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에 대한 모든 것

경영 2023. 11. 19. 15:25

- 혁신은 경이로운 보상이라는 당근 또는 빈곤이라는 채찍을 제공한다. (조지프 슘페터 Joseph Schumpeter)
- 케임브리지와 교토 대학교에서 연구했던 존 컨스터블은 우리가 번영을 누리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것에 의지한다고 지적한다.
모두 예외 없이 열역학적 평형 상태에서 멀리 벗어난 물리적 상태에 있 으며, 세계는 에너지 전환을 통해 이런 편리한 배치에 이르렀고, 그 과정은 때로 아주 오래 걸렸다. 이 에너지 전환을 이용함으로써 우주의 한구석, 즉 우리 세계의 엔트로피는 줄어들고, 대신 다른 어딘가의 엔트로피는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우리 세계가 더욱 질서 있고 더욱 있을 법하지 않은 상태 가 될 때, 우리가 더 풍족해질 때, 그 결과 우주는 전체적으로 더 무질서한 상태가 된다.
따라서 혁신은 에너지를 써서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을 만들 새로운 방 법을 찾아내고, 그 방법이 널리 퍼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뜻한다. 혁 신은 발명 이상이다. 혁신이란 어떤 발명을 사용할 가치가 있을 만큼 충 분히 실용적이고 비용을 감당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고 널리 퍼질 수 있 도록 개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에드먼 드 펠프스Edmund Phelps는 혁신을 "세계 어딘가에서 새로운 관행이 되는 새로운 방법이나 생산물"이라고 정의한다. 이 책에서 나는 발명에서 혁

- 어떤 사업이 성공했다면, 누군가가 그 전에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피터 드러커)
- 뉴커먼 증기기관은 현대 세계를 낳은 어머니였다. 기술이 일의 생산성을 환상적인 수준으로 증폭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고, 점점 더 많은 이를 밭, 개수대, 작업장의 지루한 일에서 해방시켰다. 그 장치는 중요한 혁신 사례다. 그러나 그 출현 과정은 수수께끼처럼 모호하다. 그 장치는 드니 파팽으로 대변되는 영국과 프랑스에서의 과학 발전 덕분에 탄생했을까? 아마 조금은 그러했겠지만, 뉴커먼은 분명히 과학을 전혀 몰랐다. 커다란 청동 실린더와 피스톤을 만들 수 있게 한, 17세기 말 야금술(광석에서 금속 을 골라내는 방법이나 기술옮긴이)의 발전 덕분일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 영 국의 숲이 줄어들면서 장작 가격이 올라가는 바람에 석탄 채굴산업이 급 격히 팽창하고 그에 따라 펌프 장비의 수요도 증가했기 때문일까?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다.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어 자본, 투자, 기업가의 출현으 로 이어진 유럽 북서부의 교역 확대 때문이었을까? 어느 정도는 확실히 그렇다. 그런데 왜 중국, 베네치아, 이집트, 벵골, 암스테르담 또는 다른 어 떤 교역 중심지에서는 이런 조건이 결합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하필이면 왜 1612년이나 1812년이 아니라 1712년이었을까? 혁신은 훗날 돌이켜 보면 아주 명백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
- 사실 1870년대 말까지 스물한 명이 독자적으로 백열전구를 설계했다 거나 중요 개선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독자적으로 개 발을 했다. 슈프렝겔sprengel 수은 진공펌프처럼 전구 제조에 기여한 중 요 기술을 창안한 이들을 제외하고도 이 정도다. 그중에 스완은 에디슨 이 함께 사업을 하자고 나설 수밖에 없을 만큼 철저히 연구를 했고 충분 히 좋은 특허를 지닌 유일한 사람이었다. 사실 전구 이야기는 에디슨이 라는 영웅적인 발명가의 중요성이 아닌 정반대의 방향을 비추고 있다. 점진적이고 집단적이면서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과정으로서의 혁신을 말이다. 전구는 당시에 조합된 기술로부터 불가피하게 출현했다. 다른 기술의 발전을 고려할 때, 그 시기에 출현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 그래도 솔직히 말해서 에디슨은 명성을 누릴 자격이 있다. 비록 전 구의 구성 요소 대부분을 그가 최초로 발명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또 1879년 10월 22일에 그에게 갑작스럽게 유레카의 순간이 찾아오면서 돌파구가 열렸다는 널리 퍼진 이야기가 대체로 후대에 지어낸 전설이라 고 해도, 전구의 모든 것을 하나로 끼워 맞추고, 전기를 생성하고 공급하 는 시스템과 결합함으로써 기름램프와 가스램프라는 기존 기술에 도전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최초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 면 영감이 번뜩였다는 이야기보다 이쪽이 훨씬 더 인상적이지만 그러면 우리의 허영심이 충족되지 않는다. 즉 사람들은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 보다 명석하다고 여겨지는 쪽을 더 좋아한다. 또 에디슨 전구를 (대체로) 신뢰할 수 있게 만든 사람이기도 했다. 신뢰할 수 있을 만큼 오래가 는 전구를 만들었다는 자신만만한 주장을 대뜸 펼쳤기에, 그는 그 호언 장담을 입증하기 위해 미친 듯이 탐색을 시작했다. 오늘날 실리콘밸리에 서 흔히 쓰는 '이룰 때까지 이룬 척하라fake it till you make it'라는 말과 똑 같다. 그는 탄소 필라멘트를 만들 이상적인 재료를 찾기 위해 6,000가지 가 넘는 식물 재료를 시험했다. 에디슨은 간절히 원했다. '전능한 신의 작업장 어딘가에 우리 용도에 딱 맞는 기하학적으로 탄탄한 섬유를 지 닌 식물이 있다. 1880년 8월 2일에 마침내 일본 대나무가 선정되었다. 1,000시간 넘게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재료였다.
- 핵물리학자 버나드 코언 Bernard Cohen은 1990년에 출판한 책 <핵에너 지대안The Nuclear Energy Option>에서 1980년대에 서양 대다수 국가에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중단된 이유가 사고, 누출, 원자력 폐기물 증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규제 때문에 비용이 거침없이 증 가한 탓이라고 했다. 그의 진단이 옳았다는 사실이 시간이 지날수록 명확 해졌다.
이는 새로운 유형의 원자력을 위한 착상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파워 포인트 발표 형식으로 공학자가 제시한 핵분열 원자로 설계안은 수백가 지나 된다. 그중에는 벌써 예전에 작동 가능한 시제품 수준에 이르렀고, 기존 경수로 원자로만큼 자금 지원을 받았다면 거기에서 더 나아갔을 것 들도 있다. 이들은 크게 액체금속 원자로와 용융염 원자로라는 두 범주 로 나뉜다. 후자는 불화토륨이나 불화우라늄의 염을 이용하며 아마도 리튬, 베릴륨, 지르코늄, 소듐 같은 원소도 함께 쓰일 것이다. 이런 설계 의 주된 이점은 연료를 고체 막대가 아니라 액체 형태로 사용하여, 냉각 이 훨씬 균일하게 이루어지고 폐기물 제거도 더 쉽다는 것이다. 고압으 로 운전할 필요도 없으므로 위험도 줄어든다. 용융염은 연료일 뿐 아니 라 냉각제이기도 하며, 뜨거워질수록 반응이 느려지는 절묘한 특성 덕분 에 노심용융(원자력 발전에서 원자로가 담긴 압력용기 안의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면 서 중심부인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것-옮긴이)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특정한 온 도를 넘어서면 녹아내리는 마개도 설계에 들어 있다. 그러면 연료가 다 른 곳으로 빠져나가면서 분열이 중단된다. 제2의 안전장치다. 체르노빌 원자로와 비교하면 안전성이 천양지차다.
토륨은 우라늄보다 더 풍부하다. 또 사실상 우라늄233으로 전환함으로써 거의 무한정 쓸 수 있다. 동일한 양의 우라늄 연료보다 거의 100배 나 많은 출력을 낼 수 있다. 또 분열성 플루토늄을 생성하지 않는다. 반감 기가 더 짧은 폐기물도 덜 생성한다. 미국에서 소듐 냉각재를 쓰는 잠수 함이 1950년대에 운항했고, 1960년대에는 토륨 용융염을 쓰는 실험용 원자로가 두 기 제작되었지만 모든 돈, 훈련, 관심이 우라늄을 쓰는 경수 로 설계에 쏠리면서 토륨 이용 계획은 결국 무산되었다. 다양한 나라가 이 결정을 되돌릴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실제로 앞장서서 그 사업에 뛰어든 나라는 전혀 없다.
