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리학의 주요쟁점은 대개 적응에 관한 논의. 적응을 논의하는 이유는 인류조상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번식이익을 얻었기 때문. 그중 몇가지는 이 책에서도 거론한다. 하지만 그 밖에 인간정신의 다양한 측면은 진화의 부산물일 뿐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용어를 빌리자면 스팬드럴(건축물에서 인접한 두 아치 사이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삼각형 모양의 공간. 어떤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을 의미)인 셈이다. 쾌락에 관해서는 특히 맞는 말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포르노를 즐기지만 매력적인 남녀가 벌거벗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본다고 해서 번식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포르노의 유혹은 우연한 사건이다. 벌거벗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인간이 진화하면서 발생한 부산물일뿐이다. 마찬가지로 쾌락의 깊이에 관한 논의도 대개 우연한 사건과 연결된다. 본질주의가 진화해온 이유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였지만 이미 본질주의를 획득한 지금에 와서는 본질주의가 생존이나 번식과 상관없는 방향으로 우리의 욕구를 이끌어간다.
- 사물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이나 진실한 본성이 존재하고 숨은 본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개념이 본질주의다. 존 로크는 본질주의를 이렇게 정의. "모든 사물의 진정한 존재이고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이다. 다라서 진실한 내면이지만 일반적으로는 ... 알려지지 않았고 겉으로 드러난 자질의 기반이 되는 성질을 본질이라 할 수 있다."
- 역겨움이라는 정서는 사람이 음식을 좋아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역할을 함. 역겨움은 상하고 오염된 음식, 특히 썩은 고기를 피하기 위해 진화해온 정서다. 참마, 애플파이, 감초, 바클라바(근동지방 가자), 건포도, 통밀파스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개, 말, 쥐와 같은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고기 이외의 음식에 대한 혐오감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치즈나 우유처럼 동물에서 나온 음식이거나, 모양이나 식감이 동물과 비슷한 음식이다.
- 족 외 식인풍습은 원래 건강한 사람을 먹는다는 이점과 더불어 적을 공포에 몰아넣는다는 부수적 이익 때문에 시작된 듯하다. 하지만 족 내 식인풍습의 기원을 달랐을 것이다. 노인을 갈아 먹으면 가시적 이점은 없다. 따라서 식인풍습을 행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는 편이 낫겠다. 사랑하는 사람의 보이지 않는 본질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먹는 것이다.
- 신호이론은 다양한 현상에 적용됨. 현대미술작품을 구입하는 사람도 신호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쁜 그림은 누구나 구입해서 감상할 수 있지만 추상화를 수백만 불이나 들여서 구입하려면 돈도 있고 안목도 있어야 함. 신호는 찾으려고 보면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나는 비싼 사립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치는 이유도 신호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립학교에서는 라틴어가 힘들여서 공부할 만한 과모이라고 강조하지만 라틴어가 적당히 어렵고 권력을 연상시키는데다 써먹을 데가 전혀 없어서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이상적 수단이기 때문에 많은 사립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라틴어가 다른 언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되고 지능을 개발하는 데 효과적인 과목이라고 밝혀진다면 공립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칠 것이다. 그러면 사립학교는 라틴어 수업을 없애고 하루에 한 시간씩 산스크리트어나 서예를 가르칠 것이다. 신호는 주로 남에게 보내는 것이고 신호의 전략적 역할이 바로 과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신호를 보낼 때도 있다. 우리는 특별히 물건을 살 여력이 되고 관심도 있는 부류하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페리에 탄산수를 사 마시는지 모른다. 광고 문구처럼 난 소중하니까.
- 약한 이론이 옳다면, 다시 말해 혀에 닿는 음식의 맛을 느끼고 정보가 맛에 대한 의견에 영향을 준다면 식초를 넣었다는 설명을 언제 듣는지는 중요하지 않음. 식초를 넣으면 맥주맛이 나빠진다고 생각한다면 맥주 맛에 대한 지각이 달라짐. 그러나 강한이론이 옳다면 음식에 관한 정보를 언제 습득했는지가 중요해짐. 맥주를 맛보기 전에 식초가 들어있다는 말을 들으면 맥주가 맛이 없다고 지각한다. 정보가 경험에 영향을 주기 때문. 하지만 맥주를 마신 다음에 정보를 들으면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맛을 본 뒤이므로 맛에 대한 정보가 경험 자체는 건드리지 못한다. 현실에서는 강한 이론이 승리한다. 맛없는 맥주로 기대하고 마시면 맛이 없어진다. 하지만 이미 맛을 본 다음에는 정보를 알아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 인간이 고통을 즐기는 이유에 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다. 아드레날린이 분출해서 쾌락이 일어날 수 있다. 어쩌면 강인한 남성성을 드러내는 신호일 수도 있따. 고통이 일어나면서 진정제가 분비되는데 진정제에서 얻는 황홀감이 낮은 고통수준을 압도하는 것일 수 있다.
