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 역사학자들에게는 모든 사건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경제학에서는 사회와 자연에 작용하는 힘들이 매번 똑같이 작용한다고 간주한다. (찰스 킨들버거)
- 케인스는 한때 화폐를 현재와 미래의 연결고리라 불렀다. 지금 우리가 화폐를 이용하는 방식을 보면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를 알 수 있다는 뜻이었따. 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전까지 우리가 화폐를 가지고 했던 일은 그 양을 엄청나게 부풀린 것이었다. 리먼 사태 전의 7년 동안 전 세계 화페 유동성은 25달러에서 70조달러로 증가. 실물경제의 성장속도와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였다. 일반적으로 화페가 이렇게 빠르게 팽창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보다 훨씬 풍요로운 미래를 예상한다는 징표여야 한다. 08년 사태는 미래가 우리에게 보낸 피드백이었다. "당신들은 틀렸어"
- 신자유주의를 파괴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성공요인
(1) 명목화폐 : 실질적 가치와는 관계없이 법률적 약속에 의해 가치를 인정받는 화폐. 명목화폐가 있어서 경기가 둔화할 때마다 돈을 풀 수 있었고, 선진국이 빚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2) 경제의 금융화 : 선진국 노동자들의 소득이 늘어나지 않을 때 대출로 이를 메울 수 있었음
(3) 국가간 불균형 : 불균형 자체도 문제지만 선진국들의 막대한 부채와 외환보유고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4) 정보기술 : 지금가지 정보기술은 온갖 일을 가능케 했지만, 앞으로 성장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는 미지수
신자유주의의 운명은 위 네가지 요인이 계속 존재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음. 자본주의의 장기적 운명 역시 위 네가지 요인이 없어질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달려 있음
- 60년대 후반, 장차 미국 연준의장이 될 앨런 그린스펀은 달러듸 금 태환을 정지하는 계획은 복지국가주의자들의 음모라고 비난했음. 국민의 돈을 갈취해 정부지출을 충당하려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얼마뒤 그린스펀은 미국 다른 엘리트들과 마찬가지로 금 태환을 정지하면 미국이 다른 나라들의 부를 손쉽게 몰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음. 이렇게 해서 미국이 30년 동안이나 통화를 조작할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짐. 그 결과 15년 기준 미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려 6조달러를 빚지며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 달러의 금 태환과 고정환율제를 폐기하면서 생긴 세가지 반사작용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개막을 가능케 했따. 세가지 반사작용은 다음과 같음
(1) 은행이 신용을 팽창시킬 수 있게 됨
(2) 모든 위기는 해소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김
(3) 투기로 얻은 이윤이 영원히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가갛게 됐다
이 세가지 변화는 수백만 대중의 머릿속 깊이 뿌리를 내렸다. 그래서 이런 개념들이 유효하지 않게 되면 사람들은 무기력에 젖기도 한다
- 명목화폐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기독교 종말론과 비슷한 결론으로 흐름. JP모건의 전직 임원 디틀레브 슐리히테르는 앞으로 은행계정이든 연금이든 펀드든 간에 종이로 된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에게서 실물자산(금)을 보유한 사람들에게로 역사적 부의 전이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예측에 따르면 폐허로부터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이다. 돈을 빌려줄 때마다 동일한 액수의 현금을 보유해야 하는 이른바 100% 안전은행이 설립되고 새로운 금본위제가 시행될 것이다. 그러려면 금값이 단번에 엄청난 비율로 상승해서 세상의 모든 금의 가치가 세상 모든 실물재화의 가치와 일치해야 한다 (디지털 통화인 비트코인을 뒷받침하는 논리도 이와 유사. 비트코인은 어떤 정부의 보증도 받지 않고 한정된 수량만큼만 통용됨)
- 만약 실물화폐가 통용되는 새로운 세상이 온다면 그 경제적 비용은 엄청날 것임. 은행이 대출금과 똑같은 액수의 현금을 보유해야 한다면 신용을 통한 경기부양은 불가능해지고 파생상품 시장은 존재하기 힘들어질 것임
-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금융화는 80년대 시작된 네가지 주된 변화를 가리킴
(1) 기업들이 은행에게 등을 돌렸다. 기업들은 자금확충을 위해 활짝 열린 금융시장으로 나아갔다
(2) 은행들은 소비자를 새로운 수익원으로 설정하고 우리가 투자라 부르는 복잡하고 위험도가 높은 활동에 뛰어들었다
(3) 소비자들이 금융시장에 직접 참여하기 시작했다. 신용카드, 마이너스 통장, 모기지론, 학자금 대출, 자동차 구입자금 대출 등이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옴. 이제 임금노동자들이 만들거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그것을 구매하면서 창출되는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대출을 해줌으로써 창출되는 이윤의 비중이 점점 커진다
