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을 살아보니

인문 2019. 8. 29. 12:42

- 신은 인간에게 시련을 주지만 악마는 우리를 유혹한다 (서양속담)
- 사람은 어느 정도의 재산이 필요한가라고 묻는다면 그의 인격 수준만큼의 재산이 있어야 한다. 그 이하도 문제지만, 그 이상의 재산은 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재산보다 귀한 것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 60년대 미국에 있을 때 교회에 가보면 50대 이상의 독신남녀를 위한 미팅이나 파티를 열어준다. 서로 만나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면 친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결혼도 가능하다 내가 목사에게 교회에서 예배는 드리지 않고 이런 행사를 왜 열심히 하느냐 물었더니, 사랑하라고 설교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랑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 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른 영역의 사람들보다 훨씬 감성적이며 정서적이다. 그래서 예술인이 된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며 감정적으로 해결하게 되어 있다. 자연히 지성적이거나 이성적 기능이 약화되기 쉽다. 사람은 100의 마음의 영역을 지성, 감성, 의지가 3등분해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나 철학자들은 지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감정문제는 크게 다루지 않는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의지적인 면이 중하기 때문에 감정문제는 경험에 맡겨둔다. 그러나 부부가 연예 분야에 일할 때는 감정대 감정이 강하기 때문에 타협과 해결의 방법이 다양하지 못하다. 자연히 감정의 갈등이 심화되면 부부간의 타협과 양해가 힘들어진다.
- 황혼기의 이혼은 가정적 불행이기도 하나 개인의 인생도 실패했다고 보아 잘못이 아닐 것이다. 차라리 결혼보다도 자신을 위한 취미생활이나 개성을 살려갔다면 보람있는 인생을 펼쳐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기 때문에 자기 소질과 재능을 발휘하지도 못했고 가정적으로도 행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 모든 남녀는 인생의 끝이 찾아오기 전에 후회없는 삶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사랑이 있는 고생이다. 사랑이 없는 고생은 고통의 짐이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 인생이다.
- 젊었을 때는 모두가 자유를 외치다가도 늙으면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고 인정하게 된다.(쇼펜하우어) 지혜로운 사람은 운명론자가 된다는 의미
- 잡스러운 범인들의 삶을 버리고 초인이 되라 (니체) 그 초인은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운명애의 철인이다.
- 경험주의 사고방식을 전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에서는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대화를 통해 해결방법을 찾는다. 합리주의 사고방식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에서는 토론을 통해 해결방법을 찾음. 사회문제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요소와 여건들에 관해 참과 거짓을 가리며 선과 악의 가치를 선별하기 위해 토론을 한다. 그 결과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이 찾아지면 토론에서 패한 양측이 양보를 한다. 대화에 비하면 좀더 강한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절대주의를 선택하는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스스로의 변증법을 모순논리라고 본다. 모순논리의 특징은 중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흑백논리가 그러했듯이 중간존재가 배제된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는 약으로 치료하는 처음 단계가 있고, 주사를 쓰는 다음 단계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수술이다. 그것이 바로 대화, 토론, 투쟁의 순서에 해당. 이 수술의 단계는 역사적으로 혁명의 단계인 것이다.
- 가장 지혜롭다고 자부하던 스토아 철학자들은, 죽음은 자연스러운 생명계의 현상이기 때문에 이성의 지혜를 빌려 자연의 섭리로 돌리라고 가르친다. 나무가 자라 꽃을 피우면서 즐기고, 열매를 익혀가면서 행복을 누리다가, 완숙기인 가을이 되면 충분히 익은 열매는 떨어져간다. 그래서 또 다른 생명체들과 인간에게 생명의 가능성을 제공함. 인간의 일생도 그렇다. 연륜이 차면 옆에 남아 있는 다른 열매들에게 "내 때는 찼으니까 먼저갑니다. 남은 시간 즐기다 오세요"라면서 떨어져가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생명에 대한 지나친 욕심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느끼며 절망에 빠져 불행과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자연의 섭리는 선하고 아름다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체적 기능이 끝나는 죽음에 대해 좀더 이성적이고 운명적 해석을 내려도 좋을 것 같다.
