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러 심리학의 본질은 현재 버거운 삶의 쳇바퀴에 갇힌 우리에게 문제의 근원을 찾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오류를 발견하고 이를 바로 잡으라는 냉정한 조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자신의 실체를 바라보고 잘못을 인정하며 기꺼이 고치려는 진정한 용기다. 최근 아들러와 관련된 책 제목에 유독 용기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들러의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이라 부를 만하다.
- 우리 모두의 행동은 우리의 삶이 처한 상황에 대한 우리의 답변. 따라서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하고, 적합하고,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표현양식이다.
- 어떤 부모들은 자녀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 나도 그만큼 힘들었어. 그런데 나는 극복했다. 왜 애들은 못한다는 거지?" 또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느낀다. "난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내 모든 것은 다 용서되어야 해" 이 사람들의 표현에서 그들의 해석이 분명히 드러난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해석을 바꾸지 않는 한 자신의 행동을 결코 바꾸지 않음. 바로 이곳이 개인심리학이 결정론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어떤 경험도 성공이나 실패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다. 우리는 소위 트라우마라 불리는 경험의 충격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며 단지 그 경험에서 우리의 목적에 맞는 것을 만들어낼 뿐이다. 우리는 경험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경험을 미래의 삶을 위한 기반으로 선택할 때 언제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내포됨. 의미는 처한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결정된다.
- 열등한 신체기관, 과잉보호, 방임의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꿈과 연상은 그들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사람의 성격은 현실에서나 꿈에서나 같다. 오히려 꿈에서 사회적 압력은 둔해지고 저항과 숨김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 사람의 성격이 더 잘 드러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자아와 인생관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기억을 살펴보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기억이란 그에게 귀중한 무언가를 표상하기 때문. 그의 인생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이다. 기억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네가 기대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가 피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경험 그 자체보다 그 경험이 우리의 기억속에 살아 있고 나아가 삶에 부여한 의미를 구체화하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모든 기억은 일종의 기념품이다. 초기 유년시절의 기억은 그 사람의 독특한 인생관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보여주며, 특히 삶의 태도를 처음으로 형성한 환경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 우리는 분노에 대한 신체적인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며 경험을 통해 분노가 사람이나 상황을 지배하는 도구임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모든 육체적, 정신적 표현이 유전적 특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구체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이 특성이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집중된다. 이것이야말로 단 하나의 진실한 심리적 접근법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서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방향과 수준으로 감정이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불안, 용기, 유쾌함 또는 슬픔 등의 감정은 언제나 그 사람의 생활양식과 일치. 따라서 우리는 그 감정의 강도와 지배력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슬픔을 통해 자신의 우월성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취에 즐겁거나 만족할 수 없다. 비참할 때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어떻게 하면 그를 도울 수 있을까? 그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으며 여전히 영웅놀이에 빠져 있다. 우선 우리는 그가 영웅 역할을 통해 얻는 만족감을 경감시켜야 한다. 우리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너의 영웅은 진짜 어린 소녀들을 쫓아다닐까? 그건 어쩌면 영웅놀이를 나쁘게 흉내낸 것은 아닐까? 만약 네가 영웅이 되려면 더 크고 강한 소녀를 쫓아다니며 상대해야 해. 그러지 못할 바에야 아예 여자아이들을 쫓아다니지 말고." 이는 치료의 한 접근법이다. 즉 우리는 그의 눈을 뜨게 하고, 자신의 생활양식을 지속하고자 하는 열망을 없애야 함. 즉 스프에 침을 뱉으면 그는 더이상 자신의 스프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치료의 또 다른 접근법은 그의 용기를 북돋아 협력하게 하고, 유용한 삶에서 중요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유용한 삶을 살아갈 때 절대 패배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면 결코 무의미한 삶으로 도망치지 않기 때문이다.
