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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에 관한 일곱가지 이론

저자
레즐리 스티븐슨 지음
출판사
종로서적 | 1994-06-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1-0009 작은 책자. 초판 22쇄. 밑줄 몇군데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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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에 관한 일곱가지 이론[책]철학/ 리뷰로그

2008/12/29 20:24수정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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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에 관한 일곱가지 이론

레즐리 스티븐슨 지음 | 임철규 옮김
종로서적정보유통
평점

1. 대립적인 이론
- 기독교적 비젼은 창조자를 아낌없이 사랑하고 순종하는 인간을 하느님께서 자신이 뜻하시는 상태로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참여하자마자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삶의 완성은, 인간과 사회, 이 모두가 여전히 불완전하고 세속적인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이 세속적인 삶을 초월함으로써만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비젼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진정한 자아가 될 수 있고, 더 이상 경제적인 조건에 의해 소외됨이 없이, 다른 사람들과 자유로이 서로 협조할 수 있는 미래의 완벽한 사회를 이 현실 세계에서 이룩하는 데 있다. 공산주의 사회의 보다 고차원적인 단계가 도래하기 전에 과도기적인 단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비록 혁명 후 곧바로 그와 같은 완벽한 사회가 올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되지만, 이러한 사회가 바로 역사의 목표라는 것이다.
- 필자가 논의하고자 선택한 이론들은 모두가 다 우리가 기독교와 공산주의에서 보아 왔던 그 공통적인 구조의 주요 요소들을 보여 주고 있다. 즉, 그 구조의 주요 요소들은 (1) 우주의 본질에 관한 배경적 이론 (2) 인간의 본질에 대한 기본 이론 (3) 인간의 잘못에 대한 진단, 그리고 (4)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처방으로서 나타나고 있다.
2. 이론에 대한 비판
3. 플라토: 철인의 통치
4. 기독교: 하느님의 구원
- 플라토(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리스 철학)는 지적 능력, 즉 철학적, 도덕적 진실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삶의 진정한 목적은 그러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달성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기독교는 도덕이나 고결한 삶을 강조하지 않고 이러한 삶의 토대가 되는 성격과 인격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의 진정한 목적-하느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을 달성하는 길은 지적 능력에 관계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다.
5. 마르크스: 공산주의 혁명
- 마르크스의 인간 개념에서 가장 독특한 관점은, 우리의 본성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즉 "인간의 진정한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성"이라는 관점이다. 먹어야 할 필요성 같은 뚜렷한 몇몇 생물학적인 사실 말고는, 마르크스는 개인적인 인간의 본질 같은 것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즉, 한 사회 혹은 한 시대에 인간들에게 적용되는 것이(심지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다른 장소 혹은 다른 시대의 인간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인간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행동으로, 그 행동은 어떤 형식이든 간에 그와 관련을 맺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고, 자라고, 성교를 하고, 배설하는 방식조차도 사회적으로 습득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무엇보다도 모든 생산 활동에 적용되는데, 왜냐하면 생업에 필요한 도구의 생산은 어떤 방식이든 간에 인간의 협동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사회적 활동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사회가 개인에게 영향을 주는 하나의 추상적인 실체라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어떤 종류의 개인이며, 어떤 종류의 일을 행하고 있는가는 그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성격의 사회인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6. 프로이트: 정신 분석
