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사회의 이해 상징'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02.22 우리가 사는 사회의 이해 상징

 


상징

저자
조셉 피어시 지음
출판사
새터 | 2014-08-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상징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큰 흐름! 상징을 이해하고, 세계를...
가격비교

- 기독교 초기 도상학에서는 순수한 백합을 때로 아기예수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함. 하지만 13세기 정도에는 성경을 위시한 여러 기독교 문헌들이 백합을 순수와 순결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백합은 자연스레 성모마리아의 상징이 됨. 세송이 백합은 삼위일체의 상징이 되고, 아래쪽을 가로지르는 막대는 성모마리아의 상징이었다. 회화에서도 스테인드글라스에서도 널리 쓰이게 된 이 상징을 몇몇 교황이나 추기경도 그들의 문장에서 사용. 프랑크 왕조의 초기 왕들이 백합문양을 채택한 것도 왕들이 하느님에게서 부여받은 권리를 가지며, 하느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으리라고 짐작됨. 현대에서도 백합문양은 다양한 형태로 널리 사용됨. 보이스카우트와 걸스카우트를 만들었던 로버트 베이든 파웰은 영국 육군의 정찰대에게 수여되던 군사훈장의 상징을 차용해서 백합문양이 들어간 스카우트 배지를 만들었다. 백합문양은 영국 뿐 아니라 군대에서 훈장에 이용되고 있다.
- 상징은 감추는 동시에 드러낸다. 따라서 침묵과 웅변이 교차하면서 두배의 의미가 생겨난다. 우리가 상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에서는, 어느 정도는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무한에 대한 표현과 계시를 찾아볼 수 있다. 무한은 유한과 합쳐지며 가시적인 것이 되고, 다시 말해 획득할 수 있는 것이 된다. 따라서 상징은 인간을 인도하며 길을 알려주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불행에 처박기도 한다. (토마스 칼라일)
* 기독교의 십가가
- 기독교의 십자가는 인간 역사상 가장 역설적 상징. 예수의 죽음과 동시에 그의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 또 십자가는 기독교인들에게 고통과 희망을 연상시킴.
- 여러가지 형태의 십자가들이 상징의 역사에서 반복해서 등장했고, 우리가 지금 기독교인들의 십자가라 알고 있는 십자가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훨씬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음. 이집트의 앙크와 최초의 만자 등이 모두 같은 계통에 속함
-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이후에도 기독교인들이 십가가를 그들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300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로마의 황제 중 최초로 기독교로 개종했던 콘스탄티누스 1세가 예수의 고통에 대한 존중에서 337년 십자가형을 폐지. 그러면서 한때 고문의 도구였던 십가가는 존경과 숭배의 상징이 됨. 하지만 지금과 같이 예수가 못 박혀 있는 형태의 십가가는 6세기가 되어서야 등장.
* 별과 초승달
-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이슬람은 공식적 상징을 갖고 있지 않음 .종교적 우상이나 상징을 금기시하는 이슬람의 전통을 따른 것. 하지만 이슬람을 연상시키는 전통적 시각 이미지들이 꽤 있는데, 일단 이들의 경전인 코란에서 도드라지는 녹색과, 아랍어로 새겨진 알라라는 말, 그리고 이슬람의 상징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별과 초승달이 대표적
- 기독교의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별과 초승달 이미지도 이슬람교가 있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옴. 이 상징은 고대 모아브, 수메르, 파르티아, 바빌론 문명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문명들은 모두 지금의 중동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문명들이다. 기원전 4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메르 신화에서 초승달은 달의 신을 상징하고, 별은 사랑과 풍요의 여신을 상징. 로마 시대에 이르러 이 상징은 오늘날에는 이스탄불이라 불리는 비잔티움을 연상시키게 되었고, 14세기에 들어 십자군전쟁 중 이슬람교도들의 깃발에 이 상징이 사용됨. 1453년 만들어져 1923년 멸망할 때까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국가는 원래는 초승달만 두드러지는 디자인이었지만 19세기에 들어 별이 더해졌고, 오늘날에는 터키, 파키스탄, 알제리, 리비아와 같은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에서도 별과 초승달 상징은 흔히 찾아볼 수 있음.
* 다윗을 별
- 6각형 별 모양의 형태를 지닌 다윗의 별은 두개의 정삼각형을 거꾸로 포갠 헥사그램의 형태로 17세기 이후 유대교 및 유대민족 전체의 신앙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음. 하지만 몇몇 유대인 집단들은 이미 11세기 경부터 이 상징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함.
-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별도 느닷없이 종교적 상징으로 등장하였으며, 역시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다른 의미들을 나타내고 있음. 5각형의 별은 전통적으로 프리메이슨이나 이교숭배와 연관되어 왔음. 다윗의 별은 14세기 프라하에 있던 유대인 마을이 깃발을 통해 자신들이 유대인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던 다윗의 방패에서 유래. 다윗의 별은 또 원 안에 육각형이 그려져 있는 솔로몬의 인장과도 흡사함. 이것 역시 프라하의 유대인 마을 깃발에 그려져 있음.
- 30년대 독일에서 다윗의 별은 박해의 상징이었음. 모든 유대인들은 이 별을 몸에 표시해야 했음. 2차대전 후 이 별은 이스라엘의 국기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자랑스럽게 한 가운데를 차지

