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말

인문 2020. 3. 8. 18:37

- 니체의 철학 또는 독특한 사상은 칸트나 헤겔처럼 장대한 체계를 목 표로 정리된 것이 아닌, 정열적인 문장으로 엮은 단편과 짧은 산문체 가 많다. 편린과도 같은 짧은 글일지라도 니체의 발상에는 분명 마음 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가령 '인간의 육체는 커다란 이성이며, 정신이라 불리는 것은 작은 이성'이라는 대담한 발상은 분명 예술적인 매력으로 가득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칸트처럼 올곧은 철학자라면 자신의 설에 이유를 설명하고 철학의 골자로 삼았겠지만, 니체는 그 같은 발상을 아무렇지 않게 던져 버렸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니체는 철학자라기보다 예술가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일을 끝내고 차분하게 반성한다. 하루를 마치고 그 하루 를 돌아보며 반성하다 보면, 자기 자신과 타인의 잘못을 깨닫 고 결국에는 우울해지고 만다. 자신의 한심함에 분노를 느끼고 타인에 대한 원망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은 대개 불쾌하고 어 두운 결과로 치닫는다. 이렇게 되는 까닭은 당신이 지쳐 있기 때문이다. 피로에 젖어 지쳐 있을 때 냉정히 반성하기란 결코 불가능하기에 그 반성은 필연적으로 우울이라는 덫에 걸려들 수밖에 없다. 지쳤을 때에는 반성하는 것도, 되돌아보는 것도, 일기를 쓰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활기차게 활동하거나 무 엇인가에 흠뻑 빠져 힘을 쏟고 있을 때, 즐기고 있을 때에는 어 느 누구도 반성하거나 되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지고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 느껴질 때에는 자신 이 지쳐 있다는 신호라 여기고 그저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 그 것이 스스로를 위한 최선의 배려다.
-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4분의 3은 공포심에서 태어난다. 공포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미 체험한 적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여전히 힘들어 한다. 하물며 그것은 아직 체험하지 않은 것마저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 공포심 의 정체라는 것은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이기에.
- 가능한 한 많은 친구를 원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친 구라 생각하고, 늘 어떤 친구와 함께 있지 않으면 마음이 차분 해지지 않는 것은 당신이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는 증거다. 진 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서 누군가를 바란다, 자신을 상대해 줄 친구를 절실히 바란다, 막연한 안도감을 찾아 누군가에게 의지 한다. 왜 그런 것일까? 고독하기 때문이다. 왜 고독한 것일까??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친구를 아 무리 많이, 그리고 폭넓게 가졌다고 해도 고독의 상처는 치유 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할 수도 없다. 그것은 단지 눈 가리고 아 웅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엇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에는 분명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고통이다.
- 더 기뻐하라. 사소한 일이라도 한껏 기뻐하라. 기뻐하면 기분이 좋아질 뿐 아니라, 몸의 면역력도 강화된다. 부끄러워 하지 말고 참지 말고 삼가지 말고 마음껏 기뻐하라. 웃어라. 싱글벙글 웃어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라. 기뻐하면 온갖 잡념을 잊을 수 있다. 타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도 옅어진다.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즐거워할 만큼 기뻐하라. 기뻐하라. 이 인생을 기뻐하라. 즐겁게 살아가라.
- 지금은 향락주의자 또는 쾌락주의자라는 잘못된 의미로 만 사용되는 '에피큐리언epicurean'이라는 용어가 있다. 그 어원이 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ouros는 삶에 있어 쾌락을 추구했다. 그리하여 도달한 정점이 만족이라는 이름의 사치였다. 그러나 그 사치를 누리는 데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담한 정원, 그곳에 심어진 몇 그루의 무화과, 여기에 약간의 치즈와 서너 명의 친구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것만으로 그는 충분히 사치스럽게 살 수 있었다.
