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에게 일어난 사건이 당신의 기대와 일치하거나 당신의 기대를 넘어서면 당신은 행복하다.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는 점. 사건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태도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 육체적 고통만큼 명확하지는 않지만 일상에서 겪는 감정적 고통도 생존에 유익한 역할을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 갓난아이가 혼자 오랫동안 방치되면 위험할 수 있다. 따라서 혼자 방치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아기는 겁먹고 자지러직 울며 베이비시터를 찾음. 성인의 경우에도 흔히 외로움이라 일컬어지는 고통스런 고독감은 우리에게 존재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면,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불안감도 우리에게 닥친 시험이나 프레젠테이션을 진지하게 준비하도록 자극한다는 점에서 유익할 수 있음. 죄책감이나 수치심은 신속히 사과하고 보상하게 유도함으로써 중요한 사회적 유대를 회복하게 한다는 점에서 유익할 수 있다.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으면, 상처의 강도에 따라 그 불편함에 몇분이나 몇시간, 심지어 며칠간 지속됨. 그러나 그 상처에 대한 생각을 멈추면 불편한 느낌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시간이 지나고 기억이 희미해지면 당신은 당시에 느꼈던 거북한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끌어낸다. 육체적 고통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면 자연스레 사라지고 소멸된다. 하지만 심리적 고통은 그렇지 않다. 심리적 고통은 지극히 사소한 것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잔존하다가, 상상 등 어떤 이유로은 당시의 고통을 되살릴 만한 이유가 제기되면 몇번이가 되풀이해서 다시 수면위로 떠오름. 결국 심리적 고통을 허용한다는 것은, 행복에 맞추어진 초기 상태에 변화를 주며, 불필요한 심리적 고통을 우선시하도록 재조정한다는 뜻. "나는 멍청하게도 친구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 나는 벌을 받고 고통을 받아 마땅해." 라며 순전히 상상으로 거짓 고통을 더해도 심리적 고통이 확대된다. 이처럼 부정적 방향으로 점증되는 내적대화는 우리를 그 사건에 옭아매며 심리적 고통을 더욱더 가중하고, 그 결과 우리는 불행의 늪에 깊숙이 빠져듬. 그러나 분명히 말하자면, 이때 우리가 느끼는 불행은 우리 주변을 에워싼 세계에서 비롯된 객관적 결과물이 아니다. 문제의 사건은 이미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심리적 고통에 시달린다. 한마디로 우리 뇌가 만들어낸 고통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심리적 고통은 우리가 자초하는 무익한 고통일 뿐이다.
- 우리 조상들은 가혹한 환경에서 살았던 까닭에 생존을 위해 투쟁 또는 도피반응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생존을 위한 기본원칙은 뭔가를 위협이라고 인식하고 나서야 위협으로 표지하는 것보다, 위협으로 인식되기 전에 위협으로 표지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 그것도 신속하게 판단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 결과, 우리 조상의 두뇌는 현실세계가 제공하는 정보가 진실을 정확히 반영한 결과가 아니더라도 생존을 위해 충분한 방식대로 해석하는 방향으로 길들여졌다. 인류의 뇌에 각인된 생존 프로그램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어떤 사건을 평가할 때 우리 뇌는 지나치게 조심하는 경향을 띤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려고 그런 경우를 머릿속에 그리며, 우리가 제한된 지력으로 신속하고 유효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실을 가공하는 경향되 띤다. 이런 습관이 결국 불행으로 이어진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이 모든 것이 괜찮게 여겨진다.
