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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파이트

IT 2014. 12. 29. 22:00

 


도그파이트(DOGFIGHT)-애플과 구글, 전쟁의 내막과 혁명의 청사진

저자
프레드 보겔스타인 지음
출판사
와이즈베리. | 2014-06-1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구글은 아이폰을 죽일 작정이야. 우리 도 가만있진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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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로이드팀이 수너라는 코드명으로 개발중이던 휴대폰은 누가 봐도 방금 아이폰이 보여준 것보다 혁명적인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고 있었음. 그 소프트웨어는 각종 기능이 완비된 인터넷 브라우저를 비롯해 구글의 검색, 지도, 유투브 등 탁월한 웹 애플리케이션을 모두 구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너 외에도 아직 구상되지 않은 온갖 스마트폰, 태블릿, 여타 휴대기기에서 작동할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었음. 노트북이나 데스크톱과 연결할 필요도 없었음. 동시에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할 수 있고, 온라인 스토어에 접속해 구글의 지원과 독려로 개발된 다른 애플리케이션들을 쉽게 다운받을 수 있게 할 예정이었음. 반면 아이폰은 정기적으로 아이튠스에 연결해야 하고, 한번에 하나의 애플리케이션만 실행되며, 초기에는 애플리케이션 스토어 같은 것을 허용할 계획이 전혀 없었음. 그런데 수너는 외양이 볼품없었음. 블랙베리와 비슷한 생김새에 일반적인 키보드, 터치가 안되는 작은 화면이 달려 있었음. 루빈과 팀원들, 협력업체인 HTC와 T모바일 관계자들은 소비자들이 겉모습보다는 내부의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더 중시할 것이라 생각.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상식으로 통하던 시절. 혁명적 디자인으로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었음. 이런 이야기가 거론될 때문 03년 노키아가 게임기, 휴대폰, 이메일 기기를 하나로 합쳐놓은 엔게이지가 흔히 거론됨. 림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주름잡은 데는 블랙페리의 담백한 기능성을 강조한 것이 한몫 톡톡히 했음. 탄탄한 몸체 안에 전화기, 훌륭한 키보드, 보안 이메일이 모두 들어 있었음. 그런데 아이폰은 멋스러워 보이는 것은 물론, 그런 멋스러움을 이용해 전에 없던 사용법을 만들어냄. 안드로이드 엔지니어들은 불가능하다거나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사용법이었음. 아이폰은 물리버튼을 죄다 없애고 큰 터치스크린 상에서 가상 키보드와 소프트웨어 버튼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모든 애플리케이션이 저마다 다른 조작체계를 구현할 수 있게 했음. 재생, 일시정지, 중단 버튼은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볼 때만 나타났다. 브라우저에 웹주소를 입력하려고 할 때 키보드가 나타났다가 엔터를 치면 사라졌다. 본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물리키보드가 없으니 시중의 모든 휴패폰보다 화면이 두배나 큰 셈이었다. 아이폰은 사용자가 가로로 들거나 세로로 들거나 똑같이 작동했다. 애플이 아이폰에 가속도계를 넣어 중력으로 화면의 방향을 파악하게 했기 때문. 물론 최초의 아이폰은 이상한 점도 많았음. 루빈과 안드로이드팀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이 가상 키보드는 물리 키보드 같은 타자감이 없으니 사용자들이 선호하지 않으리라고 보았음. 그래서 최초의 안드로이드폰은 슬라이드 키보드 방식을 사용. 그러나 안드로이드팀이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 또 하나 있었따. 그동안 그들이 잡스를 과소평가했다는 것. 잡스는 스타일러스나 전용버튼이 아니라 손가락을 쓰는 새로운 조작법을 고안했고, 그 외에도 보여줄 것이 많았음. 안드로이드의 초창기 사업개발직 임원인 이선 비어드는 "우리도 애플이 휴패폰을 발표할 줄은 알았습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죠. 하지만 그렇게 좋을 줄은 몰랐습니다." 안드로이드 팀은 몇주 만에 목표를 완전히 재설정. 개발 초기단계에 있던 드림이라는 코드명의 터치스크린 폰에 초점이 맞춰졌음. 출시일은 08년 가을로 1년 미룸. 엔지니어들은 출시일이 됐을 때 아이폰과 차별화되도록 아이폰에는 없는 온갖 기능을 집어넣기 시작했음.
