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석기 시대는 주요한 두가지 혁명으로 특징지어짐. 하나는 유목생활에서 정착생활로의 전환이고, 또 하나는 농업혁명. 지금가지는 농업혁명이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며 주목받아왔지만, 사실 농업은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 혁명은 '정착생활을 할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 일정한 거주지에 공동체가 모인 까닭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렇게 모임으로써 사회적 스트레스가 생겨남. 당연히 신석기 시대 이전이라면 모르고 넘어갔을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일단 스트레스 문제를 해결하면, 훨씬 더 큰 공동체가 등장할 가능성이 열렸다. 그때부터 도시형태의 공동체와 올망졸망한 왕국이 등장했고, 결국에는 현대 국가형태의 방대한 공동체를 태어나게 한 전반적인 역사적 진보가 뒤따랐다.
- 의도성 층위가 높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전전두피질의 안와전두영역이 더 넓다는 점이다. 사회적 뇌는 정말, 진짜로 사치스럽다. 의도성을 발휘하는데 동원되는 신경물질의 부피가 어떤 한 개체가 갖는 의도성 층위와 정비례하므로, 더 높은 의도성 층위에서 정신활동을 해야 하는 종들의 뇌는 더 클수밖에 없다. 물론 전두부위가 유인원 영장류의 뇌에서도 가장 최근에 진화한 부분이고, 이 부위가 가장 큰 종이 가장 복잡한 사회집단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함. 또한 뇌의 여러 부위 중에서 마지막으로 미엘린구조를 획득한 부위로, 이는 복잡한 사회집단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학습과 신경적응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 수잔 슐츠와 키트 오피는 매우 정교하게 발전한 통계학적 기법을 이용하여 조상들이 처했던 상황을 추측하고, 사회조직화와 다른 선택압들 사이의 역사적 상관관계를 다룬 가설들을 검증.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조상들은 각기 분산된 개체별 영역 안에서 고립적 수렵-채집을 하던 상황에서 일부일처제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복수의 수컷과 복수의 암컷으로 이루어진 군거성 사회를 형성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쉽게 말해서 개체별로 독립적 영역생활을 하다가 곧바로 집단의 형태로 모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 추측컨대, 이는 점점 더 (야행성에서 주행성 생활방식으로 전환됨에 따라) 증가한 포식위협에 대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복수의 수컷과 복수의 암컷으로 구성된 초기의 군거성 집단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가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하렘형태의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부일처제를 택하는 것. 하렘기반의 집단을 형성했다가 다시 일부일처제를 택하는 2차 탈출 경로도 생각해볼 수 있음. 한 종이 일단 군거성 집단을 형성한 후에는 반고립적 상태로 회귀할 수는 없었지만, 하렘과 복수의 수컷 상태 사이에는 수시로 전환이 일어났다. 하지만 정말 중대한 발견은 일부일처 혼이 막다른 골목이었다는 사실. 일부일처제에 적응한 후에는 어떤 종이든 그 형식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함. 사실 인구학적 면에서도 그렇지만 인지적 측면에서도 일부일처제는 일종의 종착지인 것처럼 보임. 아마 일부일처 동반자 관계에 대한 인지적 요구가 너무 커진 탓일 텐데, 일단 뇌가 그 요구에 따라 재편성된 후에는 쉽사리 원상태로 돌아가지 못했다. 일부일처혼이 유지되려면 수컷 개체와 암컷 개체가 서로에 대해 매우 관대해져야 하는 한편, 집단 내 다른 동성개체에 대해서는 매우 편협해져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일부일처제 형식을 채택한 영장류 집단에서는 일부일처 쌍이 늘 자신들만의 배타적 영역을 차지하면서 세력권을 형성. 동성개체에 대한 편협성은 일부일처제를 채택하지 않은 포유류에서는 꽤 드문 현상임. 동성개체, 특히 성숙기에 이르러 생식능력이 왕성해진 동성개체는 이런 편협성 때문에 함께 어울려 살기가 몹시 어려움. 따라서 몇몇 조류와 포유류의 경우처럼, 의무적 일부일처제는 진화론적으로 매우 특수한 상황임이 분명하고, 이런 상황이 행동과 인지에 주요한 변화를 요구했을 것으로 보임. 이런 의무 일부일처제가 자리잡은 후에는 원상태로 복귀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행동과 인지적 변화를 무효로 하기 어렵기 때문. 차후에 논의할 남녀 한 쌍 관계의 진화에도 이런 인과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 일부일처제가 진화적으로 매우 특수한 역사를 가진다는 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또 하나 있다. 사회구조로서든 짝짓기 전략으로서든 왜 하필 일부일처제가 발달해야만 했을까? 수년 동안, 포유류의 일부일처제와 관련해서 세가지 가설이 제기됨.
(1) 큰뇌를 가진 후손을 양육하기 위해서 두 부모가 필요하다는 양친양육의 필요성.
