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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세계의 축

경제 2014. 12. 25. 10:44

 


흔들리는 세계의 축: 포스트 아메리칸 월드

저자
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출판사
베가북스 | 2008-10-1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국내 각 언론의 찬사와 서평오바마 생각 알려면 이 책 읽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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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나머지의 부상
제2장 넘쳐흐르는 잔
- 알카에다 본부는 -오사마 빈 라덴과 아이만 자와히리가 이끄는 그룹은- 9/11 테러 이후 6년 동안 그 어디에서도 의미 있는 공격을 감행할 능력이 없었음. 그것은 원래 하나의 테러리스트 조직이었으나, 이제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조직으로 변모하여, 실제적인 테러활동보다는 적절한 타이밍에 비디오 테이프나 만드는 선전활동에 더 열중하고 있음. 지하드는 계속됨. 그러나 지하드 전사들은 뿔뿔히 흩어져야만 했고, 사소한 공격대상에 만족하고 있으며, 국지적으로 활동하고 있음. 그것도 보통은 알카에다 본부와 거의 아무 관련이 없는 단체들을 통해서임. 그리고 이러한 임시방편적 전략은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음. 즉, 이들이 지역 주민들을 살해하기 때문에 일반 회교도들로부터 점덤 더 소외당하고 마는 것인데, 이런 일은 인도네시아, 이라크 그리고 사우디와같은 여러 나라들에서 일어나고 있음. 지난 6년 동안 빈 라덴과 그의 대의명분에 대한 지지도는 무슬림 세계 전역에 결처 지속적으로 떨어져 왔음.
- 사람들은 불굴의 원기야 말로 최상의 대응책이란느 것을 깨달았음. 테러리즘은 보는 사람들이 나타내는 반응에 의해 규정되는 군사적 전략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특이함. 만약 우리가 테러에 대해 질겁하지 않는다면, 테러리즘의 전술을 작동하지 않음. 그리고 뉴욕과 런던에서부터 봄베이와 자타르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경험으로부터 이런 사실을 배우고 있으며, 심지어 불안한 가운데서도 삶을 계속하고 있음.
- 커뮤티케이션의 팽창은 세계가 점점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토머스 프리드먼의 표현대로 평평해졌다는 것을 의미. 값싼 핸드폰과 광대역 통신망은 사람들이 특정 국가에서 다른 나라의 일을 하는 것까지 가능하게 하고 있음. 이것은 지속되고 있는 자본주의 역사의 다음단계를 특징짓는 것임. 15세기 대형 선박의 출현과 더불어 상품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17세기 근대적 금융과 더불어 자본이 이동하게 되었음. 그리고 90년대에는 노동이 이동하게 된 것임. 사람들은 반드시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갈 필요가 없게 되는가 하면, 일자리가 사람들을 찾아갈 수도 있게 되었음. 그리하여 인도에서는 프로그래머를 찾아갔고, 필리핀에서는 전화교환원을, 태국에서는 방사선 기사를 찾아갔음. 상품과 서비스를 수송하는 비용은 수세기 동안 계속 하락해 왔음. 광대역 통신망의 출현과 더불어, 운반비용은 많은 서비스의 경우 거의 제로로 격감했음. 모든 일자리가 다 장기적으로 아웃소싱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아웃소싱의 효과는 모든곳에서 느낄 수 있음.
