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사회 2014. 10. 7. 13:25

 


인간의 조건

저자
에릭 호퍼 지음
출판사
이다미디어 | 2014-02-2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 본질과 조화에 대한 성찰!"나는 전문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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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함에는 어딘가 비인간적인 면이 있다. 전문가의 손길에서는 본능적이거나 기계적인 면이 돋보인다. 역설적이게도,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바치는 노력은 지극히 인간적이지만, 기술의 완전한 터득은 비인간적인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만들려는 자들은 결국 인간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타락시킨다.
- 인간의 창조성의 원천은 그 불완전함에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해 창조력을 발휘한다. 특화된 기관이 없기 때문에 호모 파베르(무기와 도구 제작자)가 되었고, 타고난 기술이 없기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호모 루덴스(연주가, 장인, 예술가)가 되었다. 동물의 의사소통 수단인 텔레파시 능력이 없어 말을 하게 되었고, 본능의 무력함을 보완하기 위해 사색가가 되었다.
- 대중운동은 비합리성을 이용해 지성을 차단하고, 사람을 예측가능하며 비정한 기계로 만들어 버린다. 스탈린과 히틀러 둘다, 영혼을 기계화하는 도구로 맹목적인 믿음을 이용했다.
- 인간을 천사로 만들고 싶어하는 구세주는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들려는 전체주의 독재자만큼이나 인간본성을 증오한다. 절대권력과 절대신앙은 서로 닮은 점이 있다. 절대복종의 요구, 불가능한 것을 해보겠다느 각오, 매듭을 풀지 않고 아예 잘라버리는 단순한 문제 해결성향, 타협을 항복으로 보는 태도, 사람을 조종하고 피를 동반하는 실험을 자행하려는 성향이 바로 그것이다. 절대 권력과 절대신앙은 둘 다 비인간화를 위한 도구이다. 따라서 절대신앙은 절대권력과 똑같이 반드시 부패한다.
- 불완전한 열등 동물인 인간이 자연계에서 동물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약점을 이점으로 바꾸는 비범한 천부적 재능 덕분이었다. 인간의 도구와 무기는 특수기관의 결여를 보완해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냈고, 인간의 학습능력은 타고난 기술과 기관의 적응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업적을 달성했다. 장애를 기회로 바꿀 때 인간의 그 고유성을 최대로 발휘한다는 것은 여전히 불변의 진리이다.
-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발명이나 관습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대부분의 경우 비실용적인 영역에 도달한다. 많은 무기와 도구는 놀이도구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활은 무기이기 전에 악기였고, 바퀴는 도구로 사용되기 전에 장난감이었다. 아즈텍인에게는 바퀴가 없었지만, 이들의 놀이도구 중 많은 것에는 발에 롤러가 달려 있다. 토우가 토기보다 먼저 나왔고, 장식품이 의복에 앞서 생겨났다. 동물은 애완용으로 처음 집에서 기르게 되었고, 곡물을 처음 재배한 목적도 식량확보가 아니라 맥주제조였으리라 추측된다. 지금까지 수백년 동안 등장했던 많은 기계는 원래 놀이도구로 모습을 드러냈다. 알타미라 동굴 천장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동물 벽화를 그린 구석기 시대의 사냥집단은 가장 원시적인 도구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예술활동은 실용품 제작보다 유래가 깊고, 놀이 역시 노동보다 먼저 생겨났다. 인간은 필요에 쫓겨 하는 활동보다 놀면서 하는 활동을 통해 완성되었다. 인간의 독자성과 창조성의 원천은 어른 속에 있는 아이의 성향이며, 놀이터는 그 능력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 사회가 많은 업적을 달성하려면 고상한 목적과 빛나는 이상이 필요하다는 발상은 청소년식 사고방식이다. 시장에서나 전쟁터에서나 놀이도구를 열망하는 사람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진취적인 정신과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창조적 과정에 무지한 사람은 사고와 상상의 세계에서 동기와 업적간의 밀접한 대응관계를 찾아내려고 한다.
- 교육의 주요 역할은 학습의욕과 학습능력을 심어주는 것이다. 교육은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을 양성해야 한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는 배우는 사회이며, 그곳에서는 조부모도 부모도 자식도 모두 학생이다. 급변의 시대에 미래를 이어갈 사람은 계속 배우는 학습자이다. 배움을 끝낸 사람에게는 과거의 세계에서 살아갈 기술밖에 남아 있지 않다.
- 쥐가 아직도 주위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배가 가라앉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 지금 현재로 볼 때, 드러낼 진실이 있는 사람은 감출 거짓도 있는 것 같다.