- 현대의 많은 심리학자들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오해하고 있다. 그들은 이 이론을 아이가 어머니와 사랑에 빠지는 경향이 있고, 어머니와 결혼하고 싶어하며, 아버지를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가정. 하지만 우리가 아이의 발달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런 식의 설명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어머니의 관심을 독차지 하고 어머니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모두 제거하고 싶어하는 아이에게서만 나타남. 그 욕망은 성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머니를 복종시키고 완전히 지배하며 자신의 하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어머니가 응석받이로 키워주면 사람과 세상에 대한 동료애가 없는 아이에게서만 이 욕망이 드러난다
- 응석받이는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특히 어둠 속에 남겨지는 것을 무서워 함.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어둠 그 자체가 아니다. 어머니를 다시 자기에게 불러들이려는 시도로 그 두려움을 활용한다
- 그런 아이들은 어머니와 떨어지면 자신의 모든 감정과 육체적, 정신적 힘을 총동원해 어머니가 다시 자신에게 접근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일에 몰두한다. 고함을 지르거나 큰 소시로 어머니를 부르거나 잠을 자지 않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성가신 존재로 만듦으로써 어머니를 다시 자기쪽으로 불러들이려 노력할 것임. 교육자와 심리학자의 주목을 끌어온 한가지 방식은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개인심리학에서는 두려움의 원인을 찾는 일보다 두려움의 목적을 밝히는 것에 더 집중한다.
- 아이들과의 싸움은 언제나 지는 싸움이다. 싸움으로 아이들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 이런 싸움에서는 항상 약한 쪽이 이기는 법이다. 싸움을 통해서는 아이들의 애정과 협력을 얻을 수 없다. 협력과 애정은 결코 힘으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싸움 때문에 발생하는 상당한 심리적 긴장상태와 무모한 노력을 피할 수 있다.
- 아버지가 자녀를 처벌해애 하는 일을 떠안으면 안된다. 자녀에게 미치는 아버지의 영향력은 너무 크기 때문에 많은 자녀들이 아버지를 이상적 인물 또는 최대의 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점에서 아버지의 처벌, 특히 체벌은 언제나 아이들에게 해롭다. 두 사람의 우정에 기반하지 않는 어떠한 가르침도 잘못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자녀를 처벌해야 하는 일을 떠안는 경우가 비일비재함. 이것은 여러 이유로 불행하다. 첫째, 어머니 스스로 여성은 진정으로 자녀를 교육시킬 수 없다는 신념을 드러낸다. 즉 자신은 너무 나약한 존재여서 자신을 도와줄 강력한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것. 만약 어머니가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꼼짝 말고 기다려라" 라고 말한다면 그녀는 남자를 최고의 권위자로서 인생에서 진짜 힘을 가진 존재로 간주하도록 자녀에게 교육시키는 셈. 둘째, 처벌은 아버지와 맺는 관계를 방해하고 아버지를 좋은 친구보다는 두려운 존재로 만듬. 셋째 몇몇 여성들은 자신이 직접 자녀를 혼내면 자녀의 애정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까 두려워함. 그렇다고 처벌의 임무를 남편에게 위임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된다. 어머니가 자신을 도와줄 처벌의 집행자로 아버지를 소환했다고 해서 아이들이 어머니를 덜 비난하는 것도 아님.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이 자녀의 순종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아버지에게 이르겠다는 협박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 어머니에게 등을 돌린 첫째는 아버지와의 관계개선을 통해 동생이 태어나기 전의 유리한 입장을 되찾을 기회를 노림. 즉 아버지의 관심과 애정을 얻기 위해 노력. 그러면서 첫째 아이는 아버지를 좋아하고 종종 아버지 편에 서려고 함. 아이가 아버지를 어머니보다 더 좋아할 때는 이것이 두번째 단계임을 확신할 수 있다. 처음에 아이는 어머니에게 애착을 보이지만 어머니의 애정을 잃었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비난의 차원에서 애착의 대상을 아버지로 바꾼 것이다. 만약 아이가 아버지를 더 좋아한다면 우리는 그 아이가 이전에 비극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무시를 당했고, 그의 전체 생활양식은 이 감정을 중심으로 조직됨. 그 싸움은 오랜시간 동안 계속되며, 때로 평생에 걸쳐 지속되기도 함.
