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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충격

사회 2014. 10. 11. 16:52

 


현재의 충격

저자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
출판사
청림출판사 | 2014-08-1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모든 것이 라이브이고 실시간이며 현재진행형이다!“우리 시대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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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벨이 말하는 영웅적 여정은 지금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임. 이런 식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선형적 구조가 우리 삶의 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단지 거기에 너무 길들여저 일어나는 사건과 문제를 바라보는 틀이 규정됐기 때문. 어떤 상황에서든 이와 같은 구조는 매료된 관객에게 어떤 가치관을 지닌 스토리라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음. 왜냐하면 우리가 주인공을 따라 위험속으로 들어가고, 그를 따라 긴장의 경사면을 올라 긴장과 불안이 최고조에 이른다고 할 때, 그가 거기서 빠져나올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떤 해결책이든 받아들일 용의가 있기 때문
- 한때 정치적 수완이라고 불렸던 것은 위기관리와의 끝없는 투쟁으로 바뀌고 있음. 정치 지도자들은 이슈를 감당하기는 커녕 그에 훨씬 뒤떨어짐. 그저 발생하고 있는 요지경에 대응하느라 급급할 뿐이고 그 과정에서 얼마간 책임자로 비칠 따름. 대서사가 존재했다면, 이념적 성향이 강한 정책 입안자의 경우엔 민족주의적이며 국수주의적 태도를 취했을 것임. 그러나 서사가 철저히 부재한 상황에선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몰아치는 예측불허의 재난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음. 스토리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고 있음. 9/11이 발생하고 겨우 사흘이 지났을 즈음, 부시가 워싱턴 내셔널 성당에서 "이 싸움의 시작은 그들이 정한 시간과 방식을 따랐지만, 그 끝은 우리가 정한 방식과 시간에 따를 것입니다."라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을 때, 서사를 제어할 수 있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음. 나중에 그는 전투기를 타고 항공모함에 착륙한 뒤 작전완료라는 현수막 앞에 선 적이 있는데, 그것은 마치 하나의 스토리에 마침표를 찍는듯한 태도였음. 하지만 현실은 그에 아랑곳없었다. 현재주의적 세상에서 스토리를 앞에서 이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 게임을 통해 우리는 대중문화의 많은 부분을 난감하게 만드는 서사의 붕괴에 대해 좀더 건전한, 적어도 좀더 능동적 대응을 할 수 있음. 또한 우리는 어떻게 하면 현재 충격을 피하면서 동시다발적인 오늘날의 삶에 순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도 얻을 수 있음. 플레이어는 스토리의 죽음에 당황하지 않고, 스스로 스토리가 되면서 기꺼운 마음으로 순간순가 스토리를 구현해낸다. 그럼에도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게임속에 가치관을 심을 수 있다. 이때 그가 하는 일이라곤 미리 가치관을 제시하지 않고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뿐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서사가 몰락하는 거의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있다. 정치 영역에서 보자면, 이는 새로운 양식의 사회운동을 시작한 점령운동가들의 방식을 취한 것과 같다. 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식의 운동을 탈피하고 상식 범위 안에서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다. 마케팅 영역에서 보자면, 이는 브랜드 신화를 강조하는 대신 브랜드 경험이라 불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같음. 오프라인 혹은 온라인 쇼핑 환경에서 소비자가 취하는 실제 쇼핑 방식은 브랜드 경험에 의한 것으로 소비자에게 스토리가 아닌 경험을 안겨줌. 이때의 경험은 선택하고 집중하는 자율적 행위의 경험임. 의학영역에서 보자면, 환자에게 아무짓도 말고 무조건 의사와 제약회사의 말만 믿으라고 하기보다 치유과정에 환자도 함께 하라고 하는 것과 같음. 게임이라는 렌즈를 통해 문화와 정치 그리고 경제가 돌아가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던 서사의 세계에서 실시간 참여를 유도하는 서사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음.