- 현대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일거리인 재미와 관련해서도, 우리를 행복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엄청나게 허황된 신화가 있다. 겉으로는 행복하게 보이는 것도 실제로는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행복과 재미는 다른 것이다. 파티와 음주, 식사, 과도한 쇼핑, 강박적 섹스 등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이 많지만, 이런 행위들은 중요한 문제로부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다른데로 돌리는 시도에 불과.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생존을 기계에 비유한다면, 좋은 기분은 부품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함.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필요하지만 즉각적 위협과 관계없는 행위를 유도할 때 좋은 기분을 활용한다. 이 기능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우리 뇌는 그런 행위를 하는 동안 세로토닌과 옥시토신 등 좋은 기분과 관련된 화학물질을 분비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행위를 더욱 자주 행하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생식은 우리 인간종의 생존에 필수적 부분임. 그러나 어린아이 없이 산다고 장래의 부모에게 즉각적 위험이 되지는 않음. 섹스에서 어떤 즐거움도 얻지 못한다면, 생존을 위해 무척 중요한 기능인 섹스도 이미 무시되고 간과됐을 것이다. 짝짓기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 즐거움을 얻는 과정에서 우리 인간은 생식하며 자손을 퍼뜨린다. 따라서 재미는 유익한 것에 불과하지만, 적잖은 사람이 힘들고 까다로운 생각을 두려워하며 그런 생각에서 탈출하려고 재미를 필사적으로 추구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재미는 마음의 고통을 무디게 한다는 점에서 진통제와 비슷. 그래도 재미는 행복을 모방하며 우리 뇌를 압살하는 끝없는 생각의 끈을 끊어버린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진통제다. 적어도 잠깐동안은. 하지만 즉각적인 즐거움이 희미해지면 곧바로 부정적 생각이 되살아나고, 심리적 고통이 다시 시작된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 끊임없이 되돌아가야 한다.
- 생각을 멈추면 우리는 행복에 맞추어진,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초기상태로 돌아간다
- 재미를 탈출수단으로 삼는 행위는 행복방정식을 풀지 않은 채 방치하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핵심 쟁점을 모르는 체하는 짓이다. 재미는 순간적으로 큰 즐거움을 주지만, 엄격히 말하면 진정한 행복을 가로막는 방해꾼이다. 그러나 재미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미 자체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지혜롭게 사용된 재미는 잠깐 동안이라도 마음의 평화를 허락해 주는 비상정지 버튼이다. 비상정지 버튼을 눌러 우리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쿵쾅거리는 목소리를 꼼짝하지 못하게 얼려놓으면 그틈에 이성적 판단이 개입할 수 있지 않겠는가. 따라서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이 부정적으로 변해갈 때마다 건전한 재밋거리, 이를테면 운동과 음악과 마사지 등을 즐기면, 부정적 생각의 흐름을 차잔할 수 있다. 건전한 재밋거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당신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재밋거리를 의미. 그런데 구체적 계획을 세워두고 건전한 재밋거리를 규칙적으로 즐긴다면, 재미를 훨씬 더 지혜롭게 활용하는 방법이 된다. 이때 재미는 감각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진통제가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섭취하는 행복보조제가 된다.
-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재미와 즐거움은 일시적 탈출상태, 즉 미인식 상태에 불과하다는 것. 따라서 탈출상태에서 지나치게 오랫동안 꾸물거려서는 안된다. 지속적이고 진정한 행복을 향해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면, 최대한 빨리 탈출상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 6가지 환상은 우리를 혼돈상태에 빠뜨리며, 세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우리능력을 저해함. 이런 상태에서 삶은 투쟁이 되고, 행복방정식을 해결하려는 대부분의 시도가 실패함. 우리가 환상을 받아들이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 따라서 삶은 잔혹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됨. 이 환상들은 꿰뚫어 보는 순간, 우리 앞을 가로막던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밝아짐. 그때부터 우리는 행복을 더욱 자주 경험하게 된다.
(1) 생각_머릿속의 작은 목소리
- 당신의 머릿속에서 중얼대는 작은 목소리는 당신이 아니다
- 뇌의 임무는 당신에게 고려해야 할 논리는 제공하는 것이다. 쓸데없은 생각이 끼어들더라도 누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인가?라는 근본적 문제를 망각해서는 안된다. 당신이 대장이다. 결정권은 당신에게 있다.
- 과제를 수행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재에 집중하는 능력이 필요. 현재에 집중하는 힘은 무척 유용한 기능이다. 객쩍은 공상에 불과한 허구적 생각, 즉 끝없이 이어지는 무의미한 생각은 엄격히 말하면 불필요한 생각이다. 더 가혹하게 말하면, 우리를 짜증나게 만들고 심리적 고통의 늪에 빠뜨리는 생각이다.