(4) 매우 단순한 금융상품들이 먹이사슬의 위쪽으로 가면 복잡한 금융상품 시장을 형성. 차를 구입한 사람이나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시스템의 어딘가에서 그 유명한 투자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휴대전화 계약, 헬스장 회원권, 전기요금 등 당신이 정기적으로 지불하는 모든 돈이 하나로 묶여 금융상품으로 만들어지고, 당신이 그 상품을 구입하겠다고 결정하기도 전에 투자자에게 꼬박꼬박 이윤을 안겨준다. 나중에는 당신이 한번도 만나지 못한 어떤 사람이 당신을 전기요금을 제대로 납부할 것인지 여부에 베팅을 한다
이 시스템은 의도적으로 임금을 낮게 유지하고 생산성 투자를 줄이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닐지도 모름.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은 항상 고부가가치 노동을 늘리고 생산성을 높이자고 주장하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금융화와 저임금의 관계는 불안정 노동과 푸드뱅크의 관계와 같다. 늘 붙어다니기 때문이다
-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모든 경제대국의 쇠퇴는 금융업으로 화려하게 전환하면서 시작된다고 주장. 17세기에 무역업으로 제국을 건설했던 네덜란드의 몰락을 분석한 후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자본주의 국가가 발전하다가 금융자본주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성장이 끝났다는 표식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가을이다." 금융은 가을이라는 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중세시대의 금융업 중심지였던 제노바공화국, 네덜란드, 대영제국 말기의 런던에서 똑같은 패턴이 나타났다고 주장. 하지만 이 모든 사례는 경제력이 가장 큰 나라가 세계의 대부업자가 되는 패턴을 보였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이것이 정반대로 나타난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대부업자가 아니라 채무자가 됐다. 오랫동안 유지된 패턴이 깨졌다
- 자본주의를 위한 탈출구를 상상해보자. 앞으로 10년 동안 중앙은행들은 질서있게 양적완화를 종료한다. 자국의 정부부채를 줄이기 위해 통화량을 늘리는 행위도 중단한다. 지난 10년간 제한을 받았던 정부채권에 대한 시장거래가 되살아난다. 그리고 각국 정부는 금융의 광기를 상시적으로 제어하기로 합의한다. 앞으로 버블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 이자율을 올리기로 약속한다. 금융기관에 구제금융을 제공한다는 암묵적 보증은 영구적으로 폐지한다. 다음으로는 금융자본주의의 위험이 증대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예금, 주식,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모든 시장을 정상화한다. 자본은 다시 생산적 투자에 투입되고 투기적 금융으로부터 멀어짐
- OECD 보고서는 글로벌 경제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서방 국가들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신흥국들은 성장세가 둔화하고, 여러 나라에서 정부가 파산할 것으로 내다본다. 그래서 어느 시점이 되면 하나 이상의 나라가 세계화 체제를 벗어나 보호주의를 채택하고, 부채를 축소하고, 환율을 조작할 가능성이 높다. 또는 외교적, 군사적 충돌에서 비롯된 탈세계화 사태가 세계 경제로 확산되어 똑같은 결과를 낳을지도 모름. OECD 보고서의 교훈은 체제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지식을 습득한 세대이자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대는 극심한 불평등과 저성장의 미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 슘페터는 50년 주기로 일어나는 순환의 원인에서 신용주기, 외부충격, 취향변화, 성장이라는 요인을 배제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음.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혁신이다. 얼핏보기에 다른 요인들 때문이라고 여겨지는 일들도 대부분은 혁신이 그 원인이다." 슘페터는 콘드라티예프가 제시한 파동들을 하나식 살피면서 그것이 혁신의 순환이었던 이유를 상세히 설명. 첫번째 순환은 1780년대 공장제의 도입으로 발생했고, 두번째 순환은 1842년 철도부설에 따른 것이었으며, 세번째 순환은 우리가 2차산업혁명이라 부르는 188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수많은 혁신에서 비롯됐다는 주장. 슘페터는 콘드라티예프의 장기순환 이론을 받아들여 자본주의 신봉자들이 좋아할만한 이론으로 바꿔 놓았다. 슘페터의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순환을 일으키는 사람은 혁신하는 기업가들이다. 반대로 어떤 시기에 경기가 하락하는 이유는 혁신이 소멸되고 자본이 금융 시스템 안에 갇혀 있기 때문. 슘페터의 관점에서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필수적 한 부분이며, 위기가 발생하면 낡고 비효율적인 모델의 창조적 파괴가 진행된다
- 우리가 벨 에포크(정치적 격동기를 지나 짧은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던 1890-1914년) 또는 미국 역사의 혁신주의 시대라 부르는 시가, 고속으로 성장하면서 자유와 문화를 꽃피우던 그 시기에 세계는 시장의 힘으로 버낭한 것이 아니라 시장을 억누르는 규제의 힘에 의해 번창. 당시에는 보수주의자들도 이 점을 별로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
