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결정의 질을 그 결과의 질과 쉽게 동일시 하는 사고방식이 바로 결과로 판단하기다. 처음 포커를 시작했을 때 경험많은 선수들은 내게 결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말해주면서, 단기적으로 몇번의 패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전략을 바꾸고 싶은 충동이 들더라도 꿋꿋이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우리는 왜 운과 실력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가? 결과가 우리의 통제 밖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왜 그렇게 불편해 하는가? 의사결정의 질과 결과물 사이에 왜 그렇게 강력한 연관성을 지우려 하는가? 다른 이의 의사결정을 분석하는 경우든, 자신의 삶에서 내린 의사결정들을 돌아보는 경우든, 어떻게 하면 관중석에서 비난만 늘어놓는 외야의 코치가 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콜린 캐머라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숙고 체계를 더 많이 가동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설명. "커다란 동물 뇌 위에 우리 인간만을 위해 만들어진 아주 얇은 전전두엽 피질이라는 것이 있다. 이 얇은 막으로 하여금 더 많은 일을 처리하게 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전전두엽 피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내리는 의사결정 대부분을 통제하지 않음. 인간만 가진 독특한 뇌막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란 근본적으로 불가능. 이미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이 지금 우리가 가진 두뇌이고 빠른 시일내에 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합리적 의사결정을 더 자주 내리는 건 의지의 문제도 아니다, 숙고 체계에서 의사결정을 더 많이 처리하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가능한 일도 아님. 우리의 심사숙고하는 능력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그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고 해도 상자를 들 때 허리가 아프면 무게중심을 다리 근육으로 옮기는 것처럼 간단히, 할 일을 두뇌의 다른 부위에 옮겨 줄 수 있는 것도 아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반사체계와 숙고체계 두가지 모두 필요. 성취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숙고체계의 도움이 필요. 그러나 그 목표를 성취하기까지 내리는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반사체계에서 이루어짐
- 우리가 매일 하는 일 중 대부분은 자동처리를 거침. 누구나 연필을 찾아 손에 쥐는 것부터 자동차 사고를 피하기 위해 핸들을 꺾는 것까지, 의식적으로 거의 생각하지 않는 습관과 행동들이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두뇌의 제약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비합리적인 행동을 스스로 인식하고 변화를 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착시 현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그것이 사라지게 만들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 체스에서 결과는 의사결정의 품질과 더욱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짐. 포커에서는 운이 좋아 이기거나 운이 나빠 지는 것같은 상황이 훨씬 더 쉽게 일어남. 삶이 체스와 같다면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달릴 때마다 무조건 사고가 나거나 최소한 신호위반 벌금을 물게 될 것이다. 삶이 체스와 같다면 LA다저스는 데이브 로버츠가 불펜 작전을 쓸 때마다 월드시리드에서 우승할 것이다. 하지만 삶은 포커와 같다. 사장의 해고라는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결정을 내리고서도 거센 역품을 맞게 될 수 있다.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쏜살같이 달리고서도 교차로를 무사히 통과하거나, 반대로 교통규칙을 매번 준수하고도 사고가 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단 5분만에 포커의 게임규칙을 가르쳐주고 그 사람을 세계 챔피언 앞에 앉혀 한 게임을 하게 한다면, 그 생초보가 챔피언을 이길 수도 있음. 하지만 체스에서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음. 불완전한 정보는 찰나의 의사결정뿐 아니라 과거의 의사결정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도 어렵게 만듬. 상대의 카드가 무언지 끝까지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그 판에서 잘해냈는지 판단하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생각해보라. 내가 베팅을 하고 상대가 폴드한 뒤 그 판이 끝났다면, 내가 알 수 있는 건 내가 그 판에 걸린 돈을 땄다는 사실 뿐이다. 엉망으로 경기를 하고도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잘한 걸까?
