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벨 회사는 전화를 발명했지만, 전화사용을 전방위로 확대할 수 있다는 걸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음. 이것은 우리가 소위 창시자의 근시안이라고 말하는 그런 일반적 고민임. 기술을 개발하면서 발명의 잠재적 중요성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반복적으로 다른 사람의 몫이 되며, 그 다른 사람은 기술적으로 천재일 필요는 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발명가가 꿈도 꾸지 못했던 방식으로 개발함. 이런 현상이 결코 불가사의한 것은 아님. 결국 발명가는 시력의 한계를 가진 한 사람인 반면, 수익까지는 아니더라도 발명가의 바로 코 밑에 있던 새로운 이용법을 알아볼 수 있는 수백만의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임
- JP모건에 관해서는 대체로 숨은 동업자라는 소문 이외에 그다지 알려진 게 없음. 그의 이름은 전화의 역사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음. 그러나 모건의 자금조달은 베일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그리고 벨 회사가 독점기업으로 부활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했음. 개방산업단계에서 폐쇄시장의 전환은 자본가 세력들이 독점을 통해 광범위하게 증대될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잠재성을 면밀히 검토할 때 일반적으로 시작함. 베일이 모건의 자본을 이용하면서 벨 회사 조직에 대한 베일의 비전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것은 역시 치러야 할 중요한 대가들이 있었음
- 1910년대의 베일이 독점 금지에 반대해서 구사했던 전략의 요체는 야심찬 독점기업에는 여전히 적절한 교훈으로 남아 있음. 핵심은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는 선에 대한 진솔한 표명이었던 것. 예컨대 그것은 모든 미국 가정에 전화의 경이로움을 가져다 줌으로써 미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전화연결이 잘되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음. 베일은 독립전화회사들의 가장 설득력 있는 미사여구들을 인용하여 벨 시스템이 보다 효과적으로 그 일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독점을 애국적 명분으로 탈바꿈 시킨것임
- 1926년부터 46년까지 20년 동안 각각의 발명과 그 발명의 이면에 있던 발명가들은 데이비드 사르노프와 라디오산업의 희생양이 됨. 사르노프의 이야기는 아마도 크로노스 효과에 관련하여 가장 뛰어난 비유일 것이며, 주목할만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방식의 능력임. 베일과 주커는 재정적 압박과 기업인수에 의해서 합병했던 반면, 사르노프는 정부를 이용하여 발명과 향후 미래를 제한함으로써 자신의 제국을 관리해 나갔음
- 1930~40년대에 FM라디오를 반대하던 운동은 산업전쟁의 무기로 사용된 연구대상임. 그 반대운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했지만, 사르노프와 그의 협력자들이 추구하던 전략은 FM을 폄하하고 AM업계에 호의적이었던 사회적 통념을 장려하는 것이었음. 미래를 지배할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중의 생각에 영향을 끼치는 것임. 그래서 RCA와 다른 방송사업자들은 텔레비전이라는 전도유망한 새로운 미디어에 초점을 맞춤. 최신식이면서 최고라는 라디오산업의 끝없는 홍보에 FM과학기술은 좀처럼 언급되지 않음. 어쩌다 FM이 언급될 때는 이론적으로 흥미로운 것이라고 호평받았던 동시에 대부분 검증되지 않은 과학기술로서 실험적이고 그 효용성에 한계가 있다고 과소평가되었음
- 리그드 게임(rigged game, 운영자가 기만하거나 속임수를 쓰는 게임)에는 포착하기 어려운 훨씬 더 교묘한 사회적 비용이 있음. 사르노프의 RCA는 주커의 파라마운트 메이저 영화사들처럼 연합기업이었음. RCA는 라디오를 판매하면서 국가의 주요 네트워크 방송사인 NBC도 소유. 물론 신생산업을 인수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서 사르노프는 텔레비전을 판매하는 엔터테인먼트라는 NBC의 공식에 잘 짜 맞춰진 과학기술과 콘텐츠로 이해하기를 원했음. 때가 되었을 때, 모든 라디오 프로그램 편성을 텔레비전으로 이동시키는 게 그의 의도였고, 결국 달성했음.