-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지 말라. 오히려 그 생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유심히 지켜보라. 어떤 생각이든 유심히 관찰하고, 그 생각을 그냥 내버려 두라. 다만, 그 생각이 당신은 아니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생각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법이다. 당신이 힘을 부여하지 않는 한 어떤 생각도 당신을 지배하지 못한다.
- 현재의 감정이 생긴 이유를 역추적하는 단순한 행위, 즉 현재의 감정을 유발한 생각이 무언지 추적하려는 행위만으로도 우리는 숨을 돌리며 냉정을 되찾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생각과 감정의 관련성에 집중하려면, 뇌에서 문제해결과 관련된 부분을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역추적은 끝없는 목소리를 중단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현재의 감정을 유발한 생각을 정확히 찾아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현재의 감정을 냉정히 주시하면, 감정이 종종 생각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고, 감정이란 것이 속을 계속 부글부글 끓이며 가슴앓이 할 정도로 가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 훈련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뇌의 반복적 패턴을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으며, 뇌의 속임수도 훤히 읽어낼 수 있다. 따라서 뇌가 속임수를 쓰면, 우리는 빙긋 웃으며 뇌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헤헤, 멍청한 짓은 그만해. 뇌야! 왜 나한테 더 나은 생각을 제시하지 않는거야?'
- 우리 뇌는 유혹을 피하지 못한다. 우리는 뇌의 이런 속성을 무척 유효하게 이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생각함으로써 뇌가 그것에 집중하도록 유도할 수 있음. 물론 선택가능성은 무한하다. 당신이라면 뇌에게 무엇을 생각하라고 명령하겠는가?
- 대부분의 명상기법이 아름다운 장미, 깜박이는 촛불, 우리 자신의 호흡 등 생각의 범위 밖에 존재하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명상은 생활방식 자체가 아니다. 명상은 어떤 생활방식을 우리에게 인도하려는 일종의 훈련이다. 그 훈련이 끝난 후에 우리가 평소처럼 온갖 생각으로 가득한 머리라는 생활방식으로 돌아간다면 명상이란 훈련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명상훈련의 궁극적 목적은 명상실 밖에서도 각성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목적이 성취되면 명상은 온종일 우리의 삶을 끌어가는 생활방식이 된다
- 매트릭스의 네오는 인류의 구원자로 선택받는다. 매트릭스가 그의 뇌에 심어놓은 가상의 이미지와 생각너머를 보게 되자, 그의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1과 0으로 변한다. 네오는 이런 변하를 절대적인 통찰력의 형성으로 받아들였고, 그런 통찰력은 주변환경에 대한 완전한 통제력으로 이어졌다. 그때부터 어떤 것도 네오를 해칠 수 없었다. 매트릭스의 에이전트들의 놀라울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 네오의 눈에는 슬로모션으로 보였고, 따라서 네오는 힘들이지 않고 그들의 주먹을 멈추고 그들이 쏜 탄환을 피할 수 있었다. 우리는 생각의 환상을 간파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 정도의 숙련도에 이르기를 바란다. 우리 행복은 주변세계의 조건보다, 그런 조건을 두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생각에 크게 좌우된다. 대사만이 아니라 생각에서 감정으로 발전하는 과정까지 차분히 주시하는 방법도 터득한 뒤라면 우리 눈앞의 모든 것이 1과 0의 조합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우리는 머릿속의 생각을 지켜볼 수 있으며,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는 힘은 결국 우리가 생각에게 부여한 힘에 불과. 네오에게 그랬듯이, 우리에게도 생각이 무척 느릿하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짐. 따라서 생각 하나하나를 주시하며, 생각의 공격을 재빨리 피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뇌에게 잔소리를 끊으라고 명령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더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힘을 향상하는 방법까지 터득한다면 우리가 완전한 통제권을 지닌 그런 단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는 뇌에게 주변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라고 명령할 수 있을 것이다.
