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재발견'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12.07 지식의 재발견

지식의 재발견

인문 2014. 12. 7. 10:34

 


지식의 재발견

저자
커크 헤리엇 지음
출판사
이마고 | 2009-02-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Editor's Review [지식의 재발견]은 오늘날 우리가 ...
가격비교

1장. 고대세계 바로보기
1. 이땅에 살아남기 :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 미토콘드리아 DNA에 대한 예비적인 연구들은 흥미로운 두가지의 잠정적 결론을 이끌어냈음. 첫째, 다른 종족보다 아프리카인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훨씬 다양했는데, 이는 아프리카인이 현생인류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족임을 암시. 둘째, 세계의 어떤 종족 심지어 아프리카인 사이에서도 미토콘드리아 DNA의 다양성은 그렇게 크지 않은데, 이는 모든 현생인류가 한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운 시기까지 공통의 조상을 공유했음을 암시. 즉 현생인류 혹은 현생인류와 매우 가까운 호미니드들은 약 25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살았을 것임. 남성의 성염색체에 대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얻어졌음. 남성의 성염색체는 어머니쪽의 DNA에 전혀 희석되지 않고 아버지에서 아들로 유전됨. 더욱이 네안데르탈인 유골에서 채취한 미토콘드리아 DNA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 같은 종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현대인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네안데르탈인의 그것과 너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밝혀주었음.
2. 문명을 위하여 : 신석기 혁명과 문명의 대약진
- 초기의 신들은 동물형태를 띠어 동물모양을 한 신이라고 불렸음. 이 신들은 외관뿐만 아니라 습성에서도 인간의 속성을 가진 신들 즉, 인간모양을 한 신이라고 불리는 신들에 의해 대체되었음. 일부 신들은 동물과 인간의 외모를 모두 가지고 있는데, 가령 동물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음. 이는 일종의 이행기 형태로 보임. 사람들이 신을 인간의 모양을 한 존재로 여기기 시작한덷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음. 먼저 환경에 대한 통제력이 커짐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어떤 존재가 세계의 진행과적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안정감과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음. 두번째는 문명이 발전하면서 사회내부의 계층화가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음. 문명은 사회의 계층화를 심화시켰고 이것은 늘 문명이 야기한 저주였음. 부족사회와 문명이전단계의 문화에서는 일반적으로 계층구조가 발달하지 않아서 소수의 사제나 추장이 실질적으로 평등한 다른 주민들에 대해 주도권을 행사했음. 그러나 도시와 문명이 발달하면서 계층화는 훨씬 명백하고 복잡해짐. 관개와 같이 힘든 공공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마을의 원로들을 능가할 힘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했음. 이제 사람들은 막대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볼수 있게 됨.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자연의 불가사의들을 밝히고 운면을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에 (이런 인식은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시대까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음) 인간의 모양을 하고 있는 신들을 상상해내서 그들에게 의존하기 시작했음.
3. 강 유역의 비옥한 세계 : 고대 4대문명의 요람
4. 에게해의 사라진 문명 : 크레타문명과 미케아문명
5. 백인은 결코 홀로일 수 없다 : 백인이전의 아메리카 문명
6. 개인의 등장 : 문명의 황금시대
- 그리스인이 진보를 성취한 정확한 원인을 알수는 없지만 에게해에서 개별적인 세사건이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났고 이것이 그리스인의 비약에 어느정도 기여한 것 같음. 그 세사건은 페니키아 알파벳의 수용과 수정, 폭넓은 식민작업, 필기재료로서의 파피루스의 획득임. 비록 페니키아인이 알파벳을 발명했지만 그 알파벳에는 자음밖에 없었기에 인도유럽어를 기록하는 데 사용할 수 없었음. 기원전 8세기 중염에 그리스인이 모음을 첨가해서 인도유럽어의 기록을 가능하게 만들었음. 이렇게 해서 미케네 멸망 이후 상실되었던 글쓰기 능력이 회복되었음. 그리스의 식민작업은 본토의 동, 서 양방향에서 진행되었는데 아마도 본토에서의 인구증가가 그 원인이었을 것임. 현재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에게해의 동쪽 지역에 있는 현재의 터키내부와 그 근처에 있는 식민시들임. 이오니아라고 불리는 이 식민시들에서 그리스인은 다른 문화와 접촉하게 됨. 그 가운데서 가장 관심을 끄는 중요한 것은 기원전 첫 1000년대 중엽에 오늘날 터키지방에서 강력한 왕국을 세웠던 리디아인임. 리디아인은 현재 탐서쪽 해안에 있는 밀레토스를 제외한 이오니아 식민시들을 점령했음. 리디아인은 전반적으로 관대한 지배자들이었고 그들의 점령기는 정복자가 피정복자를 억압하는 시기이기보다는 음악, 문학, 경제를 배웠음. 더욱이 이오니아인의 그리스인은 리디아인을 통해서 아시아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었음. 비록 포위당하고 대부분 정복당한 사람들이었지만 이오니아의 그리스인은 그리스 본토인들과 달리 주변의 생각을 풍부하게 접촉할 수 있었음. 이것이 이른바 이오니아 기적의 원인임. 역사 전체를 통해서 보건대 문화들의 결합은 비록 결합된 문화들이 동등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일반적으로 생각의 발전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제공함. 그리스인은 식민시를 통해서 이집트와 접촉하면서 파피루스를 획득했음. 훨씬 편리하고 실용적인 필기재료를 획득한 그리스인은 알파벳의 이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음. 이집트인은 세계가 변화하지 않는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파피루스의 이점을 제대로 살릴 수 없었음.