- 진짜 창조자는 그 자체로 생명이 있는 것을, 창조자 없이도 존재하고 기능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낸다. 이는 저술가, 예술가, 과학자 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창조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코메니우스의 말을 빌리면 창의적인 교사는 덜 가르치면서도 학생이 좀더 많이 배우게 하는 사람이다. 창조적인 조직가는 자기 없이도 잘 굴러갈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낸다. 진짜 지도자가 자기 임무를 완수했을 때, 그를 따르는 지지자들은 우리가 스스로 해냈다고 말하고, 위대한 지도자 없이도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느낀다. 창조력이 없는 사람들에게서는 이와 반대의 현상이 발생한다. 하는 족족, 자기들이 없으면 안되게끔 일을 만들어 놓는다.
- 텅빈 머리는 실제로는 텅 빈게 아니라 쓰레기로 가득차 있다. 그러므로 텅 빈 머리에 뭔가를 집어넣는 일은 어렵다.
- 언어는 질문을 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다. 답변은 소리나 몸짓으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말로 해야 한다. 인간이 처음으로 질문을 했을 때, 드디어 인간성이 완성되었다. 사회침체는 답변이 부족할 때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결여될 때 나타난다.
- 사회의 활력은 풍부하게 사물을 차용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어느정도 결정되기도 하는데, 단 사물에 악영향이나 정체성의 손상을 주지 않고 차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서구는 다른 문명으로부터 풍부하게 빌려온 것을 기반으로 번영했다. 놀랄만한 것은, 1400년에서 1800년 사이 동양이 서양에 끼친 영향이 서양이 동양에 끼친 영향보다 컸다는 사실이다. 동양의 영향이 없었다면 콜럼버스는 미 대륙 발견을 위해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아시아 정복의 도구인 화약, 나침반, 천체 관측기를 전해준 쪽이 바로 아시아였다는 사실도 기억해두는 게 좋다. 현재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이 선진국으로부터 차용하는 일에 혐오감을 갖는 것은 바로 쇠퇴의 조짐이다. 사회적 소화불량 증상 없이 남의 것을 풍부하게 차용할 수 있을 정도로 활력을 갖춘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역사 초기에는 이집트, 크레타, 인도 등이 수메르에서 자유롭게 차용을 해 와 독자적이고 활력에 찬 문명을 발전시켰다.
- 현재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울 교훈은 놀랍게도 거의 없다. 과거는 문제로 삼기엔 현재와 너무 동떨어져 있고 너무 판이하다. 현재에 대한 통찰은 역사책이 아니라 인간조건에 대해 고찰한 서적에서 얻을 수 있다. 현재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기술이 승리를 거둘 수록 사물이나 비인간적인 요소가 인간사 형성에 기여하는 역할은 작아진다는 사실이다. 탈산업 시대는 심리적 요인에 지배될 것이고, 우리 시대의 의미있는 역사는 인간이 역사를 만든다는 가정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 우리는 천성적으로 목적에 대해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목적지에 도달하느니 차라리 끝없이 가기를 좋아한다. 수다닝 주어지면 거기에 매달려 종종 목적을 잊어버린다.
- 모르면 대담해진다. 이미 알려진 것인데도 이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자는 미지의 것에 대처할 준비가 특히 잘돼 있는 사람이다. 배우지 못한자는 배운자가 차마 두려워 디디지 못하는 곳에 종종 돌진해 들어가고, 맹신자는 불가능한 일에 주저없이 도전한다.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우연에 몸을 맡긴다. 과거에도 종종 현자들은 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커다란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19세기 초반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지식인들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가? 미 대륙의 발견에 지식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보통 사람들의 마음은 활활 타올랐다.
- 자기에게 먹을 것을 주는 손을 물어버리는 사람은 대개 자신을 차버리는 장화는 핥는다.
- 자기 자신과 대화를 더 이상 하지 않을 때 종말이 온다. 이는 순수한 사고의 종말이며 마지막 고독의 시작이다. 주목할 것은 자기 내면과의 대화중단이 주변 세계에 대한 관심에도 종지부를 찍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마치 자신에게 보고를 해야 할 때만 세상을 관찰하고 고찰하는 것 같다.
- 우리는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인생의 목적뿐 아니라 자신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목적도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는 살아가는 목적만큼이나 고통받는 목적도 필요하다.
- 아주 큰 소음을 내는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다. 개나 사람이나 이점은 똑같다.
- 나이가 든다는 것은 평범하게 되는 것이다. 노년은 인간을 평등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태초부터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하지만 젊을 때 우리는 세계 최초이ㅡ 젊은이라도 되는 것처럼 활개를 친다.
- 진정으로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지성이 필요하다. 지성이 없는 사람은 그저 독선에 빠질 수밖에 없다.