(2) 수컷의 짝 보호성향. 특히 암컷 개체가 너무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어서 수컷개체가 한 번에 한 마리 이상의 암컷 개체를 보호할 수 없는 경우, 수컷은 적어도 생식기에 있는 암컷 한마리 만이라도 수태시키려고 그 하나를 독점하고 다른 수컷이 넘보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
(3) 영아살해위험, 즉 암컷 개체가 자신을 괴롭히거나 자신의 새끼를 죽일수도 있는 다른 수컷에게서 자신을 방어해주는 보디가드나 살인청부업자로 이용하기 위해서 수컷개체 하나를 독점한다는 가설. 영장류의 영아살해 위험이 꽤 오랫동안 심각한 문제로 인식된 까닭은 영장류의 큰 뇌가 결과적으로 번식률을 떨어뜨리기 때문. 다른 수컷에게서 암컷을 빼앗은 수컷이 자신의 후손을 보려면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음. 하지만 수컷이 암컷의 갓 낳은 새끼를 죽인다면 그 암컷은 금방 생식이 가능한 상태로 회복되기 때문에, 수컷은 그 즉시 생식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수컷 영장류에게 영아살해 행위가 강력한 선택압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영장류에서 영아살해가 놀라우리만치 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또한 이 선택압은 영아살해 위험을 완화하거나 줄이기 위한 대응전략에 대해서도 똑같이 강력한 선택압을 일으킬수도 있음
- 요점은 사회적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암컷 개체가 받는 스트레스가 증가했고, 수컷개체는 서로 경쟁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 만약 이런 스트레스와 경쟁의 암박을 제거할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새로운 서식지를 점유하기는 커녕 더 큰 뇌를 가진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수도 없을 것임.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호의적이었던 서식지들이 급격히 사라지는 상황에서는 멸종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임. 하지만 알다시피, 그들은 살아남았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은 문제를 해결했다. 이 결과에서 우리는 인간 진화 이야기의 근간을 이루는 두 가지 기본원칙을 추렴할 수 있다. 바로 뇌 크기와 시간예산 분배다. 뇌 크기는 환경조건에 대응한 사회집단의 규모를 결정하고, 집단의 규모와 환경조건은 시간예산을 조정해야 할 요구를 가중한다. 새로운 진화단계로 도약하려면 이런 요구를 충족해야만 했을 것이다.
- 뇌 조직은 오로지 성장기 동안에만 일정한 속도로 발달하기 때문에, 더 큰 뇌를 가지고 싶다면 뇌가 발달하는 시간을 늘리는 수밖에 없음. 지름길은 없다. 다시 말해, 적어도 포유류에서 뇌를 더 크게 진화시키려면 임신과 수요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의미. 그리고 프로그램이 없으면 컴퓨터가 무용지물이 되듯, 뇌가 역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의 미묘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려면 사회화 기간을 더 늘려야 함. 인간을 대상으로 한 뇌 영상연구가 보여주는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뇌가 복잡다단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되기까지는 무려 20년에서 25년이나 걸린다. 뇌는 성장과 유지에 엄청난 비용이 드는 사치품이다. 인간 성인의 경우 매일 섭취하는 전체 에너지의 약 20%를 뇌가 소비함. 우리 몸무게에서 고작 2% 밖에 차지하지 않는 뇌가 전체 열량의 20%를 소비하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분주하게 처리할 때의 에너지 비용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그저 뇌를 살아있게 만드는 데에만 무게 대비 예상치보다 10배가 넘는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므로 이런 뇌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식량을 획득하려면 효율적인 수렵-채집 전략들이 절실해질 수밖에 없음. 일부 식량은 한 종이 뇌를 더 크게 진화시키기 위한 식량으로 이용하기에는 영양도 빈약하고 소화시간도 지나치게 길다. 즉 식단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특정한 식단이 한 종의 인지활동, 궁극적으로는 사회활동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식물섭취는 일종의 회색천장이라 볼 수 있다. (뇌의 회색물질 부분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 원숭이와 유인원은 전전두엽피질 부위에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진화시켰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포유류와는 다름. 신경심리학자 딤 패싱햄과 스티븐 와이즈는 함께 쓴 독창적인 책에서 전전두엽 부위가 유인원 영장류에게만 있는 새롭고 정교한 인지능력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수시로 일어나는 인과를 비약적으로 추론하는 능력, 행동이 야기할 결과들을 계획하고 비교하는 능력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 개코원숭이 속은 구세계 모든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덜 익은 과일을 소화할 수 있지만, 유인원은 그렇지 못하다. 소화력의 차이 때문에 유인원들은 부득이하게 잘 익은 과일을 공급해줄 지역을 찾아 더 멀리 이동해야 함. 따라서 채집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서식지의 고갈속도가 빨라질수록 유인원은 이동에 더 많은 시간을 분배해야 한다. 이와 반대로, 개코워눙이 속은 덜 익은 과일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 덕택에 자주 이동할 필요가 없어 한 서식지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은 유인원보다 골격구조에 따른 제약도 덜 받으며, 상대적으로 긴 개코원숭이 속의 다리와 발은 육상에서의 빠른 이동에 더 적합하다. 이 두 속이 서로 다른 지역에 분포하는 까닭도 대부분 골격구조와 소화력의 차이에 기인한다. 특히 아프리카 유인원의 분포가 열대 숲과 잘 익은 말랑한 과일이 풍부한 적도 인근의 협소한 지역에 제한된 까닭도 이 때문이다.
