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경고

인문 2014. 10. 22. 21:44

 


행복의 경고

저자
엘리자베스 파렐리 지음
출판사
베이직북스 | 2012-11-30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현대인의 맹목적인 행복 추구에 경종을 울리는 인문학 개론서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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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은 살기 위해 먹지. 하지만 인간은 먹기 위해 살아. 음식, 음식, 음식, 인간에게 먹을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인간은 충분함만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아." (너구리 RJ가 다른 동물들에게, 헷지(2006))
- 정신과 의사들에 따르면 오랫동안 비만이었던 사람이 눈에 띨 정도로 몸무게가 줄면 공포심을 느낀다고 함. 마치 혐오했던 지방들이 방어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큰 혼란의 소용돌이 앞에 고스란이 드러난 기분과 나약함을 느낀다는 것.
- 욕망=만족=기쁨=행복이라고 하는 논리의 연결마디마디가 명백히 거짓임. 욕망이 늘 만족되어야 할 필요는 없음. 만족은 종종 우리의 기대보다는 덜 기쁜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짧음. 기쁨을 성취했다 해서 행복이 오지는 않음. 대부분 기쁨의 순간은 기껏해야 우울함과 우울한 증상에서 벗어난 잠시의 기분전환일 뿐임. 최악의 경우 끔찍한 고통을 더욱 강화시키기도 함.
- "나는 고통에 중독되었고 고통스런 상황을 견디곤 했다. 나 자신을 눈물이 날 지경까지 몰아붙였던 그 시절이 그립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경기를 마치고 내 몸이 실제 고통으로 무너지는 듯한 순간이다. 내 몸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난 괜찮아. 나는 사자처럼 경기를 해왔고 절대 죽지 않을 거야."(이안 소프)
- 우리는 고통스러운 것은 정신에 좋다는 오래된 사고방식을 전복시키려 노력하며 이 사상을 달가워하지 않음. 여전히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은 나쁜 것이고 기분좋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믿음. 하지만 진실은 우리가 게으르다는 사실. 만족하는 순간 우리는 게으름을 피움. 그리고 지루해하고 그 다음에는 우울해함. 부자들이 앓는 무기력증인 이른바 부자병은 우울증을 낳음
- 소유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음. 하지만 소유는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킬 뿐임. 소유효과는 상실에 대한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하거나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부정적 효과가 발생하게 되어 소유의 기쁨고 소유하지 않았을 때의 부정적 상태 모두에 더 무게를 두어 생각하게 됨. 일단 정상에 오르면 갈 길은 하나뿐임. 하산하는 것뿐.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이자 선구적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도 이런 말을 했음. "소유의 삶은 행하는 삶이나 존재하는 삶보다 덜 자유롭다"
- 지나치게 많은 선택들이 직면한 사람들은 일종의 백색소음(거의 일정한 주파수 스펙트럼을 가지는 신호로 귀에 쉽게 익숙해짐. 공기정화장치, 진공청소기, 빗소리 등)에 압도 당하는데, 이러한 느낌은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나 쇼핑센터 등과 같은 공간에서 고도의 감각적 자극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의 감각 과잉자극임
- 성공을 겨냥하지 마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겨냥하면 할수록 성공에서 더 멀어진다. 행복과 마찬가지로 성공은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과로 발생해야 한다. 성공이란 자신보다 더 큰 대의에 매진할 때 뜻하지 않은 부산물로 얻어지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 라틴어 페르소나는 페르소나레에서 유래했으며 '통로가 되는'이란 의미. 페르소나라는 단어는 원래 고전주의나 고전주의 이전의 비극에서 가면에 입을 대서 소리를 울리게 하는 마우스 피스에만 사용되었음. 그리스 비극이나 로마비극은 자아의 초월을 단련하는 카타르시스였음. 그래서 가면은 배우의 정체성을 숨기는 역할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하고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울림의 역할을 함. 단단한 돌벽에 난 작은 창이 분리성을 만들어냄으로써 연결성을 극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우스피스로서의 가면은 배우와 배우가 맡은 역할모델(인물)과 융합을 하게 하고 초월적으로 관객과도 융합하게 만듬. 또한 영어로 가면은 마스크이며 영어 구어로 그물코 혹은 체의 의미가 있는 masc와 관련이 있음. 이 단어는 가면의 정면성보다는 흐름과 연결성, 여과와 정제의 의미를 강조. 더 나아가면 으깬다는 의미의 mash와도 관련이 있음. mash는 본질을 분리해 새로운 정체로 통합한다는 의미인 형태주의 관념을 담고 있음.