- 글로벌 성장은 우리 시대의 큰 이야기임. 유동성의 증가는-전세계를 돌면서 끊임없이 늘어나는 돈다발은-바로 그 이야기로써 설명되며, 바로 이 유동성이 저렴한 신용대출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부동산, 주식, 그리고 펀드같은) 자산의 가치를 증가시켜주었음. 동시에 저임금 국가에서의 붐은 지나친 인플레이션을 방지해 주었음. 인도와 중국을 바라보는 한가지 방법은, 서방세계와 비교해서 지극히 낮은 비용으로 재화(중국)와 용역(인도)을 계속 공급해대는 두개의 거대한 디플레이션 장치로 이해하는 것임.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되었고 예외적으로 긴 시간인 거의 20년 동안 낮은 이자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중 하나가 바로 이것임. 물론, 낮은 이자율과 값싼 크레딧은 또한 사람들이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행동을 하도록 만들기도 하여, 기술관련 주식, 주거비용, 서브프라임 모기지, 혹은 이머징 마켓 주식 분야의 거품을 키우기도 함. 그리고 그런 버블을 결국 터지고 맘. 세계가 점점 더 상호 연관되고 신종 금융상품이 많아질수록, 많은 시장관찰자들은 성장과 신뢰라는 미덕의 사이클이 패닉과 침체라는 악덕 사이클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음. 그러나 위기를 해소하는 과정이 극도로 고통스럽긴 하지만, 지금까지는 다양하고 새로운 성장의 원천들과 방대한 양의 새로운 자본이 글로벌 경제 시스템 전반에 더 큰 적응력을 부여해 왔음.
- 국제협력의 전통적 메커니즘은 과거 다른 시대의 유산임. 유엔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국제권력도구를 반영하고 있음.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이미 60년 전에 끝난 전쟁의 승리자들임. 이사국에는 (시장 환율을 감안할 때 세계 2,3위 경제대국인 일본과 독일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인도라든지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도 빠져 있음) 안보리는 전반적으로 지구촌 관리를 위한 낡아빠진 구조의 좋은 예가 되고 있음. 선진 경제8개국은 이미 세계4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이나, 12,13위인 인도와 한국을 포함하고 있지 않음. 전통적으로 국제통화기금은 항상 유럽인이 수장이었고, 세계은행의 우두머리는 미국인이었음. 신규 가입에 차별적인 구식 컨트리클럽의 관행과 같은 이런 전통은 인사이더들에게는 매력적이고 즐거운 것일수 있으나, 아웃사이더들에게는 편견을 가득 담고 있어 말도 안되는 것임.
제3장 비서구적 세계라고?
- 비서구 세계의 대부분에서 중앙집권 국가가 번창하고 있을 때, 어째서 유독 유럽에서는 그것이 제한되고 억제되었을까? 그 이유의 한 부분은 기독교라고 하겠는데, 왕의 권력과 경쟁할 수 있었던 최오의 주요한 제도가 바로 교회였기 때문. 이유의 또 다른 한 부분은 유럽의 엘리트 지주 계급인데, 이들은 시골에 독립된 기반을 가지고 있으면서 국왕의 전제정치에 대한 견제역할을 수행했기 때문. (서구 세계 최초의 권리장전인 마그나 카르타는 실제로 귀족들의 특권을 공표한 것으로, 귀족들이 왕에게 강요한 것임.) 그리고 또하나의 이유는 지리적인 여건인데, 사람에 따라서는 이것을 궁극적 이유로 들기도 함. 유럽은 넓은강, 높은 산맥, 그리고 큰 계곡들로 확연히 구획되어 있음. 이러한 지형학은 자연스럽게 많은 경계선을 만들었고, 도시국가, 공작령, 공화국, 민족국가, 제국 등 다양한 크기의 정치적 공동체들이 형성되도록 북돋우웠음. 1500년 당시 유럽에는 500개 이상의 국가, 도시국가, 그리고 공국이 있었음. 이러한 다양성은 아이디어, 인재, 예술, 돈, 무기 따위가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었음을 의미. 한 지역에서 박해받거나 무시당한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서 번영을 누릴 수 있었음. 한 나라가 성공하면 다른 나라들이 모방했음. 실패하는 나라는 사멸했음. 세월이 흐르면서 유럽은 이러한 경쟁 덕택에 부의 축적에도 대단히 능숙하고 전쟁의 수행에도 극도로 능하게 되었음.
