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요리하다

인문 2018. 6. 6. 11:02

- 공동식사는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가정생활의 근간이며 아이들이 대화의 기술을 배우고 문명의 습관을 획득하는 기회다. 이야기를 나누고 듣고 차례를 기다리며 차이를 인식하고 무례하지 않게 논쟁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 소위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자본주의가 기대고 있는 사회적 관례의 안정화를 저해하는 경향)은 오늘날 미국 가정의 저녁식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온갖 화려한 포장은 바로 식품산업이 공략하려 애쓴 노력의 결과다
- 아마 요리하며 절약할 수 있는 돈보다 1시간 더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것이다. 전문화는 이론의 여지 없이 강력한 사회경제적 힘이다. 동시에 능력저하의 주범이다. 전문화는 무력감과 의존, 무지를 낳으며, 결국에는 책임감마저 약화시킨다
- 복잡한 경제에서 분업의 한가지 문제점은 일상의 행위와 결과의 연결고리, 책임의 한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전문화로 인해 우리는 새로산 컴퓨터 화면을 밝혀주는 화력발전소의 쓰레기나 내가 먹는 시리얼에 들어갈 딸기를 따는 데 드는 고된 노동, 또는 매가 먹는 베이컨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살다 죽어간 돼지의 고통을 쉽게 잊는다. 또한 지구 반대편의 이름 모를 전문가들이 우리를 위해 하는 모든 일들에 자신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끗이 잊어버린다. 아마 요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요리가 세상의 이 같은 존재방식을 과감히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돼지고기 목살을 잘라내는 일은, 이것이 커다란 포유동물의 목살이라는 사실, 완전히 별개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별개의 근육다발로 이루어진 부분이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되새기는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돼지가 어디서 어떻게 내 주방까지 오는지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가 손에 쥔 돼지고기는 축산제품이라기보다는 자연에서 얻은 것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정말이지 전혀 상품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 돼지고기와 함께 먹는 채소, 자르기가 무섭게 다시 자라나는 늦봄 채소를 기르는 일은 자연의 넉넉함을 날마다 일깨워주며, 빛의 광자가 맛있는 먹을거리로 변하는 일상의 기적을 체험하게 해준다
- 요리의 즐거움을 위해 요리하기, 요리하면서 약간이나마 여가를 보내기는 깨어있는 매 순간을 소비로 부추기는 기회로 삼으려는 기업들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다. 적어도 집에 있을 때만은 뭔가를 만드는 일은 다은 누군가가 이걸 더 잘하리라는 생각, 그리고 진정한 여가의 형식은 오직 소비뿐이라는 무기력한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의존성을 마케터들은 자유라고 한다.
- 서로 다른 시대에 수많은 문화권에서 고기를 불에 직접 구워 동물을 바치는 식의 제의가 행해졌다는 사실과 이런 상당수 의례에서 불로 요리할 때 나는 연기를 신과 인간이 소통하는 매개로 생각했다니 놀랍기만 하다. 인류학자들은 이러한 의식이 전통문화에서 상당히 보편적이라고 말한다. 여러분은 우리 문화에 그런 의식이 부재한다는 사실이 더 이상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는 해도 점차 사라져간 그런 의식을 통돼지 바베큐 같은 요리에서 얼마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물공희에서 연기의 중요성은 요리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신화를 추가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한다. 불에 고기를 굽는 행위는 하늘의 신에게 제물이 될 동물을 어떻게 바칠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에 아마 요리는 희생제의와 함께 시작됐을지 모른다.
- 우리 인간은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음식이 먹기 좋아야 맛있고, 안전하며, 영양가가 풍부해야 할뿐 만 아니라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빌리자면, 생각하기에도 좋아야 한다고 고집한다. 우리는 여러가지를 먹지만, 특히 생각을 먹는 존재이기 때문. 동물공희는 동물의 고기를 생각하기 좋게 동물을 죽이고 요리해서 먹는 일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행위인데, 이는 중대하고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면서, 마음속 깊이 상반된 감정에 시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호메로스의 글에서든 구약의 레위기 말씀에서든 간에, 도살과 도축, 요리라는 작업을 왜 성직자가 수행해야 했는지, 왜 이들이 똑같이 엄숙한 활동이었는지 설명해줄지도 모음. 오늘날 우리는 제물을 바치는 것이 원시적 의례라고 생각하며 밑바탕에 깔린 합리화를 비웃지만, 먹기전에 그러한 의식을 행한 문화들은 최소한 어떤 중요한 일, 온전히 집중해야만 하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고기를 먹을 때 그런 정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해서 중대한 일(말하자면, 일종의 제물을 바치는 행위)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누가 진짜 원시적인 인물인지 여러분은 궁금히 여겨야 한다. 우리 현대인들은 고기를 식탁 앞으로 가져다 높은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면서 고대인들보다 훨씬 더 동물처럼 먹고 있다. 이는 희생제의가 사람들에게 어떤 다른 역할을 했음을 암시. 