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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2.12 상식으로 살고 있나요

비상식이 상식이 되고, 당연한 일상이 생소해진 세상이다. 이 책은 일상생활 속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실상은 상식에 어긋난 것이며, 소소한 실천을 통해서 진정한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일상 속의 상식을 살펴보기 위해 이 책은 의, 식, 주, 인, 생의 다섯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다양한 에피소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에피소드의 말미에는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이 하나씩 있는데, 이 질문들에 진솔하게 대답하다 보니, 마음깊이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옷이나 내 몸에 착용하는 것들을 살펴보면, 요즘의 우리는 이런 것들을 마치 유행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소비해야 하는 소모품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나 매스컴에서 노출되는 패셔니스타의 일상을 따라하느라 가뜩이나 좁은 집은 일년에 한번 입을까말까한 옷들로 채워진다. 정작 자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였지만, 늘 같은 디자인의 흰색 옷을 고집한 고 앙드레김 선생님을 따라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꼭 흰색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요즘은 맛집 대세의 시대다. 떡볶이를 사먹더라도 맛집을 찾아가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대중의 입맛과 타협하는 맛집에는 집밥의 맛, 어머니의 맛이 사라진다. 더구나 먹는 것은 우리 건강에 직결된다.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의 시대로고는 하지만, 배달음식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것 같다. 책에서 제시한대로, 집에서 요리를 해먹자, 그것도 귀찮다면 걸어가서 사먹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집은 자신을 채우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는 없어져 버린 것 같다. 그저 잠만 자고 나오는 공간일 뿐이다. 심지어 이른 아침부터 가족단위의 손님이 커피숍을 찾는 경우도 많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집이라는 공간을 쓸모없는 옷과 잡동사니로 채워두다 보니 정작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은 확보해두지 못한 탓이리라.

 

나는 다행히 집과 회사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대략 편도 30분 정도를 걸어서 출퇴근한다. 딱히 하는 운동도 없고, 출퇴근길 걷는 것으로 운동을 삼는 수준으로만 생각하고 지냈다. 이 책의 '걷기'편에서 내가 걸어야 하는 이유 하나를 더 찾아주었다. "가족 혹은 삶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걷는 아침시간을 갖는 이유는 언젠가는 그저 걸을 수 있는 것이 삶의 최대 목표가 되는 때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생은 즐기라고 있는 것이고, 지금이 영원할 것 같다는 그릇된 설렘을 품게 하는 유행하는 인생관을 경계한다. 오히려 땀을 흘리라고 조언한다. 눈물을 잊기 위해 땀을 흘리는 연속된 삶은 부모의 유산, 즉 마지막 가정교육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땀흘리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과연 나는 아이들에게 땀흘리는 모습을 얼마나 보여주었을까.

 


* 본 리뷰는 출판사 지원으로 작성됨

 

 

