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Plex 0과 1로 세상을 바꾸는 구글 그 모든 이야기

저자
스티븐 레비 지음
출판사
에이콘출판 | 2012-09-2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아마존닷컴 The Best Books of 2011 선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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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기술은 마술과 별 차이가 없다. (아서 클라크, 영국 SF작가이자 발명가)
- 세르게이 브린이 구축한 오리지널 구글검색엔진은 페이지래으에 거의 의존한 것이었지만,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2000년경 무렵부터 아미트 싱할은 이미 시대가 바뀌었으며 시그널이 추가될수록 검색결과에서 페이지랭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더 줄어들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실제로 09년 구글은 200개가 넘는 시그널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동의어를 포함해, 지역정보, 최신정보, 심지어 피자를 파는 웹사이트를 위한 시그널 등 매우 다양함. 실제로 사용되는 시그널은 훨씬 많을 것이다. 이제 페이지랭크는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브린이 만들어낸 코드는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예 새로 작성하게 된다. 싱할은 2001년 1뤌, 두달에 걸쳐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 테스트했음. 수개월간 구글은 새로운 검색엔진을 사용자 일부에게 테스트했고 결과는 괜찮았다. 사용자들은 더 만족스러워 했다. 그해 여름 구글은 기존의 검색엔진을 새로운 검색엔진으로 바꿈. 하지만 구글은 비밀주의를 원칙으로 하여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떤 발표도 하지 않았다.
- 구글 경매에서 중요한 요소는 두가지로 하나는 경매가이고, 다른 하나는 품질평가점수이다. 품질평가점수는 결과 페이지에 결과가 나올 때 사용자에게 어느정도 도움이 되는지 평가하는데, 이 점수가 높을수록 사용자의 검색과 관련이 높다는 의미. 품질평가점수가 낮으면 관련성도 그만큼 낮다는 이야기며 스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음. 애드워즈 초창기 버전에서 품질평가점수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는 클릭율이었지만 이후 구글은 광고와 특정 키워드의 연관성 같은 요소를 추가해서 더 복잡한 수식을 만듬. 물론 가장 영향력이 큰 요소는 예상클릭율이다. 갑, 을, 병이 핸드로션이라는 키워드에 광고를 한다고 예를 들어보자. 갑의 고급 핸드로션은 스파에서 인기가 좋은 제품이다. 을은 핸드로션도 파는 거대한 약국이다. 병은 핸드로션을 판매하지 않는 여행사이트지만 핸드로션을 검색하는 사람들에게 광고를 노출하고 싶어한다. 갑은 클릭당 10센트, 을은 15센트, 병은 50센트를 제시했다. 이 경우 오버추어에서는 병이 1위로 올라간다. 하지만 구글에서는 가장 낮은 경매가를 제시한 갑이 1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구글의 계산에 따르면 갑의 사이트를 클릭하는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찾을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에 품질평가점수에서 갑이 가장 높은 점수를 얻는다. 을의 사이트는 들어가도 핸드로션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평가점수가 떨어진다. 그래서 2위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핸드로션을 찾는 사용자가 여행광고를 클릭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병의 품질평가점수는 더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병의 위치는 더욱 내려갈 것이다. 이런 경우 최소입찰가격이 제시되며, 포기해야 할 정도로 높은 가격이 나온다. 셰릴 샌드버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관련성이 있는 곳에 광고를 싣도록 광고주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품질계산식의 아름다움이죠. 관련성이 클수록 광고단가도 싸집니다. 키워드, 텍스트, 홈페이지를 잘 관리해야 하는 이유죠." 