- 모더니티는 서구의 부상과 함께 나타났으며, 따라서 서구의 얼굴을 가지게 되었음. 그러나 현대적인 세계가 확대되고 지구의 보다 많은 지역을 아우르게 되면서, 모더니티는 모든 것이 녹아드는 용광로로 변해갔음. 무역, 여행, 제국주의, 이민, 선교사들 덕분에 모든 것이 뒤섞임.
제4장 도전하는 자
- 중국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최대문제는 정부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부도덕하다는 점이 아님. 오히려 문제는, 정부가 통합능력을 상실할 거라는 위험성임. 이는 심해지는 분권화와 관련된 것이면서도 그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문제임. 중국의 급속한 변화는 공산당과 국가관료체제의 약점을 드러내고 있음. 여러해 동안 정부는 권력의 독점덕분에 대대적 개혁을 신속히 추진할 수 있었음. 정부는 필요한 곳에 인력과 재원을 배정할 수 있었음. 그러나 그같은 정부결정이 낳은 한가지 부작용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불안이었음. 그리고 공산당의 편협하고 위계적인 구조가 이들 문제를 헤쳐나갈 능력을 감손시키고 있음. 노동자와 농민의 정당인 중국공산당은 실제로는 세상에서 가장 엘리트적인 조직의 하나임. 중국 공산당은 도회지 교육을 받은 남녀가 주류를 형성하는 3백만의 당원으로 되어 있음. 이들은 당이 지도하고 있는 방대한 농민사회를 전혀 대표하지 못함. 고위 당직자 중 진정으로 대민 정치수완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음. 당내 책략과 후견인 관계에 능한 고급관료들이 높은 자리로 승진하는 경향임. 이들 지도자들이 대중정치에 임할 카리스마와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여부는 두고 볼 일임. 갈수록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13억 인구를 다스리려면 이런 능력이 필요함.
- 하나님이 도대체 외교정책과 무슨관계가 있을까?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그들의 견해를 전파하고 사람들을 같은 신앙으로 이끌려는 충동을 키워왔음. 영국, 미국, 프랑스, 사우디, 이란 등 국가들의 외교정책에는 선교정신이 뚜렷이 나타남. 영국과 미국의 경우, 어쩌면 그들의 국력이 강한 탓으로, 두 나라 외교정책의 핵에 내재한 개신교적 목적의식이 국제문제에 깊은 영향을 미쳐왔음. 대조적으로 중국은 이와 유사한 숙명의식 같은 것은 결코 지니지 못할 것임. 단순히 중국이라는 것, 그리고 세계의 강대국이 된다는 것만으로, 어느 면에서 그들의 역사적 목적은 성취되는 것임. 중국은 자신의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누구에게 무언가를 확산시킬 필요를 느끼지 않음. 따라서 중국이 인권문제에 관한 입장에서 냉혹해 보인다 해도, 그 정권이 억압적이거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대해 무자비하게 현실정치의 입장을 취한다는 뜻은 아님. 물론 그것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중국인들은 이들 문제를 다르게 봄. 그들의 판단기준은 추상적인 옳고 그름에 있지 않고 삶에 지침이 되는 철학으로서의 실용의식에 있음.
제5장 동맹
- 인도는 정부때문에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도 불구하고 성장함. 그것은 상의하달식이 아니라 상향식 성장이어서, 어지럽고 혼란스러우며 대체로 무계획한 성장임. 인도의 주요한 이점은 순순 민간분야, 재산권과 계약의 확고한 권리, 독립적인 사법권,그리고 (비록 자주 위반되는 법이긴 하지만) 법에 의한 통치임. 인도의 민간분야는 성장의 근간임.
제6장 미국의 파워
- 현대사회의 노동과 유희의 방식에는 세계 최초의 산업국가인 영국의 가치가 듬뿍 배어 있음. 영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문화수출국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말은 아님. 우리는 오늘날 아메리칸 드림을 이야기하지만, 그에 앞서 전세계가 주시하고, 동경하고, 모방했던 영국적 생활방식이 있었음. 한가지 예를 들면 페어플레이, 스포츠에 대한 열정, 아마추어리즘은 모두 저명한 영국 교육가였던 토머스 아널드 박사가 주창한 것임.