- 예컨대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조금의 말 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외국어가 유창한 사람보다 외국어로 말할 기회를 더 즐긴다. 이렇듯 즐거움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설픈 지식을 가진 자의 손아귀에 있다. 외국어에 한하지 않더라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취미는 언제나 변함없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굉장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배울 수 있다. 다 자란 어른일지라도 '배움'의 즐거움을 통하여 그 무언가의 달인이 될 수 있다.
-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 많은 사람들을 이해시키거나 그들에게 어떠한 효과를 미치고자 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단호히 잘라 말하라.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렇다 저렇다 논하지도 말라. 그것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불신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싶다면 일단은 단언하라.
- 인생을 쉽게, 그리고 안락하게 보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리 짓지 않고서는 한시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된다. 언제나 군중과 함께 있으면서 끝내 자신이라는 존재를 잊고 살아가면 된다.
- 허물을 벗지 않는 뱀은 결국 죽고 만다. 인간도 완전히 이와 같다. 낡은 사고의 허물 속에 언제까지고 갇혀 있으면, 성장은 고사하고 안쪽부터 썩기 시작해 끝내 죽고 만다. 늘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사고의 신진대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죽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기에 명랑하게 살아라. 언제가는 끝날 것이기에 온 힘을 다해 맞서자.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기회는 늘 지금이다. 울부짖는 일 따윈 오페라 가수에게 나 맡겨라.
- 창조적인 일을 할 때는 물론, 일상적인 일을 하는 경우에 도 경쾌한 마음으로 임하면 순조롭게 잘 진행된다. 그것은 거 침없이 비상하는 마음, 사소한 제한 따윈 염두에 두지 않는 자 유로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천생 타고난 이 마음을 위축시키지 않고 지켜나감이 좋다. 그것으로 여러 가지 일을 거뜬히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가 경쾌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면 되도록 많은 지식과 만나 고 많은 예술과 접하라. 그러면 그 마음에 서서히 경쾌함이 채워질 것이다.
- 평소 자신의 생활이나 업무 속에서 불현듯 주위를 돌아보거나 멀리 시선을 두었을 때, 산과 숲이 펼쳐지고 아련한 수평선 혹은 지평선이라는 확고하고 안정된 선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얼핏 그것들은 단순히 눈에 익은 풍경에 지나지 않 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 있는 견고하고 안정된 선은 인간의 내면에 차분함과 충족, 안도감과 깊은 신뢰라는 것을 안겨준다. 모든 이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창 너머 보이 는 풍경을 중시하고, 자연과 좀 더 가까이 있는 보금자리를 선택하려고 한다.
- 끊임없이 바라고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끝내 지친다면, 이젠 그것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부릅뜨고 주시하라. 무슨 일을 해도 바람이 불어와 순조로운 진행 을 방해한다면 이제부터는 그 바람을 이용해 보라. 돛을 높이올리고 어떤 바람이 불어오는 모두 순풍으로 만들어라.
- 은근히 사양한다. 그 누구의 기분도 거스르지 않도록 배려한다. 가능한 한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 사람은 주위 사람들을 생각하고 공정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사람이 겁쟁이라도 똑같은 행동을 한다. 비록 장점으로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 근원이 어디서 나오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면 개척으로 향한 길 이 존재해도 느닷없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위험하다고 생각하 면 안전한 곳은 사라진다. 이것으로 끝이라 믿으면 종말의 입 구로 발을 내딛게 된다.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하면 불현듯 최 선의 대처법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결론은, 두려워하면 패배한다. 는 것이다. 파멸하고 만다. 상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지금까 지 없던 곤경에 빠져 있기 때문에, 상황이 너무 나쁘기 때문에, 역전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패배하는 것 이 아니다. 마음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겁먹고 있을 때, 스스로 파멸과 패배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 대부분의 사람은 사물이나 상황 그 자체를 보지 않는다. 그것에 사로잡힌 자신의 생각이나 집착, 고집, 그 상황에 대한 자신의 감정 또는 머릿속에 멋대로 떠올린 상상을 본다. 결국 자신을 이용하여 사물이나 상황 자체를 감추고 있다.
