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커넥터

경영 2014. 10. 6. 20:55

 


슈퍼커넥터

저자
마크 W. 셰퍼 지음
출판사
라이온북스 | 2014-02-2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우리는 지금 마케팅 혁명의 출발점에 서 있다 그리고 이제 그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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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전만 해도 마케팅 기술을 갈고 닦거나 새로운 사업방식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학교에 진학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 트위터 링크나 블로그 포스트의 홍수도, 온라인 웨비나도 없었음. 꼼짝없이 교실에 앉아 있거나 책을 보며 배워야 했음. 그런데 이러한 자동반응(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작은 정보들을 기대하는 문화적 훈련)은 실제 세상에도 퍼지고 있음. "요즘 학회에 가면 마케팅 전략을 실행에 옮기는 방법에 대해 1,2,3단계로 나누어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습니다. 트윗형식으로 간략히 정리된 마케팅 전략을 듣고 싶어 하는 거죠. 사실 거의 모든 마케팅 관련 질문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라는 말로 답변이 되어야 옳지만, 많은 이들이 정답을 배우는 데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들은 30분, 아니면 그보다 적은 시간에 최상의 요령을 배우고 싶어할 뿐입니다. 세개의 요점을 듣고 나면 바로 다음주제로 넘어가길 바라죠. 배울 시간이 없거나 그것을 효과적으로 배우는 것을 우선순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샌프란시스코 컨설팅 회사인 졸트 소셜 미디어의 스티브 판스워스가 한 말임. 세대 전체가 작고, 수시로 검색 가능한, 그것도 휴대전화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빠르게 이해하는 식으로 삶을 살다 보니 사람들의 그러한 기대치는 날로 커지고 있음. 앞으로 몇년 내로 스마트폰이 인터넷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주된 퍼스트 스크린이 될 것임. 인터넷 접속의 최초 접점으로 주민의 70%가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는 이집트에서는 벌써 벌어지고 있는 상황. 분명히 앞으로 우리는 매일 일상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점점 더 적은 양의 정보에 의존하게 될 것임. 주로 보는 스마트폰 화면이 노트북부도 훨씬 작다는 이유도 여기에 한 몫함. 인터넷 개발 전문가들이 인터넷 기반 정보를 작은 화면에 최적화되도록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단순화시키는 것. 즉, 세부적인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
- 인터넷에는 기업, 국가, 교실 등에서 찾을 수 있는 구조나 조직도 같은 것이 없지만 인간은 권위를 갈망하고, 그것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도 누군가에게 권위를 부여하고자 하는 니즈를 가짐. 어떤 상황에서든 누가 책임자인지 알고 싶어 하는 것. 치알디니는 이런 니즈가 우리의 두뇌속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권위자라고 인식되는 사람에게 추종자적 반응을 보인다고 주장. 따라서, 사람이 소셜 웹에서 어떻게 영향력을 갖는지, 아니면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인식을 만들어내는지 알아보는 것이 현재 우리의 목적이므로 이것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음. 치알디니는 이렇게 말함. "권위자의 지시에 따르는 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실용적 혜택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나 부모 같은 초기의 권위자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우리는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에게 이롭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지혜 덕분이기도 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내리는 보상과 처벌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른이 된 다음에도 같은 이유로 유사한 혜택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때 권위자들은 고용주, 판사, 정부 지도자 같은 사람들로 바뀐다. 그들의 높은 지위 자체가 곧 정보와 권력을 향한 접근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제대로 구성된 권위자들의 바람에 따르는 것이 논리적이다. 심지어 그것이 얼마나 논리적인지 모를 때나, 때로 전혀 논리에 닿지 않는 일에도 우리는 그들의 지시를 따른다. 권위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대체로 좋은 보상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자동적으로 복종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 역사학자 대니얼 부어스틴의 이미지와 환상에서 그는 실제 성취한 업적이 있는 사람들만이 유명인사가 되었던, 대중매체가 등장하기 전 시절과 지금의 시대를 비교함. 그리고 자신의 유일한 업적이 유명해진 것 자체인 새로운 유형의 유명인사에 대해서도 언금. 그렇다면 이때 그들의 업적은 유명해지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음. 지금도 유명세를 얻는 방법을 터득한 인터넷 스타나 리얼리티 텔레비전 쇼 스타들이 존재. 영향력을 점수로 매기는 것에 대해 왜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음. 한편으로는 그 점수가 무언가 믿을만하고 타당성 있는 것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조작될 수 있음. 왜 그런 점수 시스템을 진심으로 믿지 않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이해됨. 이와 같이 개인의 온라인 영향력을 측정하는 것이 얼마나 유용하고 정확한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결론에 도달하게 됨. 무수한 사회적 검증을 제공하는 인터넷의 능력과 그러한 증거를 점점 더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우리의 태도 때문에 의미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배포하는 재능은 개인의 실제 경험과 실력, 개인적 업적과 관계없이 온라인 영향력의 진정한 원천이 될 수 있음. 참으로 이상한 생각 아닌가? 오프라인 세상에서 우리는 영향력자들이 실제 성과를 통해 그 지위를 얻었을 거라 기대하고 또 그러길 바람. 의사는 성공적으로 여러건의 수술을 집도해야 하고, 요리사는 맛있는 음식을 선보여야 하며, 영화배우들은 우리가 좋아할 수 있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함.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이야기가 다름. 진짜이어야 할 필요가 없음. 맨 위드 펜스라는 웹사이트의 유명 작가이자 컨설턴트는 충실한 팬층을 확립하는 한편 상당한 수의 고객을 모아 짭짤한 수익까지 올렸는데, 몇년 뒤 그가 실은 여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짐. 그녀의 모든 것이 가짜였던 것. 콘텐츠만이 유일한 진짜였음.