- 영국은 통찰력있는 전략적 예측과 훌륭한 외교력 덕분에 경제적 지배를 상실한 후에도 몇십년간 세계의 주요 강대국으로서 입지를 유지할 수 있었음. 영국이 처름으로 힘의 균형추가 이동하고있다는 것을 포착했을 때, 런던은 영국의 영향력을 향후 수십년간 더 연장할 수 있게 해준 한가지 중대한 결단을 내림. 그것은 부상하는 미국과 경쟁하기 보다는,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임. 1880년 이후 수십년간 모든 현안마다 런던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부상하는 워싱턴에 고개를 숙였음. 과거 식민지에 대한 지배를 양보하는 것은 런던에게 쉬운일은 아니었음. 특히 미국은 영국과 두차례의 전쟁을(독립전쟁과 1812년 전쟁) 치렀고, 얼마전의 남북전쟁에서도 영국은 남부의 분리주의자들의 손을 들어준 바 있었음. 그러나 영국은여전히 막대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반구의 지배권을 이전 식민지였던 미국에게 넘겨주고 맘.
- 2차세계대전은 경제대국으로서 영국의 몰락에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이었음. (45년 미국의 GDP는 영국의 무려 10배였음) 그러나 그같은 상황에서도 영국은 영향력을 매우 잘 유지할 수 있었음. 이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위스턴 처칠의 거의 초인적인 에너지와 야심 덕분에 가능했음. 미국이 전쟁에서 동맹국의 전비의 거의 대부분을 부담했고, 러시아가 인명피해의 대부분을 감당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전후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3대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영국은 비상한 의지를 필요로 했음. 45년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 스탈린, 처칠이 함께 찍은 사진은 어떤 의미에서는 오도의 여지가 있는 것이었음. 얄타에 사실상 빅3는 없었음. 빅2에다가 파워게임에서 자신과 자신의 조국을 지킬 수 있었던 뛰어난 정치적 흥행사가 있었을 뿐임. 덕분에 영국은 강대국으로서 대부분의 입지를 20세기 후반까지 유지할 수 있었음. 물론 거기에는 대가가 따랐음. 런던에 전쟁비용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미국은 카리브해, 캐나다, 인도양, 태평양 상의 수십개의 영국기지를 차지했음. 어느 하원의원은 이렇게 개탄했음. "대영제국은 아메리카라는 전당포업자에게 넘어갔다. 그런데 그 전당포업자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 본질적 핵심은 글로벌 강대국 영국의 시대는 실패한 정치 때문이 아니라 실패한 경제때문에 끝이 났다는 사실. 영국은 막대한 글로벌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제는 구조적으로 취약했음. 그리고 시행과 중단 사이에서 오락하락 했던 금본위제, 제국관세의 부과, 막대한 전쟁부채 등 잘못된 해법들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음. 2차세계대전 후에 영국은 경제의 상당부분을 국유화하고 강력하게 규제하는 사회주의 경제 프로그램인 베버리지 플랜을 채택했음. 경제가 거덜난 상황이었으니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60년대와 7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영국경제를 정체로 몰아간 주범이었음. 영국경제는 80년대에 와서야 마거릿 대처 덕분에 회복세로 들어설 수 있었음.