- 하트가 언제부터 로맨틱한 상징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느냐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음. 몇몇 학자들에 따르면 지금은 멸종한 실피움이라는 식물이 고대에는 의학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함. 그 목적 중에는 피임도 있었는데, 피임이라는 목적을 위해 사용되던 이 식물의 씨앗이 하트모양이었다고 함. 그로 인해 하트모양과 섹스사이의 연관관계가 생겨남. 또 화산폭발로 사라진 도시 폼페이에서는 창녀촌의 문간 위헤 하트모양의 상징을 달아놓으면서 하트와 섹스와의 관계가 강화됨. 대단히 엄격하고 도덕주의적이었던 영국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성적 욕망을 드러내기 힘든 때였으므로 직접적으로 섹스를 언급하는 대신 섹스를 연상시키는 하트를 이용하여 사랑과 정열을 표현하는 것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 최근 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상징 중 하나인 만자는 사실은 3000년도 넘게 사용되어 온 아주 오랜된 상징. 터키 지역에서 발견되는 고대 도시 트로이의 동전이나 도기와 같은 유물들은 기원전 1000년에도 이 상징이 흔히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줌. 조금씩 이 상징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중국, 한국, 일본, 인도, 미주대륙, 유럽 등에 위치한 여러 문화들이 이 상징을 이용했는데, 그 의미하는 바는 불교의 부처나 윤회사상, 태양, 천둥, 기독교의 십자가, 연금술, 우주의 순환 등 다양. 하지만 이 상징하면 떠오르는 지역은 동남아였다. 동남아에서 이 상징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이었고, 그 인기가 독일의 나치 문양 때문에 다소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이 상징은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에서 이용되고 있음. 물로 만자라고 하면 근대 서구문화에서는 히틀러의 나치당이, 그리고 그가 일으켰던 세계대전이 그리고 또한 그 공포와 두려움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 2차대전 후 독일은 나치문양을 어떤 경우에도, 예를 들어 나치를 조롱하기 위한, 혹은 나치에 반대하는 정치적 목적으로도 이 문양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 물론 어떠한 패션에서도 사용해서는 안됨. 티셔츠나 범퍼에 붙이는 스티커와 같은 소비재 상품들도 이 상징과 유사한 어떤 그림이라도 있으면, 압수될 수 있음. 사실 많은 독일인들이 이 문양을 바라보는 감정은 미국인들이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남군의 깃발을 바라보는 감정과 흡사함. 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이 문양을 조금이라도 인정한다면 이 나라의 역사에서 어둡고 중요한 부분을 왜곡하고 변명하는 첫 발걸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문양을 철저히 억압하고 있음
- 고대 켈트족은 세 잎이 삼위일체를 상징한다고 생각해서 클로버를 귀하게 여겼음. 이들은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고, 이들을 대표하는 트리스켈리온(세개의 다리가 같은 중심에서 소용돌이 모양으로 퍼져나가는 모양), 트리플스피랄(삼각 소용돌이), 트라이퀴트라와 같은 문양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개로 이루어진 상징들에 대한 종교적, 과학적 믿음을 갖고 있었음. 드루이드(켈트 사회의 왕을 배출하는 계급으로 실권을 쥐고 있었음. 주술에 의존하는 마술사의 원조로 유명) 상징에서도 켈트족이 만든 많은 매듭 세공물에도 세개로 이루어진 상징들이 등장. 종교적 차원에서 일상적 차원으로 가보자면, 클로버는 가축의 중요 식량이었음. 클로버는 많이 신경 써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장점도 있음. 드루이드는 이런 클로버의 생명력을 신성의 상징이라고 보았음. 그래서 섐록은 생명 그 자체를 상징하게 된 것이다.
- 섐록보다 훨씬 더 희귀한 네잎 클로버는 아일랜드의 행운의 상징. 하지만 이 네잎 클로버는 세잎을 가진 섐록과는 다른 것. 많은 사람들이 성 패트릭의 날에 네잎 클로버를 그리고, 만들고, 전시하는데, 실은 이 네잎 클로버는 성 패트릭과는 전혀 관련없음. 우연히 네잎 클로버를 찾아서, 옷에 꽂고 다니면 행운이 온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믿음, 소망, 사랑의 세 잎에 더해 하나의 잎이 더 있기 때문이라는 것.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네 잎은 각각 존중, 부, 사랑, 장수를 의미한다고 함. 물론 네가지 모두 행운과 관련된 것들임. 네잎 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여러 아일랜드 민담들이 합쳐지며 나온 결과인 듯함. 종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네잎 클로버는 성 패트릭의 삼위일체에다가, 인간, 혹은 인류를 상징하는 네번째 잎이 더해진 것. 그래서 이 네번째 잎은 바로 인류의 구원, 다시 말해 예수님의 구속을 의미하는 것이다.