- 금융위기는 어떻게 볼 것인가? 장기순환의 상승기(예컨대 1907년 미국의 공황)에도 언제든지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지만, 하강국면에서는 거의 확실히 금융위기가 발생함. 자본은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서 빠져나와 금융으로 흘러감. 그러면 금융부문이 불안정해지고, 투기가 개입된 호황과 불황의 순환이 만들어짐. 1차에서 3차까지 장기순환이 진행되는 동안 금융은 점점 복잡해졌음. 마지막으로 저자는 자본이 체제의 외부와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찾고 새로운 노동력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주장. 이것은 시스템 이론의 기본적 가정이지만, 폐쇄적이고 추상적 모델에 근거한 마르크스주의 위기이론에서는 소홀히 다뤄진 부분이다. 19세기 대다수 자본주의 국가들은 농촌이 불황의 충격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개척할 수 있는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었다. 노동력의 공급도 충분했다. 하지만 1848년 이후로는 체제의 생존을 위해 외부에서 시장을 찾아야 했다. 20세기 초반에 이르자 국내의 노동력 공급은 한계에 도달. 그것은 아동노동과 여성노동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저항 때문이기도 하고 출산율이 낮아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새로운 시장개척도 쉽지 않았다. 1930년대에는 전 세계가 일종의 보호막 역할을 하는 폐쇄적 무역블록 안으로 숨었다. 4차파동이 시작될 무렵에는 외부세계의 상당부분이 폐쇄된 영역이었다. 냉전시기에 세계 GDP의 약 20퍼센트는 시장 외부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1989년에 갑자기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새로운 노동력이 공급되자 파동은 연장됐다. 또 서구 국가들은 그전까지 접근할 수 없었던 중립국에서도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게 됐다. 다시 말하면 1917년과 1989년 사이에 자본주의는 복잡한 적응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으며, 1989년 이후에야 그 잠재력이 폭발. 노동력과 시장이 확대되고, 기업은 자유를 획득하고, 경제의 규모는 전례없이 커졌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국면의 왜곡이라는 나의 주장은 1989년의 상황만 가지고도 어느 정도 설명된다. 물론 그것이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장기순환의 패턴은 이미 깨졌다. 4차 장기순환은 예상보다 길어지고, 왜곡되고, 결국에는 자본주의의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요인들에 의해 망가졌다. 그 요인들은 바로 노동운동의 패배와 후퇴, 정보기술의 눈부신 발달, 그리고 장기간 공짜로 돈을 찍어낼 수 있는 초강대국의 성립이다.
- 오늘날 젊은 세대의 눈에는 신자유주의의 결과만 보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협상력 파괴와 신자유주의의 핵심목표라는 사실을 놓치기 쉬움. 협상력 파괴는 다른 모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신자유즈의의 핵심교리는 자유시장이 아니다. 긴축재정도 아니고, 화폐의 건전성도 아니고, 민영화와 생산시지 이전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신자유주의 가 중요시하는 목표의 부산물 또는 무기일 따름이다. 그 목표는 조직된 노동자들을 방정식에서 빼버리는 것이다
- 드러커는 산업자본주의의 역사를 4단계로 나눔. 거의 19세기 내내 지속된 기계화 혁명, 1890년대에 과학적 관리기법의 도입과 함께 시작된 생산성 혁명, 1945년 이후 비즈니스 과정에 관한 지식을 응용하게 되면서 속도가 붙은 기업경영의 혁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식을 지식에 적용하는 것을 토대로 하는 정보혁명. 슘페터의 제자 드러커는 콘드라티예프의 장기순환 이론을 의식적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그는 1차순환과 2차순환을 합쳐서 논하며, 개별기업의 관점을 취함. 여기서 드러커의 가장 심오한 통찰이 탄생한다. 노동의 경제학을 알지 못하면, 그 어떤 전환점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대 로마의 지식인 베르질리우스에서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경제학자도 농장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실제로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관해 연구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자본가들이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주의를 돌리고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노동의 역사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드러커는 이렇게 불평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의 역사는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 노동경제학은 여전히 실업률과 시간당 임금에 중점을 두며 학계에서 중요한 분야로 대접받지 못한다. 하지만 정보가 노동에, 노동과 자유시간의 경계에, 그리고 임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이해하고 나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변화의 규모를 실감할 것이다.