- 영장류가 뇌에서 엔돌핀을 활성화하려면 그루밍을 통한 신체적 자극이 필요함. 그리고 이런 엔돌핀 활성화가 유대감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임. 그런데 동시에 몇 명의 사람에게 그루밍을 해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한 가지 행동이 있다. 인간과 대형 유인원은 웃을 수 있다. 유인원의 웃음은(보통 놀이의 맥락에서 웃음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날숨가 들숨이 연쇄적으로 반복되는 데 반해, 인간의 웃음은 들숨 없이 날숨만 반복된다. 유인원은 숨을 내뱉은 후에는 반드시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그래야 폐를 비우지 않고, 횡경막과 흉벽 근육에 가해지는 압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간은 웃을 때 날숨을 빠르게 반복하면서 폐를 비우기 때문에 한바탕 웃고 나면 숨이 차다. 수차례의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듯, 웃을 때 흉벽 근육에 가해지는 압력은 엔돌핀을 활성화한다. 따라서 웃음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상대에게 일종의 그루밍 효과를 냄으로써 한 번에 여러 개체에게 엔돌핀 분비 효과를 유도할 수 있다. 뇌에서 엔돌핀 활성화를 유도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동 가운데 특히 전염성이 강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웃음은 완벽한 후보다. 똑같은 코미디 영상을 볼 때도 여러 사람과 함께 보면 혼자서 볼 때보다 30배나 더 많이 웃는다. 실제로 웃음은 매우 본능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이 웃고 있을 때 혼자만 정색하고 있기는 어렵다. 심지어 웃음을 유발한 농담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자연스럽게 따라 웃는다. 웃음은 시쳇말로, 떼창의 원형이다. 웃음이 본능적인 행동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그 기원이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암시한다. 우리가 꼭 말로 하는 농담이 아닌 것에도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이유가 웃음의 진화가 시기적으로 매우 일렀음을 방증한다.
- 초기 호모종들은 단순히 침팬지의 습성에서 영역이 더 넓어지고 집단이 확장된 수준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초기 호모종들이 동맹방어를 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초기 호모동들이 충분히 협동하여 방어할 수 있었던 영역을 뇌 크기에 따른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갑자기 더 확장하여 큰 공동체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뚜렷한 동기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동맹하여 짝짓기 영역을 방어하는 침팬지 수컷의 동료애가 언제까지나 마냥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침팬지나 개코원숭이와 같은 난혼 짝짓기 시스템을 가진 집단은, 최고 서열의 수컷이라도 일단 집단 애 다른 경쟁수컷이 다섯 마리가 넘으면 자신의 암컷과 다른 수컷이 짝짓기 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한 집단내에 암컷의 수가 얼마이든 상관없이, 경쟁 수컷의 수가 많아질수록 최고 서열 수컷이 암컷을 독점하는 능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집단 내 모든 암컷에 대한 접근을 방어하는 대신, 이 수컷은 발정기에 이른 개별적인 암컷에 집중하려 한다. 만약 동시에 두 마리의 암컷이 발정기에 이르면, 이 수컷은 둘 중 한마리를 다른 수컷에게 바로 인계한다. 침팬지뿐만 아니라 개코원숭이와 마카크원숭이에게도 이런 패턴이 관찰됨. 즉 이 패턴은 이합집산의 사회성이라기보다, 지배 수컷이 신경써야 하는 경쟁 수컷의 숫자에 따른 단순한 결과다. 서열이 높은 수컷이 그 집단 내에서 여러 마리의 수컷을 용인하고 암컷을 기꺼이 공유하는 경우, 여기에는 필시 어떤 강압적 동기가 작용하며, 그 동기는 집단 외부에서 가해지는 것이 분명함. 그 강압적 동기가 포식위헙이 아니라면, 침팬지가 늘 겪던 동종의 습격에 대한 방어이거나 아니면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식량자원에 대한 접근기회일 것이다. 초기 호모종들이 이것 중 어떤 동기 때문에 더 큰 공동체를 이뤄야 했고, 따라서 더 큰 뇌가 필요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한가지 사실은 초기 호모종들이 일부다처제를 따랐다는 것이다. 성적 이형태성의 수준은 (약 1.25) 대부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보다 약간 더 낮지만 현생인류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며, 일부다처제나 난혼을 따랐을 확률이 매우 높았음을 암시. (침팬지와 개코원수잉의 경우처럼)남성이 생식기에 이른 여성에 대한 접근을 놓고 서로 경쟁했는지 아니면 (겔라다원숭이와 개코원숭이 또 어쩌면 고릴라처럼) 여성이 지배적인 남성이 독점하는 하렘으로 분산되었는지, 성적 이형태성 수준만으로는 확실히 알 수 없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경우에도 그랬듯, 어쩌면 이들의 채집집단이 얼마나 크고 분산되었는냐에 따라 짝짓기 패턴이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침팬지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다소 큰 규모의 공동체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일부다처제의 양상을 띠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결론인 것 같다.
