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평소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려 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언급 또한 피하려고 한다. 더욱이 현대사회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죽음을 우리 삶과 철저하게 분리한 채 우리에게 죽음의 민낯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생각해본 적도 없게 살게 되고, 삶을 그저 닥치는 대로 살면서 일시적 위안과 위로에 현혹되기 쉽다. 그렇지만 인생은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죽음이 있기에 삶의 목적을 향해 힘겹더라도 걸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고 피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민할 수 없다. 그러면 막상 죽음이 닥쳤을 때 우리는 비참함과 슬픔에 사로잡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도 감정의 둔마를 겪게 되고 더 나아가서 무관심하게 될지 모른다
- 포렌식이란 말은 광장에서 재판을 함의하는 포럼에서 유래했으나, 현재는 범죄증거를 확정하기 위한 과학적 수사를 일컫는 용어. 예를 들어 디지털 포렌식이란 컴퓨터와 관련한 필수적 증거를 확보하는 것으로 범죄수사기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법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학문에 포렌식을 붙이는 것이다. 어쩌면 법의학은 광장에서 법정으로 진화한 의학이라고도 하겠다.
- 개체의 죽음에는 우선 전신의 생명기능이 극도로 약해져서 객관적으로 살아있다는 징후를 증명하기 어려운 상태인 가사상태가 선행하게 됨. 순차적으로 주요 장기인 순환계통, 호흡계통, 중추신경계통의 심장, 폐, 뇌 특히 뇌간 가운데 어느 하나가 불가역적으로 기능을 멈추면 개체는 반드시 생명활동을 영구히 종지하게 되는 데 이를 장기사라고 함. 장기사는 심박이 종지해 결국 개체가 죽는 심장사, 호흡정지가 먼저 나타나는 폐사, 뇌 특히 뇌간의 기능이 종지하는 뇌사로 분류. 이 중 심장사와 폐사는 오래전부터 죽음의 정의로서 사용되어 심장이 멈추었다, 숨을 거두다 등으로 표현. 이렇게 장기가 사망하면 그 다음에 세포들이 사망. 심장이 멈췄다고 해서 세포가 바로 다 죽는 것은 아니라서 사망 직후에는 각막이라든지 뼈를 이식할 수 있음. 의사들이 임상에서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죽음의 판정기준은 다음과 같음
* 호흡계통 기능의 정지 : 자발적 호흡운동의 정지
* 순환계통 기능의 정지 : 모든 동맥에서 맥박감지 불가, 심박 또는 심장음의 정지, 혈압이 측정되지 않으며 인공적 유지 불가
* 중추신경계통 기능의 정지 : 의식이 소실 또는 자극에 대한 반응 상실, 각막반사나 동공반사의 소실 등 동공산대
- 이러한 장기가 불가역적으로 정지하면 개체로서 생명활동은 필연적으로 종지하는데 이를 개체사라고 함. 이러한 개체의 죽음은 바로 한 개인의 죽음으로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사망을 일컬음
- 7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집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전체 사망자의 30-40%를 차지했고, 집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그런데 지금은 당연히 모든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병원에 간다. 왜 그렇게 바뀌게 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우선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 거부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음. 그래서 죽음과 삶을 별개로 떨어뜨려놓고자 하는 의식이 발동한 것임. 죽음은 병원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타자화시키고 우리는 죽음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조금 더 죽음으로부터 안전한 삶의 공간에 남아 있고자 하는 것. 또한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에 병원이나 장례식장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처럼 현대의 타자화된 죽음 때문에 죽음이 한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시스템안에 매몰됨으로써 매우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됨
-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이야기하는데 술은 기본적으로 뇌를 무장해제시키는 물질로서, 음주상태의 뇌에서는 탈억제 현상이 나타남. 즉 억제하는 기능을 억제한다는 것임. 뇌의 전전두엽이 뇌에서 이성을 제어하는 기능을 하는데, 술을 마시면 나를 이제까지 억제하고 있던 전전두엽의 억제기저를 알콜이 억제시켜줌으로써 나사가 풀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등의 이상증세를 보이는 것. 그런데 문제는 술이 뇌의 기능을 저하시킴으로써 기분이 좋아지는 한편으로 우울감 또한 증폭시킨다는 점. 특히 술이 깰때쯤이면 온몸의 컨디션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극심한 무기력증, 정서적 피폐 상태에 이르게 됨
- 통계를 보면 자살자의 상당수가 자살직전에 높은 알콜 수치를 기록했고 알콜이 깰 때쯤 자살을 시도. 자살한 유명 연예인들 모두 다 일정 수준 이상의 알콜 수치를 보였는데, 실제 음주 농도가 0.1%의 만취 상태에서 자살이 일어난 경우도 여러건. 물론 단순하게 알콜을 자살의 원인이라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알콜이 자살을 생각해왔던 사람에게 실행력을 높이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는 것. 기쁠 때 술 한 잔 하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울한 사람에게는 절대로 알콜을 섭취하게 해서는 안된다. 자주 만나는 친구 말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어 보이는 상대에게는 절대 술을 권하지 말라
- 죽음에 대한 태도는 크게 세가지로 구분됨
(1)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끝, 자연의 마지막 질서이자 나의 스토리의 마지막 종결로 보는 태도. 중립적 수용자세임
(2) 행복한 내세에 대한 믿음으로 접근적 수용자세를 보이는 것. 나는 이 세상의 소임을 다하고 돌아간다는 생각
(3) 죽음을 고통스런 삶의 탈출로 받아들이는 탈출적 수용 자세. 이는 사망전 신체적 고통 등에 의해 유발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자세로는 결코 행복한 죽음을 맞기는 어려울 것임
- 아툴 가완디는 책에서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할 사람들에게서 삶을 정리할 기회를 박탈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 치료에만 신경을 쓰는 미국 의료 시스템을 비판.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점에서 미국보다 더 심각함. 우리나라는 항암제를 임종 1개월전에 30.9%의 환자가 사용. 사실상 임종 1개월 전이면 이제 삶이 얼마 안 남았을 때다. 이때는 삶의 마지막 정리를 위한 통증 조절이 가장 중요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통증완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몰핀 사용은 2.3%에 불과. 그래도 미국은 50%가 넘음. 우리나라가 2.3%에 불과한 것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 시스템의 문제. 물론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전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대만이나 일본을 제외하면 매우 우수한 시스템. 그럼에도 마지막 몰핀 사용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예산을 삭감함. 그래서 의사들이 처방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환자가 통증이 심할 경우 이를 처방해서 통증을 없애야 정상적 생활을 하고 마지막까지 본인의 여러 일들, 자식들에게 남기는 당부의 말이라든지 삶의 정리라는 것을 할 수 있는데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임종환자의 33.6%가 응급실을 사용. 이것은 몰핀 사용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통증 억제가 안되니 무려 3분의 1에 해당하는 환자가 임종 1개월전에 응급실행을 해야 한다는 것.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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