- 기계에 대한 단상(이하 단상). 단상은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노동자와 기계의 관계가 바뀐다는 관찰에서 출발한다. 초기 산업사회에는 노동자가 있었고 손으로 작동하는 도구가 있었고, 상품이 있었다 이제 도구의 역할을 노동자가 한다. 노동자는 자연의 운동을 산업적 공정으로 변형해서 삽입한다. 그는 자기 자신과 비유기적 자연을 연결하는 수단으로서 그 기술을 습득한다. 그는 생산과정의 주연배우 역할을 하지 않고 측면으로 물러난다. 마르크스는 기계의 주된 역할이 생산이고 사람들의 주된 역할은 기계를 감독하는 것이 되는 경제를 상상했다. 그런 경제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는 정보일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저절로 작동하는 방직기, 전신, 증기기관차와 같은 기계류의 생산력은 생산에 직접적으로 소요되는 노동시간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전반적 수준과 기술의 진보수준, 또는 그 학문을 생산에 응용하는 정도에 따라 결정됨. 다시 말하면 기계를 만들고 작동시키는 노동보다 조직과 정보가 생산력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가 나중에 착취이론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이것은 혁명적 서술이다. 지식이 생산력의 한 요소가 되고, 기계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실제 노동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가 되고 나면, 핵심문제는 임금과 이윤의 관계가 아니라 누가 지식의 힘을 통제하는가가 된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폭탄 하나를 떨어뜨린다. 대부분의 노동을 기계가 수행하는 경제체제에서 사람의 노동은 기계를 감독하고, 수리하고, 설계하는 일이 된다. 그리고 기계 안에 갇힌 지식은 본질상 사회적이어야 한다
- 마르크스 논리에 따르면 지식기반 자본주의는 생산력과 사회적 관계 사이의 모순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자본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릴 물질적 조건이 최고조에 이른다. 그리고 지식기반 자본주의에서는 필수적으로 노동자의 지적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노동시간을 단죽해서 노동자들이 일터 바깥에서 예술적, 학문적 소양을 쌓을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소양이 경제모델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는 그의 다른 어떤 저작에도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일반지성이다. 기술의 발전수준을 알아보려면, 일반지성의 통제 아래 일반적인 사회적 지식이 생산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측정하면 된다고 그는 말했다. 60년대 학자들은 단상에 제시된 개념들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 완전히 이탈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20세기에 좌파는 국가의 계획이야 말로 자본주읭서 탈출하는 경로라고 판단. 그들은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시장의 혼란을 야기하며, 자본주의는 인간의 필요를 다 채워주지 못하므로 재앙처럼 무너질 것이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1858년에 작성된 단상에서 우리는 다른 전환의 모델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지식을 기반으로 자본주의에서 탈출하는 모델이다. 이 모델에서 자본주의의 주된 모순은 기술과 시장 메커니즘의 모순이다. 1858년 마르크스가 종이에 휘갈겨 썼지만 100년 이상 좌파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이 모델에서 자본주의가 무너지는 이유는 자본주의는 공유된 지식과 함께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은 이제 우리가 자유시간을 인간답게 보내고 교양을 쌓기 위한 투쟁으로 바뀐다.
- 노동시간을 최소로 줄이면 사횡 축적된 모든 지식을 활용할 줄 아는 새로운 인류가 탄생한다. 사회적으로 축적된 방대한 지식에 의해 변화한 사람, 역사상 최초로 노동시간보다 자유시간을 많이 갖게 된 사람, 단상에 등장하는 상상속의 노동자는 피터드러커가 예언한 보통교육을 받은 보통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가 이 실험적 주장을 폐기한 이유는 그가 살았던 사회와 유사성이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상상했던 사회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매우 흡사하다.