- 좀처럼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일수록 간절히 원하 는 법이다. 그러나 일단 자신의 것이 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쓸데없는 것인 양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것이 사물이든 인간이든 마찬가지다. 이미 손에 넣어 익숙해졌기에 싫증이 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싫증나 있는 것이다. 손에 넣은 것이 자기 안에서 변하지 않기에 질린다. 즉, 대상에 대 한 자신의 마음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흥미를 잃는다. 결국 계 속해서 성장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쉽게 싫증을 느낀다. 오히려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은 계속적으로 변화하기에 똑같은 사물을 가지고 있어도 조금도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라. 여러 가지에 대하여 이야 기하라. 그것은 단순한 수다가 아니다. 자신이 이야기한 것은 자신이 믿길 원하는 구체적인 어떤 것이다. 가슴을 열고 허심 탄회하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명확히 보인다. 또한 누군가를 친구로 삼는다는 것은 자신이 그 친구 안에 존경할 만한 그 무엇, 인간으 로서 어떤 동경을 품고 있음을 뜻한다. 그렇기에 친구를 사귀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존경하는 것은 높은 곳을 향함에 있 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 자신과 친구에 대해서는 늘 성실하라. 적에 대해서는 용기를 가져라, 패자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어라. 그 밖의 모든 경우에 대해서는 언제나 예의를 지켜라.
- 지나칠 정도로 친밀한 태도를 보이는 것. 이것저것을 구실 삼아 상대와의 친밀함을 얻어내려 하고, 필요 이상의 연락을 빈번히 해오는 사람은 상대의 신뢰를 얻었는지 전혀 자신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미 서로 신뢰하는 사이라면 친밀한 감정에 의지하지 않는다. 제삼자의 눈에는 오히려 무미건조한 교제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 늘 민감하고 날카로울 필요는 없다. 특히 사람과의 교제에서는 상대의 어떤 행위나 사고의 동기를 이미 파악했을지라도 모르는 척 행동하는 일종의 거짓 둔감이 필요하다. 말은 가능한 한 호의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상대를 소중한 사람인 양 대하되 결코 이쪽이 일방적으로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야 한다. 마치 상대보다 둔한 감각을 가진 듯이, 이것이 사교의 요령이며, 사람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다.
- 살아 있는 물고기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 스 스로 낚아 올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견을 가지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깊이 파고들어 언어화하지 않으 면 안 된다. 그것은 물고기 화석을 사는 것보다 나은 일이다. 자신의 의견을 가지는 것이 성가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돈 을 지불하고 상자에 든 화석을 산다. 이 화석은 곧 타인의 낡은 의견이다. 그리고 그들은 돈을 주고 산 의견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는다. 그런 그들의 의견은 살아 있음의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항상 그 상태로 정체해 있다.
- 덥다의 반대는 춥다, 밝다의 반대는 어둡다, 크다의 반 대는 작다...... 이것들은 상대적 개념을 사용한 일종의 언어유 희다. 그러나 현실도 이와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덥다는 춥다'에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들 두 가지 개념은 어떤 현상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정도의 차이를 이해 하기 쉽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실도 이처럼 대립한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곤 란과 역경으로 작용해 작은 변화가 큰 고통이 되고 단순한 거 리가 소원해지거나 절교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고 만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민은 이 정도의 차이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 놓는 불평불만에 지나지 않는다.
- 누군가가 무언가를 인정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은 그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그것 이 세상에서 너무도 흔한 일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미 그 사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이 선악 중 어느 쪽인가, 어떤 이해를 낳는가,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는 가 하는 것들은 인정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습이나 전통, 정치를 인정하고 있다.