- 돈이 권력을 드러내는 편리한 지표라면 비만은 영장류가 필요한 것을 넘어 과잉섭취했음을 보여주는 지표. 체지방이 과잉섭취를 나타낸다면 원대한 주거지는 집, 옷, 편안한 도구 등에 대한 게걸스러운 원시적 욕망을 드러냄. 에드워드 윌슨은 육식성 영장류와 동물적 모습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영장류의 행태가 지구의 지배권 행사에 대대적인 돌파구를 만들었다는 점은 이 세계의 불행이라고 했음.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우리의 생존본능이 유용한 정도를 넘어 더 오래 지속되면 인간 뇌의 구피질 깊숙한 곳에서 뭔가 좋은 것이라면 분명 많을수록 좋을 거야 라는 원초적 목소리를 계속 내기 때문. '지구에 마지막 남은 신선한 공기기 있다면 내가 그 마지막 공기를 마시고 싶어. 나는 그 공기를 너무도 원해. 모든 사람에게 장기적으로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기 위해 내 쾌락을 억누르는 대신 그 공기를 얻기 위해 목숨걸고 투쟁할 거야' 라는 목소리 말이다.
- 우리도 알다시피 고통과 박탈의 시기가 가장 좋았던 시절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음. 또한 그럭저럭 지내는 것이 행복한 경우도 많음. 하버드대 정신의학과 조지 베일런트는 지금껏 밝혀진 우울증 최고의 치료법은 이타주의라고 함. 하지만 아직 소비에 몰두하는 형태, 그 자체가 거의 새로운 도덕이 되고 있음.
- 기본적 젠더 생물학 관점에서 보면 남성들은 축구나 총, 로켓처럼 추진력 있는 것을 선호하는 반면 여성들은 수용적이고 무언가를 함유하는 행위, 즉 젖을 먹이고, 쇼핑을 하고, 사교활동을 하고, 가방을 들고, 집을 꾸미는 것에 매력을 느낌. 자동차는 남성과 여성의 필요가 완벽하게 만나는 지점에 있음. 추진력이 있는 컨테이너이자 주머니 로켓인 셈 자동하는 수용과 발사를 동시에 충족함. 자동차 중독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것도 당연함. 또한 자동차는 속도와 거품 양 측면에 모두 마취효과를 제공함. 먼저 속도 측면에서 보자면 속도가 주는 정신적 짜릿함과 더불어 외양상 시간을 절약하는 것 같아 계속 바쁜 상태를 유지하게 해주는 행위에 대한 중독 모두를 누릴 수 있음.
