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우려해야 할 것은 경제성장이 둔화될 경우 발생하는 소득격차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경우에는 각자의 적응능력에 따라 소득격차가 발생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 그래서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경우에는 소득격차에 대한 불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성장이 둔화되면서 생기는 소득 불평등은 문제가 되는 경향이 많다. 왜냐하면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가장 먼저 피해보는 사람들이 서민들이기 때문.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일자리가 줄고 소비가 감소. 일자리를 잃어 임금 이외의 소득이 없는 서민들은 고통을 겪게 됨. 그리고 소비가 감소함으로써 소규모 자영업자 역시 소득이 감소되어 고통을 겪게 됨. 임금 이외의 소득이 있거나, 숙련 노동자들 그리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어서 경제성장이 둔화되더라도 생활과 저축이 가능. 이런 과정으로 인해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소득격차가 더욱 심해지며 사람들이 불만을 갖게 되어 사회불안 요소가 됨
- 우리나라에서 최근 소득격차 문제가 크게 대두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장기 침체에 빠져 있다. 한편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지니계수를 보면 90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소득 불평등도는 조금씩 악화되어 오다가 97년 외환위기 직후 심화된다. 그 후 계속 정체상태에 있다가 08년 금융위기 이후 더욱 심화됐다가 최근에는 약간 개선된 상태이다. 물론 이 데이터는 개인의 계층간 이동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익부빈익빈의 현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가 침체되어 실업률이 장기간 높은 상태에서 서민들이 고소득층으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니계수가 악화되었다는 사실로 서민들의 고통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 소득 불평등과 관련하여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요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통화전쟁. 미제스는 일찍이 무분별한 통화증가가 소득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것을 강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의해 통화량이 증가하면 아직 물가가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 유입된 통화를 일찍 손에 넣은 사람의 실질 구매력은 증가. 그러나 통화증가로 인해 물가가 오른 후에 새로 유입된 통화를 입수한 사람의 실질 구매력은 상대적으로 하락. 결국 새로 유입된 화폐를 일찍 손에 넣은 사람과 나중에 입수한 사람간에 소득격차가 발생. 새로운 화폐를 일찍 먼저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일반 서민들보다는 정부와 연관성을 갖고 있는 부유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득격차는 생산활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소득격차는 비생산적인 것으로서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는 문제다
- 인류의 본능과 심리구조를 형성하던 환경은 제로섬 사회였다. 소규모 그룹을 지어 수렵채취로 살아가던 원시인들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만 살았다. 한 사람이 더 가지면 다른 사람이 적게 갖는 척박한 삶이었다. 열매도 어느 한 사람이 많이 따가면 나머지 사람들이 따갈게 줄어든다. 생산이란 개념이 없었다. 따라서 가진 것의 격차는 용서할 수 없었다. 이윤을 챙기는 것은 훔치거나 빼앗고 기만하는 결과로 이해됐다. 부의 축적은 착취나 권력의 남용에 기인한 것이라는 믿음도 그런 본능의 소산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소득 증가는 타인을 희생시킨 결과라는 주장은 현대인의 본능에 남아있는 석기시대의 정신구조를 갖고 현대사회를 평가한 결과이다.