- 그리스인은 최초로 기존의 믿음에 회의를 제기했고, 최초로 우주를 수학적으로 묘사했으며, 최초로 인간이 중요한 역할을 할수 있고 세계를 향상시킬 수 있었으며 형성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최초롱 자연현상이 정확한 원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음. 그리스가 문명에 선서한 유일무이한 선물은 그들의 남긴 일단의 지식이 아니라 지식에 대한 경의와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체계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음. 왜 최초의 문명들은 훌륭한 관찰을 했지만 우주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려고 체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못했는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강력한 사제단이 있었고 과학은 주로 그들의 수중에 있었음. 개인의 생각은 장려되지 않았고 과학은 오직 종교에 도움이 될 때만 중요성을 인정받았음. 그러나 그리스에서는 종교는 상대적으로 덜 강했고, 과학은 통제되지 않았음. 개인의 생각과 표현, 과학의 심장과 영혼이 허용됨. 따라서 종교가 조직적으로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과 개인이 함께 탄생할 수 있었음.
- 그리스 학자들이 생각했던 많은 것이 틀렸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생각했다는 것임. 그들은 종교와 신비주의를 크게 대체한 탐구정신을 우리에게 남김. 잘못된 사고는 교정될 수 있지만 종교적 독단은 그렇지 않음. 그리스인은 진정한 과학적 방법을 도입했음. 그들이 약간의 관찰과 실험을 하긴 했지만 그들의 과학적 방법은 주로 추론에 근거를 두었음. 후세대들이 과학적 방법의 필수 구성요소로 관찰과 실험을 첨가하겠지만 종교와 신비주의를 대체할 과학적 방법을 발전시킨 것은 인류의 발전에서 두번째 위대한 도약이었고(세상을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이후에) 고대 그리스를 우리 문명의 위대한 이정표로 만들었음.
- 문명의 첫번째 황금시대(기원전 3000년 경 거대 도시들이 형성되기 시작했을 때)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음. 그러나 기원전 500년 경 그리스, 인도, 중국의 세 문화에서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결정적인 진보가 이루어졌던, 두번째 황금시대를 추동했던 큰 추동력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음. 그것은 개인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음. 개인이 가치있는 존재이고, 그 가치가 비록 부분적으로나마 그의 신분이나 태생과 별도의 것이라는 인식은 혁명적인 것임. 종교와 신비주의를 개인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인식으로 대체한 것이 이 세 문화의 극적인 진보에 활력을 불어넣었음.
7. 로마의 법과 질서 : 로마제국의 흥망
- 절정기 로마제국은 그때까지 존재했거나 그후 존재할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은 아니었음. 영토를 비교한다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 이슬람세계, 몽골제국이 훨씬 컸음. 그러나 로마제국은 역사상 가장 안정된 제국으로, 동쪽 부분까지 계산한다면 거의 2000년 동안이나 존속했음. 로마제국이 위대한 것은 그 범위가 아니라 바로 안정성에 있음. 안정성의 관건은 로마인이 정복한 사람들을 동화시켰다는 점임. 전체적으로 로마인은 종속민들에게 시민권을 주는데 관대했음. 따라서 정복당한 자들은 스스로를 로마인이라 여겼으며 제국을 위한 충성스러운 기여자들이 되었음. 조그만한 도시가 그렇게 넓은 영토를 정복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사회 운영 및 행정능력이 뛰어났기 때문. 여기에 이유를 하나 더 들자면 그것은 한 지역을 실질적으로 동화시키기 전에 너무나 빨리 다른 지역으로 확장해가지 않았다는 점이 될 것임. 정복은 순간에 이루어지지만 동화는 오랜 시간이 걸림. 로마인은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려고 시도하기 전에 정복한 지역의 충성심과 노동력을 확보해 이용할 만큼 충분히 현명했음. 이런 동화 작업 덕분에 로마제국은 그리스인이 성취하지 못했던 오랜 단결을 확보했음.