- 인간은 음식을 먹을 때도 늘 고통을 경험한다는 이론이다. 누구나 혐오식품을 즐긴다. 커피나 맥주나 담배, 고추를 처음부터 맛있게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통에서 쾌락을 얻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다른 동물은 다른 음식이 있으면 고통을 주는 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철학자들은 인간 고유의 특징을 언어, 이성, 문화에서 찾는다. 인간은 타바스코 소스를 좋아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 평범한 얼굴이 호감을 주는 이유를 정확히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정상에서 벗어나면 좋지 않다는 논리에서 평범한 얼굴은 건강을 의미할 수도 있다. 평범한 얼굴은 이형접합, 곧 유전적 다양성을 의미. 역시 유전적으로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평범한 얼굴이 말 그대로 보기 편해서일 수도 있다. 평범한 얼굴은 평범하지 않은 얼굴보다 시각처리 절차가 단순하고 사람은 처리하기 수월한 이미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아직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평범한 얼굴이 호감을 주긴 해도 빼어난 얼굴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가장 매력적인 얼굴은 평범하지 않다. 어쩌면 평범한 얼굴이 특출하게 매력적이어서가 아니라 평범하지 않은 얼굴이 매력적이지 않을 위험이 높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다윈은 1896년에 인간의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특징들 가운데 하나로 노래나 음악에 대한 사랑을 언급했다. 아직도 설명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인간이 물, 섹스, 온기, 휴식, 안전, 우정, 사랑을 즐기는 이유는 명확하다. 있으면 좋고 생존과 자손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일정한 운율로 이어지는 소리를 즐기는 이유는 무얼까? 세계 어디서든 사람들이 노래와 춤에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는 이유는 무얼까? 아마존 강의 메크라노티 부족에서는 여자들이 하루에 한두 시간씩 노래하고 남자들은 밤에 두시간 이상 노래한다. 근근이 끼니를 때우면서도 노래는 몇 시간씩 부르는 것이다.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과잉행동처럼 보여서 진화생물학을 버리고 신의 존재를 믿고 싶을지도 모른다. 커트 보네거트는 묘비에 이렇게 새겼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필요한 오직 하나의 증거는 음악이다."
- 음악은 사회적이다. 음악적 취향은 인생에서 특정한 사회집단과 어울리는 시기에 형성됨. 이때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현대 서구사회에서는 이 시기가 늦게 찾아온다. 사폴스키의 연구결과에서는 대략 십대 후바이나 이십대 초반으로 나타낫따. 젊은 이들은 최신 음악을 선호한다. 동시대 다른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싶기 때문이다. 타일러 코웬은 이렇게 지적한다. "흘러간 음악을 듣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남들도 이미 좋아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남들이 바로 부모일수도 있다."
- 어떤 사건은 심리적 정화과정을 자극해서 공포와 불안과 슬픔을 일소하고 기분을 고양시키고 편안하게 만들어준다는 카타르시스 이론이다. 우리가 불쾌한 경험을 참고 견디는 이유도 결국 감정의 해소라는 긍정적 효과를 얻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컷 울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로 가끔 경험하는 현상이긴 하지만 카타르시스 이론은 과학적으로 보면 허술한 이론이다. 정서적 경험에 정화기능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방대한 연구에서 제시하는 사례를 인용하자면 폭력적인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이 안정되거나 편안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흥분한다. 공포영화를 보고 나서 편안하고 안전한 기분을 느끼면서 돌아가는 사람은 없다. 비극을 보면 복잡한 심정으로 극장을 나선다. 나쁜 감정을 경험하면 기분이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공포와 비극이 주는 쾌락을 기분 좋은 잔향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 상상력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상상력은 미래를 계획하고 타인의 생각을 짐작하기 위해 진화했지만 현재는 쾌락을 얻는 데 꼭 필요한 능력으로 자리 잡았다. 상상력을 통해 현실보다 나은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면서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상상의 고통을 이용하면 끔찍하지만 안전한 시나리오로 연습해서 불쾌한 현실에 대처할 수 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상상이 나올 것이다. 가상 세계의 영역이 넓어져서 인터렉티브 공상이 더욱 흥미진진해지고, 기술의 발전으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다. 언젠가는 증강현실 시뮬레이터인 홀로덱이나 오르가슴을 선사하는 오르가스마트론 같은 장치가 등장하거나 적어도 지금보다 발전한 형태의 텔레비전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상상에는 한계가 있다. 인가은 경험을 습득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마라톤 선수는 마라톤을 완주하는 경험을 상상하거나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믿음에 안주하지 않고, 직접 뛰고 싶어한다. 또 비행 시뮬레이터를 조작하기 보다 직접 비행기를 조종하고 싶어하고, 혼자 자위하기보다 실제로 성관계를 맺고 싶어하며, 텔레비전 속 인물둘이 나누는 재치있는 대화를 듣기보다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싶어한다. 상상의 쾌락이 삶의 중요한 일부이긴 하지만 상상이 전부는 아니다.
- 사람들은 99.99달러짜리 스피커는 사도 100.00달러라고 하면 지나친다. 집안에 총이 있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수영장의 위험에는 무관심. 이와 같은 불완전성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인간은 동물이지 천사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 자연선택을 거쳐 세계를 유용하게 추론하도록 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진화는 최소의 필요한 조건을 추구해온 과정이지 능력을 최대로 활용해온 과정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지금과는 다른 세계에 적응하도록 진화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완벽하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심리학자 개리 마커스가 조심스레 주장하듯이 뇌에는 클루지(컴퓨터 속어에서 차용한 용어로 서툴게 짜 맞춰진 기구라는 뜻)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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