- 사회화의 법칙이라 불러도 좋을 미제스의 어울림의 법칙은 개인이 원자화되지 않고 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준다. 그런 어울림의 법칙이 실행되는 시장사회는 강자가 약자를 먹어치우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즉 사회가 각 개인들에게 자신의 목적(행복)을 추구할 수단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 좋은 수단이 되어 줄 수 있는 독특한 사회가 형성된다. 교환경제를 의미하는 카탈락시가 '적을 친구로 만든다'는 어원을 갖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 20세기 후반 공산주의는 많은 지역에서 종말을 고했지만, 최근에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는 19세기 칼 마르크스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는 시장경제는 양극화의 힘이 강해서, 세습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빈부격차로 인한 양극화는 민주사회와 사회정의를 파괴할 잠재력이 있다고 경고. 그의 주장은 영화 엘리시움을 떠올리게 한다. 마르크스는 유물사관에 기초한 반면, 피케티는 장기적인 데이터 분석에 기초해 이런 주장을 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현대경제학적 버전이라고 평가받음. 그리고 피케티는 마르크스와 달리 혁명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을 통해 자본주의가 개선될 수 있다고 보았다. 최고 85%의 누진적 부유세를 도입해서 빈부격차를 줄이고, 자본의 해외이탈을 막기 위해 각국이 서로 협조할 것을 주문. 과거 이보다 높은 부유세를 부과했던 역사적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피케티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격차는 주로 자본의 보유량에 달려 있으며, 자본주의가 점점 심화될 것이며,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성격이라고 보았다. 피케티의 눈으로 빈부격차의 변화를 보면, 자본주의가 발전된 19세기 말에 빈부격차가 크게 확대되다가 세계대전으로 부자들이 보유한 자본이 파괴되면서 1970년까지 빈부격차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 자본이 다시 축적되면서 70년대 이후에 빈부격차는 다시 증가해 앞으로 세습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 이렇게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빈부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벌어질 수 밖에 없다고 주장.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빌게이츠의 재산은 90년에서 2010년 사이에 40억불에서 500억불로 증가했고, 로레알의 상속녀 릴리앙 베탕쿠르의 재산도 20억불에서 250억불로 증가. 이들의 재산이 90~2010년 사이에 연간 13% 증가했고, 물가상승률을 제외해도 연간 10~11% 증가했다는 것. 이런 피케티 테제에 대한 비판은 여러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상위 소득계층이 많은 부나 소득을 갖고 있더라도 사람이 바뀐다면 세습사회라 할 수 없는데, 소득세 자료는 상위 고소득 집단에 누가 들어가 있는지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소득계층의 이동성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다. 또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자본의 힘뿐만 아니라 창의성, 아이디어, 기업가저인 등 부를 가져다주는 요인이 다양하므로 빈부격차를 줄이는 효과도 상당히 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 산업혁명기 노동자의 삶을 예로 들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흔히 그 이전의 사회에는 빈부격차도 없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프린스턴대 앵거스 디턴 교수는 '위대한 탈출,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에서 인류가 빈곤문제에서 탈출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잘 설명. 그는 과거에는 어떻게 살다가 죽었나?(82~96p)에서, 인간이 존재한 시간의 95%에 해당하는 수십만년이라는 시간동안 사람들은 수렵 및 채집생활을 했는데, 먹잇감을 쫓아 빠른 속도로 하루에 16~24킬로미터쯤 걸었을 것으로 추정. 인구를 줄이기 위한 영아살해 풍습도 있었으며, 신생아 중 20%가 첫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 무리 대부분이 식량을 저장하지 않았다. 수렵채집사회는 지배자없이 유지되는 평등주의 사회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상낙원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다른 무리와 맞닥뜨리는 경우 대부분 폭력이 발생했다.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을 때 말리거나 중재하는 사람이 없었다. 충돌은 성인의 사망률을 높이는 또 다른 원인이 되었다.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은 인간의 역사에 항상 등장했는데, 출생 시 기대수명은 20~30년에 불과했다.
- 흑인노예제도를 흔히 자본주의의 탐욕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흑인노예제도가 자본주의 때문에 발생했는가? 카리브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에서 흑인노예노동이 백인 계약노동을 대체한 것은 17세기 중반이다. 예를 들면 1645년 바베이도스 섬에는 백인농민 1만 1200명과 흑인노예 5680명이 있었다. 그런데 1667년에는 흑인노예 8만 2023명으로 증가. 백인인구가 5분의 2 넘게 감소할 흑인인구는 무려 11배 이상 증가.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의 담배농장의 1670년 흑인 노예인구는 총인의 12분의 1에 불과했지만, 1730년에는 4분의 1로 증가. 이렇게 흑인노예가 많아진 것은 17세기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공장제 기계공업이 확산되면서 임금노동자가 많아지면서 결국 자본과 노동의 분리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것이 영국 산업혁명 이후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영국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는 일반적으로 1760~70년경이라고 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시작된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따라서 흑인노예제도는 자본주의가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확산된 것이다.