- 주류경제학 교과서에는 스미스가 자신의 노동가치설은 원시사회에만 적용되며 자본주의가 성립한 뒤에는 임금, 자본, 토지가 생산물의 가치를 구성한다고 생각했다고 나온다. 이것은 틀린 설명이다. 스미스의 노동가치설은 일관성이 부족하긴 하지만 국부론에 정리된 그의 주장은 모호하지 않다. 노동은 가치의 원천이지만 시장은 그것을 완전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흥정과 절충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가치 법칙은 자본주의 경제의 표면이 아닌 심층에서 작동한다. 이윤과지대는 노동으로 창출한 가치를 갉아먹는다
- 정치경제학 비판요강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 어떤 기계를 한대 만드는 데 100일치의 노동이 소요되는데 그 기계의 수명이 100일이라면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음. 기계 제작에 100일이 소요되지만 수명은 1000일인 기계가 있다면 생산성은 한결 높아짐. 기계의 사용기한이 길어질수록 그 기계가 각각의 상품으로 이전하는 가치는 작아짐. 이것을 논리적 극한까지 밀고가면,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 기계는 감가상각이 없거나 대체하는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기계다. 마르크스는 경제학적 의미에서 이 두가지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만약 자본이 생산비가 전혀 들지 않는, 다시 말해 비용이 0인 도구를 획득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자본은 그 어떤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잉여가치를 획득한다. 더구나 그 잉여가치는 점점 늘어난다. 당시는 19세기였지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공짜로 이윤을 얻는 두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작업흐름을 재조직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학문의 발전이다. 그러고 나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영원히 쓸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만약 그 기계가 수명이 짧아서 재생산되어야 하는 부품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그런 기계야말로 공짜 이윤이라는 개념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다." 1858년 가스등 아래서 쓴 글에 이렇게 비범한 통찰이 담겨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상적인 기계는 닳거나 부식되지 않는 재료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유지비가 들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비물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이야기한 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는,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물질이었다. 노동가치설에서 사회적 지식과 학문의 힘으로 가치의 일부가 무료로 투입돼 만들어진 기계는 낯선 개념이 아니다. 사실 그런 기계는 노동가치설의 중심에 위치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만약 그런 기계가 대량으로 존재한다면 그 기계들이 노동가치에 기초한 시스템을 무너뜨릴 것이라 생각. 실제로 단상에는 그런 '하늘 높이 날려버린다'는 표현이 나온다
-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았다. 단 자본의 이동이 가능해야 했다. 어느 한 분야에서 기술혁신으로 비용이 낮아지면 자본은 임금이 더 높고, 이윤이 더 높고, 생산요소의 비용이 더 높은 분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비용이 0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면 자본주의는 이런 방식의 자기복제를 계속할 가 없다. 이 단순한 모델은 생산비용 0인 사회의 경제는 곧 에너지와 원자재에 집중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에너지와 원자재는 여전히 희소성이 지배하는 영역임
- 정보자본주의가 꽃피는 시대에 벌어질 일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정보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는 사태를 막아야 함. 그래서 자본이 독점적으로 가격을 결정한다. 스테로이드제에 의존해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니콘, 캐논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자본주의는 기업이 만드는 외부효과를 최대한 포착해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소비자와 소비자, 친구와 친구 사이의 모든 상호작용에서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 노동가치설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의 노동이 아닌 활동들이 기업에 기여하는 활동을 전화해야 한다. 그것도 공짜로. 정보자본주의가 번창하려면 에너지와 원자재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해서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평균 노동시간을 늘려야 함. 그 방법은 매점매석을 비롯한 독점적 행위일 것이다. 결정적으로 정보자본주의는 제조업의 테두리를 벗어나 서비스산업 부문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함. 250년 동안 자본주의 역사는 시장의 힘을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밀어넣는 과정이었다. 정보자본주의는 그 과정을 극한까지 진행시켜 새로운 형태의 맞춤형 마이크로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함. 이 마이크로서비스는 비용이 소액단위로 지불되며 주로 사적 영역에 존재함. 마지막으로 정보자본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찾아 주어야 함. 저임금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자본주의 위기탈출 메커니즘은 노동의 비용을 상승시키는 것이기 때문. 사람들의 생활은 더 복잡해져야 하고, 더 적은 노동이 아니라 더 많은 노동을 투입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함. 장기순환 이론에서 제시된 4차례의 상승기에는 늘 그런 일이 벌어졌다. 만약 이런 일들이 모두 실현된다면 정보자본주의는 순조롭게 출발 가능. 이런 해법의 요소들은 현대경제의 내부에 이미 존재한다. 애플은 전형적 가격독점기업이며, 아마존의 사업모델은 외부효과를 포착하는 고전적 전략이다. 상품에 대한 투기는 언제나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을 실제 가치보다 높게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맞춤형 마이크로 서비스(애완견 관리, 네일 살롱, 개인 컨시어지 등)의 등장은 자본주의가 과거에는 친구들 사이에 비공식적으로 주고받던 활동들을 상업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이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구조적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1) 정상적 탈출경로 (혁신을 통해 정보기술보다 더 새롭고 값비싼 기술을 개발)가 막혀 있다. 정보는 증기엔진처럼 반짝 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기술이 아니다. 정보기술은 앞으로의 모든 혁신에 들어가는 비용을 0으로 만들지도 모름. 바이오테크, 우주여행, 뇌의 재구성, 나노기술, 그리고 지금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획기적 기술들의 비용이 0이 된다. 정보가 미래의 기술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하려면 프랭크 허버트의 공상과학소설 사구에 나오는 것처럼 컴퓨터를 전면 금지하고 인건비가 많이 드는 계산 전문가에게 계산을 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2) 노동인구 구성변화. 마르크스 시대에는 미국에 8.2만명의 사무직 노동자가 있었다. 이는 전체 노동자의 0.6%. 그런데 정보기술 혁명을 앞두고 있던 70년에는 그 숫자가 1400만명으로 증가. 노동자의 20%에 해당한다. 자동화가 진척되고 두뇌를 쓰는 갖가지 직업들(은행원, 속기사, 대형 계산기 조작 담당자 등)이 사라지는 오늘날에도 사무직과 관리직은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직업군으로서 전체 노동자의 16%에 해당. 두번째로 큰 직업군은 11%를 차지하는 영업직이다.