- 만약 교사가 아이의 관심을 끌고 싶다면 그 아이가 예전에 어떤 것이 관심이 있었는지 이해해야 함. 또한 그 아이가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 관심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신시켜 주어야 함. 만약 아이가 어떤 한가지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그 아이를 자극하기가 더 쉽다. 따라서 아이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그리고 어떤 신체기관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그 신체기관을 최고도로 훈련하는지 살펴보아야 함. 어떤 아이는 보는 것에, 어떤 아이는 듣는 것에 또 어떤 아이는 운동에 가장 큰 관심을 둔다. 시각적 유형의 아이는 지리나 미술처럼 주로 눈을 사용해야 하는 과목에 관심을 가짐. 교사가 수업을 할때 그들은 듣지 않으려 한다. 청각을 통한 주의집중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기때문. 시각적 유형의 아이들이 눈을 통해 배울 기회가 없다면 학업에서 뒤쳐질 것임. 흔히 그들은 능력이나 재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유전을 탓하게 됨. 그러나 이는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을 발견하지 못한 교사와 부모의 잘못이다.
- 교육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아이의 실제 한계 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가 생각하는 자신의 한계 때문에 발생. 만약 아이가 자신의 지능지수가 낮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아이는 희망을 잃고 자신은 성공할 수 없다고 믿음. 아이를 교육할 때 우리는 아이의 용기와 관심을 키우는 한편, 잘못된 해석으로 자신이 가진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정한 한계를 없애는 일에 집중해야 함
- 성적표 없이도 아이들은 서로의 현재 능력에 대해 잘 판단한다. 그들은 수학, 철자법, 그림, 운동 등에서 누가 가장 뛰어난지 알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자신을 매우 잘 분류할 수 있다. 그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실수는 자신이 더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보다 앞선 다른 아이들을 보고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고 믿는다. 만약 아이의 이 믿음이 매우 확고하다면 그 아이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환경을 탓함. 그는 타인과 비교해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계산하며, 자신은 언제나 뒤처진 상태로 남아 있다고 생각함. 대다수의 학생들도 학급에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계산한다. 언제나 선두그룹, 중간그룹, 또는 하위그룹에 속하기 때문. 그러나 이것이 선천적 재능을 얼마나 타고 났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됨. 이는 오로지 아이들이 스스로 설정한 한계와 낙천성의 정도, 그리고 활동의 영역을 보여줄 뿐이다. 꼴찌하던 아이가 변모해 놀라운 발전을 보여줄지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이 스스로 한계를 정할 때 어떤 실수를 범했는지 이해해야 함. 그러면 교사와 학생 모두 정상적 지능을 가진 아이의 발달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는 미신을 없앨 수 있다. 교육현장에서 행해지는 모든 실수 중에 유전적 특성이 아이의 발달을 제한한다는 믿음보다 더 나쁜 신념은 없다. 이는 교사와 부모 모두에게 잘못과 노력부족의 책임에서 벗어날 핑계거리를 제공하기 때문. 그러면 그들은 아이들에 대한 잘못된 영향력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
- 게으름이 부모와 교사를 향한 직접적 공격이 아닐 경우, 게으른 아이들은 대부분 패배를 두려워하는 야심에 찬 아이들인 경우가 많음. 성공은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용어이며, 아이들이 무엇을 패배로 간주하는지 알고 나면 놀랍기도 하다. 모든 이들을 앞지르지 못하면 스스로 실패자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비록 성공을 거두더라도 더 나은 누군가가 있다면 패배로 받아들임. 게으른 아이들은 단 한번도 시험을 치른 적이 없기에 진정한 패배감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들은 자신앞에 놓인 문제를 회피하고 다른 아이들과 경재앻야 하는 결정을 미룸.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조금 덜 게으르다면 자신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함. 이때 그들은 자신만의 축복의 나라로 도망친다. "내가 노력만 했다면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었어" 실패할 때마다 그들은 이런 위안의 말로 실패의 의미를 축소하고 자신의 자존감을 지킨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오직 게을렀을 뿐이다." 교사도 게으른 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한다면 우리 반에서 제일 똑똑한 학생이 될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그만한 명성을 얻을 수 있는데, 굳이 노력해서 그 명성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게으름을 포기하면 숨겨진 재능에 대한 그의 명성은 끝날수도 있다. 또한 그럴 경우 그들은 가능성으로서의 성취가 아니라 실제의 성취로 평가를 받게 된다. 게으른 아이들이 얻는 또 다른 개인적 이점은 조금만 공부해도 칭찬을 받는다는 것. 행동이 개선된다는 아주 적은 가능성이라도 보게 되면 사람들은 그들에게 더 많은 자극을 주고 싶어 함. 반면 성실한 아이들이 보여주는 그만한 수준의 노력은 주목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게으른 아이들은 타인의 기대를 먹고 산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유아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타인의 노력에 기대하도록 자신을 훈련시킨 응석받이 아이들이라 할 수 있다.