설령 토륨 원자로를 상용화한다고 해도, 원자력이 '너무 싸서 사용량 을 따질 필요도 없는 날이 올 것이라는 1960년대의 유명한 약속이 실현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저 원자력이 혁신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어울리지 않는 기술이라는 사실이다. 해봄으로써 배우는 것 말이다. 발전소 자체가 너무나 크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실험을 통한 비용절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건설 도중에 설계를 바꿀 수도 없다. 짓기 전에 설계안 하나하나가 엄청난 규제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리 설계하고 그 설계를 고수해야 하며, 그렇지 않았다가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떤 기술이든 간에 이런 방식을 쓴다면 비용 을 낮추고 성능을 향상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컴퓨터 칩을 1960년 단계 에 머물러 있게 할 것이다. 우리는 원자력 발전소를 이집트 피라미드처 럼 일회성 사업의 형태로 짓고 있다.
1979년 스리마일섬 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래로, 활동가와 대중은 더 높은 안전 기준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한 추정에 따르면 석탄이 원자력보다 출력 단위당 거의 2,000배나 많은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바이오에너지는 50배, 가스는 40배, 수력은 열다 섯 배, 태양력은 다섯 배 (태양전지판을 설치하다가 지붕에서 떨어져서), 심지어 풍력도 두 배 더 많다. 이 사망자 수에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 고로 죽은 이들도 포함된다. 추가 안전 조항은 그저 원자력을 아주아주 안전한 시스템에서 아주아주아주 안전한 시스템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혹은 덜 안전하게 만들어온 것일 수도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재난을 생각해보자. 후쿠시마 발전소는 설계 측면에서 안전성에 엄청난 결함이 있었다. 펌프가 조석파에 쉽게 잠기는 지하실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 후에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적은 단순한 설계 실수다. 이 원자로는 오래 되었기에 만약 일본이 새 원자로를 계속 지어왔다면 훨씬 전에 가동을 멈추었을 것이다. 비용 부담을 높이는 과잉 규제로 인해 원자력의 확대 와 혁신이 억눌리는 바람에, 후쿠시마 발전소는 사용연한을 지나서까지 가동되었고, 그리하여 안전에 취약해지고 있었다.
- 값싼 가스, 값싼 석유 과잉 상태는 2015년 OPEC이 수압파쇄 채굴업 체를 무너뜨리기 위해 의도한 것이지만, 정반대 효과를 낳았다. 약한 기 업은 사라졌지만 생존기업은 석유 배럴당 60, 50, 40달러에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값싼 탄화수소 덕분에 미국 제조업은 유 리한 입장에 섰고, 화학업체가 미국으로 빠르게 '본국 회귀'를 하고 유럽 을 떠나는 사례가 급증했다. 영국을 비롯한 12개국의 에너지 정책은 화 석연료의 가격이 끊임없이 올라감에 따라서 풍력과 원자력이 덜 비싸게 여겨질 것이라는 전제 아래 수립되었는데, 거의 하룻밤 사이에 값비싼 어리석은 짓이 되었다.
이 혁신은 왜 미국에서, 오래되고 효력이 다된 그리고 원유와 가스가 잘 탐사된 지역에서 일어났을까? 어느 정도는 재산권 때문이다. 채광권 이 국가가 아니라 지주에게 속하기 때문에, 또 멕시코에서 이란에 걸친 여러 나라에서 그랬던 것과 달리 석유회사를 국유화한 적이 없기 때문에 미국에는 풍부한 위험자본의 지원을 받는 '모험' 산업 형태의 경쟁적이 고 다원적이고 진취적인 원유 채굴업체가 있었다. 초기 수압 파쇄 채굴업체는 엄청나게 대출금을 많이 받아 쓴 뒤에야 흑자로 돌아섰다. 그 일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주요 혁신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소기업은 일반적으로 지주와 더 사적으로 만날 수 있기에, 지주로부터 채광권을 대여하는 데 유리한 편이다. 많은 소기업이 셰일 생산을 열정적으 로 추구했고, 그들은 다양한 채굴 방법을 여러 분지에서 시험하고 실행하여 완성했다. 이런 '실험실들은 지속적인 개선을 이루었고 경제적 성공을 낳 았다.
- 백신 접종은 혁신의 흔한 특징 중 하나를 보여주는 사례다. 혁신을 이 해하기도 전에 이미 이용하는 일이 흔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술 과 발명은 '왜 작동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공 적으로 쓰여왔다. 치명적인 질병의 균주에 노출해서 그 병을 막는다는 메리의 개념이 18세기의 합리적인 사람에게는 분명 어처구니없어 보였 을 것이다. 그 개념은 아무런 합리적인 근거를 지니고 있지 않았으니까. 18세기 말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등장하고서야 백신 접종이 어 떻게 그리고 왜 효과가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파스퇴르는 발효된 액체를 끓인 뒤 공기를 통해 운반되는 병균에 노 출되지 않는 한 액체가 더 이상 썩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있음을 보여줌 으로써 병균이 미생물임을 증명했다. 그는 그 액체를 담은 유리병 주둥 이를 백조 부리처럼 길게 구부려서 세균이 지나갈 수 없도록 만든 뒤 그대로 열어둠으로써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걸 결정적으로 입증했다. 그는 1862년에 이렇게 자랑했다. "자연발생 교리는 이 단순한 실험이 입힌 치 명적인 타격에서 결코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감염병을 미생물(세균과 훨씬 더 작은 바이러스의 구분은 아직 이루 어지지 않은 때였다)이 일으킨다면, 접종을 미생물의 특성 변화와 그 미 생물에 대한 인체의 취약성 변화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파스퇴르의 설명은 행운으로 이끈 우연한 사고의 산물이었다. 1879년 여름 그는 휴 가를 떠나면서 조수인 샤를 샹베를랑Charles Chamberland에게 닭 콜레라균 이 들어간 닭고기 수프를 닭에게 먹이는 일을 맡겼다. 콜레라균의 특성 을 이해하기 위한 일련의 실험 중 일부였다. 그런데 샹베를랑은 지시를 까맣게 잊은 채 자신도 휴가를 떠났다. 그리고 돌아와서 실험을 했더니, 상한 수프가 닭을 앓게 할 수는 있지만 죽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아마도 직감에 따랐겠지만, 파스퇴르는 정상적이라면 으레 닭을 쉽사 리 죽일 병원성 콜레라균주를 오래 앓은 뒤) 회복된 닭에게 주사했다. 그런데 닭은 죽기는커녕 앓지도 않았다. 약한 콜레라균주가 더 강한 균 주에 맞설 수 있는 면역력을 키웠던 것이다. 파스퇴르는 백신 접종이 병 원성이 약한 균주로 면역 반응을 일으킴으로써 더 강한 균주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는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의 면역계에 관해 아직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였다. 과학은 이제 기술을 따라잡기 시작하고 있었다.
- 살충제에 적신 모기장은 2003년부터 널리 쓰이 기 시작했고, 바로 그해에 말라리아 사망률은 증가세를 멈추고 줄어들 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말라리아 사망률 감소로 목 숨을 구한 600만 명 중 70퍼센트는 살충제 처리를 한 모기장 덕분이라 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네이처 Nature>에 발표되기도 했다. 말라리아 치 료제와 살충제 살포의 효과를 더한 것보다 두 배 더 많다. 2010년경에 는 해마다 1억 4,500만 개의 모기장이 보급되었다. 지금까지 10억 명이 넘는 이들이 이 모기장을 사용했다. 전 세계를 보면 말라리아 사망률은 21세기의 첫 17년 사이에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 2010년 광고회사의 중역인 로리 서덜랜드 Rory Sutherland는 오랜 친구 인 데이비드 핼펀David Halpern을 만나러 런던 도심의 애드미럴티아치에 있는 사무실에 들렀다. 핼펀은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가 신설한 행동통찰팀 Behavioural Insights Team, 별칭 '넛지 부서 nudge unit'라는 곳의 책임자로 막 임용된 참이었다. 대화를 나누다가 서덜랜드는 온라인으로 구매한 전자담배를 꺼내어 빨았다.
그 무렵에 전자담배는 호주,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금지되어 있었다. 사실상 새로운 형태의 흡연이라고 우려하는 담배 농민이나 공중보건 압력단체의 촉구 때문이었다. 조만간 영국도 그 기술에 불법 조치를 내릴 것이 확실했다.