- 폰 노이만과 모르겐슈타인은 세상이 객관적 진실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포커를 바탕으로 게임이론을 만든 이유. 더 나은 의사결정은 바로 이것, 즉 불확실성이 많은 피해를 가져올 수 있음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 확실하지 않다는 말을 편안하게 사용하는 것은 더 나은 의사결정자가 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단계다. 답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 철저히 인지된 무지는 모든 진정한 과학발전의 서곡이다. 무지를 인정하는 것은 역사상 이루어진 모든 위대한 의사결정의 서곡이기도 했다
- 어떤 의사결정이 훌륭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은 훌륭한 결과가 아님. 훌륭한 의사결정은 건전한 사고과정의 결과물이며, 그 과정에 현재 우리의 지식상태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려는 시도가 포함되어야 함. 그 지식의 상태는 '잘 모르겠다'부터 '확실하지 않다'까지 여러 형태를 띤다. 확실하지 않다는 건 객관적 진실이 없다는 의미가 아님. 사실 파이어슈타인의 주자의 요지는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 객관적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우리가 실행해야 할 첫번째 단계라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르겠다, 확실치 않다와 같은 말을 금기어인양 취급하는 행태를 멈추어야 함. 모르겟따는 말은 부정적 범주(아무 생각이 없다, 하나도 모르겠다 처럼 능력이나 자신감이 결여된 말)에서 좀더 중립적인 범주로 이동시킨다면 어떨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금 알지도 모르겠지만 그 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그게 바로 불필요한 부분을 모두 제거하고 남은 순수한 진실이다. 그걸 인정할 수 있다면, 확실하지 않다는 말이 그다지 나쁜 말처럼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 뛰어난 포커플레이어와 의사결정자가 갖는 공통점. 세상이 불확실하고 예측하기 힘든 곳이라는 사실을 편안히 받아들인다는 점. 그런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대체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임. 언제나 확신을 얻는데 집중하는 대신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정도를 파악하고,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추측해보려 애쓴다
- 불확실성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더 나은 의사결정자가 될 수 있는 이유
(1) 확실하지 않다는 그저 이 세상을 좀더 정확히 묘사한 말일 뿐이기 때문
(2) 확실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면 흑백논리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
- 의사결정은 미래에 대한 베팅이다. 그리고 특정한 번복 회차에서 좋은 결과가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맞다거나 틀렸다고 볼 수 없다. 원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우리의 결정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른 대안과 가능성에 대해 미리 차분히 생각해보고 그에 걸맞게 자원을 분배했다면 말이다. 손에 넣을 수 있는 최고의 시작패를 가지고 과감한 베팅을 하고서 진 뒤에 내가 애초에 그 패를 가지고 경기를 계속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 잘못됐다면 자책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면 무척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게 바로 결과로 모든걸 판단하는 행위다.
- 베팅이란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을 생각함으로써 내리는 선택", "어떤 일을 하거나 성취하려고 할 때 무언가를 잃을 위험을 감수하는 것",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혹은 어떤 것이 사실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나옴. 강조할 단어는 선택, 확률, 위험, 의사결정, 믿음이다. 이 정의를 통해서 베팅이 카지노나 다른 누군가를 상대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인간은 무언가를 아주 쉽게 믿고, 의심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하는, 속기 쉬운 존재다. 사실 믿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쉽고 어쩌면 필연적이기까지 해서 이성적 평가라기보다 본의아닌 이해에 가깝다. 길버트와 동료들은 일련의 실험을 통해 우리가 듣고 읽는 것을 믿도록 기본값이 설정되어 있다는 것, 심지어 어떤 정보가 거짓임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어도 여전히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우리가 가진 다른 많은 비합리성과 마찬가지로 믿음을 형성하는 방식 역시 정확성보다는 효율성의 방향으로 발달되어 만들어짐. 추상적 믿음 형성(즉, 우리의 직접적 경험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다른 이로부터 전해진 믿음)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독특한 특징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기에, 진화라는 거대한 범주 안에서 볼 때는 상대적으로 꽤 최근에 일어난 일이 됨. 언어가 만들어지기 전, 우리 조상들은 자기 주변의 물리적 세상 속에서 직접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만 새로운 믿음을 형성. 직접적 감각경험에서 얻은 믿음의 경우에는 우리의 분별력이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결국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자기 바로 앞에 선 나무가 보이는데 그 나무가 존재하는지 아닌지 의문을 던지는 것은 에너지 낭비다.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나 들리는 것에 의문을 품으면 야생동물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었다. 생존에 필수적 기술의 경우 1형 오류(긍정오류)를 저질러 치러야 하는 대가는 2형오류(부정오류)의 대가보다 덜했다. 달리 말해,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미리 조심하는 게 낫다는 것. 우리는 직접적으로 경험하느 것들, 특히 우리 목숨이 달린 경우에는 믿음에 관한 대단한 의심을 발동시키지 않았다. 그 이후 복잡한 언어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믿음을 형성하는 능력을 얻었다. 그리고 길버트가 지적한 대로 "자연은 맨 밑바닥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옛 시스템을 조금만 수정하면 그럭저럭 잘 할 수 있는 일을 더 훌륭히 해내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상습적 조작꾼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시스템은 "(1) 경험한다. (2) 그것을 진실이라 믿는다, (3)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나중에 의문을 제기한다"의 방식을 택함. 홍수처럼 밀려드는 이 간접 정보들에 의문을 품을 이유가 더 있더라도 기존의 시스템은 여전히 주도권을 잡고 있다.
