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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12 숨겨진 절대권력자들의 세계지배 음모, 그림자정부

 


그림자 정부: 정치편

저자
이리유카바 최 지음
출판사
해냄출판사 | 2008-04-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세계는 보이지 않는 강력하고 절대적인 권력인 누상정부,즉 프리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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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을 행하는 사람은 우선 자기가 선을 행한다고 믿어야 한다. 이데올로기, 그것은 정의의 실현이라는 악마의 행위를 발생시키고, 악마의 행위자에게 필요한 신념과 결심을 갖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본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하는 것으로 비치고, 따라서 그들은 비난이 아니라 찬사와 명예로운 소리만 듣게 되는 것이다. (솔제니친)
- 드 몰레 템플 기사단장은 숨을 거두면서 예언하기를, 클레멘트 교황이 40일 이내에 죽어 그와 함께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며 필리프 왕은 그해(1310년)가 끝나기 전에 죽을 것이라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고 역사적 기록은 전함. 프리메이슨은 이 일로 인해 프랑스에 복수의 칼을 갈게 되었고, 마침내 프랑스 혁명을 일으켜 유럽 최초로 왕조를 마감시키고 공화국을 세우게 됨. 프랑스 혁명은 프리메이슨의 여러 조직 중의 하나인 일루미나티의 공작에 의한 것임. 필리프 왕은 프랑스에 있던 템플기사들을 모두 잡아가두지는 못했음. 행정조직에 서로 통하는 사람들이 있는 경우에는 미리 정보를 얻어 피신했고, 상당수의 템플시가들이 귀족이고 고관들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이때부터 프리메이슨 조직은 지하로 들어가 비밀조직화 됨. 그리고 자기가 프리메이슨이나 템플기사단이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릴 수 있는 암호를 만들었고, 그들만의 악수법 따위를 통해 서로의 신분을 확인. 프리메이슨 조직은 지하에서 암약하게 되었지만 계속 확장되어감. 영국에서는 1348년 가터교단이 조직되었고, 프랑스에서는 1352년에 성단, 1430년 브루고뉴 지방의 영주 부르고뉴 공작이 만든 금양모단, 1534년 로욜라가 사제이면서 기사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템플기사단을 모방하여 조직한 예수회가 생겨남. 이 예수회가 지금은 너무 유명해진 카톨릭의 예수회 사제단이라는 조직. 이조직의 원래 목적은 개신교의 교리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프리메이슨 조직의 계보를 따랐기 때문에, 교황과 자주 갈등을 빚음. 프랑스의 필리프왕에게 박해를 받게 된 템플기사단은 대거 탈출하여 스코틀랜드나 포르투갈 같은 나라로 흩어짐. 스코틀랜드로 건너간 템플기사단으 소위 스코틀랜드파를 만들어 현대 프리메이슨 조직의 기초를 세웠으며, 포르투갈로 건너간 기사단은 아메리카 대륙을 자주 왕래하여 결국 미국이라는 나라를 건국하게 되는 기초를 마련.
- 한국전쟁이 끝난 후 미국내에서의 한국전에 대한 평가는 일반적으로 다음 다섯가지로 요약됨.
(1) 기아로 인해 공산중국은 민중봉기의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오히려 국민을 단결시켜 통솔할 수 있도록 중공을 도와준 꼴이 되었음.