희생제의는 한편으로는 인간과 동물을 확연히 구분지었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과 신을 구분지었던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의례에서 자기 사냥감이나 먹이의 가죽을 벗겨 옷을 해입지 않는다. 스스로 불을 통제하며 음식을 요리하지도 않는다. 희생제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우주 속에 있는 신과 동물 사이의 정중앙에 자리를 잡는다. 인간은 신성한 제물을 바침으로써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신의 힘을 인식하며, 의례적인 동물살해를 통해 신적인 힘을 증명한다. 의례를 위한 레시피는 우리가 정확히 어디쯤 서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 랭엄 박사는 불의 통제와 요리의 발견은 이러한 두가지 변화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주장. 요리 덕에 음식을 씹고 소화하기 쉬워지고, 강한 턱이나 크고 튼튼한 소화관은 필요 없어짐. 대다수 종들에게 소화는 이동능력만큼이나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고비용 신진대사 활동이다. 신체는 특히 날 음식을 처리할 대 열심히 일해야 함. 고기에 들어있는 질긴 근육조직과 힘줄, 그리고 식물의 세포벽에 있는 아미노산과 지질, 당분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 사실상 요리는 우리 몸에서 내는 에너지 대신 불의 에너지를 사용해서 복합 탄수화물을 분쇄하고 더 소화가 잘 되는 단백질로 만듦으로써 대부분의 소화 과정이 신체밖에서 이루어지게 함
- 랭엄 박사는 인간가 비슷한 크기의 영장류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우리 인류의 조상들이 음식을 요리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는 아마 깨어있는 시간의 반 이상을 음식을 씹는 데 보내야 했으리라 추정. 침팬지는 고기를 즐겨먹으며 사냥도 할 수 있지만 음식물을 씹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므로 매일 사냥할 시간이 18분 밖에 안됐으며 날마다 고기를 먹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다. 랭엄은 먹을거리를 요리함으로써 인류는 하루에 4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게 됐다고 본다. 이 시간은 오늘날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는 데 쓰는 시간과 거의 같다
- 동물들은 틀림없이 다양한 감각기관을 진화시켜 가장 풍부한 에너지원을 찾아내도록, 익힌 음식의 냄새와 맛, 식감을 선호하도록 이미 길들여져 있을 것이다. 달콤함, 부드러움, 연함, 기름진 맛 같은 매력적인 특성은 소화하기 쉬운 열량이 풍부하게 들어 있음을 뜻한다. 태어날 때부터 고칼로리 음식을 선호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는 사실은 왜 인류의 진화론적 조상들이 즉시 익힌 음식을 즐기게 됐는지를 설명해줄 것이다. 랭엄 박사는 초기 인류가 불 요리의 장점을 어떻게 발견했을지 추측하면서, 많은 동물들이 불에 탄 흔적을 뒤지며 특히 불에 구워진 설치류와 씨앗을 먹었다는 사실을 지적. 그는 세네갈의 침팬지 예를 인용했는데, 이 침팬지들은 아프젤리아 나무의 씨앗이 화재로 인해 노릇노릇 구워진 후에만 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도 산불의 잔해를 뒤지며 맛있는 것들을 찾다가 이따금씩 운 좋게도 구워진 고기를 먹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으리라.
- 간밤에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변화들이 많이 일어났다. 열이 가해지면서 고기에서 수분이 상당히 빠져나가 식감이 변하고 맛이 농축된 것. 게다가 열이 껍질 바로 아래에 있는 상당량의 지방층을 녹여냈다. 지방의 일부가 뜨거운 숯 위로 떨어졌고 연기를 발생시키면서 다양한 방향족 화합물이 고기 표면에 결합해 새로운 풍미를 더한 것이다. 그러나 돼지를 그처럼 낮은 온도에서 익혔기 때문에 등에 있는 많은 지방이 천천히 녹아 고기로 흘러내리며 육질을 촉촉하게 만들어주고 진한 맛이 근육조직에 스며들었다. 지방이 없으면 근육자체는 거의 아무 맛도 없는 조직에 가까움. 근섬유도 변화하게 되는데, 근섬유를 결합해주는 콜라겐을 열이 분해하면 콜라겐은 젤라틴으로 변하고 부드러워져서 육질을 한층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 마이야르 박사는 아미노산을 당과 함께 넣고 열을 가하면 반응이 일어나면서 수백개의 새로운 분자가 생성되고 익힌 음식 특유의 색과 냄새를 입히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 마이야르 반응은 볶은 커피와 빵의 노릇노릇한 껍질, 초콜릿, 맥주, 대두, 그리고 튀긴 고기(먹는 기쁨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소량의 아미노산과 약간의 당으로부터 만들어진 수많은 복잡한 화합물)에 풍미를 더한다. 밤새 우리 돼지에 일어난 반응 중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캐러멜화이다. 맛이 나지 않는 자당이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열을 가하면 캐러멜뿐만 아니라 견과류, 과일, 알콜, 채소, 셰리주(에스파냐 남부에서 생산되던 백포도주) 그리고 식초 맛을 연상시키는 향을 지닌 100여가지의 화합물이 생성된다.
- 식품과학자이자 저술가인 헤럴드 맥기는 1990년 저작 호기심 많은 요리사에서 흥미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그는 두가지 갈색화 반응에 의해 생성되는 상당수의 방향족 화합물이 견과류나 풀, 흙, 채소, 꽃 그리고 과일에서 느끼는 풍미처럼 식물세계에서 발견되는 화합물과 비슷하거나 동일하다고 지적. 과일에도 당이 포함돼 있으므로 캐러멜화는 당이 어느정도 잘 익은 과일에서 발견되는 화합물을 만들어낼 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식물화학물질(식물 화합물)이 구운 고기같은 데에 들어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 종교적 의미를 떠나 희생제의에는 세가지 세속적 목적이 있는데 바베큐 요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친숙하게 느껴진다.