- 의도적 합리화를 가장 명백히 보여주는 예는 바로 가짜 뉴스와 허위정보의 대두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짜 뉴스라는 개념, 즉 경제적 혹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주입시킨 의도적 거짓 이야기는 사실 수백년 전에 만들어진 것. 영화 감독 오손 웰즈,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같은 전설적 인물들도 가짜 뉴스를 대거 이용했음. 허위정보는 특정 이야기를 더 멀리 퍼뜨리기 위해 사실 요소를 일부 곁들인다는 점에서 가짜 뉴스와는 조금 다름. 가짜 뉴스가 통하는 것은 이미 그 이야기와 일치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뉴스에서 제시된 증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기 때문. 허위정보는 더욱 강력하다. 거기 포함된 확인 가능한 사실들이 그 정보가 검증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퍼지는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 가짜 뉴스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님. 이미 잘 알고 있듯 믿음은 바꾸기 어려움. 가짜 뉴스의 효능은 그것이 표적으로 삼은 시청자들이 이미 가진 믿음을 단단히 자리잡게 하고 증폭시킨다는 점. 인터넷은 의도적 합리화가 마음껏 뛰놀고 자라날 수 있는 운동장과 같다. 인터넷에선 우리가 지금껏 접한 것보다 훨씬 다양한 정보의 원천과 견해들에 접근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믿음을 확인시켜주고 우리와 의견을 같이 하는 정보에 마음이 끌리게 되어 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 별의별 맛이 다 있지만 늘 먹던 메뉴만 고집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보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이 소셜 미디어. 많은 소셜 미디어 매체들이 우리가 이미 좋아하는 것들을 더 자주 보도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 작가 일라이 페리저는 11년 발표한 생각 조종자들이란 책에서 필터 버블이란 개념을 만듬. 이는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알고리즘을 이용해 우리를 우리가 이미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현상을 설명. 우리가 검색하는 것, 읽는 것, 그리고 친구나 연락을 주고받는 지인들이 검색하고 살펴보는 것들을 수집해 우리가 선호할 만하다고 예측한 헤드라인과 링크들을 보여준다.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인터넷은, 사실 우리의 취향을 고정시키는 버블 속으로 처박히는 속도를 높일 뿐이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 불행히도 우리는 진실추구를 목표로 할 때조차 자신의 믿음을 지키도록 만들어졌다. 이것은 똑똑하고 스스로의 비합리성을 아는 것만으로는 편향된 합리화로부터 벗어나기 힘듦을 의미. 착시현상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다른 것을 보게 만들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바탕으로 베팅을 한다. 그리고 믿음을 형성하기 전에 그것을 미리 조사하고 심사하지 않는다. 그렇게 형성된 믿음을 업데이트하기는 굳건히 거부한다. 거기에다가 똑똑함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악화시키시까지 한다.
- 대부분의 의사결정에서 우리는 다름 사람에 맞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모든 미래의 자신을 상대하는 것이다.