- 우리는 예상치 못한 것에 걸려 넘어질 때보다 예상했던 일이 일어날 때 더욱더 놀란다.
-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확실히 모를 때 말을 가장 많이 한다. 할 말이 있을 때는 몇 단어밖에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할 말이 전혀 없는데도 그것을 절실하게 말로 표현하려고 할 때는 세상의 모든 사전과 그 안에 수록된 단어를 총동원해도 충분하지 않다.
- 인간의 가치는 현재 자신의 위상을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위상으로 나눈 값이다.
-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은 해가 없지만,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서 바쁜 것은 해롭다
- 우리는 실제로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만 세세하고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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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배우는 경영 인사이트 40

저자
한상만 지음
출판사
원앤원북스 | 2011-10-2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경영원칙의 통찰력과 인사이트를 고전에서 깨닫다! 얕은 마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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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과 기술, 시장과 고객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리더에게 사목사총의 리더십을 더욱더 요구. 한 기업의 리더는 변화의 시기에 기회의 창이 열렸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함.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의 모든 문을 열어, 모든 방향으로 다보고, 모든 방향으로 다 들을 수 있도록 조직을 변화시켜 나가야 함. 그래야만 시장환경의 변화에 재빠르게 적응할 수 있고, 시장의 다양한 주체들과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어 시장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음.
- 두사람이 한마음이 된다는 뜻처럼 인 경영을 한다는 것은 기업생태계 내에서 서로 이익을 더 많이 갖기 위해 싸우는 제로섬게임을 하는 낮은 수준의 경영철학에서 벗어나서, 기업생태계 전체가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성장하는 존재임을 깨달아서 기업생태계의 성장을 함께 고민하는 큰 경영이라고 할 수 있음.
- 일일신 우일신 이라는 말은 지금부터 3천여년 전에 은나라 탕임금이 자신을 반성하고 마음가짐이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서 세숫대야에 적어놓은 글귀이지만, 이 글귀가 주는 교훈은 여전히 신선함.
- 잠룡물용 : 아직 물속에 잠겨 있는 용으로 큰 쓸모가 없음
현룡재전 : 이제 막 물에서 나온 용으로 밭에서 쉬지 않고 일함으로써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함
흑양재연 : 처음으로 뛰어오르는 단계에 들어간 용으로 설사 뛰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아직은 연못에 있다는 겸손함이 있어야 함
비룡재천 : 힘차게 하늘을 나는 용으로 하늘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함
- 입소문의 가치는 얼마일까 라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논문에서는 기존의 CLV라는 고객평생가치 개념에서 CRV라는 고객추천가치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역설. 쉽게 말해 더 많이 사는 사람은 CLV가 높은 사람이고, 더 많이 추천하는 사람은 CRV가 높은 사람인데, 더 많이 추천하는 고객이 중요하드는 것.
- 회사후소는 도화지가 하얗게 깨끗한 흰 바탕이 된 후에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의미. 공자는 회사후소라는 구절에서 그림을 예로 들었지만 이는 비단 그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님. 그림뿐만 아니라 경영도 먼저 기본에 충실해야 성과를 낼 수 있고, 전략을 그려낼 수 있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새로운 경영전략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기존의 조직과 인적자원에 대한 개혁과 제품, 그리고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집중해야 할 사업영역을 선정해야 함
- 군자불기 : 군자라면 스스로 그릇을 설정하지 않아야 하고, 두루 살피나 비교치 아니한다. 이 말을 직역하면 군자는 기가 아니다. 즉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라고 할 수 있음. 그렇다면 그릇이 아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논어집주에서는 기란 그 용도에만 적합해 상호통용되지 않는데, 군자는 이와 같이 자신의 그릇속에 갇혀 있지 말고 다른 것도 두루 섭렵해 획일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보다는 자유자재로 융통성과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음. 다시 말해 진정한 의미에서 군자란 자신의 생각에 갇혀 큰 것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며, 폭넓은 시야를 갖고 시대의 큰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음. 따라서 군자불기의 경영이란 갇힌 사고에서 열린 사고로의 전환을 의미. 이것은 특히 마케팅의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음.
- 삼현일장의 의미를 기업경영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 경영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삼현이란 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해 출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기업의 고객자산과 시장가치를 확장해 나가는 시기라고 볼 수 있음. 반면에 일장이란 기업이 성장하기 위한 준비기간이라 볼 수 있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신제품을 출시하고 마케팅을 하는 것을 봄이라고 생각한다면, 성장하는 시장에서 기업의 이익을 확대하고 점유율을 크게 늘려나가는 활동을 여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임.