* 야만적으로 생각될 수 있는 육식행위를 통제하기 위해
*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시키기 위해
* 희생제의를 담당하는 사제계급을 부양하고 드높이기 위해
- 요리는 애초부터 하나의 프로젝트였다고 프랑스 고고학자인 카트린 페를레가 말했다. 요리는 개인의 자급자족에 종지부를 찍는다. 우선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면 협동해야 한다. 조리열 자체로도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며, 공동식사의 사회정치적 복합성이 새롭게 끼어든다. 공동식사란 진정 새로운 차원의 자기절제를 요하기 때문이다. 즉 고기가 요리될 때까지 참아야 하며, 다 익은 고기를 나눌 때 협동심을 발휘해야 함. 익힌 고기를 얻으려는 경쟁을 신중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리스와 구약시대에 고기를 먹는 유일한 때가 왜 신중하게 규정한 종교적 의식의 일부가 되는지를 설명해 줄 것이다. 희생제의 때가 아니면 저녁으로 견과와 베리류를 먹는다는 의미. 제의를 규율하는 규칙은 문화별로 다르고 어떤 행사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중 하나는 보편적이다. 즉 고기를 요리하고 먹는 데 규칙이 있어야 한다는 규칙은 어디에나 있다. 규칙이란, 소금처럼 고기에 적당히 곁들여 먹는 안주 같은 것이다. 고기를 먹는 장면을 따라가 보면 항상 동물이 동물을 먹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무법상태, 걷잡을 수 없는 탐욕, 야만성, 무엇보다 가장 무시무시한 식인행위가 동반되는 것이다.
- 냄비요리는 식물 (채소, 허브, 양념) 이 훨씬 많이 들어가고, 대체로 맛을 내기 위해 식물이 뜨거운 국물이라는 매질 속에서 다른 식물 및 고기와 결합할 때 일어나는 반응에 의존. 양파는 종종 이런 요리의 기본이 되며 당근이나 셀러리, 후추 또는 마늘처럼 향이 있기는 하지만 별로 인상적이지 않은 다른 채소들과 함께 재료로 쓰인다. 좋게 말하면 담백한 요리라 할 수 있는 냄비요리는 눈에 띄는 한가지를 부각하기보다는 밋밋한 여러가지를 한데 융합한 음식이다.
- 낮은 불에서 천천히 익히면 채소안의 긴 단백질 고리가 아미노산 구성요소로 분해되며, 그중 글루탐산처럼 음식에 우마미라는 감칠맛을 더해줌. 우마미는 이제 짜고, 달고, 쓰고, 신 맛과 더불어 제5의 맛으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짐. 그리고 다른 맛과 마찬가지로 혀에 우마미만을 탐지하는 수용기가 있다.
- '삶은 셀러리 성분을 이용한 치킨 브로스의 풍미향상'이라는 제목의 일본식품과학자팀의 논문에서 그들은 셀러리에서 발견되는 프탈라이드라는 휘발성 화합물군 자체는 아무 맛이 없지만, 치킨수프에 들어가면 단맛과 감칠맛을 더 잘 느끼게 해준다고 발표.
- 흔히 사용되는 여러 향신료와 마찬가지로, 양파는 요리한 후에도 남아 있는 강력한 항균화합물을 함유. 미생물학자들은 양파, 마늘, 향신료가 고기에 있는 위험한 세균이 성장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보호. 고기가 훨씬 쉽게 부패되는 적도에 가까운 지역일수록 이런 식물이 요리에 훨씬 자주 들어감. 냉장시설이 등장하기 전에 음식, 특히 고기가 세균에 오염되면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인도요리를 보면 고기요립돠 채소요리에 향신료가 적게 들어감. 순전히 시행착오를 거친 덕에, 우리 조상들은 인체에 해롭지 않게 보호해주는 특정 식물의 화학성분을 발견. 양파는 아주 강력한 항균성 식물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그런 식물의 맛이 좋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분자들의 맛을 후천적으로 학습한 효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향신채소를 이용한 요리는 단순히 식물의 화학적 방어체계를 극복해서 다른 동식물은 이용할 수 없는 에너지원을 이용하는 것인데 어쩌면 그 이상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훨씬 기발하다고나 할까. 양파와 마늘, 여러 향신료로 하는 요리는 일종의 생화학적 무술이다. 첫수는 식물의 화학적 방어체계를 극복해서 우리가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종은 공격하면서도 인간은 보호할 수 있도록 식물의 방어체계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 영국인들은 불에 고기를 구워먹는 것으로 유명한데, 예로부터 프랑스의 소박한 냄비요리를 경멸. 정체불명의 양념 밑에 숨어 있는 서민적 고기로 만든 음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질 좋은 목초지에서 소떼와 양이 1년내내 풀을 뜯을 수 있는 천혜의 환경에서 번영을 누린 영국인은 불만 있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고품질의 고기를 즐김. 상대적으로 덜 풍족하고 식량공급이 덜 넉넉한 프랑스인들은 남은 고깃덩이와 근채류 그리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국물재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서 주방에서 기지를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 음식을 냄비에 넣고 요리하는 방법을 배우기전까지 우리 인간은 음식에 소금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동물의 살은 우리 몸에 필요한 염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고기를 구우면 염분이 대부분 보존되기 때문. 사람들이 곡물과 다른 식물로 구성된 식단에 의존하고 음식을 대부분 삶아먹기 시작한 농경시대가 열리고 난 후에야 나트륨 결핍이 문제가 되기 시작. 소금은 바로 이때 귀한 생필품이 되었다.