-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항해하여 동방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원둘레를 실제보다 짧게 파악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음. 콜럼버스 시기에 교육받은 사람들은 세계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 그가 이 사실을 증명했던 것은 아니며, 그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생각은 역사상 가장 큰 오해중의 하나임. 천체에 대한 복잡한 견해를 정교하게 제기한 <알마게스트>가 코페르니쿠스에게 행성의 운동에 대해 더 단순한 설명을 추구하게 했듯이, 지구의 원둘레를 과소평가한 <지리학>은 콜럼버스를 자극했음. 지금까지 쓰인 중요한 책들에 손꼽히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작 두권이 그 오류때문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음.
8. 희망의 메시아 : 그리스도교의 탄생
- 예수가 죽은 직후에, 메시아에 대한 믿음이라는 오랜 전통에 의지하여 유대문화의 복원운동을 주도한 지도자들은 메시아가 이미 왔다는 결론을 내렸음. 예수는 당시 인기있는 순교한 개혁가였고 그의 가르침은 잘 기억되고 있었으며 그의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소속감을 주었음. 현대의 미국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인에게 자신들 속에서 최근의 메시아를 고르라고 하면 마틴루터 킹을 뽑을 것임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예수는 의심할 수 없는 후보였음. 그 다음 몇 세대 동안 로마의 점령에 맞서서 유대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하던 예수의 후계자들은 오직 메시아만의 도래만이 로마의 점령이 야기한 부패와 절망을 교정할 수 있기에 예수가 바로 그 메시아라고 믿고 가르치게 되었음. 이렇게 해서 예수는 메시아 혹은 그리스어로 기름부은자를 의미하는 그리스도로 알려지게 됨.
- 100년 경 이후 몇차례 일어날 정체불명의 전염병 가운데 최초의 병이 지중해 일대를 휩쓸었음. 그후 164~180년에는 갈레노스의 전염병이 발생했음. 250년 경에는 키크리아누스의 전염병이 지중해를 휩쓸고 멀리 스코틀랜드까지 퍼졌음. 원인이 파악되지 못한 전염병이 야기한 공포는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하는 자들의 메시지를 부각시켰음. 이런 상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이 바로 메시아이고, 그의 가르침이 유대공동체로 하여금 로마에 저항할 수 있게 하고, 그의 생명이 영원한 구원을 가능케 한다는 거대한 생각을 믿게 만들었음.
- 예수의 삶과 시대를 철저하게 연구해보면 그는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오해받고 잘못 전해지고 있는 인물임. 예수는 확실히 존재했고 철저하게 선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메시아라는 생각은 주로 그의 추종자들로부터 그것도 그가 죽은 지 한세대가 지난 후에 나왔다고 보여짐. 예수의 추종자들은 희망을 추구했기에 예수의 신성을 믿게 되었고,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들(로마제국의 압도적인 힘에 대항하여 필사적으로 위안을 추구하던 사람들)에게 최고의 의도를 가지고 다가갔으며, 자신들이 평화의 원천이라고 믿는 곳으로 그들을 이끌었음. 모든 사람에게는 희망이 필요한데 이는 1세기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우리 모두에게도 진실임.
2장. 중세시대에 관한 오해와 진실
9. 서로마 멸망이 드리운 그늘 : 중세초기의 유럽사
10. 신의 이름으로 이룩한 제국 : 이슬람교의 탄생
-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기꺼이 인정하고 승인했으며, 그 오래된 종교들의 많은 원칙을 자신들의 믿음에 통합했음. 무함마드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었다면, 불교가 힌두교를 수정하면서 시작되었고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시작되었듯이, 이슬람교도도 이 두 종교를 수정하려고 시도하면서 탄생했다고 주장될 수 도 있을 것임. 그러나 그는 이 두 종교에 대해서 거의 몰랐고 근본적으로 무에서 그의 사상을 형성. 이것이 그가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말은 아님. 그의 바람은 좀더 단순한 것 즉 그의 백성들에게 유일신 신앙을 갖게 하고 통일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었음. 역사상 위대한 종교적 인물 누구도 처음부터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음. 그들은 사상을 제시했고 그의 추종자들이 이것을 종교로 정교하게 다듬었음.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무함마드의 사상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못지 않은 훌륭한 새로운 종교가 되엇음. 무함마드 사후에 다른 무슬림들은 이슬람교를 유대-그리스도교 사상의 연속으로 만들었음. 이슬람교는 무함마드가 아담에서 시작하여 노아, 모세, 아브라함, 예수와 다른 많은 예언자로 이어지는 예언자들의 계통을 잇는 마지막 예언자라고 주장함. 이슬람교에 따르면 알라는 유일신 신앙을 아브라함에게 토라와 십계명을 모세에게, 시편을 다윗에게, 황금률과 간접적으로 신약에 보존된 일련의 가르침을 예수에게 계시했음. 그후 알라는 최우의 예언자인 무함마드에게 가장 위대한 작품 꾸란을 계시하여 이슬람교를 완성했음.