- 도천지장법의 순서는 그 중요성에 입각한 우선순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를 마케팅 전략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다음과 같음
도 : 국민과 국가가 함께 갖춘 신념. 기업의 미션과 비전
천 : 각종 자연현상과 기후, 기상조건.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트렌드 분석
지 : 전쟁터의 지형적 특성과 길의 멀고 가까움. 시장분석
장 : 장수의 능력. 자사의 역량분석
법 : 명령 및 보급체계와 같은 제도적 운용. 법/제도/규제 등의 외적 환경 분석
- 통 : 아군과 적군 모두 진공할 수 있는 지형. 성장기 산업
괘 : 나아가기는 쉬우나 물러서기가 곤란한 지형. 진입장벽은 낮지만, 퇴출장벽이 높은 산업
지 : 아군과 적군 모두 불리한 지형. 성숙기, 쇠퇴기 산업
애 : 길이 좁아 방어가 유리한 지형. 선도자가 방어하기 유리한 산업
험 : 방어하기 좋은 험준한 지형. 선도자가 절대 유리한 산업
원 :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현재 역량을 보유하지 않은 산업
- 최고의 전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손자는 주저없이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전략이라 했음. 적의 전략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최고의 전략임. 이것은 프레임의 싸움이라 할 수 있음. 소비자들에게 어느 한가지의 프레임을 통해 상황을 인식하게 만들게되며, 그 프레임에 속하지 못하는 경쟁자느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것. 손자는 이러한 최고의 전략을 벌모라고 했음. 전략의 프레임을 선점하는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시장에서 쫓아가는 입장이 됨.
- 고상병벌모, 기차벌교, 기차벌병, 기하공성. 최고의 병법은 적의 전략을 봉쇄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적의 동맹을 공격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병사를 움직여 적을 치는 것이며, 가장 최악의 병법은 적의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 솔연은 원래 매우 재빠르다는 뜻으로 전설속에 등장하는 매우 거대한 뱀을 가리킴. 전설에 따르면 이 뱀은 머리를 치면 꼬리가 달려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달려들며, 몸통 한가운데를 치면 머리와 고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함. 손자는 이것을 부대의 진법에 활용해 상산사진 이라는 번개같이 빠른 전술과 매우 강력한 기동력과 전투력을 가진 부대를 창안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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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한국 현대사

역사 2014. 10. 7. 13:23

 


두 개의 한국 현대사

저자
임영태 지음
출판사
생각의길 | 2014-02-28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이 책은 최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한국사 교과서 사건’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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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시대 구우익의 주무기는 반공이데올로기와 편가르기식 이분법이었는데, 뉴라이트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음.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친북, 종북, 좌익, 좌빨, 나아가 김정일 정권의 2중대, 김정일의 하수인 등의 용어를 쓰는 것은 올드라이트와 판박이임. 그래도 올드라이트는 형식상으로는 민족을 강조했고, 뉴라이트처럼 항일독립운동을 폄하하거나 친일파를 노골적으로 옹호하지는 않았음. 그러나 뉴라이트는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을 아예 부정하며 친일파를 노골적으로 옹호. 그들은 지금 일본에서 군국주의 부활을 주도하는 아베신조와 같은 극우세력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의 소리도 내지 않음. 오히려 일본의 침략행위를 규탄하며 온몸으로 저항하는 정신대 할머니들을 비웃는 일조차 서슴지 않음. 올드라이트는 북한을 적대시했지만 하나의 민족, 통일의 대상으로는 보았음. 그러나 뉴라이트는 그런 개념조차 없음. 북한을 아예 한국사에서 제외해야 할 존재로 취급. 그들은 어떤 형태의 남북화해나 협력도 부정함. 그런 행위는 오직 종북, 좌빨의 행위일 뿐이라고 강변함
-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진보적인 사람보다 보수적인 사람이 더 큰 힘을 발휘.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유신체제를 만들고 지탱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후예들이 다시 정치권력을 장악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음. 유신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그의 주변에 올드보이들이 몰려들어 한국사회 전체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음. 한국 현대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퇴행하고 있음. 역사적으로 보면 진보가 힘을 발휘한 시기는 매우 짧았음. 반면 보수가 주도한 기간은 길었음. 그런데 역사를 돌아보면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합리적 보수가 아니라 보수를 가장한 극단주의였음. 지금 보수를 가장한 극단주의 세력, 즉 극우세력이 한국 사회를 좌우하고 있음. 그들은 비상식적인 뉴라이트 교과서를 만들어 한국역사의 전통과 근간을 뒤흔들고 있으며, 국정원의 선거개입 공작과 같은 국기문란 행위를 자행하여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음. 한국 사회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합리적 보수와 극우세력이 분리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이런 논리는 당연히 진보세력에도 해당됨.