단점이 없지는 않다. 시스템이 복잡하기 때문에 광고주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 래리와 세르게이는 마리아 몬테소리의 주장을 몸소 실천하는 대표적 인물. 몬테소리의 주장은 이렇다. "훈육은 자유를 통해 나온다. 남이 시켜서 강제로 이루어지는 훈육은 제대로 몸에 배지 않는다. 그렇게 훈육된 사람은 결국 자유가 없는 강요된 개인이 되고만다. 자신의 주인이 될 때만이 진정한 인성이 길러질 수 있다." 브린과 페이지는 선생이 아이의 창조적 본능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몬테소리의 원리를 구글에서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세상을 코드로 바꾸겠다는 엔지니어들의 욕구를 말살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구글의 사업 1계명은 외부주주는 결토 LSE(래리, 세르게이, 에릭)의 결정을 뒤엎울 수 없다는 것. 그들은 구글직원만큼 영리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 그들이 따르는 주식회사 모델은 이중등급 소유권 구조를 가장 잘 구현한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였다. 주식소유권을 A등급과 B등급으로 나누었는데, 평범한 투자자는 한 주당 하나의 의결권을 갖는 A주식을 살 수 있다. 페이지와 브린은 같은 소유자만 가질 수 있는 B등급 주식은 한 주당 10개의 의결권을 가짐. B등급 주식은 대부분 페이지, 브린, 슈미트가 갖고 있음. 즉 전체주식의 50%를 갖지 못하더라도 브린과 페이지는 경영권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 또한 구글은 단기수익을 고려하지 않는 경영을 할 것이라고 선포. 분기마다 공개하는 경영정보 역시 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정보에 그칠 것이며, 일반적으로 다른 기술기업들이 제공하는 정보보다 적을 것이라고 선언. 간단히 말해, 구글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도박을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투자자들에게 미리 경고한 셈. 물론 존 도어나 마이크 모리츠와 같은 투자자들은 그런 조건들을 내켜하지 않았음. 하지만 존 도어와 마이크 모리츠는 이 조건을 수락. 그런 조건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구글이 상장되는 순간 각각 10억불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 브린과 페이지는 상장을 경매식으로 추진하기로 했음. 재무적 이유도 있고 평등주의적 이유도 있었다.
- 구글의 통계학자 보 코길은 동료들 행동을 연구. 내부 프로젝트가 성공할지 돈을 걸고 예측하도록 하는 소프트웨어 예측시장을 개발하여 운영하던 코길은 매일 주가의 향방이 회사의 분위기, 노력의 수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 주가상승은 더 많은 행복감과 낙관적 예측을 불러오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평소보다 더 적대적으로 대하게 만든다. 즉, 구글직원이 부자가 될수록 구글이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의미였다. 창업자들이 두려워하는 주식상장의 어두운 효과가 이것이었다.
- 팀을 간결하게 유지하는 방침에 대해 여전히 걱정하는 목소리는 많다. 홀즐은 이렇게 말함. "자신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여기는, 그러니까 고도로 동기가 부여된 팀을 계속 작게 유지하려고 노력하죠. 팀이 너무 커지면 프로젝트를 더 작게 쪼갭니다. 큰 팀을 쪼개는 것을 구글에서는 데이터센터에서 서버를 정리하는 것처럼 로드밸런싱이라고 합니다." 구글의 로드밸런싱은 또 다른 곳에 적용됨. 핵심적 목표와 엔지니어의 꿈을 섞지 말라는 것이다. 05년, 엔지니어를 운용하기 위한 70-20-10 전략을 발표. 엔지니어의 70%는 검색이나 광고일을 하고 20%는 애플리케이션과 같은 핵심제품에 집중하며 나머지 10%는 와일드카드 역할이었다. 근무시간 중 20%를 자신이 선택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하는 전략이 구글에서 혁신의 원동력이라고 많이 알려졌지만 70-20-10 전략 역시 구글의 혁신을 유발하는 마법과 같은 알고리즘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구글의 통제는 강화됐고 결국 01년 당시 브린과 페이지가 꿈꿨던 관리자를 없대자는 방침은 사라진 듯 했다. 페이니는 당시의 꿈이 이제는 어렴풋한 추억으로 남았을 뿐이라 고백. "회사로서 두 살밖에 안 되었던 거잖아요. 이것저것 다 시도해 본거죠."