- 곰팡이는 통풍이 되지 않는 축축한 곳에서 자라고 번식 한다. 이와 같은 일이 사람들의 조직과 그룹에서도 일어난다. 비판이라는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폐쇄적인 곳에는 반드시 부패와 추락이 태어나 거침없이 자란다. 비판은 깊은 의심에서 나온 심술이나 고약한 의견 따위가 아니다. 비판은 바람이다. 이마를 시원하게 식히기도, 눅눅한 곳을 건조시키기도 하여 나 쁜 균의 번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비판은 쉼 없이 들을수록 좋다.
-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 나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혹은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규칙이나 법률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후에는 규칙이 존재하기에 새로운 상황이 형성된다. 그것은 규칙이 필요했을 때의 상황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 규칙을 폐지하더라도 규칙이 없었던 과거와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규칙은 환경도 인심도 바꿔 놓기 때문이다.
- 자동차에 받힐 위험이 가장 큰 순간은 자신을 향해 돌진 하는 첫 번째 자동차를 재빨리 피한 직후다. 마찬가지로 일에 서나 일상생활에서도 어떠한 문제나 불화를 원활히 처리한 후 안도하며 긴장을 풀었을 때, 다음 위험이 엄습해 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
- 조직의 우두머리에 있는 사람, 지금 시대에 있어 세력가, 권력을 쥔 사람에게 진정한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세력이 나 권력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환영이다. 세력이나 권력이 사람들에게 작용하기에 그 환영이 계속 이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특별한 존재도, 특별한 인간도 아니다. 그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기 시작한 세력가나 권력자도 있다. 진정 지 성이 있는 사람은 훨씬 이전에 권력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 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환영을 보고 있다.
- 누군가에게 어떠한 소식을 전할 때에는 요령이 있다. 새 로운 사건이나 사고, 상대가 놀랄 만한 사항을 전할 때에는 주 위가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조금 오래된 일인 양 전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그것을 선뜻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방 식을 취하지 않고 새로운 사건을 전하면 상대는 자신이 그것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밀려드는 분 노를 상대에게 드러낸다. 이렇게 되면 상대에게 전해야 할 것 도 제대로 전할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요령을 알면 질적으로 우수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공동으로 일하는 경우에 는 그 성패에까지 깊이 연관된다.
- 자신을 카리스마를 가진 깊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길 원 한다면, 어느 정도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는 일종의 어둠을 몸에 두르면 된다. 자신의 모든 것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도록, 밑바닥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끝, 밑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일종의 신비와 깊이를 느끼기 때문 이다. 연못과 늪이 그 혼탁함으로 인해 바닥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늪의 깊이에 두려움을 느낀다.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라 불리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란 그 정도의 것이다.
- 경쟁에서 종이 한 장 차이, 즉 간발의 차이로 상대를 이기 는 것은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다. 이길 것이라면 근소한 차이 가 아니라 압도적으로 이겨야 한다. 그래야 패자 역시 약간의 차이로 졌다는 분한 마음이나 자책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깨끗하고 서슴없이 상대의 승리를 칭송할 수 있다. 상대에게 치욕을 남기는 아슬아슬한 승리나 미묘한 승리, 여한을 남기는 승리는 바람직하지 않다. 승자와 패자, 누구나 쾌히 납득할 만한 압도적인 승리여야 한다. 그것이 승자의 매너다
- 잘못에는 책임을 지려고 하면서 어째서 꿈에는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의 꿈이지 않는 가? 내 꿈은 이것이라며 드높여야 하지 않는가? 그만큼 유약하 기 때문인가,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인가? 애초 자신의 꿈에 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면, 꿈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 혼잡 속으로 들어가라. 사람들 속으로 가라. 모두가 있는 장소로 향하라. 모든 이들 속에서,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은 더욱더 온화하고 착실하며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고독한 것은 좋지 않다. 고독은 당신을 깔끔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 어 버린다. 고독은 인간을 부패시키고 폐인으로 만든다. 자, 집을 나서서 거리로 나가라.