- 과거에 가난한 인간이 자연재앙 앞에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보여주는 자료가 많이 있다. 주경철 교수가 히스토리아에 소개한 인류에게 닥쳤던 최악의 재앙에 이런 내용이 있음. 19세기 후반에 기상악화로 세계 각지에 극심한 재앙들이 발생. 1876년부터 79년까지 무려 4년 동안 계절풍이 불지 않아 아시아 여러 지역에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가뭄이 들었다. 가장 극심했던 곳은 인도로 거의 1000만명 이상 아사자가 발생. 이 밖에도 자바, 필리핀, 조선, 브라질, 남아프리카, 마그레브에서도 가뭄과 기근이 보고됨. 1889년부터 91년 사이에 다시 인도, 조선 브라질, 러시아, 아프리카에 기근이 있었다. 이때 수단과 에티오피아에서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고 함. 다시 1896년부터 1902년 열대지방 전역과 중국 북부에서 극심한 가뭄과 기근이 발생. 세번에 걸친 이 재앙으로 전 지구적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약 3000만~5000만으로 추산됨. 이런 현상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났는데 엘니뇨 현상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건 공업화를 위해서는 노동력을 대거 투입하기 위한 도시화가 필수불가결했다. 하지만 공업화는 노동계층을 만들어냈고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진행됨에 따라 중산층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계층간의 격차가 줄어들고 지역간의 차이가 줄어드는 효과를 함께 수반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산업화를 지역격차를 만든 원인으로 들고 있는 교과서는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역사의 발전으로 보는 긍정적 시각으로 보기 힘들다. 나아가 산업화로 인하여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국토가 둘로 나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는 논리의 비약이며 수도권-비수도권을 대결로 몰고가는 이분법적 사고이다. 나아가 최근 충청권의 수도권화가 수도권의 인구분산과 지역 생활수준의 향상 그리고 인구증가를 가져왔음은 설명하지 않는 서술에서의 편향성도 보이고 있다. 고등학교 지리교과서에서는 지역격차에 대한 해결책으로 수도권 공장 총량제를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이 총량제 때문에 수도권에 공장을 신설하거나 증설하지 못하게 된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하기보다 임금과 세금이 저렴한 중국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 및 동유럽 국가들로 생산거점을 옮겨 국가 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온 것, 특히 기업투자와 고용창출의 손실을 초래한 부정적 결과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논리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서술이다. 기업투자가 적으니 고용이 늘지 않고 청년실업이 심화되며 세수부족에까지 영향을 미쳐 복지기반이 무너지는 현실의 문제점을 교과서는 무시해버리고 있는 것. 도리어 절대선으로 여기고 있는 수도권 공장 총량제가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 지역격차 해소정책들은 왜 실패했는가? 지역격차 해소정책들은 정치적 목적을 갖고 경제적 효율성은 배제된 채 정치적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재정투입정책이기 때문에 실패는 당연. 예컨대 중앙과 지방의 지역격차 해소가 목표였다면 세종시는 충청이 아니라 강원이 되어야 옳다. 가장 지역발전이 뒤처진 강원도의 입장에서 본다면 강원도는 세종시의 건설 이후 행정중심 내지는 행정수도와 더 멀어지고 더욱 지방화되었다. 이렇게 지역격차를 해소하는 전통적 방법은 중앙정부의 예산으로 도로, 공항, 교량 등 지역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효율성이 떨어지는 지방도로나 지방공항 건설 등의 공공사업에 중앙의 재정이 투입되어 낭비되었다. 이런 공공사업이 지방의 고용을 창출하고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어 지역간 격차를 개선하는 기능이 있다고 하여 일본도 상당히 많이 추진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에서도 상당히 자취를 감추었다. 역설적이게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간의 교통을 편리하게 하여 지역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지자체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만든 고속도로나 KTX, ITX가 비수도권 지역의 자원을 수도권이나 서울 강남으로 빼앗아가서 지역경제에 부정적 부메랑으로 작용하기도 함
- 서양의 경우 미국, 러시아, 스위스처럼 연방제를 운영하는 경우에는 지역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정치문제화 시도가 적고, 프랑스나 한국처럼 강한 중앙집권 정치체제에서는 지역격차와 불평등을 강하게 문제시하는 것으로 보여짐. 각자 지역에게 결정을 맡기는 연방제의 경우 격차나 차이는 다름이 되지 불평등이나 손해가 되지 않지만,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여 자기 결정권이 박탈된 경우 격차는 중앙이 만들어낸 참을 수 없는 불평등이 되기 때문이다.
- 중요한 것은 실제 소득이 얼마이고, 과거와 비교하여 얼마나 증가했느냐이다. 240여년 전에 애덤 스미스는 '오늘날의 근면하고 절약하는 농부들이 옛날 유럽의 왕족보다 더 많은 편의를 누린다. 농부들이 누리는 편의는 벌거벗은 야만인 수만명의 목숨과 자유를 좌지우지하는 아프리카의 절대적 왕보다 낫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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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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