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상 죽음을 준비하라. 그리하면 죽음도 삶도 더욱 달콤해질 것이다. (셰익스피어)
- 아마 이 책을 읽는 당신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테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길 꺼리는 원인은 크게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죽음에서 살아 돌아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주거나,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거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죽음에 관한 대화가 숫처녀들이 성관계를 논하는 것과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제는 있지만 자세한 세부사항과 정보는 부재하여, 결국 대화는 별다른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둘째, 인간의 자아는 소멸에 대해 떠올리길 거부하기 때문이다. 에고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로라라는 인간의 영혼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로라 이 여자를 좋아하고, 이 여인이 살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면? 글쎄....... 그건 나중에 하고 싶다.
셋째, 인간인 우리는 내일도 오늘과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믿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의 잘못은 아니다. 오히려 익숙한 질서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우리에게는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시간의 흐름이 계속되고, 현재의 안정된 상태가 지속될 거란 믿음이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우리의 나약한 정신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넷째, 우리는 죽음이 언제 혹은 어디서 찾아오게 될지 알 수 없다. 교회 주차장에서 차에 치일 수도 있고 혹은 당근을 먹다 질식하게 될 수도 있다. 질투에 눈이 먼 연인의 총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도 20년을 잘 살아남았는데, 어느 날 빙판길에 넘어져 운명을 달리 할 수도 있다.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절에서 수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벌어졌던 일이기도 하다. 이렇듯 무계획적이고 불가사의한 무언가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다섯째,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죽음을 불러들이게 될 거라는 뿌리 깊은 미신 때문이다.
- 죽는 게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냥 믿을 수가 없다. 우디 앨런 Woody Allen이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저 죽음이 찾아올 때 그곳에 제가 없기를 바랄뿐입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하는 말과는 달리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죽음이 찾아올 때 그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 죽음 만트라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마지막 말이나 보고 싶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최후의 순간에 자신에게 위안이 될 문구나 영상 같은 것이다. 말 그대로 당신이 죽는 순간, 무엇을 마지막으로생각하고 싶은가? 당신의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떠오를 이미지가 무엇이면 좋겠는가?죽음 만트라는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겠지만, 지금 만트라를 하 나 정해두면 이후 당신이 성장하고 변화함에 따라 확장시킬 수 있 는 하나의 기준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어쩌면 딸의 부드러운 미소 를 만트라로 떠올리고 싶을지 모른다. 여름휴가 때 봤던 산이 될 수도 있다. “자비” 혹은 “평안” 등의 단어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이든 "아, 젠장! 보다는 나아야 한다.) 다음 단계는, 그때가 왔을 때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자신이 정한 죽음 만트라를 되뇌고, 마지막 순간에 떠올리고 싶은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시간을 내어 연습을 해야 한다.
- 자신의 집에서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수술과 의료적 개입에 동의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스스로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혹은 당사자에게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해들은 바 없는 가족에게 가장 안전한 선택이란 119를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문제이다. 누구든 결국 의학과 과학기술에 의존하게 될 순간이 찾아오겠지만, 어디까지 필요할지, 언제 포기해야 할지는 아직 깨우치지 못했다.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쟁점이다. 일주일 간 더 살 수 있지만 병원에서 각종 기기에 몸을 연결한 채 삶을 연장하고 싶은가, 아니면 조금 일찍 죽게 되더라도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이미 1960년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과 죽어감》에서 이 문제를 정확히 짚어냈다.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죽음이란 여러모로 소름끼치는 존재로, 과거에 비해 훨씬 외롭고, 기계적이며, 비인간적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당신에게 죽음이 이런 의미여서는 안된다! 언젠가는 결국 겪어야 할 문제인 만큼,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길 바란다.
- 《죽음과 죽어감》에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설명했다. 첫 번째 단계는 '부정' 이다. 불 치병 진단을 받은 사람은 보통 자신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부정한 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인 ‘수용’에 접어들면서 죽음이 다가오고 있 다는 현실을 평온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의 단계에 갇혀, 최후의 순간까지 치료를 기다리며 마지막을 맞이한다. 그로 인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마땅히 해야 할 일들, 가령 자녀들에게 축복의 말을 전하는 등의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그녀는 지적했다. 남겨진 이들에게 사랑과 신뢰의 말을 남기고, 자신의 죽음과 별개로 그들만의 인생을 잘 살아가라고 독려하는 메시지를 남기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잠시나마 본인에게만 집중하던 마음에서 벗어나 남겨진 이들에 대해 생각하고, 후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이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일지 고민해보고, 당신의 사랑을 기억할 만한 무언가를 남겨주어야 한다.