- 믿음 측정을 위해 노력하면 자신을 덜 가혹하게 바라볼 수 있다. 믿음을 표현할 때 퍼센트나 대안들의 범위를 추가한다는 건 스스로 옳고 그름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운 정보를 얼마나 잘 이용해 믿음의 정확도를 수정하는가에 자신의 자아상이 달려 있다는 뜻. 우리가 믿는 바를 반박하는 증거를 발견하는 건 죄가 아니다. 진정한 죄는 그 증거를 객관적으로 이용해 믿음을 개선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믿음이 불확실함을 다른 이들에게 표현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를 더욱 믿을만한 대화상대로 만들어준다. 우리는 100% 확실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우리의 의견을 덜 중요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보통은 그 반대다. 누군가 어떤 믿음을 절대적 사실로 표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게 맞는 것 같은데 팔십퍼센트 정도 확신해"라고 자신의 믿음을 표현했을 때, 당신은 누구를 더 신뢰하겠는가? 누군가 자신감을 100% 아래로 표현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진실을 향해 다가가려 애쓴다는 의미
- 경험은 효과적 스승이 될 수 있음. 오직 소수의 학생들만이 이 스승에게 귀를 기울인다. 경험을 통해 배우는 사람들은 더 나아지고, 발전하고, 자기분야에서 전문가와 선도자가 된다.
- 경험이란 단순히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가 바로 경험이다. (올더스 헉슬리) 경험을 쌓는 것과 전문가가 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음. 그 차이는 우리의 의사결정이 가져온 결과가 우리에게 교훈이 될지, 그리고 교훈이 무엇일지 알아볼 수 있는 바로 그 능력에 있다.
-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행복의 요소(소냐 류보머스키) : 편안한 수준의 수입, 건강, 행복한 결혼생활, 비극이나 정신적 외상의 부재. 그러나 동시에 다음과 같은 사실도 찾아냄. 행복과 안녕을 결정짓는 요소에 대해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연구끝에 얻은 결론은 바로 객관적 환경, 인구통계학적 변수, 생활 사건들이 사람들의 직관이나 일상적 경험보다 행복과 덜 연관되어 있다는 점. 서너가지 방식으로 추산해 보아도, 이런 모든 변수들을 합쳐도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의 8~15%를 넘지 않았다. 행복에서 대부분의 변수를 차지하는 건 바로 우리가 남과 비교해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느냐였다.
- 항해사가 1도 정도의 조종오류를 범한다면 처음 출발할 때 차이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조금씩 항로를 벗어나다보면 거리차가 점점 커져, 결국 수킬로미터 차이로 목적지에 닿지 못한다. 결정방식에서의 아무리 작은 수정이라도 당신이 목적지에 더 안전학 도착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 반복행동을 바꾸는 것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함. 그럴 때 남과 비교하면서 자부심을 느끼려 하는 타고난 경향을 이용하면 좋다. 두히그가 습관고리 존중하기를 추천한 것처럼 우리가 선천적으로 경쟁하길 좋아하고, 우리 삶은 홀로 존재하니 않는다는 사실을 존중해 보자.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잘하고 있다는 느낌의 보상을 유지하되 그 잘하는 일의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보다 타인의 실력을 더 잘 인정하는 사람. 다른 사람보다 자신의 실수를 더 기꺼이 인정하는 사람, 열린 마음으로 어떤 결과물 속에서 가능한 이유들을 더 잘 탐색하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특히 그것이 당신을 안 좋게 보이게 하거나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경우에도 말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남과 비교해 우리가 매우 잘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무언가 독특하고 어려운 일을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 우리 두뇌는 세상을 더욱 편안한 곳으로 여기도록 진화. 우리의 믿음은 거의 항상 옳고, 좋은 결과는 우리 실력의 결과이며, 나쁜 결과가 통제밖에 있는 데에는 항상 그럴 듯한 이유가 있고,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더 낫다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고통스럽거나 부정적 메시지는 부인하거나 최소한 희석시킨다. 그것을 포기하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님. 매트릭스 속에서 사는 것이 훨씬 편안하다. 우리가 자아상을 보호하기 위해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또한 그러하다. 매트릭스를 벗어나겠다는 선택을 내리는 것은 더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종종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주장하느 것이다.