(2) 자아_ 당신은 누구인가
- 아이는 영리하기 때문에 질책받는 행동보다 칭찬받는 행동을 더 자주 하려고 애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뒤섞이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 즉 페르소나를 만들어가기 시작. 내면의 자아가 실제로 어떤 인물이고 어떤 존재인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다. 그 이후로 죽을때까지 아이의 관심은 진짜 자아에서 겉으로 비춰지는 이미지로 옮겨간다. 대외적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욕망과 남들에게 주목받고 싶은 욕망이 뒤섞인다. 코를 후비는 행동은 남들의 관심을 끌지만, 장난감을 깔끔하게 정돈하는 행위는 별로 주목받지 못한다는 걸 아이는 재빨리 눈치챈다. 관심은 아이가 추구하며 원하는 것이다. 이즘음 방해꾼이 잉태된다. 관심파괴자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가 주목받겠어 라고 말한다. 우리는 대체로 10대에 이런 정체성 위기를 심하게 겪는다. 이때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압박감과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따라서 진짜 자아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또래집단에서 용인되는 속성에 더 가까워진다
- 나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자동차에 집착했다. 자동차의 예술적 공학기술이 내 호기심을 사로잡기도 했지만, 자동차는 나의 에고를 과시할 수 있는 좋은 도구였다. 나는 성공하고 교양있는 수집가라는 페르소나를 선택했던 것. 지금도 여전히 자동차를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자동차를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는 강렬한 욕구는 떨쳐버린지 오래다. 내 에고를 충족하려는 욕심때문에 내 열정이 더럽혀진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 성공하기 전까지, 내가 구입한 자동차들은 '나는 성공한 사람'인 척하고, 내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한편, 진정으로 성공한 이후로는 내 성공을 증명하기 위한 자동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든 자동차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에고의 받침대는 누구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
- 당신이 선택한 이미지를 인정받으려는 노력은 승산없는 싸움. 진짜 당신은 에고가 대외적으로 과시하려는 것과 다르기 때문. 따라서 사람들에게 진짜 당신인 것처럼 믿게 하려는 바람에서 더 나은 이미지를 끊임없이 모색할 수밖에 없으니 당신의 삶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그런 노력은 두가지 이유에서 필연적으로 실패함. 첫째로, 다른 사람들도 당신의 에고보다 자신의 에고를 염려하기 때문에, 또한 그들의 에고가 생존하느냐 않느냐는 당신의 에고와 비교한 결과에 좌우되기 때문에 당신의 에고가 인정받을 가능성은 무척 낮음. 그들이 옳다면 당신은 잘못된 사람이 된다. 당신이 대수롭지 않은 사람이 되면 그들은 넘치도록 중요한 사람이 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게 우월감을 느끼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다. 상대를 부정하고 비난하면 힘들이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상대를 하찮게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노력이 항상 실패하는 두번째 이유는, 그들이 인정하는 존재는 진짜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페르소나이기 때문. '푸키, 만세!'는 없고, '만세, 푸키와 막연히 비슷하게 생겼지만 누군지 확인할 수 없는 에고~'와 같은 것만이 기승을 부린다. 당신도 분명히 느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내면 깊은 곳에서 느낄 것이다. 이 때문에 승리가 공허하게 느껴지고, 진짜 당신도 무가치한 것으로 느껴짐.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그처럼 힘겹게 노력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오히려 자존감을 세우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3) 지식_ 당신은 무엇을 아는가
- 언젠가 아인슈타인은 "이론적으로 이론과 실제가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아인슈타인은 방정식들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중력효과를 조정하려고 어떤 상수를 삽입하는 엄청난 실수를 범한 적이 있었고, 그때 그는 주변의 지적을 받아들여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방정식을 수정하며 임의로 삽입한 상수, 즉 우주상수가 우주의 핵심적 진실 중 하나라는 것이 훗날 과학자들에 의해 입증 되면서 아인슈타인이 실수했다고 인정한 것이 오히려 잘못된 셈이 됐다
- 지식은 우리가 다른 모든 환상 뒤에 감춰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환상이다. 우리가 그럭저럭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고려하면 우리 지식이 몽땅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는 6가지 큰 환상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럭저럭 살아왔고 그 때문에 6가지 환상의 타당성을 따져보려는 욕구도 쉽게 사그라진다. 하지만 현명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당신이 평생 공들여 배웠던 것이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즐겁게 받아들여라.
