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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03 돈이 자라는 곳 그리고 거품의 본질

 


돈이 자라는 곳 그리고 거품의 본질

저자
가렛 가렛트 지음
출판사
레디셋고 | 2014-05-3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금융과 인간 심리 사이의 미묘한 메커니즘을 조명한 투자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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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완성된 이후 그 10만명의 인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음. 그들은 실업자가 되었을까? 아니면 본업인 농부로 돌아갔을까? 만약 그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돌아갔다면 오늘날로 따졌을 때 이 나라에서 4백만~5백만명이 갑자기 산업에서 농업으로 복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임. 어쨌든 쿠푸왕의 피라미드 건설이 끝났을 때, 이집트에는 놀랄만한 통계자료도, 일간신문에 등장하는 무너지는 지표들도, 주식시장 공황도, 은행이 파산하는 일도 없었지만, 실업과 맹목적인 사회적 혼란, 빈민증가와 같은 경제위기라고 불러야 할 일들이 발생했을 것임. 그리고 이런 위기는 그후 발생한 다른 모든 위기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생산한 것들을 소비하거나 사용하지도 못하고 돌무더기에 노동력을 착취당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고 해도 어슴푸레하게 알고 있던 사람들, 즉 잊혀진 자들에 의해 마지막 부분까지도 흡수됨. 이 피라미드 이야기에는 우화에서나 찾을 수 있는 보편적 지혜가 담김. 이집트 문명이 끝난 이래 거쳐 지나간 세상들과 우리의 세상이 독창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모든 새로운 형태, 방법 및 힘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의 잊혀진 자들에게 일어난 일이 여전히 우리의 체계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윌리엄 섬너의 고전 에세이에 있는 잊혀진 자에서도 같은 이유로 일어나고 있음. 이제는 말만으로 노동력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유일무이한 파라오는 없다. 오늘날 노동자들은 자유의 몸이며 일한만큼 임금을 받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갖고 있는 노동력과 자재에 대한 통제력을 통한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권력강화를 향한 욕망은 항상 존재했고, 매우 이기적이고 비경제적인 방법으로 욕망을 추구한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고대시절가 다를바가 전혀 없다.
- 빌리고 빌려주는 것은 내것과 네것의 관념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므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신용도 꽤 오래된 것임. 하지만 현대에서 신용은 우리가 알다시피, 혹은 안다고 생각하듯이 새롭고 놀라운 힘이고 아직 진화하고 있으며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것임. 사람들은 신용을 통제하거나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신용의 힘을 발산하거나 신용을 이용해 착취하고자 하는 것에 안달해 왔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예전 파라오가 가졌던 노동력과 자재에 대한 통제력이 없이 개인적이거나 공공적인 권력강화를 이룰 수 없는 것처럼 이 시대에도 신용에 대한 통제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
- 파라오가 노동력과 자재에 대한 통제력으로 하나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다면, 오늘날 신용은 수천개의 피라미드를 건설한다. 당신은 오늘날의 피라미드를 찾을 때 파라오가 지은 것과 정확히 같은 형태를 찾아서는 안된다. 우리의 피라미드는 무한히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많은 피라미드들은 명백히 보이지만, 몇몇은 유용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나 전자처럼 그렇게까지 명백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고, 몇몇은 아예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중 보이지 않는 종류가 가장 파멸적이다.