- 이민은 부유한 국가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성, 즉 열망과 에너지를 미국에게 제공함. 국가가 부유해질수록 출세하고 성공하려는 동기는 약해지기 마련. 그러나 미국은 신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려는 이민자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활력을 끊임없이 불어넣을 방법을 찾았음. 이들은 타는 듯한 태양아래서 장시간 과일을 따고, 접시를 닦고, 집을 짓고, 야근을 하며,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임. 그들은 오로지 일을 하겠다는 의지와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의지로 가족과 고향을 떠나서 힘든 상황속에 미국으로 온 사람들임. 미국인들은 거의 언제나 이민자들을 우려의 시각으로 보았음. 아일랜드인, 이탈리아 이민들, 그리고 중국인들과 멕시코인들, 모두 마찬가지였음. 그러나 이민자들은 미국 근로계층의 중추를 이루었고, 그들의 자녀들이나 손자들은 미국의 주류사회로 진입했음. 미국은 이민자들의 새로운 에너지를 활용하고, 다양성을 조율하며, 새로운 이민자들을 미국사회에 동화시키면서 경제발전을 이루었음. 그릭 결과적으로 보면 바로 이점이, 과거 영국의 사례라든지 이전의 모든 역사적 전례들과 미국을 구분짓게 만드는 것임. 역사적 전례들은 비대해지고 나태해진 강대국들이 자신들보다 야위고 굶주린 국가들의 부상에 직면하게 됬을 때 쇠락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줌.
- 21세기에 진입한 현재 미국은 기본적으로 경제가 취약한 국가도 아니고, 퇴폐적인 사회도 아님. 그러나 매우 역기능적인 정치문화를 키워왔음. 무엇보다 지나치게 시대에 뒤지고 융통성이 결여된 정치 시스템을 꼽을 수 있음. 돈과 특별한 이해관계, 선정적 미디어, 이념적 공격을 가하는 단체들이 225년 역사를 가진 미국정치시스템을 점령했음. 그 결과는 사소한 것을 놓고 끝없이 이어지는 맹렬한 논쟁으로 정치는 연극무대가 되어버렸으며, 여기에 실질적인 내용이나 타협, 행동을 찾아보기는 어려움. can-do의 국가였던 미국이 오늘날은 문제해결보다는 당파적 싸움이 목적이 된 do-nothing의 정치 프로세스에 빠져버린 것임. 특정 이해관계, 로비, 출신선거구의 이익을 위한 특혜지출 등 그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정치프로세스는 지난 30년간 훨씬 당파적이고 무력해졌음.
제7장 미국의 목적
- 미국인들은 경쟁의 미덕을 확고하게 믿고 있음. 우리는 개인, 그룹, 기업들이 경쟁상태에 있을 때 더 잘한다고 믿고 있음. 그런데 국제사회가 무대가 되는 경우 우리는 이같은 사실을 망각했음. 소련의 붕괴이후, 미국은 어떠한 경쟁자도 없고, 견제도 없는 거인처럼 세계를 활보해왔음. 여기엔 나름대로 장점도 있지만, 또한 워싱턴을 오만하고 부주의하며 나태하게 만들었음. 외교정책은 때로는 70년대 GM의 비즈니스 전략과 유사했음. GM은 사업의 무대가 되는 넓은 외부세계에 대한 감각을 찾지 못하고, 내부적 요인들에 의존해 움직였음. 그같은 방식은 GM에게도 통하지 않았으며, 또한 미국에게도 먹히지 않았음.
- 영국 엘리트 계층이 로마제국의 역사에 몰두했던 까닭은, 부분적으로는 이전의 대제국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음. 그러나 그것은 또한 서로 다른 대륙에 위치한 광대한 지역의 통치에 대한 교훈을 찾기 위한 것이기도 했음. 언어, 역사, 제국경영에 정통한 지식을 가진 인력에 대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 그러나 이것이 결국 미래를 이끌어나갈 엔지니어 육성의 필요성마저 압도해버리고 말았음. 영국의 파워와 그것이 미치는 광대한 범위는 영국으로 하여금 역사적 숙명의식에 취하게 했음. 이같은 추세는 청교도의 부활로 더 부추겨졌음. 역사학자 코렐리 바넷은 도덕적 혁명이 19세기 중반 영국을 휩쓸면서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한 실용주의적이고 이성에 토대를 둔 사회로부터 종교적 복음주의, 도를 넘는 도덕주의, 낭만주의에 지배되는 사회로 향해가게 됬다고 (70년대에) 지적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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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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