- 핼편은 그전에는 전자담배를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서덜랜드에게 그 게 뭐냐고 물었고, 전자담배의 위험을 무릅쓴다면 두 가지 악을 줄일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흥미를 느꼈다. 천연두를 막은 백신 접종이 나 장티푸스를 막은 염소 소독처럼. 또는 헤로인 중독자들에게 깨끗한 바늘을 나누어주어서 HIV 감염을 막는 것처럼 말이다. 이 논란 분분했던 정책은 1980년대에 영국에서 채택되었는데, 마약 중독자의 HIV 감염률 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낮게 유지하는 데 놀라울 만치 효과가 있음이 드 러났다. 핼펀은 나중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증거를 열심히 모았고 하원 에서 자세히 설명한 뒤, 정부의 전자담배 금지 움직임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실 우리는 거기에서 더 나아갔다. 우리는 전자담배가 더 널 리 쓰일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품질과 신뢰도를 개선하는 쪽으로 규제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그것이 바로 많은 의학 전문가, 언론, 세계보건기구와 유럽집행위원회 가 격렬하게 반대했는데도, 다른 나라보다 영국에서 이 혁신이 더욱 유 행하게 된 이유다. 현재는 엄밀하게 수행된 연구를 통해 전자담배가 위 험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흡연보다는 그 위험성이 훨씬 낮다는 강력한 증거가 나와 있다. 위험한 화학물질이 덜 들어 있고, 임상 증상을 덜 유 발한다는 것이다. 2016년의 한 연구에서는 기존 흡연자에게 전자담배 를 5일 동안 피우게 하자 혈액의 독성물질 수치가 담배를 아예 끊은 사람 과 동일한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2018년에는 전자담배로 바꾼 흡연자 209명을 2년 동안 추적 조사한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 안전 문제나 심각한 건강 합병증이 생겼다는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전자담배는 메리 워틀리 몬터규의 접종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 이해집단으로부터 동일한 유형의 격렬한 반대를 맞닥뜨렸다. 많은 나라 에서 담배업계가 전자담배를 금지시키는 데 성공했다. 제약사는 전자담 배를 금지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래야 금연 껌이나 패치를 더 많이 팔 수 있을 테니까. 공중보건 쪽 로비 단체도 전자담배를 금지하자고 주장했 는데, 그래야 자신들의 금연운동을 계속 펼칠 수 있어서였다. 2014년에 볼라 유행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 일을 우선시해야 마땅한 상황에 서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인 마거릿 챈Margaret Chan은 전자담배 금지를 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기도 했다. 유럽집행위원회도 2013년에 전자담배를 의료품으로 규제하자고 요구함으로써 그 산업을 죽이려 시도했다.
- 그 안은 기각됐지만, 2017년에 시행된 유럽의 담배제품지침은 고농 도 액상 전자담배를 금지하고 전자담배의 광고도 금지했다. 이 타협안은 표준을 마련하고 성분의 독성 검사 등 엄격한 제품 안전 규제를 받도록 하고, 개조가 어렵고 누출을 막는 포장을 하도록 하는 등의 규정을 제시 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전자담배 업계를 돕는 역할도 했다. 반면에 미국 에서는 규제 자체가 거의 없었지만, 전자담배 제품을 금지하려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곧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암시장에서 니코틴이 아니라 대마의 성분 THC 오일이 든 전자담배를 구입해서 피운 이들이었다. 그 오일에는 비타민E 아세테이트라는 증점 제가 섞여 있었다. 사실상 금주법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영국 정부는 전 자담배를 장려하면서도 제품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반면, 미국 정부는 전 자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면서 그 안전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 지 않는다.

- 실패는 그저 더 영리하게 다시 시도할 기회일 뿐이다. (헨리 포드 Henry Ford)
- 괴짜이자 외골수인 포드는 처음에 자동차산업과 관계없는 낙오자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쪽으로는 거의 한 일이 없었다. 그는 두 차례 자동차 회사를 창업했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값비싼 자동차 설계도를 베끼려다가 실패했다. 첫 번째 회사는 스스로 문을 닫았고, 두 번째 회사에서는 쫓겨났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모델 A 라는 별 특징 없는 디자인의 차를 내놓았는데, 자금이 거의 다 떨어진 상 태에서 그럭저럭 간신히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팔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비용을 절감하는 쪽으로 탁월한 재능이 있었기에, 이윽고 시판되고 있 는 대부분의 차보다 더 단순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차를 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을 더 떨어뜨릴 수 있었다. '틴리 지Tin Lizzie'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모델 T는 튼튼하고 고장이 잘 안 나서 소도시까지 오가야 하는 미국 중서부 농민에게 매력적인 제품이었 다. 1909년경에는 공장에서 나오자마자 차가 팔려나갔고, 그는 더욱 원 대한 구상을 했다. 포장도로가 드물던 시대였기에 여전히 말이 자동차의 주된 경쟁자였다. 포드의 한 광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 집의 마 차를 끄는 말 올드더빈은 포드 자동차보다 더 무거워. 그런데 힘은 포드 의 20분의 1밖에 못 내. 포드만큼 빨리 달리지도 멀리 가지도 못해. 유지 비도 더 들어. 거의 구입비만큼 들어."
그렇다면 내연기관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증기기관과 (뒤에서 만날)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답은 단순하지 않다. 포 드는 자동차를 저렴하게 만들어서 널리 보급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자 동차의 특징은 마이바흐가 설계했다. 르바소는 중요한 부분을 개선했고, 다임러는 자동차가 제대로 달릴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벤츠 덕분에 자 동차는 석유로 달리게 되었다. 오토는 엔진 사이클을 고안했으며, 르누 아르는 최초로 엉성한 내연기관을 설계했다. 자동차의 역사는 드 리바즈 로부터 시작되었다. 게다가 이 복잡한 역사에서 빠진 이름도 많다. 
- 내연기관의 성공은 주로 열역학적인 측면에서의 성공이다. 바츨라 프 스밀 Vaclav smil이 주장하듯이, 이 성공을 보여주는 주된 척도는 와트 당그램9/w이다. 그러니까 일정한 양의 에너지를 생성하는 데 얼마나 많 은 질량이 필요한가이다. 사람과 짐을 끄는 동물은 약 1,000g/W이다. 증기기관은 그 비율을 약 100g/W까지 낮추었다. 메르세데스 35hp는 8.5g/W에 가까웠고, 모델 T는 겨우 5g/W이었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계 속 낮아졌다. 1913년에 미국인 평균 임금을 받는 사람은 모델 T'를 사려 면 2,625 시간을 일해야 했다. 2013년에 평균 임금을 받는 사람은 그 시 간의 18퍼센트에 불과한 501시간만 일하면 포드 피에스타를 살 수 있었 다. 모델 T에 없던 안전띠, 에어백, 문 유리창, 후사경, 온풍기, 속도계, 와 이퍼까지 갖춘 차다.
- 랭글리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잘못을 저지른 반면 (많은 돈을 쓰고, 정 부에 의존하고, 사람들에게 자문을 거의 구하지 않고, 기존에 나온 것에 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대신에 아예 처음부 터 시작해 완전한 비행기를 만들려고 시도한 것) 라이트 형제는 모든 일 을 올바로 진행했다. 경험 많은 자전거 제작자이자 부지런한 기술자였 던 그들은 동력 비행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도전과제를 하나하 나 체계적으로 풀어나갔다. 먼저 그들은 다른 이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타인의 경험을 받아들였다. 특히 독일의 글라이더 설계자 오토 릴리엔 탈Otto Lillenthal (1896년 글라이더를 타다가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과 시 카고에 사는 괴짜 프랑스계 미국인인 옥타브 샤누트Octave Chanute에게서 많은 조언을 얻었다. 샤누트는 비행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많 이 기울였으며, 비행에 관한 착상을 주고받는 넓은 교류망의 중심축이었 다. 라이트 형제는 샤누트에게 총 177번 편지를 썼다. 또 그들은 상승기 류를 타고 나는 새들을 강박적으로 관찰했다. 라이트 형제는 이런 다방 면의 조사를 통해 양력을 제공할 에어로포일aerofoil 날개의 곡률, 쌍엽기 개념과 날개를 구부려서 조종을 한다는 개념 등 여러 중요한 착상을 이 끌어냈다. 1900년에 그들은 글라이더를 만들어서 캐롤라이나 해안의 모래섬에서 이를 날리면서 연구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연처럼 끈에 묶어서 날렸고, 그 뒤에는 언덕 아래로 달리면서 바람에 떠오를 때 올라타곤 했 다. 1901년 모기가 우글거리고 폭풍이 몰아치는 와중에 그들은 두 보조 자 및 샤누트와 함께 키티호크에서 야영을 하며 글라이더의 설계를 수정했다. 그런데 막상 수정하고 나니 1년 전보다 성능이 떨어졌다. 더 빨리 떠오르긴 했지만 쉽사리 가라앉았다. 그들은 릴리엔탈이 추천한 굽은 날 개의 높이 대 폭의 비율을 1:12로 그대로 모방했는데, 너무 많이 휘었던 것이다. 1:20 인 더 편평한 날개일 때 글라이더는 더 잘 날았다.
