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이 균형을 찾아간다는 기존의 패러다임은 잘못되었다. 시장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 언제나 틀린다. 하지만 시장은 스스로를 바로잡을 수 있고 때로는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재귀적 과정을 통해 오류를 진실처럼 보이게끔 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시장은 항상 옳게 보인다.
- 사회적 현상에 내재된 불확실성은 재귀성 개념과 진리대응설correspondence theory of truth 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재귀성은 어떤 사물과 그 자신의 관계를 설명하는 논리에 사용되어왔다. 나는 이 개념을 활용해 사람들의 생각과 그들이 맞닥트리고 있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양방향의 연관성을 설명하려고 한다. 지식이란 참인 명제를 통해 표현된다. 그리고 명제는 사실과 일치할 경우에만 참이 된다. 이것이 바로 진리대응설에서 말하는 논리다. 명제와 사실이 일치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서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세상의 일부인 상태에서 명제와 사실의 독립은 결코 성립될 수 없다. 사 람들이 지식에 기반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 다. 사람들은 지식이 결핍된 부분을 경험과 본능, 감정, 그리고 사회적 관습과 오해를 기초로 한 추측으로 채워야 한다. 불확실성을 세상사의 흐름에 개입시키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선입견과 오해인 것이다.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재귀성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지 않았을까. 금융시장에 대해서라면 그 해답을 내놓을 수 있다. 재 귀성으로 인해 경제학자들은 자연과학자들이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방식으로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하나의 과학으로서 경제학의 입지를 확립하고 지키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재귀성이론을 연구에서 배제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 진리대용설_corresportience theory of truth, 사람의 인식은 외부세계의 사물인 대상이 마음에 비춰짐으로써 성립한다는 이론이다. 즉 인간의 믿음과 인식이 참인지 거지인지 판단하는 것은 그 믿 음과 인식에 대응하는 사실이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 브렌트포드Brentford에서 수영장 안내원으로 일하면서 런던정경대학의 합격통보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생각했다. 이때 읽었던 책 중 하나가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이었다. 이 책은 나를 충격에 빠뜨릴 만큼 날카로운 통찰로 가득했다. 포퍼는 나치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공통점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두 가지 모두 궁극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궁극적인 진 리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두 가지 이데올 로기는 현실에 대한 편향적이고 왜곡된 해석에 토대를 둘 수밖 에 없고, 현실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억압적인 수단을 동원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포퍼는 사회조직에 관한 다른 원칙을 제시했다. 그 원칙은, 궁극적인 진리란 우리가 이룰 수 없는 영역이고, 서로 다른 생 각과 다른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평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포퍼는 이 원칙을 '열린사회The open society' 라는 개념으로 표현 했다. 나치와 소비에트 점령기 동안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나는 열린사회에 내포된 이상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나는 포퍼의 철학을 더 깊이 탐독했다. 포퍼는 최초이자 최 고의 과학철학자다. 그는 과학적인 이론들은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과학적 이론은 반론을 통해 허위 여부를 가려야 하는 가설로 취급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짓이라는 것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을 때에 한해서 임의의 가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입증과 허위 입증의 비대칭은 풀기 힘들었을 난해한 귀납적 문제에 해답을 제시했다. 사리에 맞는 소견을 아무리 들이댄다 한들 보편타당성을 내세우는 이론을 입증한다는 것이 어디 가능하겠는가. 포퍼는 입증 대신 허위 입증을 채택함으로써 귀납적 논리를 사용할 필요를 없앴다. 나는 이것이 포퍼가 과학철학에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 인지적 기능의 목적은 지식을 생산하는 데 있다. 지식은 사실과 부합하는 명제를 요구한다. 둘 사이의 일치가 성립되려면 명제와 사실은 서로 별개의 범주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식의 추구는 곧 인식과 현실의 분리로 이어진다. 여기서 나 타나는 이원성은 본래 그리스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계 몽주의 시대에 사람들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이성을 믿었다. 그들은 현실이 이성과 분리되어 있으며, 독립적인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성이 완전하고 정확한 현실의 모습을 그려줄 것으로 믿었다. 이성을, 저쪽 편에서 발견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현실을 조명해주는, 일종의 탐조등처럼 작동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생각하는 행위자의 결정이 상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 가능성이 사고와 대상의 분리에 방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계몽주의는 재귀성을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 계몽주의는 조작적 기능이 인지적 기능에 간섭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를 설정했다. 이는 조작적 기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계몽주의는 인식의 유일한 목적을 지식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가정했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천이성' 이라고 지칭했던 것, 즉 내가 조작적 기능이라고 이름 붙인 것을 무시하고, 이론이성에만 배타적으로 집중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학파에서 분리되었다. 이 때문에 현실에 대한 왜곡된 관점이 발생했지만, 당시 시대상에는 어울리는 세계관이었다.
- 내 학창 시절 이후로 경제학자들은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예측의 역할을 완전경쟁이론과 일치시키려고 했고, 결국 합리적 기대이론으로 발전시켰다. 나는 이 내용에 대해 연구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한 듯한 포 즈를 취할 수 없다. 다만, 내 이해가 정확하다면 이 이론에서 주장하는 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다른 참여자들도 똑같이 할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해 결정을 내린 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참여자들은 실제 최고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이 최고의 이익이라고 인식하는 것에 기초해 행동하며, 이 두 가 지는 반드시 서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는 행동경제학자들의 실험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시장 참여자들은 완전하지 않은 이해를 근거로 행동하며, 그들의 행동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기대와 결과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며, 둘 사이 에 차이점이 없다는 가정을 근거로 행동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합리적 기대이론은 전체 시장이 항상 개인투자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주장으로 이런 난제를 극복하려고 한다. 합리적 기대이론에서도 참여자가 어떤 대상을 잘못 이해할 수 있고, 오해가 때때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시장 움직임에 대 해 똑같은 모델을 사용하며,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경험으로부터 배워 결국에는 같은 모델로 모이게 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러한 해석으로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연 구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모델을 이용해 연구를 했고, 내 모델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합 리적 기대이론이 터무니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내 연구 성과는 랜덤워크 이론 The theory of random walk 에서 허용되는 균형 이탈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 시장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 언제나 틀린다. 하지만 시장은 스스로를 바로잡을 수 있고, 때로는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재귀적 과정을 통해 오류를 진실처럼 보이게도 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시장은 항상 옳게 보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금융시장은 경기둔화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둔화를 유발한다. 참여자들은 불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한다. 그들은 지 식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불완전하고, 편향되고, 잘못된 이해 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며, 따라서 결과물은 기대치에서 빗나 가기 마련이다. 불일치는 참여자들이 행동을 조정할 수 있게 만드는 유용한 피드백을 제공한다. 이런 과정에서 매번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시장은 이론적 균형을 향해 움직이는 것만큼 균형에서 멀어지며, 초기에 자기 강화를 하다가 결국 자멸하는 과정에 말려들 수도 있다. 거품은 종종 금융위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위기는 금융시장 에 규제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금융시스템이 발전해온 과정이다. 즉 주기적인 위기가 규제의 형성으로 이어진 셈이 다. 금융시장을 하나의 역사적 과정으로 해석하기에 가장 좋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감독 당국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 으면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독 당국이 없으면 금융시장은 분명 붕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일관성 있는 감독을 받으며 움직이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실제 붕 괴는 매우 드문 현상이다. 또 일상적인 상황에서 감독 당국이 규제를 완화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라면 위기상 황에서 기민하게 조치를 취할 수 있다.
- 2007년 봄 뉴센트리파이낸셜이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문제로 파산위기에 몰렸을 때 이른바 진실의 순간이 찾아왔고, 이어 주택 가격이 하락했지만 사람들은 게임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명기가 펼쳐진 것이다. 씨티은행의 최고경영자인 척 프린스Chuck Prince는 이렇게 말했 다. “유동성이라는 음악이 멈추면 결국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 흘러나오는 한 당신은 일어나 리듬을 타며 춤을 춰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춤을 즐기고 있다.” 마침내 분기점은 찾아왔다. 2007년 8월 이후, 한 분야의 시 장에서 다른 시장으로 도미노처럼 퍼져나간 부실로 인해 가히 재난이라 할 만한 가격 폭락이 현실화되었다. 이는 1997년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번졌던 이머징마켓의 위기를 연상케 했다. 급박함 속에서도 주식시장은 2007년 8월부터 10월 사이 급락을 멈추고 상승세를 회복했다. 내 모델로는 예측할 수 없 는 움직임이었다. 모델에서 나타난 바에 의하면, 주식시장이 단시간에 급격하게 붕괴되었다가 더디고 힘겹게 균형을 되찾 아가는 흐름이 펼쳐져야 했다. 모델이 제시했던 예측이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은 것은, 2007년 8월과 2008년 1월 사이 예견된 붕괴를 완벽하게 저지 하지는 못했지만 위기에 굴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위기의 순간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시장에 개입해 연방기금 금리를 인하했고, 주식시장은 과거에 그랬던 것 처럼 이번에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융위기의 여파로부터 경제를 보호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력을 회복했던 것이다. 하 . 지만 이런 믿음은 위험한 것이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미 시장 개입이라는 카드를 과도하게 꺼내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경제를 보호하지 못했다. 이번 금융위기는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했던 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 애덤 스미스가 처음 도입하고,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발전시킨 완전경쟁이론이 바로 시장근본주의의 뿌리다. 제2차 세 계대전 후 시장근본주의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그 밖에 정부 의 개입에 근간을 둔 여러 정치사조가 몰락함에 따라 커다란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하지만 시장근본주의는 잘못된 전제를 갖고 발전했다. 정부의 개입에 항상 결함이 있다고 해서 시장이 완벽하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재귀성 이론에서 주장하는 기본적인 내용은 인간이 이룩한 모든 결과물에는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또 금융시장이 반드시 균형을 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도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금융시장은 극단적인 활황과 패닉으로 치닫는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은 자율에 맡겨지는 일이 없다. 시장을 감독하고 통제하는 의무를 가진 금융 당국자들의 손에 맡겨진다. 대공황 이후 줄곧 금융 당국은 국제금융시스템이 붕괴되지 않도록 대처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실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 게도 시장근본주의가 되살아나게 된 주요인이 바로 그들의 훌 륭한 시장 통제였다. 내가 런던정경대학에서 공부하던 1950년대만 해도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던 자유방임 주의는 1980년대에 다시 부활했다. 이 때문에 금융 당국자들 은 시장통제력을 잃었고, 그 틈을 타고 슈퍼 버블이 세력을 확장했다
- 재귀성 이론은 성격 면에서 균형 이론과 상이하다. 균형 이론 칼 포퍼의 과학적 방법 모델에 들어맞는 과학적 이론임을 표방한다. 또 자연과학 이론과 유사하게 결정적인 예측과 설명을 제시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일반화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반면 재귀성 이론에서는 이 같은 주장을 하지 않는다. 재귀성 이론이 주장하는 것은 재귀성이 언제 발생하는 사건의 전개에 불확실성 요소를 개입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정적인 예측을 제공하는 이론을 찾는 것은 부적절하다. 나는 재귀성 이론이 기존의 지배적인 패러다임보다 현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설명해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과거의 패러다임이 수행했던 일을 재귀성 이론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즉 재귀성 이론은 자연과학처럼 일반화를 제공하지 못한다. 사회적 사건은 자연현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재귀성 이론의 기본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회적 사건 속 에는 생각하는 참여자가 존재하며 이들의 편향된 관점과 오해 가 사건의 흐름 속에 불확실성을 개입시킨다. 결과적으로, 사 회적 사건은 자연과학의 보편타당한 법칙을 따르지 않고, 미리 예측하지 못하는 일방향의 경로를 따른다. 하지만 재귀성의 출 현이 참여자의 관점과 사건의 실제 상황 사이에 상호작용을 일 으킨다. 따라서 재귀성 이론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는 기존 의 사건을 보다 확실하게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이는 과학적 이론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는 아주 다른 부분이다.
- 과거에는 신용위기가 발생하면 문제의 근원에 대해 보다 엄격한 규제를 가함으로써 위기의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수순이었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 시절 지배적인 사조가 되었던 시장근본주의의 영향력 아래 국제 금융위기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즉 미국의 은행은 수익을 올리는 데 더 큰 자율을 얻었다. 실제로 대공황 당시 은행에 부과되었던 모든 규제는 점 진적으로 사라졌다. 은행은 자유롭게 지점을 늘릴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지역으로 영업망을 늘리는 것도 허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수도 있게 되었다.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경계선은 점차 희미해지다가 결국 사라졌다. 집단대출제도로 인해 한 차례 곤욕을 치렀던 은행업 계는 채권 내역을 재무제표에서 덜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 들은 대출채권을 모아 금융 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는 투자자들 에게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보다 교묘한 형태의 금융상품이 새롭게 개발되었고, 보유 자산에 대한 기록을 재무제표에서 남 기지 않는 새로운 회계기법도 창안되었다. 그리고 슈퍼 버블이 본격적으로 세력을 응집하기 시작했다.
- 은행의 리스크모델은 시스템 자체가 안정적이라는 가정 위 에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시장근본주의자들의 믿음과 반대로 금융시장의 안정성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문제다. 시장의 안정은 정책 당국자가 적극적으로 나서 관리해야 할 사안인 것이다. 그러나 실상 정책 당국자들은 시장 참여자들이 고안한 리스크 산출법에 의존한 채 업무를 추진했고, 통제할 수 없이 신용이 팽창하도록 길을 내주었다. 일례로, VaR 모형을 이용 한 리스크 산출법은 과거의 수치를 근간으로 한다. 신용팽창이 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과거 수치는 현재 상황을 판단하기에 적절치 않은 잣대다. VaR 모형에서는 두세 가지의 표준편차를 고려하는데, 아주 드물게 나타나야 할 높은 표준편차가 여기서는 너무도 자주 발생했다. 이는 분명한 경고신호였지만 시장 참여자와 마찬가지로 정책 당국자들도 이 신호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위기상황분석(stress test을 모형에 추가해 예기치 못한 일에 얼마나 잘 대비하고 있는가를 측정한 것이 전부였다. 다양한 형태의 합성 모기지 증권 역시 잘못된 전제, 즉 미국의 주택가치가 개별 지역에서는 등락을 보일 수 있지만 시장전체적으로는 안정을 이룬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개발되었다. 이런 가정은 각각의 주택담보대출채권보다 여러 지역별로 광범위하게 리스크를 분산하는 구조화 파생증권이 더 안전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가정은 현실로 드러난 것처럼 온 나라에 엄청난 규모의 주택 버블이 형성될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다.
- 정책 당국자들은 보다 현명하게 대처했어야 했다. 결국 정책 당국자들은 때때로 시장에 개입해야 했고, 그 개입으로 인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해 이렇다 할 조치 없이 입에 발린 말로 경고하는 데 그쳤던 정책 당국자들은 막상 위기가 닥치자 파산시키기에는 덩치가 너무 큰 금융회사들을 구제하느라 정신없었다. 정책 당 국자들도 자신들의 개입이 끊임없이 몸집을 키우는 신용팽창 을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지 배적인 시장근본주의 풍조와 자신들의 성과에 심취한 나머지 시장이 자동으로 통제된다고 믿었다. 이것이 바로 신용팽창이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경위다.
- 이 글을 작성하는 2008년 4월 현재, 미국의 경기침체는 불 가피한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침체가 전 세계적인 경 기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강력한 경기확장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경기침체 및 유럽과 일본의 성장둔화를 상쇄해 훌륭하게 균형을 맞춰줄 것이다. 물론 이들 지역의 경제성장이 세계 경제를 어지럽힐 만한 정치적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슈퍼 버블의 종결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버블의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버블이 생겨 나기 시작했다. 달러화 기피 현상으로 인한 원자재와 에너지 시장의 거품이 이미 형성되기 시작했고 “바이오 연료 관련 정 책은 농산물시장의 거품을 조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상은 일반적으로 자산 버블을 일으키는 마이 너스 실질금리를 야기했다. 그렇다면 한 시대의 종결이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내 판단으로는 미국의 지배력과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장기간에 걸쳐 형성됐던 상대적 안정성이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신용팽창의 시대가 막을 내린 후에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나 금융시장에서나 불안정한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바라는 바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세계 질서가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 보다 근원적인 측면에서 서브프라임 위기를 파헤친 조지 소 로스의 방법론은 20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태동한 ‘아날학파 Annates School' 의 역사관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흥미 롭다. 아날학파라는 명칭은 1세대 인물 뤼시앵 페브르 Lucien Febvre와 마크 블로그Marc Bloch 가 1929년 창간한 역사잡지 〈사회경제사연보 Annales d'Histoire Economique et Sociale)에서 유래했다. 아날학파는 기존 사학의 특징인 일직선적인 시간관과 영웅주의적, 사건중심적 세계관에서 탈피, 3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다층구조의 시간관과 인간사의 일상에 주목하는 미시사, 사건사를 넘어선 '망딸리떼Mentality' 의 역사를 정립시켰다. 즉 이들은 역 사학의 기본 골격을 기존의 연대 · 개인 · 정치에서 구조 · 집단·사회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아날학파의 역사관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열쇠 중 하나는 망딸리떼다. 통상 망딸리떼를 특정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신념 또는 사람들이 어떤 현상이나 주변 환경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성향으로 해석하는데, 소로스의 관점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대표적인 예로, 여러 직간접적 요인이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기존의 권위와 사회체제를 변혁하고자 하는 망딸리떼가 혁명의 토양을 형성했다고 본다. 그래서 아날학파는 1789년 혁명이 일어나기 전 100년간의 유언장을 분석해 사람들의 망 딸리떼 변화를 추적하기도 했다. 소로스가 주장하는 재귀성 이론을 이루는 축은 현실과 그 현실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인식과 현실 사이의 재귀성 때문에 불확실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소로스는 사람들이 가 진 편향과 현실에 대한 인식이 자산 가격과 경제에 영향을 미 친다고 말한다. 주택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와 대출 실적 을 올리려는 금융회사의 의도가 주택시장의 거품을 만들었고, 더 이상 현실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거품이 붕괴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는 한 사회를 특징짓는 관념, 인간의 집단적인 사고방식이야말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아날학파의 관점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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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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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은 별것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선하고 현명하다. 그들에게 도구를 쥐어주면 멋진 일을 해낼 것이다. (스티브 잡스)
- 딥러닝으로 구현되는 인공지능이 클라우드에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사물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대, 그런 인공지능 네트워크 시대가 도 래하면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딥러닝의 초창기 결과물들 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상용화되어 있다. 가장 간단한 형태의 딥러닝 적용 사례는 웹사이트 방문 기록을 분석, 추천 검색어를 제시하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딥페이스Deep Face라는 얼굴인식 알고리즘을 개발해 업로드된 사진들을 인간의 눈만큼 정확하게 인식한다. 또한 구글은 딥러닝을 특정 주소를 인식해 이미지로 보여주는 스트리트 뷰Street View 서비스에 적용했으며 로봇의 인공지능 시스템 개발에도 인공지능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에서는 인공지능의 직관력 개발에 주력해 인간의 두뇌에 더욱 가까워지려 하고 있다.
- 모든 과학자들이 강한 인공지능에 대한 대답을 주저하는 가운데 인공지능의 자의식을 테스트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바로 거울 테스트 다. 예일대학교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 니코Nico는 자의식 테스트 인 거울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한다. 니코 앞에 거울을 놓고 팔을 움직인 다음 그 움직임이 앞에 있는 다른 물체의 움직임인지, 자신의 움직 임인지 판단하게 했더니 놀랍게도 자기 팔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인공지능 로봇이 자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순간이었다. 이런 거울테스트는 동물 중에선 일부 영장류와 코끼리, 돌고래만 통과했고 인간은 생후 약 18개월이 지나야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아직은 인공지능의 미래가 인지컴퓨팅cognitive computing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인간의 뇌가 가진 인식과 행동, 인지능력을 재현하는 기술이 인지컴퓨팅이다. 인지컴퓨팅을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은 스스로 판단할 뿐만 아니라 외부와 소통하고 경험을 통해 학습하며, 문 제해결을 위해 스스로 가설을 세우기도 한다. 이 정도면 거의 인간과 유사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닉 보스트롬Nick Bostrom 영국 옥스포드대학교 교수는 인공지능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윤리와 도덕처럼 인간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 을 정교하게 정의해서 기계에 가르치는 방법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1980년대에 진행된 펩시콜라와 코카콜라의 블라인드 테스트에 따 르면 사람들은 눈을 가린 상태에서는 펩시콜라를 더 선호했다. 그러나 실제 매출액은 코카콜라가 더 높게 나타났다. 즉 브랜드를 인지한 상 태에서는 코카콜라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았던 것이다. 이에 호기심을 느낀 한 의대생이 뇌 과학 기술을 이용해 이 현상을 분석해보았다. | 블라인드 테스트를 뇌 영상으로 기록해보니, 두 종류의 콜라를 마 실 때 두 경우 모두 같은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 히 콜라의 달콤한 맛을 느끼고 보상 반응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크게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눈가리개를 벗고 브랜드를 보면서 시음하도록 하니까 뇌 영상이 다르게 나타났다. 코카콜라를 시음할 때는 전두엽 외에도 중 뇌와 대뇌에 있는 정서 및 기억을 담당하는 또 다른 영역이 활성화된 것이다. 펩시콜라를 시음할 때는 정서 영역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은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 비콘Beacon 시대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비콘은 고객의 온라인 정보와 오프라인 발걸음, 즉 풋 트래픽foot traffic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비콘은 저전력 블루투스Bluetooth Low Energy, BLE 4.0 칩을 사용해 스마트폰 사용자의 위치를 파악, 특정 정보를 전달해준다. 그 동안 스마트폰 근거리 통신 기술로 주목받던 NFCnear field communication는 스마트폰을 근접시켜야만 작동이 가능했다. 그러나 비콘은 최소 5센티미터부터 최대 91미터까지의 범위 내에서 정교한 위치 측정과 소통이 가능하다. 비콘 기기가 설치된 장소를 방문하면 스마트폰에 관련 정보가 푸 시 알림으로 전달된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블루투스 기능과 비콘을 통해 이용자의 이동 경로에 따른 맞춤 서비스가 자동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달되는 것은 상품 설명, 후기, 프로모션 같은 정 보만이 아니다. 비콘은 이제 결제 방법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SK플래닛의 새로운 통합 커머스 프로그램인 시럽syrup에는 지오펜 싱Geo-fencing 이라는 GPS 기반 가상 반경 설정 기술과 비콘이 적용되 었다. 시럽 앱은 고객 위치에 기반해 쿠폰과 기프티콘을 보내주는 것은 물론 상품에 근접했을 때 스마트폰을 통해 상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제공한다. 페이팔은 비콘을 이용해서 결제를 자동으로 할 수 있는 페이팔 비콘 서비스를 개시했다. 매장에 페이팔 비콘 기기가 설치되어 있는 경 우, 페이팔 앱을 스마트폰에 다운받은 고객이 매장에 들어서면 비콘 과 연결된 포스POS 기기에 자동으로 고객 이름이 표시된다. 마트에서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설 필요가 없다. 비콘과 호환되는 포스 시스템에서 결제가 자동으로 이루어지므로 쇼핑이 끝 난 후에는 그대로 물건을 가지고 출입문을 나서면 된다. 이처럼 비콘은 고객과 매장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연결선이다. 비콘을 통해 고객은 자신의 상황을 노출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 대가 로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사생활과 혜택을 실시간으로 교환하 는 것이다. 비콘이 대중화되면 인공지능 마케팅이 실시간으로 펼쳐질 것이다.