(3) 경제적 합리성의 한계. 인구의 다수가 서로를 위해 소규모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를 생각해보자. 그런 사회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적 기준에 비춰보면 매우 비효율저이고 부가가치가 낮은 사회다. 가사 노동에 임금을 지불하고, 모든 성관계를 유급노동으로 바꾸고, 아기를 데리고 공원에 나온 엄마들이 번갈아 그네를 밀어주며 서로에게 동전 하나씩을 건넬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기술의 진보에 역행하는 경제다. 초기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공장에 강제로 밀어넣을 때, 체제는 비시장적 생활방식의 상당부분을 심각한 범죄로 바꾸어야 했다. 당싱는 실업자가 된 사람을 부랑자로 취급해서 체포했다. 선조들이 늘 하던 대로 밀렵을 통해 새를 잡으면 교수형 감이었다. 오늘날 이것과 비슷한 현상은 단순히 일상생활의 구석구석에 상업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만이 아니라 상업화에 저항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19세기에 밀렵꾼들을 대했떤 것처럼 돈을 받지 않고 서로 키스하는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로봇의 도입에 내재하는 진짜 위험은 대량실업을 능가한다. 250년 동안 과거의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를 때마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던 자본주의의 능력이 고갈된 것임.
(4) 지식재산권. 자본은 정보주도 경제의 외부효과를 포착하기 위해 새로운 영역에서도 자신의 소유권을 강화해야 함. 자본은 우리의 사진, 우리의 재생목록, 우리가 공식적으로 출판한 논문은 물론 우리가 그 논문을 쓰기 위해 조사했던 내용까지도 소유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기술은 그런 횡포에 저항할 수단을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그런 식의 소유권 강화는 장기간 유지될 수가 없다.
- 이론상 방직공은 대부분 남성 노동자여야 했다. 노새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방직기의 굴대들을 1분에 네번이나 앞뒤로 밀었다 당길면 팔의 힘이 세야 했다. 하지만 사실은 여자들도 그 정도 힘은 있었다. 공장주들의 진짜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 공장에서 규율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여자와 아이들을 직접 상대하는 것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거친 남자 노동자들을 사이사이에 배치하는 것이 더 쉬웠다. 하지만 1820년대 초에 숙련된 남성 노동자들이 군에 징집되자 자본가들의 유일한 해결책은 자동화를 통해 노동자들을 아예 없애는 것이었다. 1824년에 특허를 취득한 자동 노새가 수천대씩 공장에 도입됐다. 자본가들은 앞으로 여자와 아이들만 방적기를 다룰 것이라고 선언했다. "기계의 움직임을 보는 것 말고는 직공들이 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반대 상황이 펼쳐짐. 1819년이 지나자 여성 채용에 항의하는 남성 방직공들의 파업이 반복적으로 발생. 남성노동자들은 여자들을 훈련시켜 더 어려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자리에 앉히는 것에 반대하면서 그 자리에는 자신들의 아들들을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 1820년대와 30년대 방직공의 지위를 끝까지 유지하던 소수의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해 쫓겨남. 1840년대가 되자 남성의 주도권이 확고해짐. 그리고 역사학자 메리 프라이펠드가 논증한 대로, 새로운 기계가 도입된다고 해서 고급기술이 필요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과거의 기술 대신 새로운 기술이 생겨났을 뿐이다. 매우 복잡한 하나의 작업이 매우 복잡한 다른 작업으로 대체됐고, 품질관리와 감독업무를 변하지 않았다. 방직공장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다음 200년 동안 이런 일들이 여러번 되풀이 되었기 때문. 노동의 진짜 역사는 경제학 더하기 기술로만 쓸 수 없다. 노동의 진정한 역사에는 노동자들이 창조한 조직과 기술의 상호작용, 그리고 연령, 성별, 민족에 기초한 권력관계의 형성이 포함돼야 함.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사례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한 단락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1850년대 책을 집필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억압하기 위해 노동에 필요한 기술을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증거로 자동 방적기를 들었기 때문. "기계는 파업을 진압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예가 자동 노새일 것이다." 마르크스가 혼동을 일으킨 원인은 그의 동료 엥겔스와 관련이 있다. 1842년 엥겔스가 맨체스터에 도착했을 때는 그곳의 모든 노동자가 총파업에 나섰다가 패배한 직후였다. 엥겔스는 자신의 연인이자 노동자였던 22세의 메리 번즈와 함께 공장, 빈민가, 면화거래소를 돌아보면서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탄생한 세계 최초의 유물론적 사회학 서적이 바로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다. 인류학자였던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 계급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는 빈민가의 환경, 종교적 신념의 부재,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노동자들, 술과 아편에 중독되고 방탕한 성생활을 하는 노동자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가 잘못 알았던 것은 자동노새의 영향이었다. 그가 쓴 글은 다음과 같다
"기계의 성능이 좋아질 때마다 성인 남자들의 노동은 단순한 감독업무로 바뀐다. 감독은 연약한 여자 또는 어린이도 할 수 있는 일이며, 기존의 절반 또는 3분의 1의 임금을 받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기계가 늘어날 수록 성인 남자들은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재취업의 기회도 얻지 못한다."