- 이슬람교가 칼에 의해서 전파되었다는 서구인의 생각은 재고해야 할 대상임. 서양은 이슬람교가 잔인하게 정복하고 타자를 강압적으로 개종시키는 특징을 가진 폭력적인 종교라고 인식하고 있으나 이것은 그릇된 인상이고 불공평한 것임. 무함마드 생전과 사후에 이루어진 이슬람교의 군사적 정복은 이슬람의 특별한 성격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반영한 것임. 많은 도시들이 평화스럽게 제국에 병합되었음. 대중적 속설과는 반대로 무슬림은 다른 사람들을 강제로 개종시키려고 하지 않았음. 진실로 이슬람은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 관용과 존경을 보여주었음. 이슬람교로의 개종은 많은 부분이 교역과 문화적 교류의 결과로 이어졌음. 꾸란은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인을 매우 존중했으며, 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고, 그들이 믿는 신앙을 유지한 채로 구원될 수 있다고 규정했음.
-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어려운 시절에 탄생했음. 불교나 유교와 같이 윤리적, 도덕적 원리에 기반을 둔 종교들은 더 번영하는 시대에 발흥했음. 시절이 좋을 때 사람들은 삶을 숙고하고 행복에 이르는 복잡한 길을 구축할 수 있음. 시절이 나쁠 때 사람들은 절대자와 전능함을 빨리 확정하고자 했음.
- 현대의 주요 종교 가운데 오직하나, 그리스도교만이 육체를 가진 한 인간의 신성을 믿음. (파라오가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믿었던 이집트의 신앙이나 이집트의 과학자이자 건축가인 임호테프가 신성화된 것처럼 이런 믿음은 역사에서 드문 것이 아님.)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다른 두 종교인 힌두교와 유대교를 수정하면서 시작했음. 동양의 세 종교인 힌두교, 유교, 불교는 이 세상에서 개인의 자아를 부정함. 힌두교는 내세에서도 자아를 부정함. 개인의 자아를 포기한 결과 이 종교들은 세상과 다른 종교에 대한 지배를 강조하지 않음.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구약성서의 종교들은 자아를 강조하며, 자아가 영원히 훼손되지 않는다고 주장함. 역사적으로 이 종교즐은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 만큼이나 세상을 지배하는 것의 가치를 인정함.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진리라는 개념은 동양의 종교보다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본질적 특성이고 이는 서구의 전반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함. 절대적으로 옳고 그름, 흑과 백, 진리와 거짓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은 서양의 역사로 하여금 필요이상으로 피를 많이 흘리는 길을 걷게 했음. 서구인은 동양인이 갖추고 있는 내적 평화, 조화, 생명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기에 동양인에게 많이 배워야 함.
- 근본적으로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는 잠재적 두가지 결점이 있음. 첫째, 이 종교들은 사람이 책임져야 할 것을 신에게 돌리고, 이로써 현재에 대한 관심을 왜곡하여 자신과 세계를 개선하려는 사람들의 열망을 감소시킴. 신의 역사에서 칼네 암스트롱은 그는 우리의 한계를 넘어선 영역으로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 속에 순응하며 남아 있도록 고무할 수 있다고 경고했음. 둘째, 신에 대한 믿음은 인간번영과 진보의 핵심인 개인의 창의력을 말살 시킬 수 있음. 정체성의 상실과 절대적 궁극성의 수용이 개인주의 및 그에 따른 과학과 진보를 막는 것은 일반적으로 진실임. 몇몇 위대한 사상가는 철저하게 종교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하려고 했고 그런 후에 신을 그 설명의 발단으로 삼았음. 그들은 신의 존재가 그런 설명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첫단계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종교를 단순히 합리적인 설명으로 대체하고자 했던 자들과 크게 대조됨. 유일신에 기반을 두고 있는 종교는 사람들만의 힘으로는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완성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근거함. 일부 사람들은 인간의 종교적 발전의 최종단계는 모든 종류의 신이 필요 없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지성과 기본적 선함이 언젠가 지금까지 신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해왔던 능력과 힘을 인간에게 제공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믿음. 이런 견해에 따르면 종교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인간의 문화적 진보에 따른 결과이고, 세계 주요 종교의 신이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기에 오늘날 인간은 종교적 발전의 관점에서 본다면 여전히 의인화한 신을 추구하는 단계에 있음.
