이 없다고 구슬린다는 것.
- 과거에는 측정체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측정의 사회적 맥락을 뚜렷이 인식. 아칸족은 금가루 무게를 달 때 자신의 행동이 어떤 뉘앙스로 읽히는지 알았고, 중국 황실관리들은 정확성의 정쟁을 벌였으며, 근대 이전 유럽 농민들은 척도가 착취에 악용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절감했음. 하지만 현대 측정경관에서는 측정의 사회적 맥락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음. 그중에서도 지능을 측정하는 행위, 즉 교육제도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더 알아차리기 힘들다. 학교는 측정되는 것을 중시하고 측정되지 않는 것을 홀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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