- 건국절 주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항거한 독립운동의 가치를 축소하려는 사고. 이영훈은 건국절을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했음. "1945년의 광복과 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이다. ...반면 45년 8월의 광복에 나는 그리 흥분하지 않는다.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 감격이야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그렇지만 후대에 태어난 사람의 입장이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 광복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광복은 일제가 무리하게 제국의 판도를 확장하다가 미국과 충돌하여 미국에 의해 제국이 깨어지는 통에 이루어진 것이다." 광복이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이 잘못된 것은 아님. 그러나 우리 힘으로 광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독립투쟁의 가치나 의미가 훼손되는 것은 아님. 그걸 부정해서도 안됨. 친일파들이 일제에 빌붙어 호의호식할 때, 독립운동가들은 만주벌판과 중국대륙을 누비면서 풍찬노숙했음. 그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를 나라의 독립에 바쳤음.
- 독립운동가의 헌신과 희생을 생각할 때 이영훈의 주장은 광복절이 의미를 폄훼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움. 그러나 문제는 이영훈만이 이렇게 하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뉴라이트로 불리는 사람들의 인식체계는 대동소이함. 뉴라이트 세력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을 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함. 그들은 일제의 지배가 식민지배라는 점보다 일본 근대화 경험의 이식과정이라는 점에 주목. 일제가 지배하면서 조선에 공장이 들어서고,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근대적 소유관계가 성립되면서 경제가 발전했다는 것. 이런 사실을 통계자료와 수치까지 제시하며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보여줌. 그러나 이런 주장의 치명적 약점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근본적으로 한국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점
- 제국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그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을 명백히 발혔음. 48년 정부수립에서 건국의 의미가 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 대한민국 정부가 국가적 실체로서 존재하게 된 것은 48년부터이지만, 역사적으로는 거족적 항일운동인 3/1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그 출발점이 마련되었음. 48년 당시 한국정부를 세운 주역들도 그렇게 인식했음. 그랬기 때문에 제헌헌법에서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건국이 아니라 재건이라고 표현한 것. 대한민국 정부가 독립운동의 전통위에서 세워졌다는 것은 뉴라이트가 그렇게 존경해마지 않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분명히 인정한 사실. 이승만 임시국회의장은 제헌국회 1차 회의에서 오늘 여기서 열리는 국회는 기미년 서울에서 13도 대표가 모여 수립된 민국 임시정부이 계승이다라고 말했음. 또한 그는 국회 개원 축사에서 민국 29년만에 부활되었기 때문에 민국 연호를 기미년에서 기산하여 대한민국 30년에 정부수립이 이루어졌다고 말함. 이승만은 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정신적으로는 임시정부를 계승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 독립운동과 그 정신의 계승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임. 독립이 없다면 어떻게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단 말인가. 그랬기 때문에 제헌헌법은 전문에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정신 계승을 천명하였고, 부칙에서 친일파 청산의 근거조항까지 마련. 제헌헌법 101조에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 이를 바탕으로 친일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한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이 만들어진다.
- 42년말부터 45년 4월까지 2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나치치하에 있었던 프랑스나 동유럽국가들도 전쟁후에 나치에 협력했던 인사들을 철저히 처벌했음. 프랑스의 경우 비시정권과 나치 협력자 1만명 이상이 처벌받았음. 중국에서도 일제에 협력했던 한간을 강력히 처벌했음. 한간이란 원래 만주족이 지배하던 청나라때 한족으로서 만주족과 내통하던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적과 내통하는 첩자, 간첩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음. 일제에 빌붙어 중국을 팔아먹은 친일분자는 간첩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중국에서는 일본의 괴뢰정부였던 만주국과 왕징웨이 정부 종사자가 바로 친일파였음. 일본군 밑에서 첩자로 일한 자들을 말할 필요도 없었음.
- 부산정치파동은 한국정치사에서 파행의 첫걸음이었음. 또한 그것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억압적 독재정치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음. 부산정치파동이 일어나자 당시 미국은 전쟁중인데도 이승만을 교체하기 위한 군부 쿠데타를 심각하게 검토. 미국은 53년부터 이승만 제거계획인 에버레디 작전을 마련하여 가동. 작전명처럼 항상 준비된 작전, 즉 이승만에 대한 항상적인 군사 쿠데타 계획이었음. 이승만의 이런 민주주의 파괴행위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미국의 한국안보 활동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본 것. 미국은 이 작전을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50년대 내내 몇번에 걸쳐 그 실행을 검토.