- 네스트의 작동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일단 제품을 집 안의 온도 조절 배선들과 연결한 뒤 언어나 자신이 위치한 지역 등 기본 정보를 입력하고 집안의 와이파이에 연결되도록 설정한다. 그러고 나면, 네스트는 크게 세 가지 일을 한다.
첫째, 방 주인의 스마트폰을 통해 외부에서도 온도 조절을 한다.
둘째, 날씨 정보를 받아와 인공지능이 방 주인의 선호온도를 토대로 최적의 온도가 되도록 조절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장된 소프트웨어를 자동으로 업그레이드한다.
- 네스트의 강점은 패턴을 스스로 학습하는 데 있다. 네스트의 인공 지능이 학습하는 기간은 딱 일주일, 사용자가 시시각각 원하는 온도 를 설정하면 네스트와 연결된 인공지능이 그 패턴을 학습한다. 그 후 에는 학습된 패턴을 소환하고 일기를 반영해서 인공지능이 알아서 온도를 맞춰나간다. 또한 인공지능은 동작인식 센서를 통해 움직임이 없으면 외출한 것으로 판단하고 온도를 낮추고, 아침 기상 시간이나 출근시간, 귀가하는 시간 등을 설정해두면 그에 맞춰 다시 온도를 높 이거나 에어컨을 작동시키기도 한다. 이런 심화 학습과정과 데이터 분석 과정을 통해 네스트는 개인의 방 온도를 조절하는 나만의 집사가 되는 것이다.
- 네스트를 뛰어 넘는 온도 조절기가 나올 수 없다는 칭찬에 힘입어 파델은 스모크 디텍터smoke detector를 출시했다. 스모크 디텍터는 연기, 가스 누출을 감지하고 경고하는 장치다. 여기에도 인공지능이 감시자로 나섰다. 온도 조절기에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아이디어 하나로 파델은 아이팟에 이어 또다시 스타 개발자가 된 것이다. 구글은 네스트를 집안의 모든 가전제품을 제어하고 연결시켜주는 홈 허브로 발전시키고 있다. 스레드 연합의 경우처럼 네스트를 스마트홈의 허브로 삼아 집 안이나 건물 안의 모든 사물인터넷 기기들을 통합 콘트롤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궁극적인 목표는
스마트홈의 허브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기기 간의 싸움은 매우 재미난 관전 포인트다. 구글은 온도 조절기로 출사표를 던졌고, 애플은 애플 TV를 생각하고 있다. 세계 가전제품의 양대 산맥 삼성과 LG는 스마트TV와 냉장고로 우리 집을 넘보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로봇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전통적인 홈오토메이션 기기 역시 우리 집의 집사 자리를 노리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법의 집의 봉인이 해제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어떤 기기가 선택을 받더라도 우리 집에서 나에게 충성을 다할 친구는 인공지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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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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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전산 이야기

경영 2020. 3. 8. 18:45

- “일류 기업과 삼류 기업의 차이는 제품의 품질이 아니라 직원들의 질(質)에 달려 있다. 능력은 일류인데 인간성은 삼류라면, 당연히 그 실적은 오(五)류 이하가 되게 마련이다.”
- “기업이 어느 정도 성공해서 궤도에 올랐다고, 경영자가 밖으로 나돌기 시작하고 자신의 성과에 대해 자랑하고 잘난 척하면서 '나의경영 비결’ 운운하는 것은 쇠락의 전조다.”그는 '경영자는 곧 회사의 직원과 그 가족들의 생활을 책임지고있는 가장(家長)'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한순간도 사업 외의 것 에 정신을 빼앗겨서도 안 되고, 그런 여유가 생길 리도 없다고 말 한다. 한가하게 골프를 치러 다니는 사장은 낙제점이다. 또 감투 에 혹해서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우리 회사는 학교 성적은 전혀 보지 않고, 면접만으로 직원을 뽑는다. 그렇게 준비나 공부가 안 된 직원들을 뽑아놓으니, 사장인 나뿐 아니라 리더들 모두 직원들 가르치기에 바쁘다. 가르치려면 계속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눈팔 새가 없다. 우리에게는 일이 곧 직업이자 취미이자 소일거리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 삼류 인재들이 모여 일류가 된 비결이다.”
- 우리는 직원들을 영업 내보낼 때 상대를 말로 설득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상대가 뭐라고 하건 모두 들어라, 그리고 빠짐없이 적어라. 그리고 돌아와서 즉시, 그리고 반드시 그 문제를 해결해라. 혼자서 안 되면 둘이서 토론하고, 토론으로 안 되면 밤을 새워 실험해서 반드시 결과를 내라. 고객이 무엇에 불만인지 알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만족을 줄지만 고민하면 된다. 이것이 우리가 직원을 가르치는 방식이다.”
- 아주 규모가 작았을 때부터 그들에게 구호 복창회는 서로를 위 로하고 힘을 한데 모으는 기회가 됐다. 일본전산은 그렇게 몇 안되는 직원들과 ‘할 수 있다'를 큰 소리로 외치는 자못 엉뚱해보이는 행사를 정말이지 끊임없이 진행했다. 그리고 그 구호를 열정적으로 실천하다 보니 ‘포기하는 집단'이 아닌 '정말 끝까지 해내는 집단'이 됐다는 말이다.
- 그렇게 계산을 마친 나가모리 사장은 창업 직후, 자신의 업무 원칙을 이렇게 세웠다.'앞으로 5년간은 죽었다 생각하고 토요일, 일요일을 포함해서 정확히 다른 사람의 두 배를 일하자.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길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면 그때는 깨끗이 포기하자.' 그렇게 하고도 이길 수 없다면, 그만두겠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 었다. 물론 그 전에 체력이 고갈되거나 도저히 그런 생활이 지겨 워 미쳐버리고 말거나, 이길 힘이 비축되기도 전에 자본금이 말라 버린다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말이다. 나가모리 사장은 그런 각오로 사업을 시작했다. 세 명의 직원들 에게도 마찬가지의 조건을 내세웠다. 회사가 살아남지 못한다면 드높은 기상도 꿈도 모두 사라지고 마니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 일본전산은 처음부터 ‘요구 사항이 많고 까다로운 일에 관심을 가졌다. 직원들 사이에도 까다로운 일이란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 오더지만, 그것만 해결하면 선두로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 다. 참으로 엄청난 위력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고객은 감동하게 되어 있다. 문제가 많다고 다들 회피하는 일을 척척 해내는 상대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고객은 입에 발린 말이 나 서비스 콜 Call), 굽실대는 태도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남들이 안 하는 일,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내는 '실행'에 감동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많은 이유 때문에 '잘 팔 수 없다' 고 말한다. 그 어떤 일에서건, 약점만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팔 것인가? 어떤 방법을 통해 지금 우리의 상품을 알릴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승리는 없다.
- 한 번 안 된다는 것을 용인하는 조직이 되면, 직원들은 '안 되는 방법을 기를 쓰고 찾아낼 것이다. 심지어 '안 된 다'는 것을 긴 보고서에 장황하게 쓰는 것을 장려하는 기업 도 있다. 정말 해도 해도 안 된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거 기엔 보고서 따위가 붙을 이유가 없다. '되는 일에만 집중 해도 모자랄 시간에, '안 되는 이유를 쓰느라 시간을 허비 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 재미있게 말하자면, 말 그대로 학벌은 굶어 죽지 않을 확률을 조금 높이는 것에 불과하다. 비즈니스 정글에서는 학교 성적이나 학교 간판으로 먹고 살 수 없다. 좋은 학교 나왔다고, 성적이 좋다고 좋은 상품을 저절로 만들 수 있게 되 는 것도 아니고, 경쟁에서 이길 만한 해법을 고안해낼 수 있 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그래서 과거보다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 “무엇으로 사람의 마음을 잡을 것인가? 사람은 이상(理想)만으로 동행해주지 않는다. '저 사람을 따라가면 굶어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나가모리 시게노부)
- 호통 경영과 관련된 그의 지론은 이렇다. “칭찬만 하면 바보를 만들기 쉽다. 제대로 크는 사람들은 혼나면서 성장한다. 꾸중을 듣고 잔뜩 삐쳐 있다가 감정으 로 받아치려는 사람은 결국 큰일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사람이다. 반대로 꾸중을 듣게 되면 자신을 질책하면서 '발 전적 반발심을 가지고 일에 더 덤벼드는 사람이 진짜 클 수 있는 사람이다.”
-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꾸지람을 받아들일 줄 알고, 반대로 남을 나무랄 줄도 알아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 는 강해질 수 있다.” 나가모리 사장이 호통치고 위로하면서 하는 말이다. 나가모리 사장은 밥 빨리 먹기 시험, 오래달리기 시험, 큰 소리 내기 시험, 화장실 청소 시험에서 자랑스럽게 선발된 인재들이 그 토록 꾸중을 들으면서도 잘 견뎌내 지금은 회사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며 직원 자랑을 늘어놓는다. 30여 년 동안 그런 식으로 직 원을 키우고 늘렸다. 최근에는 수백 명이 넘는 많은 인원을 뽑고 있지만, 단단하게 그리고 강인하게 성장한 선임자들이 사장에게 배운 대로 그들을 호통치며 잘 키워내고 있다. 선순환인 것이다.
- “한 가지 일에 실패하고 문책당해서 회사를 그만두면, 다 른 회사에 가더라도 똑같은 패턴으로 그만두게 된다. 한 번 정복하지 않은 실패는 또다시 엄습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회사만 아니면, 이 상사만 벗어나면, 뭔가 새로운 환 경만 주어지면 잘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라. 실패와 포 기의 패턴은 마치 유전자 코드처럼 사람의 몸과 마음에 세 팅된다. 그 세팅을 한 번이라도 어그러뜨려서 뒤집어놓아야 동일한 패턴을 다시 반복하지 않게 된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진보적 반발심'이다. '내가 이 정도에 굴하면 안 되지’, ‘여기서 포기하면 영원히 패배자가 된다'는 집요함! 그걸 가져야 한다. 우리 회사는 그걸 키워 주는 곳이다. 한두 번 시도해서 안 되면 말겠다는 정신으로는 살 아남을 수 없다. 인생도 비즈니스도 결코 만만한 싸움이 아니기 때 문이다.”
- 상사의 비위만 맞춰야 하는 부하 신세’, ‘경영진이 제대 로 해주어야 우리가 잘할 수 있다’, ‘우리는 을이라, 어쩔 수 없이 큰 기업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갑과 을의 계약 관계가 아니라, 바로 이런 '생각'이 누군가를 노예로 만들 뿐이다.
- 경영자는 자신의 책임에 대해 혹독해야 하고, 직원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혹독해야 한다. 사장이 정신을 놓으면 아 무리 유능한 인재가 모여 있다 해도’, 삼류 오합지졸로 바뀌 는 것은 시간 문제다. 직원이 정신을 놓으면 경영자가 아무 리 훌륭한 회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해도 그 발걸음마다 덜미 를 잡힐 수밖에 없다.
- 지금 부사장이며 창업 멤버였던 고베 히로시는 처음 영업을 할 때의 경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장을 포함해 직원은 고작 네 명.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무것 도 없는 상태에서 주문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각자 생각했다. 실 적도 없고, 지명도도 없었다. 특허나 신용 같은 것은 전무했다. 보 여줄 제품도 없었고 카탈로그도 없었다. 회사 이름과 주소, 모터 개발을 한다는 전단지 한 장이 전부였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서도 영업을 할 수 있어야 남들보다 영업을 잘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프로가 되는 것이다. 카탈로그가 없어서, 특허 가 없어서, 회사가 제대로 꼴을 갖추지 않아서 못한다는 사 람은 나중에 그런 조건이 갖춰져도 못한다. 무엇이든 '지금 현재 상태에서 해낸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야 한다.
- '남들도 하기 싫어할 때’, ‘그만 하고 싶 은 생각이 턱까지 올라올 때’, ‘그래도 하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때로는 '승리의 비결' 따위는 너무도 간단하다. 끝 까지 하는 습관이 들었을 뿐이다. 그냥 하는 시늉만 하거 나, 머리나 입으로만 하겠다고 장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 로 하는 것이다.
- 회사가 침체에 빠지는 것은 직원이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직원들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는 비효율적인 업무와 상호 소통 없는 나태함 때문이다. 그 원인을 제거하면 곧바로 회복될 수 있다. 왜냐하면 본래 대다수의 직원들은 의욕을 가지고 회사에 입사하고, 일을 하려고 직업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 “미래의 나는 내가 '지금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끊임없이 추구하느냐'에 의해 좌우된다.” 경영 대가 게리 해멀(Gary Hamel)의 말이다. 그는 1990년대에 '높은 수준의 청사진을 그려 그에 따른 도전 목표를 명확히 하고, 개인과 기업의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을 한곳으로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을 탓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그는 “위대한 성과를 낸 기업이나 개인들은 모두 그들이 가진 제한적인 자원이나 능력을 뛰어넘는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일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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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자아의 유연화 현상에 대해 제레미 리프킨 (Jeremy Rifkin)은 네트 워크에 접속하여 맺어지는 상호적 관계 속에서 확인되는 부분적인 자아 만이 있을 뿐, 각 개인의 독특한 자아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 라고 이야기한다. 네트워크상에서 자아는 고정된 단일의 실체를 갖기보다다는 관계에 따라 늘 유동적이고 파편화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이미 1950년대에 미국의 사회과학자인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은 가면 없는 삶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인생은 무대이고 우리는 각자의 역할에 맞추어 연기를 하는 배우라는 고프먼의 이론이 현실화되 기에 인터넷은 너무나 적절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인격을 지칭 하는 페르소나는 라틴어로 가면을 쓰다' 라는 의미였으나, 점차 인생이 라는 연극의 배우인 인간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 즉, 이성적인 본성을 가진 개별적 존재자를 가리키며, 자신에 대해 자유로이 책임을 지며 행동하는 주체를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가면은 무언가 사악한 가 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가면 속의 삶이 인터넷이라는 가상 세계 안에서 누구에게나 가능해졌다는 것은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객관화시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에게 큰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하는 사람은 다양한 사람이나 집단과의 교류를 즐기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성찰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는 한발 더 앞서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 리프킨이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에서 밝혔듯이, 현대 사회에 서 마케팅은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파는 것으로 강조점이 달 라졌다. 특히 명품의 경우 이러한 체험 마케팅이 더욱 잘 들어맞는데, 명 품 가방은 가방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그 가방을 들고 다니면 어떻게 보일 까.' 하는 체험을 파는 것이다. 리프킨은 이러한 상황에서 제품은 물질적 의미를 상실하고 상징적 의미를 띠며, 물체로서의 성격을 점점 잃고 체험 을 지원하는 도구에 가까워진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명품 가방이 늘 어나거나 가죽이 상할까 봐 소지품을 다 넣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들고 다 니게 될 때, 가방은 더 이상 가방으로서의 본질적인 성격을 잃고 체험의 상징적 소도구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명품 소비와 소비자의 정체 성' 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일까? 아니 면 정체성 그 자체가 팔 수 있는 상품이 된 것일까? 명품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찾는 현상은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끼니를 굶고 아르바 이트를 해서라도 명품 가방을 사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 여대생이나 일본 여고생들의 소비 행태는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진귀한 현상이다. 전 통적인 문화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동양인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자아의개념이 덜 독립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개인주의에 기반을 두는 서양 문화에서는 자아가 독립적 개인을 지칭하는 주체인 반면 집단주의에 기반을 두는 동양 문화에서는 자아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의해 다른 사람들과 서로 연결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결정됨을 의미한다. 단지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명품을 소비하기보다는 명품족이 되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알리고자 하는 숨은 뜻이 있는 것이다.
- 과거에 가족은 함께 먹고 자고 일상을 경험하는 공동 생활을 하는 공동체였다. 따라서 가족 간 사적 경험의 핵심은 친밀함보다. 는 의존감 또는 유대감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친밀함'도 가정을 기반으 로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는 행위' 와 같은 경험으로 주로 강화되었다. 하 지만 가족 구성원 간에 휴대전화 이용이 증가함에 따라 친밀함이 강화되 었으며, 그 친밀성을 강화시키는 기제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지만 잦은 빈도를 보이는 의사소통을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과거에는 같이 사는 경험에 기반을 둔 공통의 생활 경험이 가족의 경험 을 제공했다면, 이제는 같이 살거나 그렇지 않거나 상관없이 얼마나 자주 일상적 대화를 이용해서 안부를 묻고 답하는지 여부가 가족 경험의 핵심 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가족이 이제 정체성이나 공통성, 유대성 등과 같은 혈연을 기초로 한 단위에 머물지 않고, 의사소통에 의해 강화되거나 약화되는 가족 구성원들 간의 상호작용 양식으로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 구성원 간의 끊임없는 안부 확인, 행위 증명, 감정 표출 의견 표명, 요구 확인 등이 가족 경험 그 자체가 되고 있다. 과거의 가족 이 일종의 말이 필요 없는 관계' 인 동시에 재산과 운명을 공유하는 상 호 의존적 관계 였다면, 이제는 '의사소통으로 유지되거나 소원해지는 관계' 로서 구성원 간의 요구를 공유하는 관계' 라고 규정할 수 있다. 짧지만 빈번한 의사소통에 의해 친밀성이 관리되는 관계는 가족 구성 원뿐만 아니라 친구나 연인, 동료의 관계에서도 확인된다. 끊임없이 문자를 교환하고, 전화로 존재를 증명하며, 그것도 모자라 인터넷 미니홈피의 방문을 정례화하는 이들이 추구하는 바를 도대체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매개로 언제 어디에서나 연락 가능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지만 마음에 남아 있는 친구' 라거나, 연락이 뜸하지만 운명처럼 남아 있는 연인' 이라거나, 대화는 없지만 신뢰하는 동료란 존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짧지만 빈번한 의사소통 회기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사이는 더 이상 친한 사이가 아닌 것이다. 친하지 않으면 단지 어색한 관계일 뿐이며, 이는 친구나 연인, 또는 동료는 물론 심지어 가족 구성원에게도 적용된다.
- 이러한 느슨한 인간관계가 주가 되는 사회에서는 스몰토크 능력이 절대적이다. 인터넷에서는 각종 유머 사이트가 인기를 끌고, 동창회에서는 가장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주목을 받는다. 문자 메시지 도 위트 있게 날리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느슨한 관계들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앞으로는 혼자서 깊이 성찰하고 사유하는 사람보다 덜 깊이 생각해도 밖으로 많이 표현하는 사람들이 더 적극적인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제법 공평해서 말을 해야답을 하고 내가 상대를 인정해야 상대도 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과거에 친했던 사람을 만났을 때보다 자주 봐서 서로 시시콜콜 아는 사람들끼리 만났을 때 할 말이 더 많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이다.표현하지 않으면 관계도 없다. 따라서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은 사회적 성공을 가져오는 발판으로써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군자는 말로써 세상을 지배하지 않는다.' 가 아니라 '승자는 스몰토크 로 세상을 지배한다. 로 바뀌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자기에 대한 인식을 확실히 다지는 구심력 있는 노력을 지속하면 서, 한편으로는 자신을 중심으로 그물처럼 퍼져 있는 인간관계망을 스몰 토크를 통한 친밀감의 교류로 관리하는 원심력 있는 노력도 효과적으로 하는 인간이 미래 사회의 리더가 될 것이다. 미래 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균형 감각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 남녀의 경제적 · 사회적 지위의 차이가 불균형한 상황에서 결혼은 남자 에게는 성적으로 매력적이면서 생활력이 있는 여자를, 여자에게는 경제적으로 매력적인 남자를 찾는 상호 보완적인 결합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남자에게는 성적 매력이 있는 여자를 찾는 비용이 줄어들었다면, 그리고 여자에게는 경제적으로 매력 있는 남자를 찾을 필요성이 줄어들었다면, 그만큼 결혼의 유인책은 줄어든 것이다. 오히려 요즘에는 남자들이 경제적 매력이 있는 여자를 찾고, 여자들이 성적 매력이 있는 남자를 찾는 경향이 증대되고 있다.
- 근대적 관점에서 프라이버시란, 혼자 있을 수 있는 개인의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출신의 법학자인 루스 가비슨(Ruth Gavison)은 비밀성 과 익명성, 그리고 고독이라는 세 가지 핵심 원리에 입각하여 프라이버시 권을 어떤 개인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권리로 정의한다. 비밀성은 자신에 대한 지식의 유포를 제한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익명성은 원치 않는 관심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하며, 고독은 다른 사람들과의 신체적 접촉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 관점에서는 개인 정보의 방어가 중요하다. 그런 데 프라이버시가 자신을 드러내고 명성을 얻고자 하는 전략적 조작과 협상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오늘날, 보호 및 방어의 대상으로만 프라이버시를 보는 것은 일면적이고 소극적이다.