- 상식에 맞게 살면 특정한 것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미래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며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의 소중함과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상식보다 비상식과 더 자주 마주하며 어느새 그것에 너무 익숙해졌다. 지금도 우리는 '상식의 파괴'를 끊임없이 요구받고 있다. 이미 '비상식의 일상화에 익숙해진 현실에서 조금만 물러나 상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삶을 돌아본다면 의외로 쉽게 창의적인 삶이 가능해질 것이다.
- 옷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옷에 문제가 있어서 버려지는 옷이 별로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입었을 때 편하고 자신감이 생기는 옷이 있다. 그것을 찾 아야 한다. 찾았다면 똑같은 옷 몇 벌을 사서 깨끗이 입으면서 옷에 투자하는 돈과 시간을 절약하자. 이런 삶을 추구하다 보면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자신의 마음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멋지거나 좋은 옷은 결국 입는 사람에 달려 있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은 그냥 마케팅 수사 정도로 이해하는 게 어떨까.
- 명품을 선호하는 건 이성적인 자제력의 부족이다. 이성적 자제란 마음의 여유와 세상을 보는 지혜로움이다. 명품을 사는 것은 감성적인 행동의 결과다. 감성적 행동은 물질의 탐욕으로 자기를 평가하고 세상을재단하는 이기심의 발로다. 마음의 충만함은 늘 검소함, 마음의 부족함은 늘 사치함과 연결된다.
- “손목에 아무것도 채워져 있지 않은 자유로운 느낌이 더 좋지 않나요?"
- 수납을 잘하는 것이 정리는 아니다. 수납을 잘하면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보관하게 된다. 정리는 사용할 것들을 놓아 두는 것이다. 아무리 수납을 잘해도 결국에는 쌓이게 된다. 잘 사용하지 않으면서 쌓아 놓은 물건들을 짐이라고 한다. 짐을 버리지 않고 정리하려다 보면 또 다른 수납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버릴 것은 지금 버리고 필요한 것만을 보관 하자.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최초 수납공간 불변의 법칙을 지 켜 가는 게 정리다. 웬만하면 수납공간을 줄이자. 짐을 만들게 되면 또 다른 무언가를 들이게 된다. 옷과 같은 물건만 그런 게 아니다. 마음에 쌓여 있는 짐도 예외는 아니다.
- 미디어를 내려놓거나 그 영향에서 벗어나는 데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요?
- 과거에는 사 먹는 것이 돈이 있어야 행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면, 지금은 사 먹는 것이 대중화되었다. 해 먹을까, 사 먹 을까 고민하다 이제 하나가 더 붙었다. 시켜 먹는 것이다. 가장 건강하게 먹는 방법의 순위를 매겨보면,
첫째가 '손 으로 해 먹는 것’,
다음으로 발로 걸어가 먹는 것’,
마지막이 '손과 발을 쓸 수 있는데 가만히 앉아서 시켜 먹는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먹기 위해 손발 쓰는 것에 인색하지 말자.
- 어르신들은 나이가 들수록 입맛이 없어 소식한다고 하신 다. 그런데 입맛보다 그냥 소화할 수 있을 만큼 드시는 것이 다. 내 건강이 감당할 만큼의 겸손한 식사다. 젊은 시절에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대신 남기지 않을 만큼 마음껏 먹는 연습이라도 해 두시라. 남기지 않고 먹다 보면 점점 더 적은 양의 식사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 식재료 하나, 그릇 하나, 수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맛없는 것과 친해지자. 그래야 담백한 맛을 알 수 있다. 맛 전문가가 내뱉는 풍미 가득한 수사보다 찬장 구석에 놓인 옛 접시 하나 골라 그 위에 어떤 음식을 담을지 고민해 보자.
- 공간은 자신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그냥 비우고 바라볼 때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할 때 바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공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자기 생각을 수렴시키고 발산토록 하기 위함이다. 공간을 그대로 비워 두고 대신 작은 전신거울 하나를 소박하게 놓아두었다면 가장 멋진 곳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누구든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자신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도록 해 주면 그만이다.
- 인플루언서는 수동적 수용자가 만들어 내는 사회적 영향력 양극화의 산물이다. 그들은 자신의 콘텐츠가 아니라 사실상 개개인의 시간을 투자받아 성장한다. 개개인은 콘텐츠를 통해 재미를 얻을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 그들에게 실물의 자본이나 정치적 힘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수많은 인플루언서 채널을 구독하고 정기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면 스스로 사회적 힘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음을 의식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어떤 인플루언서에게 나의 시간을 투자할 것인지, 왜 내가 그들에게 투자를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진짜 인플루언서는 나의 지성을 자극하는 사람이다.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도록 독려하는 누군가다. 내가 콘텐츠를 소비만 하고 있다면 이제 구독을 끊어야 할 때다.
- 가족 그리고 삶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걷는 아침 시간을 갖는 이유는 언젠가는 그저 걸을 수 있는 것이 삶의 최대 목표가 되는 때를 위한 최선의 준비이기 때문이다.
- 왜 남들이 쉬고 있을 때 땀을 흘리고 있는가. 많은 이들이 본능적으로 눈물을 잊기 위해 오늘 해야 할 무언가에 더 집중하고 몰입하면서 땀을 흘린다. 눈물을 잊기 위해 땀을 흘리는 연속된 삶은 부모의 유산, 즉 마지막 가정교육이다. 당신의 기억이 사라지거나, 당신의 몸이 꼬이고 힘을 잃으면서 자식에게 눈물을 안겨 주기 마련이다. 인생은 즐기라고있는 것이고 지금이 영원할 것 같다는 그릇된 설렘을 품게 하는 허황된 주장이 넘쳐나는 시대이기에 부모로 인해 마음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면 그냥 감사하자. 오늘 하루 즐기기보다 땀을 흘리는 이유는 쉴 줄 몰라서가 아니라, 쉬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쉬면 눈물이 나기 때문이다.
- 마음이 성장할수록 알게 되는 유일한 배움은 자기 마음을자신도 모르는데 과연 누가 남의 마음을 논하겠는가 하는 겸손함뿐이다. 세상에 남의 마음을 관리하겠다며 훈수를 두는 사람과 남의 행복과 미래를 안내해 준다는 사람이 넘쳐난다. 오히려 우리를 가르치려는 그들에게 우리가 겸손함을 가르쳐야 한다. 겸손함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갈 곳이 어디인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 가까이 있는 것 안 보인다고, 머리카락이 좀 하얗게 세었다고 노화가 진행되었다며 나이 든 척할 필요는 없다. 옷이 잘 맞는다면 아직은 아닌 것이다. 너무 젊어 보이려 애쓸 필요도 없고 일부러 나이 들어 보이려고 할 필요도 없다. 화려한 장신구보다 단 한 벌이라도 내 나이에 맞는 옷을 갖춰 입을 수 있는 비움과 채움의 선순환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 하루의 시작, 즉 해가 뜰 때의 설렘은 깨어남과 함께하는 감성이다. 해가 질 때의 아쉬움을 잠시 접어 둬도 되는 것은 안식을 찾아 복귀해야 내일의 설렘을 다시 맞을 수 있기 때 문이다. 하루를 통해 부지불식간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삶의 본질을 배우게 된다. 세상이 우리에게 쉼 없이 추상적인 이상을 좇아 끝점을 향해 나아가라고 요구할 때 원점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하루를 통한 배움은 설렘과 아쉬움 중 후자를 선택하는 데 익숙해지는 것이다. 설렘 가득 쇼핑할 때 스스로 하루 정도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을 정해 실천해 보자. 모두가 설렘 가득 최고 시청률 프로그램에 몰입할 때 한주 정도 TV와 멀어지기에 도전하자. 누구나 설렘 가득 검색 정보에 의존할 때 하루 정도 검색하지 않는 날에 도전해 보자. 당장 설렘은 없겠지만 미래에 직면할 아쉬움의 크기도 함께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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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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