- 여성의 성욕과 소비는 생물행태적으로 유사하며 이들 사이의 유사성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는 여성들의 생태적 특징을 떠오르게 함. 집과 자동차를 아이들과 물건으로 채우고, 자신들과 아이들을 음식으로 채우는 모습 말이다. 쇼핑은 무언가를 채우는 고전적 행위임. 쇼핑=먹는것=섹스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셈. 감정도 이와 비슷함. 잔뜩 쇼핑을 하는 것은 잔뜩 먹는 행위와 신경패턴이 동일함
- 1914~42년 사이 양육방식이 크게 변했음. 1900년대 초반에는 아이에게 지나치게 많이 먹이는 것을 늘 위험하다고 보았지만 점차 적당한 자기조절능력의 관점에서 아이가 타고난 식성을 인정하는 관점으로 바뀌었음. 47년까지 소아과의사이자 교육자인 벤자민 스포크 박사는 어머니들에게 자신을 믿고 즐기라고 조언해주었음.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아기들이 자라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아기들이 원할때마다 음식을 주고, 절대 때리지 말고, 야단치지 말라는 양육방식이 보편적 기준이 되었음. 부모들은 채찍은 없고, 당근만 손에 쥐게 되었음. 어머니가 해야 할 최초의 일은 아이가 존중받거나 존중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을 세워주는 일. 이런 양육방식 때문에 사회는 끊임없는 즐거움을 기준으로 삼고, 이 즐거움을 기대하게 되었음. 고통을 모욕으로 여기는 풍토의 사회에서 채워지지 않은 간절한 열망음 본능을 거스르는 죄악으로 간주됨
- 당근만 주는 교육의 관점에서 본다 하더라도 이런 양육방식은 효과가 없음. 행복감을 심어주기 위해 즐거움만 쌓아두는 것은 근본적으로 역효과를 낳을지도 모름. 원한다고 해서 좋아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예전부터 알고 있음. 그리고 무언가를 원한다고 해서 행복해지거나 성곡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음. 서구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족해지고 있지만 동시에 행복은 시들고 있음.
- 인테리어 잡지는 일반적인 포르노 잡지보다 더 타락했다. "집이 곧 자신이고 그래서 집을 마음껏 즐긴다"는 캐슬의 생각은 인테리어 잡지에 대한 신념이며, 30년 "집의 개성에는 반드시 당신의 개성이 묻어나야 한다"고 했던 예의범절 전문가 애밀리 포스트의 사고에도 기틀을 마련해 주었음. 거의 여성들이 편집하고 그럴듯한 말솜씨, 반복, 놀라우리만치 뇌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미사여구로 가득한 이런 잡지들은 캐슬의 표현대로 싸구려 플라스틱 컵 속의 나르시시즘을 충족시킴. 그렇다면 인테리어 잡지는 포르노가 주는 기분좋은 자극과 나르시시즘의 결핍이라고 하는 슬픈 자부심을 뒤섞은 것. 완벽한 집이 장신구인 여성들에게는 이 장신구가 너무 중요하다 보니 완벽하게 만들어야 하고 완벽한 자동차에 완벽한 아이들을 태우고 완벽한 집으로 가는 삶의 방식을 고수함. 그리고 이것이 모든 소비의 강박관념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음. 거식증처럼 강박적이고, 자기통제적이고, 자아도취적인 모든 행위를 집을 완벽하게 꾸미는 것으로 대신함
- 우리의 아이들은 노력없이 얻은 자존감을 가득안고 자라지만 미래에 그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할지도 모르는 한가지 근육은 쇠퇴할 것임. 바로 역경을 견디는 근육말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세계를 향한 장벽을 쌓음. 장벽 안쪽은 수영장과 게임시설, 홈시어터 등으로 가득 창 있어서 또 다른 집인 자동차 외에는 다른 곳으로 떠날 꿈도 꾸지 않음. 결과적으로 안전을 추구하는 본능과 만족감을 채우려는 본능이 우리 스스로를 걸어 잠그게 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자극인 유대감을 앗아가 버림
- 우리는 이렇게 비옥해진 요새에서, 만족으로 둘러싸인 누에고치의 왕국안에서, 우리 안의 침팬지처럼 빠르게 지루해지고 우울해짐. 그래서 쇼핑을 하고, 물건을 사고, 먹음. 혹은 얇디얇은 페미니즘 시대에서 우리는 자동차, 아이들, 집 등 대체 자아를 살찌움. 음식과 삶의 방식, 게걸스럽게 땅을 소모하고, 공기를 더럽히는 등 모든 행위가 우리의 환경 발자국을 점점 더 크게 만들어 잠시나마 이에 대항할 수 있는 과거 어머니와 같은 지구의 능력을 넘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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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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