엥겔스를 위한 변명을 덧붙이자면, 그가 자료를 수집하려고 만난 사람들은 당대의 급진적인 방직공들이었다. 그들은 1842년 파업이 실패한 이후 운동이 침체되자 공장에서 쫓겨난 상태였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자동화는 숙련된 남성 방직공들의 역할을 강화하고 남성 방직공의 숫자를 늘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매사추세츠 대학교의 윌리엄 라조닉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기술, 남성의 우월한 지위, 그리고 남성 노동자들 사이의 복잡한 권력구조는 기계화가 진행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와 조직된 노동계급의 첫 만남은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기술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그 기술이 만들어내는 정치의식의 종류에 관해서도 잘못 이해했다.
- 리처드 세넷은 하이테크 노동자들의 새로운 특징을 연구. 노동이 소외와 외견상의 순응에 후한 보상을 하고 기술보다 적응력을, 충성도보다 네트워크 형성 능력을 높게 평가할 경우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가 탄생. 새로운 노동자는 일에서는 물론이고 삶에서도 단기적 사고를 하고, 노동에서는 물론이고 투쟁에서도 위계질서와 조직에 헌신하지 않는다. 세넷과 웰먼은 이런 네트워크형 생활에 적응한 사람들이 현실에서는 온라인에서나 복수의 인격을 가진다는 사실을 발견. "새로운 자본주의에서 시간이라는 변수는 인격과 경험의 충돌을 낳았다. 뒤죽박죽이 된 시간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격을 장기적 이야기속에 녹여내기가 어려워진다."
- 봉건제는 의무를 토대로 하는 체제였다. 농노들은 생산물의 일부를 지주에게 바치고 지주의 군대에 들어가서 봉사해야 했다. 지주는 왕에게 세금을 납부하고 왕이 요구할 때마다 군대를 보낼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사극의 무대가 되는 잉글랜드에서는 그 체제의 커다란 태엽 하나가 부러져 있다. 현실에서 리처드 3세가 자신의 경쟁자들을 살해할 무렵에는 의무를 토대로 하는 권력의 네트워크가 돈에 오염된 상태였다. 지대는 돈으로 지불하고, 군역의 의무도 돈으로 대신했으며, 전쟁을 벌이려면 국경을 넘어 피렌체와 암스테르담까지 뻗어 있는 은행 네트워크의 지원을 얻어야 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왕들과 귀족들이 서로를 죽인 이유는 결국 돈 때문. 돈 앞에서 의무에 기초한 모든 권력은 언제라도 전복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 셰익스피어는 봉건제와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기 한참 전부터 그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그의 역사극과 희극, 비극의 결정적 차이는 희극가 비극은 그의 관객들이 살던 시대의 사회를 묘사했다는 점이다. 그의 희극과 비극에는 불현듯 은행가, 상인, 회사, 월급을 받는 병사, 공화국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런 연극의 전형적 배경은 영주의 성이 아니라 부유한 상업도시다. 전형적 주인공은 용기(오셀로), 인도주의 철학(프로스페로), 법률지식(베니스 상인에 나오는 포르샤)을 이용해 자수성가한 부르주아 남성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런 변화의 끝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대신 그는 그 새로운 경제가 사람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 사람들은 지식을 얻어 더 강한 존재가 됐지만, 일찍이 없었던 큰 욕심, 정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 권력을 향한 갈망에 취약해졌다.