- 지식은 결코 행복의 전제조건이 아니다. 우리가 지식을 축적하기 전의 상태, 즉 우리의 초기상태는 행복에 맞춰져 있었다. 결국 잘못된 지식이 대부분의 불행을 초래하는 근원이다. 우리는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이 정확한 것이라 확신하는 까닭에, 그런 지식을 행복방정식에 입력하는 데 사용.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실제로는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즈음이면, 행복방정식은 이미 기능을 상실하고 심리적 고통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뒤다.
- 간호 당신이 삶의 행로에서 일탈하면 삶이 당신을 가혹하게 자극한다. 그 자극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4) 시간
- 범세계적으로 보면 시간을 중시하는 문화권보다 사건을 중시하는 문화권이 수적으로 더 많다.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구의 기업인에 비교하면 게을러 보일 수 있겠지만,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남유럽과 인도, 아프리카의 기업인들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함께 협력해 일하는 데는 무척 뛰어남. 그들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성공방정식을 풀어가고 있는 셈. 그러나 성공방정식을 풀어가는 과정이 그들에게는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 시계는 끊임없이 째깍거리고 사건을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불교도는 항상 현재의 순간에 완전히 집중한다. 이런 무시간의 상태는 열반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 현재의 순간에 완전히 몰입해 살아갈 수 있다면, 영원한 낙원에서 살아가는 듯한 평화로움을 얻게 됨. 특히 영원이 흔히 무척 긴 시간으로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시간의 부재라는 걸 깨닫는다면,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됨. 결국 영원은 시간이 없는 상태를 의미
- 우리가 과거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현실에 살지 않고 생각에 파묻혀 살아간다는 뜻이다
- 대부분의 생각에는 시간이란 딱지가 딸려 있다. 대부분의 생각이 과거나 미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런 생각들은 불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판단하려면, 현재의 관찰을 과거에 행한 관찰에 비교해야 함 미래를 지레짐작하며, 미래가 현재보다 더 나쁠지도 모른다고 예견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현재와는 다른 상태를 갈망하는 까닭에 지루하고 따분한 것이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 순간을 다시 꾸며내려 하기 때문에 부끄럽고 창피한 것이다. 지금 손안에 없는 것을 원하고 욕심내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고 충실하면, 신체적 고통을 제외하고 누구도 현재의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고통받을 이유가 없다
(5) 통제
- 성공한 기업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이, 성공은 불쾌한 현실을 무시한다고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성공은 우리 삶이 불완전하다는 걸 인정하는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태도에서 시작됨. 행복은 환상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통제력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절망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행복과 직결되는 현실적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 모든 것이 결국 괜찮아 질 것이다. 어떤 것이 아직 괜찮아지지 않았다면, 아직 끝에 이른 것이 아니다
(6) 두려움
- 복어는 언제 배를 최대로 부풀리는가? 부풀어 오른 배는 용기의 증거가 아니라 두려움, 그것도 지독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증거다. 당신이 두려움을 인정하기 힘들다면, 당신은 자유로운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라. 나를 짓누르던 두려움을 하나씩 찾아내는 데 이 질문이 많은 도움이 됐다.
- 많은 사람이 심리적 고통에 반발하지 않고, 삶이란 워낙 그런 것이라 믿어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두려움에 따른 고통을 참고 견디지만, 대체 무엇에 맞서는 걸 두려워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두려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향한 첫 단계는 자신을 괴롭히는 두려움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숨거나 외면하지 말고, 두려움에 과감히 맞서야 한다.
- 두려움에는 긍정적인 면이 조금도 없다. 우리에게 활력을 주며 앞으로 나아가게 독려하는 것은 우리의 행동이지 두려움이 아니다. 두려움은 오히려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두려움은 우리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며,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걸 방해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최선의 성과를 끌어내는 게 아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오히려 불안감을 가중할 뿐이다. 우리를 성공으로 끌어내는 힘은 누가 뭐래도 근면이다. 부지런히 일하며 힘쓰는 걸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떤 형태로든 성공을 거둬도 다음에는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내 삶에서 최고의 순간을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삶의 여정에서 심지어 마음껏 축하할 시간에도 내 행복을 빼앗아 갔다.