- 21세기 영화는 과거보다도 훨씬 더 이야기 중심에서 탈피한 산업이 되었고, 훨씬 더 광고화되었으며, 잠재적 지적 재산권을 위해 노출전략을 펴는 사업이 되었음. 노출전략은 또한 수십년 동안 진행되어 왔던 엔터네인먼트 미디어의 세계화를 촉진시킴. 문화적 특수성을 지닌 전통적 영화의 수출가능성은 예상수익에 있어서 알 수 없는 또 다른 수익이었던 반면, 문자그대로 원작만화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종류의 영화는 어디로든 쉽게 수출이 가능했음. 그리고 복합기업들의 회계관행 탓에 영화의 성공은 직판만을 근거로 하지 않았고, 잠재적 자산가치의 증대로 평가됨. 당시 영화는 지출규모가 거대한 사업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권리 자체로 상품이었음. 이는 확실히 영리한 개념이었고, 문화에 대한 매우 색다른 접근 방식이었음. 할리우드의 창설자들이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려고 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말할 것도 없이 30년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것이 되어 왔음
- 경쟁은 대공황과 뉴딜정책으로 점철된 30년대에는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함. 민간기업은 대체로 요주의 대상들이었음. 정부는 보다 나은 결과들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규제를 더욱 폭넓게 신뢰하기 시작. 불과 60~70년대 초반에 규제를 선호하던 정부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으며, 대부분 시카고 대학에 있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 그들 가운데 밀턴 프리드먼과 조지 스티글러에 의해 고무되었음. 그 분석가들은 정부가 규제했던 산업들의 성과, 즉 기본적으로 뉴딜정책 패러다임을 실망스러운 것으로 간주했고, 전후 통화팽장 이후 병약해진 당시의 경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경쟁상태가 주어지려면 거의 모든 규정이 불필요하다고 제안하기까지 했음
- 인터넷의 발명은 일부 기업들에게는 축복이었고 일부에게는 저주였음. 네트워크 중립성이 AOL-타임워너의 기업가치를 폭락시켰다면, 그것은 고객들의 선택을 방해하거나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객들이 접근하기 쉬운곳에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할 것을 목표로 삼았던 구글이나 아마존과 같은 기업들에게는 일확천금을 얻게 해줄 것이었기 때문. 이렇게 서로를 서로에게 무제한 연결하겠다는 네트워크의 꿈이 실현되는 데서 아직 젊은 인터넷 시대의 위대한 비즈니스 성공담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숨어 있는 것임. 그런 세상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소유해야 이익일지라는 사실은 결코 자명한 이치도 아닐뿐더러 그것은 아마 이익이 아닐지도 모름
- 맥을 통해 애플은 혁신적이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시대를 역행하는 기업이 되었음. 잡스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테오도르 베일의 AT&T, 그리고 사실상 완벽한 시스템을 일찍이 꿈꾸던 사람들을 지배했었던 설계 원칙을 세웠음. 그는 통합된 제품을 만들었고 자신을 그 원동력으로서 장착시켰음. 모든 것이 원활하게, 완벽하게 공조하게끔 하는 미덕이 자유의 사용을 보다 축소시키는 걸 의미한다면, 그대로 수용하겠다. 마찬가지로 비록 그것을 만들어서 시장에서 거래하는 데 일정한 규제가 요구된다 할지라도 괜찮다. 잡스처럼 일한다는 것의 저자 린더 카니는 잡스의 일하는 방식을 자신의 제품들과 그 사용방식을 일괄적으로 통제하려는 것을 목표로 하여, 직원, 이미지 그리고 심지어 고객들까지도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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