- 냄비요리는 또한 아이들이 일찍 젖을 떼도록 하고 수명을 연장함으로써 인구증가에도 도움이 됨. 어린이와 노년층 모두 이가 없이도 냄비속의 부드러운 음식과 영양가가 풍부한 수프를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 그래서 냄비는 외부에 달린 입의 역할도 했다. 가정에서 물이라는 요소를 자유롭게 쓸수 있게 되면서 냄비는 사냥을 그만두고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학자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라는 냄비의 발명은 오늘날 전자레인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요리 역사상 마지막 혁신이라고 주장
- 감칠맛은 1908년 이래로 일본에서는 본격적인 하나의 맛으로 인식. 그해에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 교수가 일본에서 1000년 넘게 국과 육수의 주재료로 사용되어 온 마른 다시마 표면에 생기는 하얀 결정에 상당량의 글루탐산이 함유되어 있으며 이런 분자의 감칠맛이 독자적인 맛이라는 사실을 발견. 그는 이 맛을 우마미라고 일컫기로 했따. 오늘날 우리는 글루탐산을 글루탐산나트륨, 즉 MSG라는 염분 형태로 식품 성분표를 통해 만난다. 서구에서는 제5의 맛이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다가. 2001년 미국 과학자들이 인간의 혀에서 글루탐산 맛을 감지하는 수용체를 확인하게 되었다. 이제 감칠맛은 독자적인 맛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생선에서 발견되는 이노신과 버섯에서 발견되는 구아노신같은 뉴클레오티드 계열의 둘 이상의 다른 분자들이 글루탐산과 더불어 감칠맛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라는 사실도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 화합물들이 결합되면 감칠맛을 극적으로 높이며 시너지 효과를 내는 듯 하다. 포유류에서 확인되어온 네가지 맛과 마찬가지로, 감칠맛은 별개의 독립감각. 우리는 이런 맛을 인식하는 전용 수용체를 타고 나며, 이들 수용체는 특정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뇌의 여러 부분에 연결되어 있음. 이처럼 아무도 단맛을 학습하거나 단맛이 좋은 것이라고 인식할 필요는 없음. 이런 감각은 선천적인 것이다. 후각은 이와 상당히 다르게 작동. 인간은 야 1만가지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이들 각각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상당부분 개인적이고 문화적 학습의 결과. 한 문화권에서 맛있다고 생각하는 냄새가 다른 문화권에서는 정말 역겨울수도 있다. 타고난 맛과 학습된 냄새의 차이는 언어로 부호화되어 있는데, 확실히 냄새가 맛에 비해 연상 혹은 비유적 특성이 있음이 드러난다. 우리는 무엇이 다른 어떤 것 같은 냄새가 난다고 말하지만, 맛의 경우 단순히 달콤하다거나 쓰다고 말할 뿐이다.
- 감칠맛은 단맛, 짠맛, 쓴맛, 신맛에 비해 다소 신비스런 효과를 냄. 글루탐산트륨을 정제된 형태로 만난다면, 글루탐산이 특별히 맛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함. 혹은 거의 아무 맛도 안난다. 그 마법을 경험하려면, 감칠맛은 다른 재료와 어울려야 함. 소금과 약간 비슷하게 글루탐산은 음식맛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 같지만, 소금과는 달리 즉각 알아차릴 만한 자체의 맛은 없다. 감칠맛의 다른 신비는 많은 음식의 경우 맛뿐만 아니라 식감을 변화시키는 방식에 있다. 수프에 감칠맛을 첨가하면 먹는 사람은 이를 훨씬 영양가 있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수프가 더 진하다고 생각. 감칠맛에는 공감각적 특징이 있는 듯하다. 감칠맛은 국물을 물이라기 보다는 음식에 가깝게 만들어줌. 감칠맛을 내는 화학물질은 우리 입속에서 미각을 활성화시키고 바디감을 선사하면서 촉각을 발동시킨다.
