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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02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저자
강원택, 김병연, 안상훈, 이재열, 최인철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4-10-0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양극화, 정치 참여에 희망이 있다!심리학 · 정치외교학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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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수준은 10점만점에 6점정도로 나타났는데, 이는 12년 UN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발표한 세계 평균 약 5점에 비하면 높은 편, 도한 약 85%이상의 응답자들이 중간값(5점) 이상의 만족감을 보고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 국민들의 행복감보다는 낮지만, 전반적으로 삶에 대한 만족은 양호한 편. 더 행복해질 여지는 충분히 있지만, 우리 자신의 행복수준이 낮다고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음
(2) 한국인의 행복은 나이와 함께 결코 감소하지 않음. 따라서 노년기의 행복에 대해 비관적일 필요는 없음. 그 반대로 삶의 만족감은 U자형 패턴을 보여 30~50대에 낮은 점수를 보이지만, 60대 이후에는 반등하는 패턴을 보임. 또한 정서경혐에 있어서도 노년기의 긍정정서와 부정정서는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남.
(3) 월소득과 행복의 하위지표들 사이에는 약하지만 정적인 상관이 존재. 즉 월소득이 증가할수록 삶에 대한 만족감이 증가하고 정서적 경험 역시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남. 경제적인 부를 아파트 평수로 대체했을 때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나, 아파트 평수가 증가할수록 행복감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남. 결국, 계층간에는 주관적 행복의 불평등함이 존재함이 밝혀짐. 다만, 객관적 계층지표보다 계층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인 보고가 행복과 더 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보아, 행복에는 계층자체와 함께 자신의 형편을 바라보는 주관적 관점에 중요함을 알 수 있음.
(4) 자녀의 성적 혹은 학벌에 대한 부모의 만족여부가 부모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젊은 세대에서 강하게 나타남. 반면 자신의 학벌에 대한 만족감은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행복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것을 나타남. 한국사회에서는 공부 잘하는 것이 행복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시사하는 결과로, 다른 국가에서도 이런 패턴이 발견되는지 규명할 필요가 있음.
(5) 안보, 성장, 복지, 증세, 노조, 재벌규제 등 한국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태도는 행복과 무관함이 밝혀졌음.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련 있지 않은 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태도가 행복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결과로써, 이는 지나친 이념논쟁보다는 생활정치가 행복에 더 필요함을 보여줌. 동시에 이 결과는 행복의 추구가 복지, 안보, 성장과 같은 공동체 가치에 대해 무관심을 유발할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음.
(6) 계층의 불평등은 여가생활의 불평등으로 연결됨. 여가생활 중 영화관람과 여행이 행복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남. 즉, 행복한 사람일수록 영화관람을 자주하고 여행의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남
- 본래 중산층은 엄밀한 학술적 개념으로 시작했다기보다 매스컴에 의해 호명되면서 일상적 친밀성을 갖고 광범위하게 사용된 저널리스틱한 조어라고 할 수 있음. 서구 학계에서는 대체로 중간계급(middle class)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경제학자들은 중위소득계급(middle income class)이란 단어를 사용. 마르크시스트들은 유산계급(propertied class)와 무산계급(propertyledd class)이라는 구분을 사용. 그래서 중산층이란 조어는 상중하의 정도구분에서 가운데를 의미하는 '중'이라는 베버리안적 개념과, 자산유무를 나타내는 마르크시스트 냄새를 풍기는 '산'이라는 개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한국적 조어. 혹자는 계급론적으로 중산층은 자산의 경제적 소유관계에 따른 구분인 자본가 계급 또는 노동자 계급과 대조를 이루는 중간계급이면서, 자산의 분배과정에 초점을 맞춘 계층론적 개념으로서의 상류층과 하류층의 중간에 위치하는 중간층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용하기도 함
-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득기준으로 중산층을 정의할 때는 중위소득 기준 50%~200% 사이 어느 구간을 정하여 활용하는 반면, 실질적 함의를 갖는 중산층 개념을 원하는 정치권에서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을 원함. 미국 오바마 정부에서는 중산층을 정의하기 위해 주택소유, 자녀 대학교육, 의료보험, 퇴직연금, 가족휴가 등의 요소를 고려했고, 프랑스 퐁피드 정부에서는 1개 이상의 외국어 구사능력, 스포츠 활동, 악기연주 능력, 약자를 위한 봉사활동 등을 고려. 영국에서는 페어플레이 정신, 신명의 소유, 약자를 두준하고 강자에 대항하는 사람 등을 중산층의 요건으로 삼음. 적극적으로 중산층 개념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중산층이 계급이나 소득계측보다는 지위집단에 가깝다고 본다. 즉 생산수단의 소유여부를 중시으로 한 계급개념이나 단순한 소비수준의 정도를 의미하는 소득계층보다는 '생활양식, 공식교육, 직업적 위세, 소비의 취향과 능력 등을 공유'하는 동질적 공동체로서의 의미가 강하다고 보는 것이다.