- 이승만은 근본적으로 보수주의자였던 맹자가 주장한 덕치와는 거리가 먼 인물. 맹자는 신분질서를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여긴 근본 보수주의자였지만 통치자의 책임의식과 백성에 대한 사랑을 강조. 그렇다면 이승만의 행위를 냉혹한 마키아벨리스트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을까?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교활함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음. 그러나 그가 말하는 용맹함과 교활함은 자신의 호의호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민의 안위와 행복을 지키기 위한 것임. 그러면 이승만이 과연 그랬을까? 그는 전쟁을 예방하지 못함으로써 통치자로서 가장 중요한 국민의 안위와 생명을 지키는 데 실패. 그뿐인가? 야반도주, 거짓방송, 한강 다리 폭파, 잔류파 처벌, 가혹한 부역자 재판, 민간인 학살 등 통치자로서 지켜야 할 책무를 하나도 지키지 못했음. 그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도 파괴함. 그것은 순전히 권력욕망에서 나온 것. 이승만은 전쟁이 아니었으면 60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에 쫓겨났을 것임. 이승만은 전시상황을 이용해 권력을 강화하는 불법적 조치를 계속했고, 그로써 경찰국가를 구축해서 정권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음. 그의 이 같은 반민주적인 행위에는 모두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붙었음. 그는 발췌개헌에 이어 사사오입 개헌을 강행하며 영구집권 체제를 구축. 자유당 독재, 민중억압, 정치탄압, 조봉암 암살 등 이승만의 정치적 과오는 끝이 없음. 그에게서는 동양적 세계관에 입각한 민중에 대한 사랑은 고사하고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냉철한 현실적 정치능력 조차도 찾아보기 힘들다. 세간에는 이승만을 두고 외교는 천재, 정치는 천치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음. 그러나 과연 이승만의 외교가 높이 평가받을 만한 것이었을까? 이승만의 외교적 성과는 한마디로 미국을 협박해서 안보공양을 확실히 받아내는 것이었음. 그것을 위해 이승만은 정전협정 파괴위험까지 있는 반공포로석방을 감행했으며, 미국을 향해서는 북침을 일으킬수도 있다는 위협을 서슴지 않음.
- 박정희의 행동에는 출생과 성장, 만주군관학교, 일본육사와 관동군의 경험에서 얻은 정신세계가 크게 영향을 미침. 그는 일찍부터 큰 칼을 차고 싶다는 지배욕과 과시욕이 강했기에 일본군 장교가 됨. 그는 일본 만주군 장교시절, 메이지유신 시기 지사들의 천황주의 국가관과 30년대 2/26 쿠데타를 일으킨 일본군 청년장교들의 극우적 군국주의 사상에 매우 깊이 매료되었음. 평생 그의 정신세계에는 일본군의 황군정신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음. 박정희는 현세적인 출세와 기회를 엿볼 줄 아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했음. 그는 신분을 세탁하기 위해 만주군을 이탈한 뒤 광복군을 찾았고, 국내에 들어와서는 국방경비대에 들어감. 그리고 다시 남로당에 입당. 박정희의 남로당 입당이 존경하는 형 박상희 때문이었는지, 시대적 대세를 좇는 처신에서 나왔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려움. 하지만 이러한 행적으로 볼 때 그가 현실적 조건에 따라 변신에 능했던 것은 분명. 박정희는 무엇보다 권력에 강하게 집착. 이는 일본군 장교가 되는 과정, 남로당에 입당하는 과정, 승진누락에 대한 불만 표출 등 그의 삶, 행적 곳곳에 드러남. 평소 그는 강한 영웅의식과 권력추구 욕망을 갖고 있었음. 그는 또한 나중에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강조하고, 자신의 생명을 근대화에 바치겠다는 각오를 보이는 등 역사적 인물로 남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음. 조갑제는 박정희를 영웅적 기질의 인물로 보았음. 조갑제는 박정희의 행동과 정신세계에서 일반인과는 다른 혁명가의 초상을 발견. 하지만 과연 박정희를 영웅, 혁명가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할까? 박정희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삶을 산 것은 분명. 한마디로 박정희는 평범한 삶을 살기를 거부했고, 끊임없이 도전했음. 그런데 그가 도전한 것은 가치나 신념이 아니라 권력이었음.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박정희는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비범한 면을 갖고 있었음. 그는 항상 결단력 있는 삶을 살았음. 개인적 욕망의 추구라는 점에서만 본다면 그는 매우 도전적이고 진취적이었음. 그는 생활이 보장되는 보통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과감히 군인의 길을 선택. 일본 육사에 입학해서는 아주 좋은 성적으로 졸업. 이는 그가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는 하나의 징표로 볼 수도 있음. 남로당의 군사책임자가 된 것도 그런 측면에서 볼 수 있음. 시대적 대세여서 그랬든 권력을 향한 욕망 때문에 그랬든 보통 사람으로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임.