라이트 형제는 데이턴으로 돌아가서 모형을 통해 풍동실험 wind tunnel 을 시작했다. 수천 번 공들여서 측정한 끝에 그들은 양력과 항력을 제대 로 이해할 수 있었다. 여름에 자전거 판매량이 가장 늘어나는 시기가 지 나자마자 그들은 1902년 세 번째로 설계한 글라이더를 가지고 키티호 크로 돌아왔다. 그런 뒤 방향타를 비롯하여 여기저기 개량을 하면서 공 중에서 조종하는 방법을 힘들게 터득했다. 그러기까지 그들의 작업물은 자주 추락하곤 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은 모터를 제외한 모든 것을 하나둘 끼워 맞춰갔다.

- 이 질소에 대한 갈망을 설명할 과학은 훨씬 뒤에 나왔다. 단백질이나 DNA의 모든 구성단위에 질소 원자가 몇 개씩 들어 있고, 공기의 주성분 이 질소이긴 하지만 대기 질소는 대부분 원자 두 개가 3중 공유 결합으 로 단단히 붙어 있는 질소 분자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였 다. 이 결합을 끊어서 질소를 쓸 수 있는 형태로 만들려면 엄청난 에너지 가 필요하다. 열대에서는 잦은 번개가 에너지를 제공함으로써 그 땅을 조금은 기름지게 유지하며, 논에서는 조류와 식물이 대기 질소를 고정하 여 토양에 질소를 공급한다. 반면 밀 같은 작물을 기르는 온대지역의 밭 은 질소가 설령 고갈되지는 않는다고 해도 부족할 때가 아주 많다.
1843년 영국 하트퍼드셔의 로댐스테드에 비료의 효과를 보여주기 위 해 브로드벌크라는 밭이 따로 조성되었다. 그 뒤로 이 밭의 한쪽에는 비 료를 전혀 주지 않은 채 해마다 가을밀을 심었다. 해가 갈수록 맺히는 날 알이 점점 줄어들면서 소진되었고 황량한 풍경이 펼쳐졌다. 1925년경에는 헥타르당 수확량이 0.5톤에도 못 미쳤다. 농장에서 받은 거름이나 질산염 비료를 준 구역에서 수확되는 양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1925년에 휴경을 한 뒤에는 돌려짓기를 했다. 그러자 한 해 걸러서 야생 토끼풀이 자라면서 약간의 질소가 공급되었다. 그 결과 비료를 주지 않 는 구역의 수확량이 얼마간 증가했지만, 많이는 아니었다. 이 결과가 인 류에게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다른 곳에서 또는 다른 시기에 길러서 소 나 사람에게 먼저 먹여 얻은 거름의 형태로 질소를 지속적으로 공급하지 않는다면, 경작은 인류를 계속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 바스프는 1910년 하버가 오스뮴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발표 하는 것까지는 허가했지만, 철 혼합물 촉매는 비밀로 유지하도록 했다. 그 촉매를 영업 비밀로 삼아서 바스프는 계속 업계 선두를 유지할 수 있 었다.
그래도 아직 엄청난 도전과제가 남아 있었다. 대기에서 질소를 분리 하는 방법, 뜨거운 코크스에 증기를 뿜어 일산화탄소를 생기지 않게 하 면서 수소를 충분히 많이 생산하는 방법, 유례없는 수준의 고압을 생성 하는 방법, 아주 뜨거운 온도에서 그런 압력을 유지하는 방법, 가스를 주 입하고 암모니아를 추출하는 방법도 개발해야 했다. 개발 인력은 점점 불어나서 이윽고 세계 최대 규모의 과학자와 공학자 집단이 되었다. 맨 해튼계획이 나오기 전까지 그러했다. 수많은 혁신 이야기처럼, 하버보 슈 이야기도 흔히 한 학자(하버)의 탁월한 통찰과 그 뒤에 따르기 마련 인 사업가(보슈)의 응용이라는 단순한 형태로 제시되곤 하지만, 그런 설 명은 잘못된 것이다. 하버의 영감보다 보슈의 땀이 활약할 때 훨씬 더 많 은 창의성이 필요했다. 헤이저가 설명하듯이, 이런 도전과제는 모두 다 른 나라에서 발전한 개념을 접할 수 없었다면 해결이 불가능했다. 그러 니 이 이야기는 혁신이 혁신의 생태계에서 번영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 는 사례다.
- 보슈의 개발진은 기관차 엔진, 휘발유 엔진, 루돌프 디젤이 발명한새 엔 진에서 설계의 단서를 찾으려 애썼다. 또 보슈와 기술자들은 독일 철강업계 사람과도 만났고, 철강을 제조하는 베서머 공정을 배웠고, 크룹스의 경영진 과대포 설계와 야금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발전에 관해 이야기를 나 누었다. 보슈는 동작 속도가 빠른 밸브, 스스로 닫히는 밸브, 슬라이드 밸브, 크고 작은 왕복 펌프와 순환펌프, 온갖 종류와 크기의 온도 감지기, 압력계, 밀도계, 이상 경보기, 비색계, 고압 파이프 설비 등을 개발하는 팀도 구성했 다. 고온과 엄청난 압력 아래에서 모든 것이 터지거나 새거나 하지 않으면 서 제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오븐은 작은 폭탄처럼 터질 가능성이 있었다. 보슈는 공정을 꼼꼼히 지켜보다가 뭔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즉 시 차단할 수 있게 설계하기를 원했다.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고 신속하게 조치할 수 있기를 바랐다. 씨름 선수의 힘, 단거리 선수의 속도, 발레리나의 우아함을 겸비한 기계를 원했다.
- 그러나 이 글을 쓰는 현재, 미래에는 하버 보슈 공정이 딱히 필요 없 어질 가능성도 언뜻 엿보인다. 1988년 두 브라질 과학자 요한나 되베 라이너 Joanna Döbereiner와 블라디미르 카발칸테 Vladimir Cavalcante는 한 특이한 현상에 주목했다. 몇몇 사탕수수밭이 수십 년 동안 비료를 전혀 주지 않았음에도 꾸준히 수확량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들이 식물 조직 을 조사했더니, 글루코나케토박테르 디아조트로피쿠스Gluconacetobacter diazotrophicus 라는 세균이 들어 있었는데, 대기의 질소를 고정하는 세균 이었다. 완두와 대두 같은 콩과 식물에도 이 능력이 있다. 뿌리혹에 사는 질소 고정 세균과 식물이 공생 관계를 맺은 덕분이다. 연구자들은 옥수 수와 밀 같은 작물이 콩과 식물의 습성을 모방하게 하려 했지만, 지금까지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뿌리혹 같은 특수한 기관이 없어도 식물의 조 직 내에 사는 이 새로운 세균을 이용하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 다. 노팅엄 대학교의 테드 코킹 Ted Cocking 교수는 그 세균을 건네받아 실 험을 했는데, 곧 정말로 다양한 식물종의 세포에서 살아가도록 세균을 구슬릴 수 있었다. 야외 시험 재배를 하니, 그런 공생 옥수수, 밀, 벼의 수 확량과 단백질 함량이 뚜렷하게 향상되었음이 드러났다. 코킹이 데이비 드 덴트David Dent와 함께 창업한 어조틱은 2018년에 그 세균을 종자 피 복제로 미국 농민들에게 판매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 단순한 방식이 성공한다면, 암모니아를 굳이 공장에서 합성하지 않고도 세계 인구를 먹 여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 키 작은 밀 유전자가 일본에서 발견되어 워싱턴에서 교배되고, 멕시코에서 적응을 거쳐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에 도입되기까지의 이 50년에 걸친 이야기는 인류 역사상 몇 손가락에 꼽히 는 기적 같은 일화이다. 이나스카-볼로그 유전 품종, 하버-보슈 질소 비 료 덕분에 인도는 식량을 자급자족함으로써, 기아가 심해지리라는 예측 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했을 뿐 아니라 곡물 수출국이 되었다. 따라서 노 린-10호의 작은 키를 만드는 변이 유전자(Rht1와 Rht2라는 두 돌연변 이인데, 생장 호르몬에 덜 반응하게 만들기 때문임이 드러났다)는 대기 질소를 고정해서 만든 비료와 결합되어 세상을 바꾸었다. 곧 키가 작고 수확량이 많은 벼 품종도 개발되었다. 다른 작물들도 그 뒤를 따랐다. 녹 색 혁명이 인도에서 농민 자살률을 높였으며 다양한 환경적 및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서 반대 운동이 펼쳐졌다는 소식은 가짜뉴스임이 드러났 다. 실제로 인도 농민의 자살률은 인도 전체의 평균보다 낮았다.