- 공식적으로 세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삼두체제였으나, 슈미트의 실제 영향력이 어느정도인가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논란거리였음. 브린과 페이지가 결정권을 쥐고, 슈미트는 주로 의전을 담당하며 실리콘밸리 용어로 어른스러운 감독관 역할을 하지 않는가가 쟁점이었음. 슈미트가 자기 역할을 확실히 못박아 말해주면 궁금증이 해소됐을 텐데, 그는 일반적인 최고경영자들처럼 설명하지 않았음. 04년 인터뷰에서 그는 이같이 말함. "난 무엇보다도 기차가 제시간에 달리도록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회의를 소집하고,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라면 다땅히 갖춰야 할 기능이 모두 갖춰지게 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게 하죠. 래리와 세르게이는 최상위 전략과 각종 기술전략을 추진해요. 내가 전략실행과정을 체계화하면서 힘을 보태지만, 전략은 두사람의 것이조. 그리고 만약에 우리 셋의 의견이 갈리면...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면 결국 누군가가 동의해요. 몇달이 지나면 셋 중 한사람이 말합니다. 아, 그때 다른 사람 말이 맞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아주 건전하게 존중합니다. 참 멋진 관계죠. 우리는 서로에게 절친한 친구이자 아주 좋은 동료에요"
- 일부 구글인사들은 돌이켜보면 아이폰이 안드로이드폰보다 먼저 시장에 나온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했다. 애플은 수천만 달러를 들여서 소비자들에게 터치스크린이 달린 신종기기 사용법을 가르쳤다. 2년 후 안드로이드 폰이 출시되었을 때 아이폰의 인기는 어마어마했음. 그래서 당시 아이폰을 확보하지 못한 통신사, 즉 AT&T를 제외한 모든 통신사가 대안을 찾고 있었음. 단기적 문제가 아니었다. AT&T는 애플과의 계약으로 4년동안 미국내 독점권이 있었음. 유스터스의 말이다. "그들은 불길한 징조를 느꼈고, 그 점은 확실히 안드로이드에 도움이 됐습니다. 사람들이 정신을 가다듬고 진지한 태도로 안드로이드를 보기 시작했거든요." 루빈과 안드로이드 팀에는 아이폰 발표로 드러난 더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회사가 아이폰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었던 것. 알고보니 구글은 아이폰 사업의 핵심협력업체였음. 구글의 최고위층은 2년동안 안드로이드를 지원하는 한편, 잡스의 신형기기에 구글의 검색, 지도, 유투브 소프트웨어가 들어가도록 애플과 은밀히 공조하는 팀도 운영하고 있었음. 실제로 잡스는 발표회 때 구글 소프트웨어가 포함된 것을 아이폰의 강점 중 하나로 꼽았음. 그는 아이폰이 "사상 최초로 주머니에 들어가는 인터넷"이라면서 "인터넷을 이야기할 때 구글을 빼놓을 순 없죠"라고 했음. 슈미트는 잡스의 무대에 올라 공고한 협력관계를 과시했음. 그는 "스티브 축하합니다. 정말 인기있는 제품이 될 겁니다."라며 3분동안 발언했음.
- 07년 당시 구글과 애플은 동종기업이란 인식이 전혀 없었음. 구글은 검색광고로, 애플은 전자기기 판매로 수익을 올림. "07,07,08년까지만 해도 애플과 구글간의 양자대결 구도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네트워크 플랫폼은 열개(경쟁기업)가 아니라 두개(지배기업)만 남는게 보통이죠. 그런데 그때는 누가 승자가 될지 확실치 않았어요. 노키아의 심비안은 여전히 막강했어요. 윈도 모바일도 어느정도 영향력이 있었구요. 물론 블랙베리도 만만치 않았죠." 그래서 브린, 페이지, 슈미트는 안드로이드팀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한편, 구글 아이폰 팀을 보강. 특히 주목할 만한 사건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중역인 빅 군도트라를 영입해 구글 아이폰 팀의 수장으로 앉힌 일이다. 당시 37세였던 군도트라는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줄곧 빌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밑에서 일하며 일선현장에서 외부의 윈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 즉 전 세계 수만명의 컴퓨터광들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관계를 다지는 역할을 해온 인물. 그는 기술에 대한 예리한 분석력, 잡스에 필적하는 발표력, 위험과 논란을 개의치 않는 과단성으로 명성이 자자했음. 90년대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눈부시게 성장하며 지배력을 넓힌 데는 그의 지칠줄 모르는 포교활동이 톡톡히 한몫했음. 그는 다들 성공가능성이 없다고 여길 때 전 세계의 수많은 프로그래머를 설득해 윈도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게 했음. 군도트라 영입은 구글에 엄청난 쾌거였다.