- 감칠맛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알게된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 모유의 경우 이 특정한 맛이 진하며 상대적으로 다량의 글루탐산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 모유의 모든 성분은 당연히 진화론적 이유에서 생겨남. 모유에 들어 있는 모든 화합물은 어머니에게 대사부담이 되므로, 자연선택에 따라 유아에게 이롭지 않은 모유의 성분은 재빨리 생략해버렸을 것이다. 그러면 왜 많은 글루탐산은 몸에 이로운가? 브루스 저먼은 모유를 분석해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더 잘 이해하려 했으며, 글루탐산이 성장기 유아에게 중요한 영양소를 공급한다고 믿는다. 이 특정 아미놘은 맛을 내고 세포에 연료를 공급하며 자라나는 아이의 위와 장에 특별히 좋은 분자 구성요소가 됨. 포도당이 뇌에 이상적인 음식이듯, 글루탐산은 장에 완벽한 음식이며, 바로 그래서 우리는 글루탐산을 감지할 수 있는 미뢰를 위 속에 갖고 태어나는지도 모름. 모유에 들어 있는 글루탐산은 또 다른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단맛과 함께 엄마 젖에서 맛본 최초이자 가장 풍부한 맛인 감칠맛을 좋아하도록 길들이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런 선호에 대한 적응도가 높음. 우리는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이 필요한데, 감칠맛이 바로 그 단백질을 인식하고 찾아내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칠맛이 풍부한 음식 맛은 또한 아주 희미할지라도 우리에게 최초의 음식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프루스트적인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 역사적으로 요리는 2차대전 전까지는 사교적 활동에 가까웠다. 2차대전무렵부터 많은 이들이 교외로 이사하면서 아내가 직장에 다니지 않는 일반적인 핵가족을 이루었음. 그전에는 가족내 여러세대에 걸친 여성들이 함께 요리하는 일이 흔했다. 산업혁명 이전 남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집을 처음 나섰을 때, 남녀 모두 밥벌이를 위해 함께 일했던 것이다. 시장과 노동분업이 나타나기 전에 가정은 훨씬 자급자족적 단위였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전통적 작은 공동체에 속한 여성들은 곡식빻기나 빵 만들기처럼 인류학자들이 대화집단이라 일컫는 공동체 안에서 집단으로 음식준비를 했다. 오늘날에도 지중해 여러 마을에서는 공동 오븐을 찾아볼 수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적당히 부풀어 오른 빵 반죽과 구운 고기와 브레이스를 가져와서 요리가 오븐에서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 우리 종족은 무언가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현대 제빵의 역사는 빵을 굽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루기 어렵고 불확실하며 비교적 느린 생물학적 요소를 없애려는 일련의 단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첫단계로, 도정한 흰 밀가루를 사용. 통밀가루는 흰 밀가루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생물학적으로 활발함. 흰 밀가루는 주로 죽은 탄수호물로 구성된 반면 제분과정에서 제거된 씨눈과 겨에는 살아있는 세포가 함유되어 있음. 통밀가루에는 효소와 휘발성 유지가 풍부해서 더 잘 상하고 발효관리도 더욱 어려움. 1880년대 롤러 제분기가 발명되어 흰 밀가루가 널리 사용된 즈음에 상용 효모가 등장하여 제빵사들은 더욱 결정적 통제력을 얻게 됨. 이제 제빵사들은 수천년 동안 해오던 방식대로 다루기 힘든 정체불명의 균류와 세균집단에 의존해 빵을 발효시킬 필요가 없어졌고, 대신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한가지 종의 효모를 이용할 수 있었다. 사카로미케스 케레비시아이(맥주 효모균)라는 이 종은 맥주에서 발견되며 여러 세대에 걸쳐 선택되어 반죽에 가스를 발생시키는 역할에 가장 알맞게 발달되었다. 상용 빵 효모는 당밀로 단일 배양한 사카로미케스 케레비시아이를 정제한 뒤 씻고 건조해 가루로 만든 것임. 단일 배양한 다른 미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효모는 한가지 일을 예상대로, 훌륭하게 해낸다. 이 효모에 충분한 당을 공급하면 곧 다량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킴. 상용효모는 살아있는 생물이지만 행동은 단선적, 기계적이고 예측가능. 투입하면 산출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처럼 급속하게 인기를 얻은 이유는 이런 특성 때문이다
- 인간이 먹는 음식 중에서 밀보다 더 중요한 작물은 없다. 전 세계적으로 밀가루는 인간의 식단을 구성하는 칼로리의 20%를 차지. 역사적 기준에서 보면 낮은 수치다.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에 다르면 유럽 역사상 빵은 소농과 가난한 도시민들의 식단에서 칼로리의 절반이상을 차지했기 때문. 에이커당 더 많은 칼로리를 생산하고(옥수수, 쌀), 재배가 더 쉬우며(옥수수, 보리, 호밀), 영양소가 더 많은(퀴노아) 곡물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밀의 세계정복은 믿기 어렵고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성공비결은 바로 글루텐이다. 달리 말하자면 발효빵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라 할 수 있다.
- 다람쥐가 도토리를 묻는 것은 숨기는 게 아니다. 산성화하는 것.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토리가 소화가 잘 안됨. 새들은 씨앗을 삼켜버리는 것이 아니다. 새들은 먼저 씨앗을 모이주머니에서 발아시켜 효소가 미네랄을 풀어주게 한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먹이를 산성화해서 발아시키고 발효시켜서 몸의 에너지를 가장 적게 쓰면서 먹이에서 최대한의 영양을 뽑아냄. 이건 경제의 철칙이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자연에서 최대치를 얻어내는 것.
- 제분업자들은 밀을 빻을 때 낱알에서 가장 영양이 많은 부분(겨와 이것이 보호하는 씨눈, 즉 배아)을 꼼꼼하게 제거하고 영양소가 가장 적은 부분만 남은 밀가루를 판매하여 우리에게 먹인다. 사실상 그들은 씨앗의 가장 좋은 25%를 버리는 셈. 비타민, 항산화물질, 대부분의 미네랄, 건강에 좋은 기름은 모두 공장식 축산농장으로 보내져 가축의 먹이가 되거나 제약업계로 보내진다. 제약업계에서는 배아에서 일부 비타민을 복원해 우리에게 되판다. 흰 밀가루 섭취로 인한 영향을 받은 영양결핍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사업모델로서는 대단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터무니없다고 할 수 있다.
