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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12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

저자
노엄 촘스키, 데이비드 바사미언(인터뷰어) 지음
출판사
시대의창 | 2009-01-16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오바마 시대, 미국은 과연 변화할 것인가[촘스키, 변화의 길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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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대해 이스라엘은 언제나 그랬듯이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온갖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음.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소행을 합의라고 미화하고 미국은 철수라고 부름.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정책은 이스라엘이 군사적 합병과 분할정책을 통해 옥토를 빼앗고 물을 포함한 중요 자원들을 강탈한 후, 여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정착시키고 기간시설을 갖추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지역을 사람이 살 수 없는 분할지로 고사시키려는 정책. 이러한 분할지는 서로 서로 분리되었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상업, 교육, 문화적 생활의 근거지가 될 수도 있었던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정착지들로부터도 완전 분리됨.
- 2차대전 이후로 미국은 극단적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지원하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원자였음. 아랍세계에서 미국의 가장 오래되고 소중한 동맹국은 사우디임. 이란은 그에 비하면 민주주의의 지상낙원임. 사우디의 종교적 극단주의 독재자들에 대한 위협은 세속적 아랍민족주의였는데, 이런 민족주의는 게말 압델 나세르가 추진한 것. 나세르가 미국의 적이 된 이유는 그가 극단적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기반인 사우디를 위협했기 때문. 우연히도 사우디는 원유를 통제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것이 미국이 사우디를 감싼 진짜 이유. 67년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기반으로 하는 세속적 아랍민족주의를 일소함으로써 미국, 사우디 그리고 에너지 회사들에게 엄청난 기여를 함. 당시 세속적 아랍민족주의가 풍미하면서 자국의 지원을 자국국민을 위해 사용하려는 위험한 분위기가 생겨났는데 이런 시도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음. 그러한 자원들은 오래전에 조지키넌이 말한 것처럼 미국의 자원이고 미국은 그 자원을 보호해야하기 때문. 똑같은 일이 되풀이해서 벌어지고 있음. 이스라엘은 세속적 민족주의자들인 PLO를 궤멸시킴으로써 하마스를 태어나게 했음. PLO는 사실 협상과 해결은 요구하는 온건한 집단이었음. 이스라엘과 미국이 절대로 원하지 않는 것이 바로 협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PLO를 궤멸시켜 버림. 그후 놀랍게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분열하지 않았음. 오히려 그들은 무언가 다른 것, 종교적 근본주의로 눈을 돌리게 됨
- 이상한 지정학적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의 주요 에너지 보고는 시아파가 지배하는 지역에 몰려 있음. 사우디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에너지 보고를 갖고 있음. 사우디의 유전은 이라크와의 접경지대에 주로 집중되어 있는데, 이 지역 역시 미국의 지원을 받는 사우디의 독재자들, 즉 그들의 지배를 받는 시아파 회교도들이 몰려사는 곳임. 그러나 이제 이들은 더 많은 권리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자치권을 요구하기도 함. 이라크의 시아파 형제들이 이라크내에서의 정책에 대해 어느정도의 통제권을 획득하는 것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기 때문. 이렇게 보면 이 지역에서 느슨하나마 일종의 시아파 연대세력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음. 이란 시아파, 이라크 시아파, 사우디 시아파들이 연대해서 미국으로부터 벗어나 세계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통제하는 가능성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연대는 동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을지도 모름. 미국은 유럽을 위협할 수는 있어도 중국을 협박할 수는 없음. 미국이 중국을 두려워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임. 중국인들은 이미 과거 3000년 동안 이 지역에 등장했음. 쉽게 겁을 먹을 나라가 아님. 미국은 중국으로 하여금 중동문제에 손을 떼라고 하지만, 중국인들은 끊임없이 이 지역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음.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부시정부는 그들에게 공식만찬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굴욕감을 안겨줄 수 있다고 생각. 실제로 미국은 공식만찬대신 오찬만 제공. 후진타오는 매우 전잖은 사람이었음. 그는 자신이 당한 굴욕감을 아주 부드럽게 받아넘기는 대신, 워싱턴에서 곧바로 사우디로 날아가 융숭한 환대를 받음. 그는 사우디와 새로운 투자를 체결하고 무역관계를 증진시킴. 중국은 이제 사우디의 최대 무역파트너가 되었고 지금은 군수불자까지 제공. 이런 사태진전이 미국의 민간전략가들을 경악시켰음에 틀림없음.