- 프라이버시가 타자의 시선을 차단하고자 하는 소극적 측면과 타자와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적극적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면, 이제는 이들 상이한 두 측면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할 권리를 누가 갖는가가 중요하다. 그러한 해답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수필 모음집인 『미네르바 성냥갑에서 프라이버시에 대해 그것이 이제 비공개의 권리' 란 의미로 이해되고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상에서 프라이버시의 보호는 무작정 개인 정보의 비노출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정보 통제권을 부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 학자 게오르크 지멜(Georg Simmel)은 자신의 책에서 “기차나 전차가 생겨 나기 이전에 사람들은 아무 말도 나누지 않으면서 몇 분에서 몇 시간에 걸쳐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고 적고 있다. 근대 도시라는 새로운 공간의 등장과 함께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포함한 공공장소 및 대규모화된 직장에서 서로 알지 못하는 익명의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를 수도 없이 갖게 되었다. 이웃집 부엌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지내던 소규모 공동체적 삶에서 벗어나 이제 사람들은 낯선 이로부터 자신의 사적 영역을 지키기 위해 서로 간에 일정한 거리를 취하는 익명적 교제 또 는 소통의 방식을 터득해야 했다. 그것이 지멜이 지적하듯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도 아무 말 없이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근대적 도시민들을 낳은 것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도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개인적인 것을 묻거나 관심을 가질 때 왠지 경계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근대적 익명성의 관습과 규범을 침해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익명성이 언제나 해방과 자유의 상징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중반 대량 생산의 패러다임이 경제를 지배하고 대중민주주의와 대중매체 가 정치와 사회의 주류를 이룰 때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이나 사회학 자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은 익명성이 자기표현과 자기선택 능력 을 박탈당한 채 대중 속의 한 명으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 화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경제에 서도 대량 생산 대신 대량 맞춤 생산이 지배적이고, 민주주의도 참여적이 며, 매체도 점점 개인화되어 개인의 삶은 좀 더 많은 선택과 풍부한 개성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변화된 환경과 조건 속에서 익명성은 소 외와 몰개성이 아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오늘 날 우리에게 익명성은 개인이 어떤 대상이건 커뮤니케이션할 때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거래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자유와 선택의 문제이다.
- 검색의 진화를 기능에 따라 정리해보면, 디렉터리 형식의 1세대 검색, 구글과 같이 웹 페이지 간의 연결 구조로 검색 결과의 관련도를 결정해 알려주는 2세대 검색, 이어 사용자들의 검색 행위나 취향 등을 분석해 이 용자 개개인에게 맞춤으로 검색 결과를 제안해주는 소셜 서치가 3세대 검 색 방식이라고 분류할 수 있다. | '소셜 서치 (social search)' 는 검색 결과의 적합성을 결정할 때 같은 지식 에 대한 다른 이용자들의 이용 상황을 고려하는 유형의 검색을 말한다. 이용자의 참여가 검색 결과를 더욱 풍부하고 검색 맥락에 적합하게 만드는 검색 시스템인 셈이다. 다시 말해, 사용자들의 검색 행위에 따라 검색결과가 결정되는 상호 의존적인 검색 체제인 것이다. 이럴 경우 이용자가 단순히 검색 정보를 제공받는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자신의 검색 행위 가 전체 지식 공동체의 기반을 변화시키는 유기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과거 기계적인 알고리즘에서는 페이지뷰 등에 따른 웹 페이지의 링크구조나 문서상의 텍스트를 분석함으로써 검색어와의 연관성이 결정되었던 반면, 소셜 서치는 북마크의 공유나 콘텐츠의 태깅(tagging: 꼬리표 달기)을 이용함으로써 컴퓨터 알고리즘에 콘텐츠를 평가하는 이용자의 지성을 결합시킨 좀 더 세련된 형태의 검색이라 할 수 있다. 간단히 요약해서 소셜 서치는 이용자들이 다른 이용자의 검색을 돕도 록 하는 시스템이다. 그것은 페이지의 링크 구조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 기 때문에 링크 스팸을 줄일 수 있고, 이용자들의 검색 행위에 기반을 두 어 더욱 관련성 높은 검색 결과를 내놓을 수 있으며, 소수의 에디터가 갖 는 검색 결과에 대한 영향력의 범위를 줄일 수 있는 장점 때문에 각광받 고 있다. 이제 소셜 서치의 개념은 디렉터리 작성, 태경, 소셜 랭킹, 문답서비스 등 각종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 예를 들어, 소셜 북마킹을 살펴보자. '딜리셔스(delicio.us)' 나 마가린' 같은 서비스에서는 각 이용자가 관심 있는 웹 사이트에 꼬리표를 붙여 북 마크를 해놓고 나중에 다른 이용자들이 얼마나 많이 그 웹 사이트를 북마 크 해놓았는지에 따라서 그 웹 사이트의 유용성이나 관련성을 평가하도 록 하는 서비스이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꼬리표가 붙은 연관 북마크를 찾아보거나 자신과 비슷한 북마크를 갖고 있는 다른 이용자들의 웹 사이트 이용 형태를 살펴보면서 서로가 남겨놓은 꼬리표를 따라 서치를 확장시 켜 나가는 구조이다. 또 다른 검색의 예로 이메일 시큐리티 기업인 '클라 우드마크' 는 사람들이 스팸으로 버린 메일 자료를 기반으로 스팸을 필터링하는 기준을 세우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검색 형태는 협동적 필터링' 이라고도 불린다. 기계적 알고리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취향의 문제나 지식의 촘촘한 네트워킹에 대한 해법은 결국 이용자들의 자유분 방하고 이기적인 지식 이용이 남기는 꼬리와 흔적이다.
- 태깅, 즉 꼬리표 달기는 인터넷 이용자들이 웹상의 정보를 찾거나 표 시, 분류하기 위해 사용하는 인식표로서 기존에 전문가들이 분류하던 디 렉터리나 카테고리와는 구조적으로 다른 것이다. 디렉터리가 트리(tree)구조로 되어 있다면, 태경은 꼬리표(tag)가 연결된 정보 노드들이 상호연결된 분산형 네트워크 구조를 띤다. 하나의 정보에는 한 개 이상의 꼬리 표가 연결되어 있다. 꼬리표는 블로그나 이미지, 음악 파일 등 인터넷상의 모든 콘텐츠에 붙을 수 있다. 꼬리표의 힘은 검색을 통해 나타난다. 기 존의 키워드 검색 방법이 질의어에 해당하는 정보를 찾는다면, 꼬리표는 콘텐츠들 간의 관계망을 검색해준다. 기존의 정보 분류 방식이 카테고리 방식이라면 폭소노미는 일반 이용자들의 꼬리표 달기를 기반으로 한 분류 기법이다. 사용자의 집단 분류 기법 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이트 플리커는 검색 결과에 사용자가 꼬리표를 단다든지 블로그에 포스팅되는 콘텐츠에 주제어를 입력하여 이를 검색에 활용하는 등 다양한 사용자의 주관적인 정보 계열화가 가능한 인터페이스를 사용하고 있다. 소셜 북마킹 서비스인 딜리셔스 역시 이러한 꼬리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집단 분류 기법을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 서비스이다.
- AJAX는 비동기 자바스크립트와 XML' 로서, 검색 엔진에 키워드를 입 력하면 기존에 다른 이용자들이 사용한 관련 키워드들의 목록과 검색 결 과의 수가 자동으로 보이게 하는데, 이때 웹 페이지를 새로 고침' 하지 않고도 대화형의 웹 페이지 기능을 이용하게 하는 기술이다. 구글 서제스트, 구글 맵, 네이버 검색창의 키워드 추천 기능 등이 이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AJAX는 다른 이용자들의 자료를 효과적으로 연결시켜줌으로써 검색의 확장성을 높인다. 이러한 기술과 더불어 이용자들의 행동 자료를 분석하는 데이터마이닝 (data mining: 데이터 가운데 숨겨진 유용한 상관관계를 발견해, 실행 가능한 정보를 추출해 내고 의사 결정에 이용하는 과정) 기술들은관 계형 검색 기술의 핵심 요소이다.
- 그렇다면 지식은 왜 필요한 것일까? 지식은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질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정보와 자료를 효율적으로 교환 하는 것이다. 지식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좀 더 효율적으로 정보와 자료를 소통할 수 있다. 노키아에서 고위 경영자로 일했던 일카 투오미 (Ilkka Tuomi) 박사는 최근 혁신적인 이론을 발표했다. 기존에는 사람들이 자료를 가공하면 정보가 나오고 정보를 가공하면 지식이 산출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것보다는 반대의 관점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지식을 말로 설명해나가는 과 정에서 산출되는 것이 정보이고, 그 정보의 해석 관점을 고정시키는 객관 화 노력을 해나가면 그것이 자료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해석하면, 결국 어떠한 자료나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어 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투오미는, 자료는 이미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만 발생할 수 있으며 정보 는 이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이면서, 자 료-정보-지식에 대한 새로운 개념적 계층 구조를 제시한다. 지식 관리 문헌에는 항상 자료와 정보, 지식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지 적되어 왔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견해는 다음과 같았다. 자료는 단순한 사실들인데 의미 있는 구조들로 결합될 때 정보가 되며, 그 후에 의미 있 는 정보가 어떤 상황 속에 주입되고 예측하는 데 이용될 수 있을 때 지식이 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자료는 정보의 선행 조건이며 정보는 지식의 선행 조건이다. 그러나 투오미가 주장하는 역전된 지식 계층 구조에서는 지식 관리와 조직 기억을 지원하는 정보 체계를 개발할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정보 체계 이론에서 그동안 간과되어온 것을 재삼 확인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자료를 가공하면 정보가 산출되고 정보가 일반화되면 지식이 된다고 앵무새처럼 되뇌어왔던 기존의 정보 체계론을 생각할 때 투오미의 주장 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신선한 충격에서 벗어나 생각해보면, 그 의 주장은 기존의 관념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분명 그의 주장처럼 어떠한 자료는 그 자료를 산출하는 어떠한 지식에 의존한다. 즉, 자료는 그 자료를 산출하는 지식이 가정되어야 하고, 자료를 주고받는 사람들 간에는 지식이 공유되어야 한다.
- 결국 디지털 경제의 실상은 저작권을 가지고 독과점 체계를 유지하는 소수의 '지주'를 한편으로 하고, 제한된 이용권을 끊임없이 갱신해야 하 는 처지에 놓이는 일종의 세입자' 를 다른 한편으로 양산하는 체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디지털 경제를 뒷받침하는 기술이란 이런 의도에 따라 편향되게 발전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상 디지털 기술과는 별개로 자본주의 사회는 재산권의 활용 방법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형태로 진화, 발전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거시적 측면에서 보면 이 같은 현상 역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 게임 공간에서 재현되는 것은 성별 간의 불균형만이 아니다. 미국과 같은 다인종 국가에서는 아바타의 피부색에 따라서도 게이머들간의 인터랙션이 다르다는 것이 쟁점화된 적이 있다. 실제로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최근 이루어진 실험 연구에 따르면, 가상공간에서 아바타가 어떠한 외양 을 하고 있는가에 따라 이용자의 행동 양식과 사회적 인터랙션이 변화하 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바타가 키가 크고 잘생긴 경우, 키가 작고 못생겼 을 때보다 더 자신감 있게 행동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협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를 전문 용어로 '프로테우스 효과' 라고 한다. 자신의 겉모습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고정관념을 벗고 환상적인 모습의 아바타로 게임 세계에 몰두하고 싶은가? 그러나 게임 속에 존재하는 세상도 우리가 현실 세계 에서 갖고 있는 불평등이나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만은 않다.
- 이처럼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미디어는 사회적 권력과 권위를 이동시 키고 있으며, 정치권력이 시민들로부터 끊임없이 견제 받고 있다. 흔히력과 권위는 안간을 복종시키는 힘으로서 지배와 복종, 통제 정치 등의 요어와 동의어로 사용되곤 했다. 권력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자 신이 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행동을 가하는 일련의 능력을 말한다. 여 기에는 강제력이 포함될 수 있다.그러나 권위는 권력의 한 속성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권력은 아니다. 권위는 어떤 대상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되는 근거이다. 의사의 명령 에 복종하는 환자는 권위를 따르는 대표적 사례이다. 앨빈 토플러에 따르면, 권력은 물리적 힘(완력)과 경제력(부), 그리고 지 (정신)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여기서 물리적 힘은 저품질의 권력으로 융통성이 적고 응징의 차원에서 활용된다. 경제력은 중간 품질 의 권력으로 처벌 대신 현물의 보상(보수와 뇌물)으로 활용된다. 지식은 고품질의 권력으로, 이것은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약자인 경우에도 모두 소유할 수 있다. 오늘날 권력의 축은 고품질의 권력인 지식의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 다. 디지털화된 정보는 무한 복제를 가능케 하고 유통 비용을 줄임으로써 사회 구성원 간의 네트워킹을 통한 메가 지식을 축적시키고 있다. 과거 전 통 사회와 근대 사회에서는 권력을 가진 집단이 상징이나 정보 조작, 통제 를 통해 효과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했지만, 개방적 인터넷 환경에서는 이러한 권력 획득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디지털 환경에서 지식과 정보의 공유와 공개는 권위의 훼손' 을 의미하고, 이는 곧 권력집단에 게 물리적 힘과 경제력만으로 안정적인 권력 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인식시킨다. 또한 경험 지식을 확장하고 공유함으로써 상징의 힘인 이데올로기를 약화시키고 있다.
- 디지털 네트워크는 이렇게 권력과 권위 구축의 메커니즘을 바꾸고 있 다. 과거에는 경제력과 물리적인 힘이 중심이었다면, 새로운 시대에는 고품질의 권력인 정보의 중요성이 절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보와 지식을 생산하는 세력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또한 권력을 쌓기위해 사회적으로 안정된 체계, 즉 사회적 거점 공간(또는 네트워크)이 해체되고 느슨하지만 다접점으로 연결되며, 이질적 요소가 서로 연결된 공간(또는 네트워크)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작은 가치의 차이로도 결합되거나 분리될 수 있는 가변성이 높은 사회 공간을 의미한다.
- 미셀 푸코가 말한 대로 권력은 누군가의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의 속성이다. 그리고 사회의 속성에서 권력은 지식과 불가분의 관계 에 있다. 노마디즘 이전의 사회에서 지식은 규율이나 규제, 표준 등을 정하는 중 앙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은 한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간에도 마찬 가지였다고 할 수 있다. 문화적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그 예이다. 그렇 다면 오늘날에는 어떤가? 중앙에 집중된 지식에 대항하는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고 있으며, 노마디즘은 끊임없는 변화와 이동, 그리고 덧없음을 특 징으로 한다. 지식은 이제 영구불변의 진리나 항구적 기준이 아닌 끊임없 는 변화 과정 속에서 특정 시점에 존재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인식이 이제는 광범위하게 인정받게 되었 고, 이러한 지식의 사회적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권력이라는 사실도 공공연한 것이 되었다. 만약 노마디즘 시대의 권력이 네트워크상 에서 공유되고 분산되는 것이라면, 지식 또한 네트워크를 매개로 생겨나고 인증되며 전파되는 것이 아닐까?
- 한번 권위를 인정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실력을, 또는 그 성실성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권위의 특징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것은 사회 공동 질서의 해체라기보다는 합리화의 과정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권위는 특히 인터넷에서 해체되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 서 말했듯이 이것이 단지 권위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어찌 보면 권위의 편재를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정치문화나 경제문화 영역에 서 공통으로 관찰되는 현상은 권위에 진입하는 장벽이 낮아짐에 따라 권 위에 대한 경쟁 역시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 정보화 시대에 권위가 약화되는 것은 기존의 수직적이던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부분적으로 수평적으로 변화하면서 생기는 인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전문가의 권위를 얼마나 인정하는가를 생각해보 면 잘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수직적인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아래에서 전문가는 한번 인정을 받아 그 말에 힘이 실리게 되면 그대로 수직적인 질서 속에서 권위자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전문가는 여전히 존재하고 여전히 그의 말에 힘이 실리기는 하지만 전문가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 이 인정을 받아야 하는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그 어느 것도 고정적이지 않다는 점, 바로 그 점에서 기존의 권위가 약화되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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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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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는 나의 힘

인문 2020. 3. 8. 18:42

- 비유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보 다 분명하게 전달해 주는 작용을 한다. 비유는 우리 생각 속에 숨어있 는 수많은 자원들과 접촉하면서, 그중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자 원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낸다. 비유는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비유는 간결하고 명쾌한 개념정의, 이해하기 쉬운 표현, 메시지의 영향력 확대에 더없이 좋은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 대화의 즐거움도 더한다.
- 비유는 어떤 대상의 의미를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특징과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단어를 사용함으 로써 대상의 의미를 더 간결하고 깊이 있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비유 는 고상한 사고개념을 전달하는 철학자들에서부터 시인, 정치인, 영 업맨, 심지어 시골 할머니까지 사용할 수 있음에도 그 강력함을 잃지 않는다. 리더가 비유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 다. 비유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킬 뿐 아니라, 비유에 사용된 표현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기억과 경험을 불 러일으키며 메시지의 의미를 강화한다. 또한, 간명한 표현을 통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의미의 전달을 촉진한다.
- 비유는 비교에서 나온 개념인 만큼, 어떤 이미지를 제공하는 단어나 표현이 그 이미지를 덧씌우고자 하는 대상과 비교되면서 의미가 전달 된다. 비유의 구성과 형성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첫 단계에 서는, 이미지 제공어와 그 이미지를 덧씌울 이미지 수령어가 제시된 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미지 제공어가 갖는 어떤 연상이 이미지 수령어에 적용된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문맥의 흐름 속에서 이미지 수 령어가 가진 여러 가지 의미 중 하나가 결정되고 강조된다. 예를 들어, 호수와 같은 내 마음 이라고 한다면 호수'는 이미지 제공어가 되고, '내 마음은 이미지 수령어가 된다.
- 풍유법(强論法)은 이미지 수령어(원관념)를 숨긴 상태에서 이미지 제공어(보조관념)만으로 의미를 표현하는 기법이다. 직유법, 은유법 그리고 대유법과 함께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제시하는 비유의 종류이다. 풍유법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숨겨진 본뜻을 짐작하게 하면서 표현의깊이를 더한다. 많은 경우 풍유법에는 의인법이나 활유법을 함께 사용한다. 풍유법의 표현 예는 다음과 같다.
까마귀 사이에 끼지 마라, 네 마음도 검게 변한다.
- 상상력을 자극하는 비유는 다름 아닌 상상력에서 나온다. 이미지 수령 어를 보면서 어떤 이미지 제공어와 연결시킬 것인지, 아니면 이미지 제공어를 보면서 어떤 이미지 수령어에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다분히 상상의 영역이다. 우리 생각을 지배하는 힘은 이성보다 감성이 더 큰 것처럼, 비유는 논리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논리적 완결성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 일본 미라이 공업은 1965년 창업 이래 40년간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 이 없는 회사로 유명하다. 직원 800명에 평균 이익률 13%, 스위치박 스 제품의 경우 시장점유율 80%의 강소기업이다. 미라이공업을 창업 한 야마다 아키오는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이 행복하다면서 가장 행복 한 기업을 만들겠다고 했다. 한국에도 소개된 건축설비 제조업체인 이 회사는 무조건 정직원으로 만 고용하고, 영업할당량은 금지되어 있다. 상사에게 보고 · 연락 · 상담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고, 개선 제안서를 내면 무조건 500엔(약 5천 원) 지급(좋은 제안에는 최고 3만 엔), 5년에 한 번 회사부담으로 전 직원 해외여행 등 재미있는 규칙을 가지고 있다. 야마다 아키오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이야기하면서 “막이 오르면 연기 는 배우에게 맡겨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배우는 성장하지 못하고 연극은 망한다.”라고 말했다. 경영자가 일을 맡기면서도 사원을 믿지 못하고, 사원도 스스로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기업은 성장하지 못한다는 의미를 전하며 사용한 비유다.
- 삼진만으로는 기록을 깰 수 없다.
메이저리그 최소 투구수 기록은 58개다. 그 기록을 깨려면 삼진아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안타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범타를 처리할 수비의 도움도 필요하다. 1944년 8월 10일,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 보스턴 대 신시네티 전, 보스턴의 '레드 바렛'이 58구 완투승을 거뒀다. 투구 내용은 볼넷과 삼진이 각각 하나이고 피안타는 둘이었다. 경기 결과는 보스턴의 2:0 승리로 끝났다. 이 경기에서 기록된 58구 완투승이 메이저리그 최소 투구수 기록이다.
- 광고기획자가 의도한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없는, 잠재의식광고라고 불리는 서브리미널 광고(subliminal advertising)가 넘쳐나고 있다. (일자)는, 영상 속 몇몇 프레임에 이미지를 집어넣거나 미세한 소리를 삽입하는 방식 뿐 아니라, 여성의 신체 라인이나 부위, 특정 이미지를 연상 하게 하는 표현 등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모든 기법을 이 범주에 포함 시킨다.) 일부 회사에서는 마케팅 회의를 통해 소비자의 무의식에 영 향을 미치기 위한 광고효과를 적극적으로 도출하기도 한다. 서브리미널은 표면적으로는 인간의 감각이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의 자극이지만, 잠재의식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누적될수록 그 강도가 커진다.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나 눈치 챌 수 없는 이미지, 의식적으로 식별하기 힘든 단어 등을 동원해 성적흥분이나 각성을 일으키고, 제품에 대한 자각과 친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인간의 잠재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광고는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때문에, 세계적으로 금지되고 있지만 그 효과나 판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모두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광고기법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난 1995년 3월에도 모 사이다 제품의 광 고가 광고심의위원회에서 잠재의식 광고로 판정받아 시정조치가 내 려졌던 사례가 있다.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었지만 필름 프레임 하나하나를 살펴본 결과, 몇 개의 프레임에 제품의 이미지를 끼워 넣은 것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라면광고는 잠재의식을 건드리기보다 노골적인 상상력을 유발했기에 단번에 식별이 가능했지만 프레임 몇 개에 이미지를 삽입하는 기법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 오늘날 마케팅은 소비자의 의식 속에 어떻게 침투하느냐의 싸움이 되 었다. 그러다 보니 과거 ‘잠재의식 광고'로 불리며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던 광고기법이 일부 변형되어 최근에는 '뉴로마케팅 '이라고 불리는 광고기법으로 등장했다. 제품명, 디자인, 색깔, 표기방법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소비자의 인식이 제품의 이미지에 어 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피고 마케팅에 활용하는 기법이다. 같은 시대의 환경과 문화 속에서, 유사한 교육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은 실체가 있는 구체적인 대상뿐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중을 공략하는 기본 토대는 다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원초적이고 강한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특정한 이미지를 찾는 데 있다. 출시를 앞둔 제품이나 브랜드 에 특정 이미지를 씌우고자 한다면, 그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고 모두 가 인정할 수 있는 어떤 매개체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비유에서 '내 마음'을 '호수'에 비유하며 호수'의 이미지를 '내 마음에 덧씌우는 매커니즘과 거의 같은 절차를 밟는다. 그러면 시에서 '사랑'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섹시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의 할리우드 배우가 등장하는 손목시계 광 고를 보면, 그 배우의 이미지가 손목시계에 투사된다. 그리고 그 손목 시계를 내가 착용하면, 마치 그 배우의 이미지가 나에게도 생길 것 같 은 느낌이 든다. 요즘엔 '전지현 코트’, ‘김수현 구두 등 노골적으로 특 정 제품에 유명인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매칭하는 식으로 홍보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시장이나 신개념 상품을 두고 몇 개 회사가 경쟁하고 있다면, 소비자의 인식 속에 가장 빨리 원하는 이미지를 심는 회사가 1등이 된 다. 여기에서 원하는 이미지'란 '자사 브랜드를 연상하게 하는 이미지' 를 말한다. 효과적인 마케팅을 통해 그 이미지가 제품에 완전히 고착 되면 브랜드명이 곧 제품명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탈취제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고 '페브리즈 주세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탈취제는 페브리즈 말고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참고로, 탈취제를뿌리는 장면을 떠올리면 광고를 통해 들었던 '페브리즈'라는 맑은 목소리의 광고멘트가 환청으로 들리는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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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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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 고갈 이론을 처음 발표한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로이 바우마이스터 Roy Baumeister 교수는 자아 고갈 이론의 네 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자기통제력은 무한정 존재하지 않는 한정된 에너지 자원이다.