- 제분기라는 새로운 기술은 인류에게 은혜로운 기술로 환영받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보였다. 빵이 어느때보다 희고 가벼우며 값도 싸짐. 상용 효모는 이 새로운 밀가루와 찰떡 궁합이어서 빵굽는 과정이 크게 간소화되고 시간도 줄었다. 불안정한 씨눈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이제 밀가루의 보관 수명이 무기한으로 늘어났고 마침내 제분업계에서는 합병이 진행되었다. 대기업들이 나라 전체에 밀가루를 공급할 수 있게 되어 수많은 동네 제분소가 문을 닫았다. 흰 밀가루는 저렴하고 안정되고 운반이 수월해서 이를 전 세계에 수출해 산업혁명기간에 늘어나고 있던 도시 인구에게 공급할 수 있었다. 빵의 역사를 다룬 책에 의하면 흰빵에는 노동자와 고용주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예컨대, 섬유소가 풍부한 갈색 빵을 먹으면 노동자들이 화장실에 가려고 기계를 자주 떠나야 했으므로 생산에 방해가 되었다.
- 1880년대 롤러 제분기가 확산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흰 밀가루에 의존하는 인구중에서 영양결핍증과 만성질환이 놀라운 속도로 속출하기 시작. 세기가 바뀔 무렵, 프랑스와 영국의 의사 및 의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이 이 병들(심장벽, 발작, 당뇨병, 암을 포함한 소화기 장애)에 서구병이라는 이름을 붙임.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는 다량의 정제당과 흰 밀가루가 포함된 현대식 식단으로 옮겨가지 않은 지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병들이기 때문.
- 제거된 비타민을 흰 밀가루에 집어넣는 방법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불완전한 해결책이었다.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즈음에는 심지어 영양이 강화된 흰 밀가루보다 통밀가루가 영양면에서 우수하다는 사실이 보편적으로 인정되기는 했지만, 완전히 이해되지는 못했다. 통밀 식품을 많이 먹는 사람은 만성질환에 걸릴 위험이 줄고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체중이 적게 나가며 수명도 길다. 우리는 역학의 연구결과로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있다. 정확히 이유가 뭘까? 그레이엄이 믿었던 것처럼 식이섬유소의 은총 덕분일까? 만약 그렇다면 섬유소 덕분일까? 아니만 일반적으로 섬유소와 함께 들어 있는 다양한 식품화학물질 덕분일까? 어쩌면 비타민 때문일수도 있다. 밀가루에 비타민을 강화해도 모든 비타민이 첨가되지는 않음. 겨에 함유된 미네랄이나 배아의 오메가3 불포화 지방산 덕분일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아직 확실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가령 건강보조제나 통밀을 제외한 먹을거리에서 이 좋은 영양소들을 모두 적당량 섭취하는 사람들은 그냥 통밀을 많이 먹는 사람들만큼 건강하지 않다
- 결국 우리는 씨앗을 이야기하고 있다. 씨앗에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것이 모두 들어 있다. 과학자들의 이해력과 기술의 창조력은 아직 씨앗이 생명을 탄생시키는 비법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 낟알을 나누어 쪼개면 반드시 밀가루가 망가짐. 배아에서 겨를 분리하면 바로 끝이다. 배아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고 영양을 잃어버림. 당신이 알아야 하는 것은 자연은 낟알을 만들 때 살아 있는 체계 안에서 모든 부분이 서로 협력하도록 되어 있는 완벽한 패키지로 만든다는 점. 예를 들어 겨에는 산화방지 성분이 있어서 배아 속 기름의 산화를 막음. 하지만 겨와 배아가 함께 있을 때만 그런 작용이 일어남. 낟알을 분해하면 험프티 덤프티(영국 전래동요에 나오는 인물.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나 한번 부서지면 원래 상태로 되지 않는 물건을 의미)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을 수 없음.
-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구덩이 발효를 원시적이고 이상하며 비위생적인 방법이라 여기면서도 땅속이나 동굴에서 숙성시킨 치즈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함. 하지만 둘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실제로 구덩이 발효는 그릇에 식품을 담아 발효시키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도기는 흙을 더 깨끗하게 들고 다니기 쉽게 만든 것일 뿐 기본개념은 같음. 심지어 오늘날에도 한국인들은 아이만한 크기이ㅡ 김치 항아리를 뒷마당에 묻는다. 젖산균이 좋아하는 시원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임. 도기그릇은 모든 발효란 생명에 작용하는 중력의 방향을 우리 목적에 맞게 임시로 바꿔, 땅에서 음식과 음료를 훔치거나 빌려온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줌
- 식품을 발효시키면 풍미도 강해지는데, 이런 특성은 농경생활을 하던 인류에게 특히 요긴했다. 농업의 등장으로 인간이 먹는 음식의 범위가 극적으로 줄어들어 주로 탄수화물로 이루어진 몇가지 단조로운 기본 작물만 먹는 경우가 많았다. 발효식품을 이용하게 되면서 이러한 단조로운 식단에 1년 내내 풍미가 더해졌고 기본작물에 흔히 결핍되어 있는 비타민, 미네랄, 식물화학물질도 보충되었다.