- 호모에르가스테르(760cc)와 호모에렉투스(930cc)에 이어 뇌크기도 꾸준히 증가해서 하이델베르겐시스에 이르러서는 평균 1170cc까지 커졌다. 네안데르탈인은 1320cc까지, 그리고 우리 종의 화석 구성원에 이르러서는 1370cc까지 증가. 이처럼 극적이면서 빠른 변화가 모두 합해 30만년도 채 안되는 기간에 벌어진 것이다. 결국 이 기간에 뇌 크기를 증가시켜야 하는 강력한 선택압이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뇌 크기의 급격한 증가는 우리가 고고학적 기록에서 발견하는 도구와 물질문명의 종류와 품질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런 이유에서 나도 관행을 따라, 하이델베르겐시스를 필두로 한 나중의 두 분류군만을 인간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이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초기 호모종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해 보이기 시작한다.
- 대개 네안데르탈인을 둔하고 느린 혈거인으로, 가장 미개한 원시인의 상징인양 여긴다. 영리하고 창의적인 현생인류에게 당연히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진화의 낙오자, 인류판 공룡쯤으로 치부하곤 한다. 사실, 네안데르탈인은 진화의 낙오자와는 거리가 멀다. 네안데르탈인은 무려 25만년 이상을 (현생인류가 존재했던 기간보다 긴 시간이다.) 동쪽으로 대서양과 면한 우즈베키스탄과 이란까지, 북쪽으로 영국 남부까지, 남쪽으로 레반트에 이르는 유럽을 성공적으로 점유했다. 그들은 빙하기의 혹독한 환경도 잘 헤쳐나갔고, 큰 동물을 사냥하는 기술도 가장 뛰어났다.
-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 아주 다른 생활방식을 가졌던 것은 분명하다. 유럽 네안데르탈인의 뼈의 콜라겐에서 추출한 질소와 탄소의 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같은 지역에 서식하는 초식동물보다 질소 동위원소 수준이 현저히 높을 뿐만 아니라 현재(북극여우와 늑대 같은) 육식동물의 뼈에 함유된 동위원소 수준과 거의 맞먹었다. 또한 탄소 동위원소 수준도 이들이 주로 육상 포유류를 먹었다는 사실을 보여줌. 물고기나 물새류 같은 물이 많은 환경에 서식하는 종은 별로 선호하는 식량이 아니었다. 레반트 유적지에서 나온 증거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은 무거운 창을 제작했는데, 대부분 르발루아 식으로 다듬은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돌날이 달린 독특한 창이었다. 이런 창은 대개 매복식 사냥에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냥꾼은 사냥감을 가까이 대치하는 상황으로 끌고 가 창으로 찔렀을 것이다. 더 나중에 현생인류가 사용했던 창과 달리, 네안데르탈인의 창은 투창용이 아니라 꼬챙이처럼 찌르는 용도였을 것이다. 현생인류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네안데르탈인의 팔로는 투창하듯 창을 던져도 멀리 높게 날아갈 수 없다. 날아가는 거리나 속도로 짐작건대, 그들에게 투창은 그리 효율적 사냥기술이 아니었다. 대신 네안데르탈인의 다부지고 육중한 몸과 강인한 상체는 근거리 사냥에서 확실히 유리했을 것임.