- 삶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뭘까? 삶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우리가 경험해 보는 것이다. 삶은 우리 관심을 끌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삶을 밀어내려 애쓴다. 삶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제공하는 경험은 즐거운 것도 있고 배울 것도 있지만,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꼼짝하지 않으며 그런 경험들을 즐기지 못한다
- 미래는 당신이 기대하는 수준보다 더 좋을 것이다. 당신의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근거한 당신의 두려움에 부응했다면, 당신은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임. 이 모든 것은 인류의 역사가 증명해주는 사실임. 미래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런 걱정과 두려움 자체가 지금 우리가 괜찮은 상태에 있다는 증거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라. 우리 뇌가 미래에 대해 걱정할 여유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닌가.
- 우리 뇌는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를 주로 생각하는 경향을 띤다. 뇌가 이런 식으로 위협에 대비해 계획을 세우며 우리의 생존을 지켜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를 두렵게 하는 나쁜 것보다, 우리를 기다리는 좋은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으로부터 단숨에 벗어나며 크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 죽음은 가장 큰 두려움이다. 당신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는 법의 깨달음이 두려움을 직시하는 궁극적 형태일 것이다.
- 에크하르트 톨레는 삶의 비밀은 '죽기전에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야 모든 것이 사라진 어느날, 당신이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을 테고, 따라서 잃을 것도 전혀 없다는 걸 깨달은 상태에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 7가지 맹점은 우리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법에 영향을 끼치며, 현실세계를 정확히 인식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방해. 7가지 맹점이 뇌의 비관적인 성향과 결합되며 인간의 생존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7가지 맹점은 행복방정식을 풀어내려는 우리 노력에 간섭하며 우리를 쓸데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한다. (여과, 추정, 예측, 기억, 분류, 감정, 과장)
- 수천년 동안 우리 뇌는 7가지 놀라운 특성, 즉, 여과, 추정, 예측, 기억, 분류, 감정, 과장을 갖추어 왔따. 그렇다. 이런 성향 덕에 인간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극단적으로 적대적 환경에서 거주했기 때문에, 이런 특성들이 야기하는 불편함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는 게 당연한 반응이다. 문명이 발달한 후로 우리는 호랑이를 도시에서 쫓아냈고, 사냥터는 일터와 사교장과 쇼핑센터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7가지 특성에 계속 의지했다. 하지만 우리는 완전히 달라지 환경에서도 7가지 특성이 여전히 효과적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은 적이 없었다. 나사못을 죄는 데 사용되는 드라이버가 우리 눈을 찌르는 데도 사용될 수 있듯이, 과거에 우리를 지켜주었던 특성들이 이제는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맹점으로 바뀌었고, 특히 과거의 성향을 버리지 못한 뇌의 핵심적 특성과 결합되는 경우에는 우리를 불행의 늪에 내던져버린다.
- 편도체는 부정적 경험을 탐색하는 데 자신의 뉴런 중 대략 3분의 2를 사용. 또한 뇌가 나쁜 소식을 찾기 시작하면, 부정적 경험은 즉시 장기기억에 저장되지만 긍정적 경험은 우리 의식에서 12초 이상 정체하는 경향을 보임. 긍정적 경험의 경우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 행복한 사건은 생존에 어떤 이득도 주지 않으므로 우리 뇌는 행복한 사건을 무시하는 경향을 띤다. 이런 이유에서도 우리 머릿속 대화는 부정적 성향을 띠게 된다.
- 우리가 맞닥뜨리는 부정적인 것들은 항상 긍정적인 것에 몰입해야 한다는 규준을 위배한 예외적인 것도 편의상 무시하는 경향을 띤다.
- 여과 : 우리가 보는 세상의 모습은 항상 불완전하다. 우리 뇌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집중하려고 진실의 적잖은 부분을 생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인지하는 것은 주로 여과된 것이며, 결국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은 진실의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 추정 : 뇌가 결정을 내리려면 논리정연하고 명료한 정보가 필요하다. 따라서 뇌는 진실의 대부분을 걸러낸 다음에는 빠졌을 법한 정보를 추정한다.
- 우리 뇌는 부정적 경향을 띠며 우리 생존을 우선시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우리를 슬픔이나 걱정에 몰아넣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꾸미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진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추정은 뇌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추정은 진실이 아니다.