- 우리 장에서 생활하는 미생물들의 전체 무게는 1킬로에 이름. 그러면 이런 미생물들을 이루는 500개 정도의 개별종과 무수한 변종들은 장에서 무슨 일을 할까? 진화 이론이 첫번째 중요한 단서를 제공. 이 미생물들은 대부분 우리에게 생존을 의존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숙주가 생명을 유지하고 병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갖가지 일을 함. 사실 우리와 그들이라고 말하기조차 부적절함. 최근 한 미생물학자의 연구에 우리는 건강을 '인간과 관련된 미생물총의 집합적 특성'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즉 개별 미생물이 아니라 집단의 작용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마도 장내 미생물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장벽, 즉 상피의 건강유지임. 테니스코트 넓이의 이 막은 피부와 호흡계처럼 우리와 몸밖 세계의 관계를 중재. 우리 몸에서는 일생 60톤의 음식이 위장관을 지나가면서 위험투성이의 세계에 노출됨. 그러나 많은 위험들이 장내 미생물총에 의해 대부분 현명하게 처리됨. 예를 들어, 결장 속의 발효 미생물들은 음식에 들어 있는 소화되지 않은 탄수화물(즉 섬유소)을 장벽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영양소인 유기산으로 분해함. 이 유기산들 중 일부는 낙산염처럼 장세포에 아주 좋은 에너지원이어서 소화관 암을 막아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다른 장내 세균들은 상피의 안쪽 표면에 달라붙는 능력을 발달시켰고, 대장균과 살모넬라균 같은 미생물들의 병원성 변동을 밀어내는 장벽에 구멍을 내지 못하게 함. 장에서는 많은 병원균들이 발견되지만 그곳에서 빠져나와 혈류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우리 몸에 병을 일으키지 않음. 어떤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 비해 쉽게 식중동에 걸리는 이유는 세균이 몸속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세균이 상피조직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장벽이 건강하게 제 기능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장내세균의 중요 역할의 하나임
- 출산의 순간은 평생 함께할 미생물들이 우리 몸에 처음 들어오는 시기. 우리 몸은 자궁 속에 있는 동안은 무균상태지만 여러 미생물이 활동하는 자연분만을 거치며 세균들에 노출됨. 그리고 이 세균들은 즉시 아기의 몸속에 대량 서식하기 시작.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들은 훨씬 위생적 과정을 거치므로 소화관에 미생물들이 사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자연분만을 거친 아기들과 같은 종류의 세균을 얻지 못함. 일부 연구자들은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들이 알레르기, 천식, 비만 발병률이 더 높은 원인이 이 때문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 우리가 아이들에게 마련해주려고 애쓰는 위생적 환경은 아마 이들 몸속의 미생물총에 피해를 주고 있을 것이다. 현재 널리 인정되는 위생가설은 아이들의 면역체계를 올바로 발달시켜 유익한 균과 해로운 균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세균에 노출시켜야 한다고 주장. 우리 몸이 그런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특정식품에 들어 있는 유익한 단백질을 치명적 위협으로 오인하고 반응하기 쉬움. 이 가설은 선진국에서 알레르기, 천식, 자기면역질환의 발병률이 상승하는 현상과 미생물이 많은 농가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알레르기가 적고 일반적으로 면역체계가 더 튼튼하다는 사실을 설명해줌
- 아마도 음식물은 장내 미생물 집단을 처음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임. 이 과정은 젖먹이기에서 시작되고, 수유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장내세균총을 형성. 어머니의 젖꼭지에는 젖산균 집단이 살고 있고, 젖 자체에도 아기의 장내세균총을 형성하는 데 한몫을 하는 세균들이 들어 있음. 하지만 모유가 아기의 미생물총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점은 처음부터 알맞은 종류의 세균이 장을 점령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것이다. 수년동안 영양학자들은 모유속에 복합 탄수화물인 올리고당이 들어 잇는 점을 의아하게 여겼다. 유아에게는 올리고당 소화에 필요한 효소가 없기 때문. 진화이론에서는 모유의 모든 성분은 자라나는 아기에게 도움이 되며, 그렇지 않은 성분은 모체의 귀한 자원을 잘못 이용하는 셈이어서 자연선택에 의해 사라졌을 거라고 주장. 그렇다면 모체는 왜 아기가 신진대사를 할 수 없는 영양소를 만들어낼까? 올리고당은 아기가 아니라 특정 장내세균에 공급되기 위해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리고당은 덜 바람직한 세균들이 발판을 마련하기 전에 최적의 세균종, 구체적으로 말하면 비피도박테리움 인판티스가 증식하고 자리잡을 수 있게 해준다.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식품인 모유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지만 특히 두가지 결정적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균은 좋은 식품이며, 세균에 대한 영양공급이 아기에 대한 영양 공급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 좀더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식단에는 프로바이오틱스(유익한 세균)와 프리바이오틱스(세균이 먹으면 좋은 성분)가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세기에 선진국 국민들은 이 원칙들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 로버트 더들리라는 생물학자는 우리가 알콜을 몹시 좋아하도록 진화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술취한 원숭이 가설을 제시. 과일은 우리 선조인 영장류의 먹이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익은 과일에 흠이 생기면 표면에 있던 효모들이 과육속의 당을 발효시키기 위해 에틸알콜이 생성됨. 이 휘발성 분자들은 공중으로 약간의 거리를 떠갈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워서 그 냄새에 강하게 이끌리는 동물들은 영양면에서 최고조에 달한 과일을 찾는 데 유리한 입장에 놓임. 