- 3M의 포스트잇이 그런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기업 비서들의 주도로 시작된 영향력 캠페인 덕분. 접착력이 약한 접착제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 유명한 이야기의 시작은 3M이 자사의 임원 비서들과 아이다호 주 보이시 주민들에게 무료샘플을 나누어 준 일이었음. 얼마 지나지 않아 고위 임원들이 각종 서류와 파일 폴더에 노란색 작은 종잇조각을 잔뜩 붙이고 회의실에 나타났음. 상사들을 모방하여 그들의 눈에 들려 애썼던 직원들은 포스트잇을 더 많이 들여놓으라고 총무과 직원들을 들볶음. 호주 와인 생산업체 옐로우 테일은 기존에 무시당하고 있던 영향력자들, 즉 와인 판매 상점주들과 손을 잡음으로써 이 경쟁 심한 주류시장에서 금맥을 캐냈음. 옐로우테일은 미국 나파 밸리 와인이나 프랑스 와인의 유서깊은 혈통도, 와인애호가들의 입맛에 딱 맞는 최고수준의 맛도 갖추지 못했지만 영향력 마케팅의 힘을 잘 이해하는 똑똑한 임원들을 갖고 있었음. 그들의 마케팅 예산 대부분이 와인 상점주들에게 보내는 무료 와인용품과 의류 등에 배정되어 있을 정도였음. 다른 브랜드들에 철저히 무시당했었던 이런 소규모 상점주들은 옐로우 테일의 관심에 반색을 했고 고객들에게 그 회사 제품을 추천하는 한편, 그 제품을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하기 시작. 놀랍게도 그로부터 5년도 안 되어 옐로우테일의 매출은 0에서 750만 상자로 늘어나 미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와인이 되었음. 식음료 업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공이었음.
- 기업들이 영향력자를 다급히 찾는 이유에 관한 7가지 사안
(1) 저렴한 초고속 인터넷과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같은 손쉬운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누구나 콘텐츠를 제작하고, 좋은 평판을 얻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어느정도 영향력을 갖출 수 있게됨
(2) 모든 영향력자가 동등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님. 특정한 슈퍼커넥터들만이 대유행에 불을 붙이고, 입소문 영향력의 중심에 설 수 있음. 그들과 인터넷의 기술적 요소들과 합쳐짐으로써 강력한 네티즌 영향력자라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됨
(3) 권위, 사회적 검증, 상호호혜, 희소성, 일관성, 호감도 같은 전통적 영향력의 특징들은 온라인상에서 다르게 나타남. 사회적 검증과 상호호혜의 법칙은 사람들이 직접 얼굴을 대면하지 않고 '좋아요'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호의를 베풀기가 쉬운 디지털 환경에서 특히 중요
(4) 인간은 권위를 간절히 원함.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힘들 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면 좋을지 알고 싶어 함. 트위터 팔로워수나 페이스북 친구수처럼 인터넷에는 사회적 검증을 상징하는 뱃지들이 매우 많아서, 이것들은 한 사람의 지위를 알려주는 간단한 지표가 될 수 있음. 개인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을 때 더욱 그러함. 이는 클라우트 지수처럼 수치로 권위의 정도를 나타낼 수 있는 시스템이 지위와 영향력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임. 설사 이 점수가 직접적으로 오프라인의 현실을 대변하지 않거나 그 시스템을 얼마든지 조작하고 가지고 놀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5) 영향력의 전통적 요소에 함께 얽혀 있는 것이 바로 콘텐츠임. 설득력 있고, 의미있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널리 퍼뜨릴 수 있는 능력은 인터넷 고유의 것임. 다양한 형태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배포할 수 있는 재능은 개인의 실제 경험이나 능력, 업적과 관계없이 힘의 원천이 됨
(6) 콘텐츠를 제작하고 퍼뜨리는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온라인 영향력을 수량화하고 측정할 수 있게 됨
(7) 이렇게 네티즌 영향력자들을 찾아내고, 육성하고, 활성화시키면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시장통찰을 얻을 수 있음. 역사적으로 입소문 리더들을 찾아내는 건 노동력이 많이 필요할 뿐 아니라 마케터들에게 큰 비용이 드는 일이었음. 혁명적인 신사업 모델이 부상하면서 기업들은 각 주제에 맞는 영향력자들을 빠르고 저렴하게 찾아낼 수 있게 되었음.