(2) 자기통제력을 사용하면 이 자원은 고갈된다.
(3) 자기통제를 위한 에너지는 다시 보충된다. 다만 보충되는 속도는 고갈되는 속도보다 느리다. 그래서 종종 바닥을 드러낸다.
(4) 자기통제 능력은 근육과 비슷해서 반복적으로 훈련하면 능력치를높일 수 있다.
- 물건을 파는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자아 고갈 현상을 집요하게 노린다. 같은 광고를 반복해서 보여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광고를 보고도 그 제품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도 존재 한다. 하지만 기업의 광고는 그런 고객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제품을 사고는 싶은데, 돈이 부족해서 참고 있는 예비 고객의 마음을 뒤흔들기 위해 광고를 계속한다. 자아 고갈 이론에 따르면, 참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인내를 거듭하던 사람들은 결국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유혹을 참지 못한 채 지갑을 열어 '지름신'을 맞이한다. 2002년 노벨경제 학상 수상자이자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대니얼 카너먼 Daniel Kahneman 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옷을 입고 싶은 유혹에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데 그것을 가질 만한 돈이 없는 경우, 사람은 그 유혹을 계속해서 참아야 한다. 하지만 인내의 상 황이 수없이 반복되면, 유혹을 피하려는 결정을 하느라 뇌가 많은 수고를 한다. 이런 수고가 반복되면 의지력은 점점 소진된다. 이런 상태를 자아 고갈'이라고 한다.”
- “인간의 뇌는 완벽하게 끝낸 일을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 다. 그러나 끝내지 못한 일은 계속해서 뇌리에 남아 잘 기억할 수 있다.”
자이가르닉에 따르면, 웨이터가 손님의 복잡한 주문을 잘 기 억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웨이터의 임무는 음식을 주문받은 뒤 이를 주방까지 전달하는 것이다. 즉 주문받는 일이 웨이터로서의 임무 완수가 아니라는 의미다. 인간은 끝내지 못한 일'을 더 잘 기억한다. 웨이터는 주문을 주방에 전달해야 그 일을 마치는 셈이므로, 일을 마치기 전까지 주 문을 거뜬히 암기한다. 하지만 주문이 주방에 전달되면 상황은 완 전히 달라진다. 이제는 웨이터의 임무가 끝났기 때문에 뇌는 그 '끝낸 일'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 불과 30분 전까지 완벽히 기억한 주문을 웨이터가 완전히 지워 버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미완성 효과를 이용해 마케팅하라!
자이가르닉의 이 논문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심리학에 서는 자이가르닉의 이론을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 혹은 '미완성 효과'라고 불렀다. 미완성 효과의 요지는 이렇다. 사람 의 뇌는 일을 끝마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일을 마치지 못하면 뇌는 팽팽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그 일을 보다 잘 기억 한다. 반면에 일을 마치면 뇌는 긴장 상태를 잃어버리면서 그 일을 곧잘 잊어버린다.
- 인도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농부들은 1년에 한 번 사탕수수를 수확한 시기에만 돈을 번다. 즉 작물이 팔린 직후에 농부들은 꽤 많은 현금을 보유한다. 그러나 돈은 곧 사라지고 다음 해 수확기가 다가오면 농부들은 대부분 빈곤한 상태가 된다. 멀레이너선과 샤퍼는 수확을 앞둔 한 달 전과 수확을 마친 한 달 뒤 농부들의 아이큐를 측정했다. 그 결과 수확 한 달 전, 즉 가장 빈곤했을 때 농부들의 아이큐는 수확 한 달 뒤, 즉 가장 풍요웠을 때의 아이큐보다 9~10%나 낮았다. 사람은 가난이라는 결핍 상황에 빠질수록 '먹고살아야 해!’, '내일 뭘 먹지?',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남지?'와 같은 생존 문제 에만 집중한다. 뇌가 완벽히 생존을 위협하는 터널 안에 갇힌 것 이다. 이러니 뇌가 정상적으로 가동될 리 없다. 아이큐에서 반드시 필요한 수리 능력이나 인지 능력은 거의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일수록 투표율이 낮다. 먹고살기 바빠 죽 겠는데 투표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과연 있을까. 가난할수록 생존 분야에서 효율은 높아지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창의적 재능을 잊어버린다. 결국 빈곤은 사회 전체적으로 심각한 비효율을 유발하는 셈이다. '결핍이 효율을 낳는다는 멀레이너선과 샤퍼의 연구는 사람 을 더 결핍 상황으로 몰아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사람은 결핍 상태에 놓일수록 그 일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인간이 발휘할 수 있 는 다양한 분야의 창의성을 상실한다. 작가가 마감 시간을 앞두고 건강을 잃는 것도 바로 그런 문제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왜 중간고사 때 벼락치기를 하는 게 효율 적인지 그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되었어!'라고 깨닫지 말길 바란다. 결핍의 경제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그런 것이 아니다. 벼락치기가 효율적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의 수많은 창의성이 사 라지고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점이다. 인류의 진화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본다. 미국 럿거스대학 인류학 과 라이어널 타이거 Lionel Tiger 교수는 “인간이 진화할 수 있었던 이 유는 낙관적인 환상 덕분”이라고 단언했다. 생각해 보자. '내가 하는 일이 모두 잘될 것'으로 믿는 낙관주 의가 없다면 3월에 씨를 뿌려 10월에 곡물을 수확하는 일이 어떻 게 가능할까? 7개월 동안 홍수도 닥칠 것이고 가뭄도 닥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래도 내가 뿌린 씨는 잘 자라서 곡식을 만들어 낼 거야.'라고 낙관한다. 그러니까 그 무모한 일을 한다. 분노한 들소 떼 사이에 뛰어들어 사냥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일은 너무나 위험해서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꿋꿋이 사냥을 나간다. 우 리는 오늘 사냥을 성공해서 맛있는 쇠고기를 잔뜩 먹을 거야.'라는 낙관적 생각에, 분노한 들소 떼 사이로 기꺼이 몸을 던지는 것이다. 낙관적 생각이 무모한 도전을 가능케 하고, 그 무모한 도전이 다시 인류의 진화를 이끌어 낸다. 그런데 낙관 편향이 반드시 사람에게 이로운 것만은 아니다. 인간의 뇌가 낙관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안 좋은 일도 있다. 가장중요한 오류는 인간이 오만해진다는 사실이다.
- 스톡데일은 달랐다. 물론 그도 동료들처럼 나는 석방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미래를 낙관했다. 하지만 스톡데일은 '시간이 지나면 석방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생각을 품지 않았다.그는 현실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절대로 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혹한 현실에 맞서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이에 차분히 대응했다. 스톡데일은 수용소에서 미군들을 조직해 시위를 벌였다. 일부 동료는 적군의 회유에 넘어갔지만, 스톡데일은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버텼다. 고문당할 때도 '이번 고문은 더 고통스러울 것 이다. 잘 참아야 한다.'라며 스스로 다짐해 나갔다. 부하 포로들의 고립감을 덜어 주기 위해 자기들끼리만 소통할 수 있는 정교한 내부 통신체계를 만들기도 했다. 스톡데일은 치밀하게 준비하고 대응하면서, 당장 원하는 결과 가 나오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았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며 닥칠 고난을 의연하게 대비했다.
- 낙관은 인류를 진화시키고 도전을 감행하게 한다. 그래서 낙관 에는 분명히 좋은 면이 있다. 하지만 낙관이 과해서 근거 없는 낙관주의로 흐르면, 이는 오히려 사람을 파멸시킨다. 잔뜩 기대하며 희망을 품었다가 결과가 나쁘면 사람은 절망에 빠져서 자포자기의 길을 걷게 된다. 그래서 정말로 좋은 낙관주의는 무조건 잘될 거야.'라는 자기 중심적인 희망이 아니라, 현실이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더 나은 미 래를 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낙관주의다. 이런 낙관주의는 자기가 원하는 세상이 오늘 오지 않아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엄혹한 현실에 맞서 싸우기 위해 또 준비한다.
- UC버클리대 경영대학원 캐머런 앤더스Cameron Anderson 교수가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연구 팀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학생들을 모아 네 명씩 한 팀으로 묶었다. 그리고 매우 어려운 수학 문제를 팀별로 풀도록 지시했다. 미국 사람들은 팀별 과제를 받으면 먼저 리더를 뽑아 리더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앤더슨 교수는 몰래카메라 로 팀원들이 어떤 사람을 리더로 뽑는지 관찰했다. 네 명의 팀원중에는 수학 성적이 매우 뛰어난 사람도 있었고 인화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관찰 결과 리더가 된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넘 치는 사람이었다.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제였으니 수학 실력이 뛰어 난 사람을 리더로 뽑아야 마땅한데, 사람들은 “나만 믿어. 내 말대 로 하면 풀 수 있어!”라며 적극적이고 자신감 있게 나서는 사람을 리더로 뽑았다. 실로 비합리적인 신뢰지만, 사람들은 목소리만 커도 그 사람을 쉽게 믿는다.
-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로더릭 크레이머 Roderick Kramer 교수의 실험은 더 적나라하다. 크레이머 교수는 그룹을 만든 뒤 그들에게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뽑으라고 지시했다. 그러고 나서 그 과정을 살펴보니, 신뢰를 얻는 사람은 절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하면서 상대의 등을 토닥 여 준다거나 악수를 할 때 손을 꼬~옥 잡는 식으로 매너 있는 행동 만 해도 신뢰도가 엄청 높아진다는 것이다. 크레이머 교수는 농담 삼아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 중 하나가 학생들한테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교수로서 학생에 게 신뢰를 얻으려면 그저 수업 시간에 목소리를 차분하게 하면 된 다. 그리고 학생들을 만나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 된다.
- 수직 폭력이란 말 그대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는 폭 력'이다. 그런데 파동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수직 폭력을 극 심하게 당할수록 수평 폭력 심리에 의존한다. 강한 자에게 얻어터지고 나면, 정작 그 일을 당한 민중들은 그 분노를 자기와 같거나 자기보다 더 약한 자를 두들겨 패면서 풀려고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착취를 심하게 당할수록 자신보다 더 못살고 힘없는 이들에 게 폭력을 휘두른다. 샌더스와 트럼프는 각각 파농의 수직 폭력과 수평 폭력을 정 확히 대변하는 존재였다. 샌더스는 “민중이 못사는 이유는 월가 (Wall Street) 금융자본이 우리를 착취했기 때문”이라며 수직 폭력에 대항했다. 국민에게 진실을 이야기한 것이다. 국민의 절반은 그에게 열광했다. 반면에 트럼프는 “우리가 못사는 이유는 멕시코 사람들이 우 리의 일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힘을 합쳐 멕시코인을 몰아내자!”라고 선동했다.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수평 폭력 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절 반이 그에게 열광했다. 트럼프는 이 전략으로 마침내 미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 트럼프는 왜 미치광이처럼 행동할까?
수평 폭력을 이용해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당선 이후 경제학 게임이론에 등장하는 '치킨 게임'을 발판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줄곧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전략을 고수했다. 그는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인 미국에서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리고 멀쩡히 무역을 잘해 오던 독일과 중국, 일본 등 3개 나라를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국을 상대로도 한미 FTA를 재협상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트럼프는 “유럽의 부자 나라인 독일은 환율을 조작해 미국을 착취했고, 아시아의 부자 나라인 한국은 불평등한 무역협정으로 미국을 착취했다”고 주장했다. 상식적으로 이런 주장이 말이 될리 없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인 미국이 한국과 무역협정을 맺었는 데, 그 무역협정이 미국 쪽에 불리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힘의 차이가 수백 배에 이르는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착취를 당했 다”고 주장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그래서 트럼프의 이런 주장은 미친 헛소리처럼 들린다. 하지 만 트럼프는 미치광이가 아니다. 그의 막무가내 행동은 게임이론 에 따르면 계산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즉 트럼프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미치광이인 척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영리한 전술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비즈니스맨 출신인 트럼프는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호혜 평등의 관계로 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이 익을 서로 빼앗아야 하는 경쟁 상대로 본다.
- 상대의 미치광이 전략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미치광이가 될 각오를 하고 함께 충돌을 향해 돌진해야 한다. 그리 고 핸들을 꺾어야 한다면 최후의 순간에 꺾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상대가 먼저 핸들을 꺾을 수도 있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핸들을 꺾더라도 최소한 상대도 나와 동시에 꺾을 수 있다. 어떤 경우도 내가 먼저 핸들을 자발적으로 꺾는 것보다는 나은 결과다. 트럼프가 미치광이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치킨 게임에 등장한 이 희대의 전략가에게 국제사회가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강준만 교수의 책 『감정 독재: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해서 통제감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결국 세상사 모든 일 이 순전히 우연한 것은 없고 당사자들에게 책임이 어느 정도는 있 는 걸로 믿는 경향이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행인을 두고 부주의 해서 그랬겠거니 여기고,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그럴 만한 여지를줬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멍청하거나 게을러서 그렇게 되었고, 부자인 사람은 똑똑하거나 부지런해서 그런 결과를 얻게 되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은 통 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세상에는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인간 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해 야 불평등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 사는 이완배 씨는 왜 소말리아에 사는 바레 씨보다 잘살까? 이완배 씨가 바레 씨보다 훨씬 똑똑하거나, 이완배 씨가 바레 씨보다 훨씬 부지런하기 때문 일까? 그렇지 않다.
- 심리학에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범죄의 전염 성을 밝혀낸 이론인데,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필립 짐바르도 Philip G. Zimbardo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가 실험을 진행했다. 짐바르도 교 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차를 한 대 주차하고 트렁크를 열어 두었다. 그는 이 차를 무려 일주일이나 방치했는데,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거다. 누군가 차에 손을 댔다면 그건 범죄다. 이후 짐바르도 교수는 같은 골목에 똑같이 차를 주차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트렁크를 열어 둔 것이 아니라 유리창을 하나 박살 냈다. 일주일 뒤 이 차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사람들은 이 차에서 배터리나 타이어 등 각종 부품을 모조리 훔쳐 가 버렸다. 나중 에 더 훔쳐 갈 것이 없어지자 군중은 차를 부쉈다. 같은 골목에 주차했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바로 범죄 의 전염성 때문이다. 트렁크가 열린 차를 보면 사람들은 주인이 트렁크를 열어 둔 모양이네.'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친다. 하지 만 유리창이 깨진 차를 보면 사람들은 '누군가 유리창을 깨고 뭘 훔쳐 간 모양이네.'라고 생각한다.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어 차피 누군가 저 차에서 뭘 훔쳐 갔다면, 나도 좀 훔치면 어때?'라는 유혹이 범죄 심리를 자극한다. 이런 생각으로 첫 번째 절도범이 차에서 내비게이션을 훔친다. 두 번째 절도범은 대담하게 타이어를 빼 간다. 세 번째 절도범 은 아예 자동차 내부 부품을 훔쳐 간다. '남도 훔쳤는데, 나도 좀 훔치면 어때?'라는 심리가 전염병처럼 확산된다. 애리얼리 교수는 여러 실험을 통해서 범죄나 부정부패는 나쁜놈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 심지어 도덕적인 사람들도 빠질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환경만 조성되면 나약한 인간은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
- 프랑스 사람은 알제리 국민을 두고 '선천적으로 저열하고 폭력적이며, 이유 없이 살인하고 범죄 성향이 강하다'고 떠들어 댔다. 깜둥이들은 원래 폭력적'이라는 인종차별적 선전이 난무했다. 파농은 이때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1954~1959년 자신이 직접 치료한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악선전에 치열한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알제리 국민이 폭력적인 이유 는 바로 프랑스인이 가하는 수직 폭력 탓이라고 주장했다. 파농은 폭력을 수평 폭력’과 ‘수직 폭력’으로 구분했다. 수직 폭력이란 위에서 가해지는 폭력, 즉 지배자가 행하는 폭력이다. 수 평 폭력은 서민들끼리 휘두르는 폭력, 즉 피지배자끼리 치고받는 폭력이다. 파농에 따르면 서민은 프랑스 제국주의자로부터 받는 수직 폭력 탓에 곤궁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그 곤궁이 서민을 더 폭력적으로 만들어 수평 폭력을 휘두르게 한다. 빈곤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서민들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죽이고 두들겨 패는 방식으로 수직 폭력의 한과 고통을 푼다. 알제리 서민은 원래 썩은 사과가 아니었고, 그들을 둘러싼 사과 상자가 썩었기 때문에 오염됐다는 이야기다.
- 애리얼리는 이스라엘의 한 반도체 공장을 찾아 직원 207명을 3개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이 세 그룹에 각기 다른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첫 번째 그룹에는 “평소보다 생산 실적이 좋으면 30달러(약 3만 6,000원)의 성과급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을, 두 번째 그룹에는 “평소보다 생산 실적이 좋으면 피자 한 판을 주겠다”는 내용을 각각 보냈다. 그리고 세 번째 그룹에는 엉뚱하게도 “평소보다 생산 실적이 좋으면 직속 상사로부터 격려 메시지를 받게 해주겠다”고 알렸다. 이렇게 한 뒤 다음 날 그는 어떤 그룹의 실적이 가장 좋은지를 살폈다. 애리얼리를 초청한 반도체 공장 측에서는 당연히 첫 번째 그룹의 실적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노동자들은 현금 받 는 것을 가장 좋아하며, 그 보상을 따내기 위해 열심히 일할 수밖 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가장 높은 성과를 올린 쪽 은 피자를 받기로 한 두 번째 그룹이었다. 이 그룹의 생산성은 평 소보다 6.7%나 향상됐다. 더 놀라운 사실은 2위를 한 그룹이 상사 로부터 칭찬을 받기로 한 세번째 그룹이었다는 점이다. 이 그룹의 생산성 향상률은 6.6%로 피자를 받기로 한 그룹과 거의 차이가 없 었다. 놀랍게도 30달러를 받기로 한 그룹의 생산성 향상률은 4.9%에 그쳐 꼴찌를 기록했다. 결과가 다소 뜻밖이긴 했지만, 이 실험으로 반도체 공장 경영진은 “아무튼 돈이건, 피자건, 칭찬이건 성과에 대해 보상을 늘리 면 성과도 올라간다는 이야기지?”라고 결론을 내리려 했다. 하지 만 애리얼리의 생각은 달랐다. 애리얼리는 같은 실험을 여러 번 반 복한 뒤 또 다른 의외의 결과를 도출했다. 같은 실험을 다음 날 다시 해 보니 30달러 또는 피자를 받은 직원들의 생산성이 뚝 떨어졌다. 30달러를 받은 그룹의 생산성은 무려 13.2%나 폭락했고, 피자를 받은 그룹의 생산성도 5.7%나 낮아겼다. 실험을 반복할수록 이 같은 경향은 더 뚜렷해졌다. 결국 5주동안 같은 실험을 반복한 결과 현금 30달러를 받은 그룹의 생산성은 평소보다 되레 6.5%나 하락했다. 피자를 받은 그룹의 생산성도 평소와 비교하면 2.1% 떨어졌다. 유일하게 생산성이 높아진 그룹은 칭찬을 들은 그룹이었다. 이들의 생산성은 평소에 비해 0.64% 향상됐다.
- 애리얼리는 “직원들이 성과급을 받기 위해 애태우는 것보다. 기업은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봉을 기본급 80%, 성과급 20%로 나눈다면 직원 들에게 이 20%는 엄청난 스트레스 요인이에요. 이 20%의 걱정을 덜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라고 지적한다. 애리얼리는 성과급에 대해 이런 충고도 곁들인다.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성과급을 주겠다”는 제안은 “너는 지금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어!” 라는 질타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제안은 결국 노동자를 무시하고 불신하는 사고를 내포한다.
- 불신은 일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존재다. 누군가로부터 신뢰받는다고 생각할 때 일할 맛이 난다. 즉 사람은 30달러를 받을 때보다, 칭찬을 받을 때 더 열심히 일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애리얼리는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또 다른 실험을 시 도했다. 벨기에의 한 대형 제약 회사의 의뢰를 받은 뒤, 이 회사서 일하는 영업 사원들에게 15유로(약 1만 9,000원)씩 더 주고, 그들 이 더 열심히 일하는지 지켜봤다. | 다행히(!) 영업 사원들은 돈을 받고 조금 더 열심히 일하기는 했다. 그런데 얼마나 더 열심히 했나 봤더니, 이들이 추가로 쌓은 실적은 한 사람당 5유로(약 6,300원)에 불과했다. 일은 고작 5유로어치 더 했는데 성과급은 15유로나 지불한 셈이었다. 이번에 애리얼리는 다른 영업 사원들에게 똑같이 15유로씩을 주는 대신 색다른 제안을 했다. “이 돈은 당신을 위해서는 쓸 수 없 어요. 오로지 당신이 좋아하는 동료에게 선물을 사 주는 데에만 쓸쓸 수 있습니다.” 라는 전제를 붙였다. 과연 이런 제안에 영업사원들은 열심히 일했을까? 놀랍게도 이번에는 영업 사원들의 생산성이 무려 1인당 17유 로로 뛰었다. 15유로를 지불하고 17유로를 벌었으니 회사 입장에 서는 분명 성공을 거둔 셈이다.