- 예측 : 우리 뇌는 추정하며 빈칸을 채운다. 그런데 가장 큰 빈칸은 무엇일까?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다. 미래는 수많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미래는 어떤 부분도 확실하지 않지만,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우리 뇌가 멈추지는 않는다. 우리는 뻔뻔스럽게 빈칸을 채운다.
- 예측은 뇌가 가공하는 미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 예측은 아직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따라서 예측은 진실이 아니다.
- 기억 : 우리 뇌는 과거를 되돌아보며, 현재 사건에 대한 인식과 과거의 기억을 뒤섞는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어떤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우리가 과거에도 그 일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라 추정한다. 이런 편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과거에 그 일을 시도할 때의 환경은 지금과 무척 달랐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무시한 때문이다. 과거에 힘들었다는 기억으로 현재 상황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라는 현실에 근거하지 않는 결정이 내려진다.
- 우리는 기억을 과거 사건의 보관소로 생각. 물론 과거의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지만, 기억은 우리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건에 대한 기록일 뿐이다. 우리 생각은 우리 뇌의 맹점 때문에 항상 왜곡되기 때문에 진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현재의 사건이라는 순수한 현실에 과거의 기억을 덧붙이며 이야기를 꾸민다. 과거의 기억 자체가 부정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뒤섞기는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우리는 뒤섞은 결과를 진실로 여긴다.
- 분류 : 기억은 과거의 사건들을 진실에 덧붙인다. 분류도 과거에 기초한 것이지만, 그 영향력은 기억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분류는 관련된 특정한 사건을 기억하지 않고, 단순한 꼬리표의 형식을 띤다. 우리 뇌는 무엇이든 판단하고 분류하며, 맥락과 세부사항을 배제한 채 그런 분석의 결과를 간략히 부호화한다. 우리 뇌는 이런 분류를 활용해 신속히 결정내릴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정확성을 희생한다.
- 감정 : 감정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지만, 감정과 논리가 뒤섞이면 우리 판단이 흐트러진다. 대부분의 결정은 논리에 근거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우리 행동은 감정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 우리 마음에 감정이 끝없이 밀려온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생각만큼 이성적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플라톤의 대화에서, 파이드로스는 이성을 '말의 격분한 감정을 적절히 다스리는 마부'에 비유했다. 감정을 불신하며 이성적 합리성을 숭배하는 문화를 구축한 서구인의 성향을 반영하는 비유다. 우리는 특히 직업적 관계에서 논리를 중시하고 감정을 억누르라고, 감정이 솟구쳐 올라도 감정을 감춰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얄궂게도 우리는 여전히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는 무엇보다 감정에 휩쓸려 결정을 내리고, 그런 결정을 뒷받침하는 온갖 자료를 수집한다는 현실을 은폐한 채 살아간다.
- 과장 : 우리 뇌의 엄청난 고집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해야 마땅하다. 우리 뇌의 가장 확고한 원칙은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임. 따라서 우리 뇌는 조치를 취하라고 우리를 설득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인식을 과장하며 우리 관심을 끌어당긴다.
- 진실에 뭔가가 덧붙은 것이나, 진실에서 뭔가가 빠진 것이나, 진실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 우리 뇌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말이 터무니 없는 군소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그것은 진실인가?'라는 질문을 필요한 만큼 끊임없이 자신에게 제기해야 함. 우리 뇌가 어떤 사건을 사실을 토대로 서술할 때까지, 다시 말하면 진실 외에도 어떤 것도 덧붙이지 않고 이야기할 때까지 '그것은 진실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라
- 대부분의 경우 우리 삶에서 유일하게 잘못된 것은 우리가 삶에 대해 생각하는 태도다. 우리가 세상을 존재하는 그대로 본다면 행복방정식을 정확히 해결할 수 있다. 행복방정식을 정확히 해결하는 횟수가 잦아지면, 우리가 사건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기대치를 현실적으로 설정한 까닭에 삶의 사건들이 기대치를 거의 언제나 충족한다는 것도 알게될 것이다.