- 남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우리의 화를 돋우는 것은 없음. 그런데 바로 그것이 소셜 스코어 시스템이 하려고 하는 일. 특권층, 적어도 그들이 특권층이라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내리는 것임. 그리고 이런 행위는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고 있음. 많은 국제사회들이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믿음. 따라서 우리는 모두 똑같이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인기 높은 콘서트 입장권을 사고, 아니면 콘테스트에서 우승할 수 있어야 함. 하지만 소셜 스코어와 클라우트 퍽스 프로그램의 세상에서는 이런 경제원리는 완전히 거꾸로 뒤집히고 만다. 오늘날 트윗, 팔로워, 상태 업데이트를 바탕으로 한 디지털 채점 시스템은 인기, 승진, 기회, 그리고 금전적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길이나 마찬가지. 일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는 클라우트 지수에 따라 팔로워와 그들의 콘텐츠를 거르는 기능까지 제공. 이것은 점수가 낮은 신참들의 진입을 아예막는 소통의 천장을 만들어낼 불길한 전조임. 클라우트 알고리즘이 엄격히 비밀에 부쳐져 있긴 하지만 창립자인 조 페르난데스는 이미 서너번에 걸쳐 높은 점수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면 자신의 점수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한 바 있음. 이것을 극단적 수준까지 끌고 간다면, 아무도 신참들과는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을 것임. 아니, 그들이 자동필터에 걸러진다면 아예 그들을 보지도 못할 것임. 이 새롭게 부상하는 계급제도는 힘이 있다고 인식되는 사람들에게만 보상을 내릴 뿐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신참들, 아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기웃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더 나은 할 일이 있는 멀쩡한 사람들을 완전히 차단해버릴 것임. 이처럼 부당한 대우는 오프라인 세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 이미 많은 기업이 까다로운 트위터 불평분자들, 인기 있는 블로거들, 활발히 상품평을 올리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 하지만 개별 소비자가 소셜 미디어에 남기는 발자취가 점점 더 커짐에 따라 고객 서비스 조직들은 이미 상황을 더 조심스럽게 다루기 시작. 선두적 CRM서비스 기업인 세일즈포스닷컴은 이제 자시의 소프트웨어에 클라우트 지수를 포함시키고 있음. 기업들이 어느 고객이 우선적으로 접대를 받아야 하는지 정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임. 이 소프트웨어를 통해 기업은 어떤 소셜 미디어 반응을 먼저 처리할지 정하고, 고객의 소셜 스코어에 따라 쿠폰이나 특별행사같은 자동응답을 보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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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텍스트의 시대

경영 2014. 10. 6. 20:54

 


컨텍스트의 시대

저자
로버트 스코블, 셸 이스라엘 지음
출판사
지앤선 | 2014-03-2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다가올 미래에 무엇이 삶을 변화시킬 것인가?우리를 둘러싼 빅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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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는 페이스북이 그래프 서치를 출시했는데, 이는 검색엔진 분야에서 줄곧 패권을 쥐고 있던 구글에 대한 첫 도전으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음. 그래프 서치는 보스턴+랍스터 레스토랑 같은 키워드 검색으로 원하는 정보를 찾는 대신, "내 친구들이 좋아한 이 근처 레스토랑"과 같이 자연언어를 이용하여 질문을 할 수 있게 해줌. 그러면 스파이더가 인터넷상의 데이터 페이지들을 샅샅이 뒤지도록 하는 방법이 아니라 당신의 친구들이 했던 대화내에서 관련된 콘텐츠를 찾음. 페이스북의 기술이 당신이 찾고자 하는 것의 대부분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프 서치는 더 빠르고, 쉽고, 컨텍스트 관점에서 보다 연관성 높은 데이터를 제공함. 구글은 콘텐츠와의 연관성을 결정하는데 링크를 사용하는 반면, 페이스북은 친구들과 당신의 소셜 행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함. 이것은 꽤 큰 변화이며 우리가 컨텍스트의 시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할 것임.
- 센서가 컨텍스트의 기반이 된 전환점은 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출시한 시점임. 아이폰은 유리안의 정말 작은 센서들을 통해 가능했던 기술인 터치스크린을 뽐내기에 성공한 첫 모바일 기기임. 이 폰은 다른 종류의 센서도 포함하고 있는데, 가로보기에서 세로보기로 전환하고, 와이파이를 찾고, 블루투스 이어폰에 연결해주는 센서들임. 가속도 센서는 또한 사용자가 실수로 아이폰을 떨어뜨리는 찰나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해줌. 오늘날, 스마트폰에는 평균 일곱가지의 센서가 내장됨. 급속도의 수적 성장을 보이고 있는 모바일 앱은 센서를 이용하여 당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냄. 이런 센서의 감시가 일부 사람들을 소름끼치게 할 수도 있으나, 이를 통해 모바일 기기가 사용자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음.
- 우리는 구글의 전략적 목표가 궁극적인 컨텍스트 활용기업이 되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으며, 그러한 회사가 되기 위한 아주 유리한 조건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음. 이것은 구글이 왜 구글 글라스를 생산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노력하는지 설명해줌. 더 나아가 구글이 "누가 자신의 사용자를 최고로 잘 아는가?"를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모바일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개발해야 했던 이유를 설명해줌. 또한 구글 플러스가 왜 페이스북과 일대일로 소셜 네트워크 분야에서 경쟁하려 하지 않고 구글내에서 지속적으로 개발중인 컨텍스트 기반 제품들에 밀접하게 통합된 소셜 네트워크가 되는 계획을 세웠는지 설명해줌. 구글은 당신의 다음 행동이 무엇이 될지 예측가능할 정도로 당신에 대해 알고 싶어함.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컨텍스트에 기반하여 구글이 만든 어떠한 제품에서건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려 함.