- 경제학과 신경과학이라는 완전히 달라 보이는 두 학문을 접목 시켜 탄생한 것이 신경경제학이다. 이 분야의 대가(大家)는 미국 클 레어몬트대학원의 폴 잭Paul J.Zak 교수다. 잭 교수는 인간이 돈에 다양한 반응을 보일 때 신경과학적으로 어떤 변화가 발생하는지를 연구하는 학자다. 그는 앞서 살펴본 신뢰 게임을 진행한 뒤 참가자들의 피를 뽑아 호르몬의 변화를 살펴봤다. (피를 직접 분석하는 방법때문에 잭 교수는 뱀파이어 경제학자로 불린다!) 신뢰 게임에 따르면, 인간은 의외로 모르는 사람을 굳게 믿는 편이고, 상대방은 그 믿음에 보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실 험 참가자들의 피를 뽑아 분석했더니 놀랍게도 서로를 믿은 참가 가의 피에서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이 대거 검출됐다.
- 피프 교수는 이외에도 부자와 빈자가 어떤 행동의 차이를 보 이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했다. 피프 교수는 부유층이 대거 모여 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해안가의 횡단보도를 관찰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차량이 횡단보도를 만나면 무조건 정지하는 것이 법이다. 관찰 결과 소형 차량일수록 이 법을 잘 지키는 반면, 최고급 차량일수록 규칙을 무시하고 보행자 앞을 당당히 지나가는 경향이 있었다. 실험에 따르면 부자들은 준법정신도 낮았다. 피프 교수는 '독재자 테스트'라는 유명한 실험도 진행했다. 그 는 이 실험에서 참가자를 일단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A 그룹 참가자에게는 10달러를 줬고, B 그룹 참가자에게는 땡전 한 푼 주지 않았다. 피프 교수는 A 그룹 참가자에게 “자, 보세요. 저쪽 B 그룹 참가자는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각자 받은 10달러를 저쪽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습니다. 얼마를 나누 느냐는 순전히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아, 물론 한 푼도 안 줘도 됩니다.”라고 알려 주었다. A 그룹 참가자는 B 그룹 참가자와 일면식 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만날 일이 절대 없었다. 어떤 결과가 나타 났을까? 이 실험 결과도 충격적이었다. A 그룹 참가자 가운데 연 소득 이 2,400만 원 이하인 빈곤층은 연 소득 1억 8,0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보다 평균 44%나 많은 돈을 나눠 줬다. 부자가 더 많이 나눌 것 같지만, 그들이 훨씬 구두쇠 노릇을 했다는 이야기다.
- 실험에서 알 수 있듯 대다수의 금수저는 오만하며, 법을 지키 지 않고, 심지어 나눔의 정신도 부족하다.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은 다 자기보다 못난 사람들이며, 멸시받고 천대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피프 교수는 이 실험 결과를 발표할 때 강연 제목을 '돈이 당신을 사악하게 만드나(Does money make you mean?)?'라고 지었다. 금수저가 판치는 사회가 위험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금수 저의 문제는 단지 그들이 재산을 불공정한 방식으로 차지한다는 대목에서 끝나지 않는다. 금수저는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이용해서 계속 승승장구한다. 결국 그들은 사회 고위층이 된다. 그렇게 금수저가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올라서면 이 나라는 어떤 모습이 될까? 그들은 무례하고, 동정심이 없으며, 가혹하고, 거만하다. 한국 사회는 이런 사람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그 사회가 과연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고, 이웃과 협동하며, 가진 것을 나누는 협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 상대가 씌운 프레임에 허우적거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전략인지를 잘 설명해 주는 마케팅 사례가 있다. 1978년 미국 패스트푸드 업계의 선두 주자 맥도날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괴소문 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맥도날드가 지렁이 고기로 햄버거 패티를 만든다는 소문이었다. 지렁이 햄버거를 먹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맥 도날드의 매출액은 폭락했다. 당황한 맥도날드는 동원 가능한 모 든 홍보 채널을 통해 “햄버거 패티에 결코 지렁이 고기를 쓰지 않는다”는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지렁이 고기를 쓰면 오히려 쇠고기를 쓸 때보다 원가가 더 높아져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는 반론도 덧붙였다. 그리고 모든 맥도날드 매장 앞에는 다음 과 같은 커다란 안내문을 붙였다. "Our hamburger meat does not contain earthworms (우리 햄버거에는 지렁이가 들어 있지 않아요.).” 하지만 이 멍청한 마케팅 전략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듯 상황을 악화시켰다. 사람들은 “지렁이 패티가 쇠고기 패티보다 더 비싸대.”, “정말?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대화를 이어 갔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햄버거와 지렁이를 연상했다.매장 앞에 붙은 안내문 또한 지렁이를 떠올리는 도구 노릇을 할 뿐이었다. 고객들은 안내문을 보고 햄버거에 지렁이가 안 들어있다고? 아 맞다. 맥도날드 햄버거에 지렁이가 들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라고 상기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맥도날드 매출액은 폭락 을 거듭했다. 맥도날드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프레임에 걸려든 것이다. 맥도날드는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연구를 거듭했다. 맥도날드가 찾아낸 해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다른 고급 레스토랑 햄버그스테이크에도 지렁이 고기가 들어 있다'는 헛소문을 내는 것이었다. 만약 헛소문을 냈다면 사람들의 머릿속 에서 맥도날드 지렁이 햄버거는 사라지고, 다른 대형 레스토랑 지렁이 스테이크가 더 강력하게 자리 잡았을 것이다. 물론 맥도날드가 이 전략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일단 이런 행동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맥도날드가 사용한 실제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맥도날드는 지렁이 햄버거를 설명하는 태도를 멈추고, 새로 개발한 밀크셰이크와 감자튀김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물론 이 전략은 헛소문을 내는 첫 번째 전략보다는 강도가 약했다. 하지만 어쨌든 맥도날드는 이런 홍보 전략을 통해 지렁이 햄버거 라는 '코끼리 이미지'를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지우는 데 성공했다. | 이 사례가 전해 주는 교훈은 하나였다. 특정 프레임에 갇힐 위 험에 처했을 때 제일 훌륭한 전략은 자신만의 언어로 새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가장 바보 같은 전략은 그 프레임이 사용하는 언어로 반복해서 해명하는 행위다.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해명해서는 안 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아예 '코끼리'라는 단어를 싹 지우고, 완전히 새로운 프레임을 세워야 한다
- 상대가 씌운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승리를 거둔 두 가지 사례가 있다. 첫 번째는 대공황을 극복하고 미국 최초로 4선 대통령에 오른 프랭클린 루스벨트 Franklin Roosevelt의 사례다. 루스벨트는 1936년 재선(再選) 도전 선거에서 큰 곤경에 빠졌다. 거의 모든 언론이 반(反)루스벨트를 선언했고, 자신이 속한 민주당 내부에서도 그를 공격하고 나섰다.
- 그가 펼친 여러 복지 정책이 사회주의 정책과 비슷하다는 것이 루스벨트에 대한 공격의 요지였다. 심지어 연방 대법원조차도 "루스벨트의 뉴딜(New Deal) 정책(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적 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국민의 소득을 높이는 루스벨트의 정책)이 사회주의적 정책이어서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공화당에서 는 아예 ‘루스벨트는 사회주의자'라는 프레임을 들고나왔다. 이때 루스벨트는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며 뉴딜 정책도 사 회주의 정책이 아니라는 해명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사회주의라는 프레임에 걸려든다. 그는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모는 프레임에 일절 반응하지 않으면서 '수많은 독점기업이 경제적 특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독점과 수구 세 력들이 변화와 개혁을 막는다'는 프레임을 앞세웠다. 이 강력한 새로운 프레임이 선거 판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자 사회주의 프레임으로 공격한 공화당이 되레 '독점기업의 폐해가 크지 않다'며 해명하고 나섰다. 하지만 해명할수록 국민들에게 독 점기업이라는 말은 더 강하게 각인됐다. 이 선거에서 루스벨트는 압승을 거뒀다. 상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선거 판을 옮겨 온 전략이 멋지게 적중한 것이다.
- 프레임을 바꿔 선거를 승리로 이끈 또 다른 사례는 1992년 미 국 대선 때 나타났다. 그 당시 공화당 출신의 현역 대통령인 조지 부시 George H. W. Bush는 전쟁과 범죄에 대한 공포를 퍼뜨려 선거에서 표를 모으려 했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인 빌 클린턴 Bill Clinton은 이런 공포 조장 시도에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클린턴은 미국 대선 역사상 길이 남을 구호로 프레임을 단숨에 바꿔 버렸다. It's the economy, stupid(문제는 경제야, 바보야!)!"가 바로 그것이다.실제로 당시 미국 경제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부분 의 유권자가 경제난에 신물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클린턴이 “문 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경제를 물고 늘어지 면서 선거 프레임은 삽시간에 뒤집혔다. “바보야!” 한마디는 부시가 그토록 프레임으로 만들기를 원한 전쟁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경제난에 대한 공포를 사람들에게 심어 줬다. 그리고 클린턴은 그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선거이건 마 케팅이건 레이코프가 프레임 이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 의 핵심은 이것이다.
'상대가 가두려고 하는 프레임에서 싸우지 말라. 이기고 싶다면 자신만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라!’
- 적절한 보복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 '보복'이라는 단어의 끔찍함만 잠시 잊을 수 있다면, 경제학적
으로 보복 전략은 사회를 정의롭고 협동적으로 만드는 데 매우 유용하다. 왜냐하면 '내가 배신하면 반드시 보복을 당하는구나.' 하는 두려움이 있어야, 사람은 배신을 멈추고 협동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는 인류 문명의 역사를 살펴봐도 분명히 드러난다. 예를 들 어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스에 협력한 부역자들을 색출 해 엄중히 죄를 물었다. 지은 죄에 대해 독일 사회가 분명한 보복 을 가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독일은 나치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고,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도 얻었다. 더 이상 독일에 서 나치스 어쩌고 말하면서 다니는 사람들은 사회에 발을 붙일 구석이 없게 되었다. 반면에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같은 전범 국가인 일본은 제대로 된 반성은커녕 제국주의 부역자들을 오히려 전쟁 영웅으 로 취급했다. 죄를 단죄하지 않았기에 일본은 아직도 욱일기의 망 령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여전히 전쟁을 꿈꾸는 제국주의자의 후 손이 사회 요직에 앉아 있다. 일본이 독일과 달리 아시아권 여러 국가로부터 지금도 정서적인 견제를 받는 이유는 이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딜레마를 겪었다. 한국은 역사에 죄를 지은 사람들을 단죄하지 못했다. 친일파 청산 문제만 해도 그렇다. 약 70년 동안 이 문제는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친일파를 단죄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자'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살기 위해 친일 좀 한 걸 갖고 뭘 단죄씩이나 해?”라거나, "아니 언제 적 이야기를 또 들먹이고 있어?”라거나, “미래를 위해 화합을 해야지, 왜 자꾸 과거에 매달리는 거야?”라는 식의 물음표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 결과 친일파에 대한 보복적 단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런 보복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우리 사회에는 정의 를 존중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친일파가 해방 이후 버젓이 사회 고위층으로 자리 잡아 기득권이 된 것이다. 심지어 조상이 친일로 모은 재산을 더 많이 물려받겠다며 그 자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 '상대가 죄를 지었어도 미래를 위해 서로 협력하고 용서하자'는 말은, 일견 사랑이 넘쳐 보일지 모르지만 행동경제학적으로는옳은 전략이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단죄해야 한다. 그래야 그 죄의 반복을 멈출 수 있다. 루쉰이 “페어플레이는 이르다”고 단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뒤집어진 마시멜로 테스트의 결론
마시멜로 테스트는 결국 잘 인내하면 성공한다' 혹은 '인내력 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면 성공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하지지 만 이런 결론은 빈곤을 연구하는 경제학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부당하다. 빈곤과 결핍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하버드대 경제학과 센 딜 멀레이너선 교수에 따르면 인내력은 노력이나 훈련보다 경제 적 풍요나 빈곤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훈련을 못 받아서 인내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일수록 인내심이 약하다는 이야기다. 눈앞에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1시간 동안 참으면 10만 원을 준다”고 했을 때, 누가 더 잘 참을까? 당연히 평소 배고픔을 몰랐던 부유층이 더 잘 참는다. 이들은 언제든지 내 돈 내고 음식을 사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며칠 쫄쫄 굶은 빈곤층은 그 인내력을 발휘하기가 훨씬 어렵다. 이성적으로는 1시간 참고 10만 원 받는 게 이익이라는 것을 알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게 마련이다. 또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마시멜로 테스트의 결론처럼 과연 열심히 노력해서 인내심을 기르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이 실험 결과를 뒤집는 새로운 연구가 2018년 6월에 등장했다. 영국의 사회과학 학술지 〈세이지 저널(SAGE journals)》에 실린 뉴욕대와 UC어바인대 심리학과 연구 팀의 공동 연구가 그것이다. 이들은 기존의 마시멜로 테스트가 정확한 결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일단 표본 숫자가 너무 작았고(90여 명) 그 표본 또한 모두 유명 대학교 부설 유치원에 소속된 부유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 팀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표본 숫자를 900명으로 늘렸고, 표본 대상도 인종, 민족, 부모의 교육 수준 등을 고려 해 골고루 배치했다. 연구 팀은 이들에게 마시멜로 테스트를 실시한 뒤 같은 방식 으로 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성공 여부를 조사했다. 그런데 결과가 놀라웠다. 기존의 마시멜로 테스트와 달리 아이들의 성공 여부는 네 살 때 이들이 보여 준 만족지연 능력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 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의 사회적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 을까? 그 답은 바로 부모의 사회적, 경제적 능력이었다.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력이고, 인내고, 만족지연이고 다 필요 없고, 그냥 부모를 잘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 이제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희 들이 못사는 이유는 인내심이 없고 노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라고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새로운 마시멜로 테스 트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아무리 만족지연 능력을 길러도, 아무리 인내심을 높여도, 아무리 노오오오~~력을 해도, 성공은 결국 금수 저의 몫이다. 유력 일간지 사주 가문의 10살짜리 아이가 보여 준 갑질은 그래서 슬프다. 저 아이가 저런 성격으로 성인이 돼도,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현실이 우리를 더 슬프게 만든다.
- 므두셀라 증후군은 특히 경영학 마케팅 분야에서 많이 사용된다. 기업들이 물건을 팔 때 복고풍 물건을 집중적으로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빅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나 〈무한도전>에서 시도했던 프로젝트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 수다)〉가 대표적 사례다. 사람들은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경향 이 있어서, 방송사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면 매우 잘 팔린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심리학자들은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 한다.
첫째는 뇌의 특징 때문이다. 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기억 을 저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뇌는 그 기억을 최대한 오랫동안 간직 하려 한다. 그런데 기억해야 하는 대상이 매우 불쾌하다면? 당연 히 그런 기억들을 오래 남겨 두고 싶을 리가 없다. 그래서 뇌는 나 쁜 기억들을 최대한 신속하게 제거하고 좋은 기억만 남겨 둔다. 그래야 그 기억을 행복하게 오래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1988년은 사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긴 했지만 여전히 군인 출신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었고, 사회적인 혼란도 계속되었다. 경제적으로도 지금보 다 전혀 풍요롭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때를 아름다운 추 억으로 간직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그리는 그 무렵의 우리는 매우 따뜻했고 무척 행복했다. 현실과 추억은 이처럼 괴리를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과거의 기억 중 아름다운 추억만 남겨 두려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캐나다 워털루대 심리학과 교수인 리처 드 아이바흐 Richard Eibach 는 사실 변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 인데,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는 독특한 해석을 내놓는다. 예를 들 어 나이 지긋한 분들은 매일 “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어.” 라고 푸념하는데, 사실 버릇없는 젊은이 타령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 라지지 않는 노인들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그럼 그 말을 하는 노인들은 젊었을 때 예의 바른 청년이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원래 청소년기란 시대를 막론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다. 그분들도 젊었을 때 껌 씹고, 침 뱉고, 욕도 하고 분명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 철도 든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힘든 일을 겪어도 참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 당연히 욕도 덜하게 되고, 욱하는 성질도 많이 사그라든다. 심지어 반사 신경이 무뎌져서 운전도 얌전하게 하게 된다. 이렇게 순화된 성격의 노인이 청년들을 보면 심하게 버릇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래서 “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어!" 라는 오래된 레퍼토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세상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나쁘게 변했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예전이훨씬 좋았어!'라는 고정관념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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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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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워크

인문 2020. 3. 8. 18:40

- “두뇌를 렌즈로 만들어 주의를 모으고, 무엇이든 머릿속에 떠오는 생각에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라.” 이는 도미니크회 수도사이자 도덕철학자로서 20세기 초에 『공부 하는 삶The Intellectual Lij』이라는 얇지만 영향력 있는 책을 쓴 앙토냉 세르티양주Antonin-Dalmace Sertillanges의 조언이다. 세르티양주는 이 책을 사상의 세계에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신의 개발과 심화를 위한 지침서로 썼다.
- 인지적으로 어려운 일을 습득하려면 구체적인 형태의 수련이 필요하다. 타고난 재능에 해당하는 예외는 거의 없다.(세르티양주는 이 점에서도 시대를 앞선 듯하다. 그는 『공부하는 삶』에서 "천재적인 사람은 완전한 능력을 보여 주기로 작정한 부분에 전력을 기울임으로써만 뛰어났다.” 라고 주장했다. 에릭슨도 이보다 요점을 잘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사실은 계획적 수련에 실제로 무엇이 필요한지 물음을 제기한 다. 계획적 수련의 핵심 요소는 대개 다음과 같다. (1) 향상시키려는 능력이나 습득하려는 사고에 주의를 집중한다. (2) 피드백을 통해 접근법 을 바로잡으면서 가장 생산적인 부분에 초점을 유지한다. 우리의 논의 에서는 첫 번째 요소가 특히 중요하다. 계획적 수련은 산만함과 공존할 수 없으며, 방해받지 않는 집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 조사 과정에서 높은 학점을 받는 50명가량의 명문대 학부생을 상대로 인터뷰를 했다. 거기서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우등생들이 학점 기준으로 바로 아래 그룹에 속하는 학생들보다 공부 시간이 적다는 것이었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원인 중 하나가 앞서 제시한 공식이었다. 우등생들은 생산성에서 집중 강도가 차지하는 비중을 알았으며, 집중력을 극대화 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성과의 질을 낮추지 않고도 시험을 준비하거나 과제를 하는 데 드는 시간을 크게 줄였다. 애덤 그랜트의 예는 이 공식이 학점뿐만 아니라 다른 인지적 과제 에도 적용됨을 말해 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네소타 대학의 경영 학 교수인 소피 리로이Sophie Leroy가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리로이 는 2009년에 발표한 「왜 내 일을 하기가 너무나 어려울까Why Is It So Hard to Do My Work?」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논문에서 주의 잔류물attention residue 이 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녀는 머리말에서 다른 연구자들이 멀티태스 킹(복수의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왔 지만 현대의 지식 노동 환경에서는 높은 자리에 오른 다음부터 복수의 프로젝트를 연속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녀는 “연이어 회의를 갖고, 한 프로젝트를 마친 후 바로 다음 프로젝 트로 넘어가는 것은 조직 생활의 일상이다.” 라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이 지니는 문제점은 A작업에서 B작업으로 넘어갈 때 주 의력이 바로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즉, 주의의 잔류물이 A작업에 계속 남는다. A작업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집중 강도가 약할 때 특히 그렇다. 또한 B작업으로 넘어가기 전에 A작업을 마친다고 해도 한동안 주의가 계속 분산된다. 리로이는 강제로 과제를 전환하는 실험을 통해 주의 잔류물이 성 과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가령 한 실험에서는 피실험자들에게 낱말 풀이를 시켰다. 그러다가 중간에 이력서를 읽고 가상의 채용 결정을 내리는 과제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다른 실험에서는 피실험자들이 낱 말 풀이를 끝낸 후 다음 과제를 맡겼다. 이때 두 과제 사이에 간단한 어 휘 문제를 내서 첫 번째 과제에서 남은 잔류물의 양을 파악했다. 이런 실험들을 통해 명확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과제 전환 과정에서 주의 잔류 현상을 겪은 피실험자들은 다음 과제에서 부실한 성과를 냈다.” 잔류물이 많을수록 성과가 나빴다.