- 5가지 궁극적인 진실은 삶이 예측한 대로 항상 진행된다는 걸 깨닫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이다. 5가지 궁극적 진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행복방정식을 최종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 삶이 예측한 대로 항상 진행된다는 걸 깨닫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이다. 5가지 궁극적 진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행복방정식을 최종적으로 완전히 풀어낼 수 있다. 삶이 어떻게 진행되기를 바라지 말고, 삶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런 지혜를 갖춘다면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사건도 항상 우리 기대에 부응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삶의 우여곡적을 충분히 예상하며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기 때문에 그런 우여곡절이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진실에 근거한다면 생각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것도 우리행복을 방해하지 못하는, 더없이 평화로운 상태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외적인 사건에 영향을 받는 행복상태를 넘어, 영원히 환희를 누리는 상태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1) 지금
- 인식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초기상태는 인식단계에 맞춰져 있다. 초기 상태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존재와 행위를 번갈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어느 쪽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이 존재보다 행위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함. 이런 현상은 현대 세계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침마다 눈뜨기 무섭게 삶의 현장에 뛰어들며, 삶의 현장은 거의 행위로 이루어짐. 급속도로 흘러가며 행동을 재촉하는 생활방식은 인간의 초기상태와 배치됨. 비유해서 말하면, 묵직한 구두를 신고 물속에서 지내는 것과 비슷.
- 많은 명상기법이 우리의 인식공간의 범위로 네 방향을 언급함. 우리가 어느 쪽으로 관심을 쏟더라도 우리 인식을 온통 독차지할 만한 주제를 무한히 발견할 수 있을 것임. 네 방향은 다음과 같다.
* 외부세계 : 입력된 감각자극을 통해 우리는 주변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감지
* 몸의 내부 : 내면으로 관심을 돌리면 자신의 몸을 인식할 수 있다. 고통과 자극, 호흡과 심박 등을 인식하게 됨. 몸의 곳곳에 관심을 돌리며 모든 곳에서 생명의 기운을 느껴보라
* 생각과 감정 : 인식력이 충분해지면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생각과 이야기를 관찰할 수 있다. 머릿속의 생각과 감정을 유심히 지켜볼 수 있다면 자연스레 배출해 낼 수도 있다
* 나머지 것과의 연결 : 순수한 인식력이 최고수준에 이르면, 존재의 나머지 것과 연결을 시도함. 이런 연결짓기의 결과로 파도를 향한 사랑, 나비를 향한 동경, 세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한 연민 등이 생겨남. 이런 연결짓기는 외부세계에 대한 감각적 지각도 아니고, 우리 몸에 대한 느낌도 아니며, 생각이나 감정도 아니다. 우리가 커다란 공동체의 일원이며, 그 공동체는 우리가 개별적으로 경험하는 세상 너머까지 뻗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순수한 연결짓기다
- 주의력을 방해하는 것을 없애라. 조용한 시간이 주어지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지 마라. 퇴근할 때는 라디오를 켜지 말고, 집에서는 텔레비전 앞에 앉지 마라. 아무것도 하지말며 시간을 보내라. 일과표에 '나만의 시간'이라는 약속을 추구하라. '나만의 시간'은 당신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짧은 휴식을 의미.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라
(2) 변화
(3) 사랑
(4) 죽음
- 좋든 싫든 간에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이미 예약돼 있다. 예약된 시간이 언제인지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죽음이 예약된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있는 시간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5) 설계
- 뭔가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하지는 않는다
- 우리 우주는 복잡하기 그지 없으며, 우리는 종종 세세한 것에서 허우적거린다. 아인슈타인조차 인간의 이해력 한계를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따. "창조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는 여러 언어로 쓰인 책들로 가득 채워진 거대한 도서관에 들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처지입니다. 그 아이는 누군가가 그 책들을 썼다는 것을 알지만 어떻게 썼는지는 모릅니다. 또, 그 책들이 쓰인 언어들도 모릅니다. 아이는 책의 배열에 미스터리한 질서가 있으리라 짐작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조차 하느님을 바라보는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요?"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 (0) | 2018.09.20 |
---|---|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 (0) | 2018.08.01 |
왓칭 2 (0) | 2018.07.14 |
아들러에게 인간관계를 묻다 (0) | 2018.06.17 |
위대한 심리학자 아들러의 가족이란 무엇인가 (0) | 2018.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