- 78년에는 미국의 16세 전체에서 92%가 운전면허증 혹은 운전자 교육허가를 갖고 있었음. 08년에는 단지 77%만 갖고 있었음. 더 흥미로운 것은 자동차를 소유한 아이들이 운전을 더 적게 한다는 것. 미국교통부는 현재 30세 이하의 사람들이 한세기 전의 30세 이하보다 한해동안 운전한 거리가 10%정도 적다고 발표. 이에 비해 젊은 세대들은 더 많은 시간을 그들의 휴대폰에 소비. 휴대폰이 개인용 컴퓨터라고 인식하는 새로운 세대들이 나타나고 있음. 동시에 자동차가 없어도 쿨하다고 생각함. 포드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한때 이용했을 법한 값비싼 마케팅 캠페인으로 트렌드를 뒤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음. 대신, 기술의 민주화에 대처해 나가면서, 도시의 카셰어링 서비스인 집카와 사업가들이 새로운 도시기반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고도로 발달한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테크샵에 투자함으로써 미래의 고객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고 있음.
- 소셜 미디어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세일즈포스는 소셜 미디어를 지렛대 삼아 소비자들이 회사와의 소통에 참여하도록 독려함으로써 더욱 효율적으로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게 상품을 내놓았음. 우리의 이전 저서 블로그 세상을 바꾸다에서 언급했던 메시지 퍼붓기 현상으로부터 쌍방햐 소통으로의 변화양상은 소셜 CRM이라 불림. 소셜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소셜 CRM은 기업들이 진짜 의미의 컨텍스트 활용 마케팅으로 한발짝 더 다가설 수 있게 했으며 회사와 고객이 함께 제품개발, 고객 서비스 정책, 기타 제반사항에 대해 서로 협력하도록 함. 소셜 CRM과 온라인 커뮤니티는 회사와 고객이 상호이해를 확립하고 신뢰를 쌓는데 많은 기여를 했음. 소셜 CRM전략을 도입한 대부분의 회사들은 고객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직원을 별도로 선임. 성공적인 CRM관리자들은 회사를 위해 광고 퍼붓기와 같은 행패를 부리지 않음. 회사의 고객, 분석가, 언론매체, 투자자, 그리고 입사지원자 모두가 하나의 현명한 집단을 이루어 서로를 도움. 회사는 각종 자원 소비를 절약하면서 이 현명한 집단의 구성원들은 더 빨리 그리고 흔히 열정을 갖고 서로를 돕고자 함. 소셜 CRM은 위의 일대일 마케팅에서 언급한 바니 이스라엘이 구사한 것보다 몇단계 더 진화한 형태의 일대일 마케팅 방식이라 할 수 있음. 이것은 글로벌 회사들이 인터넷을 이용해서 수십, 수백배 강화된 개인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줌. 온라인 커뮤니티들은 셜스가 구상했던 여러 단면 중 소비자들이 어디론가 가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밝혀야 하는 시장환경을 구현해 낸 것. 우리의 전망 역시 마케팅의 형태를 포함하고 있으나 컨텍스트 시대의 마케팅은 소비자들이 어느 특정 장소에 간다든지 본인들의 의도를 직접 밝힌다던지 하는 일이 필요없을 정도로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함. 모바일, 소셜 미디어, 센서, 데이터 그리고 위치기반 기술을 통해 고객들이 어떤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원한다는 정보를 나타내면 판매자들이 직접 소비자를 찾아갈 수 있음. 이것을 핀포인트 마케팅이라 부름
- 핀포인트 마케팅은 판매자가 소비자의 컨텍스트, 가령 소비자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를 토대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고, 또한 소비자가 향후에 어떤 것을 원할지 예측가능하도록 함. 판매자는 이 예측의 정확도를 높임으로써 소비자와의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경쟁하는 데 유리해짐. 또한 마케터들은 사람들의 컨텍스트가 변화함에 따라 거래성사를 위한 마케팅을 어제 그만둬야 할지 적정시기를 알 수 있음.