(2) 미국은 조그만 북조선이란 나라 하나도 격퇴시키지 못한 종이 호랑이라는 명성을 얻는데 이바지
(3) 미국은 수만명의 미국인의 생명을 허비했으며, 열심히 싸우기를 원치 않은 UN때문에 수십억 달러의 돈만 낭비한 꼴이 되었음
(4) 미 국민들에게 미군은 앞으로 UN의 지휘아래 놓일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음
(5) 역사상 최초로 미국군대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함
- 어떤 형태건 독재자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언젠가는 국민들이 그 독재가 끝나기를 원하며, 민주주의가 자기 나라에 실천되기를 바라는 게 통례임. 다시 말해, 독재자 밑에서 사는 국민들은 자신들이 독재자 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그 독재자에 항거하는 운동을 일으킨다는 말임. 왕정대신 세워진 사이비 민주정권은 한 사람 대신 몇 사람이 절대 권력을 나누어 갖고는 마치 인민에 의한 정치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뿐임. 그들은 부패를 무기로 삼고, 언런의 위력을 십분 활용하여 선거과정을 조종함.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사건들을 조작하여 국민의 심리를 조종함으로써 대통령, 총리, 국회의원 따위들을 원하는 대로 선출함. 그리고 언론이나 교육, 홍보 등을 통하여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이 진실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세뇌공작을 함. 그래서 프랑스 혁명 역시 왕권의 독재 체제를 타도하여 다른 형태의 독재체제로 바꾼 것이지만, 이러한 사실을 꿰뚫어보는 사람은 몇명 안되는 것임. 그들의 첫번째 상투적 수단은 인위적인 경제공황을 창조하여 민심을 뒤흔드는 것. 단순한 경제파동으로 시작할수도 있고 전쟁을 통해서도 할 수 있으며, 그 밖의 여러 방법을 사용할수도 있음. 그리하여 국민들을 빈곤과 불황으로 인한 절망적 심리상태로 몰아넣고, 정치가들의 우왕좌황하고 부패한 몰골을 국민앞에 드러냄으로써,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누군가가 나서서 이런 상황에서 구출해 주었으면 하는 절실한 욕망을 갖도록 만들어감. 민심이 흔들리면 이들은 드디어 국민을 구한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지지를 얻어냄. 그 문제라는 것이 원래 자기들이 연출해낸 것이기 때문에 해결방안 역시 간단함. 이런 방법은 아직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는데, 이를 다시 이론적으로 정돈하면 문제야기->충분한 반응->해결, 즉 문제-반응-해결의 수순을 밟는 것임.
- 러시아 공산혁명은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노동자와 농민을 너무 탄압하고 돌보지 않은 나머지 굶주림을 못 이겨 일어난 자연발생적 반정부 폭동이었고, 그것이 공산혁명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음. 또한 소련이 유대인을 학대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는 프랑스 혁명과 마찬가지로 그 진실은 따로 있음. 한마디로 말하면, 세계의 석유와 경제권을 휘업잡기 위한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다툼과 관련된 사건임. 19세기 후반, 미국의 드레이크가 처음 유전을 발견하여 기름을 뽑기 시작하면서, 미래에는 석유라는 상품이 몹시 중요한 경제적 수단이 될 것이라고 예상됨. 록펠러는 1863년 2명의 동업자와 함께 스탠다드 오일사를 세우고 정유사업을 시작하여, 1872년에는 미국 정유업계의 25%, 1879년에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정유분야 사업의 90%를 독차지. 그 당시는 미국만이 기름을 갖고 있어서 미국 시장을 차지하면 세계 시장을 차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음. 그러나 미국의 독점은 오래 가지 않음. 러시아의 카스피해 해안가에 있는 바쿠 평야에도 유전이 발굴되었기 때문. 러시아 황제는 1883년 흑해로 빠져나가는 철로를 부설하는 한편, 유전개발을 위해 노벨 형제와 로스차일드 그룹 사람들을 초청하여 경제적 도움을 청함. 그리하여 록펠러 그룹과 로스차일드 그룹이 세계 석유사업 분야에서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됨. 로스차일드의 도움으로 러시아의 석유사업은 대단히 급속하게 발전해, 1888년에는 미국의 생산량을 앞지르게 됨. 당시 러시아의 경제는 아직 농경체제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유럽 전체에서 가장 뒤떨어진 나라 중 하나였음. 그러나 1907~17년 사이 러시아의 산업성장률은 엄청나게 뛰어올라 당시의 산업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 영, 독 같은 나라들을 능가할 정도가 됨. 따라서 1917년 일어난 러시아 혁명은 피폐한 경제상황 때문에 터진 것이 아님. 우리는 혁명이 반세기 정도의 줄기찬 경제발전 끝에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경제발전의 혜택이 주로 사회의 중산층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함