- 프로이트는 그의 경력을 생리학자로부터 시작했으며, 내내 과학자로 머물고자 했고 모든 현상을-인간의 본질에 관한 것도 포함해서-과학적으로 다룰 것을 주장했다. 그는 아무런 종교적 가정도(그는 사실상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또한 플라토가 형상에 대해서, 혹은 마르크스가 역사의 운동에 대해서 한 것 같은 형이상학적인 가정도 하지 않았다. 그가 가정했던 것은 (의심할 바 없이 19세기 과학의 훈련과 브뤼케의 생리학적 실험 연구의 영향으로) 모든 현상은 물리학과 화학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그리고 인간 자신조차도 궁극적으로 그와 같은 법칙에 종속되는 자연적인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7. 사르트르: 무신론적 실존주의
- 실존주의의 세 가지 주요 관심사 : 첫째는, 그것이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이론에 대한 것보다는, 개인적인 인간 존재에 관계한다는 것이다. 보편적 이론들은 각 개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그의 특유성-을 제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는, 세계에 대한 과학적 혹은 형이상학적인 진리보다는 인간 생활의 의미 혹은 목적에 관계한다. 그러므로 내면적 혹은 주관적 경험이 "객관적" 진리보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세째는, 개인의 자유가 분명히 가장 중요한 인간적 특성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실존주의자들은 모든 사람이 누구나 할 것 없이 스스로 자신의 태도와 목적과 가치와 생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진리로써 주장할 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와 같은 진리에 의해서 행동하도록 설득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관점에 있어서 단 하나의 "신뢰할 만한" 그리고 참된 생활 방식은 각 개인 스스로에 의해서 자유롭게 선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하나의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한 사르트르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신의 존재에 대한 거부이다. 그는 이 부정적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논의는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신을 논의하는 것은 그 자체가 자기 모순이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이 문제가 이전의 사상가들에 의해서 충분히 논증된 것으로 생각한 듯하고, 그 자신의 저서에서는 그 결과들을 고찰하고자 한다. 니체처럼, 그는 신의 부재가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무신론자는 단지 형이상학적인 면에서 기독교인과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관해서 깊이 있는 다른 견해를 가져야만 한다는 데 있어서 다르다는 것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 된다(예전에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듯이). 초월적이고 객관적인 가치 기준이 우리 앞에 확립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신의 계율이나, 플라토적인 형상도 없으며, 그 외 어떤 것도 없다. 인간의 삶에는 궁극적인 목적이나 의미가 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삶은 "부조리"하다. 우리는 이 세계 내에서 우리 자신들을 전적으로 스스로를 돌보게끔 "버림받은", "내던져진" 존재인 것이다. 사르트르는 가치 기준의 유일한 토대는 인간의 자유이며, 그러므로 누군가가 채택하려고 결정한 가치 기준은 외적인 그리고 객관적인 것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8. 스키너: 행동의 조건화
- 과학에 있어 기본적인 것은 기계도 아니고 측량도 아닌, 과학적 방법이다. 즉, 사실이 기대한 것이건 기대 밖의 것이건, 혹은 기분 좋은 것이건 불쾌한 것이건 간에 그 사실을 파악하는 태도이다. 모든 진술은 관찰 혹은 실험이라는 검증을 거쳐야 하고 증거가 불충분할 때는 우리의 무지를 인정해야 한다. 과학자는 현상들 사이에서 동일성이나 혹은 어떤 법칙에 지배되는 관계들을 발견하고자 애쓰고, 또 모든 특정한 경우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반 이론들을 수립하고자 노력한다.
9. 로렌쯔: 타고난 공격성
- 로렌쯔는 인간을 다른 동물들로부터 진화된 동물의 하나로 본다. 우리의 실체와 그 생리가 현저하게 다른 동물들과의 연속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로렌쯔는 우리의 행동 양태들도 기본적으로는 동물과 유사한 것이라고 예견한다. 우리 자신을 동물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유 의지의 이름이든 다른 무엇 때문이든, 하나의 환상이다. 우리의 행동은 모든 동물의 행동과 똑같은 자연의 인과 법칙에 종속되고 있으며, 우리가 이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 한 사태는 우리에게 나쁘게만 되어갈 것이다. 물론, 우리는 여타의 동물 세계와 정도에 있어서 다르며, 우리는 진화에 의해서 이만큼까지 오게 된 "지상 최고의" 성취 결과이다. 우리의 행동을 원인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반드시 우리의 "존엄성(dignity)" 혹은 "가치(value)"를 폐기하는 것은 아니며, 한편 우리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이 차츰 증가됨에 따라 우리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힘도 증가되기 때문이다.