- 9/11에 대한 논의가 왜 이렇게 관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가? 이 점에 있어서 권력자들이 의심됨. 9/11은 정부의 훨씬 더 심각한 진짜 범죄들로부터 국민들의 저항 에너지를 분산시킴. 가령 미국 정부가 세계무역센터를 폭파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건 아주 사소한 범죄에 불과. 핵전쟁의 위협과 환경재앙을 증대시키는 것이 훨씬 더 나쁜 범죄임. 인류전체의 생존을 앗아갈수도 있기 때문. 미정부가 저지른 이라크와 레바논 침공을 보라. 아니면 미정부가 자국의 근로자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만행을 보라. 그런 사례는 수없이 많음. 미정부는 실질적 의미에서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음. 그런데 이런 일상적 범죄에 대해서는 아무런 항의도 찾아볼 수 없음.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많은 잠재적 저항 에너지가 9/11에 소진되고 있기 때문. 권력집단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건 참으로 다행인 셈. '그래 이 사람들에게는 씨스팬(정부관련 일이나 공공문제를 24시간 방송)이나 실컷 볼 수 있게 해주자. 그리고 9/11 관련 서적들을 서점 앞줄에 놔주자.'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 그렇기 때문에 9/11에 대해 이렇게 관대하게 나오는 것임. 말하자면 국민들이 9/11과 같이 전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쫓아다니며 에너지를 소비하는 동안, 정작 중요한 문제들을 간과하게 되는 것임. 9/11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있음. 그와 관련된 증거도 확실하지 않음. 테러의 물리적 증거물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것을 판별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움. 이 문제는 매우 난해한 전문적 공학에 관한 것임.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한가지 논점은 과학자들이 실험을 하는 근본적 이유임. 과학자들은 창 밖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비디오테이프를 분석하지 않음. 이유는 간단함. 창 밖에서 일어난 사건은 너무나 많은 변수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 복잡한 사건의 실체를 비디오 테이프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 이런 사건에는 늘 설명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우연의 일치와 명백한 과학법칙의 위반이 수반됨. 통제된 실험에서조차 예기치 않은 문제들은 발생함. 과학저널의 칼럼이나 기사를 보면 이런 사례들은 수없이 나옴. 이런 저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점을 알고나면, 결국 우리가 에너지를 소진해가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
- 미국역사에서 보자면, 이란에 관해서는 한가지 사건이 있음. 바로 79년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임. 이란의 역사는 반세기 이상 미국에게 끊임없이 고문당하고 괴롭힘당한 역사임. 53년 미 중앙정부국과 영국은 쿠테타를 공모해 이란의 내각을 전복시키고 사악한 독재자 샤 레자 팔라비를 집권시킴. 그 이후 그들은 모든 잔학 행위들을 뒷받침함. 이 기간 동안 이란 통치자가 저지른 고문들, 사바크의 학살행위, 기타 등등에 대해 미국의 언론은 단 한마디도 보도하지 않았으며, 79년까지 그랬음. 그러다가 마침내 카터가 77년 테헤란에 가서 최고통치자의 위대한 영도력을 추켜올리고 그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예찬했음. 카터의 입에 발린 말은 이란 국민들 다수를 격노케 함. 79년 이란 정부가 전복되자, 카터정부는 거의 즉각적으로 그에 대응한 군사 쿠테타를 기도함. 그런데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레이건 정부는 이웃의 사담 후세인에게 눈길을 돌려 그로 하여금 이란을 침공토록 함. 이를위해 레이건 정부는 이라크를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시켰고, 후세인에게 엄청난 지원을 함. 여기에는 화학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수단까지 포함되어 있음. 이렇게 해서 이란 국민 수만명이 학살되었던 것.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지원으로 해서 말이다. 이런 지원은 후세인이 최악의 잔학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이루어졌음. 미국의 개입은 점점 많아졌고 마침내 이란-이라크 전쟁에 거의 직접적으로 개입할 지경에 이름. 그러자 이란은 도저히 미국과 대항해 싸운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계산을 하고 항복하게 됨. 이란 국민들이 미국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임. 