- 비록 중국인들이 베네딕트 수도사들보다 수백년 앞서 정교한 물시계를 만들긴 했지만, 아시아 문화에선 시계와 시간개념이 유럽에서처럼 널리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 서양인들은 중국인들이 이런 정교한 장치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른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보았음. 하지만 원인은 결핍보다 풍요에 있을 터였음. 중국인들은 그 진척에 대해 서양인과 다른 태도를 지니고 있었음. 시간을 쪼갤 수 있는 시계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중국인은 서양인과 똑같은 영향을 받진 않았음. 중국인은 시간을 다른 누군가의 소유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음. 이런 관점으 좋은 점도 있었고, 나쁜점도 있었음. 산업혁명 시대 여명기의 교회 종탑을 살펴보자. 신생 노동계금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방법을 모색하던 이들에게 시계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음. 역설적이게도 신성한 존재의 우월성과 편재성을 보여주기 위한 발명품이 결국 세속의 경제활동을 부흥하기 위한 도구로 바뀜. 그보다 한두세기 전부터 교역활동은 점점 활발해지는 추세였으며 숫자와 날짜를 기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기 시작. 이전 시대를 달력의 시대로 규정할 수 있었다면, 새롭게 등장한 시계의 시대는 일정표로 규정할 수 있을 것임. 수도원의 종소리는 새롭게 등장한 도시사회의 종소리로 바뀜. 교역하고 노동하고 끼니를 때우고 물건을 사고파는 모든 활동 사이사이에 종소리가 끼어들었음. 통화와 길드처럼 중앙집권적인 르네상스의 여타 산물과 더불어, 종소리를 통제하는 것은 중앙의 권력이었음. 이는 불신의 씨앗이 되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노동자들로서 고용인들이 시간을 제대로 재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 시계탑이 생기면서 누구나 시간을 볼 수 있게 됨. 그리고 시간확인이 가능해지면서 시간의 권위는 더 확장됨. 시계탑 덕분에 이제 일상의 리듬은 기계장치의 지배를 받게 됨.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좀더 촘촘하게 짜인 시간표에 따라 움직였음. 달력이 주도했던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이었던 반면, 시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와 효율이 될 터였음. 달력을 통해 사람들은 역사를 생각하게 된 반면, 시계를 통해서는 생산성을 생각하게 됨. 시간은 돈이었음. 시계가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고 난 직후에 영어 어휘로 새롭게 등장한 단어가 스피드였음. 그리고 원래는 시시콜콜하다는 의미의 펑추얼이란 단어도 정시에 도착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됨. 시계가 인간에 대한 은유가 되기도 함. 심장박동이 초를 재는 시계 탈진기의 똑딱거림과 닮았다는 것. 사람관리란 곧 시간관리였음. 사람들은 그들이 부리는 기계장치의 정확성과 규칙성에 따라 맡은 일을 수행해야만 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람들이 기계와 같은 존재가 되어감. 1800년대로 접어들자, 노동자들은 출퇴근 시간을 확인받고자 타임리코더에 시간을 찍음. 테일러는 기계를 다루는 자신의 솜씨를 사람에게 적용해 과학적 관리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 조수들과 함께 그는 스톱워치와 클립보드를 들고 회사 곳곳을 돌아다미녀 작업과정 각 부분의 효율성을 측정하고 그것을 극대화하고자 했음. 한 업무를 완전히 마무리하는 데 필요한 표준시간을 산출한다면서 서류함을 여는 데 소요되는 100분의 1초까지 측정. 일단 표준시간을 산출하고 나니 그것을 기준으로 노동자가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음. 능률증진 운동이란 것을 통해 시간이 갈수록 생산성이 증대된다는 이야기를 널리 퍼뜨리기 시작했고, 이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의 주장은 철저히 은폐했음.