- 청소년기에 가장 자주 보이는 표현들은 모두 자신은 독립적이며 어른과도 동등한 존재이고 진정한 남성 또는 여성이 되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욕구에 기인. 이런 표현들이 어떤 방향을 택하는지는 그 아이가 성인이 된다는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달려 있다. 만약 성인이 된다는 것이 통제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면 그 아이는 구속에 맞서 싸우게 되며 이것이 그의 표현이 된다. 이 시기의 많은 청소년들은 흡연을 시작하고 욕을 하며 밤늦게까지 무리지어 밖에서 배회. 일부 청소년들은 전혀 예상치 못하던 반항아의 모습을 보이며, 그들의 부모는 그토록 고분고분 하던 자녀가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반항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의아해 한다. 그런데 이는 태도가 변한 것이 아니다. 사실 겉보기에 순종적이던 아이는 항상 부모에게 반항을 하고 있었다. 보다 많은 자유와 힘을 얻은 지금에서야 부모에게 자신의 적대감을 선언해도 될 것 같다고 느꼈을 뿐이다.
- 대개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보다 많은 자유와 독립을 보장받음. 부모들은 자녀를 항상 지켜보고 보호할 권리가 사라졌다고 느낀다. 부모가 계속 감시하려 들면 자녀는 부모의 통제를 피하려고 더 강하게 반항함. 부모가 자녀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자녀는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려고 노력함. 이 싸움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적대감이 발달. 그렇게 되면 사춘기의 반항이라는 전형적 모습이 전개된다.
- 청소년기 모든 위험은 훈련과 준비가 부족해 발생한다. 때로 성인의 삶에 준비가 충분하지 않을 때 아이들은 직업, 사회생활, 사회, 사랑과 결혼 문제가 다가옴에 따라 패닉 상태를 경험함.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모든 희망을 포기한다. 사회생활 관련해서는 수줍어하고 내성적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집에만 머물기도 함. 직업 문제에 관해서는 자신의 관심을 끄는 매력적인 일을 찾지 못하고 모든 일에서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단정. 사랑과 결혼 문제에서도 이성과 함께 있으면 당황해하고 이성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함. 누군가 말을 걸면 얼굴을 붉히며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함. 결국 삶의 모든 문제에 있어 완전히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누구도 그를 더이상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낌. 타인을 바라보지도 않고, 말도 걸지 않으며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일이나 공부를 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만의 공상에 사로잡혀 있다. 아울러 성적인 행위도 충분하지 못하다. 이것은 일종의 정신분열증이지만 완전히 미쳤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며, 단지 그 아이가 올바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더 나은 길을 제시할 수만 있다면 그는 완치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인생, 그리고 잘못된 훈련방식을 수정해야 하므로 이는 쉬운 일은 아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의미는 개인의 사적인 지혜가 아닌 과학의 관점으로 조망되어야 함. 청소년기의 모든 위험은 인생의 세가지 문제에 대한 적절한 훈련과 준비부족 때문에 발생. 미래를 두려워하는 청소년이 최소한의 노력만을 요구하는 방법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이 쉬운 방법은 인생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 만약 남자아이가 칭찬에만 목숨을 건다면 위험할 수 있지만, 자신감이 부족했던 여자아이는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발견하기도 함. 한편 그런 여자아이들은 아부를 잘하는 남자들의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하기도 함. 집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여자아이들은 단순히 자신들도 성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고 관심의 중심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희망하기 때문에 성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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