- 이 책의 저자들이 구상한 마케팅은 한마디로 마이크로 커미션이라 할 수 있음. 구글 글래스는 비단 당신이 있는 곳뿐만 아니라 당신이 현재 운전중인지, 걸어가고 있는지, 자전거를 타고 있는지까지 알 수 있음. 당신이 하고 있는 행동, 위치, 시간대, 날씨 등에 대한 컨텍스트를 이해함으로써 이후에 당신이 어떤 일을 할지, 혹은 무엇을 구매할지를 판단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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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철학

IT 2014. 10. 6. 20:53

 


디지털 철학

저자
이종관, 박승억, 김종규, 임형택 지음
출판사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13-12-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디지털 컨버전스와 미래의 철학 ‘디지털 컨버전스’는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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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컨버전스는 부르디외나 피에르 레비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들을 실현시켜 줄 수 있음. 예컨대, 디지털화를 통해 가능해진 새로운 네트워크의 세계는 제한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와 소통의 욕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기 때문. 그러나 그러한 욕망의 실현 이면에는 마치 전자적 스파크가 만들어내는 빛이 드리우는 그림자처럼 은폐되는 세계가 있기 마련.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끝없이 네트워크를 이동하는 노마드적 주체는 자신이 향유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유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기도 함. 이 때문에 디지털화에 저항하는 욕망, 즉 균질화된 세계에서 차이에 대한 욕망, 경계에 대한 향수 역시 커짐. 이러한 역설적 상황의 공존은 디지털 컨버전스가 가능하기 위한 불가피한 전제, 즉 세계의 균질화가 사실은 기만적 이념일지도 모른다는 실존적 불안감의 다른 표현임.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재현의 기술을 목격하는 현대인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마저도 다른 무엇에 의해 조작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됨. 네트워크 공간안에서 자신의 정보가 유출되고, 자신 아닌 또 다른 자신들이 버젓이 활동하는 현상들을 목격하기 때문. 이러한 실존적 불안감은 디지털화 하는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 그러한 불안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연적 세계에 존재하는 차이를 소거하는 것과 반대로 다시금 그 차이를 생산해내는 것임. 물론 이러한 차이의 생산 역시 디지털 기술에 의존. 디지털 기술에 의해 생산되는 차이, 그리고 그렇게 풍요로워진 차이로 가득 채워진 세계는 마치 피그말리온 신화와 같음. 그것은 한편으로는 인간보다 더욱 아름다운 인간이지만, 동시에 신의 도움 없이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함. 가장 합리적인 세계관과 신비주의적 세계관이 공존하는 세계, 이것이 총체적인 디지털화에 직면한 자연적 인간의 현주소임
- 디지털 컨버전스를 통해 가속화되는 존재자의 총체적 디지털화는 결국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야기. 이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가 무력화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앞에 마주섬으로써 생겨남. 그 동안 지성사를 통해 관철되어 온 하나의 이념은 인간이 다른 존재자와는 다르다는 것이었음. 그 차이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자기 정체성을 결정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었음. 그러나 디지털화한 세계, 그리고 디지털 공간속을 부유하는 모든 존재자는 원칙적으로 동질적이며, 그런 한에서 인간조차도 예외일 수 없음. 근대 과학혁명 이래로 진행되어 온 환원주의는 한편으로 이 세계를 조작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실증적 힘을 보여왔지만, 그 이면에서 끊임없이 인간의 차이를 해소시켜 왔음. 예컨대, 진화론을 통해 인간은 더 이상 특별한 신의 창조물이라고 확신할 수 없게 되었고, 유전학을 통해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단백질의 유전정보 조합의 산물로 이해되었음. 이러한 환원주의는 인간의 모든 특권적 지위를 박탈하여,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야기. 세계의 모든 존재자가 비트로 환원되었을 때, 인간고유의 존재론적 지위는 증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 이런 상황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근원적 욕망을 부추김. 그러나 디지털화한 세계는 그런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없음. 디지털화한 세계 속에서 모든 존재자는 근원적으로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원칙적으로 수의 원리로 환원될 수 있는 동질적 존재성을 구현하고 있을 뿐이기에, 차이는 그저 그러한 근원적 동질성의 한계 내에서 배열의 조작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임. 이제 존재자들의 근원적 존재방식의 차이는 동질성 속에서 배열의 자유로운 조작으로부터 발생하는 엄청나게 현란한 차이의 놀이에서 삭제되고 그것으로 대치됨
- 디지털화된 놀이로서의 현재 온라인 게임도 종교적 제의와 지속적으로 연관된 것으로 볼 수 있음. 왜냐하면 종교적 제의 속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들은 일종의 유희적 행위이며, 이러한 까닭에 종교적 제의는 놀이의 기원으로 여겨지기 때문. 이러한 의미에서 밀러는 종교적 제의와 온라인 게임간의 유사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함. "디오니소스 페스티벌이라는 고대의식은 오늘날 아주 인기있는 다중접속 온라인 게임과 비슷한 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현대의 게임 참가자들은 서로 다른 등장인물이 되어 다른 플레이어들과 상호작용하고, 특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게임에서는 종종 삶과 죽음의 결과가 있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다시 말해 유희성의 측면에서 온라인 게임과 종교적 제의는 그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 매우 큰 유사성을 보임. 그렇지만 서사와 유희성의 측면에서 게임과 신화의 결합을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설명에는 여전히 해명되어야 할 것이 남아 있음. 온라인 게임에서 신화적 요소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까닭에 온라인 게임의 세계관 자체가 신화라 간주될 만하기도 함. 그렇지만 이때 온라인 게임의 세계관 그 자체가 신화라고 말할 수 있는 핵심적인 근거는 그 게임이 이야기로서의 신화가 갖고 있는 내용적 요소를 사용한다는 것. 그러나 신화적 요소들을 제 아무리 많이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요소들의 합이 신화 자체가 될 수는 없으며, 더욱이 신화는 단지 오래된 판타지 소설이 아님. 신화를 단순한 허구적 상상력의 생산물쯤으로 보는 것은 신화에 대한 매우 조야한 이해일 뿐이다.