- 살충성 단백질은 식물 내부에 들어 있으므로, 솜벌레나 뿌리공충처 럼 식물 조직 안에 들어가 살아서 분무해서는 닿기 어려운 애벌레도 죽 일 것이다. 그러나 화학물질 분무제와 달리, 그 작물을 먹으려 하지 않는 무해한 곤충 종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방 식은 대성공을 거둔 혁신임이 드러났다. 지금 우리가 구입하는 면직물 옷은 거의 다 그런 유전공학적 식물의 산물이다. 세계에서 재배되는 목 화의 90퍼센트 이상이 곤충 저항성을 지닌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이 기술이 아직 불법이었을 때도 농민들은 이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다 른 나라에서 뚜렷하게 놀라운 혜택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에 합 법화가 이루어졌고, 오늘날 두 나라에서 재배되는 목화는 거의 다 Bt 작 물이다.
세계에서 재배하는 옥수수의 약 3분의 1은 현재 곤충 저항성 작물이다. 마찬가지로 Bt 유전자를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현재 옥수수의 79퍼센트가 Bt이며, 지난 20년간 이 기술로 농가가 얻은 누적 혜택은 250억 달러를 넘는다. 기이하게도 동일한 분자를 분무제로 써왔음 에도 유기농 쪽은 새 작물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원칙적으로 생명공 학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Bt 작물은 살충제를 전혀 뿌리지 않아도 보호가 되기에 Bt 기술을 채 택한 농장에서는 야생생물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해왔고, 분무제를 쓸 때 생기는 농민의 중독 사례도 줄어들었다. 중국의 몇몇 연구에 따르면 Bt 목화밭에서 무당벌레, 풀잠자리, 거미 같은 곤충 포식자의 수가 두 배 로 늘었다고 한다. 즉 천적을 통한 해충 방제가 더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메릴랜드 대학교의 연구진은 Bt 작물이 '후광효과'를 일으킨다 는 것을 밝혀냈다. Bt 작물을 기르지 않는 주변의 작물과 밭에서도 해충 문제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Bt 작물이 도입된 이래 20년 사이에 옥수수 뿐 아니라 다른 식물도 공격하는 유럽조명나방과 큰담배나방 유충이라 는 두 흔한 해충의 개체군은 줄어들어 왔다. 미국 세 개 주에서는 유전자 변형 작물을 심지 않고 유기농 재배를 하는 농민조차도 전보다 분무 살충제를 덜 써도 될 정도다. 고추에는 85퍼센트나 덜 쓰고 있다. 

- 공장에서 동일한 크기와 모양의 상자에 상품을 미리 실은 뒤 열지 않 은 채로 선박에 하역하는 표준 컨테이너의 개념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 다. 철도업계는 표준 컨테이너를 수십 년째 실험하고 있었으며, 트럭 운 송업계도 그러했다. 시트레인라인스라는 미국 기업은 1929년에 철도 유 개화차(지붕이 있는 화물차-옮긴이)를 운반할 특수하게 설계된 선박을 사용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몹시 실망스러웠다. 컨테이너가 너무 커 서 채우는 데 오래 걸린다고 공장에 하염없이 놓여 있거나, 너무 작아서 별 도움이 안 될 때가 많았다. 게다가 컨테이너 자체 무게로 화물 비용이 더 늘어났다. 또 서로 산뜻하게 들어맞지 않거나 반쯤 빈 상태로 운송되 는 바람에 공간 낭비도 심했다. 한 유력한 선박회사의 경영자는 1955년 에 "화물 컨테이너는 도움보다는 방해가 되어왔다"라고 결론을 내렸지 만, 그 말은 곧 완전히 틀린 것으로 드러난다.
- 실제 역사를 조사한 레빈슨은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매클레인이 부두 옆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에 많은 이가혹한 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놀랐다. 설령 출처가 의심스럽다는 것이 드러난다고 해도 젊은 아이작 뉴턴의 머리에 사과가 떨어졌을 때처럼 어떤 영감이 반짝 이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개념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대조적으로 혁신이 어떤 사람이 이미 쓰이고 있는 개념을 적용하고 다른 누군가가 그것으로 수 익을 올리는 법을 알아내는 식으로 단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개념은 별 호소 력이 없다.

- 분명히 착상을 떠올린 사람이 없어서 이전에 이러한 가방이 나오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바퀴 가방의 유행을 가로막은 것은 그보다는 주로 역과 공항의 구조였던 듯하다. 당시에는 짐꾼이 많았고 특히 사업 가들은 기꺼이 짐꾼을 썼다. 탑승장과 중앙 홀은 차를 몰고 와서 내리는 지점과 가까웠다. 계단도 많았으며 공항은 작았다. 게다가 여성보다 남성이 더 여행을 많이 했고, 그들은 짐을 들지 못할 만큼 약해 보이지나 않 을까 우려했다. 바퀴는 무겁고 쉽게 부서졌고, 말을 잘 듣지 않을 때가 많 았다. 여행 가방 제조사의 미적거리는 태도가 유행을 늦추었을지도 모르 지만 그들 모두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에 항공 여행이 빠르게 팽창하면서 승객이 걸어야 할 거리도 늘어났고, 그럼으로써 바퀴 가방의 수요에 전환점이 일어났다.
10년 뒤 더 뛰어난 혁신이 등장하면서 새도의 디자인을 대체했다. 바로 롤러보드 rollaboard였다. 노스웨스트항공의 조종사인 로버트 플래 스Robert Plath가 이를 발명했다. 1987년 그는 집 작업실에서 새도가 한 것 과 달리 가방 밑면 직사각형의 네 귀퉁이가 아니라 한쪽 짧은 변의 양끝 에만 바퀴 두 개를 달았다. 이제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손잡이를 써서 가방을 한쪽으로 기울인 채 끌 수 있었다. 플래스는 몇몇 동료 조종사에 게 이 가방을 팔았다. 그러자 승객들이 가방을 보고 어디에서 구했는지 묻기 시작했다. 플래스는 항공사를 떠나서 트래블프로라는 회사를 차렸 고, 사업은 금방 성공을 거두었다. 회사는 바퀴 네 개가 달린 제품도 내놓 았고,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을 써서 무게를 줄인 제품, 밀거나 당겨서 어 느 방향으로든 굴릴 수 있는 바퀴도 개발했다. 이제 혁신은 계속되면서 여행 경험을 바꾸고 있다.
바퀴 가방은 세계가 준비되기 전에는 혁신을 할 수 없을 때가 많다는 교훈을 준다. 그리고 세계가 준비가 되면 이미 그 착상은 나와 있으며 구 현되기를 기다린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렇다. 공산주의 시대의 러시아 나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 무어의 법칙에 관한 법칙이 하나 있다. 무어의 법칙의 종말을 예측하는 이들의 수가 2년마다 두 배씩 늘어난다는 것이다. (피터리 Peter Lee, 마이크로소프트리서치, 2015년)
- 마르코니가 없었다고 해도, 무선은 1890년대에 등장했을 것이다. 인 도의 자가디시 찬드라 보세Jagadish Chandra Bose, 영국의 올리버 로지oliver Lodge,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포포프Alexander Popov 같은 이들이 비록 모두 다 통신과 관련된 것은 아니었지만 전자기파를 써서 원격 작용을 일으키 는 실험을 하거나 실험 결과를 발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에 두아르 브랑리 Édouard Branly와 볼로냐의 아우구스토 리기 Augusto Righi 같 은 이들은 그런 전파를 더 잘 전송하고 받는 장치를 발명하고 있었다. 그 리고 쉴 새 없이 일하며 전기 모터, 교류 등 무선과 관련된 많은 것을 발 명한 천재 니콜라 테슬라도 있었다. 마르코니는 그저 또 한 명의 실험가 였을 뿐이다. 아주 뛰어난 실험가이긴 했다. 그러나 뉴볼트 덕분에 그는 자신의 발견에 최대로 폭넓은 범위의 특허를 빨리 받음으로써, 지식재산 권 제도가 발명가 가운데서 한 명을 골라내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발명가들이 그 제도의 도움을 받는 것 못지않게 말이다.
- 또 마르코니는 남들의 장치와 생각을 취해서 단순하면서 실용적인 형 태로 조합하는 법도 알았다. 그의 전기에서 마커스 라보이 Marcus Raboy는 이렇게 썼다. "1895년 몇 달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마르코니는 코히러 검파기를 완성하고, 안정적인 전건을 발명하고, 유도 코일의 효율을 높이고, 모스 타자기와 전신 중계기를 송신기 및 수신기와 연결 하고, 생성되는 전기 불꽃을 조절했다."