- 어떤 철학자는 "죽음이 내 삶에 둥지를 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손님이 나를 찾아 마중 나오듯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의 공간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그 죽음의 시간이 찾아오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 말한다
- 나에게 죽음이 오기 전에 시간의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찾아오게 되어 있는 인생의 마라톤 경기의 마지막 부분을 어떻게 완주할 것인가를 함께 물어보자는 것이다. 과거의 연장일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위한 출발일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선택과 결단인 것은 사실이다. 가수가 부를 수 있는 마지막 노래 같을 수도 있다. 성직자들이 남겨주고 싶은 마지막 설교와 같을 수도 있다. 그 메아리는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뒤늦게 지금 그런 물음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선각자들은 50이나 60대 이후부터 그런 실존적 결정을 내릴 수 있었기에 역사 건설의 주춧돌을 놓았던 것이다. 인생의 나이는 길이보다 의미와 내용에서 평가되는 것이다. 누가 오래 살았는가를 묻기보다는 무엇을 남겨주었는가를 묻는 것이 역사다.
- 인간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학문도 귀하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다. 예술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예술을 즐기는 사람은 특혜를 받아 누리는 사람들이다. 교회와 신앙생활도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죽음과 싸워가면서 생명을 유지해야 할 사람들은 삶 자체의 여유가 없다.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삶의 가치와 행복을 그대로 상실하고 만다. 그들이 버림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학문을 즐기고 예술을 찬양하며 교회에서 행복을 누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생의 사치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슈바이처는 자신을 위한 모든 삶의 소유와 자산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고통을 받는 이웃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것을 버려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삶의 궁극적 목적이며 목표였던 것.
- 예수는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죽음을 거부하고 그대로 남으려 한다면 말라서 사라질 뿐'이라고 가르쳤다. 우리의 생명과 삶도 그렇다. 죽기를 거부하는 밀알이 되어서는 안된다. 더 많은 생명과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는 것이 인생의 순리인 것이다. 그것이 신의 섭리이다. 거부할 수 없는, 거부해서도 안되는 생명과 삶의 순리인 것이다.
- 내게는 걷기 운동은 산책이고 산책도 정신적으로는 생산적이기도 하다. 원고내용을 사색하기도 하고 다음 주간에 있을 강의나 강연 내용을 정리하기도 한다. 늙은 사랑메게는 운동이라는 생각보다는 생활자체가 운동을 동반하는 습관이 되어야 한다
- 운동이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면 건강은 무엇을 위해 있는가? 나에게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운동을 위한 운동은 운동선수들의 몫이다. 건강을 위한 건강은 목적이 없지 않은가. 나에게는 건강은 일을 위해 필수적이다. 일이 목적이고 건강은 수단이다. 그래서 친구들과 비교해보면서 누가 더 건강한가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누가 더 일을 많이 하는가 물으면 된다. 지금은 내가 가장 건강한 편이라고 믿고 있다. 내가 누구보다도 많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서는 일이 건강의 비결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내가 아는 사람들과 존경하는 사람들의 생애를 살펴본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장수하는 편이다. 건강해서 장수한다고 모두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생애를 조사해보면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건강도 유지했던 것 같다. 우리가 잘 아는 칸트는 80년을 살았다. 300년 전에 80까지 살았다면 장수한 셈이다. 그는 왜소하고 건강에 있어서는 열등생이었다. 산책 외에는 운동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무엇이 그의 건강을 지탱했는가. 학문에 대한 열정과 일이었따. 어떤 이들은 칸트를 나귀와 같이 많은 짐을 지고 살았다고 평한다. 그러나 그는 무거운 학문의 짐을 지고 80평생을 건강하게 보냈다. 일이 건강을 유지해준 것이다. 슈바이처 박사는 하루에 몇 시간밖에 수면시간을 갖지 않았다. 정신적 일뿐 아니라 육체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90을 넘길 때까지 일에서 손을 놓은 일이 없다. 그가 마지막으로 프랑스에 있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젊었을 때는 말할 필요도 없겠거니와 아프리카에 와서도 60년간 환자들을 위해 일할 수 있어 누구보다도 행복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건강이 일을 도왔는지 일이 건강을 도왔는지 묻고 싶은 생각을 해본다.
- 젊었을 때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장년기에는 신념이 있어야 하고, 늙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 지혜로운 노년기의 부모는 직접 자신이 하던 일을 서서히 아들딸들에게 물려주고 배후에서 질문도 받고 도움을 준다. 사회 일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때 노년기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정신적 자산이 넓은 의미의 지혜인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죽을때까지 그 직책이나 지위를 가지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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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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