- 일인당 국민소득이 5천불이 채 되지 않던 80년대 중산층 귀속감이 60%를 넘어 80%까지 치솟았던 반면, 국민소득 2만불을 넘어 3만불을 넘보는 사회에서 오히려 중산층 귀속감은 모두 사라지고, 자산이나 소득기준으로는 상위 4~6% 사이의 최상층만을 중산층이라고 믿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들은 중산층이 아닌 서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음. 이런 극도로 과장된 서민의식이 확산된 이유는 무엇일까? 객관적 생활조건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과의 격차가 더 크게 인식되는 상대적 박탈감이 중산층 의식의 소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에 따른 물질적 풍요가 국민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보다는 불행감을 증대시키고, 자살률을 높이며, 계층적 자신감을 급격해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경험은 영국 경제학자 허쉬의 표현을 빌리면 '성장의 사회적 한계'로 설명가능. 허쉬는 물질적 풍요를 이룬 70년대 영국사회에 주목했음. 그가 주목한 것은 세가지 경향성임. 즉, 경제적 성취가 모든 사람들의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다수가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되자 대부분 그 결과에 대해서는 실망하게 되는 풍요의 역설이 그 첫번째 증상. 대다수에게는 성장을 통해 파이를 크게 하는 것이 유익함에도 불구하고, 성장이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파이를 나누는 데 집착하게 되는 '분배에 대한 집착'이 그 두번째 증상. 그리고 성적인 기호나 미학적 취향에서는 극단적 개인주의로 치닫는 현대사회에서 유독 경제 영역만에서만은 집단주의적 사고나 국가규제에 대한 요구가 더 보편적이 되어버리는 '비자발적 집단주의'가 그 세번째 증상임
-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에 진출할 때와 비교해보면 풍요의 역설은 단지 심리적 박탈감 때문만은 아님을 알 수 있음. 이는 사회적 혼잡에 비유할 수 있음. 마치 도심에 자동차가 밀집하게 되면 교통혼잡이 발생하게 되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지위나 역할에 너무도 많은 지원자들이 몰리게 되면 사회적 혼잡이 발생하게 됨. 사회적 혼잡이 발생하게 되는 이유는 전체 재화나 서비스 등의 공급을 늘리는 것으로 해소되지 않는 지위를 둘러싼 경쟁이 발생하기 때문. 특정 지위를 둘러싼 경쟁은 늘 상대적 위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공급을 늘리는 것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한 주의를 필요로 함. 어떤 지위를 향해 줄을 서느냐에 의해 사회적 혼잡의 양상이 결정되기 때문. 에코세대에게 사회적 혼잡이 발생한 곳은 대졸자들이 기대하는 좋은 일자리를 위한 대기열이다. 반면에 고졸자들이 저학력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소기업의 일자리를 위한 대기열은 텅 비어있고, 그 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연수생들이 채우고 있다. 이 같은 일자리를 둘러싼 심각한 불일치는 그동안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벌어진 교육정책 중에 선별의 실패를 반영. 모두가 가난하고 평등한 사회에서 제한된 대학정원을 둘러싸고 경쟁한 베이비붐 세대에게 교육은 놀라운 상승이동을 가능케 하는 창구였음. 한때 온 나라를 뒤덮었던 무즙 파동과 같은 치맛바람도 역설적으로 교육을 통한 상승이동의 효능감이 그만큼 높았음을 반증. 그러나 공급의 확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해법으로 택한 대학정원의 확대와 대학설립 자율화로 인해 명문대학을 둘러싼 사회적 혼잡은 오히려 격화되고, 전반적 대학교육의 질 저하를 가져옴
- 중산층 의식의 소멸은 고도경제성장과 민주화가 가져온 성공의 위기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으로 성숙되고, 정치적으로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을 갖추게 되었지만, 그것을 가능케 했던 물질재의 확산에 뒤이어 중요해진 지위재를 둘러싼 경쟁의 단계에서 그에 걸맞는 사회적 합의와 운영의 메커니즘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사회변화가 수반하는 경제적 불평등 구조의 변화는 경쟁을 가속화시키고, 더 많은 성장을 통해 더 많은 물질재를 확보하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 그러나 한국사회가 진입한 단계는 더 이상 '묻지마 성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새로운 욕구에 직면하고 있음. 그것의 희소성을 지닌 사회적 지위를 둘러싼 경쟁이다. 더 많은 물질재를 공급으로 해소하기 보다는 집합적 소통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하는 것들이다. 복지의 문제는 대표적이다. 이제는 사회에서 도태된 특정 집단을 위한 복지가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생애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위험들에 대비하여 대응력과 복원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복지제도를 설계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왔다. 또한 이제는 개개인의 노력을 통해 대학을 졸업하고, 열심히 시험준비를 해서 대기업이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것으로는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시점에 왔다. 현재의 무한경쟁 구조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도 과거에 비해 훨씬 뒤지는 보상을 받는 직업을 갖게 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 대졸자들이 급증한 후 에코세대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서 받는 직장의 보수가 과거 베이비붐 세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받던 보수와 비교해 나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 이러한 지위재를 둘러싼 무한경쟁의 한계와 폐해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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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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