- 바깥을 차단해 시간을 짐작할 수 없는 방에 사람을 집어넣고 관찰한 결과 연구자들은 평균적으로 사람의 생체시계가 24시간 주기라는 사실을 알아냄. 바로 이런 이유때문에 하루가 늘어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의 여행보다 하루가 줄어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의 여행이 훨씬 더 우리의 생체시계를 혼란에 빠뜨림. 그러나 무엇보다 이 연구에서 밝혀진 중요 사실은 우리 안에 어떤 식으로든 신체의 신진대사라던가 생화학적 작용의 지배를 받는 시계가 있다는 것. 우리 몸이 달의 기운변화나 자기장의 변화처럼 보이지 않는 그 무엇과 상호작용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음. 그 둘다일수도 있었음. 어쨌든 생리기능주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됨
- 우리는 해와 달의 주기와 계절의 순환 등과 같은 외부요인에 대해서도 반응하는 한편 내부리듬에도 반응. 우리 내부의 시계들은 서로 그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함. 낮시간에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체온이 상승하는데, 개중에는 더 빠르게 상승하는 사람이 있고 그들을 가리켜 아침형 인간이라고 함. 반면 체온이 서서히 오르는 사람들은 초저녁이 되어서야 가장 정신이 맑은 상태가 됨. 그런데 체온이 오를 때 우리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낌. 시간은 늘 일정한 속도로 흐르지만 우리안의 시계들은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
- 우리 인간은 농업을 발명한 이래 동기화의 이로움을 취하면서 살아옴. 특정 곡물이 특정 기후와 계절에 더 잘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된 농부는 때맞춰 거기에 맞는 씨앗을 뿌림. 이렇게 체계적으로 농사을 짓게 되면 곡물의 질과 양이 더 좋아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특정 계절에 우리 인간의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철에 수확할 수 있는 열매와 채소와 곡물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게 됨. 감자, 당근, 고구마, 비트, 그리고 그 밖의 뿌리채소 등은 겨울철에 많이 수확할 수 있는데, 이것들은 우리에게 겨울을 날 수 있는 에너지원을 제공하고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줌. 여름에 수확할 수 있는, 수분이 많은 과일은 더위에 지친 우리 몸을 식혀줌. 이런 피상적 관계 말고도 계절의 순환과 제철에 구할 수 있는 농작물의 효소 사이에는 분비샘과 호르몬의 차원에서 매우 긴밀한 관계가 존재. 지금 제철음식은 인간의 수십만년을 거쳐 진화해 오는 동안에도 제철음식이었음. 제철음식은 갑상선에서부터 비장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의 모든 것이 일정한 주기에 따라 비축하고 비워내고 신진대사를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거나 알려줌. 우리는 의식적으로 노력해 이런 식습관을 되살려놓을 수 있음. 그렇지 않으면 유기농 상점 진열대에 놓여 있는 일년 내내 구매할 수 있는 수경재배 채소들로 인해 우리는 자연적 식습관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계절은 우리의 정서와 호르몬 수치 그리고 신경전달물질의 분비에 영향을 미침. 우리 문화의 많은 부분은 바로 그러한 계절의 미묘한 영향력을 중심으로 이미 어느정도 형성돼 있음. 종교에서는 사람들의 감정상태를 이용하거나 혹은 중화시키기 위해 종교 축일을 만들어냄. 4월은 농사활동과 성욕이 최고조에 이르는 때인데, 그때 고대사회에서는 풍년제를 지냄으로써 토속신과 통치자들에게 그 에너지를 돌리도록 만들었음.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계절적 정서장애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일년 중 가장 어두운 시기에는 동지맞이 의식을 열음. 그때 각 가정에서는 밝고 푸른색을 띠거나 기름진 음식을 장만하기도 했음. 오늘날 영화사에서 여름철에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액션영화를 개봉하는 것은 여름철 관객들의 고조된 에너지를 겨냥한 것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 그런 식으로 겨울에는 지적인 영화를 그리고 봄에는 로맨틱 코메디를 개봉함. 영화사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자연적인 시간생물학적 리듬에 잘 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사에 유리하기 때문
- 우리가 독서를 하거나 사색을 할 때 수반하는, 신중한 형태의 인지활동은 속사포같고 피상적이며 충동적인 인터넷 활동에 자리를 내주게 됐다. 그런 것에 능숙해지면 우리는 마치 제임스 마치가 속성 학습자라고 명명한 그런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속성학습자는 즉석에서 생각의 골자나 과정의 결론만 쏙쏙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이 경우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 "속성 학습자는 노이즈가 낀 신호를 지나치게 바투 좇는 바람에 앞서 취한 행동의 결과가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변화를 시도하게 되고, 이는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음. 이런 방식은 유전알고리즘의 문제를 풀기보다 유명 연예인이 약물중독 치료를 받으러 가다 인터넷에 올린 최근 글들을 분석하려고 트위터 스트림에서부터 블로그 댓글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사람한테 효과가 있음.