- 과학과 종교가 반드시 대립하는 것은 아니며, 인본주의와 종교도 그러함. 만약 존재한다면 신은 법칙을 통해서 일하고 이 법칙이 우주를 운행하도록 허락함. 우리는 인간에게 큰 유익이 되도록 창조자의 위대함을 훼손하지 않고도 이 법칙을 파악할수 있음. 신이 이 법칙을 창조했다고 믿든 안믿든 우주의 법칙을 추구하는 것은 논리적이며 인간을 위한 희망임. 인류의 상태가 전적으로 신의 의지에 달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를 포기하는 것이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재능을 잃는 것임.
11. 동양의 우세 : 인도와 중국의 문화전성시대
- 무슬림도 유럽을 능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 프톨레마이오스를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는 그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유럽보다 500년 정도 앞서 있었음. 무슬림이 바다를 차지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지 않았던 것은 문화적인 것보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 그들의 제국이 북아프리카와 에스파니아에서 북인도까지 펼쳐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기존에 확립된 육로를 통해 유럽 및 동아시아와 교역할 수 있었음. 그들에겐 대양을 항해하는 것이 삶을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없었음. 서양은 그렇게 운이 좋지 않았음. 그들은 무슬림으로부터 아시아로 가는 육로를 빼앗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운명이라고 생각한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 바다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음. 지배를 추구하는 문화적 유산과 경제적 동기가 독특하게 결합한 서유럽의 상황들이 탐험을 조장했음. 바다의 미래는 서양의 손에 맡겨짐.
12. 중세후기 : 르네상스를 잉태하다
- 이슬람의 과학적 발전은 상당부분 그 사회에서 과학과 종교가 분리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음. 이슬람과 기독교는 매우 비슷한 종교이고 본질적으로 비슷한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과학적 탐구를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달랐음. 이슬람에서 과학은 종교적 비난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발전했으나 서양에서는 그렇지 못했음. (단 하나의 예외가 있었는데 기독교 세계에서는 육체의 해부가 가능했으나 이슬람에서는 그렇지 못했음)
- 사람들은 15세기에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갑자기 시작되었다고 믿음. 그러나 르네상스가 갑자기 그리고 15세기에 시작되었다는 믿음은 틀렸음. 르네상스는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몇세기에 걸쳐서 탄생했음. 그것은 1000년이후 유럽에서 적당한 번영이 찾아오면서 시작되어 11세기 이슬람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서 계속됨. 기독교 세계가 톨레도를 정복했기 때문에 15세기의 이탈리아가 아니라 12세기의 톨레도가 르네상스의 실질적 발원지임. 십자군 또한 유럽과 무슬림을 결합시키는 역할을 했음.
- 진리를 추구하는 데는 네가지 중요한 장애물이 있는데, 이는 모든 사람을 방해하므로 아무리 학식이 깊은 사람이라도 이 장애물을 넘지 못하면 학문에 대해 일가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는 잘못되고 부당한 권위, 관습의 힘, 대중의 편견에 굴복하는 것과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면서 무지를 감추는 것이다. (베이컨)
3장. 근대의 승리와 비극
13. 스스로 보기 시작하다 : 학문과 사상의 르네상스
- 종교개혁이 종교적/지적 자유를 확연히 증대시켰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잘못임. 신교도들의 선전요점은 자신들이 성서에 대해서 이견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는 것을 절대 관용하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음. 루터는 어떤 카톨릭 신자 못지 않게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광적으로 독단적이었음.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반대했으며 철저한 반유대주의자였음. 칼뱅은 한동안 사실상 제네바의 독재자였고 그의 임기 동안에 그에게 반대하면 화형대에서 죽임을 당해야 했음
- 상당히 빈약하지만 종교개혁이 가져온 종교의 자유는 두가지 면에서 1100~1600년에 서유럽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고대의 모든 사상 가운데 개인을 중요시 하는 개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음. 지식이 급격하게 팽창하고 인간의 가능성이 인식되는 분위기 속에서, 카톨릭 사제단이 필요없는 조직이라는 신교의 주장은 개인이 가치있는 존재라는 르네상스의 이상을 더욱 강화했음. 둘째, 종교개혁은 대안적 관점을 제공했으며 대안은 늘 지적발전을 고양시킴.