- 신화속에서 영웅은 단지 초월적 힘과 능력을 과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영웅은 신화속에서만 혹은 블록버스터 속에서 허구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 주변에 존재하는 존재자임. 또한 신화속의 영웅은 타인의 목숨을 많이 빼앗는 존재가 아닌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타인의 목숨을 구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캠벨은 다음과 같이 말함. "우리는 이제 영웅이 길에다 깔아놓은 실을 붙들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알게 된다. 무서운 괴물이 있어야 하는 곳에서는 신을 만나게 되고, 남을 죽여야 하는 곳에서는 저 자신을 죽이게 되며, 외계로 나가야 하는 곳에서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되고, 외로워야 할 곳에서는 온 세상과 함께하게 될 것임을..." 신화와 신화적 사고 속에서 인간은 개별적으로 그리고 파편적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인간은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으며, 늘 이런 연관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 이러한 연관은 공간적 인접성을 의미하지 않음. 어떤 의미에서는 디지털적 공간과도 매우 유사하게도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는 이상, 공간적 멂과 가까움은 의미가 없기 때문. 생명적 유대와 공감적 결속 속에서 언제 어디서건 나의 행위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그 어느 것에도 전달될 수 있음. 따라서 신화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낱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 신화와 제의를 통해 인간은 늘 공동체 속에서 모두와 함께 지속적인 연관을 맺고 있음. 이것이 신화의 사회적, 문화적 기능임. 물론 신화가 본래 갖고 있던 우주론은 더이상 문화의 중심일 수는 없음. 그러나 카시러가 말하듯 신화의 우주론이 상실된다고 해서 신화가 갖는 인간학적 가치까지 상실되는 것은 아님. 카시러와 캠벨이 보여주듯이 신화의 인간학적 가치, 즉 그것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기능은 여전히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생생하게 유효하게 이루러지고 있음. 이런 견지에서 본다믄 신화를 박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인간학적 가치를 우리가 보존하고 향유할 때, 우리는 보다 넓은 의미의 지평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임.
-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인류가 현존질서를 유일한 현실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이야기 예술을 통해 새로운 자유의 영토를 탐구해 온 노력의 결과물임. 인류는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고, 보다 정의로우며, 보다 멋있고 사리에 맞는 또 다른 세계를 찾아왔음. 이같은 추구때문에 무수한 이야기꾼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또 다른 세계의 허구적인 구성틀을 만들어 냈음. 서사와 이미지, 동영상과 상호작용성이 통합되어 완벽한 몰입의 허구적 구성틀을 창출하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인류가 소망하던 꿈의 이야기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음. 따라서 허구적 공간과 이 공간속에서 특징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에서 핵심요소이며, 바로 이러한 이야기의 소스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신화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에서 주목받는 것임.
- 송정란에 따르면, 오늘날 콘텐츠의 소스로로 신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세가지로 요약됨
(1) 수용과정에서 이미 검증된 이야기이기에 실패할 확률이 적음
(2) 각 민족의 유사신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류의 보편적 욕망이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기에 이야기적 가치가 높다는 점
(3) 신화의 속성이 비합리적이고 허구적이기 때문에 이를 원형으로 삼아 다양한 창조적 변형이 가능하다는 점
콘텐츠 기획자와 개발자들이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이러한 관심 속에서 신화는 콘텐츠의 소스로서 규정됨. 신화는 심원한 원형적 의미를 다층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스토리 양식이자 콘텐츠 소스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음.
- 근대가 시각중심의 문화로 편향될 수 있었던 것은 활자가 갖고 있는 정확성과 정보의 집적성과 전달의 용이성 때문이었음. 그러나 그런 편향은 불가피하게 우리에게 내재해 있는 어떤 근원적 욕망, 예를 들면 상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픈 욕망들을 왜곡시킬 수밖에 없음. 가령, 어젯밤 꿈을 설명한다고 해보자. 꿈은 스토리를 가진 이미지들이다. 근대적 재현양식은 그 꿈을 문자로 재현해 낼 수밖에 없음. 그러나 오늘날의 재현기술, 특히 다중현실적 기술은 내가 꾸었던 꿈을 단순히 평면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따라서 발전된 기술이 오히려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역설처럼 보이는 구조, 즉 시각중심의 근대문화로부터 디지털 기술에 의지한 공감각적 문화로의 회귀라는 역설은 일종의 착시효과이다. 우리의 본성에는 언제나 그런 재현의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은 유예되었던 욕망으로의 회귀나 부활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있어 더 근원적 성취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표면적 역설 이면에는 또 다른 대립이 있다. 디지털 텍스트에 기반한 문화가 표면적으로는 공감각적이지만 실제로는 근대 활자문화를 지배했던 선형적 합리성의 극단에 있는 이진법적 문화라는 점이다. 달리 말해 맥루언이 말한 전자시대의 공감각적 문화가 사실은 고대 신화적 세계의 문화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그런 문화가 기술적으로 다시한번 재현된, 하이퍼 매개의 상황에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우리의 욕망은 유예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디지털 문화 시대의 삶의 양식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즉, 디지털 기술에서 재현의 기술을 극대화하면서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넘어서는 더욱 강력하고 풍성한 현실 개념을 내놓지만, 그 현실은 여전히 우리에게 갈증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재현기술이 더 강력해질수록 그 갈증은 더욱 심화될지도 모른다. 다만 어떤 경우든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현실이 바뀌고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근원적인 욕망을 상징하는 신화적 공감각의 세계이든, 신화적 세계로 위장된 디지털 세계이든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현실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근대세계가 강조한 무엇이 참된 세계인가에 대한 판단을, 그리고 그런 판단을 지배하는 합리성 개념을 흔들어 놓는다.
