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대폰, 아이패드, 인터넷이 없는 넓은 자연 속에서 사흘이상 지내면 모든 연령층에 걸쳐 창의성이 50%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남. 그래서 예로부터 세계적인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 예술가들, 과학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넓은 공간에서 산책을 즐겼다. 공간이 넓어질수록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터득했기 때문.
- 운이 좋아지려면
* 시야를 넓혀라. 환경을 바꾸고 산책을 즐기는 등 공간을 넓혀라
* 눈과 귀를 열어라. 낯선 것에 저항하지 말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라
* 나의 범위를 국한시키지 말라. 새로운 음식, 장소, 생각에 마음을 열라
-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로움이다. 신비로움이 모든 진정한 예술과 학문의 근원이다. 신비로움에 낯선 사람이나, 경이로움에 숨을 멈춘 채 넋을 잃고 서 있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의 눈은 닫혀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
- 헨더슨 교수는 "협상하기 전에 상대가 공간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해보세요. 그럼 협상 성공률이 높아집니다." 라고 조언. 협상 전문가인 하버드대 우리 교수도 "중재자들의 가장 큰 역할은 협상하는 사람들이 시야를 넓히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문제든 마찬가지.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다면 마음속에서 그 문제와의 시간적, 물리적 거리를 늘리는 게 좋다. "내가 만일 천 킬로 떨어져 있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지금부터 50년 후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천국의 아인슈타인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만일 화성에서 외계인이 망원경을 통해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내 마음의 공간을 천 킬로 밖까지 넓히면 그만큼 많은 지혜가 쏟아져 나온다.
- 09년 미국 인구조사국 조사결과 연소득 31000불 이하에서는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 이상에서는 이웃들과의 소득격차가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즉 이웃들과의 소득을 비교했을 때 소득이 뒤질수록 자살률도 높았다. 이웃들의 소득이 10% 높아질수록 자살률도 7.5% 치솟았다. 파리 경제대학이 유럽의 23개국 3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역시 비슷했다. 사람들은 남들과의 소득격차에 몹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남들과 소득을 비교해보는 건 참 중요한 일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그들은 누구와의 소득격차를 가장 괴로워했을까? "가장 친한 친구와 소득격차와 벌어지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요" 그들은 가장 친한 친구와 소득격차가 벌어지는 게 직장내의 소득격차보다 두배나 더 고통스럽다고 응답했다. 시야를 가까운 친구나 이웃으로 비좁게 국한시킨 게 원인이었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비교대상을 확대할수록 고통은 점점 줄어든다
- 행복이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닫힌 문만 너무 오래 쳐다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하나의 문밖에 보지 못하는 건 시야를 좁게 고정시키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히면 다른 문이 보인다. 시야를 완전히 넓히면 모든 문이 보인다.
- "우리 사회에서 가장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뭘까? 하버드의 밴필드는 가문, 교육, 지능, 연줄 등에 답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장기간 조사를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답은 '시간적 시야'였다. 시간적 시야란 지금 뭘 할지 결정할 때 시간적으로 얼마나 길게 내다보느냐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시간적으로 수십년 뒤의 일을 내다보고 현재의 일을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 우리는 한꺼번에 왕창 공부하면 난 이제 할만큼 했고, 다 안다고 착각. 심리학자들은 이를 안다는 착각이라 일컫는다. 이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고서도 며칠만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악순환을 되풀이. 켄트 주립대학 심리학자 로슨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벼락치기도 당장의 시험성적엔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다. 기왕에 똑같은 시간을 투입해서 공부할 바엔 기억에 오래 남도록 미리 쪼개서 공부하는 게 훨씬 낫다." 평소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 하루에 한 단원을 전부 끝내는 것보다 며칠에 걸쳐 작게 쪼개어 공부하는 게 장기적으로 오래 기억됨. 공부하는 사이사이의 공간이 커질수록 그만큼 영구적으로 기억됨. 공간의 크기가 나의 크기다
-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하는 근원적인 이유도 역시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임. 런던대 마멋교수가 공무원들의 건강을 조사해보니 하위직일수록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무려 세배나 더 높았다.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위가 낮은 공무원들은 '난 윗사람의 감시를 받고 있어'라는 생각에 위사람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꼈다. 반면 지위가 높은 공무원들일수록 '난 내맘대로야. 난 자유로워'라고 생각. 이렇게 남의 시각에서 자유롭다고 느낄수록 심장질환 발생률도 뚝 떨어짐.