또 그는 경쟁자들보다 더 상업화에 관심을 가졌다. 1897년 그는 브리 스톨해협에서 수면 너머 1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신호를 보내는 데 성 공했고, 그 기술의 개발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아일 오브와이트와 본머스에 송수신소를 세웠다. 1899년에는 영국해협 너머 로 메시지를 전송했고, 1902년에는 캐나다의 케이프브레턴에서 대서양 을 건너 콘월의 폴두로 신호를 보내는 데 성공했다.
- 증기 기관의 기원이 1700년대 초의 안개 속에 흐릿해진 것처럼 그 시대 에는 무명의 가난한 이들이 이바지하고도 별 보상을 받지 못했고 그들 의 모험이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컴퓨터를 누가 발명했는 지는 훨씬 더 쉽게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주요 참가자들이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남길 기회를 충분히 얻었고 그들이 역사를 일구고 있음을 누구나 잘 알았을 20세기 중반의 발명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행운은 없었다. 훨씬 더 오래된 불확실한 혁신과 마찬가지로, 컴퓨터의 기원도 수수께끼 같고 혼란스럽다. 컴퓨터의 발명가라는 영예를 받을 자격이 있 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신에 매우 조금씩 점진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 치면서 뒤얽힌 과정에 중요한 기여를 한 많은 이가 있다. 컴퓨터가 출현 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어떤 순간이나 장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순간 같은 것이 없듯이 말이다.

- 요약하자면 에니악은 발명된 것이라기보다는 더 이전의 개념과 기계를 조합하고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컴퓨터의 점진적인 진화 과정에서 한 단계를 차지할 뿐이다. 컴퓨터의 발전에 기적의 해가 있었다면, 즉 개념과 장치의 교차 수정으로 가장 생 산적인 결실을 거둔 해가 있었다면 언제일까? 월터 아이작슨은 1937년 이라고 본다. 바로 그해에 튜링은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를 발표했 고, 클로드 섀넌은 스위치의 회로가 불 대수를 구현할 수 있음을 설명했 고, 벨연구소의 조지 스티비츠George Stibitz는 전기식 계산기를 제안했고, 하워드 에이킨은 마크 1을 의뢰했고, 존 빈센트 아타나소프는 전자 컴퓨 터의 핵심 특징을 제시했다. 또 1937년에 베를린의 콘라트 추제 Konrad Zuse는 펀치 카드에서 프로그램을 읽을 수 있는 계산기의 시제품을 만들 었다. 그가 1941년 5월 베를린에서 완성한 Z3 기계도 범용 프로그래밍 이 가능한 디지털 컴퓨터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다른 기계들만큼 일찍 나온 것이었으니까.

- 혁신은 실리콘에서, 디지털 생산라인에서 굴러 나왔다. 1971년 마 이크로프로세서, 1972년 최초의 비디오게임, 1973년 인터넷을 가능하 게 한 TCP/IP 프로토콜, 1974년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춘 제 록스 파크 앨토 컴퓨터, 1975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의 애플 1. 1976년 크레이 1 슈퍼컴퓨터, 1977년 아타리 비디오 게임 콘솔, 1978년 레이저 디스크, 1979년 컴퓨터 바이러스의 조상 격인 '웜worm', 1980년 싱클레어 ZX80 개인용 컴퓨터, 1981년 IBM PC, 1982년 로터스 123 소프트웨어, 1983년 CD-ROM, 1984년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용어, 1985년 스튜어트 브랜드Stewart Brand의 전 지구 전 자 연결 Whole Earth 'Lectronic Link, Well, 1986년 최초의 인공지능 연구용 컴퓨터 커넥션, 1987년 휴대전화용 GSM 표준, 1988년 스티븐 볼프 람Stephen Wolfram의 매스매티카 언어, 1989년 닌텐도의 게임보이와 도 시바의 다이나북, 1990년 월드 와이드 웹, 1991년 리누스 토르발스Linus Torvalds의 리눅스, 1992년 영화 <터미네이터 2>, 1993년 인텔 펜티엄 프 로세서, 1994년 집 디스크, 1995년 윈도95, 1996년 팜파일럿, 1997년 IBM의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를 이 긴 일, 1998년 애플의 컬러 아이맥, 1999년 앤비디아의 소비자용 그래 픽 처리 장치 GEForce 256, 2000년 심스sims. 그런 식으로 계속 이어 져왔다.

- 2001년 문화 진화 분야의 두 개척자인 피터 리처슨Peter Richerson과로 버트 보이드Robert Boyd는 농경이 "플라이스토세(빙하기)에는 불가능했 지만 홀로세(현재의 간빙기)에는 의무적"이었다는 주장을 최초로 펼친 선구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기후가 더 따뜻하고 더 습하고 더 안정적으로 변하고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자, 거의 곧바로 사람들은 더 식물 집약적인 식단으로 옮겨가면서 인간의 식량을 더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쪽으로 생태계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렇게 썼다. "홀로세에 농경 집약화의 궤적은 거의 다 점진적이었고... 이윽고 농경은 한계 환경을 제 외한 모든 곳에서 주된 전략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농경은 의무적이고 불가피했다. 그렇게 많은 지역에서 농경이 발생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 은여우는 포획된 상태에서 적응하고 길들여진다는 징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당시 니키타 흐루쇼프 Nikita Khrushchev가 지지한 리센 코Trofim Lysenko의 정론에 따르면, 포획하여 기르면 길들여지는 모습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벨랴예프는 선택 교배를 해보기로 했다. 그는 아주 단순한 방법을 썼다. 각 세대에 서 가장 경계심이 적은 개체를 골라 교배했다. 우리에서 가장 덜 으르렁 거리는 녀석들을 골랐다. 그런 뒤 새끼 가운데 가장 친근하게 굴고 가장 겁을 덜 먹고 가장 공격적이지 않은 녀석들을 골랐다. 그는 해마다 새끼 1,000마리 중에서 200마리를 골라서 교배를 했다. 그런 과정이 50년 동 안 이어졌다.
- 거의 즉시 연구자들은 차이를 알아차렸다. 4세대에서 새끼 중 일부는 사람들에게 꼬리를 흔들면서 먼저 다가왔다. 야생 여우라면 결코 하지 않을 짓이었다. 몇 세대가 더 지나자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손 을 핥는, 길이 잘든 개체들도 나타났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점은 여우의 모습도 변했다는 것이었다. 꼬리가 말리고, 귀가 늘어지고, 좀 더 연약해 보이는 머리에다가 이마에 하얀 반점이 생겼다. 이 반점은 기르는 소, 말, 그 밖의 애완동물에게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또 더 큰 새끼를 낳았 고, 더 이른 나이에 번식을 했고, 번식기도 모호해졌다. 벨랴예프는 밍크 와 쥐를 대상으로도 같은 실험을 했는데,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벨라예프가 유순하다는 특징을 선택한 것이 공교롭게도 다른 형질들 의 유전자 돌연변이도 선택한 셈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그런 선택은 이른바 길듦 증후군domestication syndrome을 낳았다. 특히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배아 발생 때 일어나는 '신경 능선neural crest' 세포들의 이 동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 세포들은 배아 전체로 퍼져서 피부와 뇌 같은 기관 내에 특정한 조직을 만든다. 검은 색소를 만드는 세포는 대 부분 신경 능선에서 유래하는데, 길이 든 동물의 머리에는 이런 세포가 적어서 얼굴에 하얀무늬가 생긴다. 벨랴예프의 여우에서는 검은 털을 만 드는 멜라닌세포의 이동이 느려지면서 털에 흰 반점이 나타난다. 또 축 처진 귀와 더 작은 턱도 신경능선 세포의 이동이 느려져서 나타난다. 하버드 대학교의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 Richard Wrangham은 신경 능선 세포가 뇌에서 스트레스, 두려움, 공격성을 조절하는 부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가정한다. 길들여진 결과 동물이 반응적 공격성에 사로잡 힐 가능성이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랭엄은 이것이 애완동 물뿐 아니라 인간의 특징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침팬지와 달리 우리 는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서 혼잡한 버스에 타고 내릴 수 있다. 침팬지에 게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계획된 공격성 쪽으로는 설령 더강 하진 않더라도 침팬지만큼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만, 반응적 공격성 측면 에서는 그렇지 않다. 개도 마찬가지다. 늑대나 침팬지는 애완동물로서는 위험하다. 여러 해 동안 친근하기 지내다가도 잘못된 방식으로 건드리면 갑자기 치명적인 공격 행동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원인인 조상들에 비해 자기 자신에게 훨씬 더 길듦 증후군 을 일으켰다. 더 여성적인 특징, 더 작은 턱, 그에 따라서 더 촘촘하게 난 이, 성차의 감소, 더 지속적인 성적 활동, 때로 이마 위에 모여 나는 흰머 리 등이 그렇다. 뇌도 더 작아졌다. 머리뼈를 보면 지난 2만 년 사이에 사 람의 뇌는 약 20퍼센트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생물학자들은 이사 실에 곤혹스러워하곤 한다. 개를 비롯한 다른 종들도 길들여질 때 뇌가 줄어든다. 랭엄은 이렇게 썼다. "현생 인류와 더 이전 조상들의 차이점은 한가지 뚜렷한 양상을 지닌다. 개와 늑대의 차이와 비슷하다." 심지어 지 금은 어느 유전자가 바뀌어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까지도 밝혀져 있다. 예를 들어 BRAF 유전자는 최근에 고양이, 말, 사람에게서 강한 진화적 선택을 받았음을 보여주며, 이는 신경능선 세포의 이동과 관련이 있다.