- 저장의 전통적 개념과 자신의 통제에 익숙해진 수백만명에게 지메일의 세상은 프라이버시의 개념이 모호해지리라는 하나의 경고를 의미했음. 구글이 하는 모든 일은 의심의 시각으로 감찰을 받아야 했고, 엔지니어들도 더 이상 그러한 시각을 농담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음. 니콜 윙의 말이다. "지메일은 하나의 분기점이었어요." 그때부터 구글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야 했다. 질문 대다수는 구글 서버에 개인정보가 저장될 경우 야기될 법적 질문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메일 프라이버시 문제가 불거질수록 지메일 계정을 얻으려는 열광도 더 커졌다. 지메일에 대한 수요는 거대했다. 폴 북하이트의 본능과 래리와 세르게이의 열정이 입증되는 셈이었다. 확실히 사람들은 대용량을 좋아하고 광속도로 메일을 검색하고 싶어했다. 쓸데없는 광고가 가끔 붙는 것쯤은 상관없었다.
- 구글의 비밀 중에서 대형 디지털 인프라스트럭처야 말로 비밀 중의 비밀. 구글은 데이터 센터의 규모에 대해 밝힌 바가 없음. 구글은 얼마나 많은 서버가 센터안에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글은 자사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컴퓨터 제조업체라고 인정하기는 했다. HP나 델, 레노보보다 더 많은 서버를 만들기 때문. 운용중인 서버가 100만대가 넘는다는 보고서를 부인하지 않았다. 구글은 외부인의 데이터센터 견학을 허용한 적도 없다. 02년 구글이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기 전에 한 기자가 구글의 데이터 저장용량에 대해 기사를 쓴 적이 있음. 대단히 드문 일이었다. 당시 구글 인프라를 맡고 있던 짐 리즈가 가이드 역할을 했다. 그는 산호세에 있는 서버 관리업체 엑소더스 센터로 자동차를 타고 들어갔다. 거기서는 1만대의 서버로 1억 5000만 회의 검색을 매일 처리하고 있다. 경비원이 조용히 그를 따라왔고 거대하고 어두운 공간, 즉 서버로 채워진 케이지 않으로 들어갔다. 에어컨이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고 리즈는 각 케이지의 서버를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알려줬다. 이베이와 야후 같은 곳의 케이지는 피자박스처럼 생긴 서버를 견고하게 묶어서 이름표를 다는 등 보기 좋게 놓여 있었지만, 구글의 서버는 케이스도 없고 케이블도 무질서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남자 대학신입생이 사는 기숙사가 꼭 이 꼴일 터였다. 오류를 일으키도록 만들어진 부품과 고도로 세련된 소프트웨어 구조, 전통적인 지혜를 폐기하려는 의지 덕분에 구글의 저장 기능은 이와 같은 곤혹스런 소굴에서 세계 최대의 데이터 클라우드로 도약했다.