- 시야가 넓어질수록 나의 공간이 커져서 지혜가 늘어난다. 반면, 시야가 좁아질수록 나의 공간이 작아져서 기계적인 일을 잘한다
- 솔제니친은 수감생활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교도관들이 윽박지르며 온갖 욕설을 쏟아낼 때도 내 머리엔 시와 이미지가 물밀듯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난 자유롭고 행복했지요. 어떤 죄수들은 철조망을 뚫고 탈출하려 했지만, 내겐 어떤 철조망도 없었거든요. 그는 수용소에서 겪었던 10년간의 경험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나중에 이 기억을 바탕으로 '수용소의 군도'를 써서 노벨상을 받음
- 때로는 인생이 장애물로 가득한 미로처럼 이어질수도 있다. 그럴 때 육안으로 바라보면 아무 출구도 보이지 않음. 물질인 육안은 시야가 짧다. 반면, 마음의 눈은 물리적 한계를 초월해 모든 걸 다 본다. 시야가 무한하다. 위에서도 보고, 아래에서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모든 방향, 모든 시점에서 다 본다. 정말 출구가 안 보일까? 만일 출구가 없다면 그건 설계가 잘못된 미로이다. 인생의 모든 시련도 마찬가지다. 벗어나지 못할 시련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영혼이 영적 성장을 위해 스스로 설계해 놓은 시련이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혀 바라보면 인생의 가장 귀중한 기회가 최악의 시련을 가장해서 나를 찾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 정주영 회장은 '이 아침에도 설렘을 안고'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젊었을 적부터 새벽 일찍 일어났습니다 왜 일찍 일어나느냐 하면 그날 할 일이 즐거워서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의 기분은 소학교 때 소풍가는 날 아침 가슴이 설레는 것과 꼭 같습니다. 또 밤에는 항상 숙면할 준비를 갖추고 잠자리에 듭니다. 날이 밝으면 일을 즐겁고 힘차게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희망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설레는 마음은 잡념을 품지 않는다. 오로지 문을 확짝 열어놓고 결실을 맞이하길 기다릴 뿐이다.
- 진심으로 현실을 바꾸고자 한다면 근원적 진실을 이해해야 한다. 내 몸을 포함한 우주만물은 죄다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두뇌는 끊임없이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꾸만 허상에 속아 넘어간다. 그래서 아인슈타인도 "현실은 허상이다. 단지 대단히 끈덕진 허상일 뿐이다"고 했따. 우주는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만들어낸 무수한 허상으로 가득하다. 무수한 평행우주, 무수한 지구, 무수한 나가 존재한다. 이론물리학자 카쿠 교수의 말대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다른 우주에 펼쳐진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우주 속, 티끌만한 하나의 지구에서 고정된 생각, 고정된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고정된 현실을 살아간다. 우주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시야를 넓혀보면 넓히는 만큼 새로운 현실이 펼쳐진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보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가능성으로 잠재해있다가 관찰자가 바라보는 순간 현실로 나타난다"
- 노스웨스턴대 신경과학자 융-비만 교수도 창의성 문제를 직감으로 푼 사람들의 뇌파를 촬영해 보았다. 그 결과 직감이 떠오르기 0.3초전에 이미 두뇌에 고주파인 감마파 활동이 돌연 왕성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생각이 텅 비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영감을 얻으려면 생각부터 멈추어라"
- 스위스 과학자들이 사람들의 눈을 가린 채 음식을 먹도로 해보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평소보다 25%나 덜 먹었다. 눈을 감고 먹으면 음식의 맛이나 입안에서의 감촉 등을 제대로 음미하며 먹게 되기 때문. 즉 음식을 제대로 음미하며 먹을수록 꼭 필요한 만큼 먹게 됨. 완싱크 교수도 우리가 음식을 음미하지 않고 먹으면 훨씬 더 많이 먹는다는 사실을 여러 실험으로 입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을 보거나 잡담을 하면서 먹으면 혼자서 조용히 먹을 때보다 훨씬 더 먹음. 하지만 텅빈 무한한 마음에 완전히 맡기면 몸이 스스로 필요한 만큼만 알아서 먹는다
- 심리학자 스피탈니는 이렇게 말하낟. "골프선수들은 경기시간의 86%를 생각이나 감정과 싸우는데 보낸다. 경기가 제대로 풀리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풀릴 것인지, 기쁨이나 분노를 느끼면서 경기에 집중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골프 경기 중 86%의 시간이 경기가 아닌 것에 허비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골프실력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는 것. 공부나 일은 그렇지 않은가? 공부한다고 책상에 앉아 있지만 실제 공부에 완전히 집중하는 시간은 뜻밖에도 짧다
- 미시간대 프로스 교수와 오하이오 주립대 미슈포크스키 교수가 행한 실험에서 남한데 화나는 일을 당했을 때, 내가 당했다고 생각하면 참기 어렵다. 하지만, 화나는 장면을 나로부터 멀찌감치 분리시켜 남의 시각에서 바라볼수록 화가 쉽게 사라짐. 미슈코프스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처한 불행한 상황을 벽에 붙은 파리는 어떻게 바라볼까? 나를 벽에 붙은 파리라고 상상하면 내가 처한 불행한 상황에 파묻히지 않게 됩니다."
- 지구는 육신의 옷을 걸친 무수한 영혼들이 연기를 펼치는 연극무대. 모든 등장인물은 연기자들이다. 연극의 이야기도 각자의 영적 성장을 위해 짜인 각본대로 전개된다. 때로는 각본에 정해진 나의 배역이 너무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배역을 맡은 연기자는 연기자일 뿐. 진정한 나는 연극 전체를 멀리서 지켜보는 무한한 마음이다. 시야를 넓혀 멀리서 큰 눈으로 내려다보면 무수히 많은 '개체 나'들이 한 무대위에서 다 함께 연기를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됨. 따라서 내가 중간에 배역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 연극을 무사히 마치도록 해준다. 견디지 못할 시련은 존재하지 않음. 왜냐하면, 나 스스로 써 놓은 각본이기 때문. 내가 지금 겪는 가장 힘겨운 시련이 내 인생의 가장 귀중한 선물이 될 수 있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 (0) | 2018.08.01 |
---|---|
행복을 풀다 (1) | 2018.07.22 |
아들러에게 인간관계를 묻다 (0) | 2018.06.17 |
위대한 심리학자 아들러의 가족이란 무엇인가 (0) | 2018.06.17 |
사랑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 (0) | 2018.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