- 고고학적 증거에 담긴 단편적인 단서에 따르면, 50만 년 전이나 200만 년 전에 발명되었을 수도 있고, 한 차례 또는 여러 차례 발명되었을 수도 있다. 그보다는 해부학적 증거가 좀 더 탄탄하다. 인간은 날것만 먹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우리 몸은 요 리한 음식을 먹는 쪽으로 적응해 있는데, 아마 거의 200만 년 동안 그랬 던 듯하다. 그리고 그 말은 인간이 그때부터 불을 제어했다는 의미다.
오늘날 날것만 먹으려고 시도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결과 반드시 체 중이 줄어들고 불임과 만성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견과와 과 일로 아무리 배를 채운들 마찬가지다. 주로 날것만 먹는 생식 애호가 500명 이상을 조사한 독일 연구진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엄격한 생 식은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한다고 보장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식단 으로도 잘 살아가는 침팬지처럼 식량을 찾아 열심히 숲을 돌아다니기는 커녕, 야생의 식량보다 훨씬 소화가 잘되는 재배 과일과 채소를 먹는 이들도 그랬다. 대다수의 생식주의자는 요리한 음식도 얼마간 먹어야 한다. 인간의 창자는 날것인 채소, 고기, 견과, 과일에서 충분한 에너지를 뽑 아내는 쪽에 적응해 있지 않다. 그 점은 생각할수록 매우 기이하다. 개같 은 길들인 종까지 포함하여 다른 종들은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 요리는 음식을 미리 소화하는 과정이다. 녹말을 젤라틴화함으로써 소 화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거의 두 배로 늘린다. 또 단백질을 변성시켜 서 달걀이나 스테이크를 먹을 때 흡수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약 40퍼 센트 늘린다. 이는 우리가 바깥에 위장을 하나 더 지니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요리는 우리가 왜 체중에 비해 다른 유인원보다 치아가 작고 위 장도 작고 창자 길이도 겨우 절반 남짓에 불과한지를 설명해준다. 이작 은 창자는 유지하는 데 비용이 덜 든다. 다른 유인원에 비해 인간은 소화 관을 가동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10퍼센트 더 적다. 따라서 요리에 이용하는 불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제공할 뿐 아니라, 우리의 에너지도 절약 한다. 레슬리 아이엘로Leslie Aiello가 주장했듯이, 이는 뇌의 팽창으로 이 어지는 중요한 단계였다. 인류의 초기 조상은 목 위에 놓인 에너지를 갈 구하는 기관의 크기를 더 키우려 했지만, 간이나 근육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나 위장과 창자는 줄일 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따라 서 요리 덕분에 뇌가 커질 가능성이 생겼다.
- 전등은 양초를 충분히 구입하여 하인들에게 옆에서 들고 다니게 할 만큼 돈이 많은 이에게는 별 혜택을 주지 못한다. 자본주의 생산의 전형적인 성 과물은 대체로 부자에게 큰 의미가 있을 법한 개선 사례가 아니라, 저렴한 천, 저렴한 면직물과 인조견, 장화, 자동차 등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실크 스타킹을 소유했다. 자본주의의 성취는 대개 여왕에게 실크 스타킹을 더 많 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따르는 보상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공 장여성들도 실크 스타킹을 살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
- 이런 사례들을 토대로 아이오와 대학교의 에드워드 와서먼 Edward Wasserman은 인류 혁신의 대부분이 지적 설계를 통해 만들어지기보다는 지극히 자연선택처럼 보이는 과정을 통해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와서먼 은 바이올린 모양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 었다. 갑작스러운 개량을 통해서가 아니라, 표준 모양에서 조금씩 다르 게 만들어서 소리가 나아지는지 아닌지 알아내며 변화를 거듭한 결과물 이라는 것이다. 악기 한가운데의 구멍은 처음에는 둥근 모양이었다가 이 런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서 그 뒤에 반원형이 되었다가, 이어서 길어졌 다가 마침내 알파벳 자 모양이 되었다. 와서먼은 이런 혁신관이 생물학 에서 자연선택이 직면한 것과 동일한 심리적 저항에 직면한다고 본다.
-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가 이용하고 만드는 많은 것(바이올린처럼)은 효 과 법칙에 따르는 변이와 선택의 과정에서 나온다. 널리 퍼진 견해와 정반 대로, 이 과정에는 신비한 것도 낭만적인 것도 없다. 그것은 자연선택 법칙 만큼 근본적이면서 어디에나 있다. 생물 진화에서의 자연선택 법칙이 그랬 듯이, 인류 발명의 진화에 효과 법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견해도 완강 한 저항에 직면해 있다.
- 19세기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William Stanley Jevons는 에너지 절약이 에너지 사용량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라는 역설을 발견 했다. 이 역설에는 그의 이름이 붙었다. 우리는 투입할 자원이 싸지면 그 자원을 더 쓰는 식으로 반응한다. 전기가 싸지면 전등을 더 오래 켜둔다. 그러나 앤드루 맥아피는 저서 《포스트 피크 거대한 역전의 시작More from Less》에서 경제의 많은 부문에서 현재 제번스 역설의 기력이 다하고 절 약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동일한 양의 빛을 내는 데 LED가 백열전구보다 전기를 25퍼센트 덜 쓰므로, LED로 백열전구보다 많은 전력을 쓰려면 열 배 이상 더 오래 켜두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다 는 것이다.
맥아피는 탈물질화가 1970년대의 많은 비관적 예측, 즉 기름, 가스, 석탄, 구리, 금, 납, 수은, 몰리브덴, 천연가스, 석유, 은, 주석, 텅스텐, 아연과 재생이 안 되는 많은 자원이 21세기 초에 고갈될 확률이 높다고 한 예 측이 그토록 놀라운 수준으로 틀렸음이 입증된 이유 중 하나라고 주장한 다. “얼마 안 되는 보급품을 싣고서 우리를 태운 채 우주를 날아가는 ‘우 주선 지구'라는 이미지는 압도적이긴 하지만,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지구는 우리 인간의 여행에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우리가 줄이고, 교환하고, 최적화하고 증발시키면서 탈물질화를 향해 빠르게 나 아가고 있으므로 더욱 그렇다."
- 제프 베이조스가 종종 자랑스럽게 주장하듯이, 아마존은 성공으로 나 아가는 실패의 좋은 사례다. “아마존에서 우리의 성공은 우리가 매해에, 즉 매해 매달 매주에 실험하는 횟수의 함수이다. 일이 잘못되면 좀 상처 를 입겠지만, 뒤처지면 죽을 것이다." 베이조스는 이렇게 말했다. “실 험 횟수를 100번에서 1,000번으로 늘릴 수 있다면, 여러분이 내놓는 혁 신의 수는 대폭 늘어난다."