- 어떤 제품에 대한 수요의 가능성을 넘어선 산업의 과잉건축은 파멸적인 신용을 의미. 여기서 권력강화의 정신은 마치 생물학적 법칙인 것처럼 행동함. 각각의 개별적인 조직은 한나라 내의 같은 분야의 산업 안에 있는 다른 조직들보다 더 커지려 노력하고, 한 나라의 산업 전체는 다른 나라의 경쟁산업보다 커지려고 노력함. 이는 점점 더 많은 신용의 혜택으로 계속됨.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너무 많은 신용이다. 다시 말해 노동력은 세계의 산업기계들 안에 갇히고, 동결되고, 고정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이 기계의 모든 생산품을 해당 산업이 그 빚에 대한 이자를 갚을 수 있게 해주는 가격에 사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아마도 인간의 독창성이 아직 고안하지 못한 가장 복잡한 피라미드의 형태일 것이다. 이를 명확하게 보기 위해서 당신은 이것을 극도로 부조리한 관점에서 보아야할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세상 자본의 절반이 신발을 만드는 기계에 투자되었다고 생각해보자. 하루에 세상에 존재하는 발의 갯수보다 신발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계이지만 세계 자본의 반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신발가격이 너무 비싸게 책정되어 버려 아무도 그 신발을 살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결론은 신발을 과잉생산하는 데에 투자된 모든 자본을 잃은 것이 된다. 세계 자본의 거의 절반이다. 절반에 못 미치는 상대적으로 적은 돈이 적절하게 투자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 자본을 정말로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이 자본이 의미하는 노동력을 잃은 것 역시 의미한다. 과도하게 신발을 만드는 기계 대신에 그 노동력이 생산할수도 있었을 모든 수요 물품들을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다. 파라오가 피라미드를 파괴한다 해도 낭비된 이집트의 노동력을 회복할 수 없는 것처럼 당신이 그 기계를 해체한다고 해서 노동력을 회복할 수 없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들, 그것은 무엇인가? 29년 폭락했던 주식시장처럼 미쳐 날뛰는 주식거래 투기가 이런 종류의 피라미드이다. 이 피라미드의 돌은 탐욕이고 과대망상이며 광기이다. 이것의 징표는 아직 벌지 않았거나 앞으로도 절대 벌 수 없는 이윤을 포함한 현실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것들의 법적 소유권의 파편과 허구를 나타내는 인쇄된 종이조각들이다. 전부 평가하기 힘든 것들이다. 위아래가 뒤집혀 혼란스럽고 오래가지 못할 피라미드는 그 자신의 속도로 인해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피라미드는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신용을 점점 더 집어삼켰고, 신용은 그 속도를 키웠다.
- 만약 은행이 10대 1의 비율로 신용을 증식했다면, 그의 예금주들이 그들의 돈을 찾아갈 때 그는 신용을 같은 비율로 줄여야 한다. 다시 말해 그의 손에서 떠나는 1달러마다 그는 10달러의 신용을 어디선가 회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빠른 속도로 운용되던 방대하고 민감한 신용의 작동방식이 갑자기 끽끽거리는 기어의 끔찍한 소리와 함께 역방향에 놓이는 것이다. 당신이 앉아있던 작은 지방은행으로 돌아가자. 예금자들이 예금인출을 계속할수록 은행은 신용을 회수해야 한다. 첫번째로 거대한 뉴욕시 은행에 전화나 전신으로 "신용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 신용이 필요합니다."라고 통지하는 것임. 하지만 뉴욕은행이 지방은행으로부터 빌린 신용을 다른 곳에 다시 빌려주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그 뉴욕은행은 빌려주었던 신용을 순차적으로 회수해야 함. 만약 뉴욕은행이 신용을 증권거래소의 브로커들에게 빌려주었고, 브로커들이 투기꾼들에게 빌려주었다면 투기꾼들이 신용을 돌려주어야 함. 하지만 신용이 유래된 전국 수천개의 지방은행들이 동시에 뉴욕은행들에게 신용회수를 요청하고, 증권거래소에 신용을 제공한 뉴욕은행들이 모두 동시에 신용이 회수되기를 요청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렇게 되면 증권거래소의 브로커들은 골치가 아파진다. 그들은 지금 신용의 원천이 수축되고 있기 때문에 회수요청을 받은 신용을 대체할 수 없다. 사실이 이렇기 때문에 브로커들은 주로 투기꾼들인 고객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죄송스럽고 끔찍한 이야기지만 더 이상 신용이 없습니다. 은행이 우리의 대출에 대한 회수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여러분의 증권을 신용으로 갖고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15분 이내에 현금으로 지불할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하기 위해 증권들을 당장 팔리는 값에 매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증권거래소에 새로운 공황이 발생하여 붕괴가 더 심해지고 신문에는 흉측하게 커다란 헤드라인이 걸린다. 공황은 선전된다. 소용돌이치는 증권거래소라는 피라미드가 이를 유지시킬 신용의 부재로 무너진다. 이것은 결과가 원인이 되는 악순환이다. 상상속 부의 손실이 측정되는 증권거래소의 곤두박질치며 떨어지는 가격과 정확한 이유가 알려지지 않은 다른 이유들 때문에 더 많은 은행들이 도산한다. 불안해하는 예금자들의 행렬이 매일 늘어난다. 이와 같이 신용의 물줄기는 계속하여 수축하고 그 비율은 가속화된다.