가설에 따르면, 알콜의 향과 맛을 좋아하는 동물들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먹이를 먹고, 따라서 그렇지 않은 동물들보다 새끼를 더 많이 낳음. 하지만 알콜은 독소다. 애초에 효모가 알콜을 생성하는 이유가 다른 생물과의 먹이경쟁을 막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미생물들은 사카로미케스 속만큼 많은 알콜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효모는 영리하게 알콜을 듬뿍 생성하여 먹이들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못 먹도록 접시에 담긴 쿠키들을 모두 핥아놓는 어린아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 독소는 풍부한 에너지원이기도 하며 자연은 어떤 에너지원도 활용하지 않은 채 아주 오래 놔두지 않는다. 알콜을 해독하고 신진대사를 할 수 있는 종들이 나타나게 마련이고 실제로 그랬다. 대부분의 척추동물은 에틸알콜을 해독하여 연료로 연소시킬 수 있는 신진대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인간의 간에 있는 효소의 10분의 1이 에틸알콜을 대사처리하는 데 이용된다
- 취한 상태가 되는 은총은 잠시 제쳐두고라도 발효된 음료는 초기 인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벌꿀술과 맥주와 포도주는 물보다 안전했다. 이 음료들 속의 알콜이 물 속의 대장균을 죽이기 때문. 여타 발효식품과 마찬가지로, 알콜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원재료를 영양가가 높고 잘 부패하지 않으며 더 흥미롭게 만든다. 내 꿀물을 발효시킨 효모 역시 비타민, 미네랄, 단백질을 더해주었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다양한 식품을 사냥하고 채집해 먹던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곡물과 덩이줄기로 구성된 단조로운 식단으로 바꾸어 섭취하는 영양소가 줄어들었는데, 농사와 비슷한 시기에 본격적으로 빚기 시작한 맥주가 이를 보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비타민 B와 미네랄은 식단에서 육류가 줄어든 것을 보완해줌. 알콜은 아마 고대인들의 건강뿐 아니라 행복도 증신시켰을 것임. 알콜은 영양소는 물론 칼로리도 풍부함. 적당한 음주를 한 사람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과 과하게 마시는 사람보다 오래살고 여러 질병의 발병률도 낮음. 왜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오늘날 과학계에서는 알콜을 적당히 마시면 심장병, 뇌졸중, 제2형 당뇨, 관절염, 치매, 그리고 몇 종류의 암을 막아준다는 데 동의한다.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은 술을 마시는 사람보다 병과 조기사망의 위험이 더 높다
- 알콜은 효능이 뛰어나고 여러 용도로 이용될 수 있는 약품임, 유사 이래 약전에서 가장 중요한 약이었다. 말 그대로 만병통치약. 알콜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통증을 억제해주기 때문에 인류역사가 쓰여지는 동안 주요 진통제와 마취제로 이용됨. 또한 아편같은 식물성 약제들은 강력한 화학반응을 촉진하여 우리에게 작용하도록 하는 용매로 알콜이 필요. 실제 한때는 맥주와 포도주에 다양한 향정신성 식물(아편, 약쑥 등)을 더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맥주에 홉의 꽃을 넣는 것은 이런 유서깊은 전토으이 자취다.
- 80년대 펜실베니아 대학교 솔로몬 카츠라는 인류학자가 인간이 사냥과 채집에서 농업과 정착생활로 옮겨가게 된 동력은 식품이 아니라 알콜을 끊임없이 공급하려는 욕구였다는 흥미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달리 말하며, 카츠는 맥주가 빵보다 먼저 등장했고 사람들은 맥주맛을 보자마자 씨앗이나 과일이나 꿀을 모아 만들 수 있는 정도보다 더 많은양을 원했을 것이라고 추론. 증명하긴 어렵지만 그럴듯한 가설이다. 이 가설은, 왜 초기의 인간들이 농사보다 훨씬 적은 시간과 노력이 들고 더 편한 수렵과 채집생활에서 고생스럽고 변변치 않은 식사를 해야 하는 초기농경생활로 옮겨갔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드물고 찾기 어려움 발효성 당분보다는 야생에서 식량을 구하는 편이 훨씬 쉽고 안정적임. 숲에는 꿀이 드물고 그나마도 벌들이 철저히 지키고 있다. 1년 내내 발효성 당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재배뿐이다. 효모의 DNA를 분석해보면 사람이 길들인 변종의 등장은 적어도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감. 어쩌면 이보다 더 오래전의 일일지도 모른다.
- 남미에 살던 고대인의 유골의 탄소동위원소를 분석하자 맥주가 빵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가설을 은연중에 뒷받침해주는 새로운 증거가 나옴. 옥수수가 재배된 기원전 6000년 직후의 유물에 해당되는 이 유골들에서는 식단에 옥수수 단백질이 포함되었따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옥수수를 재배한 사람들이 이 곡물을 고형식이 아니라 알콜 음료로 섭취했음을 시사. 옥수수로 만든 알콜에는 단백질이 별로 함유되지 않아 뼈에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기 때문. 따라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먼저 알콜 음료로 마신 뒤에 옥수수를 먹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 많은 곡물씨앗과 마찬가지로 옥수수 알에는 당분이 풍부하게 함유됨. 하지만 사카로미케스 케레비시아이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는 아님. 당분들은 긴 탄수화물 사슬에 단단히 결합되어 있어서 작은 효모들이 뚫기 어려움. 씨앗이 이 귀중한 당분들은 온전하고 안전하게 지키고 있다. 식물에 싹이 트면 이용하기 위해서임. 그러나 어떤 효소들은 이런 탄수화물 사슬을 단순한 발효성 당분으로 쪼갤 수 있다. 최초로 맥주를 만든 사람들이 발견한 것처럼 이런 효소들 중 하나(프티알린)는 인간의 침 속에 존재. 최초의 맥주는 옥수수 알과 다른 씨앗을 씹어서 침과 섞은 뒤 이 혼합물을 통에 뱉어 발효시켜 만들었다. 지금도 남미 토착민들 중에는 이렇게 곡물을 씹어 치차라는 알콜 음료를 만든다. 치차는 옥수수와 침이 결합된 맥주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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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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