- 죽음 앞에서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모습은 발을 구르며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잔뜩 긴장하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 말이다. 억지로 애쓸 필요도, 애쓰지 않을 필요도 없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하라. 죽음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할 것이다. “죽음은 스스로 행해질 테니, 마음을 편히 하라.”는 구절은 불교적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본 앤드류 홀레체크 Andrew Holecek의 명강의와 저서에서 인용한 것이다.
- 죽음 앞에서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라 기분 좋은 날에는 좋은 사람이 되기가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몸이 아프거나, 일진이 사나운 날이면 행복하고 유쾌한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다. 명상 강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철저하게 병자가 되어라.” 혹은 “철저하게 좌절하라.” 이런 의미에서, 죽어가는 순간에는 완벽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머물러야 한다. 삶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는 생명이 충만한 인간이 되려고 해선 안 된다.
- 마지막 순간에 다다른 몸의 변화
* 신체 온도가 1도 이상 내려간다.
* 혈압이 낮아진다.
* 맥박이 불규칙해지고, 느려지거나 빨라질 수 있다.
* 땀을 많이 흘린다.
*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피부색이 변한다. 입술과 손발 톱 바로 아래 피부가 창백하고 푸르스름하게 변해가는 것을 확인하 게 된다.
* 아마도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호흡인 만큼, 명상과 호흡에 집중한 다면 임종 순간에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면, 몸에서 느껴지는 변화를 조금 더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 그 때가 오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
(1) 생각해야 할 일
* 어떻게 떠나고 싶은지 선택하라. 당신에게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 뜻대로 상황이 펼쳐지지 않을 때를 대비한 대안은 무엇인가?
* 당신은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가?
(2) 해야 할 일
* 죽음 만트라를 만든다
* 죽음을 연습한다
* 죽음에 익숙해진다
* 집도 마음도 깨끗이 비우고 정리해둔다
* 자신의 삶을 기념하는 장식장이나 앨범을 만든다
* 사람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죽음을 일상적 대화의 소재로 삼는다
* 현재의 삶에 모범을 보인다
(3) 글로 남겨야 할 사항
* 당신의 삶에게 굿바이 편지를 작성한다
* 윤리 유언장을 작성한다
* 남겨질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을 전한다
(4) 찾아야 할 사항
* 함께할 수 있는 친구, 친구가 아니더라도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 죽음 카페를 고려해볼 수도 있다
* 마지막 순간 느끼고 싶은 향과 듣고 싶은 소리
* 당신이 자부심을 느끼는 것, 당신의 삶을 아름답고 훌륭하게 만든 것
-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함께하라. 직접 방문하는 것도 좋고, 전화나 편지를 쓰는 것도 좋다. 기본적인 일 외에도 죽어가는 사람에게, 혹은 그렇지 않다 해도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행은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특히나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기에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세가 무척 중요한데,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어, 어, 그래.” 하는 식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에너지 넘치게 경청하는 태도를 뜻한다. 죽어가는 사람은 별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혹은 심리적·육체적 변화나 통증 등의 무거운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우리는 이들의 말을 진심을 다해 들어주고 능동적으로 응답해주어야 한다.
- 죽음을 두려워하며 산다면, 죽음의 순간에도 두려움에 떨게 될 터이다. 죽음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산다면, 죽음
의 순간에도 그 죽음을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할 것이다. 좋은 친구들과 삶을 공유하고 내면의 나약한 모습도 보여줄 수 있다면, 죽음의 순간에도 당당해질 수 있다. 끝으로,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면 당사자에게 그 사실을 밝혀야 한다. 자신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죽게 될지 어떨지 졸이는 편이 더욱 고통스럽다.
- “시간이 모든 상처를 치유하진 못합니다. 어리석은 바람이죠! 분노와 슬픔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기 마련이니, 오히려 시간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때가 많습니다. 곪아버린 분노와 슬픔은 우울과 불안으로 이어집니다. 자신의 감정을 응시하고, 충분히 느끼고, 바로 마주하고, 또 놓아주는 과정을 통해서만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 다른 세상을 향해 문턱을 넘어서는 환자를 위해 우리가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
(1) 해야 할 일
* 곁에 있어준다.