- 누군가가 예금을 할 때, 그가 은행에 돈을 빌려주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돈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 만약 예금자가 가져온 돈이 그가 벌어들인 것이라면 그것은 그의 노동으로 생산된 것과 같은 가치를 지니며, 그것은 그가 소비하기보다는 저축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상징. 한 묶음의 목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음. 여분의 목재 묶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몇가지 밖에 없음. 만약 당신이 이를 미래에 사용하기 위해 보관한다면 이는 여가시간의 획득을 상징. 그러나 만약 이것을 당신이 필요로 하는 다른 무언가로 이웃과 교환한다면 이는 기초적인 물물교환에 의한 전환이 됨. 두 경우 모두 어떤 수익도 없음. 당신은 그 목재묶음을 돈을 받고 팔 수도 있음. 이때 그 돈을 모아두면 한 묶음의 목재로서의 가치만 있고 아무 수익이 없다. 하지만 그 돈을 은행으로 가져가서 이자를 받고 맡겨 놓는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 경우 당신은 은행에 당신의 잉여 노동력을 목재 한 묶음만큼의 값어지로 빌려주는 것이고, 거기에서 수익이 발생. 한 명의 성실한 남자가 연장도 없어 도끼, 망치, 쐐기를 사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다. 이 연장들은 당신의 목재묶음을 상징한다. 남자는 이 연장들을 이용해 세 묶음의 목재를 만든다. 한 묶음은 자신을 위해 남겨두고 두 묶음은 판다. 그리고 한 묶음을 팔아서 얻은 이득으로 그는 연장을 사기 위해 빌렸던 돈을 갚는다. 그는 나머지 한 묶음을 팔아서 얻은 이득을 아직 손에 쥐고 있게 되는데, 이는 수익이나 증가라고 보면됨. 그럼 그가 이 수익을 소비하는 대신 저축하도록 해보자 그는 이 돈을 은행에 넣는다. 전에는 한 묶음의 목재를 갖고 있었던 은행이 지금은 두 묶음의 목재를 가지게 되었다. 목재 그 자체도, 노동력 자체도 아닌 노동력을 대신하는 돈을 갖게 된 것이다. 게다가 연장들은 여전히 남자의 수중에 있다. 이 모든 것이 처음에는 여분의 목재 묶음으로부터 온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부를 축적하는 것이고, 노동력을 상실하지 않는 이상 한계가 없다. 또 다른 남자가 와서 빌린 돈의 전부를 아무런 경제적 가치가 없는 피라미드의 의미를 지닌 장난감을 만들거나, 운이 없는 투기를 하거나 동일한 가치의 것을 생산하기도 전에 무언가를 성급하게 구매한 뒤 결국 동일한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해 이자를 지불하거나 원금을 상환할 수 없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경우 우리는 돈을 잃었다고 한다. 사실은 잃은 것이 아니다. 돈은 아직 있다. 하지만 돈이 상징하는 것을 잃었고, 그것은 두 묶음의 목재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력의 양이다. 돈 자체에는 가치도 힘도 없다. 오로지 돈이 상징하는 것에 가치나 힘이 있을 뿐이다. 실제의 돈 1달러마다 부가 어떤 형태로든 1달러 어치씩 생산되었다는 징조이다. 그 돈에 기반을 두어 은행원에 의해 증식되는 1달러어치의 신용은 어디선가 어떤 형태로든 1달러어치의 부가 생산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부의 총합과의 관계를 저하시켜서 돈의 구매력을 손상시키는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은행에 그들의 노동력을 빌려준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일어난 것과 같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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