14. 학문의 새로운 방식 ; 과학적 방법론이 확립되다
15. 신세계의 문이 열리다 : 지리상의 발견들
16. 실험과 관찰 : 생명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17. 자연의 숫자들 : 17세기 수학과 과학의 눈부신 발전
- 뉴턴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중의 하나는 그가 형이상항글 사고속에 편입하지 않았다는 것임. 형이상학은 존재의 성격을 다루는 철학의 난해한 분야임. 오늘날 형이상학은 물리학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지만 역사적으로는 거의 뗄 수 없을 정도로 자연과학과 연계되어 있었음. 역사를 통틀어 볼때 과학적 발전은 수용된 것 못지 않게 거부된 것에도 유래해왔음.
18. 인류의 완전성에 건 기대 :18세기의 사상과 과학
19. 세상을 바꾼 기계들 : 산업혁명의 시작
- 효율적 증기기관이 만들어지기 전에 산업체들은 수원 근처에 입주해야 했음. 따라서 공장들은 다소 널리 퍼져 있었고, 수송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곳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았음. 증기기관은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이것이 발명된 후에는 공장을 아무데나 설립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을 도시에 살게 함으로써 도시지역의 인구밀도를 급격하게 증가시킴. 증기력이 사회의 도시화를 촉진시켰고, 역사상 최초로 도시들의 전반적인 인구과잉을 가져옴. 이것이 전염병 발생빈도를 증가시켰음. 전염병인 콜레라가 1829년 유럽에, 1831년 영국을 강타했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줌. 따라서 역사상 생활조건, 위생, 공중보건이 향상되기 시작하던 바로 그 시점의 많은 것이 이동가능한 기관에 의해 야기된 인구밀집으로 손상당했음. 이 문제는 교통수단이 향상되면서 부분적으로 완화되었지만 오늘날에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음.
20. 근대성을 향하여 : 19세기의 과학혁명
- 다윈 이전과 이후의 많은 사람들의 연구가 결합하여 완전히 발전된 진화이론을 만들어내었음. 레이와 린네의 연구가 없었다면 진화에 대한 조리있는 이론이 불가능했을 것임. 다윈과 월리스가 현재를 이해할 틀을 갖추지 못했다면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 레이가 종을 정의했고 린네가 그것들을 분류했기에 다윈과 월리스는 각 종이 어떻게 현재 그들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가를 설명할 수 있었음.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깨달음 즉 종이 변할 수 있다는 것, 지구가 매우 나이가 많다는 것, 지구의 지질이 점차적 변화에 따라 형성되었다는 것, 화석은 살아있던 생물체의 잔해이고 화석에 나타난 일부 종은 멸종했다는 것과 같은 깨달음이 진화론 탄생에 기여했음.
21. 질병과 고통으로의 구제 : 19세기 의학의 진보
22. 과학의 응용이 현대기술을 낳다 ; 사진에서 자동차 까지
- 현대의 도시는 이전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음. 여기에는 위생조건과 건축재료의 향상 이외에도 두가지 요인이 더 있음. 먼저 증기기관이 수력 공급원으로부터 도시중심지로 산업과 사람을 이동시켰음. 그렇게 거대한 도시지역을 형성시킨 두번째 요인은 자동차임. 자동차 덕분에 사람들은 도시에 살지 않고고 도시에서 일하고 도시의 규모와 영향을 키우는데 기여할 수 있게 됨.
4장. 현대과학의 개가
23. 경험너머의 세계 : 20세기 물리학의 성취
- 프로이트가 인간의 사고에 세가지 기여를 했은. 첫째, 그는 마음의 무의식적 부분이 미치는 영향을 입증. 둘째, 겉보기에는 완전히 잊혀진 것 같지만 어린시절의 경험이 사람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 셋째, 인간 본성의 고려되지 않는 측면을 보여줌으로써 그는 인간에 대한 좀더 완벽한 견해를 제시해꼬, 이 견해는 우리의 자아개념 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음. 그의 연구는 우리의 직접 경험을 넘어선 영역에 있는 우리자신의 부분들을 인식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음.
24. 우리 시대의 비극들 : 공산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세계대전
- 파시즘이 등장한 근본적 원인은 궁극적으로 보면 겁먹은 사람들로 하여금 명확하게 사고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인간 본성의 연약함 때문. 경제불황이 문명에 필수적인 것으로 파악했던 희망과 낙관주의를 소멸시켜 버렸음. 1차대전의 경제적 폐허와 대공황 때문에 탄생한 나치독일은 문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약간이라도 번영이 필요하다는 클라크의 주장이 얼마나 옳은 것인지를 보여줌.