* 이야기를 들어준다.
* 시간이 허락할 때 가능한 한 대화를 많이 나눈다.
* 정직한 모습을 보인다.
* 환자의 대변인으로서 의료적 처치에 목소리를 낸다.
* 환자의 대변인으로서 통증 완화를 위해 목소리를 낸다.
* 환자의 영적, 정서적 고통을 줄여준다.
* 환자에게 위로가 되는 물건, 이미지, 향 등을 준비한다.
* 죽음을 앞둔 이의 신체적 징후에 대비한다.
* 마지막 순간에 할 말을 연습한다.
* 음악을 적절히 활용한다.
* 자신에게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한다. 최선을 다해 자기 자신을 돌본다.
(2) 특별히 유의할 사항
* 자신의 두려움과 슬픔을 환자에게 지우지 않는다.
*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 죽음이 먼 일처럼 굴지 않는다.
* 거짓말하지 않는다.
* 죽음을 혹은 자신이 바랐던 대로 흘러가지 않은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3) 생각해야 할 일
* 고인의 시신과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 것인가?
* 누가 시신을 처리할 것인가?
*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 누구에게 어떤 순서로 부고를 전할 것인가?
* 장례 절차를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누가 어떤 일에 적합한가?
* 부고장을 준비한다.
* 장례식을 준비한다.
* 고인의 법적, 재정적 서류가 보관된 장소를 파악한다.
- 삶은 행복하고, 죽음은 아름답다.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그 길이 힘들 뿐이다. (지미 헨드릭스)
- 죽음 후에 무엇이 펼쳐질지 모르는 두려움, 그 어떤 여행객도 돌아온 예가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에 대한 결심을 약해지게 만들지. (셰익스피어)
- 내가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죽음을 거부하지 않으며 살아갈 때, 삶은 오히려 생기를 얻는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유일한 재산은시간이며, 시간의 유한함을 깨우칠 때 비로소 그것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
- 죽음을 내 조언자로 삼고 난 이후로 내 삶은 한결 단순해졌다. 삶이 그다지 길지 않을 것임을 알고 난 후, 내게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들 대다수가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게 될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가 내 삶을 사랑스럽게 바꾸어놓았다. 나는 '진정한 무언가'만 있으면 된다. 진정한 인간관계, 진정한 활동, 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진정한 방법. 나는 그저 그런 지인도 필요치 않고, 진정한 친구가 아닌 사람도 필요치 않으며, 내가 진정으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로 내 삶을 채울 필요도 없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일에 시간을 쓸 필요도 없다. 나의 정서적 건강을 해치는 친지 몇 명도 필요치 않다. 인생을 단순화시키는 일 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누군가에게 “노”라고 말하는 것이 힘들겠 지만 그렇게 해야 “예스”라고 대답해줄 가치가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 죽음을 조언자로 삼은 후 나는 최후의 순간 앞에서 선의와 용기, 용맹함과 품위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약간)생겼다. 앞으로도 이 마음이 변치 않길 바란다. 난관에 맞닥뜨렸을 때 불교에서 쓰는 표현처럼 “흔들림 없는 자세를 유지"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고 싶다. 나는 이 말을 중심을 지킨다'는 뜻으로 해석 한다. 분노나 욕망, 사랑과 자극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 감정에 적당한 거리를 둔다'는 의미이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자신감 넘치고 침착한 자세로 마주하고 싶다.
- 죽음을 조언자로 삼는다면 돈을 많이 아낄 수 있다. 삶을 단순화하는 만큼 플라스틱 제품과 쓸모없는 물건에 돈을 덜 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명을 연장하는 쪽으로만 생각하는 실수를 범할 때가 많은데, 이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비용이 드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31퍼센트의 사람들이 생애 말기 치료에 자신이 모아둔 돈 대부분 혹은 전부를 소진한다. 이 중 96%의 사람은 보험이 있음에도 말이다. 비용 대부분이 치료 후반부 2,3주 동안 들어간다
- 나는 좋은 순간에도, 힘든 순간에도 삶에 적응해나가며 다음의 내용을 항상 떠올릴 것이다.