- 가장 최근의 전환이 어떻게 진행됐는가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살펴보고 그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자. 봉건제의 농업모델은 먼저 환경적 제약과 충돌하고, 다음으로는 흑사병이라는 강력한 외부충격을 맞이한다. 흑사병이 지나가고 나서는 인구구성에 큰 변화가 발생. 토지의 양에 비해 노동자가 너무 적었고, 그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자 의무로 유지되는 봉건주의 체제는 더 이상 강요될 수 없었다. 한편으로 노동력 부족은 기술혁신을 유발. 상업자본주의 출현 배경이 된 신기술들은 상업을 발전시키고(인쇄술과 회계법), 무역을 용이하게 하고(광업, 나침반, 빠른 선박), 생산성을 높였다(수학, 과학적 방법) 변화의 전 과정에는 화폐와 신용이 있었다. 화폐와 신용은 구체제에서는 부차적으로 보였지만 새로운 체제의 토대가 될 운명이었다. 기존의 법과 관습은 화폐와 무관하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봉건주의 전성기에는 빚을 죄악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래서 화폐와 신용이 기존의 경계를 넘어 시장 시스템을 만들어내자 그것은 하나의 혁명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시스템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공짜 재화의 무한한 원천을 발견함으로써 더 큰 동력을 얻었다. 이 모든 요인들의 결합은 봉건주의 사회에서 박해를 받거나 주변부로 밀려났던 사람들(인본주의자, 과학자, 기능공, 법률가, 급진적 성직자, 셰익스피어와 같은 보헤미안 극작가들)을 데려와서 사회변화의 선두에 세운다. 국가는 처음에는 주저하며 변화를 가로막으려 했지만 결정적 순간이 되자 변화를 지원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포스트 자본주의로의 전환에도 이것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은 아니겠지만 약간의 유사성은 존재. 주류 경제학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지금 자본주의를 잠식하고 있는 것은 정보다. 과거에 인쇄술이나 과학적 관리법이 수행했던 역할을 현대사회에서는 정보기술 및 그것과 접목된 유전공학, 보건, 농업, 영화 등 다른 분야가 수행한다
- 공짜 재화의 새로운 원천을 현대사회에서 찾는다면 무얼까? 그것은 정확히 말해서 재화가 아니라 외부효과다. 네트워크를 통한 상호작용으로 생성되는 공짜 상품과 행복이다. 그것은 비시장 생산, 소유할 수 없는 정보, 동료 네트워크, 관리자 없는 기업의 출현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얀 물리에부탕의 이론에 따르면, 현대의 신세계 정복에서 인터넷은 배와 바다의 역할을 한꺼번에 수행, 사실 인터넷은 배, 나침반, 바다, 금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 현대의 외부충격이 무엇인지는 명백하다. 에너지 고갈, 기후변화, 고령화, 이민문제와 같은 외부충격은 자본주의의 역하관계를 변화시키고 체제의 수명을 단축함. 이런 문제들은 아직 흑사병가 똑같은 결과를 낳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공황은 우리가 창조한 매우 위태로운 도시사회에 순식간에 재앙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음. 05년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휩쓸었던 것처럼, 현대의 도시에서는 페스트균이 없어도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하부구조를 파괴할 수 있다.
- 역사의 종언까지는 아닐지라도, 신자유주의 질서를 만든 세대에게는 역사가 마치 통제 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금융위기는 통화팽창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고, 군사적 위협은 무인기 폭격으로 제거하면 그만이었다. 힘을 잃은 노동운동은 정치의 독자적 변수가 되지 못했다. 정책을 결정하는 엘리트의 머릿속에는 세상에 대처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심리가 자리잡았다. 그들은 언제나 선택지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때로는 강경한 방법을 써야 할 수도 있었다. 해결책은 항상 있고, 대개의 경우 그 해결책은 시장이었다. 그러나 원래 외부의 충격들은 경각심을 일깨우는 신호다. 기후변화는 우리에게 시장을 통해 탄수 목표치를 맞출지, 아니면 시장을 벗어난 경로를 통해 그 목표를 달성하지를 선택하게 해주지 않음. 기후변화는 시장경제를 질서있게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갑자기 위기가 닥쳐 엉망이 될 것이라는 경고다. 인구 고령화는 세계 금융시장을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이 있고, 일부 국가들은 지불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민과 사회적 전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2010년 그리스에서 일어났던 사태는 그저 몇몇 안 좋은 기억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나라들에게 인구증가, 권력의 부패, 불균형 성장, 기후변화의 충격이 한꺼번에 닥칠 경우는 더욱 심각함. 토지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수천만 단위로 생겨날 것임. 그들에게는 이민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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