- 잭 도시는 우리의 논의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집단, 딥 워크를 하지 않고도 성공한 사람들의 집단을 대표하 기 때문이다. '잭 도시의 경우는 어떨까?'라는 흥미로운 질문은 바로 '딥 워크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데도 성공하는 사람들 은 왜 생기는가?'라는 보다 일반적인 질문의 구체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지금부터 딥 워크라는 주제를 더 깊이 파고들 때 계속 신경이 쓰이 지 않도록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려 한다. 우선 잭 도시는 대기업(사실 두 대기업)의 고위 경영자라는 점을 감 안해야 한다. 이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딥 워크를 하지 않고도 성공 하는 범주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들은 널리 알려진 대로 어쩔 수 없이 산만한 생활을 한다. 비메오Vimeo의 CEO인 케리 트레이너Kerry Trainor는 이메일을 쓰지 않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토요일...... 낮 시간에는...... 그러니까 확인은 하는데 꼭 답장을 보내지는 않아요.” 물론 이런 경영자들은 오늘날의 미국 경제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나은 보상을 받고 더 높은 중요성을 지닌다. 최고 직위에 오른 경영자 들 사이에서는 잭 도시처럼 딥 워크를 하지 않고도 성공하는 경우가 흔 하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이런 현실을 수긍한다고 해서 딥 워 크의 일반적인 가치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럴까? 최고위 경영자 의 업무에 필요한 산만성은 그 직위에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뛰어난 최고 임원은 근본적으로 자동화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기계와 같다. 그래서 퀴즈쇼에서 사람을 이긴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과 크게 다르 지 않다. 그들은 힘겹게 경험을 쌓았으며, 시장에 대한 직관을 연마하 고 증명했다. 그들에게는 종일 이메일, 회의, 현장 방문 등을 통해 처리 하고 실행해야 하는 정보가 주어진다. 네 시간 동안 한 문제를 깊이 민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그들이 지닌 가치를 낭비하는 결과를 부른다. 그보다 똑똑한 참모를 세 명 채용하여 깊이 고민한 다음 해결책을 제시 하도록 하는 편이 낫다. 이 특수성은 중요하다. 대기업의 고위 임원이라면 앞으로 제시하는 조언들이 필요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특수성은 임원에게 해당되는 접근법을 다른 직위에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잭 도시가 언제든 업무를 방해하도록 권장하고 케리 트레이 너가 이메일을 항시 확인한다고 해서 그들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이 성 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행동은 경영자라는 특정한 직위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 요컨대 현재 기업계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추세들은 딥 워크를 수행하는 능력을 저하함. 이 추세들이 제공하는 혜택(우연적 협업의 증가, 요청에 대한 빠른 대응, 노출 기회 증대)은 딥 워크가 제공하는 혜택(어려운 일을 신속하게 익히고 최고 수준에서 성과를 내는 능력)보다 작다. 이 장의 목 표는 바로 이 역설을 설명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딥 워크의 희소성 은 습관에 내재된 약점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산만하게 일하 는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보다 자의적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이면에는 종종 지식 노동을 정의하는 모호함 및 혼란과 결합한 잘못된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나의 목표는 현재 산만하게 일 하는 것이 실질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불안정한 토대 위에서 진행되 고 있으며, 딥 워크를 추구하기로 결심하면 이 토대를 쉽게 무너트릴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 최소 저항의 원칙: 기업 환경에서 여러 행동들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을 분명히 드러내는 정보가 없을 때 현재 가장 쉬운 행동을 취하는 경향. 최소 저항의 원칙에 따르면 상시 접속 문화가 지속되는 이유는 쉽기 때문이다. 이 말이 옳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필요에 대한 응답성과 관련된다. 필요할 때 질문에 대한 답이나 특정한 정보 를 즉시 얻을 수 있다면 적어도 그 순간에는 일이 수월해진다. 이처럼 빠른 응답을 얻지 못하면 사전에 업무를 계획해야 하고, 더욱 조직적이 어야 하며, 필요한 대상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일을 제쳐 두고 다른 곳 에 주의를 돌릴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은 일상적인 업무를 더 어렵게 한다.(장기적으로는 만족도를 높이고 성과를 높인다고 해도 말이다.) 앞 서 소개한 업무용 인스턴트 메신저의 부상은 이런 태도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예로 볼 수 있다. 한 시간 안에 이메일의 답신을 받는 일이 생 활을 수월하게 만들어 준다면 1분 안에 인스턴트 메신저로 답신을 받 는 일은 편익을 몇 배로 키워 준다. 상시 접속 문화가 생활을 수월하게 만들어 주는 두 번째 이유는 쌓여 가는 이메일에 신속하게 답신을 보내면서 생산성에 만족을 느끼 는 가운데(이 문제는 잠시 후 다룰 것이다.) 수신함에서 일과를 보내는 것이 용인되는 환경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메일을 일과의 주변부로 옮기려 면 어떤 일을 얼마나 오래 해야 할지 파악하는 세심한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 이렇게 계획을 세우는 일은 어렵다. 가령 업무를 영리하게 관리하 는 수단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데이비드 앨런David Allen의 업무 완수 Getting Things Done 체계를 살펴보자.” 이 체계는 다음 할 일을 정하는 데 15가지 요소로 구성된 순서도를 동원한다! 그냥 방금 참조로 들어온 이메일에 말을 보태는 편이 훨씬 쉽다.
-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고故 리처드 파인만은 한 인터뷰에서 두드러진 생산성을 발휘하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물리학 연구를 잘하려면 절대적으로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 다. ...... 많이 집중해야 합니다. ...... 행정 업무를 맡으면 그럴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일부러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퍼뜨렸죠.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무책임했습니다. 모두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죠. 가령 입학위원회에 들어와 달라는 요청
을 받으면 “난 무책임해서 안 돼요.”라고 말합니다.
파인만은 직업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 “물리학 연구를 잘하는 일을 하는 능력이 저하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한사코 행정 업무를 맡지 않았다. 아마 그는 이메일에 대한 답도 잘하지 못했을 것이며, 개방형 사무실이나 트위터 활동을 강요했다면 다른 대학으로 옮겼을 것 이다. 중요한 일이 명확하면 중요치 않은 일도 명확해진다. 앞서 교수들을 예로 든 이유는 지식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다소 예 외적인 경우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지식 노동자들은 일을 얼마나 잘하 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사회 평론가인 매튜 크로포드Matthew Crawford는 이런 불확실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관리자들은 당혹스러운 심리적 환경에서 살아가며, 대응해야 하는 모호한 책무에 불안감을 느낀다.”
- 항시 이메일을 보내거나 답하고, 끊임없이 회의를 잡아 서 참석하고, 누군가 질문을 던졌을 때 바로 인스턴트 메신저로 말을 보태며, 개방형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들 려주는 등의 행동은 공개적으로 분주한 모습을 드러낸다. 분주한 모습 을 생산성의 대리 지표로 삼으면 일을 잘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이런 행동들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런 태도가 반드시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분주하게 움 직여야 하는 일자리도 있다. 가령 2013년에 야후의 대표 머리사 메이 어Marissa Mayer는 재택근무를 금지했다. 직원들이 집에서 회사 서버에 원 격으로 접속하는 데 쓰는 가상 개인 네트워크의 서버 기록을 점검한 결과에 따른 결정이었다. 그녀는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들이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회사 서버에 접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화를 냈 다. 이 결정은 어떤 의미에서 (회사 서버에 접속하는 주된 이유로서) 이메일을 확인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은 데 대한 처벌이었다. 말 하자면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생산성이 낮다고 간주 한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이 조치는 시대착오적이다. 지식 노동은 조립 라인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보에서 가치를 추출하는 일은 종 종 분주하게 해서는 안 되며, 분주한 활동으로 뒷받침되는 것도 아니 다. 가령 앞 장에서 소개한 대로 저술에 집중하려고 자주 세상으로부 터 고립되는 방식으로 와튼의 최연소 정교수가 된 애덤 그랜트를 떠올 려 보라. 그가 쓰는 방식은 분주해 보이려고 애쓰는 방식과 상반된다.
- 딥 워크는 오늘날의 사업 환경에서 우선시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이 역설을 설명하는 여러 이유들을 정리 했다. 가령 딥 워크는 어려운 반면 피상적 작업은 쉽고, 직무에 따른 명 확한 목표가 없는 상황에서는 피상적 작업을 통해 분주하게 보이는 일 이 자리 보존에 도움이 되며, 우리의 문화가 가치 있는 것을 창조하는 능력에 미치는 영향과 무관하게 '인터넷과 관련된 모든 것을 좋게 보 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 모든 추세가 형성된 이유는 몰입하는 데서 나오는 가치나 몰입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대가를 직접 측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몰입의 가치를 믿는다면 이런 현실은 가치 생산을 크게 늘릴 잠재 력을 잃게 하므로 대개 기업에게 나쁘다. 그러나 개인으로서 당신에게 는 좋은 소식이 기다린다. 동료들과 고용주들의 근시안은 개인적으로 큰 우위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앞서 제시한 추세들이 계속 된다면 몰입은 갈수록 드물어져서 갈수록 귀중해질 것이다.
- 두뇌는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을 토대로 세계관을 형성한다. 그래서 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집중하면 삶 이 어둡고 불행해지지만 저녁에 즐기는 마티니에 집중하면 삶이 더욱 즐거워진다. 두 상황에서 주어진 여건이 같다고 해도 말이다. 갤러거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실행하고, 사랑하는 지는 집중하는 대상의 총합이다.” 라고 지적한다.
- 신경과학적 측면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유로 노동(특히 지식 노동)에서 몰입 상태로 보내는 시간을 늘리면 두뇌의 복잡한 작동 방식을 활용하여 직업적 삶에서 찾는 의 미와 만족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 갤러거는 책에서 이렇게 결론짓는다. “(암에 대한) 힘든 실험을 진행한 후 나는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 목표를 신중하게 선택할 것이다. ....... 그다음 거기에 골몰할 것이다. 요컨대 집중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것이 최선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 딥 워크와 몰입의 연관성은 명확하다. 딥 워크는 몰입 상태를 만들기에 적합한 활동이다.(칙센트미하이가 몰입을 이끌어 내는 조건으로 제시한 내용. 즉 어떤 활동에 집중하여 무아지경에 빠지도록 정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인다는 내용은 딥 워크에도 해당된다.) 그리고 앞서 살핀 대로 몰입은 행복감을 낳는다. 이 두 가지 개념을 합치면 심층성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심리학적 논거를 얻는다. 칙센트미하이가 경험 표집법 실험 이후 수십 년 동안 진행한 연구 결과는 몰입 행동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방식으로 의식 을 이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칙센트미하이는 나아가 현대 기업들이 이 사실을 받아들여서 “최대한 몰입 활동과 유사하도록 직무를 재설계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재설계가 어렵고 파괴적이라는 사실(앞 장에서 제시한 나의 주장을 참고할 것)을 감안하여 개인이 몰입의 기회를 찾는 법을 배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이는 실험심리학의 세계를 간략하게 살펴서 얻을 수 있는 궁극적인 교훈이 다. 딥 워크를 통해 몰입의 경험을 중심으로 직업 생활을 구성하는 것 은 깊은 만족감을 얻는 검증된 길이다.
- 드레이퍼스와 켈리는 결론에서 장인 정신이 책임감 있는 방식으 로 신성성에 대한 감각을 다시 여는 열쇠라고 주장한다. 그 예로 든 것 이 지금은 사라진 직업인 수레바퀴 장인의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수레 바퀴를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는 구절에 이어 다음과 같이 쓴 다. “나무토막은 저마다 다르고 그 나름의 개성을 지닌다. 그래서 목공 은 작업하는 나무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나무가 지닌 은근한 미덕은 키우고 보살필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재료의 “은근한 미덕”알기에 장인은 계몽 시대 이후의 세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 바로 개인의 바 깥에 존재하는 의미의 원천과 마주친다. 수레바퀴 장인은 작업하는 나무의 어떤 미덕이 귀중하고 귀중하지 않은지 자의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이 가치는 나무와 기능에 내재되어 있다. 드레이퍼스와 켈리가 설명하는 대로 이런 신성성은 장인의 세계에 흔하다. 그들은 “의미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의미를 파 악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 이 장인의 일이라고 결론짓는다. 이 점은 의미로 이루어진 질서 있는 세계를 부여하여 자율적 개인주의에 따른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해 준다. 게다가 이 의미는 앞선 시대에서 언 급된 원천들보다 안전해 보인다. 수레바퀴 장인이 소나무에 내재된 가치를 이용하여 전제 군주를 정당화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 로이 바우마이스터가 쓴 선도적인 논문들에서 시작하여 지금 까지 상당히 누적된 연구 결과는 의지력에 대해 중요한(그리고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한) 진리를 말해 준다. 의지력은 한정되어 있고, 많이 사용하면 고 갈된다는 진리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의지는 성격에 따라 무한하게 발휘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라 많이 쓰면 지치는 근육과 같다. 호프만과 바우마이스터의 연구 에 참가한 피실험자들이 욕구를 이기는 데 큰 애를 먹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방해 요소들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을 때까지 한정된 의지력을 고갈시킨다. 의도와 무관하게 당신에게도 같은 일이 생길 것이다. 습관을 현명하게 관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 하나의 큰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을 위한 수도승 방식
우선 도널드 커누스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그는 알고리즘의 성능 을 분석하는 엄격한 접근법을 비롯하여 컴퓨터공학 부문에서 일으킨 여러 혁신으로 유명하다. 동시에 동료들 사이에서는 전자통신을 꺼리 기로 악명이 높다. 그의 이메일 주소를 찾아보려고 직장인 스탠퍼드 대학의 웹 사이트를 방문하면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접하게 된다.
나는 이메일 주소를 없앤 1990년 1월 1일 이후로 행복하게 살아왔다. 대략 1975년부터 이메일을 썼지만 15년이면 쓸 만큼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메일은 일을 장악하려는 사람에게는 멋진 도구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나의 역할은 근원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오랜 공부와 방해받지 않는집중을 요구한다.
- 커누스가 제시하는 직업적 목표는 “컴퓨터공학의 특정한 영역을 철저히 익힌 다음 공부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도 취할 수 있는 형 태로 지식을 소화하는 것”이다. 그에게 트위터를 통해 관심을 모으는 일이 주는 비가시적 보상이나 이메일을 더욱 자유롭게 활용하는 데서 나오는 예기치 못한 기회를 홍보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이런 일들은 컴퓨터공학의 특정한 영역을 철저히 익힌 다음 대중적인 내용으로 정리한다는 목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 나의 경험에 따르면 수도승 방식은 여러 지식 노동자들을 방어적으로 만든다. 이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구현하는 가치 를 드러내는 명확성은 더욱 복잡한 방식으로 정보 경제에 기여하는 사 람들의 신경을 긁는다. 물론 '더욱 복잡하다고 해서 기여하는 정도가 '덜한 것은 아니다. 가령 고위 관리자는 개별적인 일, 가령 소설을 완성 한 일을 들어서 올해 이룬 성과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대 기업의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도적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사람 들은 제한적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 집단에 포함되지 않아도 크게 부러 워할 필요가 없다. 다른 한편 이 집단에 포함된다면, 즉 개별적이고, 분 명하며, 개인화된 형태로 세상에 기여한다면 수도승 방식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평범한 경력과 오래 기억될 경력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여러 목표를 병행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이원적 방식
이 책의 서두에서 혁명적인 심리학자이자 사상가인 카를 융의 이 야기를 소개했다. 융은 스승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넘어서려고 시도 하던 1920년대에 볼링겐이라는 소도시 외곽의 숲속에 지은 소박한 돌 집으로 자주 떠나기 시작했다. 거기서 그는 매일 아침 최소한으로 꾸민 방에 들어가 아무런 방해 없이 글을 썼다. 그리고 명상과 산책을 통해 다음 날 쓸 글에 대한 생각을 다듬었다. 내가 보기에 이런 노력은 프로 이트 및 많은 추종자들과 맞서는 지적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수준으 로 딥 워크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강조하고 싶은 중요한 점이 있다. 융은 수도승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서 예로 든 도널드 커누스와 닐 스티븐슨은 직업 생활에서 방해 요소와 피상성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반면 융은 돌집에서 글을 쓸 때만 방해 요소를 제거했다. 취리히에서 나머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전혀 수도승 같지 않았다. 그래 서 종종 늦은 밤까지 환자를 보며 바쁜 임상 활동을 했고, 취리히의 커 피하우스 문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취리히에 있는 명문 대학들 에서 많은 강연을 했다.(아인슈타인은 취리히에 있는 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다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흥미롭게도 그도 융을 알았다. 두 사람은 여러 번 저녁을 함께 먹으며 특수상대성이론의 핵심 개념들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다시 말해서 취리히에서 보내는 융의 생활은 항상 통신 수단에 연 결되어 있는 디지털 시대의 전형적인 지식 노동자와 여러모로 비슷하 다. 그래서 취리히'를 '샌프란시스코'로, '편지'를 '트윗으로 바꾸면 기 술 기업의 유명 CEO와 다를 바 없다.
- 어려운 일을 꾸준히 계속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운율적 방식
딥 워크를 지속하는 가장 쉬운 길은 단순하고 꾸준한 습관으로 바꾸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딥 워크를 하려고 마음먹기 위해 기운을 쓸 필요 없이 리듬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사슬 방법론은 단순한 일정(매일 작업)과 쉽게 상기할 수 있도록 달력에 그리는 크고 빨간 엑스 표시를 결합하기 때문에 운율적 방식의 좋은 사례다. 운율적 방식을 적용하는 다른 흔한 사례는 사슬 방법론에서 쓰는 시각적 보조 수단을 매일 딥 워크를 시작하는 정해진 시간으로 대체하 는 것이다. 진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지표를 활용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언제 시작할지 결정하는 간단한 절차를 없애는 일도 딥 워크의 난관을 낮춰 준다.
- 빠르게 딥 워크로 전환할 수 있는 프로를 위한 기자 방식
아이작슨은 체계적인 방식을 썼다. 즉 자유 시간이 날 때마다 딥 워크 모드로 전환하여 글을 써 내려갔다. 결국 이런 방식이 최고의 잡 지사 기자로 일하는 와중에도 900쪽에 육박하는 책을 쓸 수 있도록만들었다. 나는 이렇게 일과 중에 시간이 날 때마다 딥 워크를 하는 방식을 기자 방식이라고 부른다. 이 명칭은 월터 아이작슨 같은 기자들이 마감 시간을 지켜야 하는 일의 속성상 언제든 집필 모드로 전환하도록 훈련 받는다는 사실에 따른 것이다. 이 방식은 딥 워크 초심자들에게는 적합지 않다. 앞서 밝혔듯이 피 상적 모드에서 심층적 모드로 신속하게 바꾸는 능력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이런 전환은 한정된 의지력을 심각하게 고갈한다. 또한 기자 방식은 능력에 대한 자신감, 자신이 하는 일이 중 요하며,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필요로 한다. 이 확신은 대개 기존에 거둔 직업적 성과를 토대로 삼는다. 가령 아이작슨은 인정받는 저술가라는 입지에 올라서 있기 때문에 초심자보다는 저술 모드로 전환하기 가 쉬웠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훌륭한 전기를 쓸 수 있으며, 그 일이 직 업적으로 진전을 이루는 데 핵심적인 과제임을 알았다. 이런 자신감은 어려운 일을 시도할 동기를 부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 지성을 통해 가치 있는 대상을 창조하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종종 간과되는 사실은 무계획적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전기 작가인 로버트 카로Robert Caro 도 그렇다. 2009년에 그를 소개한 기사에 따르면 “뉴욕에 있는 사무실의 모든 공간은 규칙에 따라 통제되어 있다.14 책을 놓는 위치, 노트를 쌓는 위치, 벽에 거 는 장식, 심지어 사무실에서 입는 옷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긴 경력을 이어 가는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일과에 따라 정해진다. 그는 “체계적으로 사는 법을 나 자신에게 훈련시켰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찰스 다윈도 『종의 기원』을 마무리하는 동안 마찬가지로 엄격한 구조를 일에 적용했다. 나중에 아들인 프랜시스가 회고한 바에 따르 면 다윈은 정확하게 7시에 일어나 짧은 산책을 했다. 그다음 혼자 아침 을 먹은 후 8시부터 9시 30분까지 서재에서 글을 썼다. 9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은 전날 온 편지들을 읽는 데 할애했다. 그리고 정오까지 다시 서재에 있었다. 집필을 마친 다음에는 온실에서 시작하여 집을 한 바퀴 도는 정해진 경로를 따라 걸으며 어려운 개념들을 구상했다. 그의 일과는 만족스러운 생각이 나온 후에야 끝이 났다. 5년 동안 유명한 사상가와 저술가들의 습관에 대한 자료를 모은 저널리스트 메이슨 커리(그의 블로그를 통해 앞의 두 사례를 접했다.)는 이런 체계적인 경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예술가들은 영감에 따라 일하며, 출처를 알 수 없는 창의성이 벼락이나 번개처럼 내리치거나 샘솟는다는 통념이 있다. ......그러나 (나의 작업을 통해) 영감이 찾아오기를기다리는 것은 끔찍하고도 끔찍한 계획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바란다. 사실 창의적인 작업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영감을 무시하라는 것이다.
같은 주제를 다룬 《뉴욕 타임스》 사설에서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더욱 직설적으로 “(뛰어난 창의성을 지닌 사람들은) 예술가처럼 생각하되 회계사처럼 일한다.”라고 밝혔다.
- 제2차 세계대전 후 수십 년 동안 벨 연구소는 최초의 태양 전지 레이저, 통신 위성, 무선통신 시스템, 광섬유 네트워크를 비롯한 여러 성과를 냈다. 동시에 이론가들은 정보이론과 코딩이론을 정립했고, 천문학자들은 빅뱅이론을 경험적으로 증명하여 노벨상을 받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성취로 물리학자들이 트랜지스터를 발명했다. 이처럼 우연적 창의성 이론은 역사적 기록을 통해 잘 검증된 듯 보인다. 트랜지스터가 발명되기 위해서는 고체 물리학자와 양자 이론가 그리고 세계적인 수준의 실험 전문가들을 한 건물에 모아서 우연한 만 남을 통해 다양한 전문성을 배울 여건을 조성하는 벨 연구소의 역량이 필요했다. 트랜지스터는 과학자 한 명이 카를 융처럼 돌집에서 생각에 골몰한다고 해서 발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빌딩 20과 벨 연구소 같은 곳에서 진정으로 혁신을 촉진한 요소가 무엇이었는지 더욱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다시 MIT에서 겪은 나의 경험담으로 돌아가 보자. 2004년 가을 박사과정 학생으로 MIT에 입학했을 때 나는 빌딩 20을 대체하는 스 타타 센터에 처음 들어가는 일원이었다. 스타타 센터는 신축 건물이었기에 신입생들에게 내부를 견학할 기회가 주어졌다. 설계자인 프랭크 게리는 공용 공간을 중심으로 연구실을 배치했고, 층 사이에 개방형 계 단통을 도입했다. 모두 빌딩 20의 특징이었던 우연적 만남을 뒷받침하 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당시 내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게 리가 설계한 것이 아니라 교수들이 고집해서 근래에 추가한 방음용 특수 문틈 차단재였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술 전문가들이 포함된 MIT 교수들은 개방형 업무 공간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외부와 차단된 공간을 원했다.
- 방음 처리된 연구실을 대형 공용 공간과 연결한 거점식 구조는 우 연적 만남과 개별적인 심층적 사고를 모두 뒷받침한다. 한쪽 극단에는 외부에서 얻는 영감으로부터 고립된 대신 방해 받는 일 없이 독자적으 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쪽 극단에는 개방된 공간에서 영감을 얻는 대신 그 영감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깊은 사고를 하는 데 애 를 먹는 협력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 빌딩 20과 벨 연구소도 이런 구조를 활용했다. 두 건물은 현대식 개방형 구조를 제공하지 않았다. 대신 개별 연구실을 공용 복도로 연결 하는 구조로 건축했다. 두 건물에 넘쳤던 창의성은 소수의 긴 연결 공간을 공유하는 구조 때문에 연구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자연스럽게 상호작용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서 대형복도가 대단히 효과적인 축 구실을 한 것이다. 따라서 혁신을 일으키는 우연적 창의성을 배제하지 않고도 몰입 을 방해하는 개방형 사무실 개념을 버릴 수 있다. 핵심은 거점식 구조를 통해 두 요소를 모두 유지하는 것이다. 즉 거점에서 꾸준히 아이디어를 얻되 분지分枝에서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깊은 사고를 할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 엄격한 규칙을 적용해야 하는 고차원적 결정에는 의식이 개입해야 한다. 가령 수학 문제를 풀 때는 의식만 이 정확성을 기하는 데 필요한 수학적 규칙을 따를 수 있다. 반면 대량 의 정보와 모호하며, 심지어 상충하는 복수의 제약을 수반하는 결정에 는 무의식이 적합하다. 그 이유는 무의식을 담당하는 두뇌 부위가 더 넓은 대역폭을 지녀서 의식을 담당하는 두뇌 부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더 많은 잠재적 해결책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의식은 세심하게 만든 프로그램을 돌려서 한정된 문제에 대 해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가정용 컴퓨터와 같은 반면, 무의식은 통 계 알고리즘을 통해 테라바이트 단위의 구조화되지 않은 정보를 훑어 서 어려운 문제에 대해 놀랍도록 유용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구글의 방대한 데이터 센터와 같다. 이런 연구 결과가 말해 주는 사실은 의식에 쉴 시간을 주면 무의식 이 교대하여 대단히 복잡한 문제들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을 차단하다고 해서 생산적인 일을 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의 유형을 다양화한다고 볼 수 있다.