- 새로운 미해결 과제가 주어지면 사람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음. 마치 AS센터 접수대에 놓여 있는 수리전표처럼 말이다.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문제 하나하나는 똑딱거리는 시계처럼 우리 뇌리에 자리잡음. 해결하지 못한 문제와 아직 일정을 잡지 못한 과제들은 우리 뇌에서 가장 활성화된 부분에 자리잡고서 처리되기를 기다림. 이와 같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방법은 열린 상태로 계속 돌아가고 있는 루프를 최대한 많이 닫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손댄 모든 일들을 완수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 언제 어떻게 그 일을 처리할 것인지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아내가 우유를 사오라고 했다고 하자. 퇴근하면서 사갖고 가겠다고 머리속으로 메모를 하기전까지 루프가 열린 상태로 있게 됨. 우유 살 돈이 있는지 확인하고, 퇴근하는 시간에도 가게가 계속 영업을 하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가게에 들렀다 오는 가장 짧은 동선은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한다. 일단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면, 아직 그 일을 마치지 않은 상태라 할지라도 열린 상태로 있던 루프는 닫힘.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것 혹은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없음. 뇌에서 활성화됐던 부분이 이제 해소됐기 때문. 이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입증된 한가지 방법임. 받은 메일함을 다 비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눈엔 메일 하나하나가 다 열린 루프임. 따라서 그들은 메일을 받으면 그냥 내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매듭지을 수 있는 어떤 조치를 취하라고 한다. 답을 하던가, 달력에 표시를 하던가, 할일 목록에 올리던가, 아니면 그냥 지워버리든가 하라는 것이다.
-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시간의 흐름속에서 자신을 탈바꿈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과거의 실수에 대해 용서를 받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그것을 더는 기억하지 않을수도 있음. 유대교 탈무드 율법에서는 사람들에게 일정기간마다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라고 함. 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과거에 혹은 어린 시절에 겪은 부끄러운 순간을 다시 끄집어내지 말라고 한다. 옛 사람들은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음. 어떤 사람을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약점이 된다면 공동체는 제구실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비교적 최근까지 문서기록물들이 일정시간이 지난 뒤 폐기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사람들은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하여 새출발을 할 수도 있었음. 그리고 7년이 지나면 파산기록이 말소되기도 했음.
- 소비라는 행위는 점점 공연관람을 닮아가고 있음. 소비자 입장에서진정한 의미의 소비는 없다. 단지 경험만 있을 뿐이다. 다른 이가 소유한 물건과 정보와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를 갖기 위해 끊임없이 대가를 지불할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는 얽매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예전에 구입한 디지털 음원이 혹시나 유실될가 봐 관리하고 백업할 필요도 없고 이사할 때마다 싸야 할 책과 음반도 없다. 화재와 홍수로 피해 입을 일도 없고, 원본이 훼손될 리도 없으며, 버릴 일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계약에 의해서만 접근할 수 있고, 업체가 우리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취급할수도 있으며, 사람들과 나누며 교류할 수 있는 길이 소프트웨어적으로 막혀 있음. 소비가 점점 더 편리하고 빨라지다보니 실제로 소유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지경에까지 이름. 어떻게 보면 마치 공유사회라도 된 듯하다. 모든 것을 공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집단만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의 삶은 언제나 단위로 환상할 수 있는, 일련의 금전적 경험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 서구인은 대상에 집중하고 그것을 범주화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동양인은 배경을 보고 더 큰 환경적 힘에 대해 생각함. 서양에선 형식 논리를 사용해 사물을 파악하는 데 반해 동양에선 다양한 전략들을 사용. 니스벳의 설명에 따르면 아시아인들은 전체론적으로 추론한다. 이는 그들이 대상에 주목하되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의 관계를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면, 범주나 법칙에 대해선 크게 신경쓰지 않고, 행동은 특정한 시간에 개별적으로 작용된다고 추정하는 힘에 종속된 것이라 인식함. 형식논리는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 대신 다양한 변증법적 추론을 한다. 여기에는 종합과 초월 그리고 수렴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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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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