-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이 선제공경을 해오도록 유인했으며,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함대의 군함들을 모두 진주만에 집결시켜 일본을 유혹. 진주만을 공격하도록 미끼 작전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40년 6월부터임. 일본과의 전쟁이 곧 독일과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이런 계획이 세워졌으며, 루스벨트, 마샬, 스톡 등 세사람은 최소한 공격 21시간 전에 일본의 기습사실을 알고 있었음. 킴멜제독과 쇼트장군의 후손들은 지금도 명예회복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렇게 증거가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스벨트를 비롯한 참모들이 그때 일본의 기습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믿음 (진주만의 마지막 비밀)
- 1952년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 대학에서 외교사를 가르치는 찰스 텐실 교수는 전후 5년 동안 국무성에서 전쟁사를 연구한 사람으로서 전쟁의 뒷분이란 책을 썼음. 652쪽에 달하는 이 책에는 일반사람들이 모르는 중요한 사실들이 많이 실려 있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이 어떻게 2차대전에 개입하게 되었는지 명백히 드러나 있음.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측근 탈무디스트들의 만족을 위해서만 일했다는 것이 나타나 있음. 루스벨트는 미국의 탈무디스트들에게 계속 지지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서든 독일과 전쟁을 해야함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 이로 인해 현재까지 미국이 중동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 또한 그 일에 지대한 공을 세움. 탈무디스트의 사주에 따라 이스라엘 독립전까지 연 80만명이라는 전투병력을 팔레스타인에 집결시킨 뒤, 그들이 무장봉기하고 국가라고 선언하자 이를 즉시 인정함으로써 중동문제의 원인을 증폭시킴. 45년 루스벨트의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트루먼은 48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거의 병적인 집념에 사로잡혀 있었으.ㅁ 그러나 그가 당선될 가능성은 낮았음. 그는 시온주의 탈무디스트들의 막강한 조직을 등에 업었고, 매번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던 그들의 절대적 도움으로 대통령에 당선됨. 트루먼이 시온주의자들에게 어느정도 좌지우지당했는가는, 탈무디스트들이 48년 5월 14일 밤 12시에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하자 바로 11분 후에 백악관에서 이를 승인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음. 그는 미국민이 낸 세금 수십억 달러를 탈무디시트들에게 건네주어 이스라엘을 막강한 나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무장봉기해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해가며 억지로 만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미합중국의 특권을 이용해 평하를 사랑하는 나라라면서 UN에 가입시킨 사람이었음. 그 당시 UN에서는 이스라엘 가입문제를 표결에 붙였는데, 두표가 모자라 가입이 좌절될 것으로 예상되었음. 찰스실버라는 탈무디스트는 스펠만추기경을 밀사로 파견하여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는 남미 두나라를 설득시켰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당당히 UN의 회원국이 됨
- 68년 미국 CIA는 바트당을 지원하여 정권을 잡도로 하고 사담후세인이라는 독재자를 국가 원수로 만들어줌. 그래서 후세인은 CIA를 자기 은인이기도 하지만 속말을 할 수 있는 친구이자 항상 자기를 지원해주는 듬직한 상대로 생각해옴. 그러던 중 미국과 영국의 정보조직에서, 이란의 호메이니 정권이 혁명을 일으켜 국가질서가 엉망이나 이 기회를 틈타 쳐들어가면 곧 이란을 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후세인에게 던져줌. 후세인은 이 말에 솔깃하여 결국 이란과 전쟁을 벌였는데, 이란은 미국, 영국이 알려준대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어서 결국 양쪽 다 전쟁 때문에 8년이란 긴세월을 허비하고는 기진맥진해버림. 그런데 호메이니가 혁명을 일으키기 전 "샤"를 권좌에 앉힌 것이 CIA였고, 샤에게 쫓겨 프랑스로 망명을 간 호메이니를 돌봐준 것도 CIA였던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시한변 곰곰이 생각해볼 일. 결국 미국과 영국은 후세인을 감어이설로 꾀어 이란과 이라크를 싸움붙여 놓고는 8년 동안 무기를 잘 팔아먹은 데다가 기름장사로 돈도 벌고, 은행들은 군자금을 빌려주어 이렇게 저렇게 돈을 흠뻑 빨아냈던 것.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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