- 해골과 뼈의 상징은 해적의 시대보다 몇 세기 앞서 등장. 라틴아메리카 문화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도굴꾼과 악령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이 상징을 묘지 입구에 그려 놓음. 좀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12세기와 13세기에 걸친 십자군 원정동안 유명했던 그리스도와 솔로몬 신전의 가난한 기사들, 혹은 좀더 잘 알려진 이름으로는 템플기사단은 그 상징으로 이 해골과 뼈를 사용. 교황 클레멘스 5세는 이 기사단을 해체시키는데, 그 이유는 이 기사단이 자신들만 알고 빈틈없이 관리하는 빠른 무역로를 만들고, 그들의 군사력에 필적하는 강력한 은행 및 다른 사업체들을 운영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지나칠 정도로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 근대의 프리메이슨들은 이 템플 기사단과 역사적으로 관련이 있음. 템플 기사단의 의식들과 상징들이 프리메이슨의 것으로 전유되었다는 사실도 그렇고, 프리메이슨이 새로운 회원들을 가르칠 때 사용했던, 프리메이슨들의 상징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트레이싱 보드에 해골과 뼈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는 것을 보아도 이들이 템플 기사단을 계승했다는 것은 분명함. 스페인의 묘지에 사용되었던 해골과 뼈가 접근금지라는 의미를 가졌던데 착안하여 현재에는 이 상징무이 독극물을 의미하는 전 세계적 상징이 됨. 이 상징은 1829년 뉴욕주에서 이런 의미를 갖기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독극물에 더해서 공공장소에서의 치명적 위험을 가리키는 의미도 갖게 됨.
- 지배계급에 속한 사람은 자신의 부를 측정할 때, 얼마나 많은 토지를 갖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금괴를 갖고 있는지를 가지고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으로 여러 거래 가능한 수치들을 가지고 자신의 부를 측정함. 그럼으로써 자신의 경험과 세계의 중심에 일종의 허위의식을 설정하게 됨. 기호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회는 인간의 육체적인 진실이 인공적인 어떤 것으로 다루어지는, 본질적으로 인위적인 사회이다. (알베르 카뮈)
- 상표는 로마제국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간주됨. 로마군대를 위한 검을 만들던 대장장이들은 흔히 검의 손잡이에 자신의 이니셜이나 상징을 새겨 넣음. 중세 후반 이전에 이미 귀금속을 갖고 물건을 만들던 기술자들은 법률에 따라 반드시 자신이 만든 물건에 귀금속이 얼마나 많은 양으로 사용되었는지, 그 정확한 순도를 표시해야 했다. 금은의 순도를 나타내던 홀마크라는 말은 1327년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런던의 금세공인 홀을 본부로 한 고명한 금세공인 협회라는 이름의 길드에게 주었던 면허자에서 처음 등장. 이 길드가 만든 물건들 중에서 92.5%의 순은과 다른 금속 7.5%의 은 합급이었던 스털링 실버로 만든 것들은, 그것을 보증하기 위해 영국 왕실의 문장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표범머리의 상징을 각인. 곧 영국 전역에서 다른 길드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유럽 전역으로 퍼짐. 각각의 길드는 나름대로 특징적인 상징을 채택하여, 물건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주기도 하고, 어떤 장인이 어떤 품질로 만들었다는 것을 공인하기도 했음.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대량생산체제가 등장하고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금속 공예가들과 거래상들은 상품을 눈에 잘 띄게 만들면서, 자신들을 좀더 널리 알리고, 다른 공예가 및 상인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기 시작. 이에 따라 점점 국제적인 규모로 커져가던 기업들이 상표를 이용하게 되었지만, 이는 또 가품이 늘어나는 걱정도 낳음. 이에 따라 영국에서 1862년 상표권 도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고, 이는 1875년 상표권법에 의해 확장됨. 1875년의법은 모든 기업들이 자신의 상표권을 특허청에 등록할 수 있도록 하였음. 일반적으로 등록된 상표는 등록을 의미하는 Registered의 첫글자 R을 동그라미 안에 넣어 표시하고, 등록되지 않은 상표는 Trademark의 약자 TM이라고 쓴다.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 사람의 죽음 사용설명서  (0) 2015.02.22
딥씽킹  (0) 2015.02.22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  (0) 2015.01.24
애덤 스미스  (0) 2015.01.24
위대한 생각의 발견  (0) 2015.01.24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