- 구글의 효율성이란 곧 저품질의 장비를 저렵하게 구입하되 두뇌를 이용해서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장애율이 어쩔 수 없이 높았음. 페이지와 브린이 레고블록에 수용해서 서버를 구축했던 구글 초기 시절에서 유래된 문제. "래리와 세르게이는 우리가 서버 디자인을 하고 최대한 저렴하게 만들어서 고속의 네트워크망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서버를 연결시켜야 한다고 했죠" 전통적 개념에서는 장비의 고장은 바로 장애로 이어졌다. 서버 장애율은 4~10% 정도였다. 이 실패율을 낮추기 우해 썬마이크로시스템즈나 EMC같은 회사의 고급장비를 구입하는 기술기업이 많았음. "우리는 완전히 반대로 가기로 했어요. 우리는 처음부터 대략 10% 정도의 일정 수준의 장애가 있으리라는 점을 알고서, 수백 수천대의 싸구려 서버를 구축할 생각이었어요." 구글의 첫번째 정보기기 책임자였던 더글라스 메릴은 구글이 구입한 디스크 드라이브 품질이 가정에서 아이들이 쓰는 컴퓨터용보다도 더 안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음. 하지만 구글은 결함을 감안해서 설계. "우리는 가외성을 보장하고, 시스템이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네트워크에 연결방식, 로드밸런싱 등의 기능을 넣었습니다. 제프 딘과 산자이 게마와트가 개발한 구글 파일 시스템은 이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시스템은 데이터를 샤딩하고 여러대의 서버에 분산함으로써, 장애에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만일 한 서버에 요청된 특정 정보에 대한 구글검색이 천분의 몇 초 안에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이 요청을 다른 두개의 구글 서버가 처리할 수 있었다.
- 07녀 구글은 검색결과를 인위적으로 지연시켰을 때 어떤 행동이 일어나는지 사용자 연구를 했음. 어느정도의 지연이라면 무시할 수 있을까? 결과로 보면 0.1~0.4초가 나왔다.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의 지연은 향후 검색에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 검색 횟수의 감소폭은 작았지만 심각한 문제였으며, 0.1초만 지연되어도 차이가 났다. 더군다나 지연현상을 경험한 사용자는 지연현상을 없앤 다음에도 이전 수준의 검색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빙 검색엔진으로 비슷한 실험을 했다. 결과는 비슷했지만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검색결과가 지연됐을 때 사용자 스스로가 시간을 지연시켜가면서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가령 검색이 끝난 이후에, 결과에 나온 링크를 클릭하는 데에도 시간이 더 걸렸다. 결과가 지여된 만큼 0.5초 이상 지연됐는데, 아마도 다른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해다가 결과를 클릭하기 위해서 다시 집중해서 그런 듯 하다.
- 안드로이드 기기의 도약은 오리지널이 나온 지 1년후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음. 버라이즌 통신사가 모토롤라의 안드로이드 휴대전화 드로이드를 선보였을 때부터다. 기술 정책 이슈에 관해서 버라이즌은 구글의 강력한 적이었기 때문에, 이 협력은 중요한 것이었음. 이런 해빙무드는 아마도 버라이즌이 AT&T의 아이폰에 대한 대항마를 내놓아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러가지 애플리케이션에서 음성을 텍스트로 입력시켜주는 기능처럼 인상적인 기능을 포함하여 구글이 만든 새로운 기능을 가장 먼저 집어넣은 휴대전화가 드로이드다. 음성입력도 1-800-GOOG-411 서비스에서 얻은 수십억건의 데이터로 만들어 상당히 정확했다. 물론 안드로이드가 실질적으로 아이폰보다 우월한 면이 있는지에 대한 비판은 있었다. 드로이드는 또한 최근 구글이 소개한 고품질의 턴바이턴 내비게이션 기능을 사용하는 첫번째 휴대전화이기도 했다. 턴바이턴 내비게이션은 독립적인 GPS 기기 및 휴대전화에서도 제공됐다. 차이점은 구글의 경우 10~15불의 월이용료를 내지 않는 무료였다는 점. 이런 식의 무료제공을 통해 하위산업을 말려죽였던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구글은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앤디 루빈의 설명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것으로 직접 돈을 벌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용하는 사람들로부터 이익을 얻습니다.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수록, 우리가 그들에게 광고할 기회가 더 많아지지요."