확신컨대 미국이 후세인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이란 국민들의 기억속에서는 지워지지 않을 것임. 게다가 89년 이란과의 긴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이라크의 핵무기 기술자들을 워싱턴으로 초대해 핵무기 개발법을 가르치기 위한 훈련을 시킴. 이란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잊지 않을 것임. 미국을 필두로 한 국제사회가 이란의 핵무기에 관한 근거도 없는 염려를 늘어놓는 데 대해, 이란 국민들은 아마도 냉소적 반응을 보일 것임. 반세기 이상을 억압당했으니 말이다. 미국 국민들에게 이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임. 그러나 이란 국민들에게는 이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됨. 곤봉을 휘둘러댄 가해자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 누군가를 정복해서 억누를 때는 뭔가 이유가 필요함. "나는 원래 개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냥 훔치고 싶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음.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그들도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며, 실제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말해야 함. 우리가 그들을 돕고 있다는 것. 이런 것이 바로 노예주인들의 태도임. 노예주인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음. "내가 이 사람들을 노예로 삼은 것은 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쉽게 착취할 수 있고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야" 대신 그들은 이렇게 말함. "우리는 그들에게 시혜를 베풀고 있어. 그들은 그것이 필요하거든" 심지어 19세기 인류학자들은, 흑인들의 등이 굽은 것은 면화를 채취하는 데 알맞도록 유전적으로 적응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음. 그렇기 땜누에 흑인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17세기와 18세기를 시작으로, 유럽의 제국주의는 특히 악랄한 모습을 띠게 됨
- 각 국가는 자신의 국익을 추구함. 국익이 무엇일까? 아담 스미스는 국익이란 국가정책의 핵심입안자들의 이익이라고 명쾌한 정의를 제시. 아담 스미스 시대의 국가정책 입안자들은 상인과 제조업자였음. 오늘날에는 다국적 기업과 그 무리들임
- 영국은 비록 규모면에서 비교가 될 수 없지만 미국에 앞선 가장 강력한 무역국가였음. 영국은 19세기 말엽에 자유무역을 옹호했음. 그때는 산업화면에서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훨씬 앞섰기 때문에 영국의 제조업자들은 앞으로도 자기들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음. 그들은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선택적으로 경쟁분야를 제어하는 기쁨을 맛봄. 그러나 그것도 상당한 제약을 통해서 가능했음. 예를들면, 영국은 강력한 보호무역조치로 인도라는 시장을 유지. 그런데 20년대 일본이 경쟁력을 갖추게 되자 영국 산업계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엇음. 결국 32년 일본의 수출공세로부터 대영제국의 시장을 폐쇄하게 됨. 부분적으로 이것이 태평양에서 벌어진 2차대전의 배경이 되기도 함. 사실은 전쟁발발의 강력한 배경이 된 것. 이런 일이 벌어질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알 수 있었을 것임. 그러나 미리 생각한다는 것은 권력의 핵심들, 정치가들, 기업의 총수들의 특성이 아님. 그들은 단기적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
- 인터넷 검색은 말하자면 생물학자가 모든 생물학 저널을 읽는 것과 같음. 그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음. 진정한 과학자라면 그렇게 하지 않음. 읽어야 할 문헌은 방대함. 문헌들속에 함몰될 수 있음. 유능한 과학자라면 자신이 어떤 정보를 구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임. 그가 접하게 되는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필요한 것마을 최소한으로 보는 사람 말이다. 의식있는 독자도 마찬가지. 그것이 인쇄물로 되어있든 인터넷에 올라와 있든 구해야할 정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임.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지식, 배경에 대한 이해, 세상을 해석하고 걸러주는 장치로서의 미디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파악하는 인식능력이 필요. 그러면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알게됨. 인터넷도 마찬가지임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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