- 네안데르탈인의 매복사냥 기술에 집약된 협동심의 수준은 달리 말하면, 이들의 인지능력과 관점이 현대인과 거의 다를 바 없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음. 협동하지 않으면 그런 사냥은 불가능하기 때문. 그리고 그 능력은 곧 그들도 우리처럼, 현생인류의 중요한 행동양상인 친사회적이고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함. 실제로 이란의 샤니다르 유적지에서 발굴된 신체적 장애를 가진 늙은 네안데르탈인의 유골과 프랑스 라 샤펠 유적지에서 발견된 늙은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은 직접 먹이를 사냥하지 못할만큼 신체적으로 몹시 무력했던 것으로 보임. 이런 2차적 증거에 대해 '네안데르탈인이 늙고 병든 동료를 그냥 버리지 않고 보살폈음을 암시한다'는 해석이 호응을 얻음. 물론 고대와 현대의 모든 인간종을 통틀어 가장 큰 뇌를 가진 네안데르탈인이 지적으로 열등하지 않았다는 데는 반박의 여지가 없음. 그렇긴해도 그들의 낮은 이마와 불룩 튀어나온 뒤통수의 혹은 이들에게 틀림없이 뭔가 다른게 있다는 신호로 해석됨. 두개골 안쪽에 남은 희미한 자국을 분석한 결과는 역시 이들의 뇌가 우리의 혈통과 한 라인에서 조립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낳았다. 그들의 뇌는 확실히 우리의 뇌와 비대칭성의 패턴도 같았고, 자이리피케이션도 유사했지만, 공처럼 생긴 우리 뇌와 달리 앞뒤로 더 길쭉한 타원형에 가까웠다. 측두엽과 후각망울도 작았으며 전두엽이 차지하는 면적도 작았다.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이 차이가 그들의 사회적이고 인지적 삶에 초래한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 네안데르탈인은 같은 지역에서 거주했던 해부학적 현생인류보다 약 20% 정도 더 큰 안구를 갖고 있었다. 고위도 지역의 낮은 조도에서 생활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큰 시각 시스템을 발달시켰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의 큰 뇌는 시각에 과도한 노력을 할애하는라 사회적 인지능력을 결정하는 뇌의 전면부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 약 2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몸매가 한층 더 날씬한 호미닌 종이 출현. 마침내 해부학적 현생인류 또는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한 것. 다소 단편적인 화석증거로 보건대, 이 새로운 형태의 인간종은 아프리카의 고인류를 매우 빠르게 대체. 10만년 전에 이르렀을 때, 아프리카의 고인류 집단은 모두 사라짐. 물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고인류 집단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음. 하지만 유럽 본토와 아시아의 고인류가 유일한 호미닌 종으로 그 명맥을 유지했는데,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그들이다. 극동에는 호모 에렉투스 집단도 더러 남아 있었음. 늦어도 7만년 전에, 이 새로운 인간종은 아프리카와 유라시아를 연결하던 육로인 레반트를 가로질러 이동하기 시작. 시기는 각기 달랐지만, 이 종의 일부는 홍해 북쪽을 또 일부는 홍해 남쪽을 가로지르며 유라시아를 향한 이주행렬이 이러진 것. 약 7만년 전에 일어난 아프리카 탈출사건을 지금은 아프리카 기원설이라 부름
- 해부학적 현생인류의 출현은 두가지 중대한 결과를 낳음
(1) 이 종은 지구 곳곳의 살기 적합한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감. 최초로 아프리카를 떠난지 불과 3만년 만인 4만년 전까지 현생인류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점령했고, 늦어도 1만 6천년 전 즈음에는 최북단 진입지점이었던 알래스카에서 대륙 최남단까지 이르면서 말 그대로 아메리카 초대륙 전체를 거침없이 헤집고 다녔다. 현생인류가 이동용 동물을 길들이기도 전에 오로지 걸어서 아메리카 대륙을 점유한 속도는 거의 기적에 가깝다
(2) 4만년 전 현생인류의 유럽 도착이 네안데르탈인의 멸종과 시기적으로 일치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가 러시아 스텝지역에서 동쪽으로 진출하기 전까지, 20만년 이라는 시간동안 유럽과 서아시아를 매우 성공적으로 점유하고 있었다. 그랬던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가 출현한지 10만년 만에 지구에서 사라짐. 이들이 사라진 이유는 지금도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표적 의문이다.
- 만약 현생인류가 더 많은 음식을 요리하는 방법으로 시간부족분을 만회한 게 아니라면, 대체 어디서 시간을 절약했을까? 나는 고인류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집단구성원을 늘리는 동시에 결속을 강화했을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제기했다. 나는 고인류가 이 방법을 통해 75명 남짓이던 초기 호모종의 전형적 집단구성원 수를 고인류의 전형적 구성원 수인 100명으로 늘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음악과 춤이 지엽적인 공동체의 유대를 강하하는 기능을 했던 것이 분명하고, 이것이 웃음의 유대감 형성효과를 보강하기 위해 발전했을 가능성도 크지만, 언어가 없었다면 함께 모여 춤을 춘들 그것이 더 큰 공동체 규모에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을 리는 없다. 온전한 언어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구성원을 한자리에 모이게 할 만큼은 복잡한 언어가 있어야 했을 것임.