25. 스스로 파멸할 수 있는 능력 : 핵무기의 개발
26. 지구와 우주를 향한 지식의 가속화 : 20세기 천문학과 지질학이 알려준 새로운 사실들
27. 인체의 마술탄환 : 항생제의 발명
- 세균의 재생기간이 매우 짧고 진화적 적응이 빠르기 때문에 저항력이 있는 유기체는 금방 예외적 존재가 아니라 그 종의 일반적 존재가 될 수 있음. 세균의 저항력이 증가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항생제와 관련한 또 다른 문제가 있음. 즉 항생제는 바이러스에는 작용하지 않음. 바이러스는 세균과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으로 인간의 세포를 공격함. 세균은 매우 작지만 완전한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음. 반면 바이러스는 완전한 세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현미경으로도 보기 에는 너무 작으며 세포안에서만 생존할 수 있음. 바이러스는 종정 그들의 DNA를 인간세포 DNA에 통합시키기 때문에 숙주의 세포를 손상시키지 않고는 죽이기가 매우 어려움. 세균의 신진대사를 표적으로 삼는 항생제의 분자 메커니즘은 바이러스에는 비효율적임. 세균을 죽이는 것은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지만, 바이러스를 죽이는 것은 건초더미의 지푸라기 안으로 들어가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음. 현재 인류는 구체적으로 바이러스를 목표로 하는 약을 개발하는 데 제한적 성공을 거두고 있음. 현재 바이러스를 죽이는 약의 수준은 항생제 제조에서 살바르산을 개발했던 때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 바이러스 병인에 맞서 백신을 만드는데는 좀더 큰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이 분야에서도 좌절이 거듭되고 있음.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작은 형태의 생물이 인류에게 가장 가공할만한 적임. 조수아 레더버그가 말했듯이, "인류가 지구를 계속해서 주도하는 데 있어서 단 하나의 가장 큰 위협은 바이러스이다."
28. 우리의 분자적 전체성 : 생명의 신비가 드디어 풀리다
29. 인류의 날개 : 비행기술의 발전
30. 실리콘 혁명 : 컴퓨터의 발명
- 글쓰기 방식의 개발이나 개량이 종종 지적 진보의 시대에 앞서서 진행되거나 같이 진행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함. 구세계에서 문명은 기원전 네번째 1000년대 말 글쓰기의 발전과 동시에 발전했음. 그리스는 기원전 6세기의 기적을 이루기 직전에 이오니아 식민시들로부터 파피루스를 도입했음. 2세기 종이의 발명은 중국문화의 발전에 기여했고, 중세말에 서양으로 전파되더 그곳에서 학문을 촉진했음. 인쇄술은 르네상스 시대에 지식의 전파를 촉진했음. 이런 사건들 각각에서 글쓰기의 새로운 방식 자체가 지식의 폭발을 야기했던 것은 아님. 오히려 다섯 경우 모두다 새로운 정보저장과 전달방식은 이미 조성되어 있는 우호적 사회 환경을 받아들이고 우호적 환경이 학문을 촉진하도록 크게 영향을 끼쳤음. 아마도 컴퓨터는 최초의 문자, 파피루스와 종이, 인쇄술에 필적하는 영향을 역사에 끼칠 지식의 전달방법이 될 것임.
31. 우주전쟁 :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
32. 세계를 바꾼 빛, 레이저
33. 유년기의 끝 : 인류의 당면과제
-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는 T4임파구에 들어가서 그것을 파괴함. 이 T4임파구는 어떤 바이러스, 균상종, 원생동물에 대한 면역에 결정적 역할음 함. 이 임파구를 파괴함으로써 인체면역결핍바리러스는 환경속에 편재하며 일반적으로 어렵지 않게 제어되는 유기체들에 대한 환자의 면역력을 현격히 떨어뜨림.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는 목표물을 직접 죽이지 않고 일반적으로 무해한 유기체들이 목표물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도록 함. 이것을 기회감염이라고 부름.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는 레트로바이러스라는 점에서 예외적 바이러스임. 자연속에서 일반적인 길은, DNA가 RNA로 전사되고 그후 RNA가 단백질로 번역되는 것임.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핵산으로 DNA를 가지고 있으므로 숙주세포의 효소를 이용하여 이 길을 따름. 일부 바이러스는 DNA를 가지고 있지 않고 오직 RNA만을 담고 있음. 이런 바이러스들이 세포속으로 들어가면 그들은 DNA를 건너뛰고 세포의 효소를 이용하여 더 많은 RNA를 복사하거나 자신들의 특별한 효소(역전사효소라 불림)를 이용하여 RNA로부터 DNA를 만들어냄. 그후 이 DNA가 추가 바이러스 RNA 생산을 위한 주형역할을 함. DNA를 만들기 위해 역전사효소를 이용하는 바이러스를 레트로바이러스라고 부르는데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는 이 예외적 무리에 속함.
