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같이 다른 사람을 만나서 그를 판단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금융회사의 전문설계사와 상담한 뒤 펀드에 가입하거나, 면접을 치러 직원을 뽑습니다. “그런데 그 펀드는 고수익을 냈는가? 면접점수가 높았던 구직자가 더 능력 있는 팀원인가?” 이런 질문들에 어떤 답을 할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글과 만났습니다.
한국경제신문 3월20일자 A26면 기사 <‘행동의 맥락’ 간과하면 문제가 위기로 커진다>는 우리가 타인을 판단할 때 어떤 오류를 저지르며, 왜 그러는지를 조목조목 일깨워줍니다. “왜 우리는 타인을 파악하는데 서투른가? 경찰은 무고한 사람을 체포하고, 판사는 죄 지은 사람을 석방한다. 믿었던 외교관은 타국에 기밀을 팔고, 촉망받던 펀드매니저가 투자자에게 사기를 친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말콤 글래드웰은 우리가 타인을 잘못 판단해 일을 그르치는 이유로 몇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 타인이 정직할 것이라고 가정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학 풋볼팀 코치가 소아성애자로 밝혀지는데 첫 제보 이후 판결까지 16년이 걸린 사건이 전형적인 예입니다. 미국 CIA(중앙정보부)에서 쿠바를 위해 일해 온 스파이의 정체가 탄로 나는데도 십 수 년이 걸렸습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동료들이 적극적으로 그들을 두둔했다는 것입니다. 글래드웰은 그 이유를 인간의 본성에서 찾습니다. 인간의 의식구조가 그렇게 설계돼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정적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믿을 수 없을 때까지 믿는다. 부주의해서가 아니라, 대부분 인간이 그렇게 설계돼 있어서다.”
둘째, 우리는 대부분 타인의 태도와 내면이 일치한다고 착각합니다. “피의자를 만난 판사와 범죄기록만 가진 인공지능 중에 누가 더 보석 결정을 잘할까? 히틀러를 만난 영국 총리 체임벌린과 히틀러의 책만 읽은 후임 총리 처칠 중에 누가 히틀러를 제대로 파악했는가?” 판사는 피의자가 반성하는 것 같았으며, 체임벌린은 히틀러가 평화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봤습니다. “결과가 어땠는가? 판사는 기계와의 대결에서 참패했고,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켰다. 인간은, 특히 타인은, 결코 투명하지 않다.”
글래드웰은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줄 방법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관점과 배경을 이해하고 자신과 다른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른 사람이 ‘진실하다’고 믿는 최선의 가정(假定)이 현대사회를 만들어낸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신뢰하는 우리의 본성은 때때로 비극을 만든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신뢰를 포기하는 것은 더 나쁘다.”
모든 코치가 소아성애자라는 의심을 받게 되면 어떤 부모도 아이가 집 밖으로 나가게 하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코치를 맡겠다고 자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본적인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습니다. 그게 인간사회의 숙명입니다. “우리는 낯선 이를 해독하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몇 가지 단서를 설렁설렁 훑어보고는 다른 사람의 심중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알아야 할 단 하나의 진실은 이것이다. 낯선 사람은 쉽게 알 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이학영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공하는 것이 오히려 나은 이유 (0) | 2020.03.27 |
---|---|
동료간의 유대와 핵심인재 유지 (0) | 2020.03.27 |
실수해도 혼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주어라 (0) | 2020.03.24 |
누구에게 맡겨도 나보다 잘한다고 생각하라 (0) | 2020.03.24 |
결국 품성이 당신의 운명이다 (0) | 2020.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