-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춤추기 가능한 수준의 언어가 있었다면, 150명으로 구성된 대단히 큰 현생인류의 공동체 구성원의 유대감을 높이는 데 필요한 추가시간은 하루 활동 시간의 약 1% 정도까지 줄일 수 있었을 것임. 하지만 이 사실을 기억하라. 영장류의 그루밍 시간은 가까운 친구들에게 집중되지만, 동시에 그 그루밍 시간은 집단 또는 공동체의 전체 규모에 비례한다. 이것은 가까운 동료에게 투자해야 하는 필수시간이 공동체의 나머지 성원에게 받는 스트레스에 비례하기 때문. 함께 모여 춤추기가 공동체의 지엽적 성원에게 투자해야 하는 시간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언제든지 달려와 도움을 줄 수 있을만큼 가까운 동료와의 유대를 공고히 하는 데 필요한 시간까지 줄여준다는 보장은 없다. 유대감 형성 메커니즘으로서의 언어는 그루밍보다 월등한 이점을 갖고 있음. 언어는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기 때문. 언어의 효과를 따져보면, 우선 첫째로 동시에 여러명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음. 둘째, 다른 활동을 하는 중에도 그 효과를 발휘. 셋째, 언어는 사회적 관계망 전반에 대한 정보를 얻게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어는 관심을 진작시켜 준다. 이상 네가지는 모두 언어를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했을 때 얻는 이점들이다. 물론 시간절약 측면에서도 굉장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은 모두 언어의 신생 특성들이다. 즉 일단 다른 여러 동기를 충족하는 언어를 가진 후에 등장하는 언어의 새로운 이용법이라는 말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대화한다고 해서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유대감 형성에 매우 중요해보이는 엔돌핀이 저절로 분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 현생인류의 출산과정은 원숭이나 유인원 어떤 종보다 대단히 고달픈 과업이다. 그래서 자연은 불필요하게 작은 산도를 통과해야 하는 지나치게 큰 머리 아기를 위해 고육지책을 마련해야 함. 산모의 골반 양쪽을 이어주는 연골부가 출산하는 동안 유연해지면서 아기가 밀고 나올 때 골반이 벌어지게 한 것. 이것이 여성의 골반이 출산 후에 원래 크기로 회복되지 않는 원인이다. 여기에 더해 아기의 두개골을 이루는 뼈판들도 태어날 때는 떨어져 있다. (5-7세쯤 뇌가 성장을 멈추기 전까지 두개골의 뼈판은 고정되지 않음.) 산도를 통과할 때 압력을 받으면 뼈판이 아주 조금씩 서로의 가장자리로 밀려들어 가면서 압축되는 덕에 아기 머리가 무사히 산도를 빠져나올 수 있다.
- 스토리텔링은 (역사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상이 누구였고 우리는 누구이며 또 어디서 왔는지, 머나면 지평선 너머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정신세계에는 누가 거주하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공통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을 관계망 속에 묶어줌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형성함. 특히 스토리텔링은 계속너머 마을사람들을 우리 공동체의 확장된 일부로 간주해야 하는 (또 간주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알게 해주고, 우리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으로 한정한 150명 관계망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심지어 그 내용이 어떻든 간에,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유대감도 형성됨. 감정을 일깨우는 것은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데 상당히 유익한 듯한데, 아마도 감정이 엔돌핀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일 것임. 대부분의 전통사회들이 지키고 있는 성년의식은 고통스럽고 위협적인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의식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에는 평생동안 끈끈한 동지애와 상호헌신이 지속되는 것처럼 보임. 밤에 나누는 이야기가 특별히 더 매혹적인 것도 어쩌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둠이 주는 공포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이야기꾼이라면 듣는 이들의 감정적 반응을 격앙시킬 수 있기 때문. 하지만 거기에 더해 어둠이라는 장막이 주는, 나머지 세계와 격리된 듯한 기분은 공동체 성원들 간의 애정을 북돋우기도 했을 것이다. 이쯤에서 결론을 내리면, 언어가 실용적 정보교환을 쉽게 해주는 메커지즘으로만 기능한다면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언어는 끊임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상호 이해가 불가능한 새로운 방언으로 세분되고 있다. 현재 공식적으로, 영어는 탄생하고 1000년도 채 안되는 동안 완전히 다른 여섯개의 언어로 갈라졌다. 그중 어떤 언어는 고작 몇백년 밖에 안되는 것도 있다. 언어가 협동을 쉽게 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면 어째서 바로 이웃한 집단의 성원들보차 이해하기 어려울만큼 그토록 비효율적으로 세분되었을까? 다시 말해 왜 방언이 출신지를 나타내는 뻔한 표시가 되어야 했을까? 어쩌면 하나의 방언이 같은 지역 출신 (그리고 현재 적어도 작은 사회 일원이며 서로 관련이 깊을 법한) 사람으로 구성됨 소규모 공동체를 구별하게 해준다는 것이 그 대답일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방언은 매우 빠르게 변화함. 어떤 사람이 쓰는 방언을 알면 출신지뿐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세대를 짐작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 언어의 존재 이유가 실용적 정보교환이라면, 이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반대로 언어가 소규모 공동체의 배타적 결속을 위해 진화했다면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 전 세계 어디나 샤머지즘 종교는 공통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 어떤 구멍이나 터널을 통과하고 빛의 폭발을 경험하거나 광휘의 세상을 지나 정신세계로 진입하는 것도 그 한 주제다. 정신세계로의 여행이 너무 험난해서 자비로운 안내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거나, 다시 돌아오는 구멍을 찾지 못하면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는 점도 비슷함. 한 공동체 안에서 이런 가수상태의 춤은 사회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임. 특히 아프리카 남부의 부시먼이라고 불리는 산족은 확장된 공동체 내의 사람관계가 분쟁이나 다툼으로 멀어지면 대개 가수상태의 춤을 춘다. 가수 상태의 춤은 사회적 균형을 원래대로 돌려놓는데, 마치 관계를 오염시킨 불공평과 모욕에 대한 부정적 기억을 완전히 지워주는 것 같다. 가수상태에 빠지면서 공동체는 다시 한번 상호보완적인 관계망을 회복하고, 성원간의 관계도 초기 상태로 회복되는 듯하다. 몇 주 혹은 몇 달이 지나 비열한 모욕이나 불공평이 쌓이면 또다시 춤의 도움을 받는다. 이는 어쩌면 가수상태의 춤이 (가수상태 그 자체가 아니더라도) 엔돌핀의 분비를 엄청나게 촉진한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이런 유서깊은 방식을 따르는 것이 개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일조하는 것일수도 있다. 무엇보다 엔돌핀은 정신과 신체건강에 매우 유익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수상태의 춤은 사회적 결속 뿐만 아니라 공동체 성원 전체의 건강에도 이로울 것이다. 종교는 애초에 아주 작은 규모의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 결속과 헌신을 강화하려는 방편으로 발달하기 시작했을 것임. 종교적 부작용 중 하나는 불가피하게 정신적으로 우리 대 그들 또는 내집단 대 외집단의 대결구도를 만든다는 것이다.