- 고도로 복잡해진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는 자연적 생태계에 유비할 수 있음. 근대의 선형적 합리성이 생태계를 단선적으로 환원함으로써 많은 문제들을 양산했듯이, 실제로 복잡한 우리의 현실을 관찰의 편의성을 위해 단순하게 환원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되는 대상의 본질적 성격을 외면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름. 자연적 생태계가 상호작용의 망으로서, 특정 분야에서의 미시적인 변화가 그 체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듯이,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 역시 시스템 구성요소들인 개인들의 미시적인 변화가 사회적 트렌드를 결정해 버릴수도 있음. 다만 자연적 생태계와 디지털 생태계 사이의 차이는 자연적 생태계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데 반해, 디지털 생태계는 매우 즉각적이라는 데 있음. 디지털 기술이 시간과 공간을 압축해 버렸기 때문. 따라서 디지털 생태계는 시스템의 하부를 이루는 개별 에이전트, 즉 개인과 그런 개인들이 무리를 이루는 집단으로서 메타 에이전트들의 변화 양상을 거의 실시간적으로 반영할 가능성이 높음. 즉, 각각의 에이전트들이 시스템의 노드로서 고유의 경로를 가지는 한, 그들의 행위 경향을 결정짓는 다양한 매개변수들에 따라 시스템 자체의 유동성도 높아지고, 시스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피드백 역시 신속하고 민감해질 것임. 결과적으로 디지털 컨버전스 사회는 개인과 집단, 혹은 더 큰 시스템 사이의 관계가 마치 자연적인 생태계가 그렇듯이 공진화할 가능성이 높음
- 인쇄활자 문화에 기초한 근대문화는 민족과 국가의 문화였음. 반면 디지털 텍스트 문화는 근대 이전의 부족문화를 부활시킬 가능성이 높음. 현장성을 중시하는 구어적 문화는 의사소통 조건의 동질성을 확보한 사람들끼리 새로운 부족문화가 트렌드화할 가능성이 높음. 예를 들어 애플사의 제품을 선호하는 그룹들 혹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새로운 SNS 서비스를 공유하는 집단들이 그러함. 그들은 모종의 가치체계를 공유하는 동질적 집단들임. 이러한 메타 에이전트들의 등장은 주로 의사소통 양식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것을 집단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기준으로 활용함으로써, 고유의 부족문화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음. 만약 이러한 문화가 하나의 트렌트처럼 작동한다면, 그 의사소통 양식의 다양성은 곧 삶의 양식의 차별성으로 드러날 것이고, 그들의 의사소통 양식에 적합한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합리성이 그들의 행위를 결정짓는 표준적 가치체계가 될 수도 있음. 예컨대 하이퍼텍스트와 같은 네트워크적 디지털 텍스트, 그리고 트위터의 텍스트 같은 모바일 텍스트들은 대체로 길이가 짧음. 이는 속도가 생명인 디지털 사회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회 속에서 성장한 에이전트들이 함께 공진화한 결과이기도 함 반면, 이러한 문화와는 다른 메타 에이전트들은 그와 같은 속도에 현기증을 내고 정반대의 올드 텍스트들을 선호할 수도 있음. 이렇게 다양한 부족화는 디지털 기반 콘텐츠 산업이 겨냥해야 할 소비자층이 고도로 분화된다는 것을 의미.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분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일 것임. 이미 애플의 어플리케이션 마켓이 보여준 것처럼, 생태계적 아이디어를 차용할 수 있을 것임. 즉 개인을 균질화시켜 획일성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개성이 살아있으며, 그 개성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야 함. 바꿔 말하자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소유하기만 하는 것임.