- 책을 읽은 뒤 최악의 독자가 되지 않도록 하라. 최악의 독자라는 것은 약탈을 일삼는 도적과 같다. 결국 그들은 무엇인가 값나가는 것은 없는지 혈안이 되어 책의 이곳저곳을 적당히 훑다가 이윽고 책 속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 것, 지금 자신이 써 먹을 수 있는 것, 도움이 될 법한 도구를 끄집어내어 훔친다. 그리고 그들이 훔친 것만을 어렴풋이 이해한 것만을 마치 그 책의 모든 내용인 양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삼가지 않는다. 결국 그 책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물론, 그 책 전체와 저자를 더럽힌다.
- 자신이 가진 힘의 4분의 3 정도의 힘으로 작품이나 일을 완성시키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온 힘을 다해, 온 마음을 기 울여 완성한 것은 왠지 모르게 보는 이에게 고통스러운 인상을 주고 긴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불쾌감과 혼탁한 흥분을 필연적으로 가져온다. 거기에는 그것을 만들어 낸 인간의 불쾌감이 어딘가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4분 의 3 정도의 힘으로 완성한 것은 어딘지 모르게 느긋한 여유가 느껴지는 넉넉한 작품이 된다. 그것은 일종의 안심과 건전함을 선사하는 쾌적한 인상의 작품이다. 결국 많은 사람이 쉽게 받 아들이는 것으로 완성된다.
- 수학에서 가장 짧은 길은 출발점과 도착점을 직선으로 잇는 길이라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 가장 짧은 길은 그렇지 않다. 옛날 뱃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가장 알맞게 불어오 는 바람이 돛을 활짝 부풀려 이끄는 항로가 목적지를 향한 최단거리”라고, 이것이야말로 실제로 일을 해낼 경우에 통용되는 가장 짧은 길에 관한 이론이다. 일은 머리로 세운 계획대로 진 행되지 않는다. 현실의 그 무엇이 먼 길을 가장 짧은 길로 만 들어 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사전에 알 수 없으며, 현실에 발 을 내딛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 일반적으로 '철학을 가진다'라고 말할 경우, 어느 정도 굳 어진 태도와 의견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 신을 획일화하도록 만든다. 그런 철학을 갖기보다는 때때마다 인생이 들려주는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것이 낫다. 그 편이 일 이나 생활의 본질을 명료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 말로 바로 철학하는 것이다.
- 지금까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와 깊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일단 결별하라.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되돌 아보라. 그러면 무엇이 보이는가? 지금까지 살아온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섰을 때, 마을 중심에 있던 탑이 다른 집들보다 얼 마나 높게 솟아 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그것과 마찬가지 일이 일어난다.
- 어떤 일이 불합리하다는 것이 그것을 폐지해 버리는 최우선적인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불합리하기에 오히려 그 같은일을 필요로 하는 첫 번째 조건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사람과 교제할 것, 책을 읽을 것, 정열을 가질 것. 이들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다.
- 이상을 버리지 마라.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영웅을 버리 지 마라, 누구나 높은 곳을 목표로 한 이상과 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과거의 일이었다며, 청춘 시절의 일이었다며 그리운 듯 떠올려서는 안 된다. 지금도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이상과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어느 사이엔가 이상과 꿈을 버리게 되면 그것을 말하는 타인이나 젊은이를 조소하게 된다. 시샘과 질투로 마음이 물들어 혼탁해지고 만다. 발전하려는 의지나 자 신을 이기려는 마음 또한 버려지고 만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결코 이상과 꿈을 버려서는 안 된다.
-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영예는 거기에서 주어진다. 어떤 미래를 목표로 하는가? 현재를 뛰어넘어 얼마나 높은 곳으로 가려고 하는가? 어느 길을 개척하여 무엇을 창조해 갈 것인가? 과거에 얽매이고 아래에 있는 인간과 비교하여 자신을 칭찬하지 마라. 꿈을 즐거운 듯이 입으로만 내뱉을 뿐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그럭저럭 현재에 만족하며 주저앉지 마라. 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보다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라!
- 모든 좋은 것은 멀리 돌아가는 길을 통해 목적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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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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