- 50명과 150명 규모의 관계망 층 기능에 대한 여섯가지 설득력 있는 설명을 살펴보았다. 포식자에 대한 보호, 영토나 식량자원의 방어, 생식기의 배우자 수호, 환경적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한 거래협정, 자원의 위치에 관한 정보교환 그리고 이웃공동체의 습격에 대한 수비가 그것이다. 수차례 거듭돤 연구에서 우리가 얻은 결론은, 전쟁가설로 알려진 습격에 대한 수비가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뇌 가설이 예측한 바, 150명 규모의 관계망 층이 고고학적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한 때가 약 10만년 전 인구폭발이 시작된 시점과 거의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 집단의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일단 집단생활은 영장류에 엄청난 비용부담을 안긴다. 특히 암컷 개체가 치르는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만약 이 비용을 분산시키지 못하면 공동체는 순식간에 와해될 것임. 수렵-채집인은 이합집산(실제로는 넓은 영역에 공동체를 분산시켜 집단규모를 줄이고, 집단생활에서 일어나는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리는) 전략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이합집산 전략이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수렵-채집인의 사회성은 곧 집단생활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흩어져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 사이의 타협이다. 이런 압박감을 완화하고 중간규모 공동체의 사회적 결속을 보강하는 기제로 음악이, 그 다음에는 언어기반의 스토리텔링이 마지막으로는 종교가 진화했다. 신석기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인간이 어떻게 농사를 시작하고 식품을 저장하는 방법이나 집 짓는 법을 배웠느냐가 아니다. 사실 이런 일은 당시 인간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비교적 사소한 일이다. 그보다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인간이 방대한 정착지에서 공간적으로 밀집하여 사는 데서 발생하는 파괴적 문제를 해결했느냐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훗날 도시나 도시국가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임. 현생인류가 되는 여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했던 다섯번째 위대한 전환점은 신석기시대 정착지였다. 다만 여기서 방점은 신석기시대가 아니라 정착지에 찍힌다.
- 오늘날 한 개인의 사회적 관계망 층에서 50명 규모의 관계망 층 안에는 불균형적으로 친구가 많지만, 바깥쪽의 150명 관계망 층 안에는 역시 불균형적으로 혈연도가 먼 확장된 가족이 많음. 확장된 가족은 친구보다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안쪽 계측보다 바깥쪽 관계망층을 유지하는 데 따르는 부담이 훨씬 적음. 만약 우리가 바깥쪽 계층에 속한 가족에게 투자하는 것만큼 우정에 투자한다면, 친구라고 해도 지인보다 별로 나을 게 없을 것임. 바깥쪽 관계망 층에 속한 친구와 가족의 비율이 바뀐다면, 유지비용도 엄청나게 들뿐만 아니라 관계망에 대한 헌신과 결속력 수준도 떨어질 것이 분명함. 사실 친구가 50명 규모이ㅡ 관계망 층에 집중된 이유도 이 때문. 바깥쪽 관계망 층에 속한 사람과의 상호작용 빈도는 우정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런 상호작용 빈도로는 50명 관계망 층에 속했던 친구도 지인 관계망 층으로 속속 빠져나가고 말 것이다.