- 05년 2월, 카림과 첸, 헐리는 유투브라는 회사를 세움. 그들은 팔로알토와 샌프란시스코의 중간에 있는 산마테오의 한 피자집 2층에다 사무실을 차림. 그들은 지금 보면 정말 훌륭하다 평가할 수 있는 결정을 몇가지 내렸다. 첫번째, 실제로 영상을 본 사용자가 정말 손쉽게 영상을 평가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구글 비디오가 미처 생각지 못한 기능이었다. 그해 6월에야 나온 구글 비디오는 플레이어를 별도로 다운로드해야 했다. 두번째, 그들은 유투브를 스스로 결성한 커뮤니티가 참여하는 온라인 활동인 웹 2.0으로 묘사했다. 유투브 사이트는 입소문이 가능했다. HTML 코드 몇줄을 복사해 붙이면 유투브 영상을 블로그나 웹사이트에 게재하거나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낼 수 있었고, 마이스페이스 같은 소셜네트워크에도 올릴 수 있었다. 05년 4월 유투브 창업자들은 자기들이 직접 찍은 비디오를 업로드하기 시작. 카림의 경우 눈 덮인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영상, 첸은 자기 고양이의 익살스러운 영상을 올렸으며, 반응이 올라오기를 기대했으나 곧바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5월경 성격이 급했던 창업자들은 크레이그리스트에 광고를 올림. 자기 매력을 발산시키는 영상 열 편을 올릴 때마다 100달러씩 주겠다는 광고였다. 한번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지 유투브는 대세가 됨. 그해 여름, 매트 하딩이라는 한 남자가 휴가지에서 춤추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는 곧 전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됌. 유투브는 또한 관대하게도 뮤직비디오와 드라마의 일부장면, 영화의 일부장면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올릴 수 있도록 한 덕택에 유명해지기도 함. 05년 9월 헐리는 저작권이 있는 컨텐츠 양이 트럭에 실을 만큼 된다며 걱정하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첸은 유투브가 자기 갈 길만 가면된다고 주장했다. 지금 올리는 영상이 저작권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사용자 스스로 알기는 하지만, 특정 영상이 저작권자로부터 불만을 듣지 않는 한 괜찮은 일이었다. 창업자들은 유투브에 등장하는 컨텐츠에 대해 저작권자들이 별 신경 안쓴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첸은, 컨텐츠 업로드를 받아 호스팅하는 사이트는 피난소로 인정해주는 디지털밀레니엄 저작권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보 봤다. 그러나 이런 느슨한 생각은 법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신생기업의 무모한 결정에 가까웠다. 거대 연예산업 재벌 바이어컴은 유투브를 고소할 계획이었다. 저작권 컨텐츠 업로드가 유투브 성공의 핵심요소라고 보았기 때문. 하지만 저작권 컨텐츠와 함께 사용자 스스로가 만든 비디오 수백만편이야말로 유투브를 독특하고 가치있게 만들어줬다고 할 수 있었음. 유투브는 비디오의 백화점이었고 사람들은 유투브때문에라도 영상을 찍어 올렸음. 전문적으로 만들어진 영상 라이브러리와 함께 유투브는 단편 영상을 감자칩처럼 소비할 수 있게 해준 명실상부한 비디오 웹사이트가 됨
- 08년 8월 8일, 연방통상위원회가 더블클릭의 인수를 승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글은 인터넷 사상 가장 강력한 쿠키를 조용히 만들어낸다. 애드센스 광고가 있는 사이트를 방문할 때 애드센스가 아니라 아예 더블클릭의 쿠키를 떨어뜨리는 식으로 바꾸었기 때문. 원래는 사용자가 애드센스를 사용하는 정치적 블로그나 고양이 기르기 같은 곳을 방문할 때 사용자가 광고를 클릭하지 않는 한, 방문기록은 남지 않았따. 그런데 이제는 사용자가 방문을 한번 하게 되면 방문기록을 남기며, 구글은 나중에 더블클릭 쿠키를 통해 방문정보와 그 외 데이터를 모두 조합해서 하니의 쿠키를 만들어내고, 이 쿠키는 구글의 고유한 쿠키가 된다. 한마디로 인터넷 어디에 있건 해당 사용자를 추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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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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