- 70년대 암에 대한 이해에 전환이 이루어졌음. 암은 한 구역에서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전이되고 먼 곳까지 살포된다고 생각되어 왔음. 따라서 그 시대에는 먼 곳으로 전이가 일어나기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는 암을 외과적 근치조치를 통해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음. 그러나 그런 외과적 근치수술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점점 명확해졌음. 왜냐하면 암은 원래 특정장소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부정확하기 때문. 대부분의 암은 처음부터 전신성 질병이고 다만 최초의 발현이 지역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등장. 전이성 암에 걸린 인접한 림프절은 더 이상 원격전이를 위한 잠재적 공격 지점이 아니라 이미 전신 감염된 이 질병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되었음. 이 개념이 등장하면서 외과적 근치조치는 줄어들었고 화학요법 약물처방이 증가했음.
5장. 인류의 미래를 향하여
34. 예술과 인류의 창조정신 : 예술의 짧은 역사
- 문명의 관점에서 본다면 예술의 원근법은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원근법은 당대의 제도법과 산업디자인에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문명에 추상적이지만 중요한 영향을 끼쳤음. 15세기 피렌체에서 원근법은 인간의 능력을 확대하고, 세계를 한층 더 철저하고 정량적으로 볼 수 있게 했으며, 세계를 스스로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방식을 제공했음. 정량화와 스스로를 보는 것은 서구문명의 새로운 검증각인이었음.
35. 평등의 진리 : 가장 위대한 생각을 위한 투쟁
36.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 문명의 미래를 위한 제안
부록 : 역사가 가르쳐주는 12가지 교훈
(1) 기본적 필요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잔인하고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기 쉽고, 좀더 운이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음. 화가 나거나 겁에 질린 사람들은 명확하게 사고하지 못하며, 그 과정에서 이성을 포기하고 신속하고 간단한 해결책을 추구함. 따라서 이 이유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합리적 수준을 제공해야 하고, 우리의 더 잔인한 측면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도록 충분한 번영을 이룩해야 함
(2) 만일 어린시절의 환경이 우리를 훈련시키고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자긍심을 준다면 우리는 잘해낼 수 있음. 반대로 어린 시절의 환경이 적대적이고 파편적이고 도움을 주지 않고 너무나 빈약한 기회를 제공한다면 우리는 잘해낼 수 없음.
(3)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경험은 역사상 한시대에서 다른 시대가 바뀐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음.
(4) 개개인이 중요하고, 그들의 가치가 종교, 전통, 순응, 의례보다 소중하게 여겨질 때 진보가 이루어짐.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우리 모두가 유일무이한 개인이고, 자기 자긍심과 사회적 자긍심을 느낄 가치가 있다는 점
(5) 권력은 불가피하게 소수의 손에 집중되며 그 결과 그것은 스스로를 통제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대부분의 인류에게 비극이며 대부분 사람이 완벽하게 기여할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것을 의미.
(6) 종교를 갖는 것은 우리 문명에 위험하지 않으며 이런 믿음들은 인간의 생각가운데 최고의 것에 속함. 위험한 것은 이런 믿음에 너무나 자주 뒤따라오는 견해들임.
(7) 위대한 생각들의 기원은 뚜렷하지 않으며, 그 탄생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헌했음. 생각의 발전과정을 이해하지 않고, 성취물의 마지막 단계만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음. 따라서 소수에 의해서 인류문명이 발전했다고 흔히 결론 내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님.
(8) 아마추어들이 인류의 진보에 엄청나게 기여했음.
(9) 지식의 추구는 늘 추구자의 시대에는 꿈꾸지 못했던 실용적 활용으로 이어짐. 지식은 그 자체로 문명을 낳았고 우리를 현재의 우리로 만들었음.
(10)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가져야할 유일한 희망은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문제는 뿌리깊은 사회적 원인에서 기인하면 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혁신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임.
(11) 대부분의 경우 개인은 무책임하고 비난받을 만한 것으로 보이는 행동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책임이 없음. 뚜렷하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사람들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이 가진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함. 일반적으로 문제는 과거와 현재의 삶의 조건에 있고, 책임은 종종 우리 모두에게 있음. 사회문제는 합리적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막는 기본적 원인에 관심을 기울일때 비로소 효과적으로 교정될 수 있음.
(12) 정치지도자가 진짜 해결책을 입법하기 위해서는 사회문제의 진정한 기원을 이해해야 함. 우리에게는 기꺼이 학자가 되기를 원하고 사회문제의 해결책이 첫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정치지도자가 필요. 정치가는 유권자를 초월하고, 그들의 지식을 능가하며, 사회문제가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이해해야 함. 지도력이 아니라 학력이 정치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되어야 함.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클루지  (0) 2014.12.15
지식의 쇠퇴  (0) 2014.12.14
생각의 함정  (0) 2014.11.24
지금 경계선에서  (0) 2014.11.11
부자의 탄생  (0) 2014.11.09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