- 구글의 웹소프트웨어는 세상에서는 모든 제품이 무료이고, 진정한 의미의 완성이란 결코 있을 수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폭군을 비롯해 패키지 소픝트웨어업계 전체와 대치한 상황에서 그런 철학은 굉장히 혁신적이었다. 구글은 제품이 80% 정도 완성되면 사용자에게 공개한 후 그들의 피드백을 토대로 나머지 20%를 개발해 나갔다. 소프트웨어가 무료였으므로 사용자들의 기대치도 그리 높지 않았음. 그리고 소프트웨어가 웹에 있기 때문에 개선작업이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짐. 다음 버전이 매장에 나올 때까지 1년을 기다릴 필요가 없음.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옛날방식으로 판매되고 있었음. 루빈은 마감일에 대한 구글의 철학을 휴대폰업계가 끔찍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잘 알았음. 휴대폰같은 실물제품을 만들어 팔 때는 연휴 쇼핑시즌에 맞춰 제품이 완성되지 않으면 이통사의 마케팅 비용과 제조사의 개발비용 수억달러가 허공에 날아가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남. 또 다른 전직 안드로이드 엔지니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앤디가 이 날짜까지 이걸 끝내야해 라고 하면 엔지니어 팀에서 그때까진 무리에요 라고 하고, 그러면 또 앤디가 못 하겠다면 모조리 해고해버리고 제대로 일하는 팀을 새로 고용할 거야 라고 하는 때가 간간이 있었습니다."
- 08년 봄쯤 되자 두 회사간의 온기가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게 확실해짐. 슈미트, 페이지, 브린이 잡스와의 관계에 발목 잡히지 않고 포부를 펼치려 한다는 기미가 곳곳에서 드러남. 구글은 애플의 주요 엔지니어 몇명을 빼돌려 신종 인터넷 브라우저 크롬을 개발하는 데 이용하려 했음. 그리고 구글 검색과 구글지도와 관련해 두 회사간의 계약을 재조정하는 과정이 서로에 대한 악담으로 엉망이 됨. 구글은 아이폰과 맥에 독점 검색엔진으로 탑재되는 대가로 지급하는 금액을 줄이려 했고, 사용자의 아이폰에서 기본적 위치 데이터 이상의 정보를 얻고 싶다고 했음. 쿠퍼티노의 애플 사옥에서 회의를 하다보면 군도트라와 애플의 마케팅 수장 필 실러 사이에 고성이 오가곤 했음. 그럴 때바다 잡스와 슈미트가 나서서 논쟁을 해결해야 했음. 애플이 특히 마뜩잖게 생각한 부분은 구글이 아이폰에서 새롭게 가져가려고 하는 지도 데이터였음. 구글은 아이폰 사용자의 위도와 경도를 제공받음. 그런데 이제는 그 위치를 계산하는 데 사용되는 미가공 제이터도 달라고 했음. 사용자가 전화망에 접속되어 있는가, 와이파이에 접속되어 잇는가, 아이폰이 연결된 이동전화 기지국의 위치와 정보는 무엇인가? 애플 중역은 이렇게 밝혔다. "아무래도 그쪽은 그 데이터를 이용해 아이폰이 하고 있는 다른 작업을 유추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필이 중요하게 여긴 건 그 정보가 애플의 전유물이라는 점과 만약 다른 회사와 공유한다면 사용자들에 관한 데이터를 그들이 동의한 것 이상으로 공유하는 게 돼서 사생활 침해가 된다는 거였죠."