- 박정희와 김종필로 대표되는 핵심인물의 행적과 사고를 중심으로 5/16의 동기와 원인을 살펴볼 때, 5/16은 명확한 이념과 전망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음. 그 때문에 이상우 기자는 5/16 성공 후 혁명이념이 급조되었다고 말함. 진급적체에 따른 인사불만과 군부 상층부의 부패에 대한 청년 장교들의 분개, 정부의 무능과 정국혼란에 따른 안보 불안감 등 여러 요인이 혼합되어 있었음. 그들의 불만으 일말의 공감대를 형성할 부분들도 있었지만, 반란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음. 장면 정부가 부패하고 무능해도 합법적 과정을 밣아 등장한 정통성 있는 정부였음. 4/19 이후 정국이 다소 혼란스럽다 해도 쿠데타와 같이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음. 사회혼란이 문제라면 합법적 절차를 거쳐 질서를 잡을 길은 얼마든지 있었음. 경찰력을 강화하고 도저히 안될 경우에는 계엄령을 선포해서라도 합법적 방법으로 사회혼란을 평정해야 마땅했음. 그것이 법치국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 따라서 5/16은 어떻게 보아도 정당화될 수 없는 군사반란이었음. 그것은 아무리 변명을 하더라도 피로써 쟁취한 민주주의 혁명을 하루아침에 무력으로 짓밟은 반혁명 사건이었다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음. 그 이후 역사전개는 이들 5/16 세력이 처음에 쿠데타 명분으로 내세운 것들까지 무색하게 만듬. 군부는 처음 정국이 안정되면 민간에 정권을 이양하고 자신들은 군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겠다고 혁명공약 제6항에 버젓이 내걸었음. 그러나 그들은 이 공약을 지키지 않음. 그뿐만이 아님. 김종필은 중정이라는 비밀정보기관을 만들어 공화당을 사전에 조직하고, 이를 위해 4대 의혹사건을 일으켜 구악보다 더한 신악이란 말이 유행하게 함. 이건 물론 김종필만의 책임은 아님. 박정희 집권에 필요한 공화당 창당자금을 마련하려고 벌인 작업이었으니 당연히 공동책임임. 더욱이 박정희는 그후 3선개헌, 유신체제 등으로 아예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말살하며 18년이라는 장기집권을 지속. 결국 그는 심복의 총에 죽음을 맞이했고, 권력도 종말을 맞음. 그의 죽음과 함께 그가 구축한 유신왕국도 무너짐. 박정희는 총으로 흥한자, 총으로 망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줌.
- 전두환은 말이 군인이었지 철저히 정치인이었음. 그는 우리가 말하는 부정적 의미의 정치군인의 전형. 전두환은 초급장교시절부터 정치군인 행세를 했음. 5/16 쿠데타가 났을 때, 그의 계급은 대위였음. 31년생인 전두환은 61년 당시 만 30세였음. 한창 피 끓는 젊은 청년이었지만, 국가 수호의 군인정신과 기백은 어디에도 없었음. 이미 그는 닳을대로 닳은 정치가 행세를 하고 있었음. 5/16 지지데모를 조직한 것이 바로 그 징표임. 전두환은 젊은 나이에 정치군인이 되었고, 권력을 탈취하는 순간까지 정치군인이었음. 정치군인이 권력을 눈앞에 두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음. 79년 10/26 사건으로 절대권력자 박정희가 사라지자 권력의 공백 상태가 도래. 사람들은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몰랐음. 그러나 전두환은 잘 알았음. 그는 서른살대부터 20여년을 박정희 주변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보면서 정치군인으로 살았음. 그 때문에 권력의 향방에 민감했고, 주인 없는 권력을 어떻게 채어갈지에 대한 촉감도 빨랐음.
- 박정희가 사망할 때까지 전두환은 평범한 군인이었음. 그는 박정희가 사망할 땅시 보안사령관이었음. 그의 계급은 육군 소장, 평범하다는 것은 그가 군지휘관으로서 특별히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는 동기들 가운데 승진이 가장 빨랐음. 그런 점에서 그는 능력있는 군인이었음. 전두환의 승진이 가장 빨랐던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윗사람, 특히 인사권자인 박정희의 눈에 들었다는 점. 그는 야전사령관으로서 능력을 나타내기 보다는 정치군인으로서 권부 주위를 맴돌며 출셋길을 잘 개척. 그가 군인 본래의 길보다 정치군인으로서 출셋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의 군부관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
- 박정희는 치밀한 계산아래 군부를 관리. 군부의 동향은 보안사에서 항상 감시. 박정희 통치 시기에 군부는 영남 인맥이 장악했음. 이승만 정권 시절 군부의 주요인맥은 서북파(평안도, 황해도)와 동북파(함경도)가 장악했기에 박정희는 소외되어 겉돌아야 했음. 하지만 박정희가 권력을 장악한 뒤 이북 출신 군 인사들은 몰락하고 영남인맥이 군부 핵심을 장악. 박정희는 영남인맥이 군부를 장악하도록 도와주었으며, 군부의 주요인사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게을리 하지 않음. 군부가 등을 돌리면 권력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기 때문.