- 필라테스 친구, 미식축구 친구, 그밖의 다른 친구들이 우리의 친구로 남기 위해 반드시 빨간 약을 먹을 필요는 없다. 서로 다른 친구는 서로 다른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법이고, 그들 모두가 똑같은 종류의 사람일 필요는 없다. 이 다양한 그룹들은 또한 우리 삶에 필요한 균형을 제공. 사실, 기분이 나빠지지 않으면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탐색하거나, 훌륭한 결과에 대해 자신의 실력이라고 고집하지 않거나, 열린 마음으로 우리의 모든 믿음이 사실인 것은 아님을 깨닫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진실추구는 세상 모든 편안한 행동에 반기를 든다. 힘든 일이기에 의지를 충전하기 위한 휴식도 필요하다.
- 존 스튜어트 밀은 베팅식 사고방식의 대가. 자유론을 쓴지 150년도 넘었지만 사회 및 정치철학에 대한 그의 생각은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다. 자유론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가 다양한 의견의 중요성. 다양성과 의견 불일치는 오류를 줄여줄 뿐 아니라, 어떤 의견의 궁극적 진실을 시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함. 어떤 주제를 알기 위해 인간이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온갖 다양한 의견을 듣고,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그것을 살펴보는 데 사용할 만한 모든 방식을 연구하는 것뿐이다. 이것말고 다른 방식으로 지혜를 얻은 현자는 이제껏 없었다. 게다가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지혜를 습득하는 것은 인간지성의 본질과도 어긋난다.
- 포커 테이블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다양성과 반대의견 권장환경을 인공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은 조직들이 많다. 미국 국무부는 베트남전 이후 공식적으로 비판의 장인 디센트 채널을 설치하여 직원들이 불이익의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반대의견을 내고 논의할 수 있게 해왔다. 외교부 직원들로 구성된 미국 외교관협회는 '외교부문에서 건설적 반대와 위험부담을 장려하고 인정하기 위해' 모범이 되는 사람들에게 네가지 상을 수여. 디센트 채널은 보스니아의 집단학살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데 도움이 된 정책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평가받는다. 16년 6월, 51명의 국무부 직원들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시리아에의 미군개입을 더욱 강화하기를 촉구하는 성명서에 서명. 17년 1월 말경에는 약 1000명의 직원들이 7개국 무슬림 국가로부터 이민을 막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반대의사를 표명. 디센트 채널은 미국의 의사결정 과정에 희망이 있음을 잘 보여줌. 양극화가 점차 심해지는 환경에서 외교부 직원들은 자신들이 반대하는 정책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행정부 수장이 민주당 소속이든 공화당 소속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반대의견을 허락하는 행위는 당파를 초월하는 가치를 가짐. 9/11테러 이후 CIA에서는 레드 팀이라는 것을 결성했는데, 조지타운 법률대 교수 닐 카트얄의 뉴욕 타임즈 논평에 따르면 이 레드팀은 '첩보공동체의 관습적 생각에 맞서 논쟁을 벌이고, 그들의 논리와 분석에서 잘못을 찾아내는 데 헌신'한다. 오사마 빈 라덴 암살이후 오바마 정부 관료들은, 시각이나 청각적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은신처에 빈 라덴이 있을 가능성을 측정하는데 사용한 방식 중 하나로 레드팀의 분석을 언급하기도 했다.