- 여가 시간을 체계적으로 계획하는 일은 휴식이라는 목표에 어긋난다고 우려할 수도 있다. 흔히 휴식을 취하려면 계획이나 의무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저녁 시간을 보내면 (재충전이 되지 않아) 다음 날 직장에서 피곤하지 않 을까? 베넷은 용하게도 이런 반론을 예상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런 우려는 정신에 활력을 부여하는 방식을 잘못 안 데서 기인한다.
열여섯 시간 동안 온전히 기운을 쓰면 일하는 여덟 시간의 가치가 줄어든다고? 그렇지 않다. 확신하건대 오히려 그 가치가 늘어날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핵심적인 사실은 정신이 어려운 일을 지속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정신은 팔이나 다리처 럼 지치지 않는다. 정신이 원하는 것은 잠자는 경우를 제외하고 는 휴식이 아니라 변화다.
나의 경우에 비춰 보면 이 분석은 정확하다. 깨어 있는 시간 내내 정신에 의미 있는 과제를 부여하면 반쯤 깨어 있는 상태로 무작정 인터 넷 서핑을 하는 것보다 더욱 충만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 날을 더욱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다. 요컨대 오락용 사이트가 지닌 중독성 강한 인력을 제거하려면 두뇌에 양질의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면 방해 요소에 저항하고 집중하는 능력을 보존하는 동시에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아널드 베넷의 야심 찬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 월터 아이작슨이 《하버드 가제트 Haroard Gazette) 2013년 9월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게이츠는 이 두 달 동안 코드를 짜다가 키보드 위에 쓰러져 잠들 만큼 집중적으로 일했다. 그는 이렇게 한두 시간을 잔 후 일어나 그 자리에서 다시 작업을 이어 갔다. 폴 앨런은 지금도 게이츠의 집중력에 감탄하며 “신동 수준의 능력”이라고 표현한다. 아이작슨은 나중에 펴낸 『이노베이터에서 게이츠가 지닌 특별한 몰입 능력을 이렇 게 설명했다. “게이츠와 앨런이 다른 한 가지 점은 집중력이었다. 앨런 은 여러 아이디어와 관심사를 오갔지만 게이츠는 연쇄적으로 한 가지 문제에 집착했다.
- 딥 워크에 헌 신하는 것은 도덕적 입장이 아니며 철학적 선언도 아니다. 다만 집중력이 가치 있는 일들을 해내는 능력이라는 실용적인 깨달음에 따른 것일 뿐 이다. 다시 말해서 딥 워크가 중요한 이유는 산만함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빌 게이츠가 한 학기가 채 안 되는 기간에 10억 달러짜리 산업을 촉발할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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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해피어

인문 2020. 3. 8. 18:38

샤하르 교수의 행복 6계명
1. 인간적인 감정을 허락하라
두려움, 슬픔, 불안 등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자연스럽 게 받아들이면 극복하기가 쉬워진다.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면 좌절과 불행으로 이어진다.
2.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가 만나는 곳에 있다.
직장과 가정에서 삶에 의미를 주면서 즐거움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하라.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행복촉 진제' 를 만들어 실천에 옮겨보라.
3. 행복은 사회적 지위나 통장잔고가 아닌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라.
행복은 우리가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실패를 재앙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배움의 기회로 생각할 수도 있다.
4. 단순하게 살라.
우리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데 일은 점점 더 많이 하 려고 욕심을 부리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고 있 다. 그러나 너무 많은 일을 하다 보면 행복을 놓칠 수 있다.
5.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몸으로 하는 것, 또는 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도 영향을 준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충분히 자고 건강 한 식습관을 유지하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
6.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감사를 표현하라.
우리는 종종 우리의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사람 에서 음식까지, 자연에서 미소까지, 우리 인생의 좋은 것들을 음미하고 감사하는 법을 배우자.

-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헤르만 헤세)
- 우리는 언제라도 좀더 행복해질 수 있다. 어느 누구도 항상 완 벽한 기쁨을 맛볼 수 없다. 완벽한 기쁨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따라서 자신이 행복한지 아닌지 묻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좀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 라고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은 행 복 추구가 어떤 지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라 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5년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며5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완벽한 행복이라는 가공의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좌절하거나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따져보면서 에너지를 낭비 하곤 한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인 정하고 궁극적인 가치를 달성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좀더 행복해지는 것은 우리가 평생 추구해야 하는 일이다.
- 짐 로허와 토니 슈워츠는 『몸과 영혼의 에너지 발전소라는 책 에서 변화를 위한 색다른 방법을 제안한다. 변화를 위한 수단으로 자제력을 기르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규칙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규칙을 정하는 것은 특정한 행동을 특정한 시간에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가치에 따라 수행하는 것” 이라고 말한다. 규칙은 시작하기는 어려워도 유지하기는 비교적 쉽다. 최고의 운동선수는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다. 그들은 하루 중 언제 경기장에서 훈련하고, 언제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언제 편히 쉬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적어도 하루에 두 번 이를 닦는 것이 규칙처럼 되었으므로 특별한 자제력이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변화를 시도할 때도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 어떤 활동이 당신을 좀더 행복하게 해주는가? 어떤 습관을 생활화하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 운동하기, 매일 아 침 15분씩 명상하기, 한 달에 두 번 영화 관람하기, 매주 화요일마다 배우자와 데이트하기, 하루건너 한 시간씩 독서하기 등을 규칙으로 정할 수 있다. 한 번에 하나를 규칙으로 정해서 실천하다가 익숙해지면 새로운 규칙을 추가한다. 토니 슈워츠의 말을 기억하라.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욕심을 부리다가 실패하는 것보다. 낫다. 성공이 성공을 낳는다.” 일단 어떤 규칙을 정하면 그것을 일정표에 넣는 것으로 시작한다. 규칙은 처음에 시작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30일만 지나면 이를 닦는 것처럼 쉬워지고 자연스러워진다. 습관은 보통 쉽게 사라지지 않는데, 이것은 올바른 습관에 관한 한 좋은 일이 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지금의 우리는 반복적인 행동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사람들이 때로 규칙에 저항하는 이유는 규칙이 자발성과 창조성을 앗아갈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배우자와 정기적으로 데이트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대인관계나 예술적인 행위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행동, 이를테면 체육 관에서 운동하기나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기, 독서하기 등은 규 칙으로 정하지 않으면 게으름을 피우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기 쉽다. 체계적이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면 24시간 대기하고 있을 필요 가 없으므로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이 남는다. 더 나아가 규칙에 자발성을 결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예를 들어 데 이트할 때 어디에 갈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처럼 규칙 은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창의적이고 자발적으로 행동 하게 한다. 예술가든, 사업가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든 창의적인 사람들은 나름대로 규칙을 갖고 있다. 이 훈련법을 참고로 이 책 전체를 통해 행복에 도움을 주는 여러 가지 규칙을 만들고 실천할 수 있다.
- 그래서 우리는 일단 목적지에 도착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 하게 될 거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안도감을 행복으로 착각한다. 여행하는 동안 짊어져야 했던 짐이 무거울수록 안도감은 커진다. 그러한 안도감을 행복이라고 착각하면서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가 더욱 커진다. 물론 안도감도 가치 있고 즐겁고 현실적인 경험이지만, 행복과는 다르다. 안도감은 스트레스나 불안이 없는 상태인 부정적인 행복이라 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안도감은 불쾌한 경험을 전제로 하므 로 지속적인 행복이 될 수 없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사라지면 고통에서 벗어난 것이 다행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 행복은 고통 뒤에 오는, 부정적인 경험에서 벗어난 상태에 불과하다. 안도감 역시 일시적이다. 두통이 사라지면 고통의 부재에서 안도 감을 느끼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육체의 편안함에 적응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됨, 안도감과 행복을 혼동하는 성취주의자는 계속해서 목표를 좇는다.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
- “부모나 학교는 아이들이 적절한 활동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도 록 가르치지 못한다. 때로는 어른들 자신이 허깨비에 홀려 엉터리 음모를 꾸민다. 정작 중요한 과제는 지루하고 어려워 보이도 록 만들고, 하찮은 과제는 흥미롭고 쉬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다. 학교에서는 과학이나 수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황홀하게 아름다운 학문인지 가르치지 못한다. 그들은 모험보다 딱딱한 이론을 가르친다.”- 나는 아이들에게 쓰기, 읽기, 셈하기(3R) 외에 네 번째로 즐기 는 법을 가르치자고 제안한다. 교사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움 과 성장과 삶 자체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대 부분의 사람들은 교실에서 성장기를 보내면서 기대와 습관을 만 들어간다. 만약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행복을 추구하고 궁극적인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에 초점을 맞추도록 격려한다면 그들은 평 생 그런 식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반면 쫓기듯이 한 학년에서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는 것이 전부라면 졸업한 후에도 오랫동안 그 런 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많은 교육자는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쁨을 얻어서 의미 있고 도전적인 목표와 활동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보다 시험 성적을 잘 받게 하는 데 관심을 둔다. 칙
- 현대 자기계발 운동의 아버지 새뮤얼 스마일스는 1858년에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청소년들이 인생의 행복과 복리가 다른 사람들의 도 움이나 보호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노력 여하 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자녀가 해야 할 몫을 부모가 도와주는 것이 결국은 불행을 가 져올 수 있다. 스마일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욕망이 완전히 충족되고 아무 런 희망이나 욕망, 투쟁 없이 사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큰 저주는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도전을 받을 때 자신의 성취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즐기게 된다.
- 알면 자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몰입의 상태에서는 현재와 미래의 이익이 하나가 되고, 분명한 미래의 목표가 지금 하는 경 험에 도움이 된다. 또한 몰입의 경험은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 도 없다”는 속담을 “지금 얻는 것이 있으면 미래에도 얻는 것이 있다” 로 바꿔서 더 높은 수준의 행복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힘든 노력을 통해 서만 최적의 수행 수준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의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속담은 미신에 불과하다. 고통은 최고의 수행 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아니다. 과로와 태만 사이에는 우리가 즐 기면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특별한 지대가 있다. 그 지대에 들어 가려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적절한 수준이어야 한다. 즉, 너무 어렵지도 너무 쉽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의 도전이어야 한다.
- 만일 학교에서 배움에 대한 사랑을 키워주기보다 눈에 보이는 결과인 성취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성취주의자의 사고방식을 부 추기고 아이들의 정서 발달을 가로막게 될 것이다. 성취주의자는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확인할 수 있는 성취가 가장 중요하며, 감정은 단지 성공을 방해하는 요소이므로 무시하 고 억제해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정서 능력은 궁극적인 가치 의 추구뿐 아니라 물질적인 성공의 달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대니얼 골먼은 그의 저서 '감성지능 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심리학자들은 아이큐가 성공을 결정하는 부분은 2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한다. 80퍼센트는 내가 감성지능이 라고 부르는 다른 요인들에서 온다.” 성취주의자의 사고방식은 감성지능과는 정반대이며,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을 방해한다.
- 놀랍게도 어떤 사람들은 그토록 원하던 물질적인 부를 얻고 나서 오히려 우울함을 느낀다. 성취주의자는 자신의 행동이 미래의 이익을 가져올 거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러한 희망이 부정적인 감정을 참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목적지에 도착해서 물질적인 부가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 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진다. 그 무엇도 미 래에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좌절과 실망에 빠진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절망감에 휘말려 알코올과 마약에 의지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성공이 오히려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 우리 사회에는 소득이 많아지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만 이는 대부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소득 수준이 평균 이상인 사람들은 비교적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만 매순간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그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좋아하는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도 못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나 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할 때 의례적인 업적에 초점을 맞추므로 소득이 행복에 기여하는 효과가 두드러져 보일 뿐, 소득이 삶의 만족에 주는 효과는 잠시뿐이다.
- 그들이 수용소에서 행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삶의 의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미와 함께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현재와 미래의 이익 이 함께해야 한다. 나의 행복 이론은 빅터 프랭클뿐 아니라 프로이트의 책에도 바탕을 둔 것이다. 프로이트의 쾌락 원칙'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본능적인 욕구에 따라 움직인다는 쾌감 원칙 을 중심 전제로 한다. 반면 프랭클은 쾌감을 추구하는 의지가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프랭클 에 따르면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인간의 가장 우선적인 동기이다.
-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즐거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목 적의식만으로도 부족하다. 그 이유는 첫째, 어떤 목적이 지닌 의 미와 관계없이 현재 정서적인 만족을 즐기지 못하면 오래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밝은 미래에 대한 전망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둘째, 성취주의자들처럼 즉각적인 만족을 보류 할 수 있다고 해도 행복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은 가혹한 삶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강제수용소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육체적인 고통과 정서적인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도 의미 와 목적의식을 발견했다. 그들의 목적은 사랑하는 가족과 다시 만나거나 언젠가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쓰는 것이었다.
- 감정emotion은 움직임motion을 유발한다. 감정은 행동을 추진하는 동기motive를 제공한다. 영어 단어 자체가 감정과 움직임 그리고 동기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기본적인 진실을 말해준다. 라틴어로 movere(motion)는 'to move'를 뜻하고, 접두사 e는 away' 를 뜻한다. motivation의 motive'는 '움직임의 원인' 이라는 뜻을 가진 'motivum' 이 어원이다. 따라서 감정은 우리를 의욕이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 움직이도록 만드는 행동의 동기를 제공한다.
-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람이 하는 모든 노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의 달성이다. 행복을 위해 기술을 발명하고, 학문을 육성하고, 법을 만들고, 사회를 형성한다.”
부, 명예, 존경과 같은 다른 목표들은 모두 행복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욕망하는 것이 물질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모두 행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 성취주의자, 쾌락주의자 그리고 허무주의자는 저마다 다른 오류 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현실과 행복의 진정한 본질, 그리고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 성취주의자는 어떤 가치를 지닌 도착지에 도달하면 행복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쾌락주의자는 미래의 목적과 동떨어진 순간적인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면 행복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허무주의자 역시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그릇된 믿음 때문에 성취주의와 쾌락주의가 아닌 제3의 길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 최고의 수행과 최상의 경험을 연구하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최고의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최고의 순간은 보통 힘들고 가치 있는 뭔가를 달성하기 위해자발적으로 노력하면서 몸과 마음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때 나타난다.”
투쟁이 없는 쾌락주의는 행복을 위한 처방이 아니다.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존 가드너는 “우리는 계곡에 있을 때나 정상에 있을 때나 편히 쉬는 게 아니라 더 높이 올라가려고 한다"
- 우리는 물질이 주는 즐거움은 대체로 질이 낮으며 생각보다 양도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올리버 웬들 홈스)
- 부처는 “하나의 양초로 수천 개의 양초를 밝힐 수 있고, 그래도 그 양초의 수명은 짧아지지 않는다. 행복은 나누어주는 것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고 말했다. 이처럼 대부분 물질은 유한하지만 개인과 국가 간의 충돌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말은 평화를 바 라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 결과를 무시하고 임시방편에 초점을 맞춘다면 평화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없다.
- 아마빌은 우리가 압박을 받으면 다음 날, 그 다음 날까지 창의성이 의축되는 '압박의 숙취' 현상을 보인다고 말한다.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하려고 하면 궁극적인 가치뿐 아니라 현실적인 성공 가능성도 함께 감소한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였던 J. P. 모건은 “나는 9개월 만에 1년치 일을 할 수 있어도 그 일을 12개월 동안 한다”고 말했다. 어떤 활동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불행할 수 있다. 초콜릿, 라자냐, 햄버거, 그 밖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는 것처럼 아무리 즐거운 활동이라 해도 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 양은 질에 영향을 준다. 과유불급이라고 하지 않는가. 와인 감식가는 한 번에 잔을 비우지 않는다. 풍부한 맛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 향기를 맡고 맛을 보고 음미하면서 시간을 갖는 다. 인생의 감식가가 되기 위해서는 삶이 주는 풍요로움을 즐기는 시간 여유가 필요하다.
- 핵심은 자유다.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약점은 행복의 불공평한 분배다. 사회주의의 고질적인 약점은 불행의 공평한 분배다."
사회학 연구뿐 아니라 세계 역사는 처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일반적으로 전체주의 국가의 국민보다는 자유국가의 국민이 더 행복하다.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창의성을 억압하는 것들 Creatity Under the Gun」 이라는 평론에서 테레사 아마빌은 쫓기면서 일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생산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창의성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결국 죽어버린다. 시간에 대한 중압감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은 일을 하도록 만들지는 모르지만 대부분 창의성을 떨어뜨린다.” 성공을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성공에 해가 된다.
- 19세기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단순하게 살라고 권유했다.
"단순함, 단순함, 단순함! 당신이 하는 일을 백 가지나 천 가지가 아니라 두세 가지로 줄이고, 백만이 아니라 여섯을 세라."
소로의 말은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고 중압감은 시시각각 증가 하는 오늘날에 더욱 적절하게 들린다.
- 행복을 얻은 다음에는 우리보다 덜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으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감상적인 생각 저변에는 행복은 제로섬 게임이라는 그릇된 가정이 있다. 한 사람이 행복 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이 불행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리안 느 윌리암슨은 또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낼 때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빛나 게 한다. 우리 스스로 두려움에서 해방될 때 우리의 존재가 자동 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 시간 사용은 행복을 개선하는 가장 큰 결정 요인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 가능성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귀중한 시간을 잘못 사용하기 때문이다.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거나 아무 생각 없이 쾌락을 추구하거나 허무주의에 빠져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 안에 무기력한 삶이나 충만 한 삶의 가능성이 있다. 시간을 적절히 사용하면 우리의 궁극적 인 보물을 지킬 수 있다. 궁극적인 가치 추구는 성공과 성장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 우 리가 달성할 수 있는 행복에는 제한이 없다. 의미와 즐거움을 함 께 주는 일과 교육, 그리고 사랑을 추구한다면 좀더 행복해질 수 있다. 나뭇잎과 함께 시들어버리는 덧없는 기쁨이 아니라 깊고 튼튼한 뿌리를 가진 지속적인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 행복의 깊이가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해로울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든지 궁극적인 가치의 몫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면 주어진 상황을 좀더 개선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 수준이 정해져 있으며 바뀔 수 없다는 믿음은 결국 자기달성 예언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운명을 고칠 수 없다는 믿음은 그릇된 가정에 근거한 것이라 하 더라도 무기력과 의기소침 혹은 허무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낙천주의자에서 비관론자까지 어떤 자연적인 성향을 타고나며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있지만, 시간을 보 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심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이렇게 말했다.
- 많은 환자가 죽음을 똑바로 직시함으로써 병이 들기 전보다. 더 풍부한 존재 방식을 갖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관이 확연히 바뀌었다고 말한다.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고, 자제력이 생기고, 원하지 않는 일을 그만두고,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과 좀 더 솔직하게 대화하고, 미래나 과거가 아닌 현재에 충실하게 살 기로 한다. 삶의 하찮은 일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계절, 낙엽, 지 난봄, 특히 다른 사람들 사랑하기와 같은 존재의 기본적인 요인 들을 좀더 풍부하게 이해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왜 암에 걸리고 나서야 비로소 삶을 평가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 우는 걸까요?”
- 칸트처럼 자기희생을 도덕의 기초라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철 학과 종교는 우리가 이기심에서 행동하면 불가피하게 다른 사람 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고 가정한다. 우리가 자신의 이기적인 성 향과 싸우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이 간과하고 있는 점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 을 돕는 것과 우리 자신을 돕는 것 사이에서 선택할 필요가 없다 는 사실이다. 그 두 가지는 서로 배타적이 아니다.
- 우리의 행동은 이기심에서 나오며,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행동한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불편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한 불편함을 느끼는 밑바탕에는 알게 모르게 의무감이 곧 도덕적' 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어떤 행동이 도덕적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그 행동이 의무감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고 말했다. 우리가 이기심에서 행동하면 도덕적인 행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칸트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단지 누군가를 돕고 싶어서 돕는다면, 그것이 그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에 그가 하는 일은 도덕적 가치가 없다.
- 내가 말하는 희생은 자신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행동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남편의 해외 취업을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영원히 포기한다면 그것은 희생이다. 만약 그녀가 하는 일이 자신의 핵심 자아에서 중요한 소명의 일 부라면, 그 일을 포기하는 것은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여성이 남편이 하는 중요한 일을 도우려고 일주일 휴가를 낸 다면 그것은 희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의 핵심 자아를 포기하지 않았으므로 행복을 포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 가 그녀의 행복은 남편의 행복과 서로 얽혀 있으므로 상대방이 행복할 때 자신도 행복하다. 따라서 남편을 돕는 것은 그녀 자신을 돕는 것이다.
-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와 즐거움을 앗아간 배우자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그의 배우자 역시 상대방이 의무감 때문에 자신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 비참해질 것이고 역시 그 관계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찾지 못할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관계라고 해도 희생을 사 랑과 동일하게 생각해 희생할수록 사랑이 깊어진다는 믿음을 가 진다면 행복이 무너질 수 있다.
- 다음 질문에 답을 쓰고 공통분모를 찾아본다.
질문1 무엇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가? 다시 말하면 나에게 목 적의식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 2: 어떤 일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가? 다시 말하면 나는 무엇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질문 3: 나의 장점은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나는 어떤 일을 잘하는가?
이 질문을 거치면 우리의 평생 소명이 무엇인가 하는 거시적 수준에서부터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미시적 수준까 지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 “진실이 문을 두드리면 우리는 ‘가버려, 나는 진실을 찾고 있어’라고 소리쳐서 쫓아낸다.” 로버트 M. 퍼시그의 『선을 찾는 늑대』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때때로 바로 눈앞에 있는 즐거움과 의미의 풍부한 원천을 알아보지 못한다. 행복의 가능성은 우리 주위에 널려 있지만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다.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려면 먼저 가능성의 존재를 인식해야 한다.