- 인간 본질에 대한 로렌쯔의 견해에서 결정적인 포인트는, 다른 많은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종족을 향해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생득적 충동을 가지고 있다는 이론이다. 그는 이 사실만이, 왜 갈등과 전쟁이 인간 역사를 통해 일어나고 있으며, 이성적인 존재들이 왜 끊임없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가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프로이트의 죽음의 본능 이론도 인간 본질에 관한 동일한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해석이라고 말한다. 로렌쯔는 우리의 생득적 공격성에 대해서, 그리고 그 유별난 집단적인 공격성(왜냐하면 대부분의 파괴적 싸움은 개인간이 아니라 집단간에 있기 때문이다)에 대해서 진화론적인 설명을 하려 한다. 그는 우리 조상들의 어떤 진화 단계에서, 그들이 인간 외적인 환경의 위험을 다소 극복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주요한 위험은 다른 인간의 무리로부터 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웃한 적대적 종족들간의 경쟁은 자연 도태에 있어 주요한 요소가 되었으며, 따라서 "전사의 용맹(warrior virtue)"에 잔존 가치가 있게 되었다. '자연 도태는 종뿐만 아니라 문화의 진화도 결정할 수 있다'. 선사 시대일 것이라고 가정되는 이 단계에서는, 다른 무리들과 싸우기 위해서 가장 잘 뭉친 무리들이 가장 오래 잔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사실에 의해서 로렌쯔는 인간 무리가 흥분하여 공격적이 되고 모든 이성과 도덕적 절제를 잃게 되는, 말하자면 그가 "호전적 열광(militant enthusiasm)"이라고 일컫는 그런 경향을 왜 갖게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이 호전적 열광은 우리의 선사 시대의 조상들의 집단적 방어 본능으로부터 진화해 온 것이다.
- 인간의 갈등을 통제하는 데 있어서 이성과 도덕적 책임감에 호소하는 것은 아다시피 대단히 비효과적인 것이었다. 로렌쯔는 이 사실을, 공격성은 우리들 내부에 생득적인 것이라는 그의 이론으로써 설명한다. 이 공격성은 프로이트적인 이드 안에 있는 본능과 같이 여하한 방식으로든 배출구를 찾아야만 한다. 이성은 혼자서는 무력하며, 단지 어떤 결정된 목표에 이르게 하는 수단을 딴 방식으로 고안해 낼 수 있을 뿐이고, 어떤 본능적인 동기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을 때만이 우리의 행동에 대한 통제를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프로이트와 같이 로렌쯔는 진화에 의해서 우리에게 뿌리 박힌 본능들과 문명 사회에 필요한 도덕적 억제 사이의 갈등을 본다. 그는 선사 시대 인간 집단에 있어서는 종족 내에서의 공격을 처벌하는 원시 도덕이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부에서의 싸움이 일어난 어떠한 종족도, 다른 종족과의 경쟁에서 곧 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쟁의 압력들은 다른 종족에 대한 공격 본능을 낳았다. 그리하여 우리의 무기 제작 기술은 그 무기를 서서히 사용하는 데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우리의 본능을 훨씬 앞지르게 되고,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과 어떤 상황에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는 자발성(willingness), 이 양자를 지닌 채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10. 철학과 그 외
- 인간 본질에 있어 어느 정도가 선천적이며, 또 어느 정도가 사회 환경으로부터 학습된 것인가 하는 일반적 물음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것을 비교해 볼 수가 있다. 즉, 생태학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유전과 환경, 자연과 교육, 개인과 사회, 본능적인 것과 조건화된 것,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며 바꿀 수 없는 것과, 문화 관련적이고 변화/개혁되기 쉬운 것과 같은 대조가 가능하다. 얼마간은 선천적이고 또 얼마간은 학습된 것이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어느 것이 그리고 얼마만큼 그러한가이다. 플라토와 마르크스와 스키너는 사회적 조건화의 범위와 사회적 구조와 관행들을 변화시킴으로써 개인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강조한다. 기독교와 프로이트, 그리고 로렌쯔는 인간의 선천적인 보편적 본질에 있어서의 그러한 변화의 한계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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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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