- 디지털 컨버전스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디지털로 환원될 수 있다는 형이상학에 기초하고 있음. 디지털 컨버전스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컨버전스의 대상은 그것이 어떤 것이건 모두 디지털화되어야 함.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의 디지털화가 전제된다면, 디지털화의 대상은 무차별적임. 온라인 게임에 있어 게임과 신화가 결합될 수 있었던 것도 신화가 컨텐츠로서 디지털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디지털 미디어의 경우도 마찬가지. 디지털 미디어가 디지털 컨버전스를 토대로 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컨버전스의 대상이 되는 미디어들의 디지털화가 전제됨. 미디어들의 디지털화 속에서 비로소 디지털 미디어는 다매체성을 함축할 수 있게 됨. 바로 이런 까닭에서 디지털 미디어는 다매체성을 함축하는 융합 미디어로서의 특성을 갖게 됨
- 디지털 미디어의 핵심은 소통임. 전화의 경우도 소통이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소통은 전화와 같이 지명적으로(person to person) 국한되지 않음. 디지털 미디어에서 소통은 지명적 차원을 넘어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이루어짐. 개인과 개인들,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의 소통도 디지털 미디어에서는 가능함. 이러한 소통방식의 변화는 네트워크의 디지털화 속에서 배태됨. 네트워크의 디지털화는 실재하는 것으로서의 현실과 같은 제약조건을 무력화함으로써 소통의 가능성을 확대시키며, 이러한 확대속에서 소통은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형태를 갖출 수 있게 되었음. 또한 디지털화된 네트워크는 디지털 미디어의 한 모듈로 융합됨으로써, 이동서과 즉시성의 성격도 갖게 됨
- 구글이 나온뒤 기존에 일하던 방식과 성공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이라고 본다. 하지만 모든 곳을 자유로이 항해하고자 하는 구글에 있어 최대위협은 애플이나 페이스북처럼 이용자를 자신만의 세계에 묶어두려는 서비스가 커나간다는 사실이다. 켄 올레타의 발언은 변경된 상황에 대한 과거방식의 접근이 어떠한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음.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최근 일고 있는 스마트폰의 닫힌 소프트웨어 논란과 연장선상에 놓여 있음. 그러한 까닭은 닫힌 소프트웨어 논란이 발생하는 것은, 구글, 애플,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각기 다른 운영체제를 탑재함으로써 사용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 이러한 선택권의 제한은 이미 익스플로러를 윈도우에 기본탑재하여 이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해 온 마이크로소프트의 정책에 있어서도 제기되어 왔던 문제임. 동일한 문제가 반복된다는 점은 스마트폰의 닫힌 소프트웨어 논란이 현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이전의 익스플로러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성 속에서 영토성의 문제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줌
- 부족시대의 미디어는 말 그대로 자연적인 면대면 접촉이었으며, 이 시기의 사회적인 의사소통은 주로 구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청각이 지배적인 감각이었음. 비록, 청각이 지배적이긴 했지만, 면대면 상호작용은 상대의 표정과 몸짓, 신체적 접촉, 냄새 등, 다양한 감각이 동시에 동원되었으며, 그러므로 감각들 간의 균형이 뒤틀리지는 않았음. 그러나 문어시대로 오면서 표음문자가 발명되고, 시각이 지배적인 감각으로 변함. 문어는 비록 인간의 시각을 2차원적인 평면에 가두었지만, 그럼에도 필체 같은 촉감의 참여를 거부하지는 않았음. 맥루언에 따르면, 감각비율이 철저하게 뒤틀린 시대는 인쇄시대이며, 활자의 발명으로 인해서 다른 감각들이 2차원적인 평면의 시각에 종속되고 함몰되었음. 인쇄는 말 가운데 시각적인 요소를 지상의 것으로 삼고, 구어의 모든 감각적 성격을 이 글자의 형태로 축소해 버렸으며, 우리의 정신생활 속에서 인쇄된 말이 갖는 세분화의 힘과 분석의 힘은 우리에게 감각의 분열을 가져왔던 것임. 인쇄된 활자는 문자 외의 그 어떤 정보다 담고 있지 않으며, 구어나 필체가 가졌던 시각 이외의 감각적인 성격들을 추상화시켰음. 2차원의 평면에 인쇄된 활자는 오직 시각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있으며, 그 정보가 제공하는 다른 감각적 요소들은 그 활자안에 추상화되어서 저장됨. 그러므로 우리는 시각적 활자정보를 통해서 청각이나 촉각, 입체적인 공간감각 등의 요소를 추상화시키거나 혹은 제거함. 인쇄시대의 감각비율은 평면적인 시각을 중심으로 하며, 더 나아가 다른 감각들을 이 시각정보로 축소시키고 추상화시켰음. 전자시대는 이런 인쇄시대의 뒤틀린 감각비율을 회복시킴. 라디오의 등장으로 청각이 부활했으며, TV는 시각과 청각정보를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시각과 청각의 비율에 균형을 가져왔음. 전자시대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시각화된 문자뿐 아니라, 전화나 라디오를 통한 청각정보, 궁극적으로 멀티미디어를 통해 시각과 청각정보를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부족시대의 면대면 소통을 부활시킴. 이는 시각에 억눌려 최면상태에 빠져 있던 여타의 감각들을 되살아나게 하고, 뒤틀렸던 감각비율이 다시금 균형을 되찾도록 만듬. 컴퓨터의 등장은 전자시대로의 이행을 가속화시켰고, 결국 인터넷을 통해서 지구촌 시대를 열었음. 컴퓨터는 기존의 매체가 제공할 수 없었던 3차원적인 공감각 정보를 제공하면서, 미디어가 3차원적인 현실을 재현할 수 있게 만들었음. TV나 영화가 가지고 있었던 멀티미디어의 성격은 컴퓨터에 그대로 전이되었으며, 심지어 그 조합이 더욱 다양해지고, 개인의 능동적 참여가 가능해졌음. 오늘날, 스마트 미디어의 등장은 출력방식뿐만 아니라 입력방식 또한 다양한 감각정보를 활용하고, 일상의 매 순간마다 미디어와의 접촉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이런 전자시대의 공감각적인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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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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