- CUDOS
* Communism 공유주의 : 데이터는 개인이 아닌 전체에 귀속된다
* Universalsm 보편주의 : 주장과 증거가 어디에서 나온 것이든 보편적인 잣대를 적용하라
* Disinterestedness 무사무욕주의 : 그룹이 하는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적 갈등을 경계하라
* Organized skepticism 조직화된 회의주의 : 소통과 반대의견을 장려하기 위해 그룹내에서 토론하라
- 객관적 진실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에 대해 믿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라는 인식에서부터 우리는 출발해야 한다
- 컨설팅을 할 때 나는 기업인들이 순전히 결과만으로 혹은 자기를 돋보이게 해주는 삶의 스토리만으로 성공을 판단하지 않도록 독려한다. 기업의 성공요소 중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이고, 세부적인 현실 평가를 제공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면 직원들은 이 점에서 성취를 거두고자 서로 경쟁을 벌일 것이다. 그러면 더 나은 사고습관이라는 보상을 받을 것이다. 데이터를 공유하는 사람이 되는 데 합의하고, 의사결정 그룹내에서도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에게 보상을 내려보자
- 회의주의는 권유되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조직화되어야 함. 악마의 변호인이라는 표현이 만들어진 건 수세기전, 카톨릭교회에서 시성식 과정 중 성인의 신분을 내리는 것에 반대주장을 내놓을 사람을 찾는 일에서였다. CIA에 레드팀이 있고 국무부에 디센트 채널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직장과 가정생활에 건전한 반대를 포함시킬 수 있다
- 누군가 어떤 믿음이나 예측을 표현하는 데 그것이 제대로 업데이트된 것처럼 들리지 않고 마침 우리에게 관련된 정확한 정보가 있다면 이런 식으로 말해보자. "그 점은 동의해요, 그리고...", '그리고' 다음에는 추가적 정보를 넣는다. 같은 대화에서 우리가 "그 점은 동의해요, 하지만..."이라고 말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대가 방어적 태도로 바뀔 수 있다. '그리고'는 내가 대화에 추가로 이바지하겠다는 제안이다. 반대로 '하지만'은 앞에 나온 말에 대한 부정과 거절이다
- 이것을 '아니오'라는 말을 피하기 위한 시도로 생각해도 좋다. 즉석 대화나 연설 분야에서 가장 처음 듣는 조언은 누군가 대화를 시작하면 '네, 그리고...'라고 대답하라는 것이다. '네'는 당신이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리고'는 당신이 거기에 보탤 말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탐색적 사고를 독려하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훌륭한 가이드라인이다. 중요한 건 진실을 추구함에 있어 동반자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 조금이라도 반박하거나 반대되는 정보를 표현할 때 이런 식의 대화법은 다툼의 요소를 최소화시켜줄 것이다.
- 피곤한 아침에 당신이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지난밤의 당신뿐이다.
-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받을 수는 없어도 언제나 좋은 결정을 할 수는 있다
- 백캐스팅과 사전부검은 상호보완한다. 백캐스팅은 긍정적 미래를 상상하고, 사전부검은 부정적 미래를 상상한다. 긍정적 공간과 부정적 공간 모두를 갖지 못하면 완성된 그림을 만들어낼 수 없다. 백캐스팅은 긍정적 공간을 드러내고, 사전부검은 부정적 공간을 드러낸다
- 긍정적 시각화를 통해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부정적 시각화를 구체화시킬 때 목표달성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옴. 뉴욕대 심리학 교수이자 '긍정적 사고를 다시 생각하라'의 저자 가브리엘 외팅겐은 20년 넘게 연구를 거듭한 끝에 자신이 '정신적 대비'라고 명명한 과정을 통해 목표달성을 막는 걸림돌을 상상해본 사람의 성공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발견.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등록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첫번째 연구에서 그녀는 '날씬해 지겠다는 강하고 긍정적 환상을 가진 피험자들은 ... 스스로를 더 부정적으로 그린 사람들보다 약 11킬로그램이 덜 빠졌다. 목표달성을 꿈꾸는 것은 목표의 실현을 돕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오히려 목표달성을 방해한다. 반짝이는 눈으로 희망적인 꿈을꾼 사람들은 살을 빼는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열의가 부족했다'고 결론. 그녀는 다른 상황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음. 일방적 짝사랑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학생들을 모아 한 그룹은 짝사랑이 결실을 맺는 긍정적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하고, 다른 한 그룹은 부정적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했다. 그 결과는 다이어트 프로그램 연구와 비슷. 5개월 뒤 긍정적 시나리오 플래닝에 빠졌던 피험자들이 실제로 상대와 사귀게된 경우가 더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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