- 물론 진로를 선택할 때 “나는 무엇에 소질이 있는가?” 라는 질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어떤 일이 나에게 의미와 즐거움을 주는가?” 를 물어야 한다. 가장 먼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 것은 돈과 지위처럼 측정할 수 있는 가치를 우선 하는 것이다. 반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라고 묻는 것은 어떤 일이 자신에게 의미와 즐거움을 주는지 묻는 것으로 궁극적인 가치의 추구를 우선하는 것이다.
- 브제스 니에프스키는 이렇게 주장한다.
“삶과 일에서 얻는 만족은 자신이 하는 일을 소득원으로 보는 지 특권으로 보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의식과 의지가 필요하다. 왜 냐하면 우리는 그동안 하고 싶은 일보다 잘하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가장 아름다운 운명,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행운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궁극적인 가치에서 우리에게 그러한 '행운' 을 가져 다줄지 아는 것은 쉽지 않다. 이때 사람과 일의 관계를 조사한 연구가 도움이 될 것이다.
- 성취주의자는 어떤 미래의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영원히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그에게 여행은 중요하지 않다. 반면 쾌락주의자는 오로지 여행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목적지와 여행 두 가지를 다 포기한 허무주의자는 삶에 환멸을 느낀다. 성취주의자는 미래의 노예로 살고, 쾌락주의자는 순간의 노예로 살고, 허무주의자는 과거의 노예로 산다. 지속적인 행복을 얻으려면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행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은 산의 정상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고 산 주위를 목적 없이 배회하는 것도 아니다. 행복이란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과정이다.
- 지나간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랠프 월도 에머슨)
- 우리 대부분은 비교적 만족스러운 직장이나 직업을 찾을 수 있고 때로는 찾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저 잘할 수도 있다. 소명을 찾는 문제에 대해 나의 현명한 제자인 에보니 카터는 이렇게 조언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어떤 일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소명을 발견하려면 우리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우리를 소명으로 안내한다.
-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행복은 쌍둥이로 태어난다. (로드 바이런)
- 세상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묻지 말고 무엇이 당신에게 활력을 주는지 물어보라. 그리고 나가서 그것을 하라.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활기찬 사람이다. (해럴드 휘트먼)
- 만약 퇴근 후에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활동이나 취미를 즐긴다. 면 기분전환이 되고 감정적으로 재충전을 할 수 있다. 교육학자인 마리아 몬테소리는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행복촉진제는 우리의 힘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활력을 더해준다.
- 미래의 어느 때에 불행해질 것이라고 해서 지금 불행해하는 것은 진실로 어리석은 일이다. (세네카)
-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나다니엘 브랜든은 이런 말을 했다.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사람은 스스로 가치를 누릴 자격이 있 다고 생각해야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려면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여겨야 한다.”
- 친구에게 또는 자연으로부터 선물을 받으려면 먼저 우리가 그 선물을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병에 뚜껑이 닫혀 있으면 물을 넣을 수 없다. 뚜껑이 닫힌 병에 물을 부으면 옆으로 다 흘러 버리고 병은 채워지지 않는다. 행복을 향해 마음을 열자.
- 만약 우리가 여든살로 태어나서 천천히 열여덟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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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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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말

인문 2020. 3. 8. 18:37

- 니체의 철학 또는 독특한 사상은 칸트나 헤겔처럼 장대한 체계를 목 표로 정리된 것이 아닌, 정열적인 문장으로 엮은 단편과 짧은 산문체 가 많다. 편린과도 같은 짧은 글일지라도 니체의 발상에는 분명 마음 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가령 '인간의 육체는 커다란 이성이며, 정신이라 불리는 것은 작은 이성'이라는 대담한 발상은 분명 예술적인 매력으로 가득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칸트처럼 올곧은 철학자라면 자신의 설에 이유를 설명하고 철학의 골자로 삼았겠지만, 니체는 그 같은 발상을 아무렇지 않게 던져 버렸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니체는 철학자라기보다 예술가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일을 끝내고 차분하게 반성한다. 하루를 마치고 그 하루 를 돌아보며 반성하다 보면, 자기 자신과 타인의 잘못을 깨닫 고 결국에는 우울해지고 만다. 자신의 한심함에 분노를 느끼고 타인에 대한 원망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은 대개 불쾌하고 어 두운 결과로 치닫는다. 이렇게 되는 까닭은 당신이 지쳐 있기 때문이다. 피로에 젖어 지쳐 있을 때 냉정히 반성하기란 결코 불가능하기에 그 반성은 필연적으로 우울이라는 덫에 걸려들 수밖에 없다. 지쳤을 때에는 반성하는 것도, 되돌아보는 것도, 일기를 쓰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활기차게 활동하거나 무 엇인가에 흠뻑 빠져 힘을 쏟고 있을 때, 즐기고 있을 때에는 어 느 누구도 반성하거나 되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지고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 느껴질 때에는 자신 이 지쳐 있다는 신호라 여기고 그저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 그 것이 스스로를 위한 최선의 배려다.
-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4분의 3은 공포심에서 태어난다. 공포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미 체험한 적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여전히 힘들어 한다. 하물며 그것은 아직 체험하지 않은 것마저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 공포심 의 정체라는 것은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이기에.
- 가능한 한 많은 친구를 원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친 구라 생각하고, 늘 어떤 친구와 함께 있지 않으면 마음이 차분 해지지 않는 것은 당신이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는 증거다. 진 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서 누군가를 바란다, 자신을 상대해 줄 친구를 절실히 바란다, 막연한 안도감을 찾아 누군가에게 의지 한다. 왜 그런 것일까? 고독하기 때문이다. 왜 고독한 것일까??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친구를 아 무리 많이, 그리고 폭넓게 가졌다고 해도 고독의 상처는 치유 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할 수도 없다. 그것은 단지 눈 가리고 아 웅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엇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에는 분명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고통이다.
- 더 기뻐하라. 사소한 일이라도 한껏 기뻐하라. 기뻐하면 기분이 좋아질 뿐 아니라, 몸의 면역력도 강화된다. 부끄러워 하지 말고 참지 말고 삼가지 말고 마음껏 기뻐하라. 웃어라. 싱글벙글 웃어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라. 기뻐하면 온갖 잡념을 잊을 수 있다. 타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도 옅어진다.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즐거워할 만큼 기뻐하라. 기뻐하라. 이 인생을 기뻐하라. 즐겁게 살아가라.
- 지금은 향락주의자 또는 쾌락주의자라는 잘못된 의미로 만 사용되는 '에피큐리언epicurean'이라는 용어가 있다. 그 어원이 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ouros는 삶에 있어 쾌락을 추구했다. 그리하여 도달한 정점이 만족이라는 이름의 사치였다. 그러나 그 사치를 누리는 데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담한 정원, 그곳에 심어진 몇 그루의 무화과, 여기에 약간의 치즈와 서너 명의 친구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것만으로 그는 충분히 사치스럽게 살 수 있었다.
- 예컨대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조금의 말 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외국어가 유창한 사람보다 외국어로 말할 기회를 더 즐긴다. 이렇듯 즐거움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설픈 지식을 가진 자의 손아귀에 있다. 외국어에 한하지 않더라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취미는 언제나 변함없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굉장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배울 수 있다. 다 자란 어른일지라도 '배움'의 즐거움을 통하여 그 무언가의 달인이 될 수 있다.
-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 많은 사람들을 이해시키거나 그들에게 어떠한 효과를 미치고자 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단호히 잘라 말하라.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렇다 저렇다 논하지도 말라. 그것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불신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싶다면 일단은 단언하라.
- 인생을 쉽게, 그리고 안락하게 보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리 짓지 않고서는 한시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된다. 언제나 군중과 함께 있으면서 끝내 자신이라는 존재를 잊고 살아가면 된다.
- 허물을 벗지 않는 뱀은 결국 죽고 만다. 인간도 완전히 이와 같다. 낡은 사고의 허물 속에 언제까지고 갇혀 있으면, 성장은 고사하고 안쪽부터 썩기 시작해 끝내 죽고 만다. 늘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사고의 신진대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죽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기에 명랑하게 살아라. 언제가는 끝날 것이기에 온 힘을 다해 맞서자.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기회는 늘 지금이다. 울부짖는 일 따윈 오페라 가수에게 나 맡겨라.
- 창조적인 일을 할 때는 물론, 일상적인 일을 하는 경우에 도 경쾌한 마음으로 임하면 순조롭게 잘 진행된다. 그것은 거 침없이 비상하는 마음, 사소한 제한 따윈 염두에 두지 않는 자 유로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천생 타고난 이 마음을 위축시키지 않고 지켜나감이 좋다. 그것으로 여러 가지 일을 거뜬히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가 경쾌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면 되도록 많은 지식과 만나 고 많은 예술과 접하라. 그러면 그 마음에 서서히 경쾌함이 채워질 것이다.
- 평소 자신의 생활이나 업무 속에서 불현듯 주위를 돌아보거나 멀리 시선을 두었을 때, 산과 숲이 펼쳐지고 아련한 수평선 혹은 지평선이라는 확고하고 안정된 선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얼핏 그것들은 단순히 눈에 익은 풍경에 지나지 않 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 있는 견고하고 안정된 선은 인간의 내면에 차분함과 충족, 안도감과 깊은 신뢰라는 것을 안겨준다. 모든 이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창 너머 보이 는 풍경을 중시하고, 자연과 좀 더 가까이 있는 보금자리를 선택하려고 한다.
- 끊임없이 바라고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끝내 지친다면, 이젠 그것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부릅뜨고 주시하라. 무슨 일을 해도 바람이 불어와 순조로운 진행 을 방해한다면 이제부터는 그 바람을 이용해 보라. 돛을 높이올리고 어떤 바람이 불어오는 모두 순풍으로 만들어라.
- 은근히 사양한다. 그 누구의 기분도 거스르지 않도록 배려한다. 가능한 한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 사람은 주위 사람들을 생각하고 공정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사람이 겁쟁이라도 똑같은 행동을 한다. 비록 장점으로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 근원이 어디서 나오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면 개척으로 향한 길 이 존재해도 느닷없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위험하다고 생각하 면 안전한 곳은 사라진다. 이것으로 끝이라 믿으면 종말의 입 구로 발을 내딛게 된다.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하면 불현듯 최 선의 대처법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결론은, 두려워하면 패배한다. 는 것이다. 파멸하고 만다. 상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지금까 지 없던 곤경에 빠져 있기 때문에, 상황이 너무 나쁘기 때문에, 역전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패배하는 것 이 아니다. 마음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겁먹고 있을 때, 스스로 파멸과 패배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 대부분의 사람은 사물이나 상황 그 자체를 보지 않는다. 그것에 사로잡힌 자신의 생각이나 집착, 고집, 그 상황에 대한 자신의 감정 또는 머릿속에 멋대로 떠올린 상상을 본다. 결국 자신을 이용하여 사물이나 상황 자체를 감추고 있다.
- 좀처럼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일수록 간절히 원하 는 법이다. 그러나 일단 자신의 것이 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쓸데없는 것인 양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것이 사물이든 인간이든 마찬가지다. 이미 손에 넣어 익숙해졌기에 싫증이 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싫증나 있는 것이다. 손에 넣은 것이 자기 안에서 변하지 않기에 질린다. 즉, 대상에 대 한 자신의 마음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흥미를 잃는다. 결국 계 속해서 성장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쉽게 싫증을 느낀다. 오히려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은 계속적으로 변화하기에 똑같은 사물을 가지고 있어도 조금도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라. 여러 가지에 대하여 이야 기하라. 그것은 단순한 수다가 아니다. 자신이 이야기한 것은 자신이 믿길 원하는 구체적인 어떤 것이다. 가슴을 열고 허심 탄회하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명확히 보인다. 또한 누군가를 친구로 삼는다는 것은 자신이 그 친구 안에 존경할 만한 그 무엇, 인간으 로서 어떤 동경을 품고 있음을 뜻한다. 그렇기에 친구를 사귀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존경하는 것은 높은 곳을 향함에 있 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 자신과 친구에 대해서는 늘 성실하라. 적에 대해서는 용기를 가져라, 패자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어라. 그 밖의 모든 경우에 대해서는 언제나 예의를 지켜라.
- 지나칠 정도로 친밀한 태도를 보이는 것. 이것저것을 구실 삼아 상대와의 친밀함을 얻어내려 하고, 필요 이상의 연락을 빈번히 해오는 사람은 상대의 신뢰를 얻었는지 전혀 자신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미 서로 신뢰하는 사이라면 친밀한 감정에 의지하지 않는다. 제삼자의 눈에는 오히려 무미건조한 교제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 늘 민감하고 날카로울 필요는 없다. 특히 사람과의 교제에서는 상대의 어떤 행위나 사고의 동기를 이미 파악했을지라도 모르는 척 행동하는 일종의 거짓 둔감이 필요하다. 말은 가능한 한 호의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상대를 소중한 사람인 양 대하되 결코 이쪽이 일방적으로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야 한다. 마치 상대보다 둔한 감각을 가진 듯이, 이것이 사교의 요령이며, 사람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다.
- 살아 있는 물고기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 스 스로 낚아 올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견을 가지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깊이 파고들어 언어화하지 않으 면 안 된다. 그것은 물고기 화석을 사는 것보다 나은 일이다. 자신의 의견을 가지는 것이 성가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돈 을 지불하고 상자에 든 화석을 산다. 이 화석은 곧 타인의 낡은 의견이다. 그리고 그들은 돈을 주고 산 의견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는다. 그런 그들의 의견은 살아 있음의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항상 그 상태로 정체해 있다.
- 덥다의 반대는 춥다, 밝다의 반대는 어둡다, 크다의 반 대는 작다...... 이것들은 상대적 개념을 사용한 일종의 언어유 희다. 그러나 현실도 이와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덥다는 춥다'에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들 두 가지 개념은 어떤 현상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정도의 차이를 이해 하기 쉽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실도 이처럼 대립한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곤 란과 역경으로 작용해 작은 변화가 큰 고통이 되고 단순한 거 리가 소원해지거나 절교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고 만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민은 이 정도의 차이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 놓는 불평불만에 지나지 않는다.
- 누군가가 무언가를 인정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은 그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그것 이 세상에서 너무도 흔한 일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미 그 사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이 선악 중 어느 쪽인가, 어떤 이해를 낳는가,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는 가 하는 것들은 인정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습이나 전통, 정치를 인정하고 있다.
- 곰팡이는 통풍이 되지 않는 축축한 곳에서 자라고 번식 한다. 이와 같은 일이 사람들의 조직과 그룹에서도 일어난다. 비판이라는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폐쇄적인 곳에는 반드시 부패와 추락이 태어나 거침없이 자란다. 비판은 깊은 의심에서 나온 심술이나 고약한 의견 따위가 아니다. 비판은 바람이다. 이마를 시원하게 식히기도, 눅눅한 곳을 건조시키기도 하여 나 쁜 균의 번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비판은 쉼 없이 들을수록 좋다.
-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 나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혹은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규칙이나 법률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후에는 규칙이 존재하기에 새로운 상황이 형성된다. 그것은 규칙이 필요했을 때의 상황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 규칙을 폐지하더라도 규칙이 없었던 과거와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규칙은 환경도 인심도 바꿔 놓기 때문이다.
- 자동차에 받힐 위험이 가장 큰 순간은 자신을 향해 돌진 하는 첫 번째 자동차를 재빨리 피한 직후다. 마찬가지로 일에 서나 일상생활에서도 어떠한 문제나 불화를 원활히 처리한 후 안도하며 긴장을 풀었을 때, 다음 위험이 엄습해 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
- 조직의 우두머리에 있는 사람, 지금 시대에 있어 세력가, 권력을 쥔 사람에게 진정한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세력이 나 권력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환영이다. 세력이나 권력이 사람들에게 작용하기에 그 환영이 계속 이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특별한 존재도, 특별한 인간도 아니다. 그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기 시작한 세력가나 권력자도 있다. 진정 지 성이 있는 사람은 훨씬 이전에 권력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 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환영을 보고 있다.
- 누군가에게 어떠한 소식을 전할 때에는 요령이 있다. 새 로운 사건이나 사고, 상대가 놀랄 만한 사항을 전할 때에는 주 위가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조금 오래된 일인 양 전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그것을 선뜻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방 식을 취하지 않고 새로운 사건을 전하면 상대는 자신이 그것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밀려드는 분 노를 상대에게 드러낸다. 이렇게 되면 상대에게 전해야 할 것 도 제대로 전할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요령을 알면 질적으로 우수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공동으로 일하는 경우에 는 그 성패에까지 깊이 연관된다.
- 자신을 카리스마를 가진 깊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길 원 한다면, 어느 정도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는 일종의 어둠을 몸에 두르면 된다. 자신의 모든 것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도록, 밑바닥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끝, 밑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일종의 신비와 깊이를 느끼기 때문 이다. 연못과 늪이 그 혼탁함으로 인해 바닥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늪의 깊이에 두려움을 느낀다.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라 불리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란 그 정도의 것이다.
- 경쟁에서 종이 한 장 차이, 즉 간발의 차이로 상대를 이기 는 것은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다. 이길 것이라면 근소한 차이 가 아니라 압도적으로 이겨야 한다. 그래야 패자 역시 약간의 차이로 졌다는 분한 마음이나 자책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깨끗하고 서슴없이 상대의 승리를 칭송할 수 있다. 상대에게 치욕을 남기는 아슬아슬한 승리나 미묘한 승리, 여한을 남기는 승리는 바람직하지 않다. 승자와 패자, 누구나 쾌히 납득할 만한 압도적인 승리여야 한다. 그것이 승자의 매너다
- 잘못에는 책임을 지려고 하면서 어째서 꿈에는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의 꿈이지 않는 가? 내 꿈은 이것이라며 드높여야 하지 않는가? 그만큼 유약하 기 때문인가,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인가? 애초 자신의 꿈에 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면, 꿈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 혼잡 속으로 들어가라. 사람들 속으로 가라. 모두가 있는 장소로 향하라. 모든 이들 속에서,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은 더욱더 온화하고 착실하며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고독한 것은 좋지 않다. 고독은 당신을 깔끔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 어 버린다. 고독은 인간을 부패시키고 폐인으로 만든다. 자, 집을 나서서 거리로 나가라.
- 책을 읽은 뒤 최악의 독자가 되지 않도록 하라. 최악의 독자라는 것은 약탈을 일삼는 도적과 같다. 결국 그들은 무엇인가 값나가는 것은 없는지 혈안이 되어 책의 이곳저곳을 적당히 훑다가 이윽고 책 속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 것, 지금 자신이 써 먹을 수 있는 것, 도움이 될 법한 도구를 끄집어내어 훔친다. 그리고 그들이 훔친 것만을 어렴풋이 이해한 것만을 마치 그 책의 모든 내용인 양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삼가지 않는다. 결국 그 책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물론, 그 책 전체와 저자를 더럽힌다.
- 자신이 가진 힘의 4분의 3 정도의 힘으로 작품이나 일을 완성시키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온 힘을 다해, 온 마음을 기 울여 완성한 것은 왠지 모르게 보는 이에게 고통스러운 인상을 주고 긴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불쾌감과 혼탁한 흥분을 필연적으로 가져온다. 거기에는 그것을 만들어 낸 인간의 불쾌감이 어딘가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4분 의 3 정도의 힘으로 완성한 것은 어딘지 모르게 느긋한 여유가 느껴지는 넉넉한 작품이 된다. 그것은 일종의 안심과 건전함을 선사하는 쾌적한 인상의 작품이다. 결국 많은 사람이 쉽게 받 아들이는 것으로 완성된다.
- 수학에서 가장 짧은 길은 출발점과 도착점을 직선으로 잇는 길이라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 가장 짧은 길은 그렇지 않다. 옛날 뱃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가장 알맞게 불어오 는 바람이 돛을 활짝 부풀려 이끄는 항로가 목적지를 향한 최단거리”라고, 이것이야말로 실제로 일을 해낼 경우에 통용되는 가장 짧은 길에 관한 이론이다. 일은 머리로 세운 계획대로 진 행되지 않는다. 현실의 그 무엇이 먼 길을 가장 짧은 길로 만 들어 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사전에 알 수 없으며, 현실에 발 을 내딛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 일반적으로 '철학을 가진다'라고 말할 경우, 어느 정도 굳 어진 태도와 의견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 신을 획일화하도록 만든다. 그런 철학을 갖기보다는 때때마다 인생이 들려주는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것이 낫다. 그 편이 일 이나 생활의 본질을 명료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 말로 바로 철학하는 것이다.
- 지금까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와 깊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일단 결별하라.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되돌 아보라. 그러면 무엇이 보이는가? 지금까지 살아온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섰을 때, 마을 중심에 있던 탑이 다른 집들보다 얼 마나 높게 솟아 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그것과 마찬가지 일이 일어난다.
- 어떤 일이 불합리하다는 것이 그것을 폐지해 버리는 최우선적인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불합리하기에 오히려 그 같은일을 필요로 하는 첫 번째 조건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사람과 교제할 것, 책을 읽을 것, 정열을 가질 것. 이들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다.
- 이상을 버리지 마라.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영웅을 버리 지 마라, 누구나 높은 곳을 목표로 한 이상과 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과거의 일이었다며, 청춘 시절의 일이었다며 그리운 듯 떠올려서는 안 된다. 지금도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이상과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어느 사이엔가 이상과 꿈을 버리게 되면 그것을 말하는 타인이나 젊은이를 조소하게 된다. 시샘과 질투로 마음이 물들어 혼탁해지고 만다. 발전하려는 의지나 자 신을 이기려는 마음 또한 버려지고 만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결코 이상과 꿈을 버려서는 안 된다.
-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영예는 거기에서 주어진다. 어떤 미래를 목표로 하는가? 현재를 뛰어넘어 얼마나 높은 곳으로 가려고 하는가? 어느 길을 개척하여 무엇을 창조해 갈 것인가? 과거에 얽매이고 아래에 있는 인간과 비교하여 자신을 칭찬하지 마라. 꿈을 즐거운 듯이 입으로만 내뱉을 뿐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그럭저럭 현재에 만족하며 주저앉지 마라. 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보다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라!
- 모든 좋은 것은 멀리 돌아가는 길을 통해 목적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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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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