- 박정희가 전두환을 살려준 것은 5/16 쿠데타 직후 육사생도들의 지지데모를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한 때문이기도 했음. 5/16 직후 쿠데타 세력이 여러가지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전두환, 이상훈 대위가 주동이 되어 생도들을 배후에서 조종, 이른바 군사혁명 지지 데모를 성공시킴. 전두환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박정희 최고회의 이장의 민원담당 비서관이 되었다가 63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이 됨. 전두환은 이때부터 동기들 가운데 선두주자가 됨. 전두환은 이 같은 박정희와의 정치적 인연을 바탕으로 군부에서 탄탄한 기반을 구축. 그는 또한 노태우 등 동기생들과 함께 결성한 하나회를 좀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확대하면서 동기와 후배들이 군내의 인사, 정보 등 핵심 보직을 차지하도록 이끌었음. 그는 특유의 보스 기질도 발휘. 전두환은 육사 졸업 당시 성적이 최하위에 속했지만 이 같은 정치군인 행보를 기반으로 동기 중에서 가장 앞서가게 됨
- 12/12 군사반란이 성공한 뒤, 신군부는 치밀하게, 그리고 본격적으로 권력탈취에 나섬. 우선 군부를 자신들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재편. 10/26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쑥대밭이 된 중앙정보부도 장악. 학생들과 야당, 재야세력이 서울의 봄을 만끽하던 80년 4월 14일 전두환은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취임. 중앙정보부법상 현직군인은 부장이 될 수 없었기에 서리라는 꼬리표를 달고 등장한 것. 전두환의 정보부장 서리 취임은 몇가지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음. 우선 중정의 조직과 정보를 장악함으로써 정국 흐름을 주도할 수 있었음. 전두환은 중정부장과 보안사령관을 겸임함으로써 군과 민간정부를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었음. 이것은 지금으로치면 기무사령관,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정원장을 한몸에 구현한 것이나 마찬가지. 또 당시 중정부장은 부총리급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음. 그 전까지 노재현 국방부 장관의 뒤를 따라 합수본부장 자격으로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전두환에게 신현확 등 각료들이 계속 시비를 걸었음. 전두환은 중정부장 서리가 됨으로써 국무회의에 참석해 행정부를 통제할 수 있게 됨. 어떤 면에서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중정이 갖고 있던 예산이었음. 당시 중정 예산은 800억 정도 였는데, 이 가운데 120억을 빼내 권력탈취 활동에 사용. 이와 함께 전두환을 지도자로 부각하기 위한 언론공작이 시작됨. 이른바 K공작임. K는 King의 약자로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의미. 이는 보안사가 주도. 보안사의 권정달 정보처장, 정도영 보안처장, 허삼주 인사처장, 이학봉 대공처장, 허화평 사령관 비서실장 등 이른바 전두환의 보안사 5인방이 모든 것을 주도. 그들은 실무팀을 꾸려 구체적인 실행 작업에 들어갔는데, 실무책임자는 보안사 언론팀장인 이상재 준위였음. 언론대책반은 서울시청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언론공작에 몰두. 언론사 및 언론인을 포섭하고 시국의 혼란상을 부각하는 한편, 전두환을 띄우는 작업에 들어감.
- 6/29 선언은 국민의 저항에 밀려 나온 민주화 조치였음. 하지만 그것은 집권세력의 치밀한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정치적 쇼이기도 했음. 전두환과 노태우 일파는 제한된 민주화를 통해 그들의 지배를 계속할 수 있다고 보았음. 직선제라는 민주적 절차를 수용함으로써 국민의 저항을 무마하고, 민주세력 내부의 분열을 유도하여 권력을 유지한다는 것이었음. 그들은 김영삼과 김대중의 뿌리깊은 경쟁, 정부여당의 막강한 조직과 자금, 지역감정의 유발 등으로 대통령 직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본 것. 6/29 선언은 노태우의 말처럼 국민에 대한 항복 선언이면서 동시에 지배세력의 집권연장을 위한 위장 항복이었음. 6/29 선언으로 집권세력은 일단 물리적인 정권 전복의 위험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음. 이 선언과 함께 야당은 바로 제도권으로 들어왔음.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이제 거리가 아니라 제도권에서 선거를 통한 집권 경쟁으로 바뀜. 그동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학생, 재야 등 민주세력과 노동자, 농민 등 민중세력은 그 같은 집권경쟁의 중심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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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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