*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을 존중하는 법도 잃게 된다.
* 죽음을 피한다면 우리는 시체와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다.
* 우리의 삶에서 약속된 무언가를 부정하며 사는 것은 옳지 않다.
* 삶은 연약하고 불확실하다. 하지만 죽음은 다르다. 죽음은 예외가 없으며, 예상 가능하고, 확실하다.
* 또한 죽음은 삶을 분명하게 만든다.
* 죽음에 감사하고, 죽음을 경건하게 여기며, 죽음에 대해 명상하고 사색하는 영적 상태. 이런 태도가 실상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든다.
* 그리하여 나는 매일같이 반복한다. “죽음을 당신의 조언자로 삼아라.”
- 사람들이 “통증은 뇌가 느끼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사실이다. 손가락을 베였을 때 손가락에 이상이 감지되었으니 조치 를 취해야 한다고 지시하는 것은 손가락이 아니라 우리의 뇌다. 일반적으로 뇌는 몸에 고통을 전달하여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그러나 열에 한 번은, 위험 상황이 지나가고 상처가 이미 치료되었음에도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 조직이 충분히 재생되었지만 신경계는 소위 '피드백 루프' 라고 불리는 것을 만들어, 몸에 이상이 없는 상황임에도 부상을 입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신호를 보낸다. 이 경우 통증 그 자체가 하나의 끔찍한 질병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 내가 고통을 느끼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통증을 거부하면 몸은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욱 강력한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반드시 통증과 함께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통증을 악화시키는 '부정적인 통증 신념'을 피해야 하는데, 이에 속하는 극단적인 생각('이런, 이렇게는 살 수 없어'), 우울한 생각('내 인생이 이렇지만 않았더라도), 수동적 대처('얼굴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는 통증 지각을 고조시킬 뿐이다. 이와 동시에 호흡에 집중하는 수행 역시 중요한데, 호흡은 말 그대로 신경계를 리셋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흡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혈압과 심박이 내려가고, 스트레스 물질이 감소되기 때문에 통증 완화 프로그램에 항상 요가와 명상이 포함되어 있다.
- 삶에 충실하기 위해 내가 하는 일
(1) 해야 할 일
*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
* 오직 현재를 살기 위해 노력한다.
* 소유물, 인간관계, 의무 등으로부터 내 삶을 단순화한다.
* 삶이란 거대한 재앙임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 침착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며 흔들림 없는 자세를 유지한다.
* 내면의 감정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한다.
* 통증과 불안을 관리하기 위해 마음챙김 같은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2) 해서는 안되는 일들
* 시간을 가벼이 보낸다
* 삶을 분산시킨다
*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한 말을 소개한 바 있다. 그가 죽어가던 때 누군가 그에게 “창조자와 화해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상대를 올려다보면서 “우리는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다툼이 없다면 우리는 이미 마음의 평안을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창조자, 우리 안의 두려움, 자아, 가족 간의) 다툼을 피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죽음은 우리를 잡으러 오는 불가사의한 힘도, 커다란 망토를 뒤집어 쓴 저승사자도 아니다. 죽음은 우리 안에 내제된 무언가이다. 삶의 일부이다. 죽음과 편안해져야 그것을 외부에서 다가오는 어두운 무언가로 보지 않게 된다. 사실, 죽음은 곧 우리 자신이자 우리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죽음이다. 죽음은 우리의 운명이다.
- “이제 그만 잊어”, “상실한 경험을 바탕으로 배우고 성장해” 혹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인 “신은 견디지 못할 시련은 주지 않아”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면 상대방을 발로 차버리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외려 나와 타인의 상실을 진심으로 느끼고, 상실로 인한 고통이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정도 이상임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노숙자, 알콜 중독자 혹은 심각한 정신 질환을 겪었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삶이 과연 우리에게 견딜 수 있는 고통만 주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 상실은 가슴 아픈 일이다. 상실에서 비롯된 고통을 견디는 데 내게 도움이 되었던 방법은 (1)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 명상하고, 상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며, (2) 더 나아가 상실을 하나의 기회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숨을 쉴 때마다 과거를 상실하고 새로운 순간을 맞는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짧은 순간을 잃어간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명상이고, 삶이다. 호흡하고, 호흡을 인식하고, 현재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억누르려 하지 않되, '구름'을 바라보듯 가만히 응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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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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