- 안드로이드를 확산시키기 위해서 루빈은 탑재 기기를 확대하기만 하면 됐다. 빌 게이츠가 윈도를 확산시킬 때 그랬듯이 루빈도 안드로이드 플랫폼이 전반적으로 성장세에 있으면 그만이지, 어떤 제품이 안타냐 삼진이냐는 안중에 없었음. 하지만 잡스는 iOS 플랫폼의 수직성장이라는 애플의 전략이 힘을 발휘하려면 매번 반드시 홈런을 날려야 했음.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구형제품의 업데이트 버전을 내놓을 때마다 무조건 성공해야 했음. 애플 안팎의 중역들은 잡스가 안드로이드를 상대로 지난날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할 때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플랫폼의 융통성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었는데, 실제로 잡스는 융통성을 점점 더 제한하는 것처럼 보였음. 2010년부터 잡스는 특수나사로 조립돼 일반적인 드라이버로는 케이스를 열 수 없는 제품을 점점 늘려감. 대수롭지 않은 조처 같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그 상징적 의미를 심상찮게 받아들임. 안드로이드가 소비자들에게 내세우는 장점 가운데 하나로 소프트웨어와 기기의 융통성이 있음. 반면 잡스는 애플 개조를 즐기는 고객에게 관심이 없음을 천명한 셈
- 앤디 루빈의 안드로이드 팀은 애플의 무자비한 혁신속도를 따라잡으려고 분투함. 하지만 2011년에는 거의 모든 전선에서 애플에 밀림. 안드로이드 기기의 보급대수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보다 많았음. 그렇지만 플랫폼 규모는 애플-구글 분쟁에서 지배력을 측정하는 척도 중 하나에 불과했음. 아이폰과 아이패드 덕분에 애플은 여전히 세사에서 가장 멋진 최첨단 기기를 보유한 기업이었음. 두 기기용 콘텐츠도 최고였음. 소프트웨어도 가장 사용하기 쉬웠음. 플랫폼도 콘텐츠 소유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수익을 올리기에 가장 좋았음. 잡스가 간파했고, 구글 중역들이 어떻게든 간파하려고 애썼던 점은 그들의 분쟁이 기술의 미래에 대한 주도권 다툼일 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미래를 지배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사실. 아이팟은 외양도 출중했지만 가장 큰 인기요인은 음원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 아이폰도 잡스가 앱 스토어를 도입하기 전에는 매출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음. 아이패드가 대중화된 시기도 잡스가 미디어 대기업들을 설득해 소비자가 구매할 수 있는 책, 신문, 잡지,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무궁무진하게 공급되도록 한 이후였음. 사실 애플이 큰 성공을 거둘수록 구글은 애플의 절대통제주의를 점점 더 흉내냄. 2010년 중반에 루빈은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를 더 보기좋고 사용하기 쉽게 만들고자 팜의 디자이너 마티아스 두아르테를 영입. 그리고 안드로이드폰과 태블릿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특정 안드로이드폰, 통칭 넥서스 시리즈의 디자인에 관여. 해당제품들은 삼성, LG, HTC같은 제조사에서 만들어지긴 했으나 디자인은 대체로 구글이 담당했고, 때로는 마케팅까지 구글이 직접 수행. 그러나 이는 구글과 안드로이드의 엔지니어링 중심문화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변화가 아니었음. 구글이 그런 움직임으로 판매량이 출중한 휴대폰을 확보하게 된 것은 2010년 말 넥서스S를 출시하고 난 이후. 태블릿은 2012년 넥서스7을 출시하고서야 판매량이 월등한 제품을 확보할 수 있었음. 구글이 아이튠스 스토어의 진정한 대항마를 갖추게 된 것은 2012년 안드로이드 앱 스토어에 자체적인 영화, 도서, 게임, TV프로그램 배포망을 더한 구글 플레이를 개장하면서 부터임. 그간 구글이 미디어 사업을 진척시키는 데 필요한 영업과 마케팅 능력을 어느정도 기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음. 구글의 수익은 거의 다 광고에서 나옴. 구글은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동영상 배급망인 유투브를 소유하고 이었음. 그러나 구글의 성공비결은 사회와 비즈니스의 관행을 거부한 데 있음. 구글은 기술을 이용해 광고와 배급사업에서 영업 및 마케팅을 배제함으로써 그 사업들을 일종의 방대한 수리연산작업으로 탈바꿈 시킴.
- 잡스의 부재를 무엇보다 뼈저리게 느끼게 한 사건은 아마 새로운 지도앱으로 빚어진 대형사고임. 애플은 구글이 협상에서 지도기술에 대한 지배력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며 이제 구글지도를 쓰지 않고 자기 길을 가겠다고 큰소리침. 그러나 아이폰5와 함께 선보인 자체 지도 앱은 버그투성이였음. 이후 거의 한달 가까이 온라인 게시판과 소셜 네트워크에는 워싱턴 기념탑이 엉뚱한 위치에 표시되고, 브루클린 다리가 녹아내리고, 운전자에게 틀린길을 안내해주는 등 사실상 앱을 무용지물 수준으로 만드는, 말도 안되는 오류들을 성토하는 글이 무더기로 올라왔음. 결국 쿡은 고객에게 사과하고 아이폰 소프트웨어 수장 스콧 포스톨 등 많은 책임자를 해고함. 이를 보면서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그런 실책이 빚어지도록 놔뒀을까 하고 의아해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음. 지도참사로 애플은 체면을 구겼지만, 구글은 영웅으로 떠오름. 구글은 신속하게 지도 앱을 재작성하며 여러가지를 개선. 석달후 구글지도가 업데이트되자 전 세계 언론이 애플지도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호평. 그리고 48시간만에 1000만명의 사용자가 구글지도 앱을 내려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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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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