- 우정을 연구하던 중에 우리는 사회적 관계망이 작동하는 방식에서 나타나는 양성 간의 중대한 차이점을 발견했다. 두 가지 측면이 특히 더 두드러지게 달랐다. 우선 여성은 낭만직인 파트너뿐만 아니라 종종 극도로 친밀한 친구 한명을 별도로 가진다. 물론 남성은 그렇지 않다. 여성보다 남성의 우정은 상당히 데면데면한 편이고, 그렇기 때문인지 친구들이라는 무리의 성원수가 더 많은 편. 이런 차이는 관계 안정성 면에서 여러가지 중요한 결과를 낳음. 여성의 친밀한 우정은 중요한 감정적 지지기반 역할을 하지만, 한편으로 깨지기도 쉽다. 일단 우정이 깨지면 거의 대참사 수준으로 결딴나기 때문에 회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움. 반면 남성의 무심한 우정은깨졌다가도 금세 회복됨. 여성은 친밀한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지만, 남성은 언제든 쉽게 친구들과 멀어짐. 글자 그대로 남성의 친구는 안보면 남이다. 이사를 하거나 직장을 옮긴 후에도 남성은 정착한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금세 사귄다. 실제로 여성은 일반적으로 아주 돈독한 소수의 친구를 갖고, 남성은 다소 무심한 여러 명의 친구를 가진다. 모든 신변 소지품들에 대한 애호, 유대감을 돈독히 하기 위한 별난 의식들, 더불어 동호회를 좋아하는 남성의 이런 성향은 집단이나 패거리를 쉽게 형성하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임. 어쩌면 이런 성향이 소규모의 사냥 무리에서 유래했을지도 모르지만, 근본적으로는 수적으로 큰 무리 속에 쉽게 편입할 수 있고 교회나 군대처럼 대규모 위계조직에 적응을 잘하는 일종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는 듯 보인다. 양성간에 나타나는 두번째 큰 차이점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우정에 관한 18개월 추적연구에서 우리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정의 퇴색을 저지하는 메커니즘을 조사. 참가자에게 각자의 친구와 얼마나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친구와 어울려 활동을 하는지 물었다. 여성의 우정 지킴이는 대화였고, 남성의 우정지킴이는 활동이었다. 수다는 결단코 남성의 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우정의 본질에 대한 이 짧고 재미있는 연구에서 얻은 결론은, 150명 규모인 종래의 수렵-채집 공동체에서 더 확장된 커다란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 결속을 유지하는 일은 절대 사소하고 만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뭔가 다른 조치가 필요할 터인데, 이 조치는 틀림없이 인간이 자연스레 우정을 형성하는 방식, 특히 남성의 동호회 형성방식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무언가일 것이다. 동호회는 한 가지 주제를 기반으로 함. 어쩌면 그 주제만 있으면 다른 아무것도 필요치 않은지도 모름. 이런 단일한 관심사에 기반을 둔 동호회의 기원은 혈연관계일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혈연관계망 바깥쪽의 관계망 층들은 순전히 언어를 기반으로 한 표면적인 관계망이기 때문. 동호회 다음으로 이 관계망 층을 기반으로 구축된 두번째 본보기는 어쩌면 종교일 것이다.
- 종교를 연구하는 역사가는 오늘날 전 세계에 존재하는 수천 가지의 종교에서 발견되는 가장 근본적인 특징을 두 가지로 구별한다. 샤머니즘적 특징과 교리적 특징이 그것이다. 전자는 경험적 종교가 갖는 특징이다. 후자는 성스러운 공간, 이를테면 사원이나 교회 같은 공간과 관련이 있는 종교의 특징이다. 이런 종교는 대개 위계적 성직자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신학, 신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복을 빌고 신을 달래는 공식적 의식을 수행한다. 두번째 유형의 종교는 그 양식과 종교를 수행하는 활동 면에서 샤머니즘적 종교와 매우 다름. 영구적 정착지 형성은 이 두 족요 유형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세계 전역의 유목민과 반유목 수렵-채집인 그리고 목동 사회는 샤머니즘적 종교를 따르는 경향이 있지만, 영구적 정착지를 이룬 사회에서는 교리적 종교를 가진 경우가 많은 것도 그 예라 볼 수 있다.
- 할머니 양육은 여성이 폐경기를 겪는 이유를 설명해줌. 장수하는 다른 종도 폐경기를 경험한다는 다소 설득력 없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성인기기 중분에 이르렀을 때 생식이 완전히 종결되는 종은 우리가 유일함. 만약 여성이 폐경기가 없다면 자신의 생식에서 딸의 생식으로 관심을 바꾸지 못하고 결국 성인기 내내 자신이 낳은 막내 자녀를 돌볼 것이다.
- 호미닌 종들은 진화 역사의 거의 전반에 걸쳐 유인원과 비슷한 일부다처 짝짓기 시스템을 따랐을 것이다.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도 있다. 일부일처제가 진화했다고 해도, 그것은 현생인류에 이르러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때도 완전한 일부일처제의 형태를 띠거나 종 전체를 특징으로 결정될 만큼 보편적이지는 않았을 것임. 일부일처제 표현형 대 난혼 표현형이 거의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미루어보다, 인간은 양성 모두 다양한 형태의 짝짓기가 가능함. 남녀 한 쌍 짝짓기와 난혼 짝짓기 시스템 사이의 차이점을 기준으로 고릴라와 침팬지의 자료를 대조하면, 적어도 고인류에서 줄곧 고릴라와 유사하게 가짜 암수 한쌍 짝짓기를 표방한 일부다처 혼의 형태를 유지하다가 현생인류에 이르러서 보다 강력한 남녀 한쌍 짝짓기 시스템이 우세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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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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