- 마찬가지로 구글도 실패를 용인하고 나아가 장려한다. 2009년에 출 범한 'X'라는 혁신을 겨냥한 자회사는 크고 파괴적인 새 사업 기회를 찾 는 일에 나섰다. 대부분은 실패했다. 큰 주목을 받으면서 선보인 안경에 소형 화면과 음성으로 작동하는 카메라를 붙인 구글글래스Google Glass는 X의 가장 널리 알려진 가장 값비싼 판단 오류였다. 구글은 2013년 4월 개발자용 '구글글래스 익스플로러'를 내놓았고 다음 해에 1,500달러에 일반 대중용 제품을 출시했다. 겨우 7개월 뒤 회사는 제품 판매를 중단 하면서 2년 내에 다시 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재출시는 없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소비자는 그 제품의 가격, 위험(건강과 사생활 침 해), 쓸 만한 용도 부족에 실망했다. 소비자는 이 제품이 그저 혁신 자체 를 위한 것이며, 삶에 아무런 가치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적어도 1,500달 러나 주고서 살 가치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구글은 여전히 병원 같은 곳 에서 특수한 용도로 그 기술을 사용할 방안을 추구하고 있지만, 소비자 용 제품으로서는 실패였다. 구글글래스가 정부 사업이었다면 지금도 여 전히 붙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 풍선을 이용하여 와이파이를 쓸 수 있게 한다는 프로젝트 룬Project Loon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서 실패했다. X는 바닷물에서 이산화탄소를 추출하여 전기를 사용해 마 찬가지로 물에서 추출한 수소와 결합하여 연료를 만드는 포그혼Foghorn 이라는 사업 계획도 추진했다. 액체 영구 운동기관과 좀 비슷하게 들린 다. 어쨌거나 열역학 법칙은 연소된 산물(CO2와 H2O)을 연소가능한 연료로 전환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연료를 태울 때 얻는 에너지보다 더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X는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너무나 집착했기 에, 열역학 법칙을 깰 준비까지 했다. X의 캐시 하눈Kathy Hannun은 5년 내 에 실용화하기는커녕 5달러에 연료 20리터를 만든다는 목표를 결코 달 성할 수 없으리라는 점을 깨닫자 2016년에 포그혼 사업을 접었다. 실험 을 장려하려면 그렇게 가차 없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X의 책임자 애스트로 텔러 Astro Teller는 그런 실패를 한탄하기보다는 축하했다. 2016년 밴쿠버의 TED 강연에서 그는 "실패를 축하함으로써 예기치 않 은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했다. X는 언젠가 구글 자체를 훨씬 뛰어넘을 무언가를 내놓을지 모른다.
록히드마틴은 어처구니없는 시도를 용인함으로써 고위험을 무릅쓰 는 사내 기업을 장려한다는 이 개념을 앞장서 도입했다. 그중에 대성 공을 거둔 사례도 나타났다. 1943년 회사는 비밀리에 고등개발프로그 램advanced development programs을 구성했다. '스컹크 사업단skunk works' 이 라고 더 잘 알려진 이곳에서는 최초의 제트 전투기와 고고도 정찰기를 개발했다. AT&T'에 소속된 벨연구소도 1920년대부터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트랜지스터와 레이저 등 온갖 새로운 기술을 발명했다. 그러

- 새로운 발명이 처음으로 제시될 때면 모든 사람이 반대하고, 가여운 발명가는 성마른 조롱에 조리돌림을 당한다. (윌리엄 페티, 1662년)
- 마크 라이너스는 이 GMO 일화에 가차 없는 평가를 내린다. “우리는 세계의 아주 많은 지역의 대중이 GMO에 영구히 적대감을 갖도록 자극 했으며, 믿을 수 없게도 그 전까지 멈추지 않고 나아가던 한 기술 전체의 행군을 저지시켰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우리 운동에 는 단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 명분이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커 피를 반대한 사례와 마찬가지로, 유전자 변형 작물에 대한 반대도 사실 적 측면에서도 도덕적 측면에서도 잘못되었다는 것이 지금은 명확해졌 다. 그 기술은 안전하며, 환경에도 이롭고, 소규모 농민에게도 긍정적일 수 있었다. GM 반대 운동은 풍족하고 저렴한 식품을 접하는 부유한 이들 사이에 유행했다. 그들의 삶은 수확량을 증대하는 일과 별 관련이 없었고 그 일에 절실하지도 않았다. 그 금지의 기회비용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병들고 굶주리는 이들이 치렀다. 그 큰 압력단체들조차도 최근 들어 서는 그 일에서 슬그머니 발을 뺐다. 그러나 피해는 이미 일어났다.
- 보멀의 '비용 질병 cost disease'은 혁신 연구 분야의 핵심 개념 중 하 나이다. 한 분야의 혁신이 혁신으로 덜 이루어진 다른 분야의 상품이나 서비스의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경제학자 윌리엄 보멀의 깨달음 에 붙여진 용어다. 혁신이 제조업 부문에서 노동 생산성을 높인다면, 경 제 전체에 임금이 올라갈 것이고 서비스도 더 비싸질 것이라는 의미다. 1995년 독일에서 평면 텔레비전의 가격은 엉덩관절 수술에 드는 비용 과거의 같았다. 15년 뒤에는 엉덩관절 수술비로 평면 텔레비전 열대를 살 수 있게 되었다. 경제의 생산성이 전반적으로 증가했기에 외과의의 임금도 올라갔지만, 외과의 자신의 생산성은 설령 증가했다고 해도 그 폭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따라서 한 부문에서만 혁신을 허용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 혁신 기근
일부에서는 우리가 혁신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혁신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2009년 이래로 서양 세계는 어떤 적절한 속도로 경제를 확장하는 법을 잊은 듯하다. 그사이에 나머지 세계가 뒤 를 따라잡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는 앞서 아시아가 20년에 걸쳐서 이룬 폭발적인 성장 속도에 맞먹는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따라잡기 성장이다. 즉 서양에서 이미 쓰이는 혁신을 채택함으로 써 이루어지는 성장이다.
- 대조적으로 유럽, 미국, 일본에서는 자기만족과 정체라는 힘이 종종 이기고 있는 듯하다. 프레드리크 에릭손과 비외른 바이겔은 《혁신 착각 The Innovation Illusion》에서 현재 자본주의의 실존주의적 과제는 혁신을 내 세우지만 실제로는 혁신을 장려하기를 꺼리는 기업과 정부의 타성을 깨 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의 영원한 강풍'은 지대 추구라는 미풍으 로 대체되어 왔다. 대기업이 거대 정부와 편안하게 한 통속이 되어 점점 시장을 지배해나가면서, 기업 경영자주의 managerialism는 기업의 활력을 서서히 좀먹고 있다. 경영자는 불확실성을 기피하고, 기업을 점점 더 관료주의적으로 만든다. 타일러 코웬Tyler Cowan과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 같은 경제학자도 우리가 수세식 화장실이나 자동차 같은 세계를 진정으 로 변화시킬 것들을 더는 발명하지 못하고, 대신에 소셜 미디어 같은 사 소한 것을 붙들고 점점 더 노닥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질병의 한 증상은 기업이 조 단위의 엄청난 현금 더미를 깔고 앉아 있고, 다국적 기업이 돈을 빌리는 쪽이 아니라 빌려주는 쪽이 되어왔다 는 것이다. 혁신에 돈을 투자할 방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몇 대형
- 혁신의 속도와 폭이 이렇게 엄청난 이유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한마디로 업무량이다. 중국 기업가의 일주일은 9-9-6다. 오전 9시부 터 오후 9까지, 6일을 일한다는 뜻이다. 미국인도 세상을 바꾸었을 때에 는 그런 식으로 일했다(에디슨은 직원들에게 비인간적인 수준으로 장시 간 근무할 것을 요구했다). 독일인도 가장 혁신적인 국민이었을 때 그렇 게 했다. 19세기에 영국인도 그러했다. 그 이전에 네덜란드인과 이탈리 아인도 그러했다. 실험하고 놀고, 새로운 것을 시험하고, 위험을 무릅쓰 면서 몇 시간이든 기꺼이 보내려는 것, 어쩐 일인지 이런 특징은 젊고 새 롭게 번영하기 시작한 사회에서 나타나며, 늙고 지친 사회에서는 더 이 상 찾아볼 수 없다.
- 서양은 금융, 과학, 예술, 철학 쪽으로는 여전히 탁월한 새로운 것을 내 놓을지 모르지만,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제품과 과정을 혁신시키는 일은 느려지고 있다. 관료주의와 미신은 혁신을 시도하는 모든 이의 앞 길을 가로막는다. 런던은 주요 공항까지 새 고속도로를 내는 데 30년이 걸린다(아직도 건설되지 않았다). 그사이에 자문가들은 그 길을 놓을 곳 에 있는 모든 도롱뇽과 박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소음은 얼마나 날 지를 조사하면서 돈을 번다. 브뤼셀 주민은 곤충에게 내성을 띠는 작물 을 누군가가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좋은 생각인지를 놓고 여러 해 동안 심사숙고하는 중이다. 워싱턴은 규제 당국, 변호사, 자문가, 지대추구자가 기업가 정신을 지닌 기업으로부터 단물을 쪽쪽 빨아먹도록 잔 치 마당을 깔아준다. 중앙은행은 암호화폐와 디지털 핀테크를 깔보고 있 다. 명나라, 아라비아의 아바시드 왕조, 비잔티움, 인도의 아쇼카왕 시대 와 마찬가지로, 이런 성숙한 문